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기사 2018. 4. 7. 17:19



뉴질랜드에서 동성애죄를 범했던 사람들의 범죄기록이 국회의 무기명투표 결과 지워지게 되었다. 열여섯 살 이상인 남성이 합의 하에 하는 섹스는 1986년에 비범죄화되었지만 그 전에 행해진 범죄기록들은 남아 범죄사 기록물에 유지되어 왔다. 1965년부터 동성애를 합법화한 1986년까지 동성애죄로 잡혔던 남성은 천 여명에 달한다.

재정부 장관인 Grant Robertson 씨는 국회에서 우리는 오늘밤 국회에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저는 동성애 남성으로서의 삶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었고 국회에서 비난과 공세를 당한 것도 제가 게이라서가 아니라 재정부 장관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겪어야 했던 두려움과 존재가치의 상실과 모욕을 저희가 쉽게 물리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많은 세대를 거쳐 형성된 것이니깐요.”라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인 Andrew Little 씨는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된 이후 트위터를 통해 오늘 저희는 정의롭지 못했던 동성애죄를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고 언급했다.



이 법안은 이전 정부에서 활동가 Wiremu Demchick 씨가 동성애죄로 체포되었던 익명의 친구들을 대표해서 2017년에 발의한 것이다. 친구는 이 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십삼 년이 지난 지금도 자기낙인을 찍게 하고 존재가치가 상실되는 것 같으며 불의한 죄이자 모욕으로 남아있습니다.”라고 썼다.

국회는 지난 6월에 공식적으로 사죄를 하며 무수한 상처와 고통을 이 남성들과 가족들에게 계속해서 안겨주고 있으며 체포 경력의 효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열여섯 살 이상의 남성 간의 성관계는 뉴질랜드에서 1986년에 동성애법 개정안을 통해 합법화되었다.

 

이 법안을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보수적 크리스트교 단체 우려하는 시민 연합은 이 법안에 반대하는 팔십만 명의 서명을 모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도 지난 1월에 수천 명의 남성들에게 동성애죄를 소급적용해서 사면해주었다. 관련 전과를 가진 시민들은 내무성을 통해서 범죄기록이 삭제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independent.co.uk/news/world/australasia/new-zealand-gay-criminal-records-wipe-convictions-a8287266.html


만약에 한국에서 동성애죄 같은 게 있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계속 유지하는 건 힘들었겠지만 뉴질랜드처럼 기록을 없애자하면 엄청난 난리가 벌어졌을지도... 지금도 단순히 LGBT의 인권을 보장하자는 것에 발끈하는 사람들이 죄여야 마땅한(?) 것이 죄가 아니게 되었다고 해봐. 있었던 조례도 엎어버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왔을지. 동성애죄 유지하는 건 힘들었을 거라고 했지만 유지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 ㅋㅋㅋ(먼산) 옛날 정부가 이런 것에 대해서 무지하다시피 했던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되는 건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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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만 해도 개인주의라는 것은 상당히 낯선 개념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같은 곳에서만 이뤄지는 것이고 한국에 이런 개념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경각심을 가졌다. 이 때나 그 전에는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동일한 개념인 것으로 착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니깐 한국에서 개인보다는 공동체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삭막한 사회, 시골은 정이 넘치는 공동체로 묘사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요즘 들어선 한국 시골도 그런 식으로 바라보기엔 무리가 생겼는지 외국의 두메산골을 찾아다니는 방송이 나오고 있다.(가끔씩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하는 때 외엔 TV를 안 봐서 정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대중문화가 당연하다시피 돌아다녔던 시절에 성장기를 거쳤으니 나도 개인주의에 대해서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공동체주의가 더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인상을 바꾸게 된 것이 장애인 문제였다. 


http://news1.kr/articles/?3271190

교육감도 소신대로 했다는 이유로 도망쳐야 하는 상황...


