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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 옷을 훔쳐갔다. 사물함 안에 넣어놓은 것이 여러 개 있었는데 잠바가 가장 새 것으로 보이고 비싸 보였는지(실제로도 그랬다) 잠바를 훔쳐갔다. 그 때까지 아무리 그래도 남의 옷 같은 걸 훔쳐갈까 하고 사물함 관리를 소홀히 했는데 내 생각은 세상에 비하면 정말 어줍잖은 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잠바만 훔쳐가서 일단 집으로 돌아갈 정도는 되었던 걸 다행으로 여겼어야 할까. 추운 겨울 날씨에 덜덜 떨면서 가야 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비싼 거고 어머니께서 사주신 거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어서 도난당한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고 있다. 그 잠바 말고 입을 건 있으니 다행으로 여겼어야 할까. 며칠 지난 지금까지도 도난당한 사실을 치욕적으로 느끼고 사물함에 걸어놓은 자물쇠가 제대로 잠겼는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아무리 생판 모르는 남들과 일을 하는 곳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불신감을 느끼면서 해야 되는 걸까. 혹시 저 사람이 훔치고선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 또 뭔가를 나에게서 훔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새로 온 척하고서 물건 훔쳐서 달아나려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왜 해야 되는 걸까. 안 그래도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일을 돈 때문에 하고 있으면서 이런 의구심까지 품어야 한다니 그저 끔찍하다. 이런 믿지 못할 사람들과 왜 같은 장소에 있어야 되는 거지.
내가 무언가를 말할 때에 사람들이 웃는 것이 싫었다. 내 무언가를 말하는 의도엔 그런 게 깔려있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왜 웃는 걸까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 허튼 생각이란 걸 안 이후로 누군가가 내 말에 웃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다. 인터넷에 뭔가를 썼을 때에 반응이 없는 것도 상대방이 비웃고 말아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뭐 실제로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도 못하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광대도 하기 싫다면 이 세상에서 뭘 하려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딱히 믿지도 않지만 갱신을 몇 달 동안 안 하는 경우가 허다한 내 블로그를 자주 본다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거고 이런 글을 보고 멍청하게 어이구 불쌍해 뉘신지 모르겠지만 입금해 드릴게요라고 할지 씨팔 왜 이딴 새끼나 꼬이는 거야라고 할지 알 수 있을 텐데 어쩌라는 건가 싶다. 일을 못해서 방세를 못 내고 있는 상황인데 신기하게도 다음달 말에는 돈이 생긴다니 참 재밌는 지갑사정이네. 그 돈을 당장 생기게 할 수는 없는 건가? 결국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은혜를 갚는다는 걸까. 방세도 못 낸다는 사람이 어떻게 갚는다는 거야. 이런 글 쓸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돈이 십만 원도 없다면 핸드폰도 못할 거고 그럼 내 블로그 볼 수 있는 방법도 없을 텐데. 십만 원도 없으면 생활도 못하지 않나? 이딴 사기나 칠 힘으로 한강물 더 차가워지기 전에 입수하세요. 入水입니다 다른 뜻으로 생각하고 계속 추하게 살아있을 것 같아서 친절하게 한자까지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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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침투하지 않은 분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공지능이 활개를 친다. 로봇과 프로그램이 더많은 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더 예술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더 고도의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돌았던 것 같지만 가장 먼저 먹히고 있는 일이 이 쪽이었다. 프로그램을 짜는 일마저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맡겨버리면 끝. 그냥 사람들이 설 곳이 사라진다는 게 확 느껴진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계속 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화력 발전을 태양광 발전 등 재생가능 에너지들로 메꾸긴 힘들고 화력 발전을 하자니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신경쓰여 그 동안 죄악시하며 유럽을 중심으로 없애려 하던 핵발전에 다시 눈을 돌렸다. 이런 끝없는 소모를 지구의 자원이 견딜 수 있을까. 아니면 사람들이 없어져 인공지능이 독점적으로 쓰는 세상을 전제로 깔고 있는 걸까.
