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이엔가 엄마가 농협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과 창고 창문을 통해 채소를 짊어지고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급료 외에도 망가진 사과와 감자 같은 걸 어차피 팔지 못하니 가져가세요라며 줄지도 몰라."
일을 하는 건 태어나 처음이셨지만 엄마에겐 뭐든 부딪쳐 보라는 정신이 있었다. 농협 면접에서는 "주판 다룰 줄 아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음악학교 중퇴 후 곧바로 결혼했으면서 "네, 할 수 있어요."라고 답하며 채용되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주판은 경리 담당이 다루었기 때문에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리셨지만 농협에서 잡일을 하며 받는 급료로는 벅찼기 때문에 밤에 이웃사람들 옷을 만들어 주는 삯일을 하게 되었다. 미싱이 없었으니 손바느질로 해야 했지만 엄마가 스타일북을 보며 만든 옷은 토토가 보기에도 멋진 작품들이었다.
피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토토는 온몸에 부스럼이 생겨나 고생해야 했다. 해조면 밖에 먹지 않았던 탓인지 영양실조에 걸려서 부스럼이 여기저기 났던 것이다.
표저에도 걸렸는데 손발톱 사이에 세균이 들어가 화농이 쌓이는 병으로 이 또한 영양실조가 원인이었다. 요즘엔 표저에 걸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게 펄쩍 뛰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온몸에 부스럼과 표저로 인한 욱신거림을 토토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전쟁 중이라 병원에 가도 약조차 받을 수 없었으니 토토 뿐 아니라 모두들 참으며 살아가야 했다.
그런 토토를 보며 엄마는 단백질을 섭취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되었다. 토토 가족은 스와노타이라에서 자라는 과일과 야채를 바구니 두 개에 한 가득 넣은 뒤 행상인이 된 것처럼 기차를 타고 하치노헤항구로 향했다. 항구에 도착하자 어선을 타고 있던 선원들에게 "실례합니다. 토쿄에서 왔습니다만 채소와 물고기를 교환할 수 있을까요?"라며 물물교환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항구 사람들이 기세 좋게 "그러쥬, 여기 있수다!"라며 과일과 채소를 막 잡은 생선들과 교환해 주셨다.
엄마는 재빠르게 생선조림을 만들어 주셨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빠의 영향으로 토토는 생선을 그다지 먹어본 적이 없어서 머리나 꼬리 부분을 먹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조심조심 입에 넣어보니 기름진 맛이 너무나도 맛있었다. 생선조림을 먹기 시작한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아서 온몸을 덮었던 부스럼이 눈에 띄게 줄었고 열흘 정도 지나자 완치되었다. 단백질의 효과란 대단하구나!
엄마의 환경적응력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감동적일 정도였다. 덕분에 피난을 와서도 주변 사람들과 양호한 관계를 쌓을 수 있었고 토토도 노리아키 짱도 새로운 환경에 녹아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토토와 동생들에게 말했다.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저녁밥 시간이 되어서 밥 먹지 않겠니 하고 물어보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먹으렴."
그 말을 들은 토토는 당황했다. 토쿄에서 살 때엔 "아무리 권해와도 저녁밥은 집에 돌아와서 먹으렴."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남의 집 밥을 먹거나 해선 안 된다고 했잖아요?"
토토가 이렇게 말하자 엄마가 즉시 답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남의 집 밥이 영양가도 많고 좋은 반찬을 먹을 수 있잖니?"
그건 사실이었다. 사과 창고에서 엄마가 만드신 저녁밥은 채소가 많이 들어간 국물이나 찐 감자가 대부분이었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남부전병을 으깨서 수제비 대용으로 쓴 국물을 가끔 먹기도 했다. 때때로 생선조림도 먹었고 토쿄 때와 비교하면 천국이었지만 하얀 쌀밥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계란이나 닭고기를 입에 대 본 적은 아예 없었다.
엄마가 "저녁밥은 남의 집에서"라고 말씀하신 뒤로 노리아키 짱은 저녁이 되기만 하면 서둘러 친구집에 가게 되었다. 다섯 살배기 남동생은 귀여운 얼굴에 무척 애교가 넘쳐서 남의 집에 놀라갈 때마다 "도련님, 우리 집에서 먹고 가셔."라며 권유를 받았다. 여러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에 노리아키 짱은 무척 만족해 했다.