 가장 가까운 예로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문제가 있다. 장애인들이 편하게 다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짓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구에 이미 있다!"를 논리를 내세운다. (그걸로 충분하면 뭣하러 반대를 무릅쓰고 짓는다고 생각하는지...) 이 대신 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며 난리를 피우는 것이 장애인이 다니는 것 자체가 자기 동네에 불이익이 된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원래 내가 인식해왔던 공동체주의라면 다른 사람이 불편함을 겪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시설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반대한다면 타인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라고 생각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이기주의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옛날 공동체를 생각해 보면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라기보다는 그냥 방치하는 방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옛날이야 그런 동네 바보형이 한 동네에 한둘 있을까 말까했지만 도시가 생기면서 이런 바보형들(생각해 보면 이런 곳에 누나라는 단어는 없다. 옛날 바보누나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진다. 정신적인 문제뿐 아니라 육체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장애인들이 모이는 시설도 마찬가지다. 그 곳은 혐오시설이 되고 이런 시설 하나 짓기 위해 장애인들의 가족들은 마음으로든 신체로든 무릎을 몇 번이고 꿇어야 한다. 시설이 지어지지 않는 것만의 문제로 보기도 힘들다. 그냥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근처에 장애인이 앉아 있을 확률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만큼 장애인들은 집단 앞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오아시스> <Wonder>


비장애인을 돌아봐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여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보면 가정 내에서도 상당한 희생을 강요당해 왔지만 이게 사회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된다. 동네에서 잔치가 열렸다고 생각해 보자 그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에 남자가 들어갈까? 조금만 생각해봐도 쉽게 들어가지지 않는다. 어떤 걸 설치하거나 하는 일은 남자가 해도 힘은 덜 들어가지만 그에 비해 시간은 상당히 긴 준비와 뒷정리들은 모두 여자가 맡고 있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된다. 실제로 지금도 그런 식인 것 같고.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서 여자들의 희생이 강요된다면 그것이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같은 일부 힘이 있는 사람들의 친목회에 다수의 힘이 없는 사람들이 소모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여자들이 불이익을 넘어서 성적으로 위협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미투 운동으로 알리기 시작하자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지금도 이런 개판 오 분 전 상황인데 옛날엔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지만 그 이상도 우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마을을 위해서 남편과 사별한 여자에게 목숨을 끊게 하여 열녀비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꽤나 신빙성 있게 들린다. 아니면 독수공방하게 된 여자를 위해서 보쌈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결국엔 여자 개인의 삶은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남성 위주의 집단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손목을 비틀비틀


LGBT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혐오 세력에 대해서 이건 차별이다를 계속 외치니 기껏 한다는 말이 "내 눈에 띄지 말라"였다. 그런 말이나 지껄이는 모습을 보는 내 눈은 어쩌고...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옛날에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을까? 동성애자이건 자기의 몸과 마음이 품고 있는 성이 다르건 간에 기존의 관습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고 그것을 마을의 경사처럼 여기는 것이 옛날의 공동체였다. 옛날 기록에도 동성애 관련 기록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록에 불과할뿐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힘이 없는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공동체를 좋게만 볼 수 있을까? 이것이 좀 더 나가게 되면 국가주의가 되게 된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고 일부의 마음에 드는 사고방식에 반하는 사상은 배척당하는 세상. 한국식 민주주의를 외쳐도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던 세상. 자기들의 마음에 안 드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생활을 가지고도 배척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세상.

이렇기에 개인주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이 존재를 인정하기 위한 개인주의인 것이다. 말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본 결과 얼핏 보기엔 효율적으로 생각되는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이끄는 방식이 많은 사람이 이끄는 방식보다 뒤쳐지는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이 과정이 지난해 보일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끌고 갈 때에 보이지 않았던 측면을 여러 사람이 끌고 갈 때에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결국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가 악인 것처럼 말을 해왔지만 내가 짚는 것은 공동체를 가장한 일부의 권위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이다. 이런 것을 내포하고 있는 허상의 공동체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일개 개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개개인이 같이 이뤄내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집단 이기주의를 위한 나중에로 억누르는 한 이러한 진보는 이뤄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같은 선상으로 놓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정말 제대로 된 개인주의는 상대방을 인정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서로의 행복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이타주의이다.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말에 따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개인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역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말해왔듯이 집단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제대로 된 공동체의 화합을 만들려면 이러한 이기주의를 다수의 합의에 의해 억제할 필요가 있다. 지금 현재로선 이런 면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건지 아리송한 면이 있지만 발전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이 발전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생각을 틈틈이 해봤는데 막상 글로 옮기니 갈수록 중구난방이 되는 것 같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활용하느냐이지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념의 작용을 풀어쓰는 것은 누구에게나 귀찮은 일이기에 결국 개념 자체에 원죄를 뒤집어씌우는 오류를 흔히 발견하게 된다. 지금 일고 있는 개헌 바람도 비슷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꾼다 한들 좋은 방향으로 바뀔 확률이 높은 건지 알 수 없는 대통령 임기와 의원내각제를 서로 당리당략에 맞추어서 싸우고 있을 뿐이지 정말 원래의 헌법이 그렇게 잘못된 건지, 법률로 정하면 될 일들까지 시시콜콜 개헌에 맞추고 있는 것이 맞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바꿔버리면 나중에 아베나 시진핑 같은 사람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차라리 엎어지는 게 답인 건지도...

