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 2018. 5. 20. 02:13

2015년 1월 30일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엉뚱하게 돌을 맞은 작품


레이디 가카께서 이 책이나 신은미 교수가 한 강의를 한 장 일 분이라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내용이 정말 일부분만 보고 신은미 교수 맘대로 끄적인 거라 판단하고 있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으신 거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통일을 하든 화해를 하든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양 쪽에 대한 이해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신다면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화해의 움직임은 조금도 없는 거라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이 책을 쓴 신은미 교수가 다녀간 곳들은 북조선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허용하는 자신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수순으로 짜여져 있다. 의도치 않게 다른 곳에 갔다가 어떤 아이가 노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싶더니 통행금지 당한 적이 있었다는 글귀도 있었고. 당연하지 않은가? 북조선 입장에서 자기들이 무지 못 사는 장면을 보여주며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텐데. 그리고 신은미 교수가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광이다. 무슨 북한 인권 조사도 아니고 그냥 북한 관광. 이런데도 신은미 교수가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했다며 그릇된 것이라 논하고 싶은 분들은 부디 국외 여행할 때에 빈민가나 교도소(가능하면 정치범 수용소, 포로 수용소로)로 가시길 바란다. 갈 리도 없고 가게 해줄 리도 없겠지만.


 하지만 이런 제한된 상황하에서도 신은미 교수는 끊임없이 북조선 인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그런 결과 얻어낸 것이 삶의 수준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 사람이나 북조선 사람이나 같다는 것이다. 같은 나라 사람이었다가 갈라져서 다른 나라 사람이 된 것 뿐 사고방식도 삶도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북조선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혹은 주입된 상식들이 이를 가리고 있을 뿐이라고. 이런 것들을 말한 게 종북이라... 이런 내용이 문제가 된다면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를 쓴 모니카 마시아스 씨는 종북 수준을 훨씬 넘는 것 아닌가 싶다. 북조선에서 모국어를 잊어먹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살다가 김일성과는 아예 부녀 관계를 맺으신 분인데 성인이 되어 북조선을 나와 세계를 돌아다니다 한국에 와보니 뭐야 북조선이나 한국이나 같네라고 생각하게 된 내용이 이 책의 주내용인데 이 책에 대해서 무슨 시끄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TV조선에서 종북 인증을 하지 않아서일까?


 수꼴들이 보기에 신은미 교수가 종북으로 분류되지 않았으려면 책 처음 부분에 나온 것처럼 북조선 인민들은 북조선 정부와 당에만 충실하여 가족끼리도 서로 의심하며 피폐하게 살아가는 뿔 달린 도깨비이다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 만족하며 반공의 최전선에 신은미 교수를 내세웠겠지.(진실이든 거짓이든 그런 것은 맹목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은미 교수도 살아온 환경상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그런 어처구니 없는 곳은 아니었다고 오마이뉴스 연재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점이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문화관광부 추천도서 지정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담아 이야기 모임을 가지자 원래 이름인 통일 콘서트가 아닌 '종북' 콘서트로 칠해져 버리고 고등학생이 테러를 벌이고 이 때다 하고 진행자를 잡아가고 신은미 교수는 쫒겨나고 책은 총리 말 한 마디에 추천도서에서 삭제되고...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사람들이 가장 민주주의를 부숴버리는 나라에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민주주의적인 내용인가 보다.(뭐 이런 말 하면 수꼴들 눈엔 종북좌빨이 하는 헛소리로밖에 안 뵈겠지만...) 레이디 가카와 정홍원, 테러 일으킨 고등학생, TV조선 직원들에게 책 읽고 감상문 A4용지 100장 글자크기 10 엔터 치지 말고 꽉꽉 채워 써오라고 하고 싶지만 거들떠도 안 보겠지...


 신은미 교수는 쫒겨나면서도 한반도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라고 했다. 태어난 나라와 한참 나이가 들어서야 다시 볼 수 있게 된 나라 양 쪽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신은미 교수가 이 때 무슨 말을 했어도 한국에서의 입지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할 수가 없다. 종북 낙인은 그렇게 쉽게 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한반도 통일을 논한다. 자신을 내쫓은 모국을 위해서...

