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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결혼
라디오 드라마 <얀보 닌보 톤보>는 전국 어린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드라마의 대표작이 <당신의 이름은>이었다면 <얀보 닌보 톤보>는 틀림 없이 아동 대상 라디오 드라마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아 1954년 4월부터 반 년간을 예정하고 만들어졌던 것이 1957년 3월까지 연장될 정도였다. 얀보와 닌보의 목소리는 합격했던 분가쿠자 사람들이 연극 순회공연이나 출산 등의 이유로 계속할 수 없었기에 도중에 얀보 역은 사토미 쿄우코 씨, 닌보 역은 요코야마 미치요 씨로 교체되었다. 둘 다 NHK 극단 동기생들이었다.
그런데 첫 일 년 동안엔 흰 원숭이 새끼 세 마리의 목소리를 어른이 맡고 있다는 것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아나운서가 매주 방송이 끝날 때마다 이렇게 말해야 했다.
"이번 방송의 출연자는 얀보, 닌보, 톤보. 이야기꾼에는 나카오카 테루코..."
어째서 어른이 목소리를 담당하고 있는 것을 숨겨야 했는가에 대해 이이자와 선생님은 "어린이들의 꿈을 부수고 싶지 않아요. 트릭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죠."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당초 NHK는 아이 배역 목소리를 성인이 연기하는 방식에 반대했지만 이이자와 선생님은 여자 성우들이 아이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이렇게 주장했다.
"아이들을 늦은 시간까지 스튜디오에 가두어 둬선 안 됩니다. 얀보 형제의 목소리를 성인 여성들이 맡게 해주시지 않겠다면 저는 이 일을 관두겠습니다."
대규모 오디션 개최도 이이자와 선생님의 강력한 일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요즘에야 영화 더빙이든 애니메이션이든 남자 아이 목소리를 대부분 성인 여성 성우가 맡고 있지만 이 당시엔 성인이 아이의 목소리를 연기한다는 것만으로 방송계의 상식이 뒤집힐 정도였다.
"얀보, 닌보, 톤보의 목소리 연기는 사실 아역 배우가 아니라 NHK 토쿄방송극단 소속 배우 삼인조가 맡고 있습니다."
NHK에서 이런 발표를 하게 된 건 방송이 시작한 뒤 일 년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NHK는 "방송도 호평을 받고 있고 내년이 원숭이띠 해이고 하니 이걸로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NHK의 계산이 맞아떨어지면서 얀보 역을 맡은 사토미 쿄우코 씨, 닌보 역을 맡은 요코야마 미치요 씨, 그리고 톤보 역을 맡은 토토에 신문과 잡지 취재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세 명이 나란히 앉아 히비야공원에서 인터뷰를 받기도 했고 우에노 동물원에 끌려가기도 하고 카메라맨이 키타센조쿠 집까지 찾아와 토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주간 아사히>에 실린 세 명의 사진이 같이 들어간 기사엔 이런 문장이 쓰여져 있었다.
라디오계엔 한때 "고키라"라는 말이 유행했다. 고지라를 본딴 말로 뜻은 NHK 성우연구생(원문엔 이렇게 쓰였다) 제5기생이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다는 것으로 여기에 나온 세 아가씨가 그 "고키라"의 대표인 것이다.
세 아가씨는 자신의 이름보다도 이이자와 타타스 씨의 <얀보, 닌보, 톤보>로 유명하다. 이들의 존재가 이 방송을 통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고키라"의 특징은 TV와 관계가 있다. 대사 뿐 아니라 노래에 춤까지 요구되었다. 거기에 얼굴이 아름다운지 못 생겼는지도...
이들이 대사를 말할 때에도 원문의 장점을 잘 살려낸 신선한 느낌이 돋보여 요즘 들어선 개그맨에 가까워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원문의 장점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사토미 얀보 - 애칭 소요. 오 척 이 촌, 십이 관.
요코야마 닌보 - 애칭 요코. 오 척 삼 촌, 십이 관 오백.
쿠로야나기 톤보 - 애칭 챠쿠. 오 척 이 촌, 십이 관
이 기사에 "애칭 챠쿠"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건 수다쟁이 토토에게 자크(일본어로 챠쿠)를 채우겠다는 의미 같은 게 아니다. NHK 극단에 들어갔을 때 낭독 시험에서 토토는 아쿠타가와 류우노스케의 <갓파> 각본을 선택했다. 많은 갓파가 나오는 와중에 "챠쿠"라는 이름을 가진 갓파가 있었는데 "챠쿠챠쿠, 챠쿠챠쿠"라고 우는 것이 재밌어서 토토가 그걸 반복하게 되자 다들 토토를 "챠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기사에 "얼굴이 아름다운지 못 생겼는지"라든가 "십이 관" 같이 지금 와서 읽어보면 상당히 화가 나는 문장이 들어갔지만 이런 기사가 날 정도로 매일같이 많은 언론에서 띄워주기 바빴었다.
사실 이 즈음에 토토는 태어난 이래 세 번째 맞선을 보게 되어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는 뇌외과의로 "저는 결혼해도 괜찮겠다 생각합니다만."이라고 양친께 전하기까지 한 상태였다.
아빠는 토토가 NHK에 들어가 연기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긴 했지만 솔직히 일을 하는 것보단 시집을 가서 퇴직하길 바라고 있으셨다. 당시엔 여자가 바깥에서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는 것보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훨씬 일반적이었으니 그것이 여자의 행복이라고 아빠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결혼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옷을 맞춰줄 일도 거의 없어지겠구나."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시며 지유가오카에 있는 단골 옷가게에서 오버코트를 맞춰주셨다. 무려 네 벌이나. 그 중에도 분홍색 프린세스 라인 같은 꼭 맞는 실루엣에 옷깃에는 모피, 소매에는 검은 비로드가 곁들여진 옷이 토토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결국 결혼을 하진 않았다.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하지만 연애를 해보지도 않고 결혼을 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간 엄마는 토토가 그 오버코트를 입고서 "다녀오겠습니다."라며 나가려고 할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결혼 사기꾼!"이라고 중얼거리셨다.
결혼을 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 건 아니지만 결혼을 해서 동화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은 채였다.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되면
"밤이 너무 깊었으니 실례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라며 주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프로 배우가 밤이 깊었으니 이만 가볼게요라니 뭔 소리예요? 어디 가려고요?"
"졸리니깐 집에 가서 자려고요."
NHK가 "TV 여배우 1호"로서 팔아볼까 해도 본인의 의식은 이런 수준이었다.
그래도 <얀보 닌보 톤보>가 대성공을 거둔 덕에 토토의 일이 급속히 늘어났다. 아동 대상 TV 방송에서 인형극 <치로링 마을과 밤나무> (1956년~1964년)의 땅콩 피코 역, 과학방송 <물음표 극장>(1957년~1961년)에선 사회를 맡은 물음표 언니 역, 대중을 대상으로 한 방송에선 라디오 드라마 <잇쵸우메 일번지>(1957년~1964년)의 사에코 씨 역... 어떤 방송을 해도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토토는 바쁘면서도 즐겁게 일에 전념했다.
그런 와중이었다.
어느 연말 노래 방송에서 사회를 맡아줄 수 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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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보 닌보 톤보
"오디션을 본다니 대체 무슨 일이지?"
토토와 친구들이 라디오 제2스튜디오에 달려들어가 보니 거기엔 동기생들 뿐만이 아니라 분가쿠자나 토토도 이름을 알고 있는 극단 배우들이나 개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등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래, 이게?"
이건 <얀보 닌보 톤보>라는 라디오 드라마의 목소리 출연자를 고르기 위한 오디션이었다. NHK 사람의 설명에 의하면 어른도 아이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방송을 제작하게 되어 처음으로 대형 오디션을 열기로 했다고 한다. "오디션"은 지금이야 누구든지 알고 있는 단어이지만 이 시기엔 아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던 단어였다.
"어른도 아이도 함께 즐길 수 있다니...!"
토토는 이 프레이즈가 마음에 들었다. 동화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고 싶었던 토토에게 어울리는 방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오디션은 토토를 위해 준비된 걸지도! 같은 생각까지 했다.
<얀보 닌보 톤보>는 세 마리 흰 원숭이 새끼들의 이야기다.
인도의 임금님이 중국 임금님에게 보내는 선물로서 배를 타고온 세 마리 흰 원숭이 새끼들이 중국을 누비며 고향인 인도에서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기까지를 그린 모험 이야기. 노래도 많이 들어간 즐겁고 꿈이 있는 드라마였다. 그 전까지의 라디오 드라마는 전쟁중인 상황을 설정한 이야기나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NHK는 이젠 밝고 긍정적인 방송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결심한 듯 보였다.
요즘엔 아이들 목소리를 성인인 성우가 연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시 라디오 드라마에서는 아이 목소리는 진짜 아이들이 맡았기 때문에 NHK에선 이를 위해 토쿄방송아동극단이라는 극단까지 둘 정도였다. 하지만 <얀보 닌보 톤보>의 각본을 쓰신 극작가 선생님은 스튜디오에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이 들어가선 녹음하는 중간중간 숙제를 하고 있는 모습은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한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있는데 악보를 받고 바로 이에 따라 노래를 부르는 건 아이들에게 무리라고 본 것도 이유에 들어갔다. 그렇기에 어른이어도 아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하기 위해 NHK 사상 처음으로 대형 오디션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오디션 자리에선 두 페이지 분량 정도 대사가 들어있는 대본과 노래 악보가 주어졌다. 얼굴을 보면 공평한 심사를 할 수 없으니 토토를 비롯한 응시생들과 시험관석 사이에 칸막이가 놓여졌다. 경력자가 많은지라 오디션 진행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어떡해. 나 악보 못 읽는단 말야."라며 혼란에 빠진 사람도 조금씩 보여서 토토가 조금이지만 가르쳐 주기도 했다. 음악학교에서 배웠던 게 이런 곳에서 도움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톤보 대사를 읽어보세요."
