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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1.14 :: 속 창가의 토토 26
문화/책 2025. 1. 14. 23:03

헤맴

 

토우요우음악학교는 야마노테선 메지로역에서 도보로 십오 분 정도로 소우지가야의 키시모신이 보는 앞에 있었다. 입학한 후에도 토토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오페라를 보려 했고 그러면서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어"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 곡이 좋아!"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 같은 구체적인 목표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중 하나가 모차르트의 걸작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불리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였다.

"하아아아 앗하하하하하하하 하~"

이 부분의 가창법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 불리며 데굴데굴 굴러가는 듯한 노래법을 쓰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소프라노곡 중에도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가곡이었다.

토토는 혼자 있을 때 불러보기도 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높은 음을 내보니 소리를 굴릴 수 있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숙달하고 싶어."

토토는 결의를 굳혔다.

참고로 <테츠코의 방> 오프닝으로 쓰이는 곡은 원래 가사가 있는 곡으로 "콜로라츄라"라는 단어가 쓰인다.(콜로라투라는 이탈리아 단어로 이를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콜로라츄라가 된다 - 역자 주)

 

높은 소리를 낼 때엔 눈이 모이지 않도록

웃을 때엔 되도록 콜로라츄라로

와사비 겨자 후추 등은 피하도록~

담배는 특히 절대~ 하지 말아요~

하지만 술은 절대~ 끊을 수 없네~

 

이 노래는 소프라노 가수 시마다 유우코 씨가 공연했던 <즉흥음악극>이란 콘서트의 테마송으로 "끊을 수 없네~" 뒤에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하~~"라고 콜로라투라 기법으로 부르는 부분이 있다.

작사는 야마카와 케이스케 씨, 작곡은 이즈미 타쿠 씨가 담당했다. <테츠코의 방> 스태프가 방송 오프닝 곡을 이즈미 타쿠 씨에게 부탁했을 때 이 테마송이 삼십 초 정도라 시간상으로도 딱 좋았기에 이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분도 꼭 이 가사를 <테츠코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맞춰 불러주셨으면 한다.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가르쳐 주신 타카야나기 후타바 선생님은 후지와라 가극단에도 소속되어 소프라노 가수로서도 맹활약을 하셨지만 토토가 동경하고 있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부르시진 않으셔서 학교 외에서 가르쳐주실 분을 찾기로 했다. 엄마와 상담하는 길도 있었지만 이제 아이가 아니니 직접 어떻게든 해보자 생각했다.

소프라노 가수라 하면 오오타니 키요코 선생님의 이름이 바로 떠올라 전화번호를 찾아 걸어보니 맥이 풀릴 정도로 곧바로 "좋습니다."란 답변을 얻어내 주소를 여쭤서 자택 겸 레슨 장소를 찾아뵙게 되었다. 토우요우음악학교에서 꽤 가까운 곳이었다.

거실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토토가 레슨을 청하자 선생님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에 아이라인까지 진하게 그린 메이크업과 붉은 립스틱, 천이 엄청 들어간 드레스 같은 복장을 하고서 맞아주셨다. 토토에게 노래를 가르쳐주실 때에도 우아한 분위기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생님을 보면서 오페라 속 세계와 현실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선생님의 매력인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오타니 선생님은 당시에도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에 딱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비올레타가 부르는 아리아인 <이상해...아,그이인가..>도 소프라노지만 토토가 매료된 가느다른 음표를 잇는 듯 데굴데굴 굴러가는 콜로라투라와는 전혀 달랐다. 유감스럽게도 오오타니 선생님 또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부르시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토토가 동경했던 콜로라투라가 나오는 오페라는 사실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없었고 그 중 한 곡인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쓰인 <마술피리>가 당시 일본에서 상연되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토토가 콜로라투라를 가르쳐주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학교에서는 이탈리아어와 독일어 수업도 있었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부를 때에 독일어 발음이 무척 중요한 것처럼 어학은 오페라를 부르는 데에 있어서 필수요소였다.

학교 쪽도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 게 어학 수업은 한꺼번에 모여서 들을 수 있었지만 음악 수업을 하려면 성별로 나누고, 거기에서 또 음의 높이에 따라 나누고, 악기도 거기에 따라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끝이 없었을 것이다. 이에 맞춰 선생님을 모으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고. "콜로라투라가 아니면 싫어!"라며 투정을 부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토토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선생님이 골라주신 곡과 자신이 부르고 싶은 곡의 차이에 반발하며 꿈과 현실의 간극을 벌리고만 있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툭하면 교실에서 빠져나와 이케부쿠로까지 영화를 보러갔다. 게다가 교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기까지 하면서.

땡땡이를 치거나 때론 성실하게 수업을 듣거나, 오오타니 선생님의 레슨을 받거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이어나가며 음악학교 생활을 보내는 동안 토토의 마음 속에 방황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었다. 토토보다도 훨씬 노래를 잘하는 선배들조차 오페라 가수로서 활약하지 못한 채 결혼을 하거나 선생님이 되거나 음악 관련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보며 세상이 얼마나 험한 것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첼로 전공 남학생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만 첼로를 빌려주지 않을래?"

라고 토토가 부탁하자 선뜻이 "그래"라고 했다.

하굣길에 갑자기 거대한 짐을 지게 된 토토는 처음엔 왠지 멋지다란 생각을 했지만 들고보니 너무나 무거워 놀라게 되었다. 토토가 하교하는 시간엔 야마노테선이 항상 붐볐기에 이런 걸 안고서 만원전차를 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실패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갈 수도 없다는 생각에 간신히 메구로역에 도달해 메카마선을 탔다. 전차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첼로에 부딪혔는데 깡마른 여자아이가 커다란 첼로를 안고 가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을지.

집에 도착했을 때엔 땀에 푹 절어 이런 걸 왜 빌렸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모처럼 가져왔으니 일단 켜보기라도 하자 생각했다.

마침 적당히 높은 의자가 있었기에 거기에 앉아 포즈를 취해 보니 그런대로 폼이 나는 것 같았다.

왼손으로 현을 눌러보았다.

딱딱해!

첼로의 현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굵고 딱딱했다. 겨우 몇 초 눌러봤을 뿐인데 손가락 끝이 저려왔고 현 자국이 손가락에 뚜렷히 나있었다.

이거 안 되겠네.

켜본 지 삼 분도 안 되어서 토토의 첼로리스트 꿈은 무너졌다.

다음날 남학생에게 첼로를 돌려주었다.

"어땠어?"

"곧바로 켤 수 있을 거란 저의 생각이 얕았사옵니다."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왕자 타미노와 새잡이 파파게노는 마법이 깃든 피리와 방울을 써서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퇴치했지만 악기를 잘 다룬다는 것이야말로 마법을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에게서 악기 쪽 재능을 전혀 물려받지 못한 토토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애초에 다섯 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도 <고양이 춤> 정도 밖에 치지 못할 정도니 말이다.

 

2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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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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