돌을 던지는 것은 대상이 강자일 때 정당성을 가질 수 있고 그 신념이 명확하고 정의로울 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신은미 교수가 맞은 돌엔 정당성이 있는가? 누군 종북좌빨 논리를 내세워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2017년 3월 2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결국 이 일도 최순실과 김기춘이 주무른 문화계 탄압과 연계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위에도 써 놓았듯이 이 책은 문화관광부 추천도서였고 선정이유도 보수적인 사람이 본 북조선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걸 손바닥 뒤집 듯이 뒤집는다는 건 쉽지 않고 그 쉽지 않은 일들이 박근혜-최순실 정부 내내 일어났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일을 돌발상황으로 벌어진 사태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불충분한 것 같다. 물론 신은미 씨의 입장 자체를 모두가 외면하고 있으니 감춰진 진실이 있다한들 밝혀낼 수가 있나 싶지만...



어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신은미 씨가 한국에서 겪은 일을 담은 영화 <앨리스 죽이기>를 보았다. 내용 자체는 잘 알고 있는 것들이기에 글을 이런 식으로 작성했다. 그냥 다시 보면서 단편적이거나 아예 <TV조선>이 뿌린 허위사실에 휘둘려 폭탄 테러를 벌이고 강연하는 곳마다 쫓아갔던 자칭 보수어버이알바연합들의 행태와 박근혜 정부의 강압적 태도에 치를 떨고 이에 힘들어 하는 신은미 씨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는 것 외엔 크게 다른 감상이랄 게 없었다. 다른 게 하나 있긴 한데 이 영화 속에서 폭탄 테러를 벌였던 청소년 인터뷰가 들어가 있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게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인데 이제사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딱히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지만... 익히 알려진 바대로 그 청소년의 표정에 죄책감 같은 것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폭발이 너무 크게 일어나는 것을 염려해서 준비했던 세 통을 전부 쓰진 않았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자기도 폭발에 휘말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그 폭발을 온몸으로 막아내셨던 분은 만신창이가 된 채로 영화에 담겨있는 기간 동안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있으셨다.

신은미 씨가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 자칭 보수만큼은 아니어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나도 신은미 씨를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탈북자하고 굳이 키배를 벌여서 헛점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라도 남북 간의 공통점을 발견하지 않으면 문재인과 김정은이 만나자 사람들이 읊기 시작한 통일 노래는 대체 어떻게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안 그래도 수십 년 동안 서로 격리되다시피 했는데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은 공통점마저 버리고선 하나가 되는 과정으로 나아가겠다? 그냥 국경 그대로 놔두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제한적으로 왔다갔다만 할 거라면 모를까 그닥... -_-a(그 때도 최소한 서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는데...)

같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다른 사람 신경도 안 쓰고 수다 떨고 있던 개년도 있었고 이런 과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분도 계셔서 감독과의 대화 당시 울먹거리면서 소감을 말하셨는데 그런 분에게는 추천한다. 저 당시 분노했던 자칭 보수들도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영화관에 폭탄 가지고 올지 어떻게 아나 ㄷㄷㄷ


개인적인 평점은 10점 만점에 8점. 위에 썼다시피 다 알고 있는 내용이고 그렇다고 평가를 마냥 깎아내리기엔 그런대로 잘 만들어졌다.


*<앨리스 죽이기>는 이 작품의 세 번째 제목이라 한다. 이 영화를 만든 김상규 감독이 말하길 제목만으로 A4 3장을 채웠다는데 정식개봉될 때엔 또 다른 제목이 달려서 나올지도.

**감독과의 대화에서 제목이 일본의 스릴러 문학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이 나오길래 난 <기사단장 죽이기>를 생각하고 그게 스릴러였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동명의 작품이 따로 있었다. 이거나 저거나 안 본 건 마찬가지...

***신은미 씨 책은 여전히 도서관에서 볼 수 있던데. 한국에서 겪으신 일에 대한 책도 내셔서 그것도 소장하는 곳이 있고. 박근혜의 행정력은 대체...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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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5. 7. 17:32