토토의 차례가 되자 이런 지시가 내려왔다. 톤보는 가장 나이가 어린 원숭이였으니 되도록 어린 남자아이가 내는 것 같은 목소리를 내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얀보를 하기도 하고 닌보를 하기도 하고 하는 도중 역이 바뀌기도 했는데 토토는 다른 사람과 함께 대본을 읽게 되었을 때에도 "톤보 대사를 읽어보세요."라는 지시만 내려왔다.
오디션은 몇십 명이나 되는 응모자들이 조를 바꾸어가면서 진행되었다. 종료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린 후엔 그 장소에서 결과를 기다릴 뿐. 모두들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넓은 스튜디오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십 분 정도 지나 담당자가 종이를 가지고 들어왔다.
얀보 역부터 차례로 이름이 불렸다.
"얀보, 분가쿠자의 미야우치 쥰코 씨."
"닌보, 분가쿠자의 니시나카 마사치코 씨."
"톤보, NHK 극단의 쿠로야나기 테츠코 씨."
엥, 붙었어?
토토는 벌떡 일어섰다. 와글와글도 못하고 말 자체도 일본어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던 토토가 정말로 붙었다?
5기생들 모두가 달려와서 다들 "축하해!" "잘 됐네!"라며 말을 걸어왔지만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다.
"선발되신 세 분은 이 쪽으로."라고 하기에 따라가 극작가 선생님과 작곡 선생님을 소개받게 되니 더더욱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선발해 주신 걸 후회하지 않으시려나...
언제나처럼 결국 강판당하면 어떡한담...
마음 속엔 기쁨보다 불안이 훨씬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 분이 극작가이신 이이자와 타다스 선생님이십니다."
양복에 넥타이, 올백 머리를 하고 안경을 써서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남성이 소개되자 토토는 인사를 한 뒤 서둘러서 이런 말을 했다.
"저, 일본어를 이상하게 하니깐 고치겠습니다. 노래도 잘 못 부르니 공부하겠습니다. 개성도 누르겠습니다. 말투도 단정히 해서..."
그러자 이이자와 선생님이 안경 너머 눈을 가늘게 뜨더니 웃으면서 말하셨다.
"고치면 곤란하죠. 쿠로야나기 씨의 그 말투가 좋아서 뽑았는데.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요. 괜찮으니깐 고치지 말아요. 그대로 말해주세요. 그게 쿠로야나기 씨의 개성이고 그걸 저희가 필요로 하는 겁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엥, 괜찮아?
정말 이대로 하면 되는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전까지 짙은 구름에 싸여 있던 마음 속이 확하고 갠 것처럼 느껴졌다. 배역에서 쫓겨나기만 하며 "돌아가도 좋아"라는 말만 들었던 토토가 처음으로 자신의 개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게 극단 선배로부터 "일본어가 이상해!"란 말을 들은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만약 이이자와 선생님을 이 때 만나지 못했다면 토토는 NHK에 남아있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오오카 선생님도 오디션을 보던 곳에 찾아와 이렇게 말해주셨다.
"토토 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작곡가인 핫토리 타다시 선생님이 톤보 역은 이 사람이다, 이미지에 딱 맞아 떨어지네라고 말씀하셔서 톤보 역은 토토 님이 맡는 걸로 결정이 나다시피 했어요. 이이자와 선생님도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특징이 살아있는 목소리라고, 일본 방송극단을 다 둘러봐도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었을 타입이라고 절찬하셨죠."
또한 이이자와 선생님이 처음으로 원폭피해 상황을 세계에 전했던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는 걸 알려주셨다. 아사히 신문사에서 발행하던 <아사히 그래프>의 편집장을 맡았던 이이자와 선생님은 원폭투하가 일어난 직후 히로시마 사진을 숨겨놓고 있다가 연합군 사령부가 점령을 마쳤던 해(1952년)의 8월 6일호에 발표했다. 전세계 사람들이 처음으로 히로시마가 놓였던 상황과 원자폭탄의 무서움을 <아사히 그래프>를 통해 볼 수 있게 되면서 증쇄가 거듭될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얀보 닌보 톤보> 오디션이 열린 해엔 이이자와 선생님이 저널리스트이자 극작가라는 두 직업 중 하나에만 전념하기로 하면서 아사히 신문사를 그만두신 참이었다.
"무척 하이컬러한 분으로 겉보기엔 착하기만 해보이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강한 부분도 있는 분이세요."
오오오카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토토 님의 데뷔 작품이 이이자와 선생님 작품이라 정말 기쁘군요."
라고 덧붙였다. 그 말씀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던 토토에게 "그대로 있어주세요." "괜찮아요!"라고 힘있게 말씀해 주신 이이자와 선생님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니.
이 말이 토모에학원의 코바야시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넌, 사실은 정말 착한 아이란다."와 겹쳐져 그 뒤로 펼쳐진 토토의 인생을 언제든지 받쳐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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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토토는 TV 스튜디오 밖에 있는 벤치에서 책을 읽으며 모두가 끝마치고 오길 기다렸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오오오카 선생님이 갑자기 나타났다.
선생님은 토토가 앉아있던 벤치에 미끄러지듯 앉으시면서 언제나처럼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로
"토토 님, 오늘은 어떤 일을 맡았죠?"
라고 물어보시기에
"카사기 시즈코 씨의 TV 방송에서 와글와글 일을 맡았는데 전표 달아둘 테니 가보라는 말을 들었어요."
TV 방송에서의 와글와글 일은 지나가는 사람 같은 역할이다. 카사기 시즈코 씨가 상가 세트장 안에서 낙하산 스커트를 입고서 "오늘은 아침부터"로 시작하는 <장보기 부기>를 부를 때 토토는 그 뒤를 지나치는 역할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구먼"이라며 노래하는 카사기 씨를 바라보지 않도록 그래도 즐거운 듯이 슥 지나가야 했는데 토토는 길 한복판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즐겁겠네 하는 생각에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러자 스튜디오 위에서 목소리가 내리쳤다.
"흘끔흘끔 보지마!"
토토는 생선가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 정도는 보지 않나 반론을 하고 싶어졌다.
"쓱 지나가, 쓰윽."
토토의 옷을 비롯해 여러 요소가 눈에 띄는 점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토토는 들은 말 그대로 쓱하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그랬더니 다시 위에서 목소리가 울려왔다.
"TV는 화면이 좁으니깐 그렇게 빨리 가면 어째 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단 말야!"
"네."
토토는 천천히, 판토마임 배우 마르셀 마르소가 슬로모션을 하는 것처럼 걸어갔다.
"네가 닌자냐!"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만 가봐. 전표는 달아둘 테니깐."
스튜디오에서 일어났던 일을 토토가 설명하자 오오오카 선생님은 그 이상 묻지 않고 위로를 해주지도 않으시며 "허, 허, 허"하고 웃으셨다.
"지금 토토 님은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그렇게 말씀하시며 토토가 읽고 있던 책의 표지를 보시더니 순식간에 사라지셨다.
토토는 양성소에 있을 때에도 "그만하면 됐어."라든가 "그런 개성은 드러내지 마!"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들었다. 그렇기에 혼자서 동기생들을 기다리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그럴 때에 위로가 되어준 건 항상 오오오카 선생님이었다. 어디에서 만나게 되든 하루에 몇 번이고 꼭 말을 걸어주셨다.
"토토 님, 어디로 가시나요?"
그 곳이 복도든, 엘리베이터 안이든, 화장실 앞이든 오오오카 선생님의 말은 정해져 있다시피 했다. 정식으로 NHK 극단원이 된 뒤에도 어디에서든 나타나 "토토 님, 어디로 가시나요?"라고 물어보셨다. 오오오카 선생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날 바라봐주고 신경을 써주는 분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척 든든하고 힘을 주는 마법주문과 같은 선생님이었다.
그런 오오오카 선생님 덕분에 토토가 아무리 혼이 나고 배역에서 쫓겨나도 "이젠 틀렸어." 같은 자신의 무능력함에 절망감을 느끼는 말을 꺼내진 않았다. "신인이고, 애시당초 동화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고 싶었던 것 뿐이니깐."이라 생각하며 상황을 받아들였다. 생각을 너무 안했던 것 뿐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런 마음을 먹어도 여전히 토토에게 와글와글은 난관일 뿐이었다.
독본실에서의 눈물
그 날의 슬픔, 분함을 토토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라디오의 와글와글 일이 끝나고 나서 제1스튜디오에서 나올 때에 극단 1기생 남자 선배가 불러세웠다. 같은 스튜디오에서 라디오 드라마 주연을 연기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 독본실이 비었으니깐 거기로 가자."
선배는 퉁명스럽게 그런 말을 꺼낸 뒤 스튜디오 앞에 있는 독본실 문을 열고 터벅터벅 들어갔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긴 했지만 선배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데 무시할 수도 없었다.
독본실은 텅 비었고 어두웠다.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약간 붉은 얼굴에 쓴 안경 너머로 바라보던 선배가 선 채로 토토에게 이런 말을 꺼냈다.
"너 대사 말야, 그러고도 일본어냐?"
공포감을 느낀 것을 눈치채이지 않도록 토토가 예의바르게 물어봤다.
"제 일본어의 어떤 점이 이상하게 들리시나요?"
"어떤 점이고 자시고, 너무 이상하단 말야 죄다!"
토토로선 뭐라 답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토토의 말투가 지금까지 봐온 NHK 극단 사람들의 말투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어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말의 속도나 와글와글 때의 목소리 크기가 다르다는 정도 뿐이었다.
"너무 빨라!"라든가 "너무 커!" 같은 말을 연출가로부터 들은 적이 많긴 했다. 다른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말하는 법과 속도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토토는 여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보다 말투가 빠른데도 그대로 말해버리니 틀어져 버린 것이다. 목소리 크기도 마찬가지로 속닥속닥이라든가 시끌벅적 같은 말을 들어도 "나라면 이렇게 말할 텐데"란 생각에 사로잡혀 조절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선배는 토토의 일본어 전부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카무라 메이코의 흉내라도 내는 거냐?"
