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 2018. 2. 8. 01:28

#MeToo 운동이 한국에서도 힘을 얻게 되면서 많은 묵혀두었던 사건들이 다시 땅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일방적 권력관계에 쉬쉬해왔던 폭력 사건들이 밝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 외엔 딱히 한 게 없었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비수를 맞았다.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이 성폭행을 가했다는 것이었다. 레즈비언의 문턱에 들어선 주인공의 고뇌를 그린 작품을 만든 사람이 성폭행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서 상대방의 성 정체성을 멋대로 규정짓고 피해자의 남자애인도 거짓이라고 한다니... 이건 혐오를 일삼는 개신교 등에서 성소수자들에게 하는 행각과 아무 차이도 없지 않나 싶다. 원래의 사상이 어떠했든 간에 감독이라는 권위가 주어지면 그 앞에서 쩔쩔 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먹잇감에 불과한 걸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 같은데 김기덕 감독 같은 경우에도 그렇다. 과격한 내용의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들이 잘도 따라준다 싶기도 했는데 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위를 활용해서 내리눌렀다고 볼 수밖에 없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 과거 영화에 나온 배우의 대담 기사 등을 통해서도 드러나 있었고 <뫼비우스>는 그것의 결정판이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본인이 차별의 화살이 날아오는 대상이었다 해도 소수의 입장에 서있었다 해도 거기에 또한 상하관계가 만들어지게 마련이고 거기에서 상으로 올라가는 순간 그 사람은 또다른 압제자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언급한 두 사람이 그런 걸 몰라서 그랬을 리가 없다. 알면서도 이용해 먹은 거지.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경우도 그렇다. 여자 배우 쪽의 동의없이 키스 장면을 촬영한 것이 나중에 사과하면 될 일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던 감독과 하란다고 해버린 남자 배우에서는 아예 감독의 권위에 남녀차별의 벽까지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관계가 물고 물리면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려다가 터진 게 이현주 감독 건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해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은 거리에 비례해서 나타나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아무말 대잔치를 기꺼이 즐기지만(?) 자기 일에 가까워질 수록 입을 다문다. 그렇게 다물고 다문 결과 각종 폐쇄 집단에서 피해자가 묻혀져 가고...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똑같다고들 하지만 어떻게 어디를 가나 괴물이 발생하는 것까지 똑같을 수 있는 건가... 그저 참담하고 어이가 없다. 이 괴물은 과연 퇴치될 수 있는 것일까? 피해자의 용기에만 매달리기엔 너무 큰 것 아닐까? 근본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고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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