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우에사카 스미레 2022. 7. 17. 14:51

우에사카 스미레가 작년 10월에 치바 마이하마 앰퍼시어터에서 행한 단독공연을 수록한 공연 블루레이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1>이 2월 9일 발매되었다.

 

2020년 1월에 통산 네 번째 오리지널 앨범<NEO PROPAGANDA>를 발표했던 우에사카는 그 해 봄에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0>이란 이름을 건 앨범발매 기념 순회공연을 할 예정을 세웠지만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순회공연이 전부 중지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 이름을 이어받은 마이하마 앰퍼시어터 공연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1>은 <NEO PROPAGANDA>에 수록된 곡들을 중심으로 한 환상적인 공연 세트 리스트에 그 후 발매된 신곡을 추가하여 업데이트된 형태의 공연이 되었다. 이번 대담에서는 우에사카에게 있어서 약 2년 반 만인 유관객 공연이 된 이번 공연을 되새겨보며 30대에 접어든 현재에 대한 심경을 들어보았다.

 

취재·글/ 우스키 나리야키 촬영/ 소우가 미메

 

 

확실하게, 다른 사람들만큼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1>은 우에사카 씨에게 있어서 약 2년 반 만의 유관객 공연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유관객 공연으로 팬과 재회할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는 말은 많은 가수들로부터 들어왔습니다만 우에사카 씨는 "동지"(우에사카 스미레 팬을 이르는 애칭)와 재회했을 때 어떠셨나요?

 

역시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기뻤죠.

 

-진행을 할 때도 "동지가 살아남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 년 동안 꿈에 그려왔던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라고 말하셨죠? 우에사카 씨와 동지의 오래된 관계성을 생각하면 의외로 직구성 발언이었단 생각이 드네요.

 

그건 확실하게 다른 사람들만큼 했죠.

 

-다른 사람들만큼요.(웃음)

 

확실히 만나고 싶었고 만나서 기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항상 "충성파"가 되길 강요하지 않아서 "안 와주면 삐질 거야" 같은 말을 하지 않는 데다가 "이 사람은 십팔 일을 연속으로 출근했는데도 와줬는지도 몰라"라든가 "코로나 사태 때문에 티켓 값을 내는 것조차 힘든 건지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되다 보면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저를 그냥 응원하는 정도이거나 제가 성우로서 참여한 작품이나 음악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의 목표는 달성되었다고 생각해요. 공연을 할 수 있다면 물론 기쁘지만 "공연에 와야만 의미가 있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깐요.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을 때 와줘요 이런 스탠스인 거죠.

 

-2020년 12월에는 생일 기념으로 무관객 인터넷 방송 이벤트(우에사카 스미레의 원거리 대습격 파라다이스 ~29살 축하 스페셜!!~)를 했었는데 아무래도 무관객으로 하면 분위기가 살지 않죠?

 

 

실시간 댓글을 읽으면 "아, 봐주는구나"라고 알 수 있지만 공연을 하려면 역시 관객이 있어야 되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다음 순회공연은 될 수 있다면 관객석을 꽉 채우고 하고 싶어요.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1>은 모든 객석을 활용하지 못했어도 공연 시작 때 공연장이 새빨간 응원봉으로 물든 광경을 봤을 때 감개가 무량했겠어요.

 

네. 하지만 전 단독, 혼자라서 제가 너무 감동해 버리면 공연을 할 수 없으니깐 제 안에 있는 몇 명 중 한 명이 "지금은 일단 억눌러둬"라고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어요. 이번엔 연습도 많이 했거든요... 2020년 공연이 중단되었을 때에도 공연 직전 연습까지 진행했기 때문에 준비는 잘 되어있어서 머리 속에서 공연의 흐름을 떠올리며 "정말 다들 와줬어"라는 감개무량함을 느끼면서도 꽤 냉정하게 "제대로 하자"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시간차 없이 전해지는 공연장은 커뮤니케이션의 집대성

 

-우에사카 씨는 전국 방방곡곡을 빈번하게 돌아다니는 공연형 가수도 아니고 성우로서의 본업도 있으니깐 코로나 사태 때문에 공연 연기 같은 걸 겪으면 "이런 상황이니 당분간은 공연하지 말자"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런데도 공연에 대한 의욕이 계속 살아나던가요?

 

저는 이벤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좋아해요. 성우 일은 기본적으로 스태프와 만날 일도 없고 애니메이션 방송이나 게임 같은 경우 제가 일을 한 후 고객에게 도달하기까지 아무래도 시간차가 꽤 나게 되니 손님들 앞에서 하는 공연이나 이야기 행사 같은 건 동지가 지금 막 뭘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곡을 좋아하는지 직접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의 집대성이랄까요? 공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척 많아요. 녹음은 상당히 고독한 작업이거든요. 노래를 할 때 "이야, 잘 하시네요"라고 말해주는 경우도 그렇게 없고.

 

-(웃음)

 

공연을 할 때엔 다들 "좋아좋아!"라고 말해주시니깐 열심히 준비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어요. 시간차가 없이 직접적인 표현이 전달되는 느낌이 저에게 공연할 의욕을 불러일으켜준다고 생각해요. 성우 일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생동감이 좋아요. 실패를 겪은 시간도 포함해서 재밌는 공간이 만들어진달까요.

 

-한 가지 곤란한 건 그런 관객 분들의 반응이란 게 지금까지는 함성이란 구체적인 음량으로 넘쳐났었는데 지금은 그걸 할 수 없잖아요? 박수 같은 건 할 수 있어도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함성이 없어요.

 

그런 점이 있긴 하죠. 전엔 다들 입을 모아 와아와아 해주셨는데. 게다가 제 노래는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걸로 분위기를 띄우곤 했는데 지금은 전부 박수니깐요. 하지만 "박수라는 게 이렇게 전달되는 게 많구나"라는 발견도 할 수 있었어요. 저는 행사 관련 규제가 풀리자마자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보러 갔는데 그 때에도 박수응원이어서 소리도 못 내고 응원을 할 수 있나 싶었지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큰 목소리를 낸다고 열성적인 팬인 게 아니라 마음이 있다면 충분한 거예요. 다르게 보면 평등한 관람환경을 만들어 내서 지금까지 소극적이었던 사람들로서는 전보다 공연에 참가하기가 더 쉬워졌는지도 모르죠. 관객이 일일이 호응을 해준다는 게 의외로 어려우니깐요.

 

 

-확실히 열성적인 팬들의 한 치도 틀리지 않는 호응에 순응하기 힘드니깐 공연에 참가하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을 것 같네요.

 

관객 입장으로선 순수히 곡을 즐기고 싶은 경우가 저도 있으니깐요. 즐겁다고 느끼면 단순하게 박수를 쳐주는 걸로도 충분하다, 이런 평이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처음 오시거나 하시는 분들에게 무척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요?

 

-그렇네요. 그래도 "생산! 단결! 반억압!"이란 우에사카 씨 공연에서 매번 들었던 제창조차 동지가 소리내어 할 수가 없게 된건 역시 섭섭해지네요.

 

저는 우월감이 느껴졌어요. 모두들 참고 있는 와중에 혼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무척 기분 좋더라고요.(웃음)

 

"아슬아슬하게라도 의미를 알 수 있는 걸 해주세요."

 

-이번 순회공연은 2020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NEO PROPAGANDA> 발매기념 순회공연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거죠?

 

네. 그 후 신곡도 나와서 세트 리스트는 다시 짰어요.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곡들도 넣었지만 <NEO PROPAGANDA>에 들어간 곡을 부르지 못한 만큼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신곡 축제를 여는 식으로요. 곡조를 맞추지 않고 "이런 곡도 있다고"라며 한 곡 한 곡 성의껏 표현하기로 했어요.

