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통신 2018. 4. 6. 21:27

<치하라 미노리의 미스 선샤인>을 들으려고 라디코에 접속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FM FUJI 자체가 지역 한정 방송인지라 들을 수 있는 지역이 야마나시현, 나가노현, 니이가타현밖에 없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VPN 프로그램으로는 이 지역에 해당하는 서버를 찾을 수가 없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목록을 뒤지고 뒤졌지만 결국 나오지 않아서 본방송을 들을 수가 없었다. 라디코에는 타임프리 기능이 있어서 놓친 방송을 일 주일 내로 다시 들을 수 있는 기능이 있지만 이마저도 지역이 맞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다. 결국 회원가입을 해야만 가능했다. 한 달에 350엔(첫달 무료)이라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싶어서 가입을 하려고 했는데 가입이 되지를 않는다.


아니 가입부터 되지를 않는다니깐.


가입 절차는 모두 밟아지는데 마지막에 결제 수단을 결정하는 곳을 그냥 뛰어넘어 버린다. 결제 수단은 나중에 결정하는 건가 싶어서 로그인부터 하려고 했는데 이메일이나 패스워드가 맞지 않는다면서 계속 실패한다. 이메일과 패스워드를 잘못 적은 건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메일은 가입할 때 인증 절차를 밟았고 패스워드도 평소에 쓰던 비밀번호를 적었으니 틀릴 이유가 없다. 그러니 나로선 그저 계속 가입과 로그인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고 사이트는 계속 튕겨내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니 문득 든 생각이 이메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라디코 이용은 일본 서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걸 더 확장해서 회원 가입도 일본 것이 아니면 불가능하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야후 재팬 쪽의 이메일 주소를 넣어 가입을 해봤더니 가입 절차 중에 결제 수단 선택이 뜨더라...



공짜로 듣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겠다는데 이렇게 필사적으로 막는 이유가 뭔가 싶다. 니코니코동화도 한메일로 가입해 있는데 왜 여긴 이것도 막는 건지... 이렇게 되면 한국 메일 서비스에 가입해 있는 일본인도 차단하는 건가? ㅋㅋㅋ(먼산)

이런 경위를 거쳐서 듣게 된 <치하라 미노리의 미스 선샤인>은 뭐 <치하라 미노리의 Radio Minorhythm>과 진행자 수가 다른 것 외에 뭔 차이가 있나 싶지만 그냥 팬심으로 듣는 거니깐 뭐... <치하라 미노리의 Sanctuary>의 악몽은 잊었나 다만 일본 컨텐츠를 이용할 때마다 왜 이렇게 고전을 겪어야 되는가 싶다. 일본에 가는 것 외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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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만화 2018. 4. 6. 19:44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경우도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작을 읽어보거나 하지 않았으므로(한국어판으로 나오지도 않은 소설)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엔딩을 부른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와도 그냥 그러려니 싶었다.(좋아하는 성우가 어떤 작품에 출연하면서 주제가를 부를 경우 흥미가 생기지 않고 어쩌다가 봐도 망작이다 싶은 경우가 많다. 특히 미즈키 나나 성우...) 하지만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라디오 등에서 하도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대니 자기 출연작이 매우 적어서 그렇기도 하지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는 것 같지는 않겠다 싶기도 하는 생각이 들었고 넷플릭스로 볼 수 있으니 한번 봐볼까하는 생각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주인공 바이올렛이 어릴 적에 고아가 되어서는 순전히 인간병기 수준으로만 취급당하고 있다가 이를 맡게 된 길베르트 소령이 바이올렛을 인간으로서 대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전쟁 막바지에 전사하게 되고 그 전에 클라우디아 중령에게 전쟁이 끝나면 맡아줄 것을 부탁했기 때문에 군인을 관두고 우체국 사업을 하게 된 클라우디아가 바이올렛에게 자동서기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한다. 어릴 적부터 명령을 따르며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된 바이올렛은 여기에 순순히 따르고 타이핑과 기본지식 면에서는 매우 뛰어난 학습력을 발휘하지만 인간다운 생활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이 결여되어서 고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길베르트 소령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바이올렛에게 말했던 "사랑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라는 일념 하에 매달리게 된다.

