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기사 2018. 6. 19. 17:41

트랜스젠더, 의학적 용어로는 gender incongruence(성 동일성 장애/성 정체성 장애/성적 불쾌감 등 쓰는 주체에 따라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로 불리는 항목이 WHO에서 관리하는 ICD(국제질병사인분류)의 정신질환에서 제외되었다.



새로운 국제질병사인분류 ICD-11에서 트랜스젠더는 더이상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성건강 상태로 분류되게 됩니다. 이로써 낙인효과를 줄이고 개선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ICD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질환에서는 빠지는 것 덕분에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성건강 상태 자체가 다른 ICD 항목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따로 신설된 항목으로 질병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가 되기 때문에 1990년 5월 17일에 동성애가 제외된 이래 매우 고무적인 판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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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y.union1030/posts/1846543008699304

내가 녹색당을 지지하고 있는 동안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을 딱 한 군데로 짚을 수는 없지만 그 중에 크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기본소득이었다. 매우 웅대한 꿈처럼 들리지만 결국 이걸 어떻게 실행해야 되는지가 너무 막막했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주장해 왔던 바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 한 달에 사십만 원씩을 모든 인민들이 골고루 나눠받는 방식이다. 대략 오천만으로 잡고 일 년을 계산해 본다면 이백사십조 원이 나오게 된다. 거기에 반 좀 넘게 얹어주면 지금 현재 국가예산이 된다. 그렇게 나눠가질 돈을 마련하는 것도 대략난감하지만 정말 나눠준다고 해서 무슨 변화가 있을지도 난감하다. 녹색당이 바라보는 것처럼 더이상의 성장은 바라보지 않는다 쳐도 이만한 나라를 지탱할 예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실행하면 대체 그 예산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쥐어짠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쥐어짜는 걸로 할 수 있다면 유럽의 복지 선진국들이 진작에 시행했겠지만 아직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도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석유 팔아먹어서 기본소득 비스끄무리한 거 해왔던 알래스카 이야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 말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납득을 하지 못하는 것은 선별적 복지의 해악성이다.

언젠가부터 선별적 복지를 하는 것이 상당히 나쁜 수단으로 여겨지고 보편적 복지만이 좋은 것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물론 급식같은 경우처럼 선별적 복지를 해봤자 오히려 그로 인한 돈만 더 들어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경우,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계층이 있는 경우 무조건 그런 선별적 복지를 나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제도도 선별적 복지이지만 그것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가난한 세대를 지원하는 것도 선별적이지만 그것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위에 올려놓은 정책들의 경우도 그렇다. 청년층의 취업과 경제적 안정을 도와주기 위한 대책에 대해서 신지예 녹색당 후보는 하나같이 반대 입장을 드러내면서 기본소득을 내세운다. 그렇게 기본소득이 절실하지 않은 쪽에게 일부러 나눠주기 위해 당장이 절실한 층을 외면한다면 원래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정장의 경우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당장 양복이 마땅치 않아서 세탁소 같은 곳에서 대여를 하고 있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 양복을 빌려주는 사회적 기업도 존재한다. 이런 것을 시에서 하는 것이 예산 낭비라면 기본소득은 왜 하는 걸까? 복지의 기본은 사회적 안전망을 키워서 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전제일 텐데 격차를 줄이는 것에 반대를 날려도...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결국 앞서 말했던 전체를 지탱할 예산 중에 기본소득을 빼면 도대체 뭐가 남는 건가 하는 의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것을 기본소득에 맞춰버리고서 정작 다른 필요한 곳들은 무시해 버린다면 대체 뭘 할 수 있는 걸까? 멀리 보는 것도 좋긴 한데 가까이에 있는 난관을 무시하면서 멀리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멀리 보는 방향이 맞는 건지도 정확하지 않은 판국에...

내가 맞을지 틀릴지는 모를 일이지만 녹색당 등이 바라보는 기본소득의 전망은 더더욱 모르겠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보기엔 내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이러는 걸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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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앞두고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서울시장 선거 벽보 중에서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벽보만 골라서 훼손된 것이다. 선거 벽보가 훼손되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 후보만 두고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것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문구가 마음에 안 들었거나 시선이 마음에 안 들었거나...