제대로 된 마무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는 생각났나 싶지만.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글로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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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다른 사람의 글 2018. 3. 30. 17:20

http://www.vop.co.kr/A00001271021.html


언론에서 보도해주지도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겠지만 오늘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김득중 씨가 단식에 돌입한 지 삼십 일째가 되었다. 계속되는 전원 복직 번복과 간보기에 가까운 행동을 일삼는 경영진의 태도에 항거하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도 좋은 소식은 들려오고 있지 않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김득중 지부장의 단식 중단을 촉구하며 감옥에서 그저께부터 단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열악한 감옥환경에서까지 동지를 외면할 수 없다며 시작하게 된 슬픈 행동. 이런 슬픈 행동들 언제까지 이어져야 될 것인가...


출처: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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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며 아일란 셰누 군의 시신 사진을 바라본 게 삼 년 반 전. 최근에 올라온 참여연대 팟캐스트에서 헬프 시리아의 압둘 와합 사무국장의 말을 듣고 위의 트윗이 다시 떠올랐다. 


(다소 부정확한 한국어로 설명된 것을 풀어본 것이기 때문에 원래 의도와 다른 말이 있을 수 있음)

"그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엔 제가 난민캠프에 있었어요. 요르단에 있는 자타리 난민캠프의 난민들과 있었는데 아동 관련 심리 교육과 치료를 맡고 있었는데 그 때 아일란 셰누의 사진이 돌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때엔 난민들과 같이 생활하고 놀고 치료하고 공부했었는데 난민들은 그 사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저는 한국에서 매일매일 어떤 뉴스가 나오고 있는지 보았는데 한국 사회에 상당한 난리가 났었잖아요 그 때. 사람들이 촛불 시위도 많이 하고 SNS와 모든 시민단체에서 사용하고 저걸 어떡해 하는데 난민캠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예요. 되게 황당했어요 솔직히. 

"아니, 전세계가 사진 한 장에 난리가 났는데 우리 시리아인은 당사자 아냐? 우리가 신경을 안 써?"

 그런데 어떤 아버지가 날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한 사진 때문에 국제사회에 난리가 났는데 아일란 셰누 전에 죽었던 오십만 명은 왜 신경을 쓰지 않는 거야? 이제야 그 한 명 때문에 신경을 쓰는데 반짝 관심 아냐? 거짓 관심 아냐? 자기 감정을 위해 흘린 눈물이지 시리아 난민을 위한 건 아니잖아?"

이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처음엔 그 아버지의 말이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 아저씨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셨어요. 

"난 폭격으로 인해 자식을 세 명이나 보냈어요. 한 아이는 손상이 너무 심해서 시신을 수습도 못했고 한 아이는 아예 땅 속에 묻혀진 건지 시신도 못 찾았어요. 한 아이는 병원에서 거의 두 달 동안 치료를 받으며 매일매일 생사를 넘나들며 고생을 하다가 결국 죽었다고요." 아버지가 말하시길

"내 아들들 죽었을 때엔 보지도 않고 있었던 것에 답답함을 느껴요. 그 죽었다는 아이나 먼저 죽은 수십만 명의 아이나 똑같은 생명인데 수십만 명의 아이들에 대해선 신경을 왜 안 쓴 거예요? 이제 와서 한 아이를 신경쓰고 있다 그런들 우리는 기대하지 않을 거예요. 이 관심은 일시적인 관심이라고요. 며칠만 지나면 사람들이 다 잊어버릴 거고요."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것에 대해서 제가 그 땐 크게 신경을 못 썼는데 그로부터 이 년 반, 삼 년이 지났잖아요? 지금 보니깐 그 아버지의 말이 맞더라고요. 그 때 아일란 셰누의 이야기는 일 주일 정도만 지속되었고 사람들이 자기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다른 걸로 바꿔버리고 하면서 사진이 확 없어졌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죠. 시리아 난민에 대한 관심은 끊겼고요.