LGBT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당시에도 종로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지금은 실버영화관으로 바뀐 허리우드극장 옥상 같은 곳에서 눈 맞으면 둘이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같은 이야기...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한 후에도 인식이 그다지 바뀌지 않았던 나에게 유일한 LGBT(중에서도 게이에 대해서만)에 대한 인식이 들어가 있던 곳이었다. 이런 종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종로의 기적>이었다. 이 영화는 사실 <위켄즈>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오는 사람들과 시대상이 다를 뿐 게이 인권단체 친구사이를 중심으로 게이들의 시련과 저항, 연대 그리고 고양이를 담은 것은 같다. <종로의 기적> 확장판이 <위켄즈>라고 해야 되려나? 그러나 <위켄즈>는 다운로드판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종로의 기적>은 그렇지 못했고 내가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은 영화 개봉 후 몇 년이나 지나서였다. <종로의 기적>이 다운로드판으로 나오지 못한 이유는 뻔하다. 이 내용이 다운로드판으로 돌게 될 경우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서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신변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위켄즈>가 모자이크 같은 것 없이 다운로드판으로 공개된 것을 고무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종로의 기적>이 만들어졌을 당시 LGBT들이 처했을 고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상도 이런 식이다.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소준문 감독의 이야기이다. 소준문 감독은 퀴어 영화를 주로 만드는 (대게의 경우 그렇지만) 게이 감독이다. 굳이 그냥 감독이 아닌 게이 감독이라고 하는 것은 소준문 감독이 무슨 영화를 만들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다른 영화 제작진과 부딪치게 된다는 것이다.(부딪히게가 맞으려나...) 작품만 제시하면 호의를 보이다가도 감독의 정체성을 안 순간 물러나는 사람들, 간신히 들어오게 하는 데에 성공을 해도 배경지식과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상충되면서 감독에 반발하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독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것에 부담을 느끼는 감독. 어디서나 자신의 입장을 남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부담되는 과정이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정체성도 정체성이거니와 이것을 꼭 이해시켜야 되는 건가하는 고민,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트러블에 고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판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런 갈등을 겪는 LGBT가 많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꼭 털어놔야 되는 건가 싶은데 그렇지 않을 경우 발목을 잡히게 되는 상황. 몇몇 대학의 총학생회장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것이 동력이 된 경우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이다.


일반적인 경우


이런 모순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고 인권조례를 없애려 눈에 불을 켠 사람들이 LGBT를 가로막고 대중의 인식이 고정되어 있는 한...

참고로 소준문 감독의 영화는 인디플러그에서 단편 세 개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데 모두 괜찮은 작품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게이 인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장병권 씨. 한의사로서 온갖 인권 운동에 뛰어드는 열정적인 활동가로 심지어 한진중공업에서 김진숙 씨가 고공시위를 할 때에 버스를 타고 가서는 경찰의 탄압에 항거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정도 ㅋㅋ; 처음부터 끝까지 인권운동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데 전에 Askfm에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인권운동은 연대가 없으면 그냥 우리가 여기에 있다를 아무도 안 듣는 곳에서 외치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인권운동 자체가 매우 작은 범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자극적인 운동을 한다한들 사람들이 봐주지 않으면 끽해야 뉴스 한 줄에서 끝난다. 내가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애인 운동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뭔가 아는 척해온 나도 잘 몰랐고 대중은 그저 잔인하게 외면하고 있다가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가)에게 그 운동의 화살이 겨눠졌음을 알게 되면 잔인하게 공격한다. 연대를 해야 조금이라도 힘을 늘려낼 수 있는 것이다.



<런던 프라이드>(원제는 위와 같이 <Pride>)에서 나타내었던 영국의 LGBT와 노조의 연대와 같이 서로 간의 이해와 협동이 이루어질 수 있고 그것이 커진다면 이걸 대놓고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친구사이 등이 만드는 연대가 더 굳건해진다면 이 영화의 모습이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 물론 이런 모습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조차 보지 않고 억울하면 힘을 키워!식으로 윽박지르는 인간들이 너무 많이 보이지만...


<위켄즈> 속 쌍용차 노동자들


세 번째는 최영수 씨 이야기인데 <위켄즈>에서 중심 이야기로 나왔던 지보이스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련된 합창이 목적이기 보다는 애초에 이루지 못할 목적... 함께 노래를 통해서 어울리는 것을 목적삼아 만들어진 모임. 이들 중에서도 최영수 씨는 특히 그런 지보이스 구성원들과의 정서적 연대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후에도 계속 혼자였다가 뒤늦게서야 여기에 합류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영수 씨의 정체성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나 옛날 짝사랑했던 (평범한 가족을 이룬)남자도 행사에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보는 도중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 분의 가명이 스파게티나였던 것이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으나 마지막 부분 즈음이 되고 나니 사망한 것을 알리는 장면이 나오면서 기억이 확실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전에 <위켄즈>를 보면서 이 분의 이야기가 나온 부분에 대한 의문을 가졌으나 언제나처럼 질문을 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중요한 이야기는 이미 <종로의 기적>에서 다 나왔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뭐 그랬다는 것이다. 1절만 하자.