고개를 숙인 토토를 향해서 선배가 추가타를 날렸다. 나카무라 메이코 씨는 세계대전 전부터 아역으로 활약하던 배우로 방송계를 잘 모르는 토토라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라디오에서 메이코 씨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TV에 같이 출연하게 된 것도 그로부터 좀 지난 후의 이야기였으니 메이코 씨가 어떤 말투를 가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목소리를 들었다 한들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토토는 선배를 향해 외쳤다.
"흉내 같은 거, 낸 적 없어요!"
으스대고 있던 선배가 한 순간 쫄은 것처럼 보였다.
"내일까지 전부 고쳐서 오라고."
선배는 그 말을 내뱉은 뒤 난폭하게 문을 연 뒤 또각또각 소리를 울리며 독본실에서 나갔다.
여태까지도 여러 선배들로부터 많은 말을 들었지만 "누군가의 흉내를 낸다."는 말을 들었던 것만큼은 토토로서 참기 힘든 굴욕이었다. 누군가의 흉내를 낸다면 토모에학원의 코바야시 선생님께서 "넌, 사실은 정말 착한 아이란다."라고 해주신 것이나 엄마께서 "솔직한 것 하나는 장점이지."라고 하신 것을 전부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토토가 NHK 극단원이 된 뒤로 운 것은 그 전까지도 그 후로도 이 때 뿐이었다.
독본실의 콘크리트벽을 주먹으로 치면서 토토는 혼자 울었다. 주먹이 저릿저릿해왔기에 이번엔 발로 벽을 쾅쾅 찼다. 마음 속 슬픔과 분함과 노여움 같은 감정들이 넘쳐나서 무언가에 쏟아내지 않으면 이것을 수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새인가 해가 져서 독본실이 컴컴해졌고 공기도 차가워졌다. 동기생들도 다들 갔을 테니 울어서 부은 얼굴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은 없을 것이다.
"흉내 같은 거, 낸 적 없어요!"
한번 더 입에 담아봤지만 토토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선배의 말에 충격을 받은 토토는 그 무렵 NHK에서 대형신작 아동 대상 라디오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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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4월, 토토와 동기생들은 드디어 NHK 전속 토쿄방송극단 제5기생으로서 정식채용되었다. 어머니가 될 예정이었던 토토가 이 날부터 배우가 된 것이다.
NHK 극단 신인들은 우선 "와글와글" 일을 맡는 게 순서였다. 와글와글이란 단순히 말하자면 "그 외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NHK 극단원이 된 토토와 5기생들이 본방송의 와글와글을 처음 맡게 되어 모두 함께 라디오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그 곳은 놀랍게도 대인기를 누리는 라디오 드라마 <당신의 이름은> 녹음현장이었다. 당시 세상을 풍미하고 있었던 이 라디오 드라마는 매주 목요일 밤 여덞 시 반부터 방송되었다. 토쿄대공습이 있던 밤, 긴자 거리에서 생판 남이었던 마치코와 하루키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멜로 드라마로 방송시간만 되면 이걸 듣겠다고 목욕탕의 여탕이 텅 비어버린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는데 주제가를 부른 것이 토우요우음악학교 시절에 성악을 가르쳐 주셨던 타카야나기 후타바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알고서 정말 깜짝 놀랐다.
"받으세요."라며 건네준 대본이 한 사람당 한 권씩. 하지만 대본에 와글와글 대사 같은 건 적혀져 있지 않아서 그 장면에 맞는 대사를 직접 만들어내고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인공인 마치코와 하루키가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근처를 지나던 남자가 쓰러진다. 라디오이니 그 부분에 "털썩"하는 효과음이 들어가고 마이크 근처에 있는 마치코와 하루키 담당 성우가 "어머?"라든가 "무슨 일이지?" 같은 말을 하면 그와 동시에 와글와글 역들이 목소리를 죽여 "무슨 일이에요?" "죽은 건가요?" "구급차를 불러야 되지 않겠어요?" 같은 말을 하면서 정말 사람이 쓰러졌다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다.
처음 맡는 와글와글인지라 마치코와 하루키 역을 맡은 성우 분들도 참가해서 토토를 비롯한 5기생들과 함께 특별연습을 하게 되었다.
유리창 너머에서 연출가가 큐(연기 개시 신호)를 내면 5기생들은 팔십 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주역 두 사람을 둘러싸고 각자 생각해온 대사를 말했다.
그러자 유리창 너머에 있던 연출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혼자서 목소리가 너무 크네. 목소리를 좀 줄여서 다시 해봐."
그렇게 말한 뒤 다시금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낙하산 스커트 입은 아가씨?"
토토를 말하는 것 같았다.
"거기 말야, 혼자서 소리가 너무 커."
토토는 만약 자신이 길을 걷고 있는데 쓰러진 사람과 조우하면 어떤 말을 걸지 상상하고 대사를 말하는 법을 생각했다.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소리를 죽여서 "무슨 일이에요?"라고 물어볼 생각이 도통 들지 않아 커다란 목소리로 "무슨 일이세요!"라고 외치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했으니 그렇게 했는데.
"거기 말야, 다른 사람보다 조금... 아니다, 삼 미터 정도 떨어져."
아까는 팔십 센티미터였는데 거기에 삼 미터를 더하게 되니 모두들과 완전히 격리된 것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할 수 없이 전보다 더욱 큰 소리로 "무슨 일이세요!"라고 외친 뒤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니 음량을 조정하고 있던 믹스 담당자 분이 귀를 막고 펄쩍 뛰는 것이 보였다.
"아가씨! 거기에서 더 뒤로 물러나서, 문 근처에서 해봐!"
스튜디오 문을 가리키기에 토토는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제 동기생들과 십 미터 이상은 떨어지게 되어 토토는 "무슨 일이세요~~~!"라고 목소리를 쥐어짰다.
연출가가 와선 토토에게 이렇게 말했다.
"와글와글 담당이 큰 소리를 내면 라디오에서 그걸 듣는 사람이 이 사람은 특별한 역인가 보네, 나중에 다시 나오려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인상을 강하게 만들지 말고 와글와글이구나 하는 정도로, 그러니깐, 그 외 여러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다란 인상을 줘야... 아가씨, 오늘은 이걸로 됐어. 전표는 달아둘 테니깐."
전표라는 건 극단원이 일을 하면 연출가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떤 스튜디오에서 어떤 방송에 출연했는지 써서 극단실에 걸어놓는 서류로 극단원이 여기에 사인을 한 뒤 서무실에 제출하면 서무 담당자가 시급 얼마로 계산해서 한 달 단위로 묶어 지불해 준다. 일을 하지 않고 돌려보내면 수입을 얻을 수 없기에 연출가가 그걸 신경써서 친절히 "전표는 달아둘 테니깐."이라고 한 것이다. 참고로 당시 토토의 출연료는 시간당 오십구 엔. NHK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급료가 상당히 박했다.
하지만 토토는 수입보다도 혼자서 돌아가게 된 것이 슬펐다.
토토는 스튜디오 바깥에 있는 벤치에서 동기생들이 일을 마치는 것을 기다렸다. 최소한 신바시역까지는 동기생들과 함께 돌아가고 싶었다. 팥죽을 같이 먹자고 약속도 했고.
그 이후로 어떤 방송 어떤 연출가가 있는 스튜디오를 가도 와글와글 차례가 오면 토토는 정해진 순서처럼 이런 말을 들었다.
"아가씨, 돌아가도 좋아. 전표는 달아둘 테니깐."
더 심한 경우엔
"어라? 와있었네. 돌아가도 돼. 전표는 달아둘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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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목소리
"오늘은 여러분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볼까 합니다."
삼 개월에 걸친 양성기간이 종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오오오카 선생님이 싱글벙글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전원의 목소리를 한 명씩 차례대로 테이프 레코더에 녹음한 후 그걸 들어보는 것이다. 물론 이건 5기생 스물여덞 명에게 있어 태어나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TV 방송이 시작되었을 때 NHK 수신 계약 건수는 팔백육십육 건으로 5인 가족이 한 대를 같이 본다고 해도 일본에서 TV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사오천 명 밖에 되지 않는 꼴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믿기 힘든 수치였지만 그런 시대였으니 테이프 레코더 같은 것도 방송국 중 NHK 외에 가지고 있는 곳이 드물 정도로 무척 귀중한 기계였다.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토토와 동기생들은 매일 같이 드나들었던 관광호텔의 일본식 방에서 튀어나와 도로를 가로질러 NHK 제5스튜디오로 향했다. 이 스튜디오에 온 건 채용시험 이후 처음이었는데 그 때엔 노래를 부르는 시험이었지만 이번엔 대사를 녹음하게 되었다.
토토를 비롯한 여자들에게 오오오카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것은 남편의 태도에 지긋지긋해져 버린 측실이 남편을 힐문하는 장면에 담긴 대사로 단숨에 쏟아내듯 말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모두들 차례차례 녹음을 했는데 이런 경우 대체로 토토의 순번은 마지막으로 정해져 있다시피했다. 왜 그런가 하면 토토 차례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오오오카 선생님이 이걸 염두에 두고 전원이 돌아가며 과제를 할 때엔 모두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부터 시작하도록 짜놓으신 것이다.
전원 녹음을 마친 뒤 차례대로 재생을 하자 모두들 들을 때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드디어 토토의 차례가 되었다.
"쿠로야나기 테츠코"
먼저 자신의 이름이 들려왔다. 코울림이 나는 듯한 달달한 듯한 하지만 애정을 붙이기 힘든 신비한 느낌에 도저히 자신의 목소리라고 믿기 힘들었다. 토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죄송합니다! 이거 기계가 망가진 것 같아요. 다시 하게 해주세요."
그러자 유리창 너머에 있던 믹스 담당자 분이 단호하게 말했다.
"기계가 망가지거나 한 게 아닙니다. 이게 학생의 목소리예요."
토토는 혼란에 빠졌다.
"제 목소리는 이렇게 괴상하지 않아요. NHK 기계가 망가진 게 틀림없어요."
몇 번이고 그렇게 호소해 봤지만 믹스 담당자 분은 "이게 학생의 목소리예요."란 말만 했다.