엄마가 "노리아키 짱 좀 데려오렴. 누구네 집엔가에서 밥을 얻어먹고 있을 거야."라고 말하셔서 남의 집 마루에 앉아 즐겁게 저녁밥을 먹고 있는 남동생을 발견하곤 했다. 그럴 때엔 바깥에서 몸을 숙이고 노리아키 짱이 나오길 기다렸다.
토토도 배가 고팠긴 했지만 "나도 먹을래."라고 할 수가 없었다. 노리아키 짱이 나오면 그 집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데리고 돌아갔다. 남의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노리아키 짱의 영양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진좃코 그려보그라."
토토는 스와노타이라에서 기차로 한 정거장을 가야하는 산노헤 학교에 가게 되었다. 기차는 하루에 일곱 편 밖에 없었는데 아침에 사과창고에서 이십 분 정도 걸려 스와노타이라역에 도착하면 거기에서 기차로 오 분 정도 걸려 산노헤역으로 간 뒤 학교까지 걸어서 삼십 분 정도 걸렸다. 역 주변에는 건물이 거의 없었고 마을은 역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산노헤 마을은 난부번이 세운 산노헤성이 있는 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는데 토토가 다니게 된 학교도 그 근처였지만 그 당시엔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매일같이 과일을 종이로 싸거나 농작업을 돕는 등 근로봉사를 해야 했다.
등교 첫날에 토토는 책상에 앉자마자 주변의 시선을 느꼈다. 새로 들어온 토토를 신기하다는 듯 거리를 두고 보았던 것이다. 토토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한 결과 공책을 펼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러자 여자아이들이 몇 명 다가와 "베코 좀 그려보그라." "개 좀 그려보그라."라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베코는 소를 뜻하는 사투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도 잘 그리지 못했지만 친구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를 그렸다. 어째 비쩍 마른 소를 그려버렸는데도 모두들 "잘 한데이~"라며 감탄했다.
다행이다! 이걸로 친구를 사귈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여자아이가 토토에게 말했다.
"진좃코 그려보그라."
엥, 진좃코? 대체 뭘 말하는 거지. 토토는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에 당황했지만 "그게 뭔데?"라고 말했다간 모처럼 달아오른 분위기를 망쳐버릴 수도 있었다.
토토가 심사숙고한 끝에 그 여자아이에게 공책을 건네며 산노헤 말투처럼 말해봤다.
"느그네 진좃코 그려볼래?"
여자아이가 공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옆에서 지켜보니 대머리 인형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오모리에선 "인형"을 "진좃코"라고 하는 거구나.
작전이 성공해 토토는 머리에 리본을 단 인형을 그렸고 또다시 "잘 한데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걸 계기로 토토는 교실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었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기 힘들었던 단어들도 일 주일 정도 지나니 알 수 있게 되었다.
"진좃코 그려보그라."고 했던 여자아이와 무척 사이가 좋아졌는데 공부를 잘하고 귀여운 아이로 토토는 이 아이와 항상 함께 다녔다.
근로봉사 때 하는 과일 싸기는 수확 전 사과 열매를 벌레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작업이었다.
"징글징글하데이, 더는 싫다!"라며 뛰쳐나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토토는 혼자 남아있어도 질리거나 하지 않고 열심히 과일을 쌌다.
잡지 페이지를 자른 것을 손톱으로 당겨 정리한 뒤 몇 장을 조금씩 어긋나게 나열한 뒤 재빨리 풀을 발라 고정시켜 한 장씩 차례차례 모아 주머니 형태로 만들었다. 친구는 교실에서 나가며 정해진 것처럼 토토에게 "질리지 않나?"라고 물어보았지만 "안 질려."라고 답하며 계속해서 주머니를 만들어갔다.
거름통에 담겨있는 것을 운반하는 근로봉사도 있었는데 토토는 사실 이 근로봉사가 그렇게 싫지는 않아 오히려 솔선해서 임했다. 하지만 멜대를 질 때엔 뒤가 아니라 앞쪽에서 졌으면 싶었던 게 뒤에서 질 경우 가는 도중 넘어지거나 하면 통 안에 든 걸 뒤집어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멜대의 밧줄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언덕길을 올라가던 도중 뒤에서 지던 아이가 그걸 뒤집어 쓴 걸 보고 너무나 불쌍하게 보여 토토가 그 아이를 학교에 있는 선생님에게 데려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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