자신이 소수에 속한다는 것은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도 친구도 자신이 가진 비밀을 밝혀도 되는 건지 알 수 없게 되고 실제로 밝혔다가 더 큰 고통을 안게 된 경우가 수두룩하게 나타난다. 그런 와중에 강제적으로 가지게 되긴 했어도 하나의 기둥 같이 여겼던 종교에서조차 자신을 이단아 취급하고 치유를 해야 된다며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면 이들이 겪어야 될 외로움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인권단체에서 조속히 발견하고 여기에는 와도 괜찮다는 것을 알리는 등의 노력을 하고 품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회에서 이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외로움은 계속 짙어지기만 할 것이고 이 짙어짐의 끝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에이즈 감염인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정욜 씨 이야기. 정욜 씨는 다른 에이즈 감염인과 친할뿐만이 아니라 애인이 에이즈 감염인이다...라고 쓰는 것 자체가 내 안의 인식도 뭐 딱히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병에 걸린 것이 죄는 아니다. 자기가 직접 몸 속에 그 병원균을 넣었다면 모를까 단순히 성관계를 했다는 것만으로, 오염된 주사바늘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수혈이 잘못되었다는 것만으로 그 병에 감염된 것을 어떻게 죄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것을 죄라고 여기며 동성애를 반대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인양 여기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최근에 정말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았던 <120BPM>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도 그렇다.(익스트림 무비에 올라왔던 캡처 사진을 올릴까 했는데 안 보이고 트위터 같은 곳에서 네이버 120bpm을 치면 잘 나온다. 마린 혼자서 저그 본진에 쳐들어가는 우를 범하지 말자. 다음도 평점 무너진 건 마찬가지지만) 피를 던지는 시위를 한다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그러지만 애시당초 가짜 피이다. 이 형들 너네보다 훨씬 똑똑해. 이런 것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뿐 결정적인 것은 병에 대한 혐오이다. 무조건적인 혐오만을 내세우니 이 병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될지, 제약회사들의 욕심이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어떻게 봐야 될지에 대한 고민을 당사자나 그 주변의 소수들만 하게 되고 발전은 더디게 된다. 이러다 보니 에이즈 감염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군(群)인 게이들 사이에서도 거부감이 심한 듯하고 에이즈 감염인들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언제까지 외면하기만 할 것인가? 외면하기만 하는 것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예가 주사바늘 교체건일 것이다. 주로 마약을 사용하는 데에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이 쓰는 주사바늘을 교체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에 대해 시민들이 에이즈 예방효과는 커녕 마약 사용만 조장할 것이라고 반대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약 사용은 늘지 않고 에이즈 예방 효과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통계가 나오게 된다. 다들 혐오에만 집중해서 이런 정책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그냥 제자리일 뿐이다.

종합해서 말하면 소수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포용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적은 어디까지나 기적일뿐 정말 사람들을 포용하려면 기반이 필요하다. 이 기반을 쌓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 당장의 사회에서는 이 기반에 관심이 없거나 아예 무너뜨리려 달려드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착시이길 바라지만 바랄뿐이고...) <종로의 기적>에서 <위켄즈>로 나아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너진 인권조례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다시 세운 뒤 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반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일반이면 정말 안 되는 거냐...


평점은 10점 만점에 10점. 그런데 아무리 높게 주고 추천을 해봤자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너무 없어서...


*이 영화가 다운로드판으로 나오지 못한 건 삽입된 노래의 저작권 문제 때문이 더 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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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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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4. 28. 01:03

어떤 사건을 다룰 때에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치중하게 된다. 안 보이는 것을 일일이 찾을 수 없는 노릇이고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만다. 그런 것에 치중하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사실도 있고...

이 영화는 세월호 사건 당시 사망한 단원고 학생들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정혜신 박사님이 이 친구들을 모으고 또래의 연령대에 해당하는 청소년~20대 초반 청년들을 모아 공감기록단(공기단이라는 약칭으로 자주 부른다)을 구성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이야기를 영화 등 기록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담았다.

사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여태까지 나왔던 세월호 사건 유족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못해줘서 미안해가 주를 이루는... 하지만 유족들과 친구들의 입장은 크게 달라진다. 유족들은 가족이니 그러려니 생각하는 면이 있지만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왜 그렇게까지 슬퍼하는데?"라는 생각을 쉽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반면에 친구들은 자기 입장에서 둘도 없다시피 했던 친구들을 떠나보냈다는 사실에 강하게 매이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가정의 존재가 점점 작아지고 그만큼 다른 곳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들어주는 것은 같은 청소년, 세월호 사건 당시 청소년이었던 청년들이다. 친구들과 비슷한 성장기에 놓여있는 세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도 많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싶다. 비슷한 세대인 친구를 잃어버렸으니 당연히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지는 게 더 힘들었을 텐데 이런 생각까지 이른 어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도 든다. 

