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너머 붉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올 무렵
아이들은 바삐 집으로가
TV앞에 모이곤 했었지
매일 저녁 그 만화 안에선
언제나 정의가 이기는 세상과
죽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나의 영웅이 하늘을 날았지
다시 돌아가고픈 내 기억 속의
완전한 세계여
-넥스트 <the Hero> 중에서
요즘 들어 이 노래의 이 대목을 읊조리는 일이 잦아졌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들을 돌아보면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일 법한데 희망이라고 생각한 것들조차 절망으로 바뀌어 네가 좆던 것들은 헛된 것이었다라고 내 안에 있는 내가 웃음만 터뜨리고 있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만화 속 영웅들은 희망이라고 할 수 없다. 만화 속 영웅들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존재일 뿐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오히려 많은 이들을 욕심과 헛된 희망에 사로잡히게 하여 더 큰 비극을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화 속 영웅들은 이상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내 안에 자리잡은 채 왜 이것이 이렇게 되지 못하는 걸까 저것은 저렇게 되는 것이 맞는데라며 현실과의 괴리를 더 괴롭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만화 속 영웅들을, 이상적인 세상을 목 놓아 외쳤던 사람들의 말을 외면해야 했던 걸까?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고 하지만 그건 다른 곳이 평화롭지 못하기에 가능하고 민주주의의 지속을 원한다고 해봤자 많은 사람은 총을 들지만 않았을 뿐인 전쟁으로 인식하고 이 상황이 해결되길 원한다고 하지만 그건 누군가가 대신 해주길 바랄 뿐 나는 하기 싫은 것일 뿐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를 희생시킬 영웅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해봤자 나 또한 그 희생양이 나타나길 바랄 뿐. 이런 거나 끄적이고 있는 것 자체가 그저 한가한 소리에 불과할 뿐.
거대한 악들이 세상을 휘젓는 것을 보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노래나 읊조리고 있을 뿐인 나는 누군가가 희생해서 사태를 해결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이기주의자에 불과하다. 그래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한 건 그저 이 정답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