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기사 2022. 10. 8. 18:03

서로 떨어져 있었던 야지디 교도 어머니 아홉 명과 아이 열두 명이

이라크 국내에 있는 "안전한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3월 11일 Jane Arraf/©2021 The New York Times。

어머니의 고향으론 돌아가지 못한 채, 제3국에서 받아주길 기다리고 있다.

 

시리아의 소박한 국경검문소에 이라크에서 온 젊은 어머니 아홉 명이 달려왔다. 그리고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이들 모자 대부분이 이 년 넘게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용소의 고아원에서 받은 새 자켓을 입고 있었던 어린 아이들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지만 어머니가 눈물도 닦지 않고 아이를 안으며 키스를 하자 모두들 금방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기억하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 대신 맡아왔던 고아원 직원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충격도 컸어요. 저도, 아이도요."라고 말하며 어머니 중 한 사람이 당혹해 하고 있었다. 딸과 만날 날을 꿈꿔왔지만 "좀처럼 따라주질 않네요." 딸은 두 살 반 정도였다.

2021년 3월, 이라크 북부의 Faish Habur 국경검문소 지점에서 극비리에 재회사업이 결행되었다. 그 현장을 뉴욕타임즈(이하 본지) 기자들이 지켜볼 수 있었다. 생이별을 했던 이라크 야지디교(일부 쿠르드인의 민족종교) 신도인 어머니와 아이들이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알려진 한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시리아에 있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이라크 측 국경검문소에서 대기하는 야지디교 어머니들.

3월 4일 Ivor Prickett/©2021 The New York Times

 

어머니들은 과격파 조직 이슬람국가(이하 IS)에 사로잡혀 성노예가 되어버렸고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떠올리기도 싫은 공포의 오 년간을 살아남은 여성들은 지금도 곤경에 처해 있다. 이 과격파 조직이 2014년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수많은 참극이 발생했다. 그런 와중에도 이 여성들의 비운은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이 끝은 어디일지조차 보이지 않고 앞으로의 인생조차 어찌 살아가야 할지.

이라크 북부의 소규모 야지디교 사회에선 지금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 어머니들의 아이들은 수천 명의 야지디 교도를 학살하고 육천 명 이상을 납치한 악몽스러운 IS를 상기시키게 하는 접점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이 아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장로들은 말한다. 그 중엔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려오기라도 한다면 죽여버릴지도 모르겠다 말하는 이조차 있다.

어머니들이 해방된 것은 이 년 전이었다. 시리아에 있던 IS의 최후 거점이 함락되면서 그야말로 몸이 찢기는 듯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라크에 있는 고향에 돌아가려면 젖먹이와 유아들을 남기고 갈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 "다시 만날 수 있다"며 설득당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앞서 시리아 국경검문소에서 아이들과 만난 어머니들은 가족들과 헤어지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어버이를, 형제자매를, 고향을 버리고 온 것이다.

이라크와 스웨덴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 사업 실현에 몸바쳐 온 의사 네마무 가브리 씨는 "이 분들이 얼마나 무거운 걸음을 걸어왔을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짊어지게 될 위험이 얼마나 큰지도,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는지도요."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여기까지 오지 못하거나 버리기로 결정한 아이가 삼십 명 정도 시리아 북동부 고아원에 아직 남겨져 있다. 이번에 찾아온 아홉 어머니는 모두 가족에게 결별의사를 밝히지조차 못했다. 밝혔을 경우 재회사업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홉 명 중 다수가 IS에 끌려갔을 당시엔 아직 미성년이었다는 가혹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사흘 동안 울기만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어머니도 있다. 다섯 살 난 딸을 찾기 위해 늙은 어머니를 홀로 남기고 왔다.

"이것 때문에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하지만 제 딸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것처럼 어머니도 똑같이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이젠 정말 어찌 해야 좋을까요?"라고 말하며 다시 통곡을 시작했다.