친구들 이야기에 대한 감상을 공기단이 이야기해보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공기단 쪽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세월호 사건만큼의 일은 아니어도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남겼던 일들을 고백하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자신이 참여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끌어내었고 이것을 들은 친구들이 다시 이에 대한 피드백을 남긴다. 왜 이렇게까지 참여하는 건지 조금 의심이 들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알겠다는 말과 함께.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서 친구들과 공기단 사이에 다리를 놓는 과정이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이 진행을 맡은 정혜신 박사님의 진정한 의도였고 영화의 핵심이었다.

공감이나 치유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많은 경우 겉핥기에 불과할 수 있고 심한 경우 도리어 더 깊은 상처를 낼 수도 있다. 이 상처를 감당해내려면 사람은 더욱 깊은 곳으로 파고들 수 밖에 없다. 친구들 중에서 이번 과정을 통해 방 같은 공간을 벗어나 더 넓은 곳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런 것일 것이다. 사람들이 제대로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기에 맞잡을 수 없었고 그만큼 좁은 공간에 갇힌 것처럼 살아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좁은 공간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갇혀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점은 10점 만점에 9.5점. 거창하게 늘어놓고선 뭔 점수를 깎는 거냐 싶기도 한데 만점으로 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영화진흥위원회 기록 상으로는 공동체 상영회 한번 한 뒤로 정식 개봉이 아직 안 된 것 같다. 내가 본 것도 인디서울 2018을 통해서인데 4월 상영작이라 며칠 있으면 상영이 끝나는 걸로... 정식 개봉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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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4. 25. 23:53


박종필 감독의 이름은 작고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본 적이 있긴 하다. 작고 전에 박종필 감독의 작품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감독의 이름 같은 걸 잘 못 외우는데 시네마달 살리기에 동참한답시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영화를 보게 된 덕분에 모르다시피 넘어갔었다. 그 작품은 <끝없는 싸움-에바다>와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였다. 한쪽은 농아학교에서 벌어진 부조리와 잔인한 갈등을 다룬 영화고 한쪽은 휠체어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을 다룬 영화다. 두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와 동시대를 겪어왔던 일인가 하는 생각이... 두 영화에 그려진 일들 모두 그저 생소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한쪽은 아예 서울 내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투쟁의 장소도 서울 한복판이었다. 폼으로만 시사에 관심있는 척했던 나로선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일이 있었던 건가하는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이번에 본 <노들바람>이나 <농가일기>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장애인들의 운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농가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FTA 같은 것에 극렬히 반대해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곳들을 비춰온 박종필 감독의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몇몇 영화는 아예 관객수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정식적인 개봉이 많이 어려웠던 것 같다. 결국 이런 곳을 헌신적으로 비춰왔던 박종필 감독은 이 세상을 떴다. 세월호를 통해서 이 감독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의 지명도이다. 이 영화들도 결국엔 묻혀질 것이다. 그럼 이 뒤를 잇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다지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러만 있게 된다면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608497712865919&id=100011170871380


결국 이렇게 되거나



"저희가 자료를 많이 가지고 갔어요. 왜냐하면 특수학교가 생겨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갔었거든요. 그런데 이 분들(반대파)에게 저희가 자료를 제시하면 내 앞에서 장애인이 다니는 것 자체가 싫다. 왜 나를 짜증나게 하느냐. 나는 무조건 장애인이 싫다. 나가라고. 이렇게 나오시는 거예요. 그러니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죠.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가슴에 담아온 작은 목소리> '특수학교 설립, 엄마들의 그 간절한 호소' http://www.podbbang.com/ch/11517?e=22587828 1:14~


이렇게 되는 것이다. 구경거리 내지 혐오거리 외엔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아니지, 무릎이라도 꿇지 않으면 보이지조차 않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퍼부은 결과가 장애인들이 쟁취해냈지만 장애인이 타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는 저상버스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667212.html

그런 의미에서 시외버스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겠다.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시내 저상버스를 생각해 봤을 때 과연 제대로 된 보장이 이루어질지...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2014년 사진이다.)


