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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만화 2018. 12. 27. 01:00


 이 작품은 전쟁으로 인해 인류가 폭망하면서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들이 살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여자애 둘이서 자주제작한 케텐크라트를 타고 여행을 하는 내용이다. 여행이라곤 해도 이렇다 할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고 층층이 나누어진 세계에서 윗층으로 나아가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바람 하에 곳곳에 버려진 창고 등을 뒤지면서 물자를 조달해 가는 방식. 인류가 폭망했으니 등장인물도 주인공 둘 외에 나오는 사람이 두 명밖에 없을 정도이다. 매우 쓸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작품이 주인공들의 대화와 주변세계와의 호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쓸쓸해 할 사이는 별로 없다. 사람이 많다 한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있듯이 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야무진 성격을 지닌 치토(동양계) 덜렁거리는 성격을 지닌 유리(서양계)인데 서로 들어맞는 성격이 아니니 치토가 자주 화를 내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끼리의 유대인 것인지 우정인지 아니면 유리가 생각이 없어서 치토가 포기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둘이서 종말을 맞이한 풍경을 접하고 그 이전의 세계를 꿈꾸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면 될지를 각자의 성격에 맞춰서 정리한다. 결국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곳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니 제대로 맞게 추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여부에 얽메이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더욱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너무나도 명확하게 비춰지게 되어버린 사람들의 편가르기를 봐야 하는 답답함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위의 그림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렇게 예쁘게 그려진 그림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그래도 TV에 내보낼 것이다 보니 꼼꼼하게 그렸지만 단행본 쪽은 그렇게 세세하게 표현되지 않고 등장인물 자체가 다른 만화들처럼 캐릭터로 민다거나 할 수준의 그림체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애시당초 사람 자체가 너무 안 나오니 밀 수가... 누코를 밀면 될 것 아닌가 



단행본 중


 오히려 그림을 이렇게 그렸기 때문에 좀더 주인공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건 작가가 실력이 없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게 되자 본인이 직접 엔딩 영상을 만들었을 정도로 실력을 발휘했고 그림에 설득력이 없다면 이렇게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감동스러웠던 마지막화(뭐라는 건지)


 애니메이션은 원작 내용 도중에 끊어버렸는데(여섯 권 중 네 권 분량) 나왔던 시기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길게 갈 작품도 아닌데도 끊어버린 걸 보면 애니메이션 내용과 이후의 내용이 매우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 아닐지...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말해도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만약에 이후까지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면 사람들의 감상이 또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치토와 유리가 어떻게 나아가든 간에 이 세계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드러내고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이 작품에 해피엔딩은 없다. 해피한 전개도 없었고. 애시당초 치토와 유리가 품고 있는 행복감이 있을 뿐이니깐. 하지만 사람들이 보통 바라는 것은 해피엔딩이니 이 작품을 끝까지 본 사람들조차 구태여 해피엔딩스러운 상상을 했다는 것 같고(참고. 미리니름 주의) 애니메이션에서 이걸 직접적으로 드러냈을 경우 과연 사람들이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뭐 애니메이션 설정집에 나온 작가와 감독 대담에 따르면 애니메이션에서 다뤘던 분량 자체가 한 쿨 분량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에 딱 들어맞았다 했고 애니메이션 제작 일정이란 게 엄격하게 움직이는 거니 그 후 전개를 알아도 더 욕심을 내기 힘들었던 것 같기도... 주인공 배역을 맡은 미나세 이노리 성우와 쿠보 유리카 성우는 이후의 내용이 극장판으로 만들어졌으면 했지만 거기까지 여력이 닿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작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딱 만족하는 느낌이 들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만족하는 지점에 오면 오히려 더 허탈감이 들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족감을 추구하게 되고 만족함으로써 오는 허탈감을 채우기 위해 더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소녀종말여행>의 배경이 되는 전쟁으로 이어져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이건 너무 과잉인가) 그런 만족만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를 더 즐기기 위함이 이 작품이 던져주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째서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건지... 어째서 사람은 평등하게 살 수 없는 건지... 많은 책을 읽어 보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규명해 보려고도 하고 이상에 대해 몽상하기도 하죠... 모르겠네요. 그냥 다 싫어져요. 생각하는 건 힘들어요. 이론에 치우친 시점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고향집 정원에 있는 감나무에 달린 감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며 살고 싶어요.


-같은 설정집 대담에서 감독이 작품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고 밝힌 단행본 4권 작가의 말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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