엎어치나 메치나...


이 사건을 보면서 전에 레드벨벳의 아이린 가수가 <82년생 김지영>을 읽는다고 했다가 대난리가 난 때가 생각났다. 많은 남자팬들이 아이린 가수와 레드벨벳에 반기를 드는 한편 그와 별 상관없던 많은 사람들이 레드벨벳 이름과 <82년생 김지영>을 되새기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덕분에(?) 나도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있다. 원래 보려고 했던 거긴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거 벽보 훼손 행위가 반페미니즘 사이에 뚜렷한 뭔가를 낳았기 보다는 그 반대편이 또다시 뭉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버렸다. 약자가 강자에게 던지는 돌과 강자가 약자에게 던지는 돌의 차이랄까... 전자는 약자를 뭉치게 하지만 후자는 당연한 것이기에 별반 무언가를 낳지 못한다. 메르스 사태 때의 상황이나 강남역 사건이나 똑같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면 멍청할 리도 없고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남자 쪽도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될 거라는 것을 진작에 눈치챘을 법한데도 불구하고 딱히 누가 막으려 하는 움직임이 있다기 보다는 자기들끼리 왜곡된 지식을 주고 받을뿐이다. 하긴 저 대화에 있는 분도 변호사... 생각해보면 파시즘도 그랬고 매카시즘도 그랬다. 그 사람들이 정말 멍청했다기보다는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흐름의 잘잘못을 따지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시점이 오게 된다. 물론 그 전에 흐름을 따르지 않았다면 거기까지 가지도 않았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있는 힘이 갑자기 솟아나는 것은 아니기에 거기에 짓밟힐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이 이런 시점에 있음을 생각하면서 그저 큰 흐름에 거스르지 않으려 하는 것 아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 흐름을 방관할 수만은 없다. 지금도 상당히 벌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이 간극을 좁힐 기회를 한시라도 더 빨리 찾기 위해서 흐름을 막을 수 있도록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시위를 하러 나와라 같은 게 아니라 이 흐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만 해도 이 흐름을 막을 수 있는 기반은 금방 만들어질 것이다. 아니 뭐 막지 못하고 그냥 저 사람들이 저대로 늙어가 생각이 고착되어 버린다면 그거야말로 인류가 진보하지 못한다는 슬픈 증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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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에서 이번에 지방의회 의원들의 겸직 실태를 고발했는데 겸직 미신고를 했으나 사실은 겸직을 하고 있었던 의원이 마흔여덞 명인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겸직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는 모두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뉴스타파 페이지에 들어가 직접 확인을 해보니



자랑스러운 양천구 이름이 떡하니 박혀져 있었다. 자유한국당 소속 조진호 의원. 돌핀종합물류라는 업체의 대표를 맡고도 겸직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거기다가 이 사람이 속해 있는 마 선거구 중에 내가 사는 동네도 들어가 있고 ㅋㅋㅋ(먼산)

지방 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서 쓴 게 오늘 새벽이다. 마음의 안정을 조금이라도 지켜주면 어디가 덧나냐...


http://www.siju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552


하지만 뉴스타파에서 이걸 밝혀내기 전까지 누구 하나 파헤쳐 본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구글에서 검색해본 결과 뉴스타파 기사 외에는 찬사일색으로 이뤄진 글밖에 나오지 않는다. 구의회에서 의회운영위원장을 맡았으며 위의 사진과 같이 서울시 전체에서 의정대상까지 받았다. 그럼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는 것은 뉴스타파 기사일까 지방의회의 권력일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제도장치가 만들어질 수 없는 건가? 짬짜미 앞에서 여야가 따로 없고(?) 수백 개나 되는 지방의회에 일일이 자정노력을 기대하는 것도 바보짓 아닌가. 위에서 정화를 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국회부터가  이 모냥 이 꼴이니 기대를 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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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예전에는 상당한 열기를 띄었던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특출한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 없음에도 나 같은 별종 외엔 거의 관심이 없어지다시피한 것이 투표시간 연장인 것 같다. 이명박근혜 시절엔 그렇게 투표시간 연장 요구 열기가 뜨거웠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어디에서 나서서 주장하는 모습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박근혜가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완전히 꺼지다시피 했다. 다음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검색해 봤을 때 검색결과를 보면 첫 결과 그러니깐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연관성이 높은 걸로 집계되는 글은 2012년에 쓰여졌던 글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2016년에 쓰여진 글이 극소수...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 당시엔 이런 움직임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아니면 내가 못 본 건지... 이게 100% 맞다는 자신은 없지만 난 이렇게 투표시간 연장 요구가 흔적도 없다시피 사라진 이유를 2012년 대선으로 보고 있다.