아홉 어머니와 열두 아이들은 현재 이라크에 있는 안전한 장소에서 보호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받아줄 수 있는 제3국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희망에 기대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시리아 고아원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어머니 스무 명 정도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본지에선 재회한 모자의 안전을 확보되기 전까지 보도를 자제했습니다. 또한 신변을 특정하지 않도록 사업자 측과 합의했습니다.)

 

야지디 교도 어머니 중 한 명이 아랍어로 "나의 어머니"라고 써진 펜던트를 어린 딸을 위해 일 년도 전에 구해왔다.

3월 4일 이라크 시리아 국경지대 Jane Arraf/ ©2021 The New York Times。

이 딸과 곧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재회사업을 몰래 계획한 중심인물은 전 미국 외교관 피터 W 갤브레이스 씨다. 당초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를 움직여 관계된 각 당파를 설득해 필요한 지원을 얻어냈다. 애초 양국의 쿠르드인 세력에 두터운 교류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미국 백악관 당국자도 움직여 주었을 정도지만 이런 형태로 실현되기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지연까지 겹쳤다.

아이들이 아직 남아있는 시리아 고아원은 미국이 지원하는 쿠르드인 세력이 중심이 된 현지 당국의 지배지역(준자치구)에 위치하고 있다. 국경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보는 형태로 이번 기사에 나온 야지디 교도가 살고 있는 이라크 신자르 지구가 위치하고 있다. 이 여성들에게 악몽이 찾아온 건 2014년이었다. IS가 이라크 북부에 진격해 와 상당한 영역을 지배함과 동시에 칼리프제 국가(이슬람 공동체 지도자에 의한 지배체제)가 수립된 것을 선언했다.(2014년 6월) 2014년 8월에는 이교도로 단정짓고 있는 야지디 교도가 살고 있는 신자르를 손에 넣었다. 남성과 거의 성장한 남자아이들이 소집되어 몰살당해 이 수가 최대 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UN과 미국 의회는 민족학살이라며 비난했다. 게다가 약 육천 명에 이르는 여성과 아이들 다수가 IS 병사에게 팔려가 일회용품 취급을 받으며 계속해서 강간을 당했다. 매매 대상이 되었으며 부르는 게 값인 수준이었다. 2019년(3월)에 IS는 시리아 동부에 있던 최후거점 바구즈를 잃었다. 야지디 교도 여성 중 태반이 해방되어 아이들과 함께 사회복귀시설에 수용되었다. 야지디 교도 장로들은 귀향을 허락했지만 아이들은 버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이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쿠르드인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에 가게 되었으며 아이들과 함께 있기 위해 자신의 신변을 감춘 사례까지 포함해 야지디 교도라는 것이 특정되지 않은 여성들은 시리아 동부에 있는 IS 병사 가족을 수용해 살벌해진 알홀 난민 캠프로 이주했다. 이 캠프에서의 생활조건은(초과밀 상태에 놓여) 매우 가혹한 상황이지만 앞서 서술한 두 살 반짜리 딸과 재회한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버릴 수 없다며 아랍인으로 가장해 들어갔다.

IS가 미군의 공습을 받아 바구즈에서 최후를 맞이했을 때 이 어머니는 폭탄 파편에 맞아 부상당하면서도 젖먹이 딸이 죽지 않도록 손을 썼다. 굶어죽지 않도록 밀가루를 물에 타서 먹이고 자신의 옷을 찢어 아기옷을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지켜낸 딸을 절대 잃을 수 없다 각오했다. 하지만 육 개월 후 심문 끝에 야지디 교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회복귀시설로 돌아가야 했지만 딸과 헤어질 수 없다며 버텼다. 그러자 가족이 돌아오라고 애원했다.

"일단 돌아오렴,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전화로 설득해 왔어요." 