물론 그 사진 한 장으로 시리아의 상황과 난민들의 실상을 많이 알리게 되었지만 그건 일시적이었다고 보고 있고 한국 단체와 함께 터키에서 시신을 발견했던 곳으로 가서 가족과 친척 분들을 만났는데 아일란 셰누의 아버지가 계속 눈물을 흘리셨어요.

"아들이 그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배를 타고 유럽에 갈 생각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가족을 배에 태우고 유럽으로 갈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왜냐하면 어떤 행동을 취해도, 난민생활을 한다 한들 천천히 죽는 거고 배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죽는다 한들 빨리 죽는 거지 어차피 죽는 거 천천히 죽으나 빨리 죽으나 그 차이일 뿐이니깐요."

다른 시리아 난민들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의 여부예요. 난민캠프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죽을 건지 아니면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죽을 건지 아니면 시리아에서 폭격을 당해 죽든지..." 이런 선택 외엔 없다고 여기는 거죠. 잔혹한 현실입니다."


시리아뿐만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벌어진 대량학살 사건·테러 사건은 바로바로 전달되지만 중동이나 아프리카, 잘 사는 나라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에서 이보다 더한 일이 벌어져도 잘 보도되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매우 적다. 적은 정도가 아니라 없다가 정확할 것이다. 물론 사람이 세계의 모든 일에 다 관심을 가질 의무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압둘 와합 사무국장도 지적했듯이 뭔가 자극적인 일이 생기면 그런 자극을 감정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런 감정적인 소비는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자기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이미 모든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하긴 생각해보면 굳이 다른 나라로 갈 것도 없다. <공동정범>에서 이충연 씨가 다른 참사 피해자와 유족들의 오해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야 했기 때문이니깐...


끝난 문제라면 그걸 핑계삼을 수도 있겠지만 시리아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당장 시리아를 검색해서 나오는 기사도 정부군의 공격 예고 기사이다. 사람들은 계속 고통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은 손을 내밀기는 커녕 그 곳을 보지도 않고 있다. 


아니면 뭔가 또 자극적인 먹이가 있어야 되는 걸까...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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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media.daum.net/v/20180328223601389



정봉주 고발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믿기가 힘들었다. 구속되기 직전에 그것도 어머니가 쓰러지기까지 한 날에 그럴 정신이 있긴 할까 싶었고 다른 성추행 고발을 당한 진보 정치가들이 보여준 태도와는 달리 상당히 믿는 구석이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믿는 구석이 당당함이 아닌 인맥에 있었던 것 같지만...) TV조선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저 사람 그냥 장사꾼이었나?' 하는 생각에 관심을 끊었지만 그 전까지 내가 조금이나마 접했던 정봉주의 모습에서 잘못한 것이 있는데도 없다 우길 그런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도 성추행 고발을 실행한 피해자와 프레시안 쪽을 생각해 봤을 때 의심을 하기도 뭐했다. 실제로 빠들이 날뛰면서 상황이 종결된 지금에 와서까지도 자신들이 마음껏 가한 2차 가해의 원인을 프레시안에 돌리며 우기기에 오기까지 별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해도 훤히 보이는 난동을 보며 피해자와 프레시안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애매모호함을 전에 민병두 건을 다루면서 그냥 이름만 잠시 언급하는 정도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종결되었다.