 

-전에는 프로듀서를 맡은 스도우 코우타로우 씨의 카오틱한 감성이 우에사카 씨의 공연 연출에 반영되어 있었는데 신체제가 만들어진 지금 우에사카 씨 자신이 연출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아졌나요?

 

그렇죠. 지금은 "아슬아슬하게라도 의미를 알 수 있는 걸 해주세요" 이런 분위기인지라...

 

-(웃음)

 

전엔 아무 말도 안 들었던 게 "이 부분에서 이해가 잘 안 되네요"라는 말을 듣게 되어서요. 세상에 내놓아도 아슬하게 부끄럽지 않을 무언가를 염두에 두게 되었어요.

 

 

-의상도 우에사카 씨가 직접 러프를 그려서 제안을 했다고 들었어요.

 

의상에 관한 건 전부터 매번 막대기 인간 같은 그림을 그려서 제가 희망하는 걸 냈었는데 이번엔 그렇게 했어요. 말은 그래도 대강 "제복처럼"이라든가 "아이돌이 입을 법한 의상"이라든가 그런 간단한 그림을 그린 것 뿐이에요. 반짝이를 붙인다든가 체크무늬의 색배합 같은 건 스타일리스트인 사노 (나츠미) 씨가 맡고 있어요. 고양이귀는 내가 그렸던가... 그런 걸 하는 것도 거의 사노 씨가 해주신 거라 제가 그린 러프와는 거의 다른 거였던 것 같네요.

 

-그런 식으로 공연 외적인 부분을 생각하는 게 즐겁나요?

 

그렇죠. 우선 세트 리스트를 결정하고 이 부분에선 이런 캐릭터를... 식으로 대체적으로 세 패턴 정도 생각해서 그런 캐릭터 만들기를 하는 게 즐거워요. 

 

-그리고 이번 공연 중간에 <드래곤 스미레>라는 제목에서부터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짧은 드라마가 나왔죠. 중간영상에 매번 동료 성우 분들이 콩트스러운 상황에 휘말리셨는데 이번엔 스즈키 아이나 씨와 토쿠이 소라 씨가 등장했어요. 이런 인선은 매번 우에사카 씨가 하나요?

 

그 시기에 특히 신세를 지는 분들로 고르죠. 부탁을 해서 일정이 맞다면 하게 되는 식인데 이번엔 설마 둘 다 OK를 해줄 줄 몰라서 정말 즐거웠어요.

 

-어째서 학원물로 설정했나요?

 

이 설정으로 하면 출연자들이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깐 밀어붙였죠. 소녀로 변신시켜 보고 싶어서요.

 

체력이 붙은 이유

 

-공연 영상을 보면 전보다도 노래 실력이 늘었달까? 공연 중에 보여주는 노래의 표현력이 늘어난 게 느껴지는데 자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체력이 붙은 것 같아요. 코로나 전에는 항상 체력이 5포인트 남은 상태에서 살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충전이 되었달까...

 

 

-체력 문제라고 하니 상당히 납득이 되네요. 전보다 여유있게 공연을 하는 것 같아요.

 

전과는 마음가짐이 다른 건지도 모르겠어요. 보이스 트레이닝도 많이 다니게 되었고 연습을 할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을 터득했고요. 그리고 진행을 짧게 해도 된다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진행을 할 때에도 체력을 소모했나요?(웃음)

 

항상 진행할 때마다 땀범벅이 되었어요.

 

-객석을 돌면서 만화책을 나눠주거나 동지의 의상을 점검하거나 하는 시간이 없어지니깐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군요.

 

70% 정도 거기에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진행에 상한선을 걸어두면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물리적인 깨달음이 있었어요.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30대가 되길

 

-성우로 데뷔한 지 십 년, 가수 데뷔로부터는 구 년이란 경험과 연령을 쌓게 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거나 사고방식에 변화가 생긴 게 있나요? 우에사카 씨는 얼마 전에 서른 살 생일을 맞이했는데(2021년 말에 취재) 30대가 되면서 마음가짐이 변하거나 하던가요?

 

없네요. 목소리나 의상이 변한 것도 아니고 서른이 됐으니깐 급료 올려준다는 말도 없고요.

 

-그렇군요(웃음) 20대를 마치면서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없고요?

그것도 없었어요. 스물여섯 정도 되었을 때 왠지 피부가 쉽게 건조해지네 하고 스킨케어 제품을 바꾸거나 체질 개선을 하거나 하는 건 20대 후반에 시작했기 때문에 그 때로부터 30대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죠. 그래서 지금은 서른셋 정도? 조금 앞서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해서 올라보니 이렇다 할 것도 없었다랄까요.

 

-"30대부터는 이런 삶을 살고 싶어" 같은 매듭을 짓기 위한 목표는 없었나요?

 

20대 동안 야단법석을 떨었으니 30대엔 그만큼의 부분을 회수하고 싶달까요. "십 년 전엔 매일 울면서 혼자 점심 도시락을 먹던 당신, 괜찮습니다." 같은 걸요. 여러 부문에서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된 만큼을 더해서... "무엇이든 즐길 수 있어" 이런 마음을 먹을 수 있는 30대가 되면 좋겠어요.

 

-다음 순회공연은 4월 10일에 시작하네요. 아직 시간이 있긴 한데 어떤 공연을 하고 싶어요?

 

순회공연은 엄청 오랜만이고 특별히 내걸 만한 앨범도 없으니 세트 리스트도 자유로워요. 고정적인 곡도 있고 마이너한 곡도 있고 여기에 밴드 어레인지를 하는 게 처음인 곡도 있으니깐 옛 것과 새로운 것을 섞어낸, 여유가 있는 우에사카 씨가 짜낸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되었으면 하는 게 목표예요.

 

-갈수록 레퍼토리가 늘어가면서 예를 들면 1980년대 아이돌 팝을 방불케 하는 노래를 선보이는 특별한 공연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으려나요.

 

그렇네요. 저는 세인트 포가 무척 좋아서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곡이 조금씩 늘고 있고 "7080만으로 공연하기"를 저도 해보고 싶지만 객석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런 노래를 좋아하는 건 대체로 아저씨 쪽이고 학생 층에선 미묘한 표정이 떠오른다는 통계 결과를 내고 있는 터라... <7080 아저씨의 밤>은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7080 아저씨의 밤>과 <인기곡만 부르는 밤>과 <드럼이 죽어나는 BPM 쩌는 밤> 같이요. 그런 공통점을 가진 곡이 늘어났으니 해보고 싶네요.

 

https://natalie.mu/music/pp/uesakasumire17

posted by alone glowfly
:
성우/우에사카 스미레 2021. 3. 11. 18:26

가수의 음악이력을 풀어보며 음악을 탐구하는 것의 재미, 가수의 새로운 매력을 파헤쳐보는 기획. 이번엔 2012년에 성우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2013년부터 음악활동에도 정력적으로 임해온 우에사카 스미레의 근간을 살펴보았다.

취재/ 우스키 나리야키 글/ 나카노 아키코

 

자아 각성은 2채널

어릴 적엔 방에서 점 같은 걸 뚫어져라 쳐다보는 부류의 얌전한 아이였어요. 그 때부터 "혼나고 싶지 않아" 같은 사고방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으면 혼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건지 집에서 관엽식물을 쳐다보거나 해가 질 때 방 안에서 그림자가 이동하는 걸 쳐다보거나 하는 죄수 같은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푹 빠지게 된 음악적인 건 "게임보이 소리". 그 중에서도 <포켓몬스터>의 "실프 주식회사(シルフカンパニー)"라는 BGM이 끌리더라고요. 이 곡이 무척 무서워요. 하지만 계속해서 듣게 되어서 게임보이의 전지가 다 닳아버릴 때까지 그 BGM이 나오는 장면을 고정시켜 놓은 채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죠.