사람들은 언제쯤 장애인들을 잘 안 보이는 구경거리 혹은 혐오대상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애시당초 나부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눈여겨 보지도 않는데 남에게 눈여겨 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위선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박종필 감독의 눈에 보였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들을 더이상 박종필 감독을 통해 볼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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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4. 20. 23:24

사람의 마음 속 상처는 쉽게 치유될 수 없다. 그 위에 하나하나 쌓여가면 이 또한 어긋난 채로 있을 수밖에 없고 억지로 이어나가다가 무너지게 되면 쌓고 있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처음부터 잘했어야 했는데...'


이 영화의 처음 부분이자 마지막, 그리고 전체를 내포하고 있는 김영호(설경구 배우)의 외침은 상처를 떠안은 채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기에 많은 부작용을 끌어안아야 했던 8,90년대 한국의 비극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되돌리고 싶지만 역주행을 할 수 없는 기차처럼, 돌을 물가에 던졌을 때 퍼져나간 동심원을 다시 중심으로 모이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을 돌리고 싶다는 김영호의 외침이나 사람들의 마음이나 공허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저 물질로 말초적 본능을 자극함으로써 이 감정을 속여야 했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고 김영호처럼 실패한 경우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때에 비해서 좋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애매모호하지만 90년대 말 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한국의 모습을 본 많은 아버지 세대들의 심정은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야기의 전개는 역순으로 돌리는 것을 선택하면서 먼저 나온(시간상으로는 뒤인) 김영호의 행동이 원래는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게 흥미로웠다. 역순으로 돌렸기 때문에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들은 척 보기엔 정말 별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같이 시간을 거슬러온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장면이 되었다. 아마 시간 순서대로 했으면 이런 감정이 덜 했겠지... 이를 위해 거꾸로 가는 기차의 모습을 중간중간 보여주는 것도 매우 인상깊은 장면이다.  


주연을 맡은 설경구 배우뿐 아니라 문소리 배우와 김여진 배우 등 만들어졌을 당시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김여진 배우는 그 전에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신인상을 받았다는데 보지를 않아서...)지금으로선 당연하다시피 언급되고 있는 배우들이 선보이는 연기도 상당하다. 이 배우들이 있었기에 이 영화가 있었고 이 영화가 있었기에 이 배우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평점은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말이 더 필요있나...



이렇게 난데없이 영화 <박하사탕> 감상문을 쓴 것은 이 영화가 4k화질로 리마스터되어 나오게 되었고 오늘 그 시사회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정식 개봉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소재가 소재인만큼 5월에 개봉되지 않을까? 

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영화 2018. 4. 1. 19:37


2012 대선 새누리 경선 당시 박근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빌리 엘리어트>를 꼽은 일이 있었고 당시 어떻게든 박근혜를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이걸 깠었다. 영화의 배경이 무너져 가는 영국 탄광촌이었는데 영국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짐작할 수 있듯이 대처가 이런 상황을 만드는 데에 진두지휘를 했었다. 이것이 옳든 그르든 간에 대처를 존경한다면서 이 사람이 저지른 일이 배경으로 들어간 영화를 마냥 좋게 보고 있는 박근혜의 모습에 여러 차례 가속을 붙이며 날아가던 어이가 한 번 더 가속을 붙였던 것이다.