석 달 만에 결국 체념하고 신자르에 돌아왔지만 같은 상황에 처한 여성들과 함께 가족과 야지디 교도 사회의 장벽에 맞서게 되었다. 모두들 자신의 아이들에게 전화조차 걸지 못했다. 고아원에서 보낸 전자우편에 들어있는 사진과 동영상이 유일한 버팀목이었지만 이마저도 하지 말도록 장로들이 요청하면서 2020년 즈음부터 끊겼다. 이 때문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신변상 위험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이젠 살 의욕도 없어."라며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의 엄마로서 어떻게든 돌봐야죠." 두 살 반짜리 딸의 어머니는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와 친족들은 시리아에서 모두 죽었다. "이 아이에겐 저 밖에 없어요. 친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뭐예요."

하지만 야지디 교도 장로와 종교지도자들에겐 이게 문제가 되었다. IS 테러리스트들의 아이들을 신자르에 데려온다면 "야지디교 사회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야지디교 최고위 지도자 자리인 바바 셰이크에 있는 알리 에리야스 씨가 본지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저희에게 있어서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는 문제입니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는 살아남은 어머니들의 어버이를 죽였습니다.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겁니까?"

 

이슬람 국가의 테러리스트에게서 난 아이들을 야지디 교도 어머니들이 고향에 데리고 돌아오면

"우리 사회가 파괴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야지디교 최고위 지도자 바바 셰이크 알리 에리야스

3월 10일, 이라크 북부  Jane Arraf/©2021 The New York Times

 

법적인 문제도 있다. 이라크 법률상 아버지가 이슬람 교도라면 그 아이는 이슬람 교도가 된다. 그러므로(어머니가 야지디 교도라 해도 이 아이들은 이슬람 교도가 되어) 야지디 교도라고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야지디교는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이라크 법률에선 이슬람교에서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만) 게다가 바바 셰이크 에리야스 씨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시선이 한 줌도 안 되는 여성들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삼천 명 정도가 행방불명 상태이며 십사만 명 이상이 난민 캠프에서 가혹한 생활을 강제당하고 있다.

"야지디 교도 전체가 고아나 마찬가지입니다만 누가 봐주기나 합니까?"

확실히 신자르와 이 주변에서 IS가 소탕된 것은 육 년이나 지났지만 야지디 교도의 가장 큰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이 지구에는 아직도 수많은 상흔이 남아있다. 발굴되지도 못한 학살 희생자 집단매장지가 곳곳에 있고 파괴된 집이 셀 수 없이 보인다. 그러니 에리야스 씨로선 이 아이들은 제3국의 지원단체가 봐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가겠다면 말릴 사람도 없다며 내뱉듯이 이야기했다.

야지디 교도의 세속적 지도자인 수장 하젬 타신 베크 씨는 혹시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귀향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만 돌아온다면 모르겠지만 아이까지 오는 건 무리입니다."라며 퉁명스레 말했다. 살해당할 수 있다는 뜻인가 되물어 보니 "가능한 일 중 하나로 그것도 있을 수 있겠죠."라고 답했다.

이번에 만난 어머니 아홉 명 중 한 명은 딸과 재회한 것을 가족에게 전화로 전해서 받아들여 줄 수 있는가를 물어봤으나 형제 중 한 명이 거부하면서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젠 안전한 곳을 정부가 찾아주길 비는 수 밖에 없어요."

나디아 무라드 씨는 아이와 함께 살지 어떨지를 어머니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라드 씨 자신도 IS의 성노예가 된 상황에서 살아남아 (탈출 후에 분쟁 하 성폭력 근절에 몸바쳐) 201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여성들은 포로가 될 것을 선택한 것도 아니예요."라고 무라드 씨가 본지에 말했다. "그 후에 일어난 일도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들 뿐이었어요. 지금이야말로 손을 내밀어 줘서 자신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아홉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재회하러 출발하기 전에 갤브레이스 씨는 "제3국의 수용"을 낙관하지 않도록 주의를 줬다. 그리고 며칠 후 넓은 "안전한 집"에서는 아이들의 즐거워 하는 소란소리가 울려퍼졌다. 전원 여섯 살 이하.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시선엔 불안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까하는 두려움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몇몇 여성들은 제3국에 이주한다면 함께 가는 것을 바라고 있다. 많은 모자 간의 인연이 확실히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5살짜리 딸의 어머니는 아직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딸은 고아원 직원들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울부짖으며 거부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결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두 살 반짜리 딸의 어머니가 들뜬 목소리로 "엄마라고 말해주었어요."라고 말했다. "한번 더 말해보렴"이라며 분홍색 옷을 입은 딸을 재촉했다.