<포켓몬스터>는 둘이서 통신으로 놀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누구와 논 적은 없고 양친께서 게임보이를 두 대 사주셔서 혼자서 통신을 연결시켜 놀았어요.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웬만한 건 다 사주셨지만 같은 반 아이로부터 "통신교환 하자"의 "ㅌ"조차 들은 적이 없었죠.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통하게 된 소꿉친구는 있긴 했어요. 그 아이와 그림을 같이 그리거나 <빨간 양초>라는 알 수 없는 곡을 만들어 부르기도 했지만 교류관계를 이 이상 넓혀야 된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어요. 그 아이는 꽤 재밌었고 삼자매였는데 언니 동생이 하나같이 밴드가수를 좋아했었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Psycho le Cemu[각주:1]나 the GazettE[각주:2] 같은 비주얼계 밴드에 대한 걸 알려주곤 했어요.

어릴 적엔 밤 여덞 시 이후 텔레비전을 본 기억이 없네요. 그래서 가요방송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고 인기순위로부터 격리되다시피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차에 달린 카 스테레오로 디스코 뮤직이나 캐롤, 나카모리 아키나[각주:3] 씨가 아이돌이었을 적 노래를 틀었기 때문에 음악에 친숙해졌어요. 집에 있는 앨범을 보면 양친이 디스코장이나 클럽 같은 곳에 있는 사진이나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찍은 사진이 있으니깐 버블시대의 불량청년 같은 거였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저도 얌전하게 움직이지 않는 생물 주제에 듣고 있는 음악은 분위기를 팍팍 띄우는 쪽이었어요.(웃음) 처음 산 CD는 사이버 트랜스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던 것 같네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양친이 "CD는 사도 된다"고 말해서 당시 사이버 트랜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까운 상업시설에 있는 음반점에서 가장 멋져 보이는 걸 골랐어요. 레이브가 뭔지도 몰랐으면서 이 CD를 들으면서 숙제를 하곤 했죠.

초등학교 3학년 때 교실에 놓여져 있던 컴퓨터로 놀게 되면서 2채널러가 되었어요. 저는 Yahoo! 키즈를 이용했는데 어째서인지 2채널에 와있었더라고요.(웃음) '사람들이 뭔가를 잔뜩 써놨어. 세상엔 사람이 이렇게도 많구나! 게다가 다들 머리가 좋나봐!' '어쩌면 인터넷이란 곳에 희망이 있는 건지도!' 이런 생각을 하며 자아가 싹트기 시작했어요. 그 때가 모모이 하루코 씨가 퍼뜨린 아키바 문화도 모에도 탄생한 지 꽤 지났던 시기 같은데 이게 다시금 유행을 타던 때였죠. 인터넷에서 미연시 노래나 전파송을 들으면서 '이렇게 귀여운 노래가 있구나'란 생각을 하며 즐겼어요.

 

유튜브에서 소련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접어들면서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전쟁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외동으로 태어난 아이는 한가한 법이라 복잡한 곳을 파고드는 습성이 있나봐요. 전쟁사를 조사하는 와중에 군가를 알게 되었는데 멜로디를 외우기 쉽고 유행가와는 완전히 달라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루브를 느끼며 곧잘 흥얼거리게 되었어요. 그야말로 선전용 차량이 지나가면 '아, 이 노래 아는 거다' 싶어 따라 부르기도 했죠. 초등학교 고학년 때엔 노래방에 가면 불렀던 게 군가와 어쩌다가 부를 수 있게 된 <おジャ魔女カーニバル!!>.[각주:4] 제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다들 줄줄이 음료수를 주문하러 갔었죠.(웃음)

순조롭게 인터넷 세계에 빠져들게 된 결과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게 되어서 <로젠 메이든> 주제가를 담당했던 ALI PROJECT에 빠지게 되고 에도가와 란포를 계기로 근육소녀대에 빠지게 되었어요. 처음 들었던 근육소녀대 노래가 <大釈迦>라는 <釈迦> 리어레인지판.[각주:5] 샀던 CD가 <筋少の大車輪>이었어요. 제가 좋아하게 되었을 때엔 근육소녀대가 활동을 중지하고 있었는데 나카노 브로드웨이에 있는 음반점에서는 재고가 풍부했기 때문에 한정된 용돈을 쪼개 중고음반을 음미하며 샀었죠. 당시부터 아키하바라는 피규어를 보러 가는 곳, 진보우쵸우는 책을 사러 가는 곳, 나카노는 CD를 사러 가는 곳으로 정하고 있었어요.

소련에 빠지게 된 계기는 유튜브.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군사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독일 제3제국문화나 제로센에 흥미를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항상 이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등장하는 소련이란 나라는 어떤 곳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엔 모스크바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어쩌다가 유튜브에서 소련국가가 추천에 뜬 걸 봤어요. 그 때까진 사회주의국가 특유의 강렬함을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진국이다!' 싶었죠. 소련 국가는 완전히 "악역 주제가" 같은 곡조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낭랑해서... 왠지 신비한 기분이 들게 돼요. 소련이 붕괴한 해에 태어나서 역사 수업에서도 평이하게 배우고 말았기 때문인지 강렬하고 알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에 확 끌리게 되었어요. 제가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선 디오,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선 토네가와 유키오를 좋아해서 말이죠, 이런 "악역 모에"가 파생되어 '이렇게나 가상적국이 되어버린 소련이란 멋지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비틀즈를 빌리려다가 블랙 사바스에 손을 대면서 메탈에 경도되다

초등학생 때 스카우트되어서 아역 모델을 하게 되었는데 줄곧 나서고 싶지 않다고만 생각해 왔어요. 성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였죠. 동경하던 모모이 하루코 씨나 사무소 선배였던 히라노 아야 씨 아케사카 사토미 씨가 애니메이션에 출연하고 코스프레를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걸 보면서 이 분들이야말로 제가 이상으로 삼을 수 있는 2차원 그 자체!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무소에 있는 성우부문에 내가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가까운 곳에 기회가 있었달까, 운 좋게 목표를 삼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달까... 애초 대학교에서 취직활동을 하고 있던 선배들이 점점 지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취직 의욕도 꺾이고 있었고요. 게다가 아르바이트도 한 적이 없어서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지도 몰랐어요. 그런 와중에 제가 우선적으로 도전할 수 있고 될 수 있으면 멋있겠다고 생각한 게 성우라는 직업이었죠.

2010년 즈음에 보조진행을 맡고 있었던 <TOKYO No.1 귀여운 라디오>의 진행을 맡은 스승과 같은 존재였던 사쿠라이 타카마사 씨와 헬로콘(헬로! 프로젝트 콘서트)에 가게 되면서 헬로프로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사쿠라이 씨가 정통파 음악 애호가였기 때문에 "한 음악만 파는 것도 좋지만 비틀즈를 듣는 게 좋아!"라고 조언하셔서 저도 "네, 알겠습니다! 비틀즈를 꼭 들어볼게요!"라고 약속을 한 뒤 츠타야에서 "B" 코너를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거기에 "블랙 사바스를 들어봤나? 감동의 명반 <Paranoid>! 혼을 뒤흔드는 고조감! 의미를 모르겠는 표지! 오지 오스본의 쉰 목소리는 참을 수 없지! 너도 들어!" 이런 식으로 엄청 정열적인 홍보문구가 있더라고요. 뭘 그려넣은 건지 모르겠는 표지와 사춘기 마음을 뒤흔드는 <Paranoid>라는 제목에 이끌려서 비틀즈가 아닌 블랙 사바스를 빌려왔어요. 배경지식 없이 들었는데도 엄청나게 감동했죠. 근육소녀대나 인간의자의 원조가 여기에 있었나! 하는 발견도 하게 되었어요. 나중에 사쿠라이 씨가 "블랙 사바스도 좋은 밴드니깐 괜찮겠지"라고 했었던가?(웃음) 이렇게 메탈 문화의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아이언 메이든, 래트, 머틀리 크루도 듣게 되었어요. 래트나 머틀리 크루는 어렵지 않은 노래를 부는 편인데 예를 들어 "난 이 거리에서 가장 인기가 많아" 같은 거죠. 곡 중에 반복되는 가사도 많고 초반에 제목을 연호하는 것도 애니메이션 노래 같아서 제 안에선 모에전파송의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어요. 

