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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28 :: 속 창가의 토토 38
아쉬운 걸 하나 꼽자면 NHK 아침 연속 TV소설 <외톨이 마유코>(1971년 4월~1972년 4월)를 중도사퇴하게 된 것이었다. NHK에는 그 해 10월부터 연기 공부를 위해 뉴욕에 갈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아침 드라마는 요즘과 달리 일 년을 잡고 방송했기에 절반만 출연하고 관두기로 약속을 했다.
양친 없이 커온 주인공 마유코가 고향인 아오모리에서 상경하여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를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로 마유코가 하숙을 하는 집의 가정부를 맡고 있는 타구치 케이가 토토의 배역이었다. 케이 아주머니는 "선원이었던 남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린 뒤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며 초등학교 오 학년생인 아들과 늙은 어머니를 돌봐오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급료를 받기 위해 상경해서 가정부가 된 중년여성"이란 인물설정을 가졌는데 케이 아주머니가 아오모리현 하치노헤 출신으로 되어있다는 걸 듣고서 깜짝 놀란 동시에 의욕이 가득찼다.
피난차 머물렀던 아오모리에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사투리 같은 건 괜찮았지만 지금까지 TV에서 연기해온 배역들은 도시를 누비는 아가씨 같은 캐릭터가 많았기 때문에 케이 아주머니의 캐릭터에 맞출 수 있도록 공부를 하고 싶었다.
우선 처음으로 몸가짐에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를 익혀보고자 했다. "신경을 쓰지 않는다"라기보단 생활이 바빠 "신경을 쓸 수 없다"라고 하는 게 올바른 표현이겠지만. 몸가짐에 대해 우둔한 표현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머리모양이 우선일 것이니 NHK의 토코야마 씨에게 짧은 머리에 파마롤을 꽂고선 대충 감은 듯한 가발을 부탁드렸다. 이마가 극단적으로 좁아보이도록 가발을 깊게 쓰고서 우유병 밑바닥 같은 도수 강한 안경을 걸치고 보라색에 가까운 빨간 볼터치에 챙모자를 눌러쓰니 얼굴 쪽 이미지가 거의 잡혔다.
얼굴 다음엔 옷차림.다소 구세대적인 느낌이 나는 옷을 찾아서 솜을 넣어 몸집을 키우자 그야말로 "신경을 쓰지 않는" 외견이 완성되었다. 허리 쪽을 집어보자 토쿄 전화번호부 정도는 되겠다 싶을 정도로 두꺼워져 있었다. 거울 앞에 서자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토토라고 알아보기 힘들어졌다.
처음 녹화하는 날에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을 마친 뒤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었기에 이 차림 그대로 NHK 식당에 가보니 마침 <외톨이 마유코> 감독님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앉자 감독님은 흘끔 토토를 보더니 "네."하고 적당히 대답을 한 후 바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스기 료우타로우 씨와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스기 씨도 <외톨이 마유코>의 출연자였다.
"저기요."
토토가 한번 더 말을 걸었지만 감독님은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구나.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토토라고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나.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저, 쿠로야나기인데요."
라고 큰소리로 말해보았다. 그러자 감독님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토토 얼굴을 보고선
"정말이네!"
비둘기가 콩알탄을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야말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전혀 몰랐어요."라고 말해주었다.
녹화 시작 후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 이 개월 동안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토토가 케이 아주머니 모습을 하고 NHK 안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다들 아직 토토가 이런 분장을 했다는 걸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가는 곳마다 "잘못 들어온 아주머니" 취급을 받았다. 복도에서 인사를 해도 무시를 당하고 식당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평소 활짝 웃으며 받아주는 웨이터 분도 묵묵히 짤그랑 소리를 내며 두고갈 뿐. 화장실에서 줄을 서도 나중에 온 젊은 여자가 차례를 무시하고 새치기를 해버렸다. 동작이 느리고 요령이 없는 아주머니가 있으면 추월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인 듯하다.