 

https://globe.asahi.com/article/14331058

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만화 2022. 10. 3. 21:57

 

 

수성궤도기지 <페비 콜롬보 23>은 태양의 중력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수성 회전궤도를 미묘한 균형 하에 돌고 있다. 수성은 태양에서 겨우 5791만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아 열을 직접 받게 된다면 혈액까지 끓어오를 것이고, 반대로 수성의 그림자 부분에 들어가면 마이너스 100도보다 낮은 극한이 기다리고 있어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게다가 태양에서 날아오는 강력한 전자파는 계속해서 시스템의 오작동을 불러일으킨다. 사소한 에러로도 죽음을 부를 수 있는 이 수성에서 태양풍은 그야말로 죽음을 부르는 바람이다.

 

지지직하는 소리가 나면서 격납고의 조명이 검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태양 플레어 발생 경보에 기지 전체가 긴급사태 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깜깜해진 기지 안으로 슬레타가 들어왔다. 아직 여섯 살인 슬레타에겐 검붉은 조명이 무서운 거겠지. 이럴 때마다 슬레타는 내 안으로 들어온다.

 

"에어리얼, 들어가도 되지?"

 

에어리얼, 내 이름. 외부엔 비밀로 하고 있지만 건담 타입 모빌슈트이다.

 

슬레타가 나한테 온다는 것은 어머니가 일 때문에 바쁘다는 이야기다. 이 수성에는 슬레타 외엔 아이가 없다. 때문에 내가 슬레타에겐 유일한 친구이다.

 

"에어리얼, 게임 실행해줘."

 

슬레타가 내 콘솔을 조작하면서 게임 화면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어떤 게임을 하려는 걸까?

 

"총 쏘는 거! 오늘이야말로 엄마를 이길 거야."

 

슬레타의 어머니는 나를 개발한 사람이자 건담 테스트 파일럿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어머니도 슬레타도 이런 게임을 잘한다. 슬레타가 이런 게임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 것은 네 살 즈음이었을까. 그로부터 이 년이 지나 슬레타의 실력은 어머니를 제외하면 수성에서 최강 수준이다. 점수가 마구마구 올라간다. 또다시 실력이 늘었다.

 

"에어리얼, 이거 봐!"

 

최고득점이다. 슬레타가 기뻐하며 시트를 흔든다.

 

슬레타, 나의 조그마한 파일럿.

 

***

 

어느 날, 아홉 살이 된 슬레타가 울면서 나한테 찾아왔다. 수성 노인이 괴롭혔다고 한다. 하지만 슬레타는 이런 일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걱정할 테니까."

 

어머니는 딸과 단 둘이서 이 수성으로 도망쳐 왔다. 숨겨주기는 했지만 모두가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아닌 것이다. 귀찮은 존재를 왜 받아들이냐며 추방하자 주장한 노인들도 적잖게 있다. 하지만 슬레타와 어머니에겐 이 곳 수성 밖에 없다. 이 곳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있잖아, 에어리얼."

 

 왜 그래?

 

"지구는 어떤 곳이야?"