 

 

음악이력과는 좀 거리가 있는데 2011년에 잊을 수 없었던 일이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처음 보고서 울었던 거예요. 나카노 브로드웨이에서 P-MODEL이나 토가와 쥰 씨, YMO의 CD를 통해 테크노팝을 듣게 되어서 사카모토 류이치 씨가 출연한 걸 보고서 '저 사람, 테크노팝 쪽 아니었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죠. 당시 데이비드 보위도 키타노 타케시 씨도 거의 알지 못하고 어쩌다가 보게 되었는데 주제가가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덴키 그루브의 전신이었던 밴드 인생의 앨범 <SUBSTANCE V>에서 <전장의 크리스마스> 패러디곡(<玉ノ海、戦場でクリスマスをむかえるの巻>)을 들은 뒤 영화에 대한 인상이 좀 달라졌어요.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순수하게 본 건 이 때 뿐이었죠.(웃음)

 

해고를 당할 걸 각오했던 건 어째 가수 데뷔 당시

2012년에 <아빠 말 좀 들어라!>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성우로서 데뷔하게 되었는데 이 때엔 제가 캐릭터송을 부를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히라노 아야 씨나 모모이 하루코 씨를 동경해왔지만 제가 그런 자리에 서게 될 거라곤 생각을 못했죠. 스태프로부터 캐릭터송을 부르게 될 거라고 전해 들었을 때엔 '에엑, 캐릭터송!? 긴장해서 죽어버릴지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처음으로 녹음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긴장하긴 했지만 캐릭터송을 부를 때 가장 많이 긴장했어요. 행사에 나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었을 때엔 끝날 때 즈음에 참을 수 없게 되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외쳐버렸죠. '난 이제 끝이야. 성우 일 즐거웠지.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감사했어요...'라면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무사히 성우로서의 내가 서거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사무소에 불려가서 해고구나 생각하고 있었더니 "스타차일드에서 데뷔해 보지 않겠어요?"라고 하더군요. '어째서!? 어째서!?'란 생각이 들었죠. 저의 첫 프로듀서인 스도우 코우타로우 씨가 행사 때 모습을 보고서 제안을 했다는데 그 이유가 저로선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있어요. 혼을 담은 외침이 스도우 씨의 심금을 울렸던 걸까? 이리 하여 가수 데뷔를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양성소 같은 걸 가본 적도 없기 때문에 데뷔 행사 때엔 뭘 연습하면 좋을지도 몰랐어요. 그 때까지 다른 성우 분들의 공연은 커녕 공연 자체를 본 적이 없어서 뭘 참고해야 되는 건지도 몰랐죠. 그런 상태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으니 흔히 말하는 제대로 된 선로 같은 걸 밟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 와서 다시금 데뷔곡을 들어보면 인트로가 상당히 길어요. 게다가 엄청 실험적이었고... 그 때 항의를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웃음) 그래도 이제 가수 데뷔한 지 팔 년이 되었어요. 정말이지 신기하단 생각이 들어요.

 

 

평범한 근접전투도 할 수 있기를

오키테 포르쉐 씨의 말은 공감가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그 중에서도 로망 포르쉐로서 2008년에 발매한 베스트 앨범 제목인 <좀더 성실하게 임할 걸 그랬어>는 그야말로 저를 위해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음악이력을 돌아보니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래도 전혀 관계도 없던 사람이 성우 일과 음악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무리하게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던 덕분인 것 같기도 해요. 운이 무척 좋았고 주변 사람들이 다들 상냥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제대로 된 사람이 봤다면 이 년 내로 잘렸을 저를 "어쩔 수 없는 녀석일세"라면서 용인해준 덕분이었겠죠. 올해 서른이 되고 하니 좀더 공격적으로 나간달까 의욕을 드러내겠달까... 긍정적으로 나가보고 싶어요. 지금 스미페 팀엔 굴지의 젊은이들이 스태프로 참가해 제가 가장 연장자. "좋은 연장자란 젊은이의 의견을 잘 듣는 사람이다"라고 역사가 말해주고 있으니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별난 것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내고 싶어요. 축제에서 할 수 없다고 손님에게 맥주를 뿌리거나 하면 안 되겠죠.(웃음)

성우 뿐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서른은 한 매듭을 짓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까지처럼 설렁설렁 지속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힘을 낼 수 있는 건 지금 시기 아닐까요? 신곡인 <EASY LOVE>도 무척 발랄한 곡이고 이 곡을 오프닝으로 쓰게 되며 4월부터 시작되는 TV 애니메이션 <괴롭히지 말아요, 나가토로 양>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작품이라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 들어 저보다 나이가 적은 성우들이 늘어났고 라디오 방송에 초대손님으로 불려갈 때 '아, 경력을 쌓는다는 게 이런 건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곧잘 편지 같은 걸로 "성우를 목표로 삼았어요!" "우에사카 씨를 동경해서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말해주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다른 분을 참고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외부에서 보이는 전 자유롭게 먹고자고 놀면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고 말이죠... 좀더 노력을 기울이는 선배들의 모습을 참고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음악은 사형을 당하거나 하지 않는 한 계속하고 싶어요. 글쎄요... 장래적으론 좀더 노래를 잘 부르게 될 거예요. 지금까진 장거리 공격을 잔뜩 해왔지만 평범한 근접전투도 할 수 있게 되고 싶달까? 듣는 사람이 "이 곡, 꽤 좋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의욕은 있으니 부디 이력서를 채용해 주십시오.(웃음)

 

 

natalie.mu/music/column/417507

  1. 1999년부터 활동해오고 있는 일본 비주얼계 밴드 https://ja.wikipedia.org/wiki/Psycho_le_Cemu [본문으로]
  2. 2002년부터 활동해오고 있는 일본 비주얼계 밴드 ja.wikipedia.org/wiki/The_GazettE [본문으로]
  3. 1980년대 인기 아이돌 가수 ja.wikipedia.org/wiki/%E4%B8%AD%E6%A3%AE%E6%98%8E%E8%8F%9C  [본문으로]
  4. <꼬마마법사 레미(おジャ魔女どれみ)> 오프닝 [본문으로]
  5. 근육소녀대가 인디밴드였을 당시에 나왔던 노래가 <釈迦>로 상업시장에 데뷔하면서 낸 음반에서 <大釈迦>란 제목 하에 재수록되었다. ja.wikipedia.org/wiki/%E9%87%88%E8%BF%A6_(%E7%AD%8B%E8%82%89%E5%B0%91%E5%A5%B3%E5%B8%AF%E3%81%AE%E6%9B%B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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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다른 사람의 글 2020. 9. 13. 23:28


숨을 거두기 나흘 전이었던 8월 28일에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운 와중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며 대담에 응한 타바타에 켄타로우 씨의 미소를 잊기 힘들 것이다.