나는 꼼수다를 들으면서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적극 지지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 중에 남은 사람은 주진우 기자 한 명뿐이다. 아니 뭐 주진우 기자도 정봉주 건에 대해서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던 걸 생각하면 믿을 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촉이 발달해 있고 의혹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끈질기게 추적하는 걸로 명성을 떨친 기자가 바로 옆에 있는 의혹에 대해서 그것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던 날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다. 정봉주 방패질에 나선 건 김어준 김용민이지만 주진우 기자도 이들과 계속 같이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정봉주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건지 몰랐을 리가 있을까? 설마 유시민처럼 파도가 일고 있는데 조개 줍는다 식으로 생각한 거라면...



결국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투 운동을 지지했든 아니든 이번 일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든(뉘우친 사람이 있긴 한가?) 아니든 간에 피해자에 대한 사과·걱정보다는 계산이 앞선다.(하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판에 사과할 게 있나.) 이런 게 바로 김어준이 막으려 했던(?) 진영 분열의 효과다. 정작 중요한 본제를 제쳐두고 서로의 유불리만을 따지게 된다. 이런 소용돌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게 되고 결국 피해자의 상처는 피해자만 더욱 깊이 떠안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사건을 망쳐놓고서 잘도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라는 말이 나오나 싶다. 아 이건 위대하신 시민들의 검증을 거쳐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건이니 괜찮은 걸까? 키득.

지금으로선 이런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게 끔찍하게 여겨질 뿐이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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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걸 보고 순간적으로 내가 무슨 헛것을 보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계속 쳐다봐도 저 현수막의 내용은 그대로이니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양천구청을 신월동으로 옮기겠다라... 구청을 옮길 자리가 이 근처에 있긴 한 건가도 잘 모르겠고 옮긴다 한들 뭐가 바뀌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목동 주민들이 가만히 있을까? 도대체 이게 균형발전과 무슨 관련인가 지역 간의 갈등만 키우는 거지. 



하긴 생각해보면 다짜고짜 전재산 거는 분도 있으셨고(저번 지방선거 하고 총선에 나왔는데 이번에도 나오나?)



국회의원 권한으로 불가능하고 대통령이라 해도 불가능하며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은 십 년 내에 GDP 10만 달러 공약을 내거셨던 분도 있고(김현배)



고문수사관이 구청장 3선을 달리시질 않나...



강서구 시절부터 국회의원 6선을 달리신 분이 말년에 선거법 위반으로 끝나고...(김영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25/0200000000AKR20160325161351004.HTML


지난 총선 때엔 우연히도(?) 후보 세 명이 모두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걸로 명성을 떨쳤지(?)


http://www.nocutnews.co.kr/news/4876265


그렇게 양천제일 음주운전 대회에서 우승한 김용태는 "음주운전으로 갈고 닦은 드리프트를 보여주마!"를 외치며 자기 이익에 따라 정당을 왔다갔다 난리부르스를 췄잖아 ㅋㅋㅋ




현 구청장은 위안부 피해자 추모 동상 립서비스했었지.


결국 뭐 양천구 정치가들에게 내가 바랄 수 있는 게 뭔지를 모르겠다. 조금만 살펴봐도 개판이니 정의당 쪽 후보마저도 저런 이상한 말이나 하고 있는 거잖아? 아니면 다른 지역 정치가들도 대부분 저런 식인 건가? 지방선거를 두 달 정도밖에 남겨놓고 있지 않은 현재 내가 찍을 수 있는 표의 수는 극도로 줄어들어 있다. 이 정도면 뭣하러 투표에 참여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 외엔 들지도 않고... (차악을 선택하라는 개소리나 좀 안 들렸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모두가 꼭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투표시간을 대폭 늘리자고 했었지만 지금으로선 나 자신도 이렇게 의욕이 생기지 않는데 내 말 듣지도 않을 타인에게 뭣하러 투표를 강권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만 든다.