이런 목소리로 어떻게 방송에 나가라고! 이런 목소리를 들었기에 오오오카 선생님이 "태엽으로 돌아가는 프랑스 인형 같다"는 말씀을 한 것이었나 생각하니 슬퍼져서 양성소 친구들과 오오오카 선생님과 믹스 담당자 분이 있는 앞에서 토토는 울어버렸다.
그러자 믹스 담당자 분이 아까보다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와 실제 목소리는 다르게 들리는 법이에요. 입과 머릿속에서 공명현상을 일으킨 소리가 자신의 귀에 전달되게 되는 법이니까요."
믹스 담당자 분이 친절하게 한번 더 토토의 목소리를 재생해 주었지만 그걸 들은 토토는 더욱 크게 울어버렸다.
"이런 목소리가 아냐. 이딴 괴상한 목소리가 아니라고."
그날 하루 종일 토토는 울기만 했다. 자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울어버려서야 분명 약간 명에 들어갈 수 없을 테니 모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더욱 눈물이 쏟아졌다.
양성소에 들어간 5기생 스물여덞 명은 순식간에 친해져서 <달걀모임>을 결성했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모든 수업이 끝났고 채용될 약간 명이 결정될 단계에 이르자 한 명이라도 NHK에 붙지 못하게 되면 붙은 사람 전원이 결속해서 "모두 채용해 주지 않으면 파업을 해버리자."라고 정하기도 했다. 삼 개월에 걸친 제1차 양성기간 최종일에 "꼭 하자" "반드시야"라고 맹세를 나누며 신바시역 앞에서 헤어졌다.
며칠 후 "합격"을 알리는 속달 우편이 도착했다! NHK에 다니기 시작한 뒤 삼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꽤 많은 걸 경험했구나 하는 생각에 잠겨 그 날을 보냈다. 물론 기뻤지만 동화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고 싶었던 토토가 TV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너무나 믿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흘 후, 관광호텔에 합격자 열일곱 명이 모였다. "또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워."라고 기뻐할 새도 없이 일 년에 걸친 제2차 양성기간이 시작되었다.
합격통지가 우편으로 배달되었으니 파업 이야기 같은 건 완전히 흐지부지되어버렸다. 토토 안에선 몇 년이 지나도 "그 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감정이 남아있긴 했지만 합격하지 못한 약간 명의 사람들과 다시 만나거나 하지 못했다.
"토토 님!":
복도를 걷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오카 선생님이었다. 토토가 돌아보니 언제나처럼 가까이 다가온 오오오카 선생님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시며 이렇게 물어보셨다.
"당신은 왜 자기가 채용된 건지 알고 있나요?"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토토가 깜짝 놀라 "그런 거 모르는데요."라고 답하자 오오오카 선생님이 "허, 허, 허"라며 유쾌한 듯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가 감탄한 건 양성기간 중 토토 님만이 무지각, 무결석을 달성한 거였어요. 전 지금까지 1기생과 4기생도 담당했었는데 무지각, 무결석으로 참여한 건 토토 님이 처음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건 멋진 일이죠. 하지만 당신의 시험 점수는 너무나도 나빴습니다. 그래도 시험관 선생님께서 "이만큼 연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이니만큼 TV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 곧바르게 잡념을 가지지 않고 흡수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더군요. 비유하자면 기름종이 같은 것이죠. 손때가 묻지 않은 아이 한 명 정도는 채용해서 TV와 함께 시작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하고요. 이런 기준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그야말로 무색투명! 그런 점이 좋았던 겁니다."
토토가 '엥? 무색투명하다니 뭔 소리야?'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언제나처럼 마술사처럼 오오오카 선생님이 토토 눈 앞에서 사라지셨다.
역시 성적이 나빴구나. 재능이 있다든가, 얼굴이 괜찮다든가 같은 걸로 채용될 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좀더 극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무색투명하다니.
토토는 입을 헤벌린 채로 오오오카 선생님의 행방을 찾아다녔다.
토토 님, 어디로 가시나요?
제2차 양성기간에도 가장 앞자리가 토토의 지정석이었다.
선생님들의 진용이 더욱 두터워지면서 배우이자 연출가이신 아오야마 스기사쿠 선생님, 예술론을 담당한 이케다야 사부로우 선생님, 일본무용가이신 니시자키 미도리 선생님이 더해졌다.
아오야마 선생님은 출연하신 영화를 보기도 했고 하이유우자 극단 창설자로서도 유명했다. 그 아오야마 선생님께서 "좌장님"이라 불린 적이 있었다. 토토에게 어울린다고 하셨지만 토토로선 스와노타이라에서 만난 좌장님이 생각나 두근거렸다. 토토에게 좌장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어울리는 걸까?
아오야마 선생님은 수업 중에 메트로놈을 쓰곤 하셨다. 대사 간의 간격을 잡기 위해서였는데 메트로놈을 보고 있으려니 토토는 조건반사처럼 아빠의 바이올린 레슨을 떠올렸다. 음악에 쓰이는 건 알겠지만 대사는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좀더 감정에 따라 지도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탭댄스 담당인 오기노 선생님으로부터 일 주일에 세 번 NHK 수업을 마친 후에 개인 레슨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의 스텝 리듬을 "치리탄타치리타, 치리타치리치타"라고 입으로 따라하면서 배운 것이 토토가 탭댄스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된 비결이었다.
"컬러 TV 실험방송용 모델"이 된 적도 있었다. 들떠서 세타가야 키누토에 있는 NHK 연구소에 가보니 얼굴의 오른쪽 반은 보라색, 왼쪽 반은 흰색으로 칠해졌다.
"그대로 계속 카메라 앞에 앉아주세요."라고 말하기에 "최소한 분홍색으로 해주실 순 없을까요?"라고 부탁했지만 기술 담당 분이 "오늘은 보라색 실험날이어서요."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컬러 TV 모델이라기에 룰루랄라 왔던 토토는 얼룩말이 되어 하루 종일 카메라 앞에 앉아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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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 배우가 되다
태엽으로 돌아가는 프랑스 인형
NHK 전속 토쿄방송극단 제5기생 채용시험이 끝난 건 1953년 2월이었다. 2월 1일부터 NHK TV 방송이 시작되면서 세간의 화제도 "TV"에 대한 이야기가 독차지했다. 토토를 비롯한 5기생들은 TV 시대의 1기생으로서도 기대를 받게 된 것이다.
육천 명이나 되는 응모자 중에서 남은 건 여자 열일곱 명, 남자 열한 명으로 총 스물여덞 명. 처음에 응모한 사람들 중 이백 분의 일만이 남게 되었지만 이걸로 모든 게 끝난 것도 아니었다. 삼 개월 더 제1차 양성기간을 거친 뒤 약간 명의 채용자가 최종적으로 결정될 테니 아직 방심할 순 없었다. "약간 명"이 어느 정도의 수를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스물여덞 명은 불안한 심정을 안고서 TV나 라디오 배우로서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배우게 되었다.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무난히 참가할 수 있도록 평일엔 저녁 여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엔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로 시간이 정해졌다.
연수 첫날, 토토와 5기생들은 NHK로 가는 길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는 관광 호텔의 일본식 방에 집합했다. 교실로서 쓰이는 곳은 타타미가 깔린 연회장 같은 방이었다.
스물여덞 명 중엔 유명세를 타지는 못했지만 이미 영화배우나 무대배우로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고 학교에서 연극 공부를 했던 사람도 있어 완전한 초짜는 토토 외엔 얼마 없는 것 같았다. 높아진 긴장감을 안고 첫날 강의가 시작되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 몇몇이 인사를 한 후 사무 담당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이 분은 낭독과 이야기를 알려주실 오오오카 타츠오 선생님이십니다. 평소엔 NHK 문예부에서 근무하고 있으십니다."
이 분은 평소 보던 양복 입고 출근한 회사원들과는 달리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할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벗겨진 머리에는 털실뭉치가 끝에 달린 니트모자를 쓰고있고 뿔테안경을 걸쳤으며 짙은 갈색 가디건을 입고 계셨다. 허리가 굽어 상반신이 쓰러지기라도 할 듯한 자세로 걸어가셨지만 절대 쓰러지거나 하지 않았다.
토토는 이 할아버지에게 갑작스러운 흥미를 느꼈다. 이렇게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과 만나게 된 건 처음인데도 뭐라 할 수 없는 부드러운 태도와 자기자신을 꾸미지 않는 느낌이 토모에학원의 코바야시 선생님과 조금 닮아보였다.
"여러분의 담임 선생님이라고 해야 되나? 돌봐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무 담당자가 이렇게 소개를 마치자 오오오카 선생님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시더니 아이처럼 부끄러워하는 웃음을 띄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담임 선생님이라니 그런 게 아닙니다. 잡일꾼 같은 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건 그렇고 여러분, 여기까지 남기 위해 고생이 꽤나 많으셨겠죠?"
입을 가리고 있는 손등이 조금 부풀어 보였다. 친절한 말투를 쓰면서 많은 걸 알고 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도 그윽한 면이 있어 좀 신기했다. 오오오카 선생님이 타카하마 쿄시의 문하생으로 있었던 사생문의 달인이라는 것을 토토가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사십 년이 넘게 지나고서야였다.
매일매일 관광호텔에 다니게 되었다. 교실로 쓰이는 넓다란 방에 도착하면 자신들이 쓸 탁자와 방석을 놓고 선생님이 오길 기다렸다. 코우란에 다닐 때에도 절을 교실로 썼으니 신발을 벗고 방석에 앉아 수업을 듣는 서당 같은 수업방식이 추억거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토토는 반드시 맨앞자리에 앉기로 했는데 뒷자리에 앉았다간 옆사람과 수다를 떨거라 생각했기 때문으로 이것도 코우란에 다닐 때와 변함이 없었다.
