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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주차금지라고 써놓은 것도 아니고 차의 통행도 불편할 뿐더러 바로 옆에 있는 계단 입구를 막아버리게 되는데 주차금지라고 써져있는데도 당연하다는 듯이 주차를 해놓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주차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랫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엘리베이터가 아랫층으로 가지를 않으니 올라오기엔 자신의 무릎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까. 그 소중한 무릎으로 액셀은 어떻게 밟으시는 건지. 금연표지판 무시하고 담배 피우는 새끼들이 이런 새끼들인 건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열심히 했을 당시 서로 온라인이 아니어도 내가 만든 섬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꿈번지 코드를 트위터에 올리곤 했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어서 올려봤자 나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볼 이유도 없는 건가 하고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지난 최근에야 꿈번지를 얼마나 봤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엔 알아봤자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아무도 안 봤을 텐데 이제 와서 그걸 확인하면 새삼스럽게 마음의 상처만 늘 뿐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들여다 보았다. 결과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오십 명이 보고간 걸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 대체 그 오십 명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본 걸까… 어디에선가 웃음거리로 공유한 걸 보고 접속한 걸까? 꿈번지를 몇 번이나 올렸는데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는데 그런 수가 오는 게 가능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지를 못한다. 그 때 괜히 올린 건가 하는 생각부터 들어버린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기 좋게 만들었는데 비교하면서 웃어댄 걸 거란 생각을 하니 더 비참해진다. 어떻게 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다. 인터넷 공간에서 뭘 내세우려 하면 꼭 이런 꼴이다. 너무나 처참하다.
옛날에는 생각나던 어휘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를 하면서도 이 캐릭터 이름이 뭐였더라를 한참 생각해야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실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마틴 루터 킹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헤매게 되었다. 하긴 나에게 이젠 흑인 인권 같은 거 알 게 뭐냐 싶어졌지만. 그런데 이런 것이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세상이 나에게 뭔가 요구하는 것은 또 아니다. 이런 게 상관없는 일을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겠지만. 사실 전부터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열심히 파고드는 척을 했을 뿐이지.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런 걸로 자책을 하게 된다. 필요한 것인지의 여부는 상관없이 그냥 껴안고 있고 싶을 뿐일 것이다. 사람은 결국 이런 행위를 욕구로 삼고 있는 거니까. 다른 사람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런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욕구.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결국 이 욕구 때문에가 아닌가. 그렇지만 결국 이 욕구를 계속 충족시키지 못하니깐 과부하만 걸리는 건가. 전에 비해서 글을 못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전에 쓴 글들을 살펴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냥 쓰레기였다. 떠오르는 생각이 줄어들었을 뿐 소재를 선택하는 기준도 그걸 풀어내는 수준도 그대로이다. 발전 없이 이어나갔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겪게 된 것 아닌가. 책을 읽어봤자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면 무용지물. 결국 썩어가는 뇌를 끌어안고 절망할 뿐.
<여행과 나날>을 본 지 꽤 되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화 자체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싶었다. 내용에 여백이 많고 뭔가를 목표로 하는 것도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풍경을 찍은 영상이다 그런 감상을 가졌던 것 같다. 아니 뭐 그 풍경도 태반이 어두침침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깔고 있어서 잘 안 보였지만...