이런 흐름에 나도 끼어있었고 영화를 본 적도 없지만 일단 까고 봤다.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었어... 접시물에 코 박고 죽고 싶다... 그리고 그로부터 육 년, 트윗을 올린 날짜로부터는 오 년. 오늘 드디어(?) 넷플릭스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봤다. 탄광촌에서 노조를 지휘하는 형과 아버지, 무용수가 꿈이었다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있고 어머니는 돌아가신 가정에서 자라고 있던 주인공이 우연히 발레를 접하게 되고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마초적인 형과 아버지 몰래 이를 배워가다가 주인공의 자질을 눈여겨 보며 왕립 발레학교 입학시험을 볼 것을 권하는 선생님, 이를 알아차리고 반대를 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뭐 보통 이런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실 영화 전체가 주인공이 춤을 배우고 갈등 중에서도 춤을 추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고민하는 성장 스토리 방식이다. 그러니 박근혜도 "어린아이가 고난을 이기면서 훌륭한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고 설명하고 "그렇게 어려움이 있고 부모님이 반대를 하고 주변 사정도 어려운데, 역시 자기가 좋아하고 소질을 타고나니까 '끝내는 그 길을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고 주인공이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장면도 꽤 나오지만 박근혜는 "부모님"이라고 하는 영화를 본 건가 의심스럽게 하는 단어를 꺼낸다... 육영수가 그리워서 머리도 매일 그렇게 만졌다면서 왜? 나도 영화를 보면서 이런 방식의 영화를 박근혜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봤다면 대처 정부와 광산 노조 간의 갈등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영화 내내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광산 노조가 버스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고 달걀을 던지는 장면이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지만 나중에 보면 주인공의 아버지도 이 버스에 타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광산 노조가 자본에 대항해 파업을 하는 한편 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노동자들도 있었다.(물론 이런 현상은 노동자와 자본의 대립에서 항상 일어난다.) 그 노동자들이 노조의 출근 저지를 뚫을 수 있도록 버스에 타고 출근을 했던 것이다. 이걸 또 버스가 통과할 수 있도록 경찰이 사이에서 버티고 있는 거고... 주인공의 형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도 노조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당장 집안의 형편 때문에 주인공의 꿈이 꺾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가 저 버스에 탄 것이고 이걸 알게 된 형이 아버지를 극구 말리면서 간신히 되돌려 세우게 된다. 박근혜가 이 영화를 봤다면 이 장면 또한 봤을 텐데 보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걸까? 

하긴 생각해보면 박정희 때 워낙 서슬이 퍼랬기 때문에 세우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노동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반정부 운동이었다. 이런 노조가 학생운동과 맞물리면서 결국 민주화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이런 민주화 후에 박정희의 위신은 많이 깎여내려갔다. 아버지가 있을 때에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완전히 적이 되었다. 그러면 노조에 대해서 어떤 동정을 품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럼 뭐 영화 내에서 노조와 관련된 내용은 그냥 패싱해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심한 경우엔 집안 형편이 엉망인데도 일은 안하고 이상한 곳에나 들락거리는 아버지와 형 밑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는 불우한 아동으로 봤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럼 뭐 위에서 인용한대로 그냥 성장 스토리가 되는 거지... 

결국 사람은 같은 걸 봐도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걸 보게 되고 듣고 싶은 걸 듣게 된다. 성장 과정에 따라 속해 있는 집단에 따라 쌓아온 지식에 따라 다르게 접하게 된다. 이 영화와 박근혜의 감상은 그런 것을 반영했을 뿐인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박근혜가 무식하다는 증거 중 하나에 불과하거나.

물론 영화 자체는 좋다. 그러니 박근혜도 본 척을 했겠지.

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영화 2018. 3. 12. 11:02


저번에 <염력>을 보고 나서 대판 까고 난 뒤 심은경 배우가 출연한 다른 영화가 곧이어 개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와 같이 <궁합>이다.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럽게 봤던 영화지만 엄청난 흥행몰이를 했던 <관상>을 만들었던 곳에서 했다하니 이번 건 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심은경 배우는 심은경하고 있을뿐 예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은 흥행을 보여주고 있다. 이건 뭐 백오십만도 간신히 넘길 기세인데... 그나마 백만도 못 넘은 <염력>보다는 낫다고 해야 되나... -_-a 



독립영화도 아닌데 관객이 적은 영화가 평점이 좋을 리도 없고... 어떻게 하면 이리도 한결같이 망하는 영화만 찾아다니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심은경 배우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하는 것도 아닐 테고 소속사에서 챙겨주는 것일 텐데 이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는 건가? -_-;



<수상한 그녀> 이후 심은경 배우 필모그래피로 나오는 작품들 자체가 하나같이 망작이다. 흥행도 안 되고 평가도 못 받는... <조작된 도시> 같은 경우 이백오십만을 넘긴 했지만 이마저도 손익분기점인 삼백만에 못 미쳤으니 정말 하나같다. <부산행>에는 단역으로 나오고 <서울역>에서 주연으로 나올 정도니 말 다했고... 역시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었던 <써니> 전의 작품들이야 빛을 보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빛을 본 후에도 이런 식이니 뭘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고...


 

아니 뭐 나왔던 드라마를 생각해 보면 빛을 보기 전이 훨씬 대단했어...






대단했...(?)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지만 언제나 소환되는 망작...


배우의 연기력에 비해서 제대로 된 작품에 출연하는 빈도가 너무 적다 보니 어디에 출연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거 망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와 그 우려를 확인했을 때의 안타까움이 반복되는 것에 현기증까지 느껴진다. 언제까지 심은경 배우는 심은경할 것인지...


