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에 해당되는 글 9건
- 2018.06.23 :: 당신들의 세상
- 2018.06.11 :: 복제되는 괴물 3
- 2018.05.17 :: 5월 17일 2
- 2018.05.10 :: 의미없는 경계
- 2018.04.20 :: 소수 엘리트에게 관대한 나라
- 2018.03.29 :: 잘못 기대었던 기둥과 조개줍기
- 2018.03.10 :: 진영논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인권
- 2018.03.06 :: 복제되는 괴물 2
- 2018.02.08 :: 복제되는 괴물
팟빵을 둘러보다 의외스러운 걸 봤는데
정봉주가 진행하던 팟캐스트 <전국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최강욱 변호사가 진행을 맡은 것을 보고 성추행 전력이 들통난 이후로 이어받아서 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이어받은 건 그 사건보다 훨씬 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 그 사건이 벌어지고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고.(시점이야 어떻게 되었든 간에 어떻게 이걸 계속할 생각을 하는 건가 의아스러운 것은 똑같지만) 그 사건 시점에는 어떻게 방송을 올렸는지 살펴보니
무려 두 달 간의 간격. 그것도 잠적 전 마지막 방송의 제목이 쫄지마 정봉주였다. 정봉주 개인의 방송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어이가 없는 편성이다. 이런 어이없는 편성을 한 결과(하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잠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선거철이 되자 흥행 시기다 생각했는지 돌아왔다. 폐쇄를 못할 망정 계속 이어나가다니 이 정도면 염치도 없는 것 아닌가.
거기다가 이렇게 하니 후원도 잘 들어가는 것 같다. 팟캐스트 후원이라고 해봤자 한 에피소드에 몇 명 보이면 많이 후원하는 거고 진행자도 바뀌어서 더더욱 그럴 텐데 이 두 에피소드, 특히 방송을 재개했을 때 쉰 명이 넘게 후원을 한 걸로 나오고 이 후에도 이 열기가 지속된다. 그리고 댓글엔 "보고싶다 정봉주"가 보인다. 역시 사건이 어이없는 결말로 종결되었던 당시 생각했던대로 다들 자기 좋을대로 받아들였을뿐 미투는 자기들이 잘 모르거나 고깝잖아 하는 사람들에게 겨눠졌을 때 정의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겨눠졌을 때엔 양날의 검인 건지, 피해자의 인권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 건지 하는 생각들이 들지만 이런 내 생각이 저들에게 전달될 일도 없을 거고 전달된다 한들 망막에 비춰질뿐이지 그게 뇌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처리로 이어질 일도 없을 거고...
<나는 꼼수다>에서 시작해 정봉주가 잡혀갈 당시 아쉬워했고 돌아온 것을 환영하며 이 팟캐스트도 즐겨 들었고 일부러 멀리 있는 벙커에 방송 하나 들으려고 가기까지 했지만 그만큼 지금의 상황과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보고싶다 정봉주"를 외치는 사람들의 태도에 화가 난다. 그래 그렇게 당신들이 이명박근혜를 비판하면서 만들려고 했던 세상이 이런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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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영화계 미투 열풍으로 드러난 사태에 대해 썼을 때 이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설마 이게 이송희일 감독에게서 나올지는 몰랐다. 검색 순위에 떠있는 것을 봤을 때에도 혹시 이송희일 감독 신변상 불행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었다. 이송희일 감독이 찍은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본 것도 아니지만 이송희일 감독이 언급한 영화는 꼭 봤었고(그 중 하나가 <연애담>이었지만) 푼돈이지만 이번에 인디포럼 2018을 후원한 것도 이송희일 감독을 영화를 접하는 한 지침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권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뭘 어떻게 언급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라든가 피해자를 게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여태까지 진절머리날 정도로 접한 전형적인 책임 회피 가해자의 태도는 취하지 말았어야 되는 것 아닐까? 이래서야 이현주 감독이 취해서 문제가 되었던 태도와 뭐가 다른가. 괴물을 상대하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것인지 뭔지 이해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그럼 난 대체 어떻게 이 일을 대해야 되는 건지 위와 마찬가지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방향이 잡히지 않는 배 위에서 폭풍우를 만난 것 같은 느낌. 그저 시야가 혼란스럽고 어둡기만 하다.