영화를 보면서 심은경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과 심은경 배우가 걸어가는 길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활발하게 영화에 나오는 동안 <수상한 그녀>까지는 연이어서 출연작이 대히트를 치면서 앞으로의 길이 창창해 보였지만 그 이후로 완전히 꺾이면서 흥행도 평가도 못 받는 작품에만 연이어 나오게 되었다. 이동진 평론가 유튜브에 나와서도 이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이 없는데 과분한 평을 받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지금까지도 그저 의아할 뿐이다. 물론 자신에 대해 겸손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심은경 배우만큼의 재능을 가진 배우가 얼마나 있을까. 그 재능을 보고 여태까지 따라갔던 것 같은데. 그 대사가 나오는 GV 장면에서 나오는 관객들의 입장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일본 영화에 자주 나오게 되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눈 밖에 나가면 마음도 자연히 멀어지는 법이니 한국 관객들이 선호하지 않게 된 것인지 한국에서의 흥행이 일본에서의 흥행 성적만도 못한 영화들도 많았다. 한국 쪽에서 출연한 작품도 사람들이 얼마나 알았을까 싶은 성적이 나왔다. 내 입장에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게 일본 영화에서 나오는 심은경 배우는 항상 외국인이다. 이번 <여행과 나날>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른 배우들과 같은 입장이 아니라 외부인으로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날 수 밖에 없다. 결국 심은경 배우의 선택인 것이지만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가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영화 속 주인공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게 각본을 쓰는 장면에서 요즘엔 당연한 컴퓨터 타자가 아니라 원고지에 연필로 쓰고 있다. 원작이 있는 영화라 그렇게 묘사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좀 특이하네 싶었는데 여행을 떠났을 때엔 당연한 절차인 여관 예약도 하지 않아서 뺑뺑이를 돌다가 어떻게 찾았는지 주인 아저씨는 어떻게 영업을 한다고 했던 건지 모를 민박집으로 들어간다. 글을 쓰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는 상황에 주인 아저씨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종의 일을 겪고 난 뒤 역시 뭘 썼는지 알 수 없는 걸 쓴 뒤 민박집을 떠나는 걸로 끝난다. 이런 영화들에 나와서 이루고 싶은 게 정확히 무엇인지 만족을 하고는 있는 건지 앞으로 또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심은경 배우의 행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여행과 나날>의 한국 흥행 성적은 현재 오만 칠천 명. 일본 영화 출연 작품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일본영화 나오기 전에 나왔던 망작들만도 못한 성적이지만. <여행과 나날>을 보면서 느꼈던 걸 생각하면 이런 걸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평점은 8점으로 하겠다. 결국 박수를 치기도 비판을 하기도 애매한 작품이다 하는 감상만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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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안 보고 신문도 잘 안 보게 되다 보니 확실히 뭘 쓰려고 해도 잘 안 나가진다. 하긴 뭘 쓰려면 떠오르는 게 있어야 하는데 떠올릴 수 있는 소재가 없으니 당연하지만. 하지만 그런 소재를 많이 준비해서 썼을 당시와 지금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면 잘 모르겠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아무도 봐주지 않아서 울어도 아무도 봐주지 않았던 기억만 수두룩하게 남아있다. 그 동안 봐왔던 책들에게서 대체 무엇을 얻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어릴 적엔 책을 보면 사람들이 대견한 것처럼 대해줬다. 아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도 내가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선 그렇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책을 읽는다는 행위만 본 것 같다. 아 판타지 소설들이 재밌어 보여서 잡기 시작했더니 그런 책을 보냐는 말을 들었고 만화책이 재밌어 보여서 잡았더니 오타쿠 취급하기 시작했나. 내용이 복잡한 책들을 봐보고 이해한 점들을 인터넷에 올려봤자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그런 건 이미 더 훌륭하게 써놓은 글들이 수두룩하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 쪽을 보고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보려 하지 않으니깐. 난 항상 애매한 위치만 달려갔을 뿐이다. 그걸 알면서 무시하고 계속한 결과 아무도 관심 없는 조금만 수틀려도 무너질 모래성만 만들어진 것이다. 왜 쌓는 건지 아무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모래성. 아무도 없고 아무도 찾지 않는 모래성의 소유권을 주장해 봤자 비웃음만 받을 뿐. 어차피 광활한 우주 안에서 존재의 의미도 없는 개체인데 뭘 하고 있는 걸까.
<룩 백>을 봤다. 원작을 이미 봤었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그렇게 새로울 게 없었다. 추가되거나 크게 바뀌거나 한 것 없이 원작 내용을 그대로 담은 모양새였다. 때문에 원작 감상에서 크게 벗어날 것도 없었지만 쿄모토가 달려오는 장면을 보니 갑자기 울컥해졌다.