사람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얻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인공지능에 바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애플에서 만들었다가 문제가 되었던 압축기 광고처럼 모조리 파괴하는 듯한 모양새.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긴 한 걸까? 인공지능은 학습한 것을 주로 삼는데 이미 만들어져 있는 지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아니 그런 새로운 것들을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극명해지는 순간이야말로 인간은 필요없다는 신호탄이 쏘아지는 순간이 아닌가. 아 이미 쏘아졌나.
러다이트 운동을 할 수도 없다. 옛날에도 불가능했는데 지금 같은 첨단 시대에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대로 나아갔을 경우 펼쳐지는 미래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기우에 불과한 걸까.
<나는 생존자다>에서 삼풍백화점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붕괴가 순식간에 일어나 여러 층의 바닥이 샌드위치처럼 쌓여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 층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샌드위치 사이에 깔려 형체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앞서 애플의 압축기 광고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도 똑같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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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쇼케이스 관련 전자우편을 받고 나서 여기에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보니 일하는 곳에서 인디스페이스까지 가려면 교통편만 해도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걸로 나왔다. 걸어가는 시간, 차를 갈아타는 시간, 차가 지연될 수 있는 시간을 다 생각해보니 다섯 시에 일이 끝나 아무리 달려가봤자 영화가 시작되는 일곱 시 전에 도착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맞춰낸다 한들 저녁도 안 먹고 아홉 시 경까지 버틸 생각인지…
영화를 보려고 그렇게 열심히 극장을 찾아다녔던 시절에라면 이 정도야 하고 달려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런 열의도 생기지 않는다. 영화를 봐봤자 인터넷에서 어쩌다 한두 편 볼 뿐.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영화 중에서만. 영화에 열성적이었던 시절엔 이렇게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는데 왜 사람들이 안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젠 내가 그 사람들이 되었다.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가 망했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깐.
내가 그 동안 이런 걸 찾아헤맸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싶어졌다. 어차피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어떤 영화에 대한 감상을 써놔도 누구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그저 썩어갈 뿐인 내 뇌 속에서 기억을 남기려했다가 사그라들기만 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어차피 인공지능의 답변의 1%도 가치가 없는 유튜브 댓글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건가 싶은 것만 낳을 뿐인데 여기저기 아무 생산성도 없이 극장을 찾아다녔던 건 다 뭐였을까?
아무리 이런 것이 있다고 알려봐봤자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으면서 두 시간 동안 달려가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던 건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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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供の頃何も考えずに大きくなって自分が何もできない人間になったらどうしようと泣いたことがあった。今考えるとなんでそんなのを考えたのかなんで今の状況に当てはまるのか思ってしまう。結局自分の行く末はもう予定されていたのか?壊れそうな心を掴まっているのは辛いだけ。誰か助けてくれる希望は全然なし。こんな思いだけの生なら一層終わってしまうのがいいのではと何度も何度も繰り返す。だけどそれに対してそんなことしてなんの解決になるのかと何度も何度も繰り返す。何も実行出来ずふざけてるだけの人生。なんの面白みもないのに笑えるわけもないし。どうやって笑ったけ俺。それすら覚えられないや。本当に何も出来ないクズになってしまったよ子供の頃の自分。ごめん。
뭐를 하고 싶다 한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나를 가로막는다. 치트키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에 그런 게 존재할 리도 없으니 그저 막막함을 느낄 뿐이다. 지금도 이런 생각이나 하는 걸 보면 난 뭔가를 할 때에 쉬운 방법만 골랐던 어린 시절의 사고방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어린 시절에야 이런 걸 해도 봐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아는데 이러고 있으니 답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전혀 없으니 그저 도돌이표에 따라 맴돌고 있을 뿐.
아니 그래도 어릴 적엔 희망이라도 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이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있을 뿐.
이런 삶에 무슨 가치가 있나를 매일 생각하지만 그것도 생각일 뿐 다른 행동으로 옮기려는 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존 본능과 무가치한 자신을 바라보는 치욕이 매일처럼 싸우고 있을 뿐.
치트키 중엔 승리가 아니라 패배로 직행할 수 있는 치트키도 있다. 그냥 이것만이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해결되지 않을까.
