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은 고 노회찬 의원 일 때문에 힘이 많이 빠진 것도 있었지만 상중에 어떤 글을 쓰는 것이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트위터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
오후 7시,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한 광화문. 문재인 대통령이 한 호프집에 깜짝! 나타났습니다. 퇴근길에 불쑥 시민들과 맥주 한 잔 나누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 드디어 실행됐습니다. https://t.co/GLES4R753B pic.twitter.com/BDv4jaJm3A
— 대한민국 청와대 (@TheBlueHouseKR) 2018년 7월 26일
26일 오후 7시. 이 시간 연세대 대강당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 노회찬 의원 추도식에 참석하여 고인을 애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시간에 대통령 직함을 가진 사람이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즐거워 하고 있었다니 뭔 이야기인가 싶었다. 공식적인 행사가 이미 예정되어 있어서 거기에 참석하다가 술자리를 가졌다도 아니고 (청와대 주장에 따르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가진 술자리였다. 정말 비공식적으로 시민들과 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굳이 이 시간대였어야 할 이유도 없다. 다른 날을 기약해도 충분했다.
<퇴근길 맥주 한 잔_국민과의 대화> 퇴근길로 분주한 저녁 7시 광화문,
— 대한민국 청와대 (@TheBlueHouseKR) 2018년 7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깜짝 등장했습니다. 프롬프터 없음, 마이크 없음! 대통령의 파격 일정. 취준생, 중소기업 사장님, 편의점 사장님, 서점 사장 님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나누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pic.twitter.com/pRrow7rjiR
우연히 만났는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이른 저녁에 시간이 나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라... -_-a
https://news.v.daum.net/v/20180723150009297
문재인이 고인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겠다. 청와대 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런 언급을 하고선 사흘 뒤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다라... 애도하고 있는 걸 몰랐을 리도 없었을 텐데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된 걸 보면 회의에서 하는 발언이란 게 꽤나 가벼운 모양이다.
https://news.v.daum.net/v/20180724030745242
기껏해야 방송취소 정도가 전부네. 이것도 해병대 사고가 더 컸을 것 같고.
문재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되긴 했지만 이번 일을 보고 나니 정말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명박근혜 시절 청와대 계정을 블락해 놓고 있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런 건 안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명박근혜 청와대 계정이 폐쇄되다시피하고 다시 만들어져서 그런 것도 있긴 했지만 그냥 다시 블락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배려라곤 쥐뿔도 없는 걸 시민을 위한 행동이라 광고하는 게 정치인가.
*고인을 위한 추도식과 영결식을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고인이 정계에 있는 동안 옷도 구두도 새로 맞추지 못하고 헌 양복과 구두를 착용해 왔고 시간이 없어서 샌드위치나 국수로 때우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왜 그렇게 확 닳았는지 알 수 없는 운동화를 보여주고 일부러 설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옥탑방에 살면서 보좌관을 괴롭힌다는 박원순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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