 

슬레타는 철이 들었을 때부터 수성 밖에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라이브러리를 통해만 봐온 지구권에서의 삶에 흥미진진하다. 학교나 마을, 친구와 아이들... 지구권에선 당연한 존재겠지만 여기에선 아니다. 있는 것은 태양풍에 벌벌 떨며 자원채굴을 하는 일상사 뿐. 그런 생활을 계속하니 수성 노인들도 고약해진 것이겠지.

 

라이브러리로 볼래? 슬레타에게 메뉴를 표시해주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골랐다. 애니메이션도 영화도 소설도 대부분 지구권을 무대로 한다. 그런 걸 보는 동안엔 슬레타가 수성 일을 생각지 않겠지.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다 본 뒤 슬레타는 작게 중얼거렸다.

 

"도망치면 하나, 나아가면 둘."

 

이것은 슬레타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이다. 슬레타가 다섯 살이었을 무렵, 주사를 싫어하는 슬레타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잘 들으렴, 슬레타. 주사에게서 도망치면 주사를 안 맞겠지?"

 

"."

 

"아프지 않아를 얻을 수 있어."

 

"."

 

"그럼, 주사를 맞으면 어떻게 될까?"

 

"병에 안 걸려."

"그렇지. 또 다른 건?"

 

"다른 거?"

 

"그래. 주사에게서 도망치지 않으면 그것 외에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있어. 예를 들어, 엄마가 기뻐할 거야."

 

"우우웅..."

 

"수성인들도 슬레타가 장하다고 인정해 줄 거야."

 

"그런 거야?"

 

"슬레타의 레벨이 올라 주사가 아프지 않아질 거야"

 

"그렇구나!"

 

"그래. 그러니깐 어른들은 주사를 무서워 하지 않는단다."

 

"그런 거였구나~"

 

"알았지? 도망치지 않으면, 도망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단다."

 

"그래서, 나아가면 둘인 거야?"

 

"그래, 둘보다도 많이"

 

이후, 그 말은 슬레타의 등을 떠밀어주는 주문이 되었다. 이 말은 틀림 없이 어머니에게 있어도 같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어린 슬레타를 안고 여자 혼자서 이 수성에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어머니 자신의 주문.

 

"도망치면 하나, 나아가면 둘"

 

한 번 더, 슬레타가 작게 되뇌었다. 엉클어진 실을 풀 듯이 정성스럽게. 난 이 주문이 들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슬레타의 온몸이 용기로 물들어, 공포라는 저주를 깰 수 있을 때를.

 

괜찮아, 슬레타는 내 안에서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어머니의 말은 강하니깐.

 

 

 

***

 

 

 

"에어리얼, 긴급발진 준비. 수성 지표면 챠오몬프 채굴기지 부근에서 사고 발생!"

 

발진기지에 긴박한 방송이 울려퍼졌다. 자원채굴 중에 모빌 크래프트가 행방불명된 것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열한 살이 된 슬레타가 내 콕핏에 뛰쳐들어왔다.

 

"태양광 활발, 고에너지 프로톤 현상 관측. 하지만 지표강하엔 문제 없어. 서둘러 줘!"

 

수성은 인류가 생활하기엔 아직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러니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들이 차출된다. 우리는 수성 최강 콤비니깐.

 

지금까지도 몇 번이고 노인들의 목숨을 구해왔다.

 

덕분에 어머니와 슬레타에게 감사하는 사람들도 늘면서, 전처럼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노인도 적어졌다.

 

"강하궤도 상에 오브젝트 없음. 발진을 허가한다."

 

"양호. 에어리얼, 발진 후에 바로 지표강하 기동으로 이행."

 

우리가 게이트에서 우주로 뛰어내리자마자 작열하는 태양빛이 기체를 덮쳤다. 슬레타는 곧바로 크레이터의 그림자로 돌진했다. 이걸로 태양광을 직접 맞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대로 크레이터의 그림자를 따라 사고현장을 향해 서둘렀다.

 

"시그널을 로스트한 뒤로 얼마나 지났어요?"

