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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12. 29. 16:40

세계대전이 끝난 지 일 년이 지나 무더운 여름이 다시금 찾아오자 엄마께서 갑자기 "테츠코, 할 이야기가 있단다."라며 말을 꺼내셨다.

"테츠코는 토쿄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니?"

"토쿄에 있는 학교?"

토토가 토모에학원을 졸업했다면 진학하려 했던 학교가 있었는데 하타노다이에 있는 코우란여학교였다. 어릴 적부터 다닌 센조쿠교회 맞은 편에 있는 종교재단 학교로 아빠가 출정하게 되기 전에 코우란에 가는 게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엄마 이야기론 토쿄에서 만난 친구 분과 토토가 좋다고만 하면 그 분 집에서 하숙을 하며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한다.

"여기 있어봤자 음악이라든가 춤이라든가 영어 같은 테츠코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없을 거야. 테츠코만 좋다면 엄마 친구 집에서 코우란여학교에 다닐 수 있어. 돈이 조금만 더 모이면 키타센조쿠 집을 지어서 돌아올 수 있으니깐 테츠코가 코우란에 들어가고 싶다면 함께 가서 수속을 밟자. 어때?"

새빨간 사과, 시로야마 공원에 피는 벚꽃, 채소시장의 분주함, 누마하타 아저씨, 그리고 학교 친구들... 토토는 이 모든 걸 좋아했다. 하지만 산노헤 시로야마 공원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내가 있을 곳은 이 곳이 아니라는 느낌도 주욱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토쿄에 돌아가고 싶어요."

토토는 엄마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여름방학 때였기에 토토는 학교 친구들에게 "토쿄에 있는 학교로 전학갈 거야."라고 전할 수가 없었다. 가장 사이가 좋았던 여자애에게라도 전하고 싶었지만 엄마께서 "내일 토쿄로 가자꾸나."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게 끝나버렸다.

토토는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하지만 그 후 연극을 하며 지방을 돌 때 토호쿠에 들를 일이 있으면 꼭 연락을 해서 그 아이가 살고 있는 하치노헤이에서 만나 차를 마시거나 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엔 손주에 이어 증손주까지 안아보게 된 할머니가 되었지만 처음 만난 날 교실 유리창을 닦으며 이야기했던 일을 서로 기억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피어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니

 

찬송가와 목탁

 

"기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반반 정도려나? 조금은 참아야겠죠.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건 기쁘지만 역시 가족이 다함께 살고 싶어요."

"집은 내년이면 지어질 테니깐 그 때까지만 참으렴. 테츠코는 코우란여학교에서 착실하게 공부하렴. 할머니가 노리아키 짱과 마리 짱을 돌봐주실 수 있으니깐 엄마도 장사에 집중할 수 있어. 다같이 힘을 내면 같이 살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아빠는 언제 돌아올까요? 아빠가 돌아오지 않고서야 가족이 모두 모였다 말할 수 없을 텐데."

"여러 사람에게서 정보를 모으고 있으니깐 걱정하지 마렴. 아빠는 시베리아에서 힘내고 있을 테니 우리도 좀 더 기다려주자."

스와노타이라에서 우에노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토토와 엄마는 줄곧 이야기를 나누었다. 햅쌀로 지은 따끈따끈 주먹밥을 베어물며 자신감으로 가득찬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토토도 "분명 잘 될 거야."란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온 지유가오카에서 엄마는 역 앞에 세워진 포장마차 같은 가게들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토토가 하숙생활을 하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주셨다.

"코우란 교복은 원래 점퍼 스커트이지만 다음에 올 때 만들어 가져올 테니깐 지금은 있는 옷으로 대강 맞추렴."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아오모리 사람들에게서 부탁을 받은 생활용품을 사들인 뒤 누군가가 가르쳐준 전당포에 들러 이러쿵저러쿵 교섭을 하셨다. 텅 비었던 엄마의 가방이 순식간에 빵빵해졌다.

"부탁받은 건 거의 다 입수했으니깐 야간열차를 타고 가면서 잘 수 있겠네."