이 작품을 보면 처음에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림이 무척 예쁘게 그려졌다.제작진들의 몸을 갈고 갈아... 바이올렛을 비롯한 등장인물들도 그렇고 배경도 그렇고 1900년대 초중반 유럽의 분위기를 매우 잘 살려내었다. 내용도 바이올렛이 사람들과 만나면서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지켜보고 그에 따라 바이올렛 자신도 변해가는 과정이 매우 잘 그려져 있다. 처음엔 상당히 무뚝뚝하게 대하고 자동서기 일 관련 손님이 화를 내어도 "난 네가 말한대로 적었을뿐"이라고 대응하지만 점점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게 되고 나중엔 매우 풍부한 감정을 드러내게 되는 모습이 매우 사랑스러웠달까...(막바지에 너무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쪽으로만 내용이 집중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리고 바이올렛의 영향을 받아서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매 화마다 감동적이었다. 결국 의사소통 수단이 발달해도 사람들이 싸우게 되는 건 제대로 생각할 시간이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에 아닐까 싶기도 하고... 목소리 연기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만족하지만 치하라 미노리 성우에 대해서는 전에 밝혔던대로... -_-a 

한국 넷플릭스 쪽에도 서비스가 제대로 되었음 좋았을 텐데 일본 쪽에만 서비스가 되고... 그러면서도 한국어 지원이 되질 않나 보컬 앨범에도 최종화 엔딩이 한국어 버전으로 들어가 있질 않나... -ㅁ-; 이러고서 정작 한국 서비스는 안 되는 건 무슨 조화인 건가 싶다. 그대신 강철의 연금술사 실사판이 더빙까지 해서 들어온 건가?

원작 한국어판 안 나오려나...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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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치하라 미노리 2018. 4. 4. 11:33
아침부터 활기차게 이즈모 모드きゃvネコき

연습실에서 마음껏 불렀어요矢印上カラオケ


4월 7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네요 !

이즈모에 얼른 가고 싶어요~~!!

 

taiyou그건 그렇고taiyou

 

내일부터 드디어びっくり

FM-FUJI에서 새 방송이 시작돼요~花


<치하라 미노리의 미스 선샤인>

 


매주 수요일 taiyou19:00~19:54


재밌는 코너가 잔뜩 있어요き(웃음)

편지 기대하고 있을게요~ネコ

 

보조 진행자를 맡은 호시노 타쿠야 씨와 함게 유쾌한 방송을 선보일 거니깐 들을 수 있으신 분은 꼭꼭 들어주세요~taiyou


http://minori-smiledays.jugem.jp/?eid=1833


히비키로 옮겨갔다는 Radio Minorhythm은 언제쯤 페이지가 열리는 건지... 도통 소식이 없어서 그냥 수요일에 갱신되겠거니 했는데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라디오는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아도 일 주일 전부터 페이지를 열어놓고 있는데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열어놓는 것만으로도 돈을 내야 된다거나 하는 건가? 아니면 몇 주간 안 한다든가? 그런 말 없었던 것 같은데...


*오후에 보니 표시되어 있었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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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우에사카 스미레 2018. 4. 4. 11:16

Здравствуйте!


4월에 돌입했네요!

모두들 어떻게 지내고 있으신지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분도 변함이 없으신 분도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ω°´)



주말엔 J:COM에서 주최하는 <파워퍼프걸즈 성우체험 행사>가 열렸어요!


시청자 분들이 <파워퍼프걸즈> 녹음에 도전!...하는 가운데 주연을 맡은 다섯 명이서 모범 녹음(!)을 선보였지요!

기기기기긴장했어요!!:(;゙゚'ω゚'):

모범이 되었으려나...?!



출연진이 함께! 녹음실이 파워퍼프걸즈로 둘러싸였어요 (*・∀・*)



버블스 안경~~!


До встречи!

СУМИРЭ 스미레


https://lineblog.me/uesaka_sumire/archives/9327112.html

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만화 2018. 4. 3. 16:07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까지 원작을 봤던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처럼 담당 성우(타카하시 리에 성우)에 열광했던 것도 아니었다. 전에 샀던 뉴타입에도 관련 기사가 실려 있긴 했지만 그냥 넘겨버렸고...



그냥 넷플릭스에 걸려 있었던 섬네일이 귀여워 보였다. -_-; 단지 이 이유 하나만으로 봤기 때문에 얼마 못 보고 시청기록 지워버리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야기 상으론 뭐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처음부터 타카기(여주인공)가 니시카타(남주인공)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바로 알려준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곧바로 전달하기 보다는 장난을 치게 되고 니시카타는 이걸 곧이 곧대로 장난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하면 역으로 타카기를 놀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타카기가 이걸 재밌어 하는 구도로 진행된다. 물론 장난을 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타카기가 종종 니시카타에게 자기 마음을 살짝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니시카타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두근거리기도 한다. 중학생 시절에 경험할 법한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시청자를 사로잡는 타입이랄까?