촬영 야마모토 다이스케


'앞으로 한 달'. 치바현 후나바시에 살던 남자는 올여름 의사로부터 이런 선고를 받았다.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알고 싶어.' 하지만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넘쳐나도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낫지 못하는 암도 있는데 말이죠" 비쩍 마른 몸에서 짜내듯이 말해야 하는 남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취재에 응하여 죽음과 마주했을 때 느낀 심정을 밝혔다.


'낫지 못할 사람들을 위한 정보'가 없다


토쿄에서 의료기기 관계 일을 해왔던 타바타에 켄타로우 씨(46)는 8월 27일에 의사로부터 '앞으로 한 달'을 선고받았다. 약 일 년에 걸친 신장암과의 투병생활 끝에 결국 종말치료로 이행해 자택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취재에 응한 것은 다음 날인 28일, 이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한 달 남았다 하니 다들 이걸 입에 담는 것조차 주저하더라고요. 그러니 정보도 없고 해서 저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알고 싶어서 찾아봤지만 전혀 없었죠. 그래서 이런 점을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나을 수 없는 암과 나을 수 있는 암이 있잖습니까? 아무리 의료가 발전해도 낫지 않는 게 있어요. 나은 사람들에게만 조명이 비춰지는데 낫지 않는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타바켄(タバケン)'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타바타에 씨의 신장에서 종양이 발견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7월 24일에 갑작스럽게 혈뇨를 보았고 며칠 후 열까지 나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발견된 것이다. 이미 4기. 림프절에까지 전이되었다.


이 날 페이스북에 스스로 보고를 했다.


-에또... 여러분께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신장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4기!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만 도전정신이 넘쳐날 여름이 될 것 같습니다. 가을엔 모두 함께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힘내보겠습니다~!


이 날부터 처절한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페이스북에 계속해서 전해온 타바타에 씨의 글은 언제나 쾌활해 읽은 사람들이 조금만 기다리면 나을 수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기력이 넘쳐났다.


중학교 동창이자 풋살을 계속 같이 해온 아리타 카즈요시 씨(46)는 "정열적이었죠. 풋살을 할 때 아무래도 닿지 않겠다 싶은 공에 오버헤드킥을 시도할 정도였어요. 마음 가는대로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부상도 많이 당했어요. 믿음직하고 정의감도 강했죠. 동창 중에서 가장 기력이 넘쳐났어요."라고 회상했다.


역시 동창이며 풋살 친구인 하야카와 코우지 씨(47)는 "정말 사람이 좋았죠. 중학교 축구 시합 때 반칙을 한 동급생이 시합 후에 상대팀에게 비난을 당하자 타바켄이 도와준 일이 있었죠. "내 친구란 말야"라면서요. 우정을 소중히 하는 정열적인 친구. 취미가 많고 무엇이든 열중할 수 있는 강한 녀석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자택에 운동시설을 만들어 운동을 할 정도로 근육이 왕성하고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며 색스폰 등 악기를 연주하고 모토크로스용 오토바이에도 도전, 스키에 풋살에 무엇이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도전자. 마초스럽긴 해도 마음은 따뜻하고 도움주기를 좋아하는 사람. 다들 품어온 '타바켄'의 인간상이다. 타바타에 씨 자신도 그 인상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기에 페이스북에 일부러 낙관적인 내용을 써왔다고 고백했다.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타바타에 씨. 

자택에 할리 데이비슨 로고로 장식한 전용 차고까지 두었다. 


"제가 만들어온 이미지가 있으니 강한 척을 해왔어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는 게 맞으려나? 이걸 유지함으로써 제 자신을 채찍질한 거죠. 의학적으론 하면 안 되는 거지만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병세가 깊어짐에 따라 몸이 전해오는 메시지도 강도가 달라져 현실과 희망의 격차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시합을 하거나 운동을 한 후에 자고 일어나면 조금이라도 피로가 완화되죠. 하지만 지금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 싶어서 잠을 자도 일어나면 훨씬 나빠져 있어요.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죠."


작년 9월부터 12월에 걸쳐 지방병원에서 네 번에 걸친 항암제 투여를 받았다. 림프절에 퍼진 암세포를 감퇴시킨 뒤 종양이 있는 신장을 완전히 적출하는 수술에 대비하는 치료였다. 효과가 나타나 수술 일정을 정했을 당시 만약에 대비해 항암제를 한번 더 투여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찍은 CT 영상을 관찰한 결과 실제로는 암이 약해지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어 수술이 중지되었다.


효과가 없다면, 몸에 오히려 독이 되기만 한다면, 이런 생각에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고 방사선 치료로 전환했다. 그 동안 스스로도 살 길을 찾아 옵디보와 경쟁하고 있는 약으로 알려진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토쿄도에 있는 국립항암센터에서 투여받기로 했다. 좋은 약 조합을 알아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 후쿠오카현에 있는 클리닉까지 간 적도 있다. 올해 유 월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해본 결과를 CT로 검사했으나 암이 약해지기는 커녕 간 등에까지 전이된 것으로 나왔다. 의사는 종말치료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고통을 견디며 여생을 보내는 선택지였다. 



2020년 2월에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을 무렵 타바타에 켄타로우 씨. 

"이걸로 완치를 바라긴 힘들고 고통을 완화하면서 진행을 막는 게 목적입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설명을 올렸다.


"역시 의지만으로 어떻게 되는 건 아니네요. 버텨내지 못하는 것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기운차게 싸워나가는 강한 모습을 주변 분들에게 보여드리려 노력했지만 마지막을 맞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것도 저의 정체성,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신장만이었다면... 하지만 간에도 퍼졌다니깐요. 강한 척은 이걸로 끝.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낫지 않을 거예요. 처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할 수 있을지도. 이게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이런 운명. 그러니 이걸 받아들이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확실히 해두어서 마지막에 웃으며 죽을 수 있기를."


호스피스 입소를 거부하고 자택요양을 고집했다.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을 다질 수 있도록 준비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난다는 IT 시대인데도 살아갈 것을 전제로 투병생활을 했을 때엔 그토록 넘쳐나던 정보가 죽을 것을 전제로 하자마자 완전히 끊겨버렸다.

"그런 상황에 처한 암환자는 혼자서 힘을 내야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겠죠. 웬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암치료비가 비싸기에 누구나 손을 쉽게 뻗을 수는 없다. 치료법이 있어도 보험적용에서 제외되는 경우까지 있다. 암환자가 자기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점 또한 타바타에 씨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다.



2020년 2월에 항암제 치료를 끝내고 직장에 복귀한 타바타에 켄타로우 씨.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와중에도 숨을 거두기 반달 전인 8월 15일까지 출근을 했다.


국립 암 연구센터 통계에 의하면 새로 암 진단을 받은 환자수는(예측) 2018년 약 101만 3600명. 이 중 사망자수(예측) 38만 명에 가깝다. 둘 중 한 명은 평생에 한 번은 걸리게 되는 암 때문에 죽음을 마주해야만 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도 정보가 부족하고 치료 환경도 정비되지 않았다는 타바타에 씨의 호소는 많은 암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제기하고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의외로 내가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선 평온해지더군요. 제대로 준비를 하고 뒷일을 안심할 수 있는 상태에서 죽고 싶어요.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종말활동을 하게 되어 마음이 진정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올해 8월에 장마가 지나고 무더위가 찾아오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회사에 출근도 하고 좋아하는 오토바이도 타고 다녔지만 마음 먹은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찾아왔다. "몸이 약해진 걸 실감했어요. 그나마 남아있었던 희망의 무게감도 잃어갔죠." 고통도 심해지면서 의사의 권유에 따라 모르핀 투여를 시작했다. "아빠는 불사신이니깐 괜찮을 거야"라며 계속해서 격려해주는 외동딸(13)이 동석한 가운데 방문진찰을 한 의사가 선고한 것이 '앞으로 한 달'이었다.