*억지로 투표소에 발을 들여서 억지로 찍어봤지만 결국 구의회와 시의회 지역구는 찍지 못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의당은 아예 없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기권했다. 양천구청장도 기권할까 하다가 억지로 양성윤 후보를 찍었다. 의욕이 없어도 너무 없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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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어금니 아빠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중앙일보에서 공익을 위해서라며 용의자의 사진을 공개해 버리자 경찰 쪽에서도 공개를 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전개는 옛날에 이명박 정부에서 용산참사를 덮기 위해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강호순 사건의 전개와 똑같다. 이 때에도 중앙일보가 먼저 공개를 했고 뒤늦게 경찰에서 이에 응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주장되는 것이 알 권리이다. 용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면 다른 피해자를 알 수도 있다, 그 사람을 경계할 수 있다는 이유들이 나오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다. '화제의 인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다.'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잡힌 사람의 얼굴을 지금 알아서 어떻게 할 것이며 안다 한들 그 사람이 무기징역(이라고 해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고)이나 사형을 받지 않는 한 언젠가는 결국 출소를 하게 될 텐데 사람들이 알고 거부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디로 가야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알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딱히 고려사항이 아닌 것 같다. 조금만 잘못을 저질러도 다 죽여버리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한 옛날 법들이 나오면 좋아할지도. 그리고 처벌을 결정하는 것은 법원이니 신상공개를 할지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도 법원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경찰이 고심을 해서 내리는 거라느니 하면서 당장 면상을 까발려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다수를 점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신상공개 결정 알 권리인가) 다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옳은 거라면 두테르테도 딱히 욕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으로 가겠지만 이런 말을 하면 "아, 그건 아니고..."라고 하겠지. 아니고는 개뿔이.


김종대 의원이 이국종 교수에게 한 말이 계속 논란이 되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개인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는 개인정보인 것이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침해하는 행위가 옳은 것인가? 이것에 대한 고민이 없이 그저 김종대 의원이 이국종 교수를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검색순위 1위에 올린 것이다. 김종대 의원이 말한대로 "관음증의 나라"임을 입증하듯이. 그리고 김종대 의원이 지적한 것은 이런 개인정보를 퍼뜨린 정부와 언론이었지만 그 정부와 언론은 사라지고 김종대 의원과 이국종 교수만 남았다.(http://v.media.daum.net/v/20171122171604521)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하는 건 이국종 교수를 비롯한 병원 사람들이지 그것을 일반시민들이 안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구태여 이것을 알리면서 상황이 커졌다. 김종대 의원을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들 중에서 위에 인용한 기사 외에는 모두 시민들의 화를 자극하는 기사들밖에 없었다. 자기들의 언론으로서의 책임은 덮어버리고 모든 화살을 김종대 의원에게 날렸고 멋들어지게 성공한 결과가 지금이다.


인류는 호기심을 통해 발전해 왔다. 하지만 그 호기심이 지나칠 경우 오히려 비극을 낳은 경우 또한 있었다. 위에 열거한 두 가지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호기심이 비극을 낳은 경우밖에 안 되고 거기에 언론과 정부가 장사를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런 "알 권리"라는 이름의 호기심이 개인정보를 마구 들춰보고 그것을 통해 장사를 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인지, 개인정보가 마구 돌아다니고 빅데이터 운운하며 이걸 부추기는 세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는 것 아닌지하는 생각에 더더욱 부정적인 기분이 자리잡는다.


이건 다음 블로그에 작년 11월에 썼던 글이다.


