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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은 다르게 태어날 수 없다. 애초에 그 인간이 되는 것으로 결정되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새도 개도 꽃들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나는 것은 모두 결정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과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의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 곳이 아니라면 태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태어나는 것은 다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면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상당히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른 사람의 생은 다른 사람의 것이지 자신의 것은 아니다. 당시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후세가 알아줬으니 의미가 있다는 말도 비슷하게 들린다. 그 사람의 생은 이미 끝나서 알아줬다는 것이 전달될 수가 없다는 게 무슨 소용인 걸까. 그냥 쉬운 예로 고흐의 그림들이 지금은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오가고 있지만 고흐가 살아있는 동안엔 그린 그림들이 거의 팔리지 않은 상황에서 동생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다. 자신의 예술적 의욕을 떠나서 그림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만 놓고 봤을 때 고흐는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이 알아줬다고 해서 고흐의 행복이 소급되기라도 하는 걸까? 전에 본 고흐를 그린 영화에서 후세가 알아줄 것이다란 식으로 고흐가 직접 말하는 걸 보고 화가 났던 게 이런 부분이었다. 아니 고흐는 이미 죽었다고.
많이 살아봐야 백 년을 넘기기도 힘든 사람의 생에서 무슨 의미를 찾기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찾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중간지점에서 만족하길 자신에게 강요한 것이 아닐까. 그냥 그렇게 만족하는 것을 진화 과정에서 얻어낸 것 아닐까. 더이상 추구하면 끝이 없으니깐.
죽음이란 건 일 년 후에 찾아올 수도 십 년 후에 찾아올 수도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찾아올 수도 있다. 아니 뭐 년 단위가 아니라 며칠 몇 달 안에 운이 좋지 않아서 찾아올 수도. 그렇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끝났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이 끝날 수도 있다. 그럼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인류사에 남는 것도 아니겠지만 남는다 한들 인류가 멸종되면, 아니 그 전에 역사를 보존할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사라져 버린다면 없어져 버릴 것이다. 외계인들이 지구라는 행성이 없어지기 전에 찾아와 인류의 흔적을 발견한다 한들 거기에 인류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면 전달할 수도 없을 거고. 그럼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냥 모래사장에 낙서를 한 것 밖에 더 되나.

괜히 주차금지라고 써놓은 것도 아니고 차의 통행도 불편할 뿐더러 바로 옆에 있는 계단 입구를 막아버리게 되는데 주차금지라고 써져있는데도 당연하다는 듯이 주차를 해놓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주차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랫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엘리베이터가 아랫층으로 가지를 않으니 올라오기엔 자신의 무릎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까. 그 소중한 무릎으로 액셀은 어떻게 밟으시는 건지. 금연표지판 무시하고 담배 피우는 새끼들이 이런 새끼들인 건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열심히 했을 당시 서로 온라인이 아니어도 내가 만든 섬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꿈번지 코드를 트위터에 올리곤 했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어서 올려봤자 나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볼 이유도 없는 건가 하고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지난 최근에야 꿈번지를 얼마나 봤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엔 알아봤자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아무도 안 봤을 텐데 이제 와서 그걸 확인하면 새삼스럽게 마음의 상처만 늘 뿐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들여다 보았다. 결과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오십 명이 보고간 걸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 대체 그 오십 명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본 걸까… 어디에선가 웃음거리로 공유한 걸 보고 접속한 걸까? 꿈번지를 몇 번이나 올렸는데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는데 그런 수가 오는 게 가능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지를 못한다. 그 때 괜히 올린 건가 하는 생각부터 들어버린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기 좋게 만들었는데 비교하면서 웃어댄 걸 거란 생각을 하니 더 비참해진다. 어떻게 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다. 인터넷 공간에서 뭘 내세우려 하면 꼭 이런 꼴이다. 너무나 처참하다.
