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산책, 스키, 해수욕
"해마다 한 번은 토토스케를 긴자에 데려가자."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빠가 그런 말을 했는데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매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언제나 엄마와 둘이서만 외출을 하는 아빠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별일이다.
아빠는 우선 시세이도우파라에서 은으로 만든 컵에 담긴 반구형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웨하스도 올려져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짝반짝거리는 스푼으로 한 숟갈을 떠내 입에 쏙 넣으면 차가움과 달콤함이 입 안에서 정수리까지 퍼지는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진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엔 긴자의 도로를 거닐며 쇼윈도우를 쳐다보기도 하고 가게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아이를 보는 것이 익숙치 않은 아빠는 토토가 어떤 물건을 잠시 봤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갖고 싶니?"라고 물어보며 사주려 들었다.
토토는 "갖고 싶은 게 아니어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바이올린과 엄마에게 푹 빠져 살아온 아빠로선 여자아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구경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라고 말해도 이해를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윈도우 쇼핑을 할 때엔 보고 싶어도 멈추지 않고 곁눈질만 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츠코시 백화점 옆에 있었던 킨타로우라는 장난감 가게에 들어간 건 아빠가 사주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엄청 고심한 끝에 안쪽을 들여다보면 영화 같은 그림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는 "엿보기 상자" 같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던 적도 있다.
장난감을 포장한 상자를 안은 토토는 딸에게 장난감을 사줬다며 만족해하는 아빠와 니혼극장(현재의 유라쿠쵸우 마리온) 지하에 있는 영화관으로 갔다. <뽀빠이>나 <미키마우스> 같은 영화를 본 뒤 택시에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해마다 한번씩 아빠와 했던 우아한 긴자 데이트는 전쟁이 격해지면서 이 세상으로부터 즐거운 일이나 맛있는 것들을 앗아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돌아보면 토토는 상당히 축복받은 소녀시절를 보냈던 것 같다.
겨울이 되면 가족과 함께 시가고원으로 갔다. 당시 시가고원은 무척 국제적이었던 곳으로 샹하이나 홍콩, 유럽에서까지도 외국인 관광객이 한가득 놀러오는 관광지였다. 아빠가 시가고원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지휘자 사이토우 히데오 씨로부터 연주 아르바이트를 권유받은 것을 계기였는데 오자와 세이지 씨의 은사로 알려져 있는 사이토우 씨는 첼리스트로서도 유명하여 아빠와 현악사중주 악단을 결성하였다.
토토 가족이 묵은 호텔에 들어간 순간 커다란 로비임에도 따뜻해서 깜짝 놀랐다. 식당도 복도의 구석조차도 어디를 가든 따뜻했는데 화장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식당의 보이가 눈 속에서 노란 채소들을 파내고 있는 것도 보았는데 노랗고 사각사각거리는 이 채소를 "샐러리"라 한다고 보이가 알려주었다. 엄마도 토토도 샐러리를 그 때 처음 먹어봤다.
시가고원 연주회는 외국인 전용 호텔에서 열렸다. 매일 밤마다 댄스파티가 열려서 아빠가 거기에서 연주를 했는데 아빠가 정말로 목표로 하고 있었던 건 스키였다. 아빠는 시가고원을 무척 마음에 들어해서 연주여행차 갈 때마다 반드시 가족을 데리고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 스키장엔 리프트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스키 플레이트를 착용하고서 자기가 직접 경사로를 올라가야 탈 수 있었다. 토토는 겨울용 두꺼운 원피스 아래에 바지를 입었을 뿐인 차림새로 어린이용 스키 플레이트를 착용하고 연습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실크 그린 머플러를 머리에 두르고서 스키를 타고 있었는데 바람에 휘날리면 멋져 보일 거라 생각하고 그러셨다나.
스키 연습장에서 어린이를 보는 게 드문 일인지 외국인 스키어들이 곧잘 말을 걸었다.
"오, 큐트!"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칭찬을 들었다는 건 알았기에 "땡큐"라고 답했다. "땡큐"만은 알고 있어서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올 때마다 머리를 숙이며 그 말을 되풀이했다.
어느 날 파란 눈을 가진 젊은 스키어가 싱글벙글거리며 다가와서
"내 스키에 타보지 않을래?"
이런 몸짓을 했다. 모르는 사람이라 망설이다가 옆에 있던 아빠에게 물어봤다.
"괜찮아요?"
아빠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태워달라고 해보지 그래?"
토토는 기다렸다는 듯이
"땡큐, 베리 머취!"
라고 말하며 그 사람을 따라갔다.
비탈길을 꽤 올라간 뒤 그 사람이 자기의 스키 플레이트를 나란히 해서 앞쪽에 토토를 웅크린 자세로 올렸다. 어떻게 하는 걸까 하는 순간 곧바로 토토를 태운 스키가 자유자재로 연습장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미끄럼틀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고 매끄럽게 요람이 흔들리는 듯한 리듬도 느껴져 무척 기분이 좋아 이대로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은 토토가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잡아주고 있었다.
업거나 안고서 타는 게 아니라 스키 위에 아이를 올리고서 타다니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낼 테크닉이었는데 그럴 만도 했던 게 호텔 직원 왈 그 사람은 미국 영화에도 출연했을 정도로 유명한 스키어였다고 한다.
토토는 세계적인 스키어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되어 좀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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