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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잡담 2024. 7. 21. 00:33

내가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만들면서 댓글을 다는 조건을 완전개방으로 한 건 내 글을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의견을 남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자유롭게 무미건조한 자기 블로그 유도용 댓글들이 설치는 환경. <속 창가의 토토>를 번역하는 시간을 글 하나당 한 시간으로 잡고 있다. 여기에 글을 나눌 수 있는 부분까지 나아갈 때까지 번역을 계속하고 있으니깐 지금까지 한 번역만 해도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 된다. 그런데 여기에 계속 무미건조한 자기 블로그 유도용 댓글이 달리는 꼴을 보고 참기 힘들어서 지웠더니 그 사람이 연속으로 댓글을 다는 게 보였다. 알고 보니 블로그 설정에 댓글을 다는 사람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이걸 쓰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는 플레이를 하는 사람을 완전히 잠재우기 위해. 아니 사람이긴 할까?

이런 상황에 놓이고 보니 또다시 더더욱 힘들어진다. 인터넷 상에서 뭐를 해도 벽을 향한 외침. 누군가와 대화를 하지 못하고 그저 벽에 낙서를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실. 인터넷 바깥도 마찬가지. 난 글을 써서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애시당초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글을.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그대로 베끼는 것 외엔 하지도 못하니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걸 계속 반복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과는 전혀 관계 없는 댓글들이 날 공격하는 것에 힘들어 하는 악순환. 정말 뭘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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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책 2024. 7. 21. 00:03

어느 겨울 일요일에 토토는 어릴 적부터 다녔던 센조쿠교회의 일요학교에 나갔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서 무척 추운 아침에 언제나처럼 "춥고 졸리고 배가 고파."라고 중얼거리며 걸어다녔는데 이 말을 중얼거리며 나아가다보면 소풍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바람이 휘잉휘잉 소리를 내며 불어서 토토는 눈물이 조금 베어나왔는지도 모를 무척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 애야!"

갑자기 경찰 아저씨가 불러세웠다.

"너 왜 울고 있는 거니?"

토토는 눈물을 닦으며

"추워서요."

라고 답했다. 그러자 경찰 아저씨가 외쳤다.

"전쟁터에 있는 군인 아저씨들 생각 좀 해보렴! 추운 것 가지고 울어서 어디에 써먹겠냐! 그딴 것 때문에 울지 마!"

갑작스러운 노성에 토토는 깜짝 놀랐지만 "그런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엔 울지도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혼나는 건 싫어. 우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는 게 전쟁이구나. 추워도, 졸려도, 배가 고파도 울지 말자. 군인 아저씨들은 더욱더욱 힘들 테니깐."

그게 토토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마른 오징어 맛이 나는 전쟁책임

 

마을 여기저기에서 긴 줄이 생겨났다. 가게에 물건이 들어왔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몰려드는 것이다. 뭘 팔고 있는지와 관계 없이 일단 줄을 서고 보자는 생각이 앞서 모두들 행렬에 동참한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기뻐했는데 장례식에 피울 향초를 팔더라고."

언젠가 엄마가 그런 라쿠고 같은 이야기를 하셔서 그걸 들은 토토도 "아하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그 때엔 가게에 아직은 상품이 조금씩 남아있었기에 엄마들도 실패담으로 웃을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기 지유가오카역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토모에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차에 타려고 역 쪽으로 가고 있으려니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 아저씨들이 가족이나 이웃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정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하, 저 사람은 전쟁터로 가는구나."

이 때엔 아직 토토네 아빠도 아는 사람들도 군대에 끌려가지는 않고 있었기에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모두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깃발을 흔들렴."

처음 보는 광경에 우두커니 있던 토토의 눈 앞에 일장기가 그려진 작은 깃발과 잘 구워진 마른 오징어 다리가 하나 내밀어졌다. 올려다 보니 모르는 아저씨가 토토를 향해 웃고 있었다.

"뭘까? 깃발을 흔들면 오징어를 먹을 수 있는 건가?"