오오오카 선생님 외에도 대사 읽는 법의 기초를 NHK 연극과장이었던 나카가와 타다히코 선생님이, 움직임 등 기초연기는 훗날 TV 미술부장에 오르는 사쿠마 시게타카 선생님이, 음성학은 토쿄대와 토쿄예대에서 수업을 하시는 삿타 코토지 선생님이, 예능에 대한 강의는 훗날 NHK 회장에 오르게 된 사카모토 토모카즈 선생님이, 탭댄스는 니혼극장의 스타였던 오기노 유키히사 선생님이 맡으셨다. 관광호텔에는 홀도 있었기에 탭댄스 수업은 거기에서 받았었다.
당시 토토는 교사진이 그렇게 호화롭다는 것에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지만 첫 일 주일이 지난 일요일 신바시로 가던 길에 동기생 중 한 명이 감동에 젖어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선생님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수업을 들으려면 대체 얼마나 큰 금액을 내야될지 상상도 안 돼."
양성소 친구들은 전문적이 지식이 풍부해서 연기와 방송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다들 흥분해서 "대단해" "엄청나"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며 토토는 '그런가. 그 정도로 NHK가 이 교육에 열의를 다하는 거구나.'라며 감탄했다.
연수가 시작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토토 님!"
낭독 수업이 끝난 뒤 오오오카 선생님이 부르셨다. 오오오카 선생님은 토토를 언제부턴가 "토토 님"이라고 부르시게 되었다.
"토토 님의 목소리와 억양은 마치 태엽으로 돌아가는 프랑스 인형이 말하는 것 같군요."
엥, 태엽으로 돌아가는 프랑스 인형? 토토로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묵묵히 오오오카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자 선생님이 싱글벙글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토토 님은 머뭇거리는 구석이 없이 활발해서 감았던 태엽이 기세 좋게 풀리는 것처럼 단숨에 대사를 풀어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한 건데 알기 어려웠나 보군요. 허, 허, 허."
"프랑스 인형"이란 말을 들었을 때엔 칭찬을 들은 건가 싶기도 했지만 "태엽으로 움직이는"이란 설명은 미묘했다.
오오오카 선생님은 다소 신선 같은 구석이 있으셔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시고선 이에 토토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으면 마술이라도 쓴 것처럼 뿅하고 모습을 감춰버리셨다. 토토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시고선 눈 앞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시는 것이다.
하지만 오오오카 선생님이 "님"이라고 부르셨던 학생은 토토 뿐이었고 쉬는 시간에 토토가 동기생들 앞에서 막 배운 라쿠고 등을 선보일 때면 멀리서 그걸 지켜보며 웃고 있으셨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오오오카 선생님이 토토를 마음에 들어하시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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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어머니가 되려면
토토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토우요우음악학교 동급생 다수가 이미 취직할 곳을 결정해 놓고 있었다.
레코드 회사에 가거나, 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을 하거나, 후지와라 가극단에 들어가는 사람까지 있는 등 졸업 후 진로 이야기를 꺼내는 동급생들의 얼굴은 빛나 보였다. 모두들 할일 없이 라면이나 구운 감자를 먹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동급생들 중엔 졸업 후 <춤추는 여자> 등 인기곡을 내며 가수로서 유명해진 미우라 코우이치 씨도 있었는데 그 당시 이미 레코딩도 마치고 데뷔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토토만이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상당히 낙담했다.
어느 날 돌아오는 길에 있는 전신주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인형극 <눈의 여왕> 공연 긴자 코우쥰샤홀"
헤에, 긴자에서 공연하는 구나? 인형극은 어떤 식으로 하려나?: 지금이야 TV 같은 곳에서 방송되어 다들 알고 있겠지만 당시엔 알 길이 전혀 없다시피 했다.
토토는 <눈의 여왕>이 안데르센 동화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인형극이란 것을 본 적은 없었고 "긴자"라는 두 글자에 이끌리고 있었다. 아빠와 데이트를 했던 추억이 담긴 거리이며 스와노타이라에서 들었던 <토쿄 랩소디>의 추억도 떠올랐다. 혼자서 가기엔 다소 망설여졌지만 일요일 오후에 마음을 굳게 먹고 가보기로 했다.
어린이들로 가득 찬 코우쥰샤홀에 기분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다소 살이 찌고 기운차 보이는 언니가 양손에 남자아이 여자아이 인형을 끼고 등장했다. 인사를 한 뒤 인형극 무대 아래로 몸을 수그리자 무대 위에는 인형만이 남은 채 인형극이 시작되었다.
토토는 몸을 조금 기울여서 무대 아래에 숨어있는 언니를 옆에서 바라보았다. 언니는 무릎을 꿇고서 양손에 낀 인형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더니 무대의 끝에서 끝까지 달리기도 하고 점프를 하기도 하면서 땀범벅이 되어가며 연기를 했다. 객석에 있는 어린이들은 호기심에 가득찬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선 손바닥이 날아가라 박수를 쳤다.
절정 부분이 가까워져 눈의 여왕이 남자아이인 카이와 여자아이인 게르다에게 무서운 명령을 내리자 "불쌍해"라든가 "너무해" 같은 말을 어린이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토토는 신비한 감정에 휩싸였다. 영화판 <토스카>를 봤을 때와는 다르게 무언가 상냥한 것이 가득 차오른 것 같은, 어릴 적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커다란 박수소리와 함께 인형극 <눈의 여왕>이 막을 내렸다.
신바시역까지 걸어가며 토토는 생각을 했다. 혹시 오늘 본 그 언니 같은 걸 토토도 할 수 없을까? 많은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음악학교 친구들이 차례차례 취직에 성공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당시 말로 한다면 "직업여성"이 되는 꿈은 너무나 멀어 "결혼"이란 두 글자가 묘하게 가깝게 느껴졌다.
"결혼을 하면 아이가 생기겠지. 청소, 세탁, 요리를 할 수 있는 어머니야 많이 있겠지만 인형극을 할 수 있는 어머니는 그렇게 많지 않으려나?"
집에 가는 동안 토토는 상상에 잠겨있었다.
"오늘 본 인형극 같은 걸 어머니가 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최소한 아이들이 잠자기 전에 베개 맡에서 동화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그런 어머니 정도는 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토토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는 거야!"
어머니가 되려면 그 전에 결혼을 해야 되는데, 토토는 그런 걸 제쳐두고 침대 위에서 이불을 목까지 덮고 있는 아이 모습을 상상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눈의 여왕> 인형극은 아직 젊었던 그림자 연극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 씨가 프로듀스를 했었고 음악은 모두 아쿠타가와 야스시 씨가 작곡했으며 남성 4인조 코러스는 아직 프로가 되기 전이었던 다크덕스가 맡았다는 사실을 이 당시 토토로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준 높은 <눈의 여왕>을 본 것이 토토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결정한 계기가 된 것은 틀림 없었다.
토토는 엄마에게 인형극을 연기한 언니가 무척 필사적으로 임했던 것이나 어린이들이 무척 기뻐했던 것 등을 열변했다. 그러고서 엄마에게 여쭤보았다.
"동화책 읽는 법이나 인형극 하는 법을 알려주는 곳 없으려나?"
"글쎄, 신문에 나와 있으려나?"
엄마가 그리 말씀하시길래 토토는 그 날 보지도 않던 신문을 펼쳤다.
"NHK에서는 TV 방송을 시작하게 됨에 따라 전속 배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프로 배우일 필요는 없습니다. 일 년간 최고의 선생님을 모셔 양성과정을 거친 후 채용된 분은 NHK 전속 배우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채용 인원수는 若干名..."
이런 우연이! 신문 정중앙에 NHK 광고를 발견하고서 토토는 바로 감이 왔다. TV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낭독 방법 등을 배우면 동화책을 잘 읽을 수 있는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토토는 아빠와 엄마에겐 비밀로 하고서 바로 이력서를 보냈다.
며칠 지난 뒤 NHK에서 서류가 왔다. '붙었으려나?'하는 마음에 봉투를 열어보니 토토가 보냈던 이력서가 나왔다.
"이력서를 직접 지참하고 오시라고 써놓았는데 왜 보내신 겁니까?"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도 동봉되어 있었다. 실패! 그냥 관둘까 생각도 했지만 이력서 제출기간 종료까지 이틀 남았으니 아직 늦지는 않았다.
토토는 그 날 바로 히비야 공회당 옆에 있는 NHK로 이력서를 지참하고 갔다. 수험번호 5655번 카드를 받아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시하러 온 건가? 신문에는 "채용 인원수는 若干名 "이라고 써져 있었는데 "와카보시메이"는 몇 명을 말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가선 아빠에게 "와카보시메이"가 뭐예요?"라고 시치미를 떼고 물어보자 아빠께서 "약간 명을 말하는 거 아니니? 정확히 수를 결정하지 않고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채용하겠다 그런 뜻을 담은 말이야."라고 설명해 주었다.(와카보시메이는 若干名 각 한자의 일본식 발음에서 흔히 쓰이는 발음을 이은 것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역자 주)
채용시험이 시작되었다. "아카마키카미, 아오마키카미, 키마키카미" 같은 빨리 말하기를 하는 일차 시험을 통과해 이차 필기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이 때에도 토토는 실패를 해버렸다. 시험장이 오챠노미즈에 있는 메이지대학교였는데 토토는 NHK로 가버린 것이었다.
이만 하면 됐다 관두자 생각하며 신바시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문득 정기권 주머니 안에 천 엔 지폐 한 장을 비상금으로 숨기고 있었단 사실이 생각났다.
"이걸로 메이지대까지 갈 수 있나요?"
택시 운전수 아저씨에게 천 엔 지폐를 보여드리니
"갈 수 있지."
"부탁드립니다!"
메이지대학교에 도착하자 시험 담당 아저씨가 "빨리 와, 빨리!"라며 손을 흔드셨고 시험장인 계단형 교실에 오 분 지각으로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위의 항목과 아래의 항목 중 연관되는 것을 선으로 연결하시오."
"카르멘 - 비제" "이사무 노구치 - 조각가"처럼 바로 알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1952년도 방송부문 예술제 수상작품은? 같은 방송이나 연극에 관련된 문제는 어려웠다. 이런 문제가 총 이십 문항 정도. 토토는 자신도 모르게 옆자리에 앉은 안경을 쓴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
그러자 그 사람은 토토를 흘겨보고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요."