이 쪽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오지만


그림도 귀엽고 이야기도 그런대로 잘 꾸며놓은 것 같긴 한데 다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전형성을 띄는 것 같은 우려가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기본적으로 니시카타가 타카기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구도이기 때문에 니시카타가 뭔 계산을 하고 있어도 결국엔 타카기가 자연스럽게 뒤집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니시카타가 쓰잘데기 없이 히죽거리고 있으면 더더욱... 


물론 이 만화의 주제가 두뇌게임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이 계속된다면 작품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질릴 가능성이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니메이션을 재밌게 봤으므로 단행본도 1권을 사놓긴 했는데 이 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별 것 아닌 이유로 접근한 작품치고는 만족스러웠다. 중상박 정도.


*전자책이 없는 줄 알고 단행본 샀던 게 3월 22일이었는데 그날 리디북스에서 전자책을 올렸었네...(먼산)

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만화 2018. 4. 3. 15:20

우리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이토우 쥰지 공포만화는 무작정 사람을 놀래키거나 극도로 무서운 귀신이 나오는 기존의 공포물과는 다소 다르게 서서히 잔잔하게 공포의 정도를 높여가는 방식으로 책을 쉽게 놓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만화다. 이런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과연 어떤 작품이 나올까 기대를 했는데...

TV에서 다루기 쉬운 이야기만 다룬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토미에 시리즈나 오시키리 시리즈 같은 경우엔 겨우 한 이야기밖에 다루지 않았으면서 소이치 시리즈는 세 번이나 나왔다.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보다는 TV판에서 적당히 다룰 수 있겠다 싶은 이야기가 주로 나왔다. 그리고 이야기를 배치함에 있어서 일관성이랄 게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소이치 시리즈 같은 경우도 드문드문 배치되어 나왔었고 한 화에 배치된 두 이야기가 어떤 관계성을 갖는지도 알지 못하는 그냥 섞어찌개 방식이랄까... 아니면 엔딩영상에 섞어놓으면 좋아보여서 배치했던 걸까?

목소리 연기의 경우 주역들은 괜찮았지만 조연으로 갈수록 대충 정한 것 아닌가 싶은 경우가 나오는데 소이치 시리즈의 경우 특히 이게 어딜 봐서 초등학생 목소리인가 싶은 목소리가 꽤 많았다. 아니 뭐 따지고 보면 그림 자체도 중고등학생 아닌가 싶었으니 거기에 맞춘 걸까? -_-;



결국 영상 디스크도 전에 말했던대로 DVD만 나오게 되었다. 팬은 실망하고 배급사는 팔리든 말든 상관않는 것 같고... 애시당초 DVD로 낼 생각이었으니 그림도 딱 그 수준에 맞춰서 그려낸 것 아닌가 싶어진다.

좋아하는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건가 하는 실망감과 이걸로 끝인가 하는 허탈감이 같이 든다. 그냥 만화가 움직이는 영상 정도로 생각하는 게 속편한 걸지도.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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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만 해도 개인주의라는 것은 상당히 낯선 개념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같은 곳에서만 이뤄지는 것이고 한국에 이런 개념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경각심을 가졌다. 이 때나 그 전에는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동일한 개념인 것으로 착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니깐 한국에서 개인보다는 공동체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삭막한 사회, 시골은 정이 넘치는 공동체로 묘사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요즘 들어선 한국 시골도 그런 식으로 바라보기엔 무리가 생겼는지 외국의 두메산골을 찾아다니는 방송이 나오고 있다.(가끔씩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하는 때 외엔 TV를 안 봐서 정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대중문화가 당연하다시피 돌아다녔던 시절에 성장기를 거쳤으니 나도 개인주의에 대해서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공동체주의가 더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인상을 바꾸게 된 것이 장애인 문제였다. 


http://news1.kr/articles/?3271190

교육감도 소신대로 했다는 이유로 도망쳐야 하는 상황...


 가장 가까운 예로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문제가 있다. 장애인들이 편하게 다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짓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구에 이미 있다!"를 논리를 내세운다. (그걸로 충분하면 뭣하러 반대를 무릅쓰고 짓는다고 생각하는지...) 이 대신 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며 난리를 피우는 것이 장애인이 다니는 것 자체가 자기 동네에 불이익이 된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원래 내가 인식해왔던 공동체주의라면 다른 사람이 불편함을 겪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시설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반대한다면 타인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라고 생각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이기주의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옛날 공동체를 생각해 보면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라기보다는 그냥 방치하는 방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옛날이야 그런 동네 바보형이 한 동네에 한둘 있을까 말까했지만 도시가 생기면서 이런 바보형들(생각해 보면 이런 곳에 누나라는 단어는 없다. 옛날 바보누나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진다. 정신적인 문제뿐 아니라 육체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장애인들이 모이는 시설도 마찬가지다. 그 곳은 혐오시설이 되고 이런 시설 하나 짓기 위해 장애인들의 가족들은 마음으로든 신체로든 무릎을 몇 번이고 꿇어야 한다. 시설이 지어지지 않는 것만의 문제로 보기도 힘들다. 그냥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근처에 장애인이 앉아 있을 확률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만큼 장애인들은 집단 앞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오아시스> <Wonder>