물론 이 때도 배가 고파서 힘들었으니 토토는 별 생각 없이 오징어와 일장기를 손에 쥐었다.

엄마가 늘 "모르는 사람에게서 뭘 받거나 하면 안 돼요."라고 하셨지만 배가 너무나 고팠기 때문에 오징어의 유혹을 견딜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른도 아이도 군인 아저씨들을 향해 "만세!"를 외치며 깃발을 흔들었다.

"그렇구나. 깃발을 흔드는 값으로 오징어를 받은 거네."

토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만세!"라고 외치며 열심히 깃발을 흔들었다.

드디어 환송식이 일단락 되면서 군인 아저씨들이 역 안으로 사라져갔다. 깃발을 흔들던 사람들도 모두들 역 앞을 떠났다.

토토는 주변 사람들이 다 갔나 살핀 뒤 오징어 다리를 입에 쑤셔 넣었다.

이 일이 있은 뒤 토토는 군인 아저씨들의 출정식을 기다리게 되었다. 토모에학원은 지유가오카역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수업 중에도 역에서 군인 아저씨들을 보내는 "만세!"가 들리면 토토는 살며시 교실을 빠져나가 역을 향해 달려갔다. 토모에학원의 자유로운 교풍 덕에 함부로 교실을 나가거나 해도 혼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토토는 출정하는 군인 아저씨들을 볼 때마다 열심히 일장기를 흔들었다. 그 때마다 마른 오징어 다리를 받아 아무런 생각도 않고 그걸 씹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아무리 깃발을 흔들어도 마른 오징어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식량부족이란 파도가 출정하는 병사들을 환송하는 자리까지 휩쓴 것이다. 교실을 빠져나가 깃발을 흔들러 가도 마른 오징어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토토는 너무나 실망스러워 출정식에 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깃발을 흔드는 대신 받은 오징어 맛은 토토의 기억 속에 계속해서 자리잡게 되었다.

 

토토네 아빠는 1944년 가을이 끝날 무렵 호쿠시(현재의 중국 화북지방)로 출정하게 되었다. 패전 후엔 쭉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어 있었다가 1949년 말에야 토토네가 살고 있는 키타센조쿠 집으로 돌아오실수 있었다. 미국 이야기를 해주시던 타구치 숙부님을 비롯해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향해야 했다.

세계대전이 끝나자 돌아온 군인 아저씨들도 돌아오지 못한 군인 아저씨들도 있었다. 전쟁 중엔 알지 못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보니 오징어를 받으며 만세를 불렀던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란 걸 그제서야 알았다.

토토는 생각했다.

지유가오카역 앞에서 토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환송하는 가운데 전쟁터로 향한 군인 아저씨들 중 대체 몇 명이나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토토는 그저 오징어 다리가 먹고 싶었기에 일장기가 그려진 작은 깃발을 흔들며 군인 아저씨들을 환송했다. 하지만 군인 아저씨들이 깃발을 흔드는 토토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환송해주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싸우자."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전쟁터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렇다면, 그랬던 군인 아저씨가 전사했다면 그 책임의 일부는 토토에게도 주어지는 것이고 오징어를 먹고 싶어서 "만세!"를 부른 토토는 군인 아저씨들의 마음을 배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른이 되어서야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그 일장기를 흔든 것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터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만세!"를 외치며 환송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오징어를 먹고 싶었다고는 해도 토토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 그리고 무책임했던 것이 토토가 짊어져야 할 "전쟁책임"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집 영장 이 왔다"

 

1944년 봄,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지 이 년 반이 지났을 무렵에 토토네엔 기쁜 일과 슬픈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4월에 여동생 마리 짱이 태어나 사 자제가 된 것이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5월에 첫째 남동생인 메이지 짱이 패혈증으로 죽어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기차게 학교에 다니던 메이 짱. 공부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잘 켜서 토토와 메이 짱은 언제나 함께 놀았는데... 페니실린 한 방만 놓을 수 있어도 살 수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토토는 메이 짱이 죽었을 당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메이 짱에 대한 것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항상 어깨동무하고 같이 학교에 가고 그랬었잖니."하고 엄마가 말할 정도로 사이 좋은 자제였을 텐데 어째서인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사진을 봐도 "아하, 이런 아이였나?"란 생각이 들 정도다. 분명 메이 짱이 죽었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토토가 메이 짱과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토토의 기억 속엔 메이 짱을 잃고 슬퍼했을 엄마 아빠의 모습조차 남아있지 않다.

