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엄마의 신혼생활은 노키자카에서 시작했으며 토토도 노키자카 근처에 있는 병원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아빠의 오케스트라 연습장이 있는 곳은 센조쿠이케(현재의 오오타구) 근처였기 때문에 도보로 다닐 수 있는 키타센조쿠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전에 토토는 아빠, 엄마, 남동생, 셰퍼드 로키와 함께 살았다. 둘째 남동생과 여동생이 태어난 것도 이 집에 살았을 때였다. 무척 현대적으로 꾸며져서 붉은 지붕에 하얀 벽으로 이루어졌고 베란다도 있으며 바닥엔 판자를 깔은 지금식으로 말하면 플로링이 되어 있었다. 잘 때에도 이불을 까는 게 아니라 침대에서 잤다.
마당엔 수련이 떠있는 연못이 있었고 베란다 위에는 포도재배용 시렁이 있어서 매년 가을이 되면 달콤한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서 맛있게 먹었다. 전쟁이 격해지면서 음식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아빠는 포도 시렁에서 호박을 키웠는데 무척 잘 자라서 가족들이 기뻐했다. 온실도 있어서 아빠가 아침부터 열심히 동양란이나 장미를 돌보았다.
"토토스케, 이리로 와보렴."
아빠가 불러서 토토도 온실 식물들을 같이 돌본 적도 있었다. 장미바구미라는 코가 코끼리처럼 긴 작은 곤충을 장미 봉오리나 새싹에서 떼어내는 일도 했었다.
토토가 입은 옷은 모두 엄마가 재봉해준 것이었다. 그것도 가게에서 팔거나 하지 않을 듯한 참신한 옷들 뿐이었다. 엄마는 "외국 책을 참고한 거야"라고 말했지만 만듦새가 정말 특별났다. 마음에 드는 천을 발견하면 그걸 토토에게 걸쳐보고 토토의 체형에 맞도록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낸 다음 휙휙 꿰매어 순식간에 옷으로 만들어내었다.
"마법사 같아!"
그런 것을 입체재봉이라고 하는 걸까? 새로운 옷이 만들어질 때마다 토토는 깜짝깜짝 놀랄 뿐이었다.
요리를 해도 재봉을 해도 센스가 좋은 엄마는 즐겁게 만들어 갔던 것 같다. 토토가 다니던 토모에학원은 도시락을 그냥 열어서 먹는 게 아니라 상자를 뒤집어 열어서 밑부분부터 먹는 게 유행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모두들 엄마에게 바닥이 윗부분처럼 보이는 그림 도시락을 만들어달라고 졸라댔다.
토토 엄마는 그런 그림 도시락도 잘 만들어내어서 밑바닥 부분에 반찬을 넣어서 뒤집으면 그대로 여자아이 얼굴이 나오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 완성도에 다들 놀라서 점심시간만 되면 다들 "보여줘!" "보여줘!"라며 토토 주변에 모여들었다. 요즘 말하는 "캐릭터 도시락"이 실은 2차 세계대전 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집 근처에 있었던 센조쿠이케공원은 아이들이 놀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센조쿠이케는 카마쿠라시대에 니치렌쇼우닌이 샘솟는 물로 발을 씼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연못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투명했고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샘솟는 개끗한 물을 담은 연못의 한구석엔 훌륭한 홍예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토토는 가재를 잡으려고 다리에 걸쳐서 손을 뻗다가 두 번이나 연못에 떨어질 뻔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바로 구해주었다. 이 근처에는 신사나 찻집, 카츠 카이슈와 그 아내의 묘도 있었기에 휴일엔 가족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친카라원"이라는 어린이 놀이터에선 높이가 오 미터 정도 되는 미끄럼틀이 인기를 얻어서 저녁이 되면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이걸 타려고 모여들었다. "햐~" 같은 환성을 자아내며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타곤 했다. 무척 높은 곳에서 한번에 내려오기 때문에 코끼리 코나 구름 같은 뭔가 특별한 것에 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토토는 눈을 감고서 "코끼리 코!"라든가 "다음엔 구름!"이라든가 "마법사의 양탄자!" 같은 것들을 상상하며 타곤 했다.
물론 눈을 뜨고 내려오면서 멀리까지 펼쳐있는 마을 풍경이 휙하고 사라지는 걸 보는 것도 즐거웠다. 계절에 따라서 하늘의 색깔이 진해지기도 하고 옅어지기도 했으며 구름의 모양도 변화했다. 여름이 다 지나갈 때 즈음엔 뭉게뭉게 적란운이 어느 새엔가 사라져 얇은 구름이 베일처럼 깔린 하늘을 보기도 했다. "아아... 여름이 끝나버리네." 조금 쓸쓸한 감정을 느끼며 그 구름 베일을 망토처럼 걸친 요정이 된 상상을 하며 내려오기도 했다.
친카라원 근처엔 누구도 살지 않는 저택이 있어서 토토는 곧잘 그 저택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타타미 위를 뛰어다니곤 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집이 카츠 카이슈의 별장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카츠 카이슈는 말년에 여기에서 유유자적한 한 때를 보내며 사이고우 타카모리와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유서 깊은 집을 신발은 벗고 들어갔다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녔던 걸 생각하면 세계대전 전은 정말 관대한 시대였는지도 모르겠다. 쿵쾅쿵쾅 달려도 술래잡기를 해도 숨바꼭질을 해도 한번도 어른에게 혼나거나 하지 않았으니깐.
카츠 카이슈가 이 곳에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게 된 건 NHK 대하 드라마를 보고 나서였는데 그걸 본 토토는 친척 아저씨를 오랜만에 보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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