전국의 민심은 인천이 알고 있었다카더라...(?)


2012년 당시 시민들의 정치적 열기는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당내 개혁을 진두지휘했던 박근혜가 (과연 이것도 진짜로 진두지휘한 건 누구였을지...) 이명박과는 다른 컬러와 박정희의 이미지를 업고 대대적으로 세몰이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정말 박근혜가 불쌍해서 찍어준 할아버지 할머니들 많았을 거다. 아버지 쪽 할머니도 투표소에 가시진 못했으나 심정이 그러하였으니...) 한편 이에 대항하는 중도보수 및 진보 세력에서는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급부상을 하게 된다. 아니 뭐 부상할 사람 자체가 얼마 없었어... 한 쪽에선 친박정희와 반노무현, 한 쪽에선 친노무현과 반박정희, 이렇게 사람들의 감정을 누구보다도 뜨겁게 달굴 두 상징이 붙은 것이다. 정작 대결해야 하는 본인들이 아웃 오브 안중... 그렇게 해서 나온 투표율이 75.8%였다. 2000년대 이후 선거에서 이렇게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가 없었을 정도로 시민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물론 2017년 대선에서 이 기록을 경신하지만 오후 8시까지 한 선거였고 박근혜가 박근혜-최순실이었다는 진실에 절망하다시피 한 시민들의 정치적 열기를 생각해 보면 큰 사건이 없었고 자잘한 사건이 모래알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정식적인 선거를 했던 2012년이 사실상 최고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선거에서 박근혜가 백만 표가 넘는 꽤 큰 득표차로 이기게 된다.(물론 투표율이 높은 선거에서 일 대 일 구도가 형성된 점이 기여했지만) 


춘몽 기억들 하시는지...


이런 뜨거운 선거를 치뤘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해서 실제로 문재인의 득표수가 웬만한 대선 당선급 수에 이르렀음에도 결국엔 문재인이 졌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의 좌절감도 장난이 아니었고 여전히 거기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이걸 김어준 같은 인간들이 이용해 먹지만... 이건 여기에서 말할 건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여기에 속해 있는 시민들 상당수가 투표시간 연장을 주장하는 쪽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시민들이 모두들 투표의 수가 아무리 많아봤자 그게 자신들의 뜻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결과 투표시간 연장 주장을 하지 않게 되고 박근혜가 당선되었던 악몽이 근저에 자리하고 있어서 오히려 그것을 꺼리게 된 것 아닐까... 반면에 여전히 젊은 층에게 투표를 안 한다는 소리를 하는 것은 여전하다. 젊은 층일수록 자유한국당 같은 당에 투표를 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투표를 하라고 채찍질을 해야 자기들이 원하는 후보에게 표가 갈 확률이 높은 것이다. 정말 이 사람들이 시민의 정치적 참여율을 걱정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지 나로선 아리송하다.


어릴 적 혹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만들어진 환경에 대한 책임을 

우리가 떠맡아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는 유명한 학자.


반면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대표되는 자칭 보수들은 투표 기회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투표시간 연장이 논해질 때도 그랬지만 최근 와서는 투표 연령 확대에 대해서도 상당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5월 초에 치뤄졌던 서울시 혁신계 교육감 경선만 해도 투표할 수 있는 연령을 만 13세까지 낮추고 청소년 연령대는 참가비도 무료로 하여 참여를 유도하자 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학교를 선거판으로 만들 작정이냐는 식으로... 다른 정치 선진국에서는 이미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었거나 예비 투표권을 주고 있으며 정당 가입 및 당내 청소년 조직 결성도 자유로워서 아예 선거까지 나갈 수 있는 곳도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그저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며 반발한다. 겉으로는 청소년의 학습권 운운이지만 솔직히 공부의 노예가 될 의무... 이유는 똑같다. 젊은 층일수록 자기들을 찍어줄 가능성이 낮은데 이게 청소년으로 가면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응답하라 권성동(?)


