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토토는 편지라는 것에 애착심을 가져왔다.
처음 받은 편지, 엽서는 토토가 유가와라 온천에서 치료를 하고 있을 무렵 함께 해주신 아버지 쪽 할머니로부터였다. 무척 아름다운 글자로 "네가 깜빡하고 놓고 간 납석은 내가 보관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찾으러 오렴."이라고 써져 있었다. 토토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납석은 쇼와 시절 아이들이 길에 그림을 그리며 노는 데에 썼던 것이지만 편지 수신인으로 자신의 이름이 써져 있는 걸 보니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세계대전 중에 <세계명작선>을 읽었다. 거기에 수록된 에리히 케스트너 작 <핑크트헨과 안톤>을 좋아했다는 걸 이 책 처음 부분에 써놓긴 했지만 함께 수록되어 있는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가 형에게 보낸 편지도 좋아하는 작품이었다.
(1886년 9월 1일 둘째 형 니콜라이에게 쓴 편지. 이건 문학작품이 아니라 편지인 것 같은데 일본에선 문학으로 소개된 것 같다. -역자 주 https://blog.naver.com/il0202/223334684045 )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도 마음 아파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쓰여져 있었다. 체호프가 생각하는 "상냥함"이 토토에게도 전해져서 상냥한 사람이 되기 위해 교양을 체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이를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케스트너의 팬인 토토는 열여덞 살 때에 케스트너 작품을 번역을 맡고 있던 독일문학자 타카하시 켄지 선생님께 마음을 굳게 먹고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무척 멋진 답장을 보내주셨고 그 이후로 펜팔을 하게 되었다. 타카하시 선생님께서 "서로 편지 말미에 '구호는 케스트너'라고 쓸까요?"라고 제안해 오셨을 때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치즘과 단호히 싸워왔던 케스트너의 작품은 소리내 웃을 정도로 재밌는 와중에도 어딘가 비꼬는 면이 있었다.
이러던 와중에 선생님이 힘을 써주신 덕에 무려 케스트너 본인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 케스트너가! 진심을 다해 편지를 쓰면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타카하시 선생님을 필두로 한 많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토토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말괄량이 삐삐)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씨의 편지도 가지고 있다. <창가의 토토> 영어판이 나왔을 때 어떻게 해서든 린드그렌 씨가 읽어주셨으면 해서 책과 함께 편지를 보냈더니 린드그렌 씨가 직접 답장을 보내주신 것이다. "눈이 나빠져 책을 읽을 수 없지만 딸아이가 읽어줄 때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토토는 꿈을 꾸는 것처럼 기뻐 오랫동안 공부용 책상 유리 밑에 끼워놓아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린드그렌 씨가 돌아가신 것을 신문으로 알게 되었을 때엔 슬펐지만 아흔네 살이셨으니 장수하셨구나! 삐삐의 재미는 린드그렌 씨의 힘에서 나왔던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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