애니메이션을 보고서야 생각난 건데 후지노가 쿄모토 집에서 그린 4컷만화에는 후지노가 그렸다는 단서가 전혀 없다. 하지만 쿄모토는 이걸 후지노가 그렸다고 알아차리고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섭다는 것도 무시하고 다짜고짜 맨발로 뛰어나온다.
내가 했던 것들 중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알아줄 만한 것을 했던 적이 있었을까.
쿄모토의 그림을 보고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결국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지노는 만화 그리기를 관두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쿄모토의 응원을 듣고서 다시 만화를 그리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 결과물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이 작품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무시를 당한 적이라면 있다. 그런 장면이 연속되면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기로 하게 되었고. 어떻게 이런 점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슷한 걸 찾을 수 있는 건지.
물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신경했고 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별 관심도 없었으니 그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에 찬동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결과물들도 결국 내 중심으로 생각했으니 이런 결과물들을 본 사람들도 자기의 관심사와는 관계가 없으니 그냥 무시했을 것이란 것도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비하한 적은 없는데 왜 비하를 당해야 되었던 거지.
난 쿄모토와 같은 사람이 나 때문에 달려나와 주길 바랐던 걸까 내가 쿄모토가 되길 원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쿄모토처럼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는 것에도 지쳤고 후지노처럼 교감할 상대를 찾는 것도 지쳤다. 내가 <룩 백>을 보고서 울컥한 건 이 지점인 것 같다. 하나의 이상적인 관계. 그런 관계를 원했던 것 같은데 결국 돌이켜 보니 그런 관계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 그 관계를 향해 나아간 것은 한 걸음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계속 헛돌기만 했을 뿐. 헛돌다가 상처만 입었을 뿐. 자신만 상처를 입는 걸 보면서 더더욱 지쳐갔을 뿐.
결국엔 더 긴 시간을 살아봤자 무차별 습격 때문에 죽은 쿄모토의 삶에 비하면 비교할 가치도 없는 삶이란 생각이 든다. 사카모토 마아야가 부른 <色彩>의 가사처럼 영원을 바라는 것보다 한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삶이라는 게 훨씬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무런 접점도 없는 무가치한 삶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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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베닝턴이 자살했을 당시 나도 자살을 하려고 했었다. 이렇게 말하면 바보같은 팬이 베르테르 효과에 휘말린 것처럼 들리겠지만 체스터 베닝턴이 자살했던 것과 내가 자살을 하려 했던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삶의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자살을 하려고 여기저기 가봤으나 도저히 시도로 갈 용기를 내지 못해서 헤매기만 하고 있는 동안에 체스터 베닝턴이 자살을 했던 것이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 좀 지난 후에야 체스터 베닝턴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에 별 느낌을 못 느꼈던 것 같다. 분명 좋아하는 가수였는데도 나 자신의 상황 때문에 새로운 감정을 집어넣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러웠기 때문인지... 체스터 버닝턴이 죽었을 때에도 죽고 난 뒤 한참이 지나서도 많은 린킨 파크 팬들이 기억하고 슬퍼했던 반면 나야 뭐 죽었다고 해봤자 슬퍼할 사람도 없을 거고 신문 같은 곳에 실릴 일도 없었을 거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자살을 한다고 하는데 나 같은 누가 관심도 없을 찌끄레기가 없어졌다 한들 세상이 한 발짝도 움직일 리가 없겠지. 내가 항상 기억하는 만화의 장면 중 하나가 <루로우니 켄신>에서 카오루가 죽었던 걸로 모두들 속았을 당시에 나왔던 문구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죽었을 때 잘 알 수 있다고. 체스터 베닝턴이 죽고 나서도 한참 동안 우울증 치료 기금을 모은다느니 하며 추모공연을 하곤 했지만 나는 죽어봤자 다른 나라보다도 유독 높다는 한국 자살자 수에 한 명 더 들어가는 것 외에 뭐가 있었을까. 