민주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할 때에 의미가 있다.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3,40% 정도밖에 되지 않으면 차라리 독재를 하는 게 효율적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효율적인 행위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투표시간 연장 요구 움직임에 호의를 표시해 왔었다. 주말에 사전투표를 하고 투표지역을 자유롭게 운용한다고 해봤자 결국 투표시간을 여섯 시까지로 정하는 한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더 늦은 시간까지 투표소를 운용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 뭔 말을 해봤자 다 패싱당하는 건지 뭔지... ㅋ


승민 아저씨는 외롭지 않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의 투표 의지는 바닥을 기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투표소에서 도장 찍는 기계가 되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찍어주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니 결국 가기는 갈 것 같은데... 그렇게 때가 다가오고 보니 여태까지 품어왔던 정석을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결국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데 그런 제도를 바꿔야 할 국회가 개판 오 분 전인 것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요구마저도 없다.(이길 가능성이 충분해서? -_-a) 또다시 마음이 황량해진다. 정석은 어디까지나 정석일 뿐 결국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아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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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46821.html

최저임금법 개악 찬반 의원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진을 보면서 이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LExS1r-yets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를 소수 야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의원으로서 막아보려 했으나 결국 바닥에 쓰러지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김경숙·강성훈 경남도의원. 내가 지지하는 쪽이 형편없이 밀려날 때마다 저 모습을 상기하게 된다. 다수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희망은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이 영상을 떠올린다. 다른 거라도 좀 떠올랐으면 좋겠는데 맨날 레퍼토리가 똑같다.



생쥐들이 계속 고양이만 뽑겠다는데 대체 뭘 해야 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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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ctivated my...


그냥 올 것이 왔달까... 그런 생각이 든다. 북조선 비핵화와 관련해서 계속 걸렸던 것이 미국은 계속해서 CVID를 외쳐왔고 트럼프는 그 중에서도 매파에 속하는 인물들을 중용했다는 것이다. 볼턴의 행동을 제지하는 듯 보였지만 트럼프 정부 중에서 CVID를 생각했던 것이 볼턴만이었을까? 한편 북조선은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말해왔다. 문제는 이 반도 비핵화가 북조선이 핵무기 대충 치우고 한국이 계속 비핵화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을 향해서도 "너네 우리 쪽을 향해서 있는 핵들도 치워줄 거지?"를 말한 것이었다. 그리고 북조선이 가입하려 했던 CTBT(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만약에 북조선이 여기에 가입했다면 여길 슬그머니 피하고 있었던 미국 입장에서는 가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당히 난처한 지경에 처했을 것이다. 그리고 북조선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허물면서 액션에 들어갔다. 미국 입장에선 어땠을까?

한편 미국의 중동 쪽 외교는 개판 5분 전이었다. 이란 핵 협정을 마음대로 파기해 버린 것이다. 이것 때문에 청문회장으로 불려나건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란 핵 협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자기도 몇 번을 읽어봤지만 이 이상 강한 협정이란 게 있을 수 있나 싶었다라고 오히려 이란 핵 협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취했을 정도다. 내각 구성원이 이 정도니 모두들 그냥 멘붕이고...


정말 이게 이유 아니었을까 ㅋㅋㅋ


이런 상황에서 북조선과 평화로운 협정을 맺기 위한 대화를 한다... 이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강력한 협정을 막 깨놓은 상황에서 북조선과 신뢰를 다진다니 쇼를 한다 외에 튀어나올 말이 있었을까? 남은 게 카다피 목이 날아간 리비아 모델이라든가 러시아에 완전 먹혀 버린 우크라이나 모델이라든가... 북조선의 태도도 좀 많이 바뀌어서 강경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던 김계관을 일부러 다시 등판시키고 트럼프를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등 자제를 하는 모양새였고 약속한대로의 액션을 취하고 있었다. 폼페이오가 북조선과의 대화 후 이것 안 되겠다고 감상을 남겼다지만 이것도 미국이 지금까지의 태도를 물릴 수 있는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북조선 쪽을 자극한 것일 수 있다. 