비장애인을 돌아봐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여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보면 가정 내에서도 상당한 희생을 강요당해 왔지만 이게 사회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된다. 동네에서 잔치가 열렸다고 생각해 보자 그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에 남자가 들어갈까? 조금만 생각해봐도 쉽게 들어가지지 않는다. 어떤 걸 설치하거나 하는 일은 남자가 해도 힘은 덜 들어가지만 그에 비해 시간은 상당히 긴 준비와 뒷정리들은 모두 여자가 맡고 있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된다. 실제로 지금도 그런 식인 것 같고.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서 여자들의 희생이 강요된다면 그것이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같은 일부 힘이 있는 사람들의 친목회에 다수의 힘이 없는 사람들이 소모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여자들이 불이익을 넘어서 성적으로 위협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미투 운동으로 알리기 시작하자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지금도 이런 개판 오 분 전 상황인데 옛날엔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지만 그 이상도 우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마을을 위해서 남편과 사별한 여자에게 목숨을 끊게 하여 열녀비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꽤나 신빙성 있게 들린다. 아니면 독수공방하게 된 여자를 위해서 보쌈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결국엔 여자 개인의 삶은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남성 위주의 집단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손목을 비틀비틀


LGBT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혐오 세력에 대해서 이건 차별이다를 계속 외치니 기껏 한다는 말이 "내 눈에 띄지 말라"였다. 그런 말이나 지껄이는 모습을 보는 내 눈은 어쩌고...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옛날에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을까? 동성애자이건 자기의 몸과 마음이 품고 있는 성이 다르건 간에 기존의 관습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고 그것을 마을의 경사처럼 여기는 것이 옛날의 공동체였다. 옛날 기록에도 동성애 관련 기록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록에 불과할뿐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힘이 없는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공동체를 좋게만 볼 수 있을까? 이것이 좀 더 나가게 되면 국가주의가 되게 된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고 일부의 마음에 드는 사고방식에 반하는 사상은 배척당하는 세상. 한국식 민주주의를 외쳐도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던 세상. 자기들의 마음에 안 드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생활을 가지고도 배척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세상.

이렇기에 개인주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이 존재를 인정하기 위한 개인주의인 것이다. 말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본 결과 얼핏 보기엔 효율적으로 생각되는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이끄는 방식이 많은 사람이 이끄는 방식보다 뒤쳐지는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이 과정이 지난해 보일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끌고 갈 때에 보이지 않았던 측면을 여러 사람이 끌고 갈 때에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결국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가 악인 것처럼 말을 해왔지만 내가 짚는 것은 공동체를 가장한 일부의 권위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이다. 이런 것을 내포하고 있는 허상의 공동체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일개 개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개개인이 같이 이뤄내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집단 이기주의를 위한 나중에로 억누르는 한 이러한 진보는 이뤄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같은 선상으로 놓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정말 제대로 된 개인주의는 상대방을 인정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서로의 행복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이타주의이다.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말에 따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개인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역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말해왔듯이 집단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제대로 된 공동체의 화합을 만들려면 이러한 이기주의를 다수의 합의에 의해 억제할 필요가 있다. 지금 현재로선 이런 면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건지 아리송한 면이 있지만 발전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이 발전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생각을 틈틈이 해봤는데 막상 글로 옮기니 갈수록 중구난방이 되는 것 같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활용하느냐이지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념의 작용을 풀어쓰는 것은 누구에게나 귀찮은 일이기에 결국 개념 자체에 원죄를 뒤집어씌우는 오류를 흔히 발견하게 된다. 지금 일고 있는 개헌 바람도 비슷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꾼다 한들 좋은 방향으로 바뀔 확률이 높은 건지 알 수 없는 대통령 임기와 의원내각제를 서로 당리당략에 맞추어서 싸우고 있을 뿐이지 정말 원래의 헌법이 그렇게 잘못된 건지, 법률로 정하면 될 일들까지 시시콜콜 개헌에 맞추고 있는 것이 맞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바꿔버리면 나중에 아베나 시진핑 같은 사람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차라리 엎어지는 게 답인 건지도...