페이스북에 뭐라도 썼나 싶어서 찾아봤는데 인디포럼 2018 관련해서 쓴 글마저 지운 것 같다. 페이스북 친구사이인데도 안 보이면 비공개 혹은 삭제겠지. 그동안 저런 글을 많이 써왔고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이 어려운 것은 잘못된 권위 의식을 가지는 것과 별 상관이 없나 보다.
이것도 이송희일 감독을 통해 배우게 된 것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예견되어 있었구나. 그 동안 감춰져 있었을뿐이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019130171685270&id=100007649208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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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1990년 WHO에서 질병 목록 중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하여 매년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전에 올렸던 <위켄즈>에 나오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모습도 이 행사에 참여한 모습이 들어간 것이다. 퀴어 문화축제만큼의 열기는 보이지 않지만 매우 상징성이 큰 날이다. 이런 날이 아니면 LGBT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이 얼마 없기도 하다.
보통 광주민주화운동은 5월 18일로 기억되지만 그 전날인 5월 17일부터 전두환이 정부를 장악한 후 18일 0시에 비상계엄을 확대시켰고 이에 반발해서 일어난 광주 학생들을 마구 짓밟은 것이 시작이었기에 5.17. 쿠테타로도 불린다. 많은 광주시민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고 아픔을 겪어야 했다. 매년 5월이 올 때마다 이 아픔은 반복될 수밖에 없었고 간신히 명예를 찾아가는 건가 싶은 와중에 이명박근혜의 모욕적인 조치로 인해 더더욱 상처를 입었다가 작년에야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음해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다. 전두환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광주시민들의 상처는 아마도 당사자들이 없어진 후에도 계속되지 않을까...
재작년 5월 17일은 수요일이었다. 매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일본에게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매주 이렇다 할 만한 일이 없으면(물론 박근혜와 아베의 활약이 빛나던 때엔 그렇지도 않았지만)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 남짓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만 열지만 이것을 스무 해가 넘게 매주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는 것에서 어디에서도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질기고 강인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사죄와 배상을 받아야 할 할머니들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 모두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재작년 5월 17일에 강남역 사건이 벌어졌고 페미니즘의 방향은 크게 바뀌게 된다. 이미 메르스 사태로 인해 메갈리아란 새로운 환경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도 이에 한 몫을 했지만 여성들이 하나같이 자신들이 위험의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단결하게 해주는 가장 큰 계기는 강남역 사건이었다. 오늘로서 2주기가 되었고 이 사건을 계속해서 추모하며 새로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결의를 하기 위해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1만인 선언이 시행될 예정이다. 여기에 나도 동참했으니 어디에 글귀라도 보일 것이다. (정말 어디에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약자 문제가 한번에 모였던 날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슬프다. 여기저기에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훤히 보이는데 이것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도리어 역으로 화를 약자에게 퍼붓는 사람들도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그 잔인함을 무를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약자가 뭉치고 서로간의 연대를 키워내는 것이 최선으로 생각된다.
5월 17일은 현재 나에게 이런 날이다. 누구에겐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일지 모르겠지만 내겐 이렇게 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하루이다. 이 하루는 어떻게 지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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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누드 크로키 모델 사진을 워마드에 올려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동료 모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일이 더더욱 키워지고 있다. 학생 쪽이 그랬다면 철이 덜 들은 찌질이가 그랬다 이해라도 되겠는데 동료로서 모델의 고충을 잘 이해할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건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건 미러링이 아니라 그냥 폭력에 불과하고 온갖 악영향이 예정된대로 퍼지고 있는데 도대체 뭘 생각하고 그런 건지... 이걸 가지고 옳다구나 하고 사람들이 화제로 더더욱 키우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던데 난 그 모습을 보면서 뉴스타파를 떠올리고 검색을 해봤으나 내가 원하는 검색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런 사건이 알려져도 딱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진 이후 뉴스타파에서 연이어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보기 힘들다. 반면 홍대 사진 사건은 이렇게 퍼질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반페미니즘 운동(?)에 사용되고 있다. 이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익숙함(?)과 참신함(?)의 차이인 걸까?