문 대통령, 그 쪽만 믿어(?)


문재인이 당선된 이후 줄곧 그래왔던 것처럼 트럼프는 한국에 모든 걸 (떠)맡기겠다는 태도를 또다시 취했다. 오바마가 일본에 의지했다면 트럼프는 한국에 의지하는 것 외엔 딱히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오바마는 그래도 열심히 외교를 해왔는데 트럼프는 뭘 할 만한 외교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이 분의 손에 달려있는 걸로...(?)


시작이 북조선이었으니 미국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 해도 북조선이 계속 방향을 유지한다면 앞일은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남북간에 정상끼리 핫라인도 뚫어놓고 있는 상황이고 정상회담도 한번 더 열기로 했으니 한국으로서도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말 문재인이 운전사로 보이고 싶다면 지금이야말로 기회 아닐까? 실제로 외신들은 북미간의 관계가 냉랭해진 것을 보며 문재인의 위치에 대한 회의감을 표해 왔다. 오히려 지금 발휘하지 못한다면 운전사라는 아리송한 지위도 박탈당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난 운전사라는 이야기가 떠도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납득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북조선이 키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고 북조선이 키를 틀어버린다면 모든 게 끝나지 않나? 싶었는데 북조선이 틀기 전에 미국이 점점 옆으로 다가오더니 확 밀쳐버린 꼴... 이 장면에서도 문재인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

출처: 로이터

트럼프 이 인간은 대체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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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142190


요즘 김승섭 교수가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을 보고 있다. 많은 사회적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약자들의 건강상태가 이들이 처한 상황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이를 개선하려면 어떤 점을 고쳐야 되는지 상세히 서술한 책인데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낙태에 관한 것이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이 여성들의 낙태를 금지하고 의무적인 출산수를 정해놓는 등 엽기적인 산아정책(?)을 내놓은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여기에서도 유독 임산부들이 겪었어야 될 고통보다는 아이가 너무 많아져서 나라가 망하다시피 한 나머지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끝으로 마무리를 짓는 경향이 큰데 임산부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통계가 있다. 임신 중이나 출산 후 7주 이내로 사망할 확률인 모성 사망비이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낙태를 금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이 그저 슴풍슴풍 아이를 낳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자들은 낙태를 할 방법을 찾게 되었지만 제대로 된 수술에 의한 낙태를 할 수 없으니 불법시술이나 아니면 그냥 무식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산을 하면 하는대로 문제이다. 산아가 자연스럽게 급증할 수밖에 없으니 제대로 된 산부인과 환경 속에서 출산을 하는 것이 힘들고 그 결과 병을 얻거나 낙태법 시도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성 사망비는 차우셰스쿠 정권이 망한 뒤로 급감하게 되면서 이 정책(?)이 얼마나 악영향을 미쳤는지가 증명되게 된다.

한국에서는 병원 자체가 그렇게 위생적이지 못하다거나 하지는 않으니 이런 위험까지 감수하지는 않게 되지만 여전히 많은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은근슬쩍 해주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게 된다. 가출 청소년의 경우 많은 여성 청소년이 또래의 남성 청소년, 혹은 성인 남성에 의해서 임신을 하게 된다. 안 그래도 돈이 없어서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다가 그런 일을 겪게 되었는데 막상 어디에서 큰 돈을 구할 수도 없을 경우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럼 더욱 청소년의 몸이 망가질 확률이 높다.


http://v.media.daum.net/v/20180523010056151

거참 웃으면서 개소리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앞서도 말했지만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정작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임산부 쪽의 의사가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다. 낳을지 안 낳을지에 대한 선택을 하는 것이 마치 죄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열 달을 몸 속에 품어야 하고 낳아야 하고 결국 기르는 과정까지 임산부의 몫인데 그걸 무시하는 듯 생명이므로 낳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저런 식으로 꺼낸다. 가출 청소년의 경우에도 집으로 돌아간다 한들 선택지는 많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됨으로써 청소년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없어진다. 낙태를 하거나 아이를 낳아도 자신의 아이로서 기를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고 이 선택은 청소년의 보호자가 하게 되니깐.(천종호 저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참고)