메이 짱이 숨을 거두기 전에 "하느님, 전 하늘나라로 가지만 부디 저희 가족은 평화롭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선명한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고 나중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 해 여름에 엄마는 피난을 결심하게 되었다. 우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어디로 갈 것인가. 토쿄 출생이신 아빠에게 시골집 같은 건 없었고 엄마의 고향인 홋카이도는 토쿄에서 너무나 멀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를 혼자 토쿄에 남겨두고 아직 어렸던 세 아이를 이끌고 피난처를 찾는 여행을 떠났다.

첫 후보지는 센다이는데 엄마의 아빠, 토토의 할아버지가 센다이에 있는 현재의 토우호쿠대 의학부를 졸업해 의사가 되었기 때문에 나름 인연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센다이역에 내려 역앞을 방황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안 되겠어, 여기 절대 공습당할 분위기야."

엄마의 예언이 맞아 다음해 7월에 센다이는 B-29의 대공습을 당해 시가지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홋카이도의 대자연 속에서 자라난 엄마에게 위험을 감지하는 동물적 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센다이로 피난하는 것을 포기한 뒤 이번엔 후쿠시마로 향했다. 후쿠시마역에 내린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기 근처에 피난해 있을 만한 곳이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니 "이이자카 온천 근처 어떻십니꺼?"라고 답했기에 흔들거리는 버스를 타고 이이자카 온천으로 갔다.

이이자카 온천에는 온천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토토가 다리를 치료하러 다닌 유가와라 온천은 마을 곳곳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어른도 아이도 뜨끈뜨끈 상기된 얼굴로 다니는 무척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와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에 놀랐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엔 전황이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던 때니 한가하게 온천에 몸을 담그러 올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여관을 몇 곳이고 돌아다녔는데 피난 때문에 오게 되었다는 말에 어느 여관의 아저씨가 "우리 여관에 방 하나 비었는데 거기 묵을라요?"라고 말해주셔서 엄마가 안심하며 "잘 되었구나."라며 토토의 손을 잡았지만 토토의 눈은 다른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친절한 아저씨가 입고 있는 바지도 팬티도 아닌 것 같은 색이 옅은 팥으로 칠한 듯한 축 늘어져 있는 건 대체 뭐지? 토토 나이대에 입는 불루머가 길어진 것 같아. 그 아저씨는 저녁 더위를 피하는 중이었던 듯 부채를 퍼덕퍼덕 부치면서 서 있었는데 그 길다란 블루머를 입고 있는 모습은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두 발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토토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말았다.

"엄마, 저 아저씨가 입고 있는 건 뭐예요?"

"저건 사루마타(サルマタ)라고 하는 거야."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었지만 토토는 "그렇구나! 아저씨 다리가 원숭이(サル) 같아!"라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른치곤 좀 보기 흉하게 입은 모양새긴 했지만 토토는 "사루마타"라는 단어의 울림이 마음에 들었고 이 온천으로 피난 오면 토쿄와는 다른 재밌는 사람들이나 예쁜 자연, 처음 보는 동물들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저씨가 권해준 여관방은 무척 넓고 훌륭했다. 먹을 것도 토쿄에 비하면 훨씬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여기로 피난해야겠네."라고 말한 뒤 토쿄에 있는 아빠에게 전보를 보냈다.

아빠가 바로 답신을 보내왔는데 그 전보를 읽는 엄마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면서 토토네는 곧바로 짐을 싸 토쿄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엄마는 얼굴이 굳은 채로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아빠가 보내온 전보엔 "소집 영장 이 왔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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