페미니즘 옷 입었다고 교무실 불려가고, 해고당한 여성들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았더니 이 답글을 단 사람이 댓글 게시판을 도배를 하던데... 리얼뉴스라는 곳이 요즘 들어 자주 눈에 띈다. 쓰는 기사의 수준은 저 제목에 나와있는대로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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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Fortune지에서 문재인을 위대한 지도자 4위에 선정했다는 이야기가 보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뭔가 하고 해당 기사를 살펴보니 흔히 보는 한반도 정세 운전사 논리가 떴다. 1~3위가 뭔지 살펴보니 1위는 미국에서 총기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일어난 청소년들이었고 2위가 말라리아가 퍼지는 것을 막고 성평등에 공헌한 게이츠 부부였다. 그리고 3위가 미투운동이었다.
글쓴이는 미투운동에 대해 특정 지역이나 직종이 한정되지 않고 누가 이끌어나가는 것도 아닌 전세계적이고 사고방식을 바꾼 운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투운동의 바람이 힘차게 불었으므로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짚은 것은 그 아래에 있는 문재인이었다. 3위보다 4위를 중시하다니 언제부터 한국이 패자(?)에게 이리도 관대한(?) 나라가 된 걸까?
요즘 보면 사람들이 마치 소수 엘리트주의를 지양하고 진정한 대중에 의한 정치를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시민의 뜻에 맞지 않는 정치가 이루어졌다, 시민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게 정말로 시민 대중들을 위한 이야기인 걸까? 내가 보기엔 그냥 편가르기를 해서 우리 편에게 불리한 정치가 이루어졌다 우리 편의 생각에 맞지 않는 판결이 내려졌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특히 정치의 경우 문재인의 뜻과 맞느냐 문재인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느냐에 총체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문재인이 맞느냐 자유한국당이 틀리냐의 문제라기보다는...(후자의 확률이 높긴 하다.) 그러다 보니 김경수와 드루킹 사이에 확인된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도 제대로 판단을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민주당 쪽은 김경수와 드루킹이 이렇다 할 관계가 없다고, 지시 같은 것 내린 적 없으니 메신저 프로그램에도 안 뜨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그걸 뒤집는 증거가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게 뭐가 문제냐고 하니 참 아무런 문제가 없고 모든 잘못은 그저 드루킹에만 있다. 키득.
정치의 모습도 이상하게 바뀌었다. 사기업에서의 일도 국회가 담당할 일도 법원이 담당할 일도 지방정부의 일도 모두 정부 쪽에 청원을 넣자고 달려든다. 결국 청원이 성공한다 쳐도 정부 쪽에서 뭔 말을 할 수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노력하겠습니다"를 최소 A4 몇 장은 내야 될 텐데... 이렇게 모든 게 문재인 중심으로 옮겨가 버렸고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면서 바꿔야 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권한을 분산하자는 쪽의 이야기에 대해서 반발을 하고 그 불똥이 정의당까지 튄다. 정작 정의당의 입장은 정부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힘을 합치자이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문재인 대통령 각하의 말씀을 따르는데 좌우가 어디있느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욕이다.)
경향 같은 곳에서 3위인 미투운동을 제껴버리고 4위인 문재인을 주목한 것도 이런 흐름을 타고 장사하려는 속셈에서 저렇게 선정한 것 아닌가 싶다. 미투 운동은 논란이 있으니(?) 여기저기서 메갈메갈거리러 오겠지만 지금 현재 문재인의 위치는 확고하다. 경향을 접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위에 말한 사람들이고. 그럼 장사를 하고 싶다면 문재인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 인권이야 나중에 짧게 논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여전히 소수 엘리트주의 국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기 보다는 일렬 종대로 세워줄 특정 정치인만을 바라본다. 대중에 의한 정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다수의 폭력적인 반응이 무서워서 방송 같은 곳에서 이 흐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바쁘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냥 비주류인 거고... 그러니 대중들은 반성할 틈이 없이 흘러가는 사회에 휩쓸릴 뿐이다. 시민들도 똑똑하니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식의 댓글을 달며 전문가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세태에서 문재인 찬양자들은 예외지만 뭔 배움이 있고 반성이 있을까?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스승이 그 안에 있고 어린 아이에게서라도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 했던 옛말들은 다 소용이 없는 건가... 하긴 이런 말을 하면 전문가들이 배우려 하지 않는다, 기레기들에게서 뭘 배우라는 거냐 그러겠지.
