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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좋아했던 그 애는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내가 기억하는 모습일까? 이렇게 말해봤자 기억이 너무나 희미해졌다. 생각해 보니 그 애를 만났던 나이의 배를 훨씬 넘는 나이가 되었다. 그에 비해 볼 수 있었던 기간은 짧았고 좋아했을 뿐 대화가 오간 적도 없었으니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짧았다. 정말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이미지일 뿐. 어떤 상황을 통해서도 그 애를 기억하기 힘드니 노래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비가 온다거나 어떤 장소에 간다거나 해서 기억할 수도 없다. 이제 와선 왜 좋아했던 걸까 하는 의문도 든다. 정말 짧은 만남이었는데 접점이랄 것도 정말 사소한 것이었는데 왜? 그 시기엔 그냥 그런 사소한 것에도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의미가 없는 유전자의 장난에 불과했던 걸까. 그 때엔 정말 하루종일 그 애를 생각했었는데 그 시간들이 그냥 그런 것이었던 걸까.
이제 와서 그 애를 만나거나 하고 싶지도 않고 만나봤자 할 이야기도 없다. 이제 와서 옛날에 좋아했다라는 말을 해봤자 너무 무의미하겠지. 오랜만에 만나보니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다거나 이혼을 했어도 다시 시작하자거나 그런 노래 가사들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아니지 시작조차 않았는데 뭔 다시 시작이냐) 그런 식으로 접점도 거의 없었던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황당한 것일지 굳이 생각해 봐야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희미한 기억 속에서 자리잡고 있을 뿐인 대상을 이제와서 굳이 만난다면 그 희미한 기억과 다르다는 것에 오히려 혼란에만 빠지겠지.
애초 나를 기억이나 할까? 글쎄, 기억한다 해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할 거란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데.
모르겠다. 난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추억으로 생각해온 걸 고찰하고 싶은 걸까. 추억을 갈기갈기 찢고 싶은 걸까.
어떤 글을 써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거야 옛날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람이 울고 있는 앞에서 장사를 하는 새끼들은 대체 뭘까.
최재천 선생님이 유튜브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챗GPT에 대해 미국에서 상위에 위치하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레포트를 낼 때 챗GPT 같은 걸 사용해도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와 자신만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면서 변별력을 갖추게 되는데 중하위권 대학들을 살펴보면 모든 학생들이 그저 챗GPT에 있는 내용 그대로를 뽑아 내버리는 바람에 채점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제자 교수의 이야기를 소개했는데 https://youtu.be/Js5lIti9-TQ?si=qlz4W3gExNmV2Nho&t=655 그걸 들으며 대학교에 다녔던 시절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실험 과목 시간에 조교가 예년에 같은 과목을 수강했던 학생들의 실험 레포트를 그대로 베낀 사람이 있다며 한 사람 한 사람 베꼈냐고 물어봤는데 나 외엔 대부분이 베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일을 이럴 수 있냐는 투로 동기한테 말했더니 그런 게 당연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멍청해서 그랬겠지만 좋은 학점을 받지도 못했고.
결국 내가 생각하는 편한 방법을 고르지 않는다는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냥 편한 방법을 고르지 못하는 것이고 불편한 방법도 제대로 해내지를 못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거겠지. 보면서 왜 저러냐 하는 생각만 들었을 거고.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오답일 확률이 너무나 높다. 그걸 진작에 알아차려야 하는데 알아차리는 시점은 대부분 모든 게 끝난 이후다. 어중간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 그냥 저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차라리 편하지 않았을까 하고... 뭔가를 분출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 또한 이 때문 아닌가.
언덕 너머 붉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올 무렵
아이들은 바삐 집으로가
TV앞에 모이곤 했었지
매일 저녁 그 만화 안에선
언제나 정의가 이기는 세상과
죽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나의 영웅이 하늘을 날았지
다시 돌아가고픈 내 기억 속의
완전한 세계여
-넥스트 <the Hero> 중에서
요즘 들어 이 노래의 이 대목을 읊조리는 일이 잦아졌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들을 돌아보면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일 법한데 희망이라고 생각한 것들조차 절망으로 바뀌어 네가 좆던 것들은 헛된 것이었다라고 내 안에 있는 내가 웃음만 터뜨리고 있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만화 속 영웅들은 희망이라고 할 수 없다. 만화 속 영웅들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존재일 뿐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오히려 많은 이들을 욕심과 헛된 희망에 사로잡히게 하여 더 큰 비극을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화 속 영웅들은 이상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내 안에 자리잡은 채 왜 이것이 이렇게 되지 못하는 걸까 저것은 저렇게 되는 것이 맞는데라며 현실과의 괴리를 더 괴롭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만화 속 영웅들을, 이상적인 세상을 목 놓아 외쳤던 사람들의 말을 외면해야 했던 걸까?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고 하지만 그건 다른 곳이 평화롭지 못하기에 가능하고 민주주의의 지속을 원한다고 해봤자 많은 사람은 총을 들지만 않았을 뿐인 전쟁으로 인식하고 이 상황이 해결되길 원한다고 하지만 그건 누군가가 대신 해주길 바랄 뿐 나는 하기 싫은 것일 뿐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를 희생시킬 영웅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해봤자 나 또한 그 희생양이 나타나길 바랄 뿐. 이런 거나 끄적이고 있는 것 자체가 그저 한가한 소리에 불과할 뿐.
거대한 악들이 세상을 휘젓는 것을 보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노래나 읊조리고 있을 뿐인 나는 누군가가 희생해서 사태를 해결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이기주의자에 불과하다. 그래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한 건 그저 이 정답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나.
아무리 정교한 지식을 쌓는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논리에 기초한 의견을 펼친다 한들 유튜브에서 선동하는 사람의 영향력이 더 크다. 오죽하면 대통령에 오른 사람이 유튜브 보고서 계엄까지 일으켜서 선관위를 뒤지려다가 탄핵을 당했을까. 신문에서 아무리 소리를 높여도 한계가 있는 반면 유튜브와 댓글 선동에는 한계가 없다. 박근혜 탄핵 때와 윤석열 탄핵의 양상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신문의 영향력은 더 작아지고 유튜브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정교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돈보다 훨씬 큰 돈을 선동에 쏟고 있다. 아무리 봐도 효율적이지 못한 행동을 국회의원 지방의원 공무원 같은 사람들만 보면 효율적이지 못한 일만 한다고 다 잘라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이젠 신기하지도 않을 정도다. 그런 사람들이 스피커를 빵빵하게 틀고 있는 동안 옆에서 경을 읊고 있어봤자 들리지도 않는데 그 경을 익힐 이유가 있는 걸까.
아니 이젠 그런 지식을 배우지 않아도 인공지능이 알아서 다 해준다는 흐름까지 생겨났다. 인공지능에 있는 지식들은 상당수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완전히 맞다고 할 수 없고 조금만 파고 들어가도 틀린 답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상당수지만 그런 툴이 편하기에 사람들은 시험기간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다며 영상을 올리는 데에 시간을 낭비할 정도로 빠져들었고 거기에 따라 관련 주식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뉴스거리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해봤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런 책에서 읽은 지식은 이미 다 인공지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런 지식을 책을 통해 힘들게 익혀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흐름들은 결국 뭐가 돈이 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움직인 결과이다. 이런 자본주의에 반발해 나온 사상들이 있긴 했지만 그 사상들도 돈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거나 투명해져 있거나... 많은 사람들의 오랜 고찰 끝에 나온 것이라 한들 비웃음이나 사지 않으면 다행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뭔가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는 것 아닐까. 하긴 요즘 들어 생각도 잘 나지 않게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