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게임 2022. 8. 20. 22:56

<페이트 그랜드 오더>는 일본 게임이다. 일단 이 전제를 깔고 가보자.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는 역사상 유명했던 인물(위인이 많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위인이라 불리는 것만이 서번트의 힘을 이루는 조건은 아니다)들이 서번트로서 등장한다. 일본 게임이다 보니 이런 서번트들 중엔 일본 역사 중에 나오는 인물이 많다. 대체적으로 일본 역사 중에 인기가 높은 헤이안 시대, 전국시대, 막부 말에서 나오고 있으며 전국시대와 막부 말은 오다 노부나가와 오키타 소우지가 양축을 이뤄서 서로의 진영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구다구다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일본어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벤트 중 이런 그림이 보였다.

 

서버페스 퀘스트 배경 중에 나오는 화면인데 이게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어떤 공격을 내릴지 정한 후 서번트들이 이 공격을 실행하기 위해 물러서는 잠깐 동안만 보이게 되어 있다. 여기에 구다구다가 들어갔는데 왼쪽 그림에 오다 노부나가와 오다 노부카츠, 차차, 모리 나가요시가 있고 아직 한국어판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수수께끼의 란마루 X가 보인다. 그런데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있는 노란 머리는 누구인지 감이 안 올 사람이 많을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다.

 

구다구다 시리즈를 그려온 케이켄치 작가가 4월부터 연재한 작품으로(라곤 해도 연재 간격은 길고 페이지 수는 적어서 얼마 없다) 제목부터 구다구다 태합전 ZIPANG이고 설명에도(https://web-ace.jp/tmca/contents/2000045/) 토요토미 히데요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케이켄치 작가가 만든 캐릭터들은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고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전국시대나 막부 말과 관련된 이벤트가 매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케이켄치 작가가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그리고 있다라...

 

<페이트 그랜드 오더> 한국어판에서 가장 유명한 건 트럭시위겠지만(그나마 개선 엔딩) 못지 않게 문제가 되는 게 일본 역사 관련 시나리오다. 첫 구다구다 시리즈였던 구다구다 혼노지 당시만 해도 오다 노부나가가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왜색 운운이 일어났으며 한국어판 자체에서도 구다구다 혼노지가 나와야 할 시점에 다른 이벤트가 나오면서 유저들 사이에서도 정말로 구다구다 시리즈를 안 하는 것인가 하는 동요가 일었다고 한다.(난 제대로 하지도 못했었기 때문에 그런 걸 신경쓸 틈도 없었다.) 결국 구다구다 혼노지는 좀더 뒤에 나왔기 때문에 한국어판이 일본어판보다 이 년 석 달 정도 늦은 시점에 시작했고 이 석 달을 메꾸어 제대로 된 진행에 맞추기 위해 서두른 중에 발생한 헤프닝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런 논란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일본 문화에 별 관심은 없는데 국가주의 선동이 일어나면 들끓는 층의 무서움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향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오다 노부나가를 내세운 일본어판의 홍보 배너와 달리

한국어판 홍보 배너는 오키타 소우지를 내세웠다.

 

그리고 이보다 더 컸던 게 구다구다 제도성배기담.

정확한 제목은 구다구다 제도성배기담 극동마신전선 1945다. 1945가 나오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건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해. 트위터에선 바로 전쟁이 일어났다. 이걸 딜라이트 워크스 쪽에 사과를 요구하는 등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결국 이 해를 사용한 건 이들이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 일이 여기저기 이 나라 저 나라 퍼지고 트위터를 제외한 다른 곳에선 팝콘을 씹었으며 그래서 나무위키에선 그 사람들이 계정을 세탁했다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여전히 검색하면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넷마블은 또다시 이에 반응해 부제와 내용중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사들을 바꾸는 등 칼질을 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저들이 반응을 하고 역정을 내면 넷마블에서 어떻게든 허리를 굽힌 태도를 나타낸다. 라센글에서도 국가간 감정 문제를 의식해 그런 걸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만들고 있지만 그런다고 통할 거면 <귀멸의 칼날>에서 카마도 탄지로우가 하고 있는 귀걸이 하나 때문에 애니가 칼질을 당하고 게임은 아예 한국어판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 한국에 사는 게임 이용자들에게 이것만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일이 발생했을까?

 

그런데 구다구다 시리즈를 그리는 케이켄치가 작품에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등장시켰고 이게 <페이트 그랜드 오더> 이벤트 중에 반영이 되었다. 반영이라고 해도 그림 한 장이긴 하지만 매년 열리다시피 한 구다구다 이벤트는 올해도 열릴 가능성이 있다. 연재 시작 후 3화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적어도 조금이라도 반영된다면?

 

<페이트 그랜드 오더> 한국어판에서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우회한 번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우회를 하려고 해도 본인 등판이 이루어지면 얄짤이 없지 않은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집어넣어야지. 그러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마녀사냥이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한국 입장에선 역사상 원수이지만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시대에서 손꼽히는 인물이다. 이토우 히로부미가 그런 것처럼. 실제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등장시킨 게임들도 상당수 있다. 한국에 소개되는 일이 없어서 그렇지.

<무쌍 오로치 3>

<무쌍 오로치> 시리즈처럼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게임들 중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나오는 게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무쌍 오로치> 시리즈 같은 경우 <진 삼국무쌍>의 인기가 좋으니 이를 반영한 작품이 덩달아 나오면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덩달아 나온 거고 워낙 떼거지 게임이다 보니 비중을 크게 차지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코에이 게임 중 <삼국지> <진 삼국무쌍>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는 <노부나가의 야망> <전국무쌍> 시리즈는 한번도 한국어판이 나온 적이 없다.(<전국무쌍 4>는 플레이스테이션 한국 사이트에서 정식으로 판매되고 있긴 하다. 이 외에 내가 아는 한 없다.)

 

결국 나도 이렇게 생각할 정도이니 라센글에서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등판시키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긴 하다. 구다구다 시리즈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봤을 때에도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이번 이벤트에 나온 이미지 한 장에 마음이 심히 흔들린다.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대화재가 일어나는 결말이 아니길 바란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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