엄마는 너무 바쁜 나머지 당일치기로 스와노타이라에 돌아가실 작정이셨다. 우에노역에 돌아오는 길에 토토를 친구 분 집에 맡기고서 토토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부턴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엄마는 좀만 있으면 다시 올 테니깐 잘 지내야 한다 테츠코?"

얼마 안 있어 저금도 충분한 금액에 도달하면서 엄마는 목수 아저씨에게 새로운 집을 지어달라 부탁을 드렸다. 엄마는 불타기 전 집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빨간 지붕과 하얀 벽만은 꼭 만들어 달라고 목수 아저씨에게 애원하다시피 강조를 했다고 한다.

 

토토는 코우란여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1888년에 성공회가 창립한 학교로 서양 저택 같은 건물을 가진 멋진 학교였지만 그 건물도 세계대전이 끝나기 삼 개월 전에 큰 공습을 맞아 불타버렸기에 지유가오카 옆마을에 있는 죠우신사, 통칭 "구품불(九品佛)"이라 불리는 절의 건물을 빌려 수업을 재개하게 되었다. '크리스트교 계열 학교인데 절에서 수업을 받다니 이상하네.'라고 생각했지만 구품불은 토모에학원에 다닐 때에도 잘 알고 있던 곳이었기에 기쁜 마음이 더 컸다.

구품불은 토토에게 있어서 특별한 장소였다. 토모에학원에서 "산책"이라는 수업을 할 때면 곧잘 걸어서 십 분 정도면 도착하는 구품불에 가게 되었다. 경내엔 재밌는 것이 많이 있어서 텐구의 발자국이 찍혀있다는 커다란 돌, 별똥별이 떨어졌다고 하는 깊은 우물, 커다랗고 새빨간 인왕님, 사람의 혀를 펜치 같은 것으로 뽑아버린다는 염라대왕... 옛날 이야기의 무대가 그대로 옮겨진 듯한 절이었다.

왜 죠우신사를 구품불이라 부르는 건지도 토토는 알고 있었다. 본존의 아미타여래상이 세 아미타실에 각각 세 개씩 안치되어 있어서 합쳐서 아홉 개의 불상이 있으므로 "구품불"이라 불린다고 토모에학원 선생님이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경내에서 커다란 은행나무를 발견했을 때 토토는 토쿄에 돌아온 뒤 본 것 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어!'라고 생각했다. 가을이 되어 열리는 열매를 곧잘 먹었기 때문이다. 은행 열매는 냄새가 고약했지만 튀겨서 껍질을 까 먹으면 맛이 좋았다.

이층 목조건물로 만들어진 "신도회실"이라 불리는 건물이 학교 건물을 대신했다. 코우란이 신세를 지기 전엔 토쿄대공습으로 불타버린 타카사고베야를 쓰던 마에다야마류 선수들에게 스모 연습장으로써 빌려준 적도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보니 스모 경기장은 이미 없앤 뒤였다. 있었다면 재밌었을 텐데하고 토토는 생각했다.

 

2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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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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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12. 28. 16:53

토토, 선로에 매달리다

 

토토는 스와노타이라에서 산노헤까지 목에 건 정기권을 보여주며 통학정기편 기차를 타며 다녔는데 엄마는 "정기권을 빼거나 해선 절대 안 된다?"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셨다. 어느 날 하굣길에 아무리 기다려도 산노헤역으로 기차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기차가 늦는 일이야 자주 있었으니 함께 스와노타이라에서 다니는 친구와 실뜨기를 하기로 했다. 정기권을 넣은 주머니의 끈이 실뜨기를 하기에 적당한 길이라는 걸 눈치챈 토토가 목에 건 끈을 벗어 실뜨기에 쓰려고 했다.