이 때만 해도 분명 피해자는 공개되어서 2차 피해를 입고 있는데 가해자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논리가 돌고 있었다. 난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어서 저렇게 썼는데 요즘 시류가 이상하게 바뀌었다. 발단은 JTBC였다. 계속해서 성추행·성폭행 피해자들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상황에서 대담을 진행하여 가해자를 고발하는 방식을 썼다.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해자가 이렇게 나설 경우 그로 인해 나중에 가해자의 보복이 가해질 수 있고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나빠지면 나빠졌지 절대 좋아질 수 없다. 그렇기에 위의 논리가 나왔던 건데 이걸 JTBC가 이용하면서 또다시 언론의 규칙이 훼손되게 되었다. 물론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이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그걸 넙죽 받으면 안 된다. 피해자를 설득해서라도 익명성을 보장해 줘야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JTBC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점점 피해자에게 익명성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완전히 잊어먹게 된 것 같다. 도리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떳떳한 피해자(!)라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오늘 올라온 뉴스타파의 민병두 고발 영상에 대한 논란도 그렇다. 민병두는 본인에게 잘못이 없다고 했지만 결국 영상이 올라오자 의원직 사퇴를 해버렸다. 서울시장 경선 포기는 이런 영상이 올라올 경우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의원직 사퇴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자기에게 잘못이 없다면 버텨서 진실을 밝히면 될 일이고 그로 인해 오히려 다음 선거에서 유리할 수도 있다. 영상 하나 올라왔을 뿐인데 의원직을 날렸다는 건 결국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영상에서 나오는 민병두의 변명에서부터 전혀 신뢰가 가지 않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뉴스타파의 영상이 잘못되었다고 외치면서 그 중 하나로 JTBC처럼 얼굴과 실명을 까지 않았다는 말을 당연하다는 것처럼 한다. 그냥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막말로 자기들이 저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 당당하게 얼굴과 실명을 깔 수 있는 건가? 하긴 당해보지 않았으니 할 수 있다는 말을 당당하게(?) 할 것 같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김어준의 헛소리에 넘어가서 저렇게 나오는 것 같은데 김어준이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이 진영이 분열될까봐 예방차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김어준이 그 헛소리를 하는 순간부터 미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지지했던 사람들과 크게 여기지 않고 있다가 김어준 헛소리 듣고서 겁먹은 사람들로 나뉘었다. 후자에서 안희정·정봉주 사건 관련 기사와 이번 뉴스타파 영상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는 거고...(이렇게 되다 보니 자칭 보수들이 신나서 날뛰는데 그 사람들이 표현 면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있지만 나와 뜻이 맞는 댓글을 남기고 있다. 확실히 진영이 사람을 망친다.)

진영 논리 앞에서는 미투, 즉 인권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같다. 같다가 아니라 항상 그래왔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인권이 크게 훼손되었을 경우 그것이 자유한국당 쪽이 일으킨 문제일 경우 자칭 진보들이 신나서 날뛰고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일으킨 문제일 경우 자칭 보수들이 신나서 날뛴다. 거기에 피해자를 위한, 인권의 침해를 보완하고 발전시키려는 논의는 완전히 뒤로 제쳐진다.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해도 나중에 사건은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권은 항상 정치꾼들의 장사 대상에 불과했을뿐(미투 운동을 문재인 정부의 치적이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까지 나오는 판국...) 우선순위로 논의된 적은 거의 없었다.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친다. 결국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립 서비스만 바뀔뿐이지 마음은 그대로이고... 고민해봤자 답이 아예 없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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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기사 2018. 3. 9. 22:00