선고를 받은 날 밤에 타바타에 씨는 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되어버렸네." 딸은 심각한 표정으로 "응, 알아."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사이좋은 부녀지간이었다. 그런 딸과 나누는 말 하나하나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뭐랄까, 어리광쟁이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다잡을 수 있는, 좋게 보면 시련이라고 생각해요. 극복할 수 있을 거다. 일어설 수 있을 거다. 제 딸인 걸요. 심지는 굳은 아이니깐요."


"손주가 보고 싶단 생각도 들긴 하죠. 하지만 후회하지 않도록 애정을 쏟아부었어요. 딸의 결혼식을 보고 싶다는 아빠들도 있겠지만 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서 싫네요. 반항기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사이가 좋은 채로 끝낼 수 있다면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각자의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다며 이혼한 전 부인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예전 아내라고 해야 되겠지만 엄청 도와줬어요. 매일같이 와줬거든요. 일도 일 주일 중 세 번은 쉬면서 와줬을 정도예요."


전 부인과 동생의 도움을 받아 상속과 유산, 장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마쳐놓았다. 일도 승계작업을 마쳤고 "이제 조용히 갈 수 있으면 좋겠군."이라고 생각하는 기간에 들어갔다. 모든 준비를 마쳐 마음이 평안하다고 했다.


"남은 걱정이라면 사람들이 얼마나 장례식에 와주려나 하는 정도려나요? 이별의식 같은 걸 할 때에 날 떠올려 줄 수 있으려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하는 물음에 타바타에 씨는 이렇게 답했다.


"역시 작별은 슬픈 법이죠. 하지만 불쌍하게 생각치는 말아주세요. 하고 싶은 걸 하며 인생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니 불쌍한 게 아니라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기쁠 겁니다."


취재한 다음날, 타바타에 씨의 건강상태가 급변해 9월 1일 아침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앞으로 한 달' 선고를 받은 지 닷새 만이었다.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평온하게 마지막을 맞이해 표정은 부드러웠으며 약간 웃는 것 같기도 했다고 한다. 완전히 쇠약해져 입원할 수 밖에 없게 되기 전에 모두가 알고 있는 "강한 타바켄"인 채로 스스로 인생의 막을 내린 것 같았다.


https://globe.asahi.com/article/12678005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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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치하라 미노리 2020. 5. 25. 22:49

치하라 미노리 성우를 처음으로 알았던 건 상당수의 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에서였다. 애니메이션이 상당한 붐을 일으키면서 여기에 참여했던 성우들의 주가도 상당히 올랐으며 히라노 아야 성우가 가장 큰 덕을 보았지만 못지 않게 이 애니메이션이 전환점이 되었던 쪽이 치하라 미노리 성우였다. 나의 경우 치하라 미노리라는 성우가 있다는 걸 정확히 인식한 것은 <스즈미야 하루히> 공연에서였다. 밤중에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문득 깼을 때 아직 영상이 틀어져 있는 도중이었고 거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게 치하라 미노리 성우였고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런 춤을 추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무대에서 노래를 열심히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 속에 많이 남겨져 있다. <스즈미야 하루히> 애니메이션에 나온 성우들이 가는 길을 전부 밟으려 한 노력도 있었긴 했지만 그 때 그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그렇게 길게 가진 않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치하라 미노리 성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좋아하게 된 이유는 치하라 미노리 성우의 긍정적인 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건 치하라 미노리 성우와 일하던 사람들도 동의하는 것으로 3편까지 나왔던 <Message>에도 잘 나와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힘이 넘치는 가창력으로 공연을 하면서 매년 여름마다 공연을 하고 애니멜로 섬머 라이브에도 단골로 참여했고 팬과의 호응이 좋아서 이벤트마다 참여도도 높았고 한때 팬들의 결혼식에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직접 노래를 불러주기까지 했을 정도니깐 겉치레 홍보 같은 말이 아니라 치하라 미노리 성우의 노래를 통해 사람들이 힘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치하라 미노리 성우 음반을 듣지 못해 여기저기 뒤지고(https://aglowfly.tistory.com/19) 블로그를 계속 번역하다가 제풀에 지쳐버리고 했던 것도 다른 팬들이 느꼈던 감정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치하라 미노리 팬으로 있으면 힘을 얻을 수 있고 지지를 보낸만큼 이 힘은 더욱 커지는 상호작용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치하라 미노리 성우 신변에 일이 발생한 걸 안 것은 다른 사람보다 열흘 이상 지난 뒤에서야였다. 치하라 미노리 성우 라디오도 radio minorhythm 종료 이후 miss sunshine을 들어봤자라 생각해 안 듣고 있었고 블로그는 계속 안 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트위터는 리스트 기능을 활용해 챙기고 있었지만 그나마도 블로그에 관심이 없으니 블로그 공유 트윗도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블로그에 "여러분께"(https://t.co/ALf8TiTZi5?amp=1)라는 글을 올린 걸 알았고 여기에서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정확히 뭔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기사를 찾아봤다.(https://t.co/jOjBD1Ked7?amp=1) 헬스 트레이너와 교제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에 들었고 블로그에 공개를 했으니 별 문제가 될 것도 없는 상황에서 뭐가 더 나오는 건가 했는데 그 전에 무로야 코우이치로우와 연애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보였다. 상당히 의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될 게 있나 싶었는데 무로야 코우이치로우가 유부남인 상태에서 연애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한다. 기간은 육 년...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개인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걸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상대가 결혼을 했고 자식도 있는 상황이라면 달라진다. 팬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결혼식에서 노래도 불러주는 동안 뒤에선 한 가정을 파괴하는 데에 동참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이후로 그저 혼란스러워졌다. 히라노 아야 성우도 양다리 걸친 게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치하라 미노리 성우의 경우와 비교하기엔 무게의 차이가 너무 큰 것 같다. 

이 혼란 와중에 치하라 미노리 성우에게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보이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치하라 미노리 성우에게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무로야 코우이치로우의 아내와 자식이었던 사람이다. 우리에게 면죄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최소한 문제가 없다느니 용서한다느니 하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말을 꺼내는 건 이 문제를 가볍게 본다고 선전하는 것과 뭐가 다른 건지. 이런 생각에 더욱 힘들었다.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음반을 듣고 라디오를 듣고 공연을 보고 했던 게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건가? 특히 무로야 코우이치로우의 경우 치하라 미노리 성우 공연에서 바이올린을 담당해 왔으며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 음원으로 치하라 미노리 성우 노래 음반을 낸 적이 있었고 치하라 미노리 성우 공연을 좋아했던 이유가 바이올린 음색 때문이 컸던 나는 이 음반을 구매하기도 했다. 위에 뒤지고 다녔다고 쓴 음원도 마찬가지고... 하필이면 이 둘이서 문제를 일으켰다. 그럼 난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걸까? 이런 고민을 며칠간 했지만 딱히 긍정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는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던 분이 일으킨 사건이라 그런지... 

팬이라고 위에 쓴 것처럼 다 받아주는 건 그냥 멍청해 보이고 딱 자르는 것도 뭔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끌어안고 있어봤자 나중에 보고 싶어질까? 모르겠다.