개구리라든가 철도라든가 여러 어려운 모양을 끈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사이에 드디어 기차가 도착했는데 금방 갈 거리란 생각에 정기권을 입에 문 채로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실뜨기를 이어갔다. 스와노타이라에서 내리면서 개찰구에서 정기권을 보여준 다음 정기권을 손에 든 채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 언제나처럼 골목길에서 헤어지려 했지만 그 날 따라 헤어지기 싫어져 친구 집 근처에 있는 다리까지 가서는 "실뜨기 재밌었어. 내일 보자!"라며 손을 흔들었다.

다리 옆에는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하늘 높이 솟아있었다. 친구는 그 다리를 건넌 뒤 돌아보며 크게 손을 흔들었고 토토도 질세라 더 커다랗게 흔들었다. 그 때, 토토의 손에서 뭔가가 펄럭펄럭거리며 날아가 강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뭐지?"라고 생각한 순간, 그것이 정기권이라는 것을 바로 알 게 되었다. 절대 목에서 빼면 안 된다고 약속했던 소중하고 소중한 정기권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정기권은 강 표면에서 흐늘흐늘 떠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바로 강의 흐름을 타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강은 빠르게 흘러갔고 근처도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기에 토토로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정기권을 떨어뜨렸어요."라고 자백하자 "그러게 조심하라고 했잖니? 새로운 정기권은 다음달이 되어야 살 수 있으니 내일부턴 걸어갈 수 밖에 없겠네."라고 하셨다.

정기권은 세계대전 후 사정상 한 달의 첫날에 일 개월어치만 살 수 있는 시스템으로 판매되었는데 엄마가 역무원 아저씨와 교섭을 해보았지만 발매 규칙을 어길 수는 없었기에 토토는 다음날부터 스와노타이라에서 산노헤까지 약 오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가게 되었다.

그냥 길을 걸어가려면 구불구불한 길을 크게 돌아가야 하는데다가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토토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냈는데 선로 위를 걸어가면 헤맬 이유도 없으며 "선로로만 걸으믄 한 시간이면 도착할 거여."라는 말을 들었기에 이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물론 선로는 기차가 다니는 길이니 상행선이 몇 시고 하행선이 몇 시인지 머릿속에 입력해 놓고 기차가 지나갈 때엔 선로 옆으로 비킨 뒤 통과하는 걸 기다렸다가 다시금 걸어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옷은 물론 신발도 부족한 시대였으니 이 즈음 토토는 나막신을 신고 등교했다. 매일 아침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선 스와노타이라역에서 선로의 침목을 또각또각 밟으며 산노헤역까지. 산노헤역에서는 기차를 타고온 친구와 합류하여 학교로 갔다. 선로 위를 걷는 건 갈 때의 오 킬로미터보다 돌아올 때의 오 킬로미터 길이 더 힘들었지만 그래도 힘을 내서 또각또각 뜀뛰기를 하며 걸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스와노타이라역까지 얼마 남지 않은 철교 위를 건너던 도중에 갑자기 "부옹~!"하는 기적 소리가 들리면서 예정에 없던 기차가 앞에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임시로 배차된 화물열차였다. 철교 아래론 강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흐름이 빠른데다가 깊기까지 했다. 철교 중간에 선로공사 인부들을 위해 만들어진 좁은 피난소가 있지만 운 나쁘게도 바닥이 떨어져 나가 거기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토토는 선로 아래로 내려가 양손으로 침목을 잡고 매달렸고 굉음을 내는 기차가 머리 위를 통과해 갔다. 화물열차에 대체 몇 량이나 되는 화물칸이 연결되어 있었을까? 영원하게까지 느껴지는 길고 긴 시간이었다.

토토는 철봉을 싫어했지만 토모에학원을 다녔을 당시 언제까지 한 손만으로 철봉에 매달려 정육점 냉장고에 걸려 있는 쇠고기 흉내를 낼 수 있나 놀이는 좋아했다. 쇠고기 놀이. 어쩌면 그 놀이 덕분에 팔 근육이 단련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마지막 화물칸이 지나갔고 겨우 살았네 하고 올라가려 했지만 양팔이 저려서 올라갈 수가 없어서 이 때 정말 초조해졌다. 필사적으로 다리를 올려서 가방을 침목 위에 걸쳐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다. 어설프게 발가락에 힘을 주면서도 떨어질 수 없다 버틴 덕에 무사했다. 철교 아래에는 강물이 소용돌이까지 만들어내며 태평양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어쨌든 몸이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한 달 후, 엄마가 새로운 정기권을 사주셨다. 토토는 정기권을 주머니에 잘 넣은 뒤 끈을 확실하게 목에 걸었다.