어딘가에 내 의견을 전달하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니 그냥 없어졌다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생각을 할 기회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것만으로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무언가를 보고 느끼기는 하니깐. 하지만 그 보고 느낀 것들을 어딘가에 전달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뒤덮여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도 마찬가지로 결국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글을 쓰든 간에 영상을 만들었든 간에 결국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영향력을 가진 건 없었다. 뭐든 간에 다른 사람들이 한 것들의 영향력이 더 높았고 그럼 내가 한 것은 있으나 없으나 똑같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딜 가도 내가 있든 없든 상관 없는 것 아닐까, 아니 오히려 내가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게 아닐까.
기록을 한다는 의미도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사람이 남긴 글은 오래가지 못한다. 정성스럽게 보존된 글들은 오래 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성스럽게 보존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나 가능하지 그렇지 못한 건 쉽게 스러진다. 시간을 오래 거스를 것도 없이 1990년대나 2000년대 나왔던 책들 중 얼마나 많은 책이 살아남아 있을까? 하물며 출판 같은 걸 거치지 않은 개인의 기록은 개인이 죽는 순간 끝날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어차피 죽으면 한 줌 먼지 밖에 되지 않아 사라져 버릴 인간인데 그런 인간이 남긴 것에 누가 흥미를 느낄 것인가. 하긴 한 줌 먼지가 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그것의 존재를 잊어버리겠지. 아참 그 때까지 살아있을지도 알 수가 없나. 좇 같은 인생.
돌아가고 싶다. 라고 해도 어디로 돌아가야 좋은 건지. 생각해 보면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시기들 중 정말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본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다. 그 동안 해왔던 모든 것들 중 누군가가 가치 있는 것을 했다며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죽은 것하고 뭐가 다른 건지. 힘들여 했다고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누구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나의 시간만 낭비했을 뿐 아닌가. 언젠가 죽으면 이런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빠르게 지워져 버리겠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이 없어져 봤자 누가 꿈쩍이나 하겠나. 사람들 눈에 띄는 죽음을 택해봤자 그건 그 때 뿐. 어차피 화장되면 한 줌 밖에 안 될 게 무슨 존재를 따질 수 있나 키득.
옛날에 좋아했던 그 애는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내가 기억하는 모습일까? 이렇게 말해봤자 기억이 너무나 희미해졌다. 생각해 보니 그 애를 만났던 나이의 배를 훨씬 넘는 나이가 되었다. 그에 비해 볼 수 있었던 기간은 짧았고 좋아했을 뿐 대화가 오간 적도 없었으니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짧았다. 정말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이미지일 뿐. 어떤 상황을 통해서도 그 애를 기억하기 힘드니 노래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비가 온다거나 어떤 장소에 간다거나 해서 기억할 수도 없다. 이제 와선 왜 좋아했던 걸까 하는 의문도 든다. 정말 짧은 만남이었는데 접점이랄 것도 정말 사소한 것이었는데 왜? 그 시기엔 그냥 그런 사소한 것에도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의미가 없는 유전자의 장난에 불과했던 걸까. 그 때엔 정말 하루종일 그 애를 생각했었는데 그 시간들이 그냥 그런 것이었던 걸까.
이제 와서 그 애를 만나거나 하고 싶지도 않고 만나봤자 할 이야기도 없다. 이제 와서 옛날에 좋아했다라는 말을 해봤자 너무 무의미하겠지. 오랜만에 만나보니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다거나 이혼을 했어도 다시 시작하자거나 그런 노래 가사들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아니지 시작조차 않았는데 뭔 다시 시작이냐) 그런 식으로 접점도 거의 없었던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황당한 것일지 굳이 생각해 봐야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희미한 기억 속에서 자리잡고 있을 뿐인 대상을 이제와서 굳이 만난다면 그 희미한 기억과 다르다는 것에 오히려 혼란에만 빠지겠지.
애초 나를 기억이나 할까? 글쎄, 기억한다 해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할 거란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데.
모르겠다. 난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추억으로 생각해온 걸 고찰하고 싶은 걸까. 추억을 갈기갈기 찢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