그야 그렇겠지.
두 번째 문제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묻는 문제. 이 정도는 괜찮겠지. 세 번째 문제는 "최근 들은 NHK 라디오 방송명을 적으시오."였다. 신년마다 방송되는 미야기 미치오 씨의 거문고와 아빠의 바이올린이 어우러진 <봄바다>를 들은 것이 생각나서 답안용지에 "미야기 미치오의 거문고와 바이올린이 이중주를 이룬 <봄바다>"라고 썼다. 아빠에게 비밀로 하고 보는 시험이라 아빠 이름을 쓸 수 없었다. "새해에 어울리는 멋진 곡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 문제는 "당신의 장점과 단점을 쓰시오"였다.
드디어 나를 알릴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는 생각에 토토는 연필을 고쳐 쥐었다. "장점"에는 망설임 없이 "정직함"이라고 적었다. 엄마께서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깐. 그 다음 "친절함"을 적고 "친구가 그렇게 말해 줍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지우개로 지우고 적고를 반복하다 보니 종이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빨리 쓴 사람은 답안용지를 제출하고 계단형 교실에서 나갔고 토토가 답 좀 알려달라고 했더니 거절한 남자도 "가볼게요."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좋은 사람인 건가 싶어져 신경을 쓰게 만든 걸까 하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단점"에는 원래 잘 읽어보면 장점과 연결되는 것을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많이 먹음"이라든가 "정돈 못함" 같은 것만 떠올랐고 결국 이렇게 써내려갔다.
"저는 낙천적이어서 그런지 많은 것들을 곧잘 잊어먹곤 합니다. 어머니는 때때로 저에게 "참고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물어보겠는데 아까 너 실패했다면서 우왕하고 울었잖니?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깔깔 웃으면서 전병을 와구와구 먹고 있잖아? 아까 울었던 이유가 머릿속에 남아있긴 해?" 같은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그럴 때 아까 일을 완전히 잊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반성이라든가 고민을 금방 잊어버리는 것, 이것도 단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험시간이 끝났다.
누가 갑자기 세우기라도 한 것처럼 토토가 일어섰을 때, 커다란 계단형 교실은 텅 비어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랬는데도 어째서인지 토토는 이 필기시험도 통과했다.
삼차 시험을 보기 전에 엄마께 NHK 극단 배우가 되기 위한 시험을 보고 있다고 보고했다. 동화책을 잘 읽을 수 있는 어머니가 되고 싶으니 NHK 시험을 보고 있다는 것, 아빠께선 반대하실 게 뻔하니 비밀로 해달라는 것 등을 전했다.
엄마는 토토의 마음을 이해해 주셨고 토토도 엄마께 이야기를 함으로써 외로운 싸움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삼차 시험인 판토마임은 해본 적이 없어서 앞서 한 사람을 따라했더니 어째 시험관이 크게 웃었다. 사차 시험은 노래였는데 시험관이 "이력서에 성악과를 나왔다고 적었는데 틀림 없나?"라고 신통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아서 붙을 자신이 싹 사라졌지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어 최종면접 시험에 임하게 되었다.
면접에선 수험 동기를 물어보기에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어서입니다."라고 답했더니 "무슨 말을 하는 겐가?"라며 웃었다.
이력서의 아버지 성함 칸에 "불명"이라고 적어놨지만 아빠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쿠로야나기 양, 바이올리니스트인 쿠로야나기 씨와 관계 있나?"
"그게..."
역시 거짓말을 할 순 없다.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께 말씀은 드렸나?"
"아버지께 말씀 드리면 그런 꼴사나운 일은 하지 말라고 하셨을 게 뻔했기에 비밀로 하고 응시했습니다. 아, 꼴사납다는 건 아버지께서 그렇게 생각하실 거란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께서 반대하시나?"
"이런 세계에는 남을 속이는 사람들이 많으니 하지 말렴, 분명 이런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합니다."
토토가 필사적으로 답할 때마다 시험관들은 웃다가 죽을 판이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이래서야 붙을 리가 없다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면접시험 다음날 토토가 없는 사이에 NHK의 높으신 분이 집까지 찾아와선 엄마에게 토토가 내정을 받았음을 전하면서
"모리츠나 씨께서 허락해 주실지요."라고 물어보셨다는데 엄마께서 안심시켰다고 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고 이 날을 평생 기억하자고 결심했다.
엄마께서 아빠를 잘 설득해주셨는지 아빠께서 토토에게 "열심히 해보렴."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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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극단에 취직한 선배로부터 오페라 연출가 아오야마 요시오 선생님이 <나비부인> 공연 조수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일의 조수가 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오페라 제작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기에 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오야마 선생님이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빠를 높이 사고 있었기에 이야기가 순조롭게 흘러갔다.
이 참에 오페라 연출가가 되는 건 어떨까? 토토는 오페라를 좋아하고 나이에 비해 많은 작품을 접해왔다. 자신의 재능을 일 쪽으로 살릴 수 있는 건 극소수 재능이 넘쳐나는 사람들만 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토는 아직 자신의 재능이 어떤 부분에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무엇이든 도전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오야마 선생님께서 "이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어보시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저것 좀 가져오게."라고 말하시면 재빨리 가지러 가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비부인>이 무사히 상연될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던 건데 아오야마 선생님이 생각하셨던 <나비부인>의 절정 부분 연출을 뉴욕 오페라 컴퍼니가 꽤 오랫동안 쓰면서 관객들을 눈물바다에 빠뜨렸다고 한다.
토토가 보아온 선생님의 일 솜씨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였다. 가수의 움직임은 이렇게, 의상은 이렇게, 음악은 이렇게, 미술은 이렇게. 연출가가 작품에 정통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오야마 선생님의 정통함은 장난이 아니었다. 토토로선 발끝에도 못 미칠 것 같다는 생각에 쫄게 되었다.
미로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토토의 재능은 대체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고민으로 둘러싸인 음악학교 시절에 토토를 위로해 주었던 것은 점심 시간에, 수업 후에, 때로는 수업을 땡땡이 치고서 먹는 라면 한 그릇이었다. 토토가 라면 맛에 눈을 뜨게 된 것은 토우요우음악학교에 다니게 된 뒤부터인데 마음에 들어하는 라면집도 학교 근처에 있었다.
가게 이름은 "타카라켄". 흔히 보는 동네 중국요리집으로 라면 한 그릇에 삼십오 엔이었다. 수타면을 잘 만드는 곳으로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맛있었다! 딸랑딸랑하고 문을 열자마자 국물이 자아내는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카운터 쪽에 앉으면 사장님이 일심불란하게 면 제작에 열중하는 과정을 볼 수도 있었다.
벽에 뚫어놓은 구멍에서 굵은 대나무 막대가 퓨웅하고 튀어나와 있어서 그 아래에 면을 늘이기 위한 제작대가 있었고 거기에 원반처럼 생긴 면반죽이 놓여져 있었다. 사장님이 대나무 막대에 한발을 올리면 원반에 압력이 가해지도록 만든 것이다. 발꿈치를 이용해서 데굴데굴 대나무 막대를 굴리면서 사장님이 능숙하게 반죽을 늘려냈다.
통통통통.
맑은 소리를 내는 타악기처럼 대나무 막대가 내는 리드미컬한 음이 울려퍼졌다. 면이 "안 돼요, 이 이상은 못 늘어나요!"라고 비명을 지르기라도 할 정도로 얇고 넓게 퍼지게 한 다음 반죽을 접어서 가장자리부터 쓱쓱 잘라냈다.
면을 치는 작업은 사장님의 기술을 보는 것도 맛있게 느껴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라면의 맛이 너무나 좋았다. 토토는 매일처럼 학교가 끝나고 나서 이 곳에 들렀다.
점심시간엔 친구들과 함께 키시모신 벤치에 앉아서 구운 감자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키시모신은 순산을 돕는 신이어서 배가 부풀어 오른 여자들이 매일처럼 몰려와 참배를 하곤 했다. 친정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온 젊은 부인도 있었고 아이를 몇 명이고 데려와선 "또 왔어요!" 분위기를 풍기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추워보이는 표정을 하고 달려와선 절을 하고 바로 달려가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배가 부풀어 오른 개가 신사 경내를 오가는 걸 보고 토토와 친구들이 폭소를 한 적도 있었다.
아빠의 복귀
그 날이 오기까지 출정 이후 오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게 되었다. 1949년 가을에 "십이 월 말에는 일본에 돌아갈 수 있다"는 엽서를 아빠가 보내왔을 때 가족 모두가 말 그대로 춤추며 기뻐했다. 할머니께서 우편 배달부 아저씨를 불러세워서 경사가 났다며 사례금을 주었을 정도였다.
시베리아 포로 수용소에서 귀환하는 사람을 태운 귀환선이 일본해와 접해 있는 쿄토 마이즈루항에 입항한 뒤 거기에서 기차를 타고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이즈루에 가족들을 위한 연락소가 설치되어 거기에 편지를 부치면 아빠가 받아볼 수 있다는 걸 알고서 토토는 편지를 써서 마이즈루에 보냈다.
"아빠 어서 오세요. 오랫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가족들이 신이 나서 아빠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아빠 집은 오오이마치선이 지나는 키타센조쿠에, 전과 같은 장소에 세워놓았어요. 빨간 지븡과 하얀 벽으로 이루어진 작은 집이에요. 얼른 돌아오세요."
십이 월이 끝나갈 무렵 아침에 근처 약국 아주머니께서 우리 집으로 달려와 "오늘 아침 여섯 시 뉴스에서 남편 분이 귀국했다고 말하더군요."라고 하셨다.
시베리아에 억류되어 있던 아빠가 드디어 일본으로 돌아온다.
노리아키는 아홉 살, 아빠가 출정했던 해 봄에 태어난 여동생 마리는 아빠에 대한 기억도 없는 채 다섯 살이 되었다. 그야말로 긴 시간이 지났지만 시베리아 포로 귀국사업이 1947년에서 1956년까지 이루어졌으니 비교적 빠르게 귀국한 편일 것이다.