 

토쿄에 돌아가고 싶어

 

조금씩 생활이 안정되어 가고 있을 무렵 엄마는 토쿄 쪽이 신경쓰이기 시작했지만 언젠가 토쿄에 돌아간다 한들 집은 이미 불타버렸으니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는 일단 토쿄에 가보기로 했다. 키타센조쿠 집이 있었던 부근엔 아직 방공호에 살고 있던 사람도 많이 있었고 폐자재나 슬레이트로 지은 막사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로 토쿄에 방문했을 때에 엄마는 예전에 알고 지냈던 목공 아저씨를 만나 돈이 준비되는대로 집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남은 건 어떻게 집을 지을 돈을 버는가였는데 크게 성공한 밥집으로 벌어들인 돈으로도 많이 부족했으며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라면 채소나 해산물 행상인 밖에 없었다. 엄마는 부지런히 행상인 일을 하여 단골을 늘려갔는데 그러는 와중 엄마가 토쿄 출신인 걸 알고서 "토쿄에 가멘 요른 거 필요하지 않겠수까?"라며 상담을 해오는 단골이 생겨났다. 밥집을 하며 알게 된 토쿄 사람들은 행상인으로서 선배들이니 연락을 하면 여러 모로 알려줄 수도 있다는 것에 엄마가 묘안을 떠올렸다.

"하치노헤이에서 떼온 해산물로 장사를 하는 것보다 토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주문해서 그걸로 장사를 하는 게 훨씬 더 잘 팔릴 거야."

스와노타이라에서 하치노헤이까지 주문을 모아보니 "그거 갖고 싶구먼~" "이거 갖고 싶데이~"라며 요청이 쇄도했는데 그 중에서도 많았던 것이 일본식 옷, 작업용 장화, 한텐, 주부용 옷, 앞치마 등이었고 사전이나 보석, 시계 같은 것도 있었다.

토쿄에 물건을 사러 갈 때엔 하치노헤이에서 떼온 하룻밤 말린 오징어를 보자기에 꽉꽉 채워넣으셨는데 부피가 그닥 크지 않았는데다가 식재료 부족에 시달리던 토쿄에서 팔기에 매우 좋았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주문품을 사올 때 전당포를 자주 이용해서 이런 곳에 흘러들어온 질 좋은 시계나 보석 등을 싼 가격에 입수하는 방법 등을 배우셨으며 그걸 아오모리에 가져와 상당한 가격에 팔아넘기셨다.

엄마는 스와노타이라와 토쿄를 정력적으로 왕복하셨는데 그런 와중에 엄마와 토토 형제에 용기를 주는 정보가 날아들어왔다. 신문에서 시베리아에 억류되어 있는 일본인 포로 기사가 실려 거기에 "포로 중엔 NHK 교향악단의 콘서트마스터를 맡았던 쿠로야나기 모리츠나 씨도 있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아빠가 살아계시는구나!"라며 크게 기뻐했지만 "NHK 교향악단 소속인 쿠로야나기 씨가 수용소에서 탈주하려다가 사살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괜찮아. 아빠는 어설프게 도망치거나 할 분이 아니야. 돌아갈 수 있는 그 날까지 수용소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실 거야."

어떤 소문이 들려와도 엄마는 태연히 대처하셨다. 아빠가 무사하실 거라 믿으며 물건을 사고 파는 데에 전력투구를 하시며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집을 짓기 위한 비용을 위해 은행에 맡기셨다. 물론 토토도 아빠가 무사하실 거라 믿고 있었다.

 

1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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