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터 베닝턴이 자살했을 당시 나도 자살을 하려고 했었다. 이렇게 말하면 바보같은 팬이 베르테르 효과에 휘말린 것처럼 들리겠지만 체스터 베닝턴이 자살했던 것과 내가 자살을 하려 했던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삶의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자살을 하려고 여기저기 가봤으나 도저히 시도로 갈 용기를 내지 못해서 헤매기만 하고 있는 동안에 체스터 베닝턴이 자살을 했던 것이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 좀 지난 후에야 체스터 베닝턴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에 별 느낌을 못 느꼈던 것 같다. 분명 좋아하는 가수였는데도 나 자신의 상황 때문에 새로운 감정을 집어넣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러웠기 때문인지... 체스터 버닝턴이 죽었을 때에도 죽고 난 뒤 한참이 지나서도 많은 린킨 파크 팬들이 기억하고 슬퍼했던 반면 나야 뭐 죽었다고 해봤자 슬퍼할 사람도 없을 거고 신문 같은 곳에 실릴 일도 없었을 거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자살을 한다고 하는데 나 같은 누가 관심도 없을 찌끄레기가 없어졌다 한들 세상이 한 발짝도 움직일 리가 없겠지. 내가 항상 기억하는 만화의 장면 중 하나가 <루로우니 켄신>에서 카오루가 죽었던 걸로 모두들 속았을 당시에 나왔던 문구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죽었을 때 잘 알 수 있다고. 체스터 베닝턴이 죽고 나서도 한참 동안 우울증 치료 기금을 모은다느니 하며 추모공연을 하곤 했지만 나는 죽어봤자 다른 나라보다도 유독 높다는 한국 자살자 수에 한 명 더 들어가는 것 외에 뭐가 있었을까. 맨날 자살자 수가 심각하다라는 말만 꺼낼 뿐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그 뉴스들의 통계의 평균에는 365분의 1 밖에 안 되겠지. 아 그러고 보니 남자들의 자살이 여자들보다 훨씬 많다고 하니 더더욱 비중이 줄어들겠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이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이야기이다. 그 이후로 그 때와 무엇이 바뀌었는가 하면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그저 시간만 흘렀을 뿐 여전히 나는 찌끄레기에 불과하고 내가 없어진다 한들 곤란해 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 회사에서 죽으면 회사 쪽이 곤란하려나.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사람이 일하다 죽으면 회사의 책임이 될 테니. 누구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되뇌어봤자 그건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에 불과할 뿐 그런 노력을 한 적도 재능도 전혀 없으니 무용지물. 어차피 죽으면 한 줌. 그나마도 없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