 

"97분이야. 시그널 수신을 할 수 없으니 현재위치도 알 수 없어. 서둘러 주렴, 슬레타."

 

작전관제관 멜리사 벨더가 비는 듯이 말했다. 로스트된 사람이 멜리사의 남편인 에르고 벨더인 것이다. 에르고는 아직도 슬레타에게 심술맞게 구는 노인들 중에도 앞장을 서고 있다. 애초 숨겨주는 것부터 반대한 데다가, 며칠 전 어머니가 출세를 하게 되면서 에르고가 어머니의 부하가 되어버렸다.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슬레타에게 심술맞게 굴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철 좀 들라지.

 

하지만 슬레타는 곧장 답했다.

 

"괜찮아요, 멜리사 씨. 맡겨만 주세요."

 

슬레타는 착한 아이다.

 

 

 

우리는 태양을 피하면서 현지로 향했다. 산맥, 계곡, 저지대 등 수성의 어떤 지형을 이용하는 것이 최단거리인지, 어떤 루트가 기체 부담을 가장 덜 수 있을지, 슬레타는 속속들이 알고 있다.

 

신호가 잡혀 내 모니터에 데이터가 표시되었다.

 

"찾았어요. 지금 회수할게요."

 

"슬레타 부탁해."

 

멜리사의 애원을 들으며 지면의 균열된 부분에서 날아오른 우리를 태양열과 고에너지 입자가 덮쳤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나라도 위험하다. 슬레타는 침착하게 바라보면서 곧바로 모빌 크래프트를 발견했다. 굴착작업 중에 붕괴사고가 발생한 듯하다.

 

"기체 쪽은 틀린 것 같네."

 

모빌 크래프트는 붕괴한 퇴적물에 끼어있었다. 콕핏을 억지로 열어서 파일럿만 구해내는 수 밖에. 슬레타가 빔 사벨을 뽑았다.

 

"에어리얼, 출력은 내가 조정할게."

 

슬레타가 출력을 낮추었다. 잘못하면 파일럿도 절단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빔 사벨을 살짝 기체에 갖다대어 조심스럽게 콕핏 부분을 베어내었다. 마치 외과 수술과도 같은 빔 사벨 조작법이다. 수성기지 관제센터에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어설프게 지시하는 것보단 슬레타에게 맡기는 것이 정답이란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에르고 씨, 들려요? 구하러 왔어요!"

 

"슬레타! 늦었잖아! 빨리 좀 하라고!"

 

도움을 받는 입장인 에르고가 거만하게 구는데도 슬레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에르고를 모빌 크래프트에서 꺼냈다.

 

"에르고 씨, 공기는 남아있어요?"

 

"예비분이 사고로 망가졌어. 앞으로 7분 밖에 없잖아? 아이고 사람 죽네~"

 

"괜찮아요. 4분이면 되니깐."

 

"뻥치고 있네. 여기에서 기지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슬레타가 4분이라 했으면 4분이다.

 

"눈 감고 있으세요."

 

난 태양빛을 가리기 위해 에르고를 품 안에 감싸고 크게 도약했다. 에르고의 우주복엔 이상이 없다. 이 정도면 4분 쯤은 버티겠지. 꼬매기라도 하듯 지면의 균열을 달려나갔다. 슬레타는 별일 없다는 듯 나아가지만 에르고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공포를 느낄 만한 속도다. 그래도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건 공기가 아직 남아있다는 이야기므로 생존확인을 따로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슬레타가 빔 라이플로 낭떠러지를 쏘자 벽이 갈라지면서 또다른 균열이 나타났다. 지름길인 것이다. 챠오몬프 기지의 게이트가 보이자 우리들을 맞이하기 위해 게이트가 천천히 열려 거기에 뛰어들었다. 삼중 기밀벽을 통과해 거주 지역까지 딱 4. 슬레타가 말한대로다.

 

거주지역 게이트 안에는 기지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슬레타는 공기가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에르고를 내려놓았다.