옛날에는 생각나던 어휘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를 하면서도 이 캐릭터 이름이 뭐였더라를 한참 생각해야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실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마틴 루터 킹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헤매게 되었다. 하긴 나에게 이젠 흑인 인권 같은 거 알 게 뭐냐 싶어졌지만. 그런데 이런 것이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세상이 나에게 뭔가 요구하는 것은 또 아니다. 이런 게 상관없는 일을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겠지만. 사실 전부터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열심히 파고드는 척을 했을 뿐이지.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런 걸로 자책을 하게 된다. 필요한 것인지의 여부는 상관없이 그냥 껴안고 있고 싶을 뿐일 것이다. 사람은 결국 이런 행위를 욕구로 삼고 있는 거니까. 다른 사람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런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욕구.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결국 이 욕구 때문에가 아닌가. 그렇지만 결국 이 욕구를 계속 충족시키지 못하니깐 과부하만 걸리는 건가. 전에 비해서 글을 못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전에 쓴 글들을 살펴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냥 쓰레기였다. 떠오르는 생각이 줄어들었을 뿐 소재를 선택하는 기준도 그걸 풀어내는 수준도 그대로이다. 발전 없이 이어나갔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겪게 된 것 아닌가. 책을 읽어봤자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면 무용지물. 결국 썩어가는 뇌를 끌어안고 절망할 뿐.
<여행과 나날>을 본 지 꽤 되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화 자체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싶었다. 내용에 여백이 많고 뭔가를 목표로 하는 것도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풍경을 찍은 영상이다 그런 감상을 가졌던 것 같다. 아니 뭐 그 풍경도 태반이 어두침침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깔고 있어서 잘 안 보였지만...
영화를 보면서 심은경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과 심은경 배우가 걸어가는 길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활발하게 영화에 나오는 동안 <수상한 그녀>까지는 연이어서 출연작이 대히트를 치면서 앞으로의 길이 창창해 보였지만 그 이후로 완전히 꺾이면서 흥행도 평가도 못 받는 작품에만 연이어 나오게 되었다. 이동진 평론가 유튜브에 나와서도 이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이 없는데 과분한 평을 받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지금까지도 그저 의아할 뿐이다. 물론 자신에 대해 겸손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심은경 배우만큼의 재능을 가진 배우가 얼마나 있을까. 그 재능을 보고 여태까지 따라갔던 것 같은데. 그 대사가 나오는 GV 장면에서 나오는 관객들의 입장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일본 영화에 자주 나오게 되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눈 밖에 나가면 마음도 자연히 멀어지는 법이니 한국 관객들이 선호하지 않게 된 것인지 한국에서의 흥행이 일본에서의 흥행 성적만도 못한 영화들도 많았다. 한국 쪽에서 출연한 작품도 사람들이 얼마나 알았을까 싶은 성적이 나왔다. 내 입장에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게 일본 영화에서 나오는 심은경 배우는 항상 외국인이다. 이번 <여행과 나날>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른 배우들과 같은 입장이 아니라 외부인으로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날 수 밖에 없다. 결국 심은경 배우의 선택인 것이지만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가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영화 속 주인공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게 각본을 쓰는 장면에서 요즘엔 당연한 컴퓨터 타자가 아니라 원고지에 연필로 쓰고 있다. 원작이 있는 영화라 그렇게 묘사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좀 특이하네 싶었는데 여행을 떠났을 때엔 당연한 절차인 여관 예약도 하지 않아서 뺑뺑이를 돌다가 어떻게 찾았는지 주인 아저씨는 어떻게 영업을 한다고 했던 건지 모를 민박집으로 들어간다. 글을 쓰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는 상황에 주인 아저씨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종의 일을 겪고 난 뒤 역시 뭘 썼는지 알 수 없는 걸 쓴 뒤 민박집을 떠나는 걸로 끝난다. 이런 영화들에 나와서 이루고 싶은 게 정확히 무엇인지 만족을 하고는 있는 건지 앞으로 또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심은경 배우의 행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여행과 나날>의 한국 흥행 성적은 현재 오만 칠천 명. 일본 영화 출연 작품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일본영화 나오기 전에 나왔던 망작들만도 못한 성적이지만. <여행과 나날>을 보면서 느꼈던 걸 생각하면 이런 걸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평점은 8점으로 하겠다. 결국 박수를 치기도 비판을 하기도 애매한 작품이다 하는 감상만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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