맨날 자살자 수가 심각하다라는 말만 꺼낼 뿐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그 뉴스들의 통계의 평균에는 365분의 1 밖에 안 되겠지. 아 그러고 보니 남자들의 자살이 여자들보다 훨씬 많다고 하니 더더욱 비중이 줄어들겠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이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이야기이다. 그 이후로 그 때와 무엇이 바뀌었는가 하면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그저 시간만 흘렀을 뿐 여전히 나는 찌끄레기에 불과하고 내가 없어진다 한들 곤란해 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 회사에서 죽으면 회사 쪽이 곤란하려나.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사람이 일하다 죽으면 회사의 책임이 될 테니. 누구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되뇌어봤자 그건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에 불과할 뿐 그런 노력을 한 적도 재능도 전혀 없으니 무용지물. 어차피 죽으면 한 줌. 그나마도 없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누군가가 내 옷을 훔쳐갔다. 사물함 안에 넣어놓은 것이 여러 개 있었는데 잠바가 가장 새 것으로 보이고 비싸 보였는지(실제로도 그랬다) 잠바를 훔쳐갔다. 그 때까지 아무리 그래도 남의 옷 같은 걸 훔쳐갈까 하고 사물함 관리를 소홀히 했는데 내 생각은 세상에 비하면 정말 어줍잖은 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잠바만 훔쳐가서 일단 집으로 돌아갈 정도는 되었던 걸 다행으로 여겼어야 할까. 추운 겨울 날씨에 덜덜 떨면서 가야 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비싼 거고 어머니께서 사주신 거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어서 도난당한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고 있다. 그 잠바 말고 입을 건 있으니 다행으로 여겼어야 할까. 며칠 지난 지금까지도 도난당한 사실을 치욕적으로 느끼고 사물함에 걸어놓은 자물쇠가 제대로 잠겼는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아무리 생판 모르는 남들과 일을 하는 곳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불신감을 느끼면서 해야 되는 걸까. 혹시 저 사람이 훔치고선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 또 뭔가를 나에게서 훔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새로 온 척하고서 물건 훔쳐서 달아나려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왜 해야 되는 걸까. 안 그래도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일을 돈 때문에 하고 있으면서 이런 의구심까지 품어야 한다니 그저 끔찍하다. 이런 믿지 못할 사람들과 왜 같은 장소에 있어야 되는 거지.
내가 무언가를 말할 때에 사람들이 웃는 것이 싫었다. 내 무언가를 말하는 의도엔 그런 게 깔려있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왜 웃는 걸까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 허튼 생각이란 걸 안 이후로 누군가가 내 말에 웃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다. 인터넷에 뭔가를 썼을 때에 반응이 없는 것도 상대방이 비웃고 말아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뭐 실제로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도 못하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광대도 하기 싫다면 이 세상에서 뭘 하려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딱히 믿지도 않지만 갱신을 몇 달 동안 안 하는 경우가 허다한 내 블로그를 자주 본다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거고 이런 글을 보고 멍청하게 어이구 불쌍해 뉘신지 모르겠지만 입금해 드릴게요라고 할지 씨팔 왜 이딴 새끼나 꼬이는 거야라고 할지 알 수 있을 텐데 어쩌라는 건가 싶다. 일을 못해서 방세를 못 내고 있는 상황인데 신기하게도 다음달 말에는 돈이 생긴다니 참 재밌는 지갑사정이네. 그 돈을 당장 생기게 할 수는 없는 건가? 결국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은혜를 갚는다는 걸까. 방세도 못 낸다는 사람이 어떻게 갚는다는 거야. 이런 글 쓸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돈이 십만 원도 없다면 핸드폰도 못할 거고 그럼 내 블로그 볼 수 있는 방법도 없을 텐데. 십만 원도 없으면 생활도 못하지 않나? 이딴 사기나 칠 힘으로 한강물 더 차가워지기 전에 입수하세요. 入水입니다 다른 뜻으로 생각하고 계속 추하게 살아있을 것 같아서 친절하게 한자까지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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