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2025. 1. 4. 00:04

토토는 현관에서 나막신을 벗고 건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머뭇거리며 문을 열고 보니 타타미가 깔린 넓은 방이 보였고 안쪽 문 너머로 또다른 방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방 주변에 판자가 깔려있어 더할 나위 없이 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게 이층 건물로 되어 있는 게 신기했다.

수업 전에 예배가 있다고 들었기에 판자 바닥 쪽에 놓여있는 피아노 옆에서 기다리고 있자 곧바로 학생들이 들어와선 안쪽 문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타미방이 두 배로 넓어졌고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하며 학생들이 속속히 들어왔다. 모두들 너덜너덜한 성가집을 들고 있었는데 찬송가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토토도 서둘러 가방에서 성가집을 꺼내 뒷편에 섰다.

점퍼스커트 형태 교복을 입기로 규정이 되어있긴 했어도 제대로 그런 교복을 입은 학생은 한 명도 없이 토토도 다른 학생들도 하얀 블라우스 같은 걸로 교복을 입은 모양새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백 명 정도 되는 학생이 타타미 위에 정렬하자 입구 근처 문을 열고서 "채플린"이라 불리는 학교소속 남자 목사가 들어와 조용히 예배를 시작했다. 채플린은 검고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가장자리가 하얀 만다린 칼라가 인상적이었다.

토토는 오랜만에 찬송가를 불렀다. 토토가 주일학교를 다녔던 센조쿠교회에선 오르간을 썼기에 피아노 반주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긴 했지만 피아노의 음색을 듣는 것만으로도 짠해졌다. 엄숙하면서도 들뜬 기분이 드는 걸 느끼며 음악은 좋구나 싶었다.

그런데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르던 토토의 귀에 익숙찮은 목소리와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아미타불, 칭~, 나무아미타불...

찬송가에 집중하고 있었던 토토 머릿속에서 두 멜로디와 리듬이 뒤섞였다. 찬송가를 부르는 건 십대 소녀들이고 불경을 외우는 것은 나이가 드신 스님이었다. 찬송가가 하늘까지 닿을 듯한 투명한 소리라면 불경은 인생을 통달한 듯한 힘이 넘치는 울림이었다.

예배가 끝난 뒤 토토는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에게 불려 앞으로 나왔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공부할 쿠로야나기 테츠코 양이에요."

전교생 앞에서 소개를 받은 토토는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께서 "쿠로야나기 양은 교실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걸 도와준 뒤 저기 있는 학생들과 함께 이 층으로 올라가세요."라고 지시를 내리자 "저기 있는 학생들"이 토토를 향해 작게 손짓했다.

땋은 머리를 한 명석해 보이는 학생이 "수업을 하려면 교실 준비를 해야해. 여기는 목조건물이라 이 층에 한꺼번에 올라가면 무게 때문에 문틀이 내려앉아서 문이 끼워지지 않을 수 있어서 올라가기 전에 끼우지 않으면 안 돼. 쿠로야나기 양, 저 쪽 좀 잡아줄래?"라고 했다. 타타미가 몇십 장은 깔려 있는 방을 학년별로 나눠서 쓰는데 모두들 함께 척척 문을 끼워넣은 뒤 수업 준비를 마쳤다.

어느 샌가 불경은 들리지 않게 되었고 대신에 짹짹짹 새소리가 울려퍼졌다. 피아노에 찬송가, 목탁에 불경, 그리고 새소리. 어딘가에서 건물을 짓고 있는 건지 공사하는 소리도 들려왔고 전차가 달리는 소리도 들려 반갑게 느껴졌다.

토토가 토쿄에 돌아왔다!를 실감하게 되었다.

 

피어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니

 

영어 수업은 영국인 여성 교사가 "레이디스!"라고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학생들은 벽장에서 자신들의 방석을 가져와 네 명당 한 개씩 쓰는 긴 책상 앞에 앉았다. 타타미 방이 꽉꽉 들어차 영어를 공부하는데 서당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재밌었다.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선생님은 긴 머리를 가운데에서 갈라 좌우로 세 갈래로 땋아 내리셨다.

타타미방의 맨 앞에 서서 무척 커다랗게 잘 울려퍼지는 목소리로 "레이디스, 굿모닝!"이라고 아침 인사를 하셨다. 영국 영어는 미국 영어와는 다르다는 자신감에 찬 발음이었다.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날카로운 리듬에 토토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를 곧게 폈다.

"이거 엄청난데."

그런 토토의 생각은 신경쓰지도 않는 듯 영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선생님은 일본어를 전혀 쓰지 않고 "내 말을 암송하세요." 같은 말씀을 하셨다. 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하기에 토토는 그 따라하기를 따라했다. 선생님의 복장은 하얀 블라우스에 트위드제 갈색 재킷과 롱스커트였다. 꽉 조이는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여서 척 보기에도 영국 숙녀 느낌이 물씬 풍겼다. 무언가 말을 할 때마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토토는 다소 기가 죽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 토토는 공부를 따라잡는 것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오모리에서 방언을 터득했을 때를 떠올리며 귀로 들은 것이 자신의 입이 익숙해지도록 하며 점점 영어의 리듬을 잡아낼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지나자 그대로 암기할 뿐인 영어라 해도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즐겁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건 분명 선생님이 무척 활기가 넘쳐 "고개를 들고 인생을 의연하게 걸어간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토토는 이것이 영국식인가 하고 생각했다.

구품불 건물에서는 겨울이 되어도 난방을 틀지 않았다. 산노헤 학교에선 교실에 장작 난로를 놓아서 따뜻했는데 전엔 스모 연습장이었던 토쿄 건물은 틈새로 바람이 불어들어와 무척 추웠다. 그래서 다들 오버코트를 입고 수업을 받았다.

영국 선생님은 양복 차림으로 다녔는데 토토의 흥미를 끈 건 양말 쪽이었다. 타타미방이니 양말을 곧잘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언제나 두꺼운 갈색 솜양말을 신으며 영국 방식을 고집했다. 반면 일본인 선생님들 중엔 당시로선 최첨단이었던 나일론 스타킹을 신은 멋쟁이 선생님도 있었다.

 

토토는 음악 중 <코르위붕겐> 수업을 좋아했다. 이건 합창곡 악보를 제대로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독일 교재로 고음과 저음으로 파트를 나누었는데 부르자마자 다른 파트에 휘말려버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토토는 제대로 부를 수 있었다. 영어와 음악 수업에 유럽 방식을 도입한 것이 토모에 학원과 통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 종일 학생들이 일어섰다 앉았다, 책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나다 보니 타타미가 무척 빨리 상했다. 게다가 수업이 재미없을 때면 모두들 타타미를 뜯어서 시험 중이나 크리스트교, 대수학 수업 중엔 타타미 뜯기 대회가 열려 얼마나 타타미가 상했는가로 시험의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토토는 당연히 상습범이었다. 토토 자리는 가장 앞이었으므로 선생님이 토토 눈 앞에 서 있으셨는데 타타미에서 뜯어낸 줄기를 긴 끈처럼 만들어서 선생님의 발목에 돌려 책상 다리와 연결하는 장난을 좋아했다. 선생님이 그 상태에서 걸어가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었지만 끈이 너무나 약했기에 몇 번 시도를 해도 곧바로 끊어져 토토의 상상처럼 선생님이 고꾸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토모에 학원 때부터 시작된 수업 중 뭔가를 저지르고 싶어하는 토토의 버릇은 학생이 되고 나서도 고쳐지지 않았던 건가 싶어진다.

 

https://aglowfly.tistory.com/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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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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