은수미 의원 트위터 계정에서 올린 기사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뭐 여태까지 해왔던 말과 별반 다를 것 없다. 그냥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내 머리가 굳어버린 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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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media.daum.net/v/20180328223601389
정봉주 고발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믿기가 힘들었다. 구속되기 직전에 그것도 어머니가 쓰러지기까지 한 날에 그럴 정신이 있긴 할까 싶었고 다른 성추행 고발을 당한 진보 정치가들이 보여준 태도와는 달리 상당히 믿는 구석이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믿는 구석이 당당함이 아닌 인맥에 있었던 것 같지만...) TV조선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저 사람 그냥 장사꾼이었나?' 하는 생각에 관심을 끊었지만 그 전까지 내가 조금이나마 접했던 정봉주의 모습에서 잘못한 것이 있는데도 없다 우길 그런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도 성추행 고발을 실행한 피해자와 프레시안 쪽을 생각해 봤을 때 의심을 하기도 뭐했다. 실제로 빠들이 날뛰면서 상황이 종결된 지금에 와서까지도 자신들이 마음껏 가한 2차 가해의 원인을 프레시안에 돌리며 우기기에 오기까지 별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해도 훤히 보이는 난동을 보며 피해자와 프레시안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애매모호함을 전에 민병두 건을 다루면서 그냥 이름만 잠시 언급하는 정도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종결되었다.
나는 꼼수다를 들으면서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적극 지지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 중에 남은 사람은 주진우 기자 한 명뿐이다. 아니 뭐 주진우 기자도 정봉주 건에 대해서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던 걸 생각하면 믿을 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촉이 발달해 있고 의혹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끈질기게 추적하는 걸로 명성을 떨친 기자가 바로 옆에 있는 의혹에 대해서 그것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던 날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다. 정봉주 방패질에 나선 건 김어준 김용민이지만 주진우 기자도 이들과 계속 같이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정봉주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건지 몰랐을 리가 있을까? 설마 유시민처럼 파도가 일고 있는데 조개 줍는다 식으로 생각한 거라면...
결국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투 운동을 지지했든 아니든 이번 일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든(뉘우친 사람이 있긴 한가?) 아니든 간에 피해자에 대한 사과·걱정보다는 계산이 앞선다.(하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판에 사과할 게 있나.) 이런 게 바로 김어준이 막으려 했던(?) 진영 분열의 효과다. 정작 중요한 본제를 제쳐두고 서로의 유불리만을 따지게 된다. 이런 소용돌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게 되고 결국 피해자의 상처는 피해자만 더욱 깊이 떠안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사건을 망쳐놓고서 잘도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라는 말이 나오나 싶다. 아 이건 위대하신 시민들의 검증을 거쳐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건이니 괜찮은 걸까? 키득.
지금으로선 이런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게 끔찍하게 여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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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어금니 아빠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중앙일보에서 공익을 위해서라며 용의자의 사진을 공개해 버리자 경찰 쪽에서도 공개를 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전개는 옛날에 이명박 정부에서 용산참사를 덮기 위해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강호순 사건의 전개와 똑같다. 이 때에도 중앙일보가 먼저 공개를 했고 뒤늦게 경찰에서 이에 응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주장되는 것이 알 권리이다. 용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면 다른 피해자를 알 수도 있다, 그 사람을 경계할 수 있다는 이유들이 나오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다. '화제의 인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다.'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잡힌 사람의 얼굴을 지금 알아서 어떻게 할 것이며 안다 한들 그 사람이 무기징역(이라고 해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고)이나 사형을 받지 않는 한 언젠가는 결국 출소를 하게 될 텐데 사람들이 알고 거부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디로 가야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알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딱히 고려사항이 아닌 것 같다. 조금만 잘못을 저질러도 다 죽여버리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한 옛날 법들이 나오면 좋아할지도. 그리고 처벌을 결정하는 것은 법원이니 신상공개를 할지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도 법원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경찰이 고심을 해서 내리는 거라느니 하면서 당장 면상을 까발려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다수를 점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신상공개 결정 알 권리인가) 다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옳은 거라면 두테르테도 딱히 욕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으로 가겠지만 이런 말을 하면 "아, 그건 아니고..."라고 하겠지. 아니고는 개뿔이.