 

"웃기지마! 노인을 이렇게 함부로 다루다니, 내가 죽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한 거지!"

 

에르고는 헬멧을 벗자마자 고함을 질러댔다. 정정하기도 하시지. 하지만 멜리사가 달려와 에르고를 껴안았다.

 

"잘 돌아왔어요 에르고."

 

아내에게 안긴 에르고는 얌전해졌다.

 

"다녀왔수."

 

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안심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오렴 슬레타."

 

모니터에 어머니가 비춰졌다.

 

"엄마! 돌아왔어?"

 

어머니는 출세한 뒤 더더욱 바빠졌다. 지구권에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랜만에 돌아온 참에 마침 딸의 활약상을 볼 수 있었던 듯하다.

 

"잘했구나, 슬레타.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단다."

 

"엄마가 만들어준 에어리얼 덕분이야."

 

"에어리얼도 슬레타도 둘 다 대단했어."

 

어머니가 웃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기대에 부응했구나.

 

"엄마, 이번엔 얼마나 있을 거야?"

 

"네 생일까지는 있을 거야. 그러니 올해는 작년과 합쳐서 이 년분 파티를 열자꾸나."

 

"만세!"

 

슬레타가 뛰어오르듯 말했다. 하지만 슬레타가 어머니와 함께 생일을 축하한 것은 이 열한 살 생일이 마지막이었다.

 

 

 

***

 

 

 

슬레타가 열다섯 살이 되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바빠서 지구권과 수성을 왔다갔다 하느라 딸의 생일에도 함께 있지를 못했다.

 

"있잖아 에어리얼?"

 

외톨이 슬레타가 내 안에 틀어박히는 날이 더욱 늘어났다.

 

"학교는 어떤 곳이야?"

 

글쎄, 나도 가본 적이 없으니...

 

"이 만화처럼 생겼으려나?"

 

그건 픽션이지. 그리고 그거 너무 옛날 만화야.

 

"가보고 싶다, 학교..."

 

열다섯이 된 슬레타에게 흥미가 생길 만한 건 학교 뿐이다. 같은 나이대 아이들이 한가득 모여 즐겁고 자극적인 매일을 보내는 만화나 영화에 그려진 학교는 눈부신 곳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슬레타, 우리는 지구권에 돌아갈 수 없어. 넌 모르겠지만 저 쪽에선 어머니를 마녀라고 부르며 전세계가 증오하고 있어. 나도, 건담이란 게 들키면 곧바로 부숴질 거야. 그러니 네 꿈이 이뤄질 순 없어.

 

하지만 괜찮아.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해줄게. 학교 같은 게 없어도, 친구 같은 게 없어도, 내가 함께 있어줄게.

 

"있잖아 에어리얼. 내가 학교에 가게 된다면..."

 

살며시 비밀을 터놓듯이 슬레타가 말했다.

 

"함께 가자."

 

 

 

***

 

 

 

오랜만에 어머니가 수성으로 돌아와 슬레타는 무척 기뻐했다. 어머니가 없는 동안 배운 것이나 열심히 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이제 열여섯이 되었는데도 어린 아이처럼 일찍 잠들어버린 그날 밤, 어머니가 홀로 격납고에 찾아왔다.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어서오세요 어머니. 우리 둘만 있는 건 오랜만이네요. 슬레타가 기뻐했어요.

 

"다녀왔다 에어리얼. 기뻐하렴. 문을 열어냈어."

 

? 무슨 말씀인가요 어머니?

 

"아스티카시아 고등전문학교에서 모빌슈트 결투대회가 열릴 거야. 여기에서 이긴 사람이 데링의 외동딸과 결혼할 수 있다는구나."

 

데링이라는 사람은 베네리트 그룹의 총재다. 이 수성기지도 베네리트 그룹 소유이고. 그러니 수성인들이 우리를 받아들이는 걸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마녀사냥에 세워 낙인을 찍은 사람이야말로 데링 총재였으니깐.