자해를 한다면 모를까 자신의 몸 상태를 자신이 결정할 권리를 계속해서 부정하는 것은 결국 가부장제적 논리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딸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낙태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했던 옛날이나 고령화 시대나 (임산부의 소중함은 내팽게친)생명의 소중함을 논하며 무조건 낳아라를 외치는 지금이나 똑같은 상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최근 낙태죄 사례도 "상대 남성의 집안의 대를 이을 아이를 임신했는데 이를 낙태하자 남성이 낙태죄로 고발해 처벌된" 경우이다. 낙태뿐만이 아니라 출산 과정에서도 임산부 본인의 의사가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제왕절개냐 자연분만이냐... 당연하다시피(?) 제왕절개로 낳으면 많은 불이익이 있을 거라 협박이 나돌고(물론 근거는 빈약...) 자연분만으로 해야 한다는 강압이 따른다. 임신을 하기 전부터 출산 후까지 자기 의사에 따라서 결정하는 경우는 아마 성인 미혼모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물론 이 경우도 경제적 문제에 따라 좌우된다.)

책임의 문제는 충분히 차고 넘칠 정도로 임산부 쪽이 지게 된다. 물론 아이의 아버지가 혼자서 기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아이의 어머니 쪽이 혼자서 기르게 된다. 가출 청소년 같은 경우 누가 아버지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흔하고 누군지 안다 해도 찾아보면 보이지를 않는다. 가출 청소년 같은 경우가 아니라고 해도 남자 쪽이 확실하게 책임을 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저 기사에 나오는 이야기는 여자 쪽이 책임을 지지 않으니 낙태가 발생한다고 한다. 아니 그 낙태 과정에서부터 여자는 상당한 부담을 가지게 되는데 뭔 헛소리를 공개적으로 하시는 건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태아의 경우도 생각해 보면 어거지로 낳았을 경우 (특히 저 분이 말하는 강간의 경우)부부 간의 분담을 생각할 수 없으니 산모가 독박을 써야 한다.(물론 평범하게 결혼을 한 경우에도 그럴 확률이 높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울 경우 무언가를 제대로 챙겨주기 더 힘들어진다. 임신했을 때에도 제대로 챙겨주기 힘든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데 태어난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 1945년 네덜란드 기근 시기에 태아였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본 결과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세 배, 조현증에 걸릴 위험은 2.6배로 나오는 등 상당히 유의미한 수치로 위험성을 나타내었다.(<아픔이 길이 되려면> 중에서) 딱히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 같은 상황이 아니어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기는 불행해질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낳아서 기르면 행복할 것이다라... 당사자 두 명이 이미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와있는데 저 교수님은 뭘 본 것일까? 아니 뭐 보지를 않았겠지.

간단히 말해서 너네가 대신 낳아주고 길러줄 것도 아닌데 뭘 강요하거나 한다고 해서 들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꼰대이다. 뭐 대단한 이야기를 보고 이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도 아니니 결론도 그냥 대단하지 않게 내는 게 맞을 것 같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왜 자기들의 잣대로 재려 드는 건지...