김종대 의원이 이국종 교수에게 한 말이 계속 논란이 되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개인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는 개인정보인 것이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침해하는 행위가 옳은 것인가? 이것에 대한 고민이 없이 그저 김종대 의원이 이국종 교수를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검색순위 1위에 올린 것이다. 김종대 의원이 말한대로 "관음증의 나라"임을 입증하듯이. 그리고 김종대 의원이 지적한 것은 이런 개인정보를 퍼뜨린 정부와 언론이었지만 그 정부와 언론은 사라지고 김종대 의원과 이국종 교수만 남았다.(http://v.media.daum.net/v/20171122171604521)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하는 건 이국종 교수를 비롯한 병원 사람들이지 그것을 일반시민들이 안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구태여 이것을 알리면서 상황이 커졌다. 김종대 의원을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들 중에서 위에 인용한 기사 외에는 모두 시민들의 화를 자극하는 기사들밖에 없었다. 자기들의 언론으로서의 책임은 덮어버리고 모든 화살을 김종대 의원에게 날렸고 멋들어지게 성공한 결과가 지금이다.
인류는 호기심을 통해 발전해 왔다. 하지만 그 호기심이 지나칠 경우 오히려 비극을 낳은 경우 또한 있었다. 위에 열거한 두 가지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호기심이 비극을 낳은 경우밖에 안 되고 거기에 언론과 정부가 장사를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런 "알 권리"라는 이름의 호기심이 개인정보를 마구 들춰보고 그것을 통해 장사를 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인지, 개인정보가 마구 돌아다니고 빅데이터 운운하며 이걸 부추기는 세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는 것 아닌지하는 생각에 더더욱 부정적인 기분이 자리잡는다.
이건 다음 블로그에 작년 11월에 썼던 글이다.
이 때만 해도 분명 피해자는 공개되어서 2차 피해를 입고 있는데 가해자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논리가 돌고 있었다. 난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어서 저렇게 썼는데 요즘 시류가 이상하게 바뀌었다. 발단은 JTBC였다. 계속해서 성추행·성폭행 피해자들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상황에서 대담을 진행하여 가해자를 고발하는 방식을 썼다.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해자가 이렇게 나설 경우 그로 인해 나중에 가해자의 보복이 가해질 수 있고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나빠지면 나빠졌지 절대 좋아질 수 없다. 그렇기에 위의 논리가 나왔던 건데 이걸 JTBC가 이용하면서 또다시 언론의 규칙이 훼손되게 되었다. 물론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이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그걸 넙죽 받으면 안 된다. 피해자를 설득해서라도 익명성을 보장해 줘야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JTBC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점점 피해자에게 익명성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완전히 잊어먹게 된 것 같다. 도리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떳떳한 피해자(!)라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김어준의 헛소리에 넘어가서 저렇게 나오는 것 같은데 김어준이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이 진영이 분열될까봐 예방차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김어준이 그 헛소리를 하는 순간부터 미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지지했던 사람들과 크게 여기지 않고 있다가 김어준 헛소리 듣고서 겁먹은 사람들로 나뉘었다. 후자에서 안희정·정봉주 사건 관련 기사와 이번 뉴스타파 영상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는 거고...(이렇게 되다 보니 자칭 보수들이 신나서 날뛰는데 그 사람들이 표현 면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있지만 나와 뜻이 맞는 댓글을 남기고 있다. 확실히 진영이 사람을 망친다.)