가족이 모두 시나가와역까지 마중을 나가자 오랜만에 본 아빠가 바이올린 케이스를 소중히 안고서 열차에서 내리셨다.
"토토스케! 많이 컸구나!"
아빠는 오 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으셨다. 그리움과 기쁨으로 토토의 가슴이 뜨거워져 가득 차올랐다.
그날 밤에 정말 오랜만에 아빠를 포함해 온가족이 단란하게 식사를 했다. 메뉴는 물론 소고기 스테이크였다. 출정하기 전까지 아빠는 부엌에 서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식사가 끝나자 가정부 분이 아빠의 그릇을 치우려 하자 아빠가 바로 일어나
"괜찮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모두들 당황했고 엄마도 "어머머?"라고 하는 듯 눈을 둥글게 뜨시고서 아빠를 바라보셨다. 수용소에서의 습관 때문일까? 가정부 분이 곤란해 했지만 엄마께서 "하게 내비둬요. 어차피 이삼 일도 못 갈테니."라고 말하셨다. 이 말대로 일 주일도 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온 아빠는 가사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귀국한 뒤 얼마간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연이어 찾아와 집이 무척 붐볐다. 아빠는 토쿄교향악단의 콘서트마스터가 되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이전처럼 움직이게 되었다. 하지만 군대나 시베리아에 억류되었을 당시 이야기만 꺼내면 아빠의 입이 무거워지셨다.
"아빠는 시베리아에서 어떤 일을 했어요?"
토토가 이런 질문을 하면
"시베리아는 추웠어. 영하 이십 도 정도까지 내려가는 곳에서 이 수용소 저 수용소로 지붕도 없는 트럭을 타고 가선 바이올린을 켰지."
이 정도 밖에 답하지 않으셨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체험을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아빠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추려보면 아빠가 시베리아에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것 같다.
아빠가 소속되었던 부대는 소련군에 무장해제를 당해 전원 시베리아 수용소에 보내졌다. 처음엔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했는데 노동환경이 너무나 가혹했고 일 주일에 한 번 나오는 좋은 음식이라는 것도 고량을 섞은 밥이 조금에 소금을 친 오이와 청어절임 정도였고 생선을 싫어하시는 아빠는 이마저도 드실 수 없었다 한다.
아빠가 끌려가셨던 탄광에서는 러시아 민간인도 함께 일을 했는데 그 중 어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시게 되었다.
"가족은 있어요?"라고 물어보기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가족 사진을 보여주자 할머니가 "이런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이 있으니 여기서 도망치려다 총 맞거나 하면 안 돼요. 꼭 살아서 돌아가요."라는 말을 몸짓을 섞어가며 전했다고 한다. 아빠는 그 할머니의 말에 상당한 기운을 얻었다고 하셨다.
어느 날 소련군 고관이 불러선 이런 말을 했다.
"듣자하니 자네는 일본에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라더군. 이제부턴 일본인 수용소에서 위문공연을 해주게."
시베리아에서 억류되어 언제 조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며 고향을 그리워하던 포로들이 일본 노래를 듣고 싶다 희망했다고 한다. 아빠는 바이올린을 받아 음악을 좋아하는 전우들을 모아 위문음악단을 만들어 여러 일본인 수용소를 돌며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황성의 달>이나 <유머레스크> 등을 연주하며 성대한 갈채를 받았다. <토쿄행진곡>이나 <언덕을 넘어> 같은 아빠가 알지 못하는 곡을 요청받았을 때엔 잘 아는 사람이 반복해서 부른 것을 참고해 악보를 만들기도 했다. 지붕이 없는 트럭 짐칸에 타고서 영하 이십 도까지 내려가는 설원을 몇 시간이고 이동하는 가혹하기 짝이 없었겠지만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활동을 하실 수 있었다니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군가를 연주해 달란 요청을 거절해 왔던 아빠가 시베리아에서 이를 악물고 강제노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요청곡이라면 군가든 뭐든 열심히 연주하셨다. 귀환 후 토쿄의 거리를 거닐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며 "시베리아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습니다."라며 감사말을 전해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셨다고 한다.
소련군 장교가 "모스크바로 가서 음악학교 선생님으로 남아주지 않겠나?"라는 권유를 해왔을 때 마음이 조금 동하기도 하셨다는데 "일본 여성들은 모두 미군의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빠는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모스크바행을 거절하셨다.
포로가 된 사람들이 추위와 영양실조로 줄줄이 죽어갔다는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아빠가 일본에 돌아오셔서 정말 기뻤다. 만약 아빠가 시베리아땅에서 돌아가셨다면 토토는 아빠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누군가를 증오하며 남은 생을 보내야 했을지도 몰랐을 테니.
시베리아에서 귀국한 아빠가 입고 있던 코트의 가슴 주머니엔 그 날 찹쌀떡과 함께 전해드렸던 가족사진이 소중히 간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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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맴
토우요우음악학교는 야마노테선 메지로역에서 도보로 십오 분 정도로 소우지가야의 키시모신이 보는 앞에 있었다. 입학한 후에도 토토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오페라를 보려 했고 그러면서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어"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 곡이 좋아!"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 같은 구체적인 목표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중 하나가 모차르트의 걸작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불리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였다.
"하아아아 앗하하하하하하하 하~"
이 부분의 가창법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 불리며 데굴데굴 굴러가는 듯한 노래법을 쓰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소프라노곡 중에도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가곡이었다.
토토는 혼자 있을 때 불러보기도 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높은 음을 내보니 소리를 굴릴 수 있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숙달하고 싶어."
토토는 결의를 굳혔다.
참고로 <테츠코의 방> 오프닝으로 쓰이는 곡은 원래 가사가 있는 곡으로 "콜로라츄라"라는 단어가 쓰인다.(콜로라투라는 이탈리아 단어로 이를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콜로라츄라가 된다 - 역자 주)
높은 소리를 낼 때엔 눈이 모이지 않도록
웃을 때엔 되도록 콜로라츄라로
와사비 겨자 후추 등은 피하도록~
담배는 특히 절대~ 하지 말아요~
하지만 술은 절대~ 끊을 수 없네~
이 노래는 소프라노 가수 시마다 유우코 씨가 공연했던 <즉흥음악극>이란 콘서트의 테마송으로 "끊을 수 없네~" 뒤에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하~~"라고 콜로라투라 기법으로 부르는 부분이 있다.
작사는 야마카와 케이스케 씨, 작곡은 이즈미 타쿠 씨가 담당했다. <테츠코의 방> 스태프가 방송 오프닝 곡을 이즈미 타쿠 씨에게 부탁했을 때 이 테마송이 삼십 초 정도라 시간상으로도 딱 좋았기에 이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분도 꼭 이 가사를 <테츠코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맞춰 불러주셨으면 한다.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가르쳐 주신 타카야나기 후타바 선생님은 후지와라 가극단에도 소속되어 소프라노 가수로서도 맹활약을 하셨지만 토토가 동경하고 있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부르시진 않으셔서 학교 외에서 가르쳐주실 분을 찾기로 했다. 엄마와 상담하는 길도 있었지만 이제 아이가 아니니 직접 어떻게든 해보자 생각했다.
소프라노 가수라 하면 오오타니 키요코 선생님의 이름이 바로 떠올라 전화번호를 찾아 걸어보니 맥이 풀릴 정도로 곧바로 "좋습니다."란 답변을 얻어내 주소를 여쭤서 자택 겸 레슨 장소를 찾아뵙게 되었다. 토우요우음악학교에서 꽤 가까운 곳이었다.
거실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토토가 레슨을 청하자 선생님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에 아이라인까지 진하게 그린 메이크업과 붉은 립스틱, 천이 엄청 들어간 드레스 같은 복장을 하고서 맞아주셨다. 토토에게 노래를 가르쳐주실 때에도 우아한 분위기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생님을 보면서 오페라 속 세계와 현실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선생님의 매력인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오타니 선생님은 당시에도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에 딱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비올레타가 부르는 아리아인 <이상해...아,그이인가..>도 소프라노지만 토토가 매료된 가느다른 음표를 잇는 듯 데굴데굴 굴러가는 콜로라투라와는 전혀 달랐다. 유감스럽게도 오오타니 선생님 또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부르시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토토가 동경했던 콜로라투라가 나오는 오페라는 사실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없었고 그 중 한 곡인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쓰인 <마술피리>가 당시 일본에서 상연되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토토가 콜로라투라를 가르쳐주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학교에서는 이탈리아어와 독일어 수업도 있었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부를 때에 독일어 발음이 무척 중요한 것처럼 어학은 오페라를 부르는 데에 있어서 필수요소였다.
학교 쪽도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 게 어학 수업은 한꺼번에 모여서 들을 수 있었지만 음악 수업을 하려면 성별로 나누고, 거기에서 또 음의 높이에 따라 나누고, 악기도 거기에 따라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끝이 없었을 것이다. 이에 맞춰 선생님을 모으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고. "콜로라투라가 아니면 싫어!"라며 투정을 부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토토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선생님이 골라주신 곡과 자신이 부르고 싶은 곡의 차이에 반발하며 꿈과 현실의 간극을 벌리고만 있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툭하면 교실에서 빠져나와 이케부쿠로까지 영화를 보러갔다. 게다가 교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기까지 하면서.
땡땡이를 치거나 때론 성실하게 수업을 듣거나, 오오타니 선생님의 레슨을 받거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이어나가며 음악학교 생활을 보내는 동안 토토의 마음 속에 방황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었다. 토토보다도 훨씬 노래를 잘하는 선배들조차 오페라 가수로서 활약하지 못한 채 결혼을 하거나 선생님이 되거나 음악 관련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보며 세상이 얼마나 험한 것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첼로 전공 남학생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만 첼로를 빌려주지 않을래?"
라고 토토가 부탁하자 선뜻이 "그래"라고 했다.