*쓰고 나서 보니 여성의 아픔을 이야기한 걸로 인용한 책들은 둘 다 남자가 쓴 책이고 저 헛소리를 하는 분은 여자네... 인권문제를 가지고 성별 따지는 것도 그렇지만 명예남성이라는 것이 정말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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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메갈리아 관련 페이스북에 좋아요 표시를 한 것 때문에 불이익을 입고 페미니즘 관련 글에 관심을 표했다는 이유로 손목 비틀려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등 고통을 겪은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페미니즘 진영에서 감싸려 했던 것에 대해 메갈리아가 자기들과 같은 진영이므로 감싸는 진영논리인 것 아니냐 하는 말이 클리앙에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 댓글에 이런 터무니없는 논리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뭐 클리앙뿐 아니라 여초 사이트를 제외하면 다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메갈리아와 한국 페미니즘을 한대로 엮어서 공격을 해왔던 게 자기들이면서 정작 페미니즘이 메갈리아와 연관된 사람들을 감싸는 건 또 뭐라고 그러는 건 뭔가 싶다. 자기들이 생각하는대로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닌가? -_-; 메갈리아를 한국 페미니즘의 전부라 할 수 없겠지만 페미니즘의 한 형태로 봐야 되는 것은 딱히 부정할 구석도 없는 것일 텐데 이걸 진영논리라고 본다니 뭔가 싶다. 그리고 김자연 성우나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겪은 문제는 페미니즘만의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 자유로운 생각이 오가야 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사상을 억압하고 이것이 실제 개인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면 민주주의의 근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생각이 실제로 어떤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은 한 그 사람이 실정적인 제재를 당할 이유는 없다. 하긴 이런 식으로 말하면 메갈리아가 실제로 폐해를 입히고 있다는 식으로 항변할 사람이 수두룩한가... 오히려 그런 제재를 당할 경우 다른 사람들까지도 자신이 가진 생각을 검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을 우리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으리라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이런 식인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니지 오히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 나아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메갈리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논리(?)를 받아들인다손 치더라도 이해가 안 가는 장면들이 있다. 최근 예를 들면 수지 배우의 양예원 모델 청원 독려건. 수지 배우는 양예원 모델의 성폭행 피해를 안타깝게 생각해 이에 대한 청원을 독려했지만 난데없이 공격을 받았다. 페미니즘이 아니냐고. -_-;;; 이에 대한 수지 배우의 답변은 더욱 골때린다.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에서 나온 행동이었다고... -_-;;;;; 그리고 이것을 언론 등에서 마치 잘된 답변인 것처럼 포장을 한다. 수지 배우 본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소속사에서 시킨 것으로 생각되지만 페미니즘과 휴머니즘을 따로 떼어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를 않는다. 휴머니즘이 없는 페미니즘은 대체 무엇인 건지... 애시당초 이런 골때리는 답변을 나오게 만든 "너 페미니스트 아님?"은 대체 무엇일까? 페미니스트면 안 된다는 이야기인 것인가? 메갈리아라서 안 된다가 아니라 아예 페미니즘에 발을 들여 놓지 말아라 이런 이야기 아닌가.

 

골때린 답변으로 페미니즘을 부정했음에도 다음엔 이런 게 올라왔다. 명목은 이 청원으로 인해 사건 이후 스튜디오를 양도받은 분이 피해를 입고있다이지만 "15만 돼지를 대표해서 처형되어야 한다"(원문엔 "돼지의"라고 되어있던데 국어공부 좀...)라고 하는 걸로 보아 영락없이 메갈리아, 페미니즘 이야기이다. 뭔 대단한 일이라도 해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거면 모르겠는데 위에 말했듯이 성폭행 피해자를 위해서 청원에 서명 좀 해달라 이게 전부인데도 이런 적개심을 품는다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 싶다.

그러고 보니 수지 배우 소속사가 JYP...

레드벨벳의 아이린 가수의 경우에는 더 악질적인 행위(?)를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대체 왜 적개심을 가져야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일 이후 나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으로 생각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글을 쓰면서도 웃음만 나오네...) 난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그 사태를 일으킨 분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이 어떤 공격성(?)을 발휘하고 있는 건지 딱 잘라서 생각할 수는 없지만 여자들 사이에서 이 책이 상당한 공감을 얻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없는 이야기가 들어간 것도 아닐 테고 이런 책을 읽었을 뿐인 아이린 가수가 이후 남자들에게 뭔 제스쳐를 취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왜 공격부터 받아야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제스쳐를 취할 수도 없는 입장이겠지만)

주니엘 가수 같은 경우엔 데이트 폭력을 주제로 한 노래 <Last Carnival>을 불렀다가 된통 얻어맞은 사례가 있다. 이 노래의 내용이 딱히 다른 남자들까지 다 싸잡아서 부른 것도 아니고 그냥 자신이 자신의 전 애인에게서 당했던 일을 불렀던 것이었다. 아니 애시당초 자신이 당한 일이든 아니든 노래의 주제를 이런 식으로 비난받아야 될 이유도 없다. 오히려 다양한 주제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을 환영해야 될 일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저 다양한 비난이 날아들었을 뿐이다. 약간 다른 일이긴 하지만 아이유 가수가 부른 <Zeze>가 비난을 받았던 것과 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너의 생각은 나에 의해 재단되어야 한다는...