예전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그 긍정적인 이미지를 팔아먹으려고 척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싶어진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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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20. 5. 23. 16:45

내가 독립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MB의 추억>이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불타오르던 때에 난 이런 영화를 보는 게 도움이 되는 줄 착각하고 그런 영화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인디스페이스를 찾아갔고 이게 처음으로 소규모 영화관에서 본 독립영화였다. 이 전에도 <워낭소리>라든가 <두 개의 문> 같은 영화가 독립영화로는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독립영화가 대중성을 갖게 된 마냥 신문에서 떠들어댔던 기억이 있다. 독립영화라는 장르에 눈을 뜨게 된 이후 이 영화 저 영화 보려고 인디스페이스를 들락날락했었지만 그런 대중성은 딱히 찾아볼 수 없었다.

박배일 감독이 찍은 <라스트 씬>을 봤는데 도중에 몇 년 전만 해도 관객몰이를 엄청했던 독립영화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푸념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관객몰이를 엄청했던 독립영화들이 뭔지는 안 나오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 영화들은 모두 뭔가 시의성을 띠고 있었다. 내가 인디스페이스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던 <MB의 추억>도 박원순이 보고서 뉴타운 사업을 재검토하겠다 공언했던 <두 개의 문>도 시의성을 띠고 성공을 거둔 영화다. <MB의 추억>의 김재환 감독 같은 경우 <칠곡 가시나들> 빼고 전부 그런 영화이지만 <두 개의 문>의 김일란 감독 같은 경우 이 외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관객 기록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영화들도 있다. 이 영화를 뺀 만 명을 넘은 영화는 <두 개의 문> 속편인 <공동정범>뿐이다. 천안함 사건 관련 음모론을 다룬 <천안함 프로젝트>나 세월호 관련 음모론을 다룬 영화들, K값으로 사람들을 세뇌시킨 김어준의 <더 플랜> 등등... 성공했다는 독립영화들은 대부분 독립영화 자체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영화를 보는 것이 민주화 운동인 마냥 표를 줄로 사댔다는 사람들이 내준 돈으로 성공한 거였다. 나도 돈 낭비했던 <또 하나의 약속> 같은 영화의 경우도 그 정도 퀄리티라고 부르기도 힘든 퀄리티로 성공을 했던 이유가 뭐 다른 곳에 있었겠나.

이런 영화들을 제쳐두면 독립영화를 많이 틀어주는 소규모 영화관은 그저 텅 빈다. <라스트 씬>에서 인디스페이스에 서울극장 영화를 문의했다가 서울극장 쪽 매표소로 가는 사람을 찍은 장면이 있었는데 연출인지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인디스페이스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져 서울극장으로 옮겨간 후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옮긴 후에도 여기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참고로 비슷한 이유로 서울극장에서 더부살이하는 서울아트시네마란 곳도 있다. 이런 극장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서울극장을 찾는 사람 외에 얼마나 있을지... 

이렇게 텅빈 극장을 찾는 입장에선 힘이 날 수가 없다.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보러 왔는데 영화관 안에 혼자 있거나 멀찍이 몇 명 있거나 그런 사람들이 자기만 영화를 보는 줄 아는 건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지 핸드폰을 진동 모드로 해놓지도 않고 울려서 받고 있다든가...(실화) 영화를 보는 눈이 까다로운 건지 아님 그냥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고서 만족하는 영화는 절반에 훨 못 미친다. 그리고 독립영화 극장 자체가 너무 없어서 극장에 가려면 한참을 가야 한다. 인디스페이스는 종로에 있지만 영화 하나 보겠다고 강남에 있는 인디플러스를 간 적도 있었다.(여긴 망했다) 참고로 난 양천구에 산다. 이 거리감이 얼마나 되는지는 대충 찾아보면 나올 것이다.(물론 서울 외에 사시는 분들 중엔 이 정도가 대수냐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지만) 여기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위에도 핸드폰 받는 인간이 있다고 썼지만 이건 극장에서 생기는 일 중 일부에 불과하다. 앉으면 무릎과 의자 사이에 공간이 많이 발생하지 않아 중간에 앉아야 하는 사람이 지나갈 때 서로 힘든 일이 발생할 정도인 건 어느 극장이나 비슷한데 굳이 다리를 꼬는 멍청이인지 장애인인 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앞 의자를 차대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상영 도중에 들어와서 핸드폰 빛을 비춰대는 등 예전엔 왜 그렇게 극장에 가려고 애를 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한 일을 많이 겪게 된다. 여기에 가격은 점점 더 올라서 독립영화관도 팔천 원이다. 여기에 교통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걸 다 겪고 난 다음 본 영화가 재미가 없다면 집에서 다운로드판 영화 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걸까?(요즘 다운로드판 가격도 어이가 없 정도로 뛰었지만) 난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영화관을 찾지 않게 된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마블 영화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않게 된 세태에 대해서 안타까워 했지만 결국 본인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만든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했다. 자본은 이미 기울대로 기울었고 사람들은 자본의 기울어짐에 거역할 수가 없다. 앞서 독립영화가 성공한 듯 보였던 건 영화를 보는 게 민주화 운동인 것처럼 여긴 멍청이들의 소행이 빛났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독립영화 자체는 결국 계속해서 보던 사람들끼리 보았을 뿐이다. 변한 건 없는데 세태는 너무나도 기울어 버렸다. 지금과 같은 플랫폼을 고수한다고 해서 길이 열리는 건가? <라스트 씬>에 나오는 감독 중 한 명도 극장에선 안 되는데 다운로드판 등으로 성공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한다. 보는 사람을 탓한다면 아파하는 건 보는 사람이지 안 보는 사람에겐 가려운 일도 아니다. 

<라스트 씬>을 찍은 박배일 감독의 의도는 영화관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영화관이 스러지고 없어지는 와중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거고 감독 입장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관이 없어지는 와중에 관객들의 자리는 그냥 영화관이 없어지기 직전 자리를 채워서 왜 이제 왔냐는 말에 웃는 그 정도의 입지밖에 없었다. 결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그 영화를 보여주는 사람도 관객과는 떨어져 있는 것 아닌가. 

<라스트 씬>을 보고서 이런 생각을 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입장으로 관객을 때리는 영화를 보는 건 어떤 때엔 통감하는 위치에 설 수도 있지만 발끈하는 위치에 설 수도 있게 된다. 내가 딱히 관객의 대표인 것도 아니고 감히 그런 위치에 있을 수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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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우에사카 스미레 2020. 4. 17. 08:31

3월 29일


눈이 내리네요 동지!

건강하게 지내시길 (:3[___]



https://www.instagram.com/p/B-TZNoTDFZo/


3월 31일


3월이여 잘 있거라!

충실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 ˘ω˘ )



4월 1일


오늘 15시부터 순회공연 상품 인터넷 판매를 시작해요~!

방금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프로파간다를 가정에 보급하시길 (°ω°)따끈따끈


목록은 아래 페이지에서 볼 수 있어요.

http://king-cr.jp/artist/uesakasumire/live2020/



https://www.instagram.com/p/B-bF4tiDVP9/


4월 2일


잠시후 19시부터 게임 <로스트 디케이드>에서 들을 수 있는 실시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요!

실시간 댓글이 올라오는 걸 기다리고 있을게요ヾ(*´∀`*)ノ



https://www.instagram.com/p/B-eVLruDmWT/


4월 4일


Pastel*Palettes의 슈와링 TV!

Pastel*Palettes가 대규모 집합~~!

앞으로 할 방송도 기대가 되네요. (*・∀・*) 

https://t.co/670YYg4HZ6?amp=1



https://www.instagram.com/p/B-i-dhUjTC7/


4월 6일


<뱅드림! 걸즈밴드 파티!>에서 치사토 양의 생일을 알려줬어요! 축하해요 치사토 양 (*・∀・*) 아미타 양이 같이 찍어준 투샷 (*・∀・*) 으흐흐



https://www.instagram.com/p/B-oM_ImDfxj/


4월 8일


공연 소책자 사진 중에 ( ˘ω˘ )

생애 첫 크림소다를 주문했었어요!



https://www.instagram.com/p/B-tXvXfjTBQ/


4월 10일


<부탁해 랭킹>에 출연했어요!

