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2024. 7. 28. 10:14

사과 창고 대개조
 
버스가 시리우치에 가까워지면서 엄마가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만지고, 코를 풀고, 누마하타 아저씨가 보내온 편지를 다시 읽고... 토토는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입으로는 "아, 이제 스와노타이라에 다 왔구나."라고 말하고 있지만 누마하타 아저씨가 토토네를 받아줄지 어쩔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친척도 아닌데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은 토토로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에노를 출발한 후 사흘 간 토토네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자기들만으로 어떻게든 해보자식으로 덤벼선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고 그리스도 묘지에서 기도를 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누마하타 아저씨도 토토네를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을 텐데... 토토는 그렇게 빌지 않을 수 없었다.
 
시리우치역 앞에서 내려 토우호쿠선의 시간표를 보니 밤이 되기 전엔 누마하타 아저씨 댁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누마하타 아저씨에게 신세를 지기로 정한 거야."라며 자신에게 타이르듯 말씀하셨다.
시리우치에서 열차를 타고 세 정거장을 거쳐 토토네는 스와노타이라역에 도착했다. 역무원 아저씨에게 누마하타 아저씨 댁 주소를 보여주니 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걸어서 삼십 분 정도 거리였다. 역무원 아저씨가 알려주신대로 가고 있으려니 채소가게 같은 건물이 보였는데 그 앞에 있는 도랑 같은 구멍에 새빨간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앗, 사과다!"
토토는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사과를 줍고 있었더니 엄마가
"이렇게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서 떨어진 채 놔둘 정도니 누마하타 아저씨 댁에 가면 제대로 된 사과가 있지 않겠니?"
라고 말씀하셨다.
"제대로 된 게 있으면 버릴게요!"
토토는 그렇게 반론하며 사과를 살펴보니 검게 썩은 부분이 보였다. 그래도 그 사과를 쥐고서 토토 가족의 선두에 서서 역무원 아저씨께서 알려주신대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나아갔다. 점점 어두워졌지만 드문드문 집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의지해 걸어가면서 공습이 없으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드디어 어딜 봐도 농가다 싶은 커다란 집이 보였는데 그게 누마하타 아저씨 댁이었다.
"실례합니다."
엄마가 말을 걸자 아내로 보이는 분이 나와서 "사과와 채소를 받았던 토쿄의 쿠로야나기입니다."라고 말하며 사정을 설명하자 안에서 아저씨가 나타나선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하쇼."라며 토토네를 들어오게 했다. 토토는 안심하면서 주웠던 사과를 현관 밖에 버렸다.
네 가족이 갑자기 들어왔는데도 하얀 쌀밥에 국물, 생선 말린 것과 절임, 과일까지 있는 저녁밥을 차려주셨다. 오랜만에 먹은 하얀 쌀밥의 맛을 되새기며 엄마가 너무 지레짐작으로 걱정을 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쌀밥을 처음 보는 마리 짱은 "이게 뭐야?"라며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창고라도 좋으니 가족 넷이서 살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엄마는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며 간절히 빌었다. 그 날 아저씨 댁에서 가족 넷이 나란히 누워 잤다.
 
다음날 엄마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집이 정해지지 않으면 학교에 다닐 수도 없으니 아저씨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살 수 있는 곳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 결과 어느 사과 농가의 작업용 창고를 빌릴 수 있었다. 사과를 모아 포장을 하기도 하고 사과 도둑이 오지 않나 지키기도 하기 위해 사과 과수원 한가운데에 지어진 창고로 다다미 여덞 장 정도 넓이였다. 지붕은 초가지붕이었고 판자로 이은 벽은 틈이 너무 많은데다가 빛이라곤 석유 램프가 전부였지만 엄마는 "창으로도 천장으로도 햇빛이 들어오니깐 멋지네."라며 기뻐하셨다. 토토는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하고 감탄했다.
"이불도 주방용품도 나눠주셨어. 근처에 커다란 강도 흐르고 마실 물은 옆에 있는 제재소에서 얻을 수 있단다. 생활하기에 부족한 건 없어."
엄마는 넘쳐나는 의욕으로 사과창고 개조에 매달려 전부터 가지고 있으셨던 마법사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셨다. 사과상자를 뒤집으시더니 그 위에 솜과 짚을 깔고서 짐을 꾸리기 위한 보자기 대신 사용하셨던 고벨린제 천을 덮어 못을 박았다. 상자 주변에 튀어나온 남은 천들을 프릴처럼 다듬고 나니 화사한 로코코식 의자가 만들어졌다.
이웃 사람들로부터 받은 시트를 옅은 녹색으로 칠한 뒤 사과 그림을 잔뜩 그려서 벽에 거니 훌륭한 족자가 완성되었고 1미터 정도 높게 올라온 바닥은 어린이용 침대로 변신시키는 등 살풍경했던 사과창고가 키타센조쿠의 집 같은 모습으로 부활했다.
집을 리폼했으니 다음은 가정농원 차례다. 엄마는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밭을 만들자!"라고 선언하셨다. 마리 짱은 엄마 등에 업혀서 항상 웃고 있었고 토토도 노리아키 짱도 집 주변을 일구는 걸 도와드렸다. 엄마는 채소 씨앗과 모종도 구해와서 그걸 뿌리고 심고 했다. 계절도 봄이었으니 토모에학원 수업 같아 즐거웠다.
어떤 꽃이 필까? 어떤 채소가 만들어질까? 토모에학원 친구들은 잘 지내려나.
"모두 다 같이 해야 해요."
흙을 만지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저편에서 토모에학원의 코바야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1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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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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