Viola Simic 씨는 2015년에 아들을 낳기 전에 아이와의 시간을 좀더 늘리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로 옮겨가야 하나 고민했고 결국 자신의 경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을 안는 결정을 해야 했다. Mercedes Benz의 노조의회에서 IT 매니저로도 일하고 있는 Simic 씨는 너무나 많은 동료들이 엄마가 된 초기에 급제동을 걸어야만 했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들을 위한 정규직 일자리의 문은 굳게 닫혀져 있음을 확인할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달 초에 독일의 금속노조가 행한 협상 덕분에 앞으로는 아이나 아픈 양친을 돌봐야 하는 직원들이 생겨나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게 되었다. 2019년 1월부터 노동자들은 IG Metall로부터 받는 봉급의 4.3% 인상을 약속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합해서 이 년 동안 근무시간을 일 주일에 스물여덞 시간으로 줄일 수 있고 후에 다시 정규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화요일에 노조는 백사십사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시간제 일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연방의 공식 통계를 인용하며 독일의 새로운 정부에게 정규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하도록 요구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에 스물여덞 시간 선택권을 얻게 될 Simic 씨는 "주머니에 돈이 조금 더 들어가는 건 언제나 기분좋은 일이죠. 하지만 저에게 중요한 건 노조가 새로운 근무 시간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거예요. 드디어 고용주들이 새로운 시대의 노동에 대해 무엇을 우선시해야 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노동 유연화 아이디어는 고용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 뿐만이 아니라 노조가 노동자들에게 요구해야 하며 다른 분야로 퍼지고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수 주일 내로 독일의 우편 회사 Deutsche Post의 노동자들은 서비스 노조 Ver.di가 중재하고 있는 계약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계약은 누진적으로 봉급의 5.1% 상승과 이 년 동안 백이 일의 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Ver.di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Günter Isemeyer 씨는 "노동력 부족에 대한 것과 이것을 어떻게 퍼뜨릴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논쟁거리가 나오고 있지만 IG Metall의 주 스물여덞 시간 노동 쟁취는 우리 직원들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서비스 노조와 Deutsche Post 사이의 최근 협상이 이루어지기 전에 Ver.di는 대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삼만칠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것에 우선 순위를 두고 협상했으면 좋겠는지를 물어보았으며 거의 80%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자유시간"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약 이백만 명의 노조원을 두고 있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노조인 Ver.di는 Deutsche Bank 콜센터 직원들의 토요일 근무시간을 줄일 수 있는 권리를 안겨주는 데에 성공했다. 철도운송노조 EVG의 노동자들은 봉급 인상과 휴가 연장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이미 얻었다. 2018년에 Deutsche Bahn 노동자들은 반 이상이 2017년보다 엿새 이상 많은 휴가를 즐기게 된다. 작년 7월에 철도 회사 노동자 중 56%가 휴가 보장 강화에 더 많은 표를 던진 반면에 봉급을 2.72% 올리는 것에 투표한 노동자는 41%에 불과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최근 협상에서 나온 결과가 독일을 21세기 노동현장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할 개척자로 만들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인력이 로봇이나 알고리즘으로 대체되는 대량해고 사태를 피하기 위해 고용주들은 노동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으며 이를 더 널리 퍼뜨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노동 유연화는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로 인해 얻는 경쟁력을 해칠 수 있으며 숙련 노동자 부족 현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Cologne 경제연구소의 Holger Schäfer 씨는 주 스물여덞 시간 노동 협상은 고용주들 사이에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법률에 의해 보장되어 있는 노동권에 반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Schäfer 씨는 "만약에 여러분이 고용주들에게 더 많은 유연화를 제공한다면 그만큼 더 유동적이고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기계들을 회사에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일 것을 강제함으로 인해 공백이 생길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독일 노조의 새로운 전략적 우선순위는 좌파 진영으로부터도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독일 정부의 재정비서관이었던 Heiner Flassbeck 씨는 IG Metall의 노동 유연화 협상을 "연막작전"으로 비유했다. Flassbeck 씨는 "노동시간 감소에 대해 이렇다 할 만한 이상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문제삼는 것은 이게 작동되지 않을 것이란 겁니다. 폭발적 성장을 이룬 독일 경제의 경우 이를 조절하기 위한 보상금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임금을 올릴 수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죠."라고 말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mar/09/28-hour-week-gains-momentum-in-german-unions-push-for-flexible-rights


계속해서 기계화 무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노동시간 감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이루어지는 과도기와 그 다음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하면 막막하다. 기본소득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훨씬 더 막막해 보이고... 최저임금 문제만 해도 인상 때문에 사람 대신 기계를 들여놨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과연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사람의 필요성은 커질까 줄어들까...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사람을 더 고용할 거란 건 너무 안이하다. 사람을 고용하는 데에는 시간에 따른 봉급뿐만이 아니라 각종으로 요구되는 보험금 세금 그만큼의 인력을 운용하는 데에 드는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시간이 줄어들면 그 노동자의 봉급은 내려야 될까 그대로여야 될까? 가끔씩 튀어나오는 안식년 논의를 적용할 경우 그 안식년 동안 노동자의 봉급은 내려야 될까 그대로여야 될까? 그럼 둘 중 하나다. 법을 무시하고 노동자를 쪼느냐 아니면 하루 종일 쉬는 시간 없이 돌려도 보수 유지만 잘 해주면 아무 불평하지 않는 기계를 택하느냐... 어느 쪽이든 간에 사람의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기사에 나온 사례처럼 필요한 선택사항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필요한 선택사항마저 없어지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하기사 한국 상황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기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도 결국 이런 상황으로 왔을 경우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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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기사 2018. 2. 28. 14:08

사람들은 많은 것을 망각한다. 모든 문제점을 잊어버리고 한결같이 영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젠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역시나 사람들의 한결같은 망각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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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는 이해하지만 한국이 이를 이용해 일본을 음해하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는 이에 주의해서 진짜 위안부 할머니와 가짜를 가려내어야만 한다.
김어준이 했던 말과 이게 뭐가 다른 걸까? 그냥 답답하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인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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