유튜브 기획영상(https://youtu.be/iDmoihmVcUQ)에도 출연했으니깐 한 번 봐보세요. (*・∀・*)

엥 잘하는 요리...??



4월 11일


우에사카 씨와 건배를 할 뿐(다섯 번 반복)



https://www.instagram.com/p/B-1c2mSjL2q/


4월 13일


오랜만에 보는 잠옷

이번주도 동지가 온화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길 ( ˘ω˘ )



https://www.instagram.com/p/B-6jgyOj4hW/


4월 14일


계란마요 토스트라고



https://www.instagram.com/p/B-8vDjHjSam/


4월 15일


22시에 시작하는 <성우와 밤놀이(声優と夜あそび)>에선 다함께 트위터 중계!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ヾ(*´∀`*)ノ

https://abema.tv/channels/anime-live/slots/BRgcoRg1jV84gf?utm_medium=social&utm_source=twitter&utm_campaign=official_tw_anime_yoasobi



https://www.instagram.com/p/B-_K2sqDwRg/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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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우에사카 스미레 2020. 4. 7. 10:33

3월 13일


간만에 보는 워커 파티 사진( ˘ω˘ )

마실수록 유쾌해지는 노멘클라투라[각주:1]



https://www.instagram.com/p/B9qmUwUnQpT/


3월 14일


콜양파 회보용으로 이것저것 찍었어요.

동지들의 질문과 대사 요청 등 될 수 있는 한 해드렸어! 요!



https://www.instagram.com/p/B9st-HHHKKr/


3월 15일


해피 화이트데이!!(늦었음)



https://www.instagram.com/p/B9vaPGEneno/


3월 17일


강시 길러보고 싶어



https://www.instagram.com/p/B91UcV2Hyq8/


3월 20일


안녕하세요!



https://www.instagram.com/p/B973hJiHDL6/


3월 22일


봄 분위기가 나네요 (*´∀`*)

염소일까? 양일까? 버팔로맨[각주:2]일까?라고 말하는 사진



https://www.instagram.com/p/B-Bf1aTjoau/


3월 23일


늦은 밤에 인사드려요 ( ˘ω˘ )

쌀쌀하니깐 건강 조심하시길...!



https://www.instagram.com/p/B-D38QwjLek/


3월 25일


수고하셨어요 동지 (`°ω°´)

많이들 보셨을 낙서 브로마이드를 만들고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p/B-JR4WADdUx/


3월 26일


뉴타입 연재기사 취재차 방문한 카고메 야채생활팜에서 신이 난 사진

건강한 맛~~!!



https://www.instagram.com/p/B-LpK1Jjypd/


3월 27일


금요일!

이 사진을 본 당신은 양파볶음을 먹고 싶어집니다~



https://www.instagram.com/p/B-OVLSPDPxr/

  1. 소련의 특권계급을 의미하는 용어. 공산귀족이라고도 한다. https://ja.wikipedia.org/wiki/%E3%83%8E%E3%83%BC%E3%83%A1%E3%83%B3%E3%82%AF%E3%83%A9%E3%83%88%E3%82%A5%E3%83%BC%E3%83%A9 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B%A9%98%ED%81%B4%EB%9D%BC%ED%88%AC%EB%9D%BC [본문으로]
  2. <근육맨>에서 나오는 버팔로를 모티브로 하는 등장인물 https://ja.wikipedia.org/wiki/%E3%83%90%E3%83%83%E3%83%95%E3%82%A1%E3%83%AD%E3%83%BC%E3%83%9E%E3%83%B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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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우에사카 스미레 2020. 4. 6. 12:50

2월 26일


새로운 작품을 녹음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ω^^ω^^ω^)

오늘도 열심히 노동하자고요 동지!

(사진은 터무니 없이 큰 하트 모양 귀고리)



https://www.instagram.com/p/B9BSWpOH1qQ/


2월 27일


날씨가 좋네요!

스튜디오에 침대가 있으면 저도 모르게 뒹굴거리고 있어요. _(:3 」∠)_



https://www.instagram.com/p/B9D3bLpH0_B/


2월 29일


여기를 야영지로 지정한다



https://www.instagram.com/p/B9JF_2MnZQV/


3월 2일


안녕하세요 (`°ω°´)

3월아 안녕!



3월 3일


장난감 가게에서 호화롭게 놀던 때 사진이에요.

피규어 사러 가고 싶어~~!



https://www.instagram.com/p/B9Qd0OPnaQB/


3월 4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인 <ワクワクmeetsトリップ>가 발매되어서 정말 기뻐요~... 여러분도 듣고서 여행을 떠나보세요, 그러실 거죠?!

(사진은 별로 관계없는 워커)



https://www.instagram.com/p/B9TP84dnRH_/


3월 5일


촬영을 하고 있어요!

바람이 세네요...!



https://www.instagram.com/p/B9WYGQ3ngU_/


3월 7일


쉬는 중이에요... ( ˘ω˘ )

도원의 맹세!



https://www.instagram.com/p/B9bVpHHn2HB/


3월 9일


안녕하세요!



https://www.instagram.com/p/B9fi_Q8HAnj/


3월 10일


맛있는 걸 잔뜩 먹었어요!

봄이니깐요!



https://www.instagram.com/p/B9iuoRRHg0H/


3월 12일


공연중지 소식은 안타깝지만... 기운찬 동지들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최선을 다해 볼게요! 여러분도 별 탈 없이 지내실 수 있기를...! 분하니깐 사진을 잔뜩 올려야지!!!!



https://www.instagram.com/p/B9oR_gGH6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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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우에사카 스미레 2020. 4. 5. 20:44

2월 24일


스타프리 감사제가 끝나버렸어~...! ( ;∀;)

추억을 담은 글은 LINE BLOG에서!

오늘도 무탈히 지내세요 동지



https://www.instagram.com/p/B8747JUn8pQ/


Здравствуйте!



<스타☆트윙클 프리큐어 감사제> 오오사카, 토쿄 공연이 끝났어요!!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ヾ(*´∀`*)ノ



캐릭터쇼, 낭독, 즉흥 대사극, 캐릭터송 공연 등등... 

정말 알찬 구성으로 짜여진 그야말로 일 년간을 돌아보는 축제!

모두들 마음껏 즐기고 있는 분위기가 전해져서 

집에 있는 것 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

코스모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서 노래하며 춤출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요! 



끝나버려서 섭섭한 기분도 들었지만 이런 멋진 성우진과 스태프 분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걸 영광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다음에도 꼭 만날 거예요!

여러분 마음 속에 스타프리 세계가 언제나 빛나고 있기를...!



До встречи!

СУМИРЭ 스미레


https://lineblog.me/uesaka_sumire/archives/94053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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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우에사카 스미레 2020. 4. 5. 20:29

2월 18일


주말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이것저것... (*・∀・*)

고양이는 어디서든 똬리를 튼다.



https://www.instagram.com/p/B8tF26jHMES/


2월 21일


겨울 회보 도착했나요?

색시 모드(가짜)!



https://www.instagram.com/p/B80ZFSaHtz0/


2월 22일


스타프리 감사제 토쿄 공연 첫날! 감사했습니다.ヾ(*´∀`*)ノ

여러분의 기운찬 목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유니 세 갈래로 땋았다냥



https://www.instagram.com/p/B83pAK9nkw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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