진영 논리 앞에서는 미투, 즉 인권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같다. 같다가 아니라 항상 그래왔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인권이 크게 훼손되었을 경우 그것이 자유한국당 쪽이 일으킨 문제일 경우 자칭 진보들이 신나서 날뛰고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일으킨 문제일 경우 자칭 보수들이 신나서 날뛴다. 거기에 피해자를 위한, 인권의 침해를 보완하고 발전시키려는 논의는 완전히 뒤로 제쳐진다.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해도 나중에 사건은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권은 항상 정치꾼들의 장사 대상에 불과했을뿐(미투 운동을 문재인 정부의 치적이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까지 나오는 판국...) 우선순위로 논의된 적은 거의 없었다.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친다. 결국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립 서비스만 바뀔뿐이지 마음은 그대로이고... 고민해봤자 답이 아예 없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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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고 그랬기에 광고지를 보관해 두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버렸고... 영화만을 보았을 때엔 찬사를 마구 늘어놓아도 부족하다 싶은 작품을 감독이나 배우의 작품 밖, 혹은 작품 속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간 행태로 인해 내리깔아 버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도 고민을 해보지 않았던 게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영화 자체로만 판단하는 것을 그런 요소들이 방해를 한다면 그 작품의 생명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저 감독은 영화계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했고 영화계가 받아주지도 않을 테지만 그런 행동을 저지른 사람이 차기작을 내놓아 봤자 좀비를 양산할 뿐이다.
이번에 발각된 오달수·조재현·조민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각각 자신의 작품에서 존재감을 뽐내왔던 사람들이니 만큼 그 작품에서 이 사람들을 빼놓고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들이 주연으로 나왔든 조연으로 나왔든 관여한 작품들은 내 소장 목록에서 빠지게 될 것이다. 하기사 조재현의 경우엔 이미 김기덕 리스트(?)로 다 빠져나간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번 경우는 원래 가지고 있었던 신뢰와는 다른 형태이다. 위의 사람들이 엄청 깨끗하게 살아왔기를 기대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영화 외의 일에서 이렇다 할 만한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을뿐이다. 하지만 이 생각을 심하게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할 경우 원래 분야에서 가져왔었던 신뢰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을 연이어 목격하게 되면서 제발 이번 기회에는 제대로 털어서 앞으로 #MeToo 같은 거대한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결국 괴물은 계속 복제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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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 운동이 한국에서도 힘을 얻게 되면서 많은 묵혀두었던 사건들이 다시 땅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일방적 권력관계에 쉬쉬해왔던 폭력 사건들이 밝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 외엔 딱히 한 게 없었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비수를 맞았다.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이 성폭행을 가했다는 것이었다. 레즈비언의 문턱에 들어선 주인공의 고뇌를 그린 작품을 만든 사람이 성폭행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서 상대방의 성 정체성을 멋대로 규정짓고 피해자의 남자애인도 거짓이라고 한다니... 이건 혐오를 일삼는 개신교 등에서 성소수자들에게 하는 행각과 아무 차이도 없지 않나 싶다. 원래의 사상이 어떠했든 간에 감독이라는 권위가 주어지면 그 앞에서 쩔쩔 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먹잇감에 불과한 걸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 같은데 김기덕 감독 같은 경우에도 그렇다. 과격한 내용의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들이 잘도 따라준다 싶기도 했는데 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위를 활용해서 내리눌렀다고 볼 수밖에 없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 과거 영화에 나온 배우의 대담 기사 등을 통해서도 드러나 있었고 <뫼비우스>는 그것의 결정판이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본인이 차별의 화살이 날아오는 대상이었다 해도 소수의 입장에 서있었다 해도 거기에 또한 상하관계가 만들어지게 마련이고 거기에서 상으로 올라가는 순간 그 사람은 또다른 압제자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언급한 두 사람이 그런 걸 몰라서 그랬을 리가 없다. 알면서도 이용해 먹은 거지.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경우도 그렇다. 여자 배우 쪽의 동의없이 키스 장면을 촬영한 것이 나중에 사과하면 될 일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던 감독과 하란다고 해버린 남자 배우에서는 아예 감독의 권위에 남녀차별의 벽까지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관계가 물고 물리면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려다가 터진 게 이현주 감독 건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해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은 거리에 비례해서 나타나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아무말 대잔치를 기꺼이 즐기지만(?) 자기 일에 가까워질 수록 입을 다문다. 그렇게 다물고 다문 결과 각종 폐쇄 집단에서 피해자가 묻혀져 가고...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똑같다고들 하지만 어떻게 어디를 가나 괴물이 발생하는 것까지 똑같을 수 있는 건가... 그저 참담하고 어이가 없다. 이 괴물은 과연 퇴치될 수 있는 것일까? 피해자의 용기에만 매달리기엔 너무 큰 것 아닐까? 근본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고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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