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안 보고 신문도 잘 안 보게 되다 보니 확실히 뭘 쓰려고 해도 잘 안 나가진다. 하긴 뭘 쓰려면 떠오르는 게 있어야 하는데 떠올릴 수 있는 소재가 없으니 당연하지만. 하지만 그런 소재를 많이 준비해서 썼을 당시와 지금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면 잘 모르겠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아무도 봐주지 않아서 울어도 아무도 봐주지 않았던 기억만 수두룩하게 남아있다. 그 동안 봐왔던 책들에게서 대체 무엇을 얻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어릴 적엔 책을 보면 사람들이 대견한 것처럼 대해줬다. 아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도 내가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선 그렇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책을 읽는다는 행위만 본 것 같다. 아 판타지 소설들이 재밌어 보여서 잡기 시작했더니 그런 책을 보냐는 말을 들었고 만화책이 재밌어 보여서 잡았더니 오타쿠 취급하기 시작했나. 내용이 복잡한 책들을 봐보고 이해한 점들을 인터넷에 올려봤자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그런 건 이미 더 훌륭하게 써놓은 글들이 수두룩하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 쪽을 보고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보려 하지 않으니깐. 난 항상 애매한 위치만 달려갔을 뿐이다. 그걸 알면서 무시하고 계속한 결과 아무도 관심 없는 조금만 수틀려도 무너질 모래성만 만들어진 것이다. 왜 쌓는 건지 아무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모래성. 아무도 없고 아무도 찾지 않는 모래성의 소유권을 주장해 봤자 비웃음만 받을 뿐. 어차피 광활한 우주 안에서 존재의 의미도 없는 개체인데 뭘 하고 있는 걸까.
<룩 백>을 봤다. 원작을 이미 봤었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그렇게 새로울 게 없었다. 추가되거나 크게 바뀌거나 한 것 없이 원작 내용을 그대로 담은 모양새였다. 때문에 원작 감상에서 크게 벗어날 것도 없었지만 쿄모토가 달려오는 장면을 보니 갑자기 울컥해졌다.

애니메이션을 보고서야 생각난 건데 후지노가 쿄모토 집에서 그린 4컷만화에는 후지노가 그렸다는 단서가 전혀 없다. 하지만 쿄모토는 이걸 후지노가 그렸다고 알아차리고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섭다는 것도 무시하고 다짜고짜 맨발로 뛰어나온다.
내가 했던 것들 중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알아줄 만한 것을 했던 적이 있었을까.
쿄모토의 그림을 보고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결국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지노는 만화 그리기를 관두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쿄모토의 응원을 듣고서 다시 만화를 그리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 결과물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이 작품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무시를 당한 적이라면 있다. 그런 장면이 연속되면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기로 하게 되었고. 어떻게 이런 점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슷한 걸 찾을 수 있는 건지.
물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신경했고 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별 관심도 없었으니 그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에 찬동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결과물들도 결국 내 중심으로 생각했으니 이런 결과물들을 본 사람들도 자기의 관심사와는 관계가 없으니 그냥 무시했을 것이란 것도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비하한 적은 없는데 왜 비하를 당해야 되었던 거지.
난 쿄모토와 같은 사람이 나 때문에 달려나와 주길 바랐던 걸까 내가 쿄모토가 되길 원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쿄모토처럼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는 것에도 지쳤고 후지노처럼 교감할 상대를 찾는 것도 지쳤다. 내가 <룩 백>을 보고서 울컥한 건 이 지점인 것 같다. 하나의 이상적인 관계. 그런 관계를 원했던 것 같은데 결국 돌이켜 보니 그런 관계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 그 관계를 향해 나아간 것은 한 걸음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계속 헛돌기만 했을 뿐. 헛돌다가 상처만 입었을 뿐. 자신만 상처를 입는 걸 보면서 더더욱 지쳐갔을 뿐.
결국엔 더 긴 시간을 살아봤자 무차별 습격 때문에 죽은 쿄모토의 삶에 비하면 비교할 가치도 없는 삶이란 생각이 든다. 사카모토 마아야가 부른 <色彩>의 가사처럼 영원을 바라는 것보다 한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삶이라는 게 훨씬 가치가 있지 않을까.
아무런 접점도 없는 무가치한 삶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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