 

"에어리얼, 너희는 학교에 가렴."

 

, ?

 

나와... 설마 슬레타!?

 

"내가 만든 최고걸작. 네가 슬레타의 검이 되는 거야."

 

안 돼.

 

안 됩니다 어머니.

 

전 괜찮아요. 하지만 슬레타는 안 돼요. 그렇게 착한 아이를 어떻게...

 

복수는 우리가 하는 거예요. 슬레타를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어머니에게 내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두고 보라고 모두들. 우리의 딸이 원한을 갚아줄 테다!"

 

 

 

***

 

 

 

다음날.

 

아무 것도 모르는 슬레타가 기뻐하며 보고해왔다.

 

"있잖아 에어리얼! , 학교에 가게 되었어!"

 

알고 있어. 어젯밤 어머니가 말하셨거든.

 

"엄마가 말이지, 입학 절차를 다 밟아놓으셨대. 수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공부를 하라고 말야. 나 열심히 할 거야. 누구도 죽지 않는 수성을 만들기 위해서 말야. 마을도 가게도 학교도 잔뜩 유치하고 말이지..."

 

아아, 넌 아무 것도 모르는 구나. 모든 걸 알려주고 싶어. 어머니가 널 복수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거역할 수 없어. 그 분은 날 만드신 어머니니깐.

 

"하지만 나 잘할 수 있으려나? 인간 친구를 만든 적 자체가 없는 데다가 공부도 자신이 없네..."

 

라며 슬레타가 불안해 했다.

 

"...무서워. 난 수성 밖에 모르는 걸. 엄마도 같이 가줄 수 없대."

 

그래 슬레타. 혼자서 지금 당장 학교에 간다니 무리야. 공부라면 수성에서 해도 되고 네가 없으면 수성인들도 모두 힘들어 할 걸? 어머니의 도구가 될 필요는 없어. 저주를 이어받지 않아도 돼.

 

"거절하는 게 좋으려나? 가면 실패할 수는 없잖아? 입학금도 공짜가 아닌 걸. 엄마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될 거고. 어떡하지..."

 

괜찮아, 슬레타. 거절해 버려. 도망치자.

 

"어떻게 할까? 생각이 정리되질 않네. 그래도 가는 편이 좋으려나..."

 

도망쳐 슬레타.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이런 내 목소리가 들릴 리 없는데 슬레타는 내 말에 답이라도 하는 듯이 말했다.

 

"도망치면 하나."

 

!

 

"나아가면 둘. 맞지, 에어리얼?"

 

놀랍다. 슬레타가 도망치치 않겠다고 말했다. 어릴 적엔 내 안에 도망쳐 오기만 했던 울보 슬레타가 지금은 앞을 향하고 있다. 어머니의 말을 자신의 힘으로 바꿔서.

 

... 그렇구나 슬레타. 너는 매우 성장했구나. 이젠 내 안에 숨어있던 작은 여자아이가 아니야. 여태껏 널 돌보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슬레타가 날 가르치고 있었던 거야.

 

"있잖아 에어리얼, 나아가면 틀림없이 두 개 뿐 아니라 엄청난 걸 얻을 수 있을 거야. 공부는 물론이고 친구라든가, 선배라든가, 데이트를 한다든가..."

 

그거 좋네 슬레타. 잃을 수 있는 걸 세는 것보다 얻고 싶은 걸 세는 편이 훨씬 나아.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게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서라고 해도, 용기를 얻은 것이 어머니의 말에 의한 것이라 해도.

 

슬레타, 넌 그 이상을 쥐어낼 수 있으면 되는 거야.

 

"가자 에어리얼. 함께라면 분명 괜찮을 거야!"

 

그건 내가 슬레타에서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물론이야, 함께 있어줄게.

 

우리는 가족이니깐 말야.

 

나는 동의하는 뜻을 담아 모니터를 두 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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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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