하굣길에 갑자기 거대한 짐을 지게 된 토토는 처음엔 왠지 멋지다란 생각을 했지만 들고보니 너무나 무거워 놀라게 되었다. 토토가 하교하는 시간엔 야마노테선이 항상 붐볐기에 이런 걸 안고서 만원전차를 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실패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갈 수도 없다는 생각에 간신히 메구로역에 도달해 메카마선을 탔다. 전차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첼로에 부딪혔는데 깡마른 여자아이가 커다란 첼로를 안고 가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을지.
집에 도착했을 때엔 땀에 푹 절어 이런 걸 왜 빌렸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모처럼 가져왔으니 일단 켜보기라도 하자 생각했다.
마침 적당히 높은 의자가 있었기에 거기에 앉아 포즈를 취해 보니 그런대로 폼이 나는 것 같았다.
왼손으로 현을 눌러보았다.
딱딱해!
첼로의 현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굵고 딱딱했다. 겨우 몇 초 눌러봤을 뿐인데 손가락 끝이 저려왔고 현 자국이 손가락에 뚜렷히 나있었다.
이거 안 되겠네.
켜본 지 삼 분도 안 되어서 토토의 첼로리스트 꿈은 무너졌다.
다음날 남학생에게 첼로를 돌려주었다.
"어땠어?"
"곧바로 켤 수 있을 거란 저의 생각이 얕았사옵니다."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왕자 타미노와 새잡이 파파게노는 마법이 깃든 피리와 방울을 써서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퇴치했지만 악기를 잘 다룬다는 것이야말로 마법을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에게서 악기 쪽 재능을 전혀 물려받지 못한 토토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애초에 다섯 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도 <고양이 춤> 정도 밖에 치지 못할 정도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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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가오카 영화관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일본에서 오락거리라고 하면 영화였지만 피난 중이었던 토토로선 여자 좌장님이 선보인 연극 정도는 볼 수 있었어도 영화관에는 한번도 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토쿄에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감이 무척 부풀어 올랐다.
근처 영화관을 꼽자면 그 어디보다도 지유가오카에 있는 난푸우자(南風座)가 제일이었다. 역과 토모에학원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어 역에서 도보로 일 분이면 갈 수 있는 곳으로 코우란 친구 중에도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서 함께 보러 가기도 했고 혼자 보기도 하면서 방과후 시간을 쏟아부었다.
난푸우자는 창업자가 세계대전 당시 군대 일에 종사해서 세계대전이 끝나자 필요 없어진 비행기 격납고를 받아 여기에 영화관을 차렸다고 한다. 카마보코(가로로 잘린 타원 형태 어묵 - 역자 주) 모양을 하고 있어서 "카마보코 영화관"이라고도 불렸다. 토모에학원도 필요 없어진 전차 차량을 교실로 썼는데 옛날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재활용을 곧잘 했었다. 입구에는 종려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영화관 이름에 어울리는 남국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왜 난푸우자를 좋아했는가 하면 제대로 된 신작 외국영화가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굣길 도중에 어딘가 들르거나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지만 토토와 친구는 신작을 하루라도 더 빨리 보고 싶었기에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난푸우자에 들어가려 필사적이었다.
코우란 선생님들 중에도 난푸우자 팬이 많다는 걸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 날 난푸우자에선 인기 시리즈 최신작 상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지라 엄청나게 붐볐고 토토와 친구는 어떻게든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매표원이 "자리가 더는 없어요."라고 했지만 가장 뒤에서 서서 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보기로 했다.
컴컴한 공간 안에서 둘이서 나란히 서서 보고 있으려니 뒤늦게 입장한 여자가 토토의 어깨에 부딪혔다.
"어머, 죄송해요."
낯익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의 모습을 스크린의 어두운 빛이 비추었다.
"앗!"
토토가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곳짱 선생님이었다.
"쉿!"
곳짱 선생님이 검지를 입에 대면서 토토와 친구의 어깨를 두드린 뒤 아무 말도 않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도 못 본 척할 테니깐 여러분도 못 본 척해줘요. 어쨌든 영화나 재밌게 보자고요."
곳짱 선생님의 손바닥에서 그런 싸인이 느껴졌다.
이 때 상영된 영화는 밥 호프와 빙 크로즈비란 2대 스타가 같이 출연한 "~로 가는 길 시리즈" 중 하나였다. <싱가포르로 가는 길>이었는지 <알래스카로 가는 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키다리와 난쟁이 콤비가 전세계의 여러 나라로 가는 길에 벌어지는 일을 담은 뮤지컬 코미디였다.
토토는 밥 호프의 말투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상영 후에 곧바로 흉내를 내보기 시작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연습 성과를 피로하니 영화를 보지 않은 친구들도 웃었을 정도였다. 곳짱 선생님도 보신다면 더욱 웃어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곳짱 선생님의 손바닥을 떠올리며 참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더욱 영화를 좋아하게 된 토토는 에비스 쪽 영화관에도 가게 되었다. 여기에선 유럽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아침 여덞 시부터 밤 아홉 시 까지 여덞 편 연속으로 프랑스 영화를 상영해서 이걸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엄마에겐 "내일 학교 행사를 준비해야 해서 평소보다 늦을 거예요."라고 거짓말을 하고서.
그러던 어느 날 토토는 그 후 인생을 좌우할 운명 같은 영화를 만났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작 중 하나인 <토스카>를 영화로 보게 된 것이다!
푸치니가 작곡한 <토스카>는 정열적인 가희 토스카와 화가 카바라도시의 비극적인 사랑이 그려진 작품으로 토스카가 카바라도시를 만나게 되는 교회 장면에서부터 산탄젤로성에서 몸을 내던지는 마지막 장면까지 토토는 토스카의 음성과 의상에 푹 빠져버렸다.
가희 토스카는 커다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면서 우아하게 등장해 높고 맑은 소프라노로 "아아아~"라고 화려한 노래를 불렀다. 드레스엔 호화로운 레이스와 리본으로 장식하고 커다랗게 파인 가슴엔 흔들릴 때마다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었으며 머리에는 롤 형태로 만든 머리카락이 수십 가닥은 있어서 하나하나 꽃으로 장식해 놓았다.
우와 멋지다!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을 것도 거의 없었던 토토로선 꿈만 같은 장면이었다.
이 꿈이 토토의 모든 감각을 휘저었다.
이 사람처럼 되자! 토토가 결심했다.
오페라 가수가 될래
어릴 적 토토는 스파이와 호객꾼과 역에서 표를 파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에 발레 <백조의 호수>를 봤을 때엔 자신도 언젠가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토모에학원 코바야시 선생님 앞에서 "어른이 되면 이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좋아했던 토모에학원은 공습으로 불타버렸다. 학생이 된 토토는 옛날처럼 "ㅇㅇ이 되고 싶어"란 이미지를 명확히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께서 "네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배웠으면 좋겠구나."라고 하셨기에 토토는 그 "하고 싶은 것"이 보일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고 <토스카>는 그것이 보이게 된 촉매가 되어주었다.
토토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눌러담은 듯한 오페라 가수라는 직업이 토토의 눈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토토는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쓰지 않고 "오페라 가수가 될래"라고 멋대로 결정했다.
"신께선 어떤 사람에게든 뛰어난 재능 한 가지를 꼭 부여해 주신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 재능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서 그걸로 생을 마친다. 아인슈타인이나 피카소 같은 사람들은 재능과 직업을 잘 맞춰낸 사람들이다."
토토가 <토스카>를 보았을 무렵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앞으로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재능을 찾아내 직업과 연결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페라 가수가 되겠다 결정했어도 어떤 걸 어떻게 배워야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코우란 친구들과 상담해 보자 "그럼 역시 음악학교 같은 곳을 가야 되지 않을까?"란 말을 들었다. 토토의 엄마가 음악학교에 다니다가 아빠와 만나 결혼을 했으니 우선 엄마께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은데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분위기로 답이 돌아왔다.
"그러니? 그거 좋네."
쇠뿔도 단 김에 빼라. 토토는 그 무렵 코우란여학교 4학년이었다. 당시 학제가 바뀌어 가고 있어서 6-3-3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었다. 예전 제도상으론 중학교는 5년제였지만 4학년 때에 졸업을 하고선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토토도 4학년에 졸업하고서 음악학교로 진학했으면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음악학교에 들어가 하루라도 빨리 능숙해지면 더 빨리 배역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척이나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이리 생각하게 된 건 세계대전 당시 배급제도에도 원인이 있었다 본다. 그 길다란 줄! 당시 토토로선 줄 앞쪽에 서야만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빠른 자가 이긴다는 발상에 젖어있었다.
토쿄를 방방곡곡 찾아다니며 몇 곳이나 되는 음악학교의 접수창구에 "입학하고 싶습니다만."이라고 말해보았는데 학교 중엔 "얼마나 기부하실 수 있으신가요?"라고 대놓고 물어보는 곳도 있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있었기에 학교 건물을 다시 짓기도 하고 변경된 학제에 대응하기 위해 커리큘럼을 보충하기도 하는 등 당장 필요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 돈 이야기를 꺼내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좀 생각해 보니 기부액이 합격을 결정하게 될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했다 한들 아쉽게도 이런 답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겐 비밀로 하고 시험을 보러와서 기부 같은 건 무리입니다."
"아버지에겐 비밀로 했다"는 사실이다. 아빠는 여자가 일을 하는 것, 하물며 가수가 된다니 그런 업계에서 고생을 하는 꼴을 볼 수 없다 생각하는 분이라고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추리고 추려낸 후보 몇 곳 중 엄마도 다니셨던 토우요우음악학교에서 기부금 같은 걸 내지 않아도 그냥 입학시험을 볼 수 있었고 무사히 합격해 토토는 토우요우음악학교 학생이 되었다.
입학하자마자 충격적인 일이 있었는데 토토가 보았던 <토스카>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본인이 부른 것이 아니라 다른 소프라노 가수가 불러준 것으로 토스카 역 배우는 거기에 맞춰 입만 뻥긋했을 뿐이란 걸 알게 되었다. 동급생 남자애가 쓰잘데기 없이 말하길
"그 있잖아? 소프라노는 추녀고 테너는 근육 밖에 모르는 멍청이라는 말. 그거랑 같은 거야."
토토도 소프라노 지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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