토토는 무척 슬퍼졌다. 배역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애를 경험해 보는 건 곧잘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강렬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외톨이 마유코>는 대호평을 받았다. 4월에 방송이 시작되면서 "쿠로야나기 씨는 어떤 장면에 나왔던 거예요?"라는 질문이 NHK에 쇄도했다고 한다. 변신의 효과가 대단했다! 뉴욕 유학을 위해 타구치 케이 출연은 반 년 뿐이라고 약속했지만 NHK 측에선 마지막까지 나와줬으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다음 해에도 일본에 있게 되고 일본에서 일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게 뻔했으니 정한대로 10월까지만 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토토는 출국하기 전 아슬아슬한 날짜까지 출연을 이어갔고 "타구치 케이는 뉴욕에 있는 집의 가정부를 하러 미국에 갔다."는 결말이 맺어졌다.
뉴욕 유학을 가겠다고 엄마에게 밝혔더니 커다란 눈을 빛내며 "그거 좋네. 네 나이에 안 가면 언제 가보겠니?"라며 격려해 주셨다. 롯폰기 케이크집 언니가 "테츠코 씨를 TV에서 볼 수 없다니 너무 슬프네요."라고 말해 주어서 토토는 십팔 년 간 해온 것이 헛수고 같은 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NHK 식당에서 토토를 몰라봤던 감독님도 "테츠코 씨가 해볼만 한 거라고 생각해요. 재밌는 걸 가지고 돌아오실 거라 믿고 있겠습니다."라며 흔쾌히 배웅해 주었다.
1971년 10월, 출발하는 날.
"조심하렴."
아빠가 현관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다소 쓸쓸해 하셨던 것 같다.
"여유 갖고 해."
동생인 마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토토는 그 때까지의 십팔 년간 줄곧 아침에 일어나면 그 날의 스케줄을 분 단위로 정해놓고 이에 따라 보냈다. "오늘은 무얼 할까?" 같은 걸 생각을 하며 아침을 맞이했던 적은 하루도 없었다. 일과도 동료와도 무척 많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솔직히 다소 지쳐있었기도 했다. 마음 한편에서 전혀 다른 무언가를 흡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창조적이면서 항상 자극이 끊이지 않는 직업인데도 어째 반복이 이어지고 참신함을 찾기 힘든 매일을 보내는 것 같기도 했다.
기차가 쭈욱 달려왔던 레일에서 조금 벗어나 차량기지로 복귀하는 선로로 들어가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다 생각했다. 복귀 선로에서 가만히 멈춰있는 기차를 레일을 달리는 기차 쪽에서 보면 뒤쳐져 홀로 남겨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솔직히 쓸쓸하다거나 불안하다거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서둘러 달려갈 때엔 보이지 않았던 경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네다 공항에선 요시다 씨가 배웅하러 와주었다. 짐을 맡긴 뒤 탑승하기 전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서 토토와 요시다 씨는 공항 라운지에서 차를 마셨다.
"야마오카 히사노 씨에게 "유학 다녀올게요."라고 말했더니 "잘 다녀와요. 모두들 가고 싶어도 가족이다 뭐다 해서 가지를 못하는데 당신이라도 내가 못 가는 걸 대신해서 가줘요."라고 말하셨어요. 사와무라 어머니는 "갔다오렴, 갖다와. 그래도 이 년이라니 좀 기네."라고 하셨고." (사와무라 사다코. 쿠로야나기 테츠코 씨가 예능계의 어머니라 칭했던 배우 - 역자 주)
요시다 씨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줘서 토토는 기뻤다.
"사실,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좀더 자유로워져서 잔뜩 흡수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런 억지를 들어줘서 요시다 씨에게 정말 감사할 뿐이에요."
요시다 씨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주었다.
비행기로 들어가는 동안 앞사람도 뒷사람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덱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팔을 커다랗게 휘두르며 배웅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별은 쓸쓸하다. 하지만 새로이 도착한 행선지에 마음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토토 가슴 속에 잊고 있었던 노래가 들려왔다.
헤어지는 건 슬프지만
출발하는 건 기뻐
안녕 잘 있어 잔뜩 말하며
힘차게 씩씩하게 출발하자
<얀보 닌보 톤보>에서 새끼 원숭이 세 마리가 모험을 하나 끝내고 나서 다음 여행을 하러 떠날 때 토토와 주역 성우들 셋이서 스튜디오에서 불렀던 <출발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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