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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8. 5. 20:11

토토네가 피난을 왔던 3월엔 아직 매화 외엔 피어있는 꽃이 없었지만 4월 끝 무렵엔 여러 가지 꽃이 만개했다.
산노헤성 터엔 "시로야마 공원"이란 곳이 있어서 그 부근이 벚꽃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한데 친구의 권유로 보러 갔을 때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감주나 경단 같은 걸 파는 가게들이 늘어섰겠지만 전쟁 중이라 그럴 수도 없어."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시로야마 공원에는 센조쿠이케 공원보다 몇 배는 더 커서 토쿄에서도 곧잘 보았던 왕벚나무도 있었다. 왕벚나무가 지기 시작하면 진한 분홍색을 띈 겹벚나무와 노란 녹색꽃벚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토토는 프릴처럼 생긴 겹벚나무와 녹색꽃벚나무의 귀여운 꽃잎에 푹 빠졌다.
산노헤 사람들은 이 시로야마공원이 자신들을 지켜준다 여기는 듯 수업을 대충 진행하던 역사 선생님도 이 산에 어떤 식으로 성을 세웠는지, 가신의 집은 어디에 있었고 적을 격퇴하기 위해 어떤 방책을 세웠는지, 자료를 보여주며 알려주셨다. 거기에 실려있던 그림 속 산성은 민달팽이 같은 모양으로 되어있었다. 왕벚나무가 만개할 즈음엔 민달팽이의 등에 해당하는 부분이 옅은 빨강색 구름을 지고 있는 것처럼 푹신푹신해 보였다.
벚꽃이 지자 하얀 사과꽃이 피기 시작했다. 사과꽃이 지고 작은 열매를 남기는 6월이 되자 토토네가 만들었던 벌레 쫓는 주머니가 활약하게 되었다. 이 즈음엔 앵두 재배가 한창이어서 농협에 근무하고 있던 엄마가 알이 고르지 못한 앵두를 가지고 돌아오시곤 했다. 못 생기긴 했어도 맛이 좋은 기쁜 선물이었다.
 
토토는 혼자서 시로야마공원에 가기도 했다. 아직 성이 세워져 있었을 때 거기에서 내려다보면 어떤 풍경이 펼쳐졌을지 상상해 보며 분명 논과 밭이 잘 보였을 거란 생각에 그리스도 마을로 가는 버스 창문 너머로 본 풍경이 펼쳐졌다. 그 때엔 여기 사람들은 왜 이런 산골에 사는 걸까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조상대대로 물려져온 땅에 애착을 갖고 있을 거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고향은 좋지.
토쿄에 돌아가고 싶어.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친구도 생겼고 아오모리 살이가 익숙해졌지만 가끔 토쿄가 생각날 때마다 "돌아가고 싶어."라며 키타센조쿠 집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공습을 당할 염려는 사라졌지만 옛날과 같은 자유로운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키타센조쿠 집이 공습으로 타버렸다는 걸 토토가 알게 된 것이 이 즈음이었다.
 
구사일생
 
스와노타이라에서의 생활이 간신히 안정되었을 무렵 엄마는 음악학교 시절 신세를 졌던 토쿄 코우지마치 숙부님 집과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다. 숙부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피난을 가고 싶으니 스와노타이라에 있는 집 중에 찾아줄 수 없느냐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 때에도 열심히 어떻게 받아줄 곳이 없나 찾으셨다. 한 달 정도 지나 숙부님 가족 네 명이 스와노타이라에 찾아왔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엄마를 의지하는 친척들이 계속해서 몰려와 여름엔 한번에  열 명이 넘는 친척이 스와노타이라로 집합했는데 모두 토쿄 사람들로 피난을 갈 곳을 찾지 못한 것이다.
홋카이도 타키카와에서 살고 있는 엄마의 아빠, 토토의 할아버지가 협심증을 일으켜 돌아가신 것도 그 여름이었다. 전보로 연락을 받은 엄마는 서둘러 토토와 동생들 셋을 데리고 홋카이도로 향하셨다.
그 당시엔 혼슈와 홋카이도를 왕복하려면 그야말로 목숨을 건 여행을 해야 했다. 아오모리에서 하코타테까지 츠가루해협을 건너는 세이칸 연락선은 폭격기와 잠수함에게 절호의 표적이었고 애초 표를 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토토네는 기차에서 배로 갈아타기 위한 연락통로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여기에 하코타테에서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리고 나서야 타키카와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개업의였던 할아버지는 이미 유골함에 모셔졌지만 뒷정리다 뭐다 해서 며칠을 머물러야 했다. 그 동안에 엄마가 생각하신 게 있었던 듯 어머니를 돌봐드리는 건 장녀의 역할이라며 엄마의 엄마, 토토의 할머니를 스와노타이라로 모셔오기로 했다.
할머니는 신기한 분이셨다. 타이쇼우 시대에(타이쇼우 원년은 1912년으로 1933년생인 쿠로야나기 테츠코 씨를 생각하면 할머니가 이 때에 학교를 다닐 나이라 생각하기 힘들어 메이지 시대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역자주) 센다이에 있는 종교학교를 다녔던 아가씨였는데 할머니의 가족들은 "밥을 직접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집에 시집보낼 수는 없지."라고 정해뒀다고 한다. 시집을 간 상대가 의사였기에 나름 유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틈만 나면 성서를 펼치고 있던 정말 의젓한 할머니였지만 취사 세탁을 못해서 전부 간호사 선생님이나 가정부 분께 맡기고 있으셨다.
엄마와 할머니에 아이가 세 명, 모두 합쳐 다섯 명이 함께 하코타테로 돌아올 때까진 괜찮았는데 하코타테역에서부터 세이칸 연락선을 타려고 하는 사람들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신문지를 깔고 앉은 채 "무슨 배를 사흘이나 기다려야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풍로로 밥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토토네는 언제나처럼 손을 잡고서 방공두건을 쓰고 몸을 밀착하며 행동했다. 할머니는 성서를 품에 안은 채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우고 있으셨다.
연락선에 타자 선장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토토에게 말을 걸며 "적군이 바다에 설치한 기뢰를 건드리면 이 배는 단숨에 가라앉아 버릴 거야."라고 했고 토토는 걱정이 되어 배에 타고 있는 동안 계속 해수면만 지켜봐야 했다.
 
1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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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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