 

유명한 그림이라 다들 알겠지만 위쪽 아래에서 세 번째 줄.

 

겉으로는 메갈리아를 내세우지만 근본적으로는 페미니즘 자체를 무너뜨리고 싶어하는 모양새가 너무 뻔히 보인다. 이걸 매카시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불러야 되는 건지 나로선 잘 모르겠다. 요즘 들어선 태국의 왕실모독죄와 별 차이 없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한데... 남성모독죄? 키득.

요즘 페미니즘에 대해 현실을 보지 못하는 세력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충분히 현실을 겪은 분들이 여기에 더 전념하게 되고 현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 단편적인 것으로 모든 기력을 소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여기에 돌을 날리기에 바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뭐 나도 현실을 보지 못하는 건지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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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갔는데 영화 외에도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나는 로힝야족의 난민 사태에 대해서이고 하나는 독일로 파견되었던 간호사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한국에선 독일로 파견되었던 선생님들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선생님들 당신의 이야기로는 독일 파견 이야기야말로 하나의 기회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독일에 막상 왔을 때엔 교육 없이 바로 투입된 분도 있었고 환자의 수발을 일일이 다 들어야 하는 등(조정래 작가의 소설 <한강>에 잘 나와있다) 고초를 겪어야 했던 것도 있고 고향 땅이 그리운 것도 있었겠지만 적응을 하고 보니 수동적인 자세를 강요하는 한국의 사회와 가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독일이었던 것이다. 번 돈으로 차도 직접 몰고 다닐 수 있었고(사우디 아라비아 이야기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노동절에 한복을 차려입고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행진을 할 수도 있었다.(지금 한국 간호사들이 노동운동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요즘엔 태움 같은 이야기가 많이 돌아서 완화되긴 했지만...) 계약 기간이 다 되어서 독일에서 쫒겨나게 될 뻔했을 때에도 당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독일 정부에 맞섰고 그 결과 독일 영주권을 쟁취해내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와 같이 레즈비언이었던 분들도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지금도 가족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털어놓았다가 관계가 파탄난 경우가 나오고 그런 결과가 나올까봐 두려워 숨기고 있는 LGBT들이 수두룩하다. 하물며 1960,1970년대면 말 다한 거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어거지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물론 그 때에도 다른 곳으로 도망쳐서 같이 살았던 분들이 있다고 하지만 극소수이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에 오니 이런 것마저도 자유로웠던 것이다.

내가 어제 짜증을 냈던 획일적이고 왜곡된 역사관 강요의 폐해솔직히 그냥 맹목적 문재인 지지의 폐해...를 이런 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것만을 강조한 나머지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정작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유리천정을 논하고 있는 판인데 그 당시 독일로 일을 하러 갈 수 있었던 선생님들을 불행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국가주의를 내세운 박정희식 생각은 이제 걷어치울 때가 지나도 너무 지난 것 같은데 말이다.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807447


영화 <공동정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용산참사 피해자들이 어디까지나 폭도여야 하는 것처럼 구는 자칭 보수 쪽의 태도도 짜증나지만 어디까지나 불쌍한 피해자여야만 하는 것처럼 구는 자칭 진보 쪽의 태도도 짜증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피해자"로만 보려 하다가 <공동정범>식의 카메라가 작동하자 동정 속에 숨기고 있었던 속내를 드러냈다는 게 참으로 아니꼬왔다.


이 때 어딘가에서 들려왔던 비명에 가까운 "에엑?" 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누군가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도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가 다 자기 자신, 개인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순간 아무리 동정이라 한들 일방적이고 독선에 가까운 행위에 불과할 수 있다. 난 그런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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