제대로 된 마무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는 생각났나 싶지만.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글로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영화 2018. 4. 1. 19:37


2012 대선 새누리 경선 당시 박근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빌리 엘리어트>를 꼽은 일이 있었고 당시 어떻게든 박근혜를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이걸 깠었다. 영화의 배경이 무너져 가는 영국 탄광촌이었는데 영국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짐작할 수 있듯이 대처가 이런 상황을 만드는 데에 진두지휘를 했었다. 이것이 옳든 그르든 간에 대처를 존경한다면서 이 사람이 저지른 일이 배경으로 들어간 영화를 마냥 좋게 보고 있는 박근혜의 모습에 여러 차례 가속을 붙이며 날아가던 어이가 한 번 더 가속을 붙였던 것이다.

이런 흐름에 나도 끼어있었고 영화를 본 적도 없지만 일단 까고 봤다.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었어... 접시물에 코 박고 죽고 싶다... 그리고 그로부터 육 년, 트윗을 올린 날짜로부터는 오 년. 오늘 드디어(?) 넷플릭스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봤다. 탄광촌에서 노조를 지휘하는 형과 아버지, 무용수가 꿈이었다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있고 어머니는 돌아가신 가정에서 자라고 있던 주인공이 우연히 발레를 접하게 되고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마초적인 형과 아버지 몰래 이를 배워가다가 주인공의 자질을 눈여겨 보며 왕립 발레학교 입학시험을 볼 것을 권하는 선생님, 이를 알아차리고 반대를 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뭐 보통 이런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실 영화 전체가 주인공이 춤을 배우고 갈등 중에서도 춤을 추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고민하는 성장 스토리 방식이다. 그러니 박근혜도 "어린아이가 고난을 이기면서 훌륭한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고 설명하고 "그렇게 어려움이 있고 부모님이 반대를 하고 주변 사정도 어려운데, 역시 자기가 좋아하고 소질을 타고나니까 '끝내는 그 길을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고 주인공이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장면도 꽤 나오지만 박근혜는 "부모님"이라고 하는 영화를 본 건가 의심스럽게 하는 단어를 꺼낸다... 육영수가 그리워서 머리도 매일 그렇게 만졌다면서 왜? 나도 영화를 보면서 이런 방식의 영화를 박근혜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봤다면 대처 정부와 광산 노조 간의 갈등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영화 내내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광산 노조가 버스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고 달걀을 던지는 장면이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지만 나중에 보면 주인공의 아버지도 이 버스에 타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광산 노조가 자본에 대항해 파업을 하는 한편 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노동자들도 있었다.(물론 이런 현상은 노동자와 자본의 대립에서 항상 일어난다.) 그 노동자들이 노조의 출근 저지를 뚫을 수 있도록 버스에 타고 출근을 했던 것이다. 이걸 또 버스가 통과할 수 있도록 경찰이 사이에서 버티고 있는 거고... 주인공의 형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도 노조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당장 집안의 형편 때문에 주인공의 꿈이 꺾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가 저 버스에 탄 것이고 이걸 알게 된 형이 아버지를 극구 말리면서 간신히 되돌려 세우게 된다. 박근혜가 이 영화를 봤다면 이 장면 또한 봤을 텐데 보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걸까? 

하긴 생각해보면 박정희 때 워낙 서슬이 퍼랬기 때문에 세우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노동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반정부 운동이었다. 이런 노조가 학생운동과 맞물리면서 결국 민주화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이런 민주화 후에 박정희의 위신은 많이 깎여내려갔다. 아버지가 있을 때에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완전히 적이 되었다. 그러면 노조에 대해서 어떤 동정을 품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럼 뭐 영화 내에서 노조와 관련된 내용은 그냥 패싱해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심한 경우엔 집안 형편이 엉망인데도 일은 안하고 이상한 곳에나 들락거리는 아버지와 형 밑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는 불우한 아동으로 봤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럼 뭐 위에서 인용한대로 그냥 성장 스토리가 되는 거지... 

결국 사람은 같은 걸 봐도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걸 보게 되고 듣고 싶은 걸 듣게 된다. 성장 과정에 따라 속해 있는 집단에 따라 쌓아온 지식에 따라 다르게 접하게 된다. 이 영화와 박근혜의 감상은 그런 것을 반영했을 뿐인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박근혜가 무식하다는 증거 중 하나에 불과하거나.

물론 영화 자체는 좋다. 그러니 박근혜도 본 척을 했겠지.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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