*<궁합> 150만도 못 넘기고 134만이었구나. 알아봤을 때가 완전히 끝물이었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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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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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3. 6. 20:35


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고 그랬기에 광고지를 보관해 두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버렸고... 영화만을 보았을 때엔 찬사를 마구 늘어놓아도 부족하다 싶은 작품을 감독이나 배우의 작품 밖, 혹은 작품 속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간 행태로 인해 내리깔아 버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도 고민을 해보지 않았던 게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영화 자체로만 판단하는 것을 그런 요소들이 방해를 한다면 그 작품의 생명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저 감독은 영화계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했고 영화계가 받아주지도 않을 테지만 그런 행동을 저지른 사람이 차기작을 내놓아 봤자 좀비를 양산할 뿐이다.

이번에 발각된 오달수·조재현·조민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각각 자신의 작품에서 존재감을 뽐내왔던 사람들이니 만큼 그 작품에서 이 사람들을 빼놓고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들이 주연으로 나왔든 조연으로 나왔든 관여한 작품들은 내 소장 목록에서 빠지게 될 것이다. 하기사 조재현의 경우엔 이미 김기덕 리스트(?)로 다 빠져나간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번 경우는 원래 가지고 있었던 신뢰와는 다른 형태이다. 위의 사람들이 엄청 깨끗하게 살아왔기를 기대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영화 외의 일에서 이렇다 할 만한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을뿐이다. 하지만 이 생각을 심하게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할 경우 원래 분야에서 가져왔었던 신뢰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을 연이어 목격하게 되면서 제발 이번 기회에는 제대로 털어서 앞으로 #MeToo 같은 거대한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결국 괴물은 계속 복제되는 걸까...

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영화 2018. 2. 21. 01:07

애니메이션 실사판은 기본적으로 기대치를 한껏 낮추고 보거나 아예 보지를 않는데 거기다가 3D 그래픽 같은 요소가 등장하게 되면 안 보는 게 정신건강상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부터 든다. <아인> 실사판의 경우 평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사회를 신청했지만 그 평이 좋다는 게 누가 어떻게 평한 건가 싶었고;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했는데도 문이 안 닫혀서 빛과 바깥 소리가 다 들어오고 사람들 계속 들어오는 걸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 건지) 나서 보니 이번 건 평이 좋을 만하구나 싶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그랬지만 영화는 특히 액션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각 등장인물의 성격과 그걸 받쳐주는 세세한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다뤄지지 못했고 잠깐 잠깐 나오는 대사로 그걸 파악해야 되는 단점도 있긴 했지만 그렇게 일일이 다루기보다는 애니메이션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사토 씨 액션타임(?)에 치중해서 오락적인 요소를 강조한 면이 러닝타임 한 시간 오십 분짜리 영화에서는 더 잘 먹혀든 것 같다. 애니메이션에서 표현된 장면들을 충실히 재현해 냈고 사토 씨를 맡은 아야노 고 배우의 연기도 맡은 역에 대한 연구를 정말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그리고 이런 액션을 받쳐주는 배경음악도 상당했는데 들을 때마다 상당히 고의적이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액션 장면이 시작될 때 나오는 3,2,1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의식이 강제적으로 화면에 몰입되는 것 같은 느낌이 대단했다.


작품에서 다뤄지는 영역이 압축되다 보니 타나카를 제외한 사토 씨 패밀리(?)의 출연이 줄어든 점이나 나가이의 단짝(?) 나카노 코우는 아예 나오지도 못하는 등 등장인물도 많이 줄었는데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 가서는 완전히 일 대 일 구도로 좁혀져 버린다. 원작에서도 그렇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영화에서 다루는 부분에서 원작이 해당하는 부분을 생각해 보면 절정 부분을 위해 다소 억지로 붙여놓은 대결이 아닐까 싶은데...(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은 속편 예고인 건가? -_-a)


이번 작품의 평점은 10점 만점에서 9점.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괜찮았다.


 


*어제 밤을 샌 바람에 보는 도중에 자버려서 십 분 넘게 못 본 것 같은데 덕분에 완전히 파악하고 쓰는 평이 아니다. 언제 못 본 부분을 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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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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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2. 20. 15:30

동성애를 다룬 영화에서 가족이란 존재는 곧잘 객체화된다. 동성애자가 자신의 가족임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아예 연인들을 갈라놓으려 하거나 응원하는 정도? 아니면 아예 모르는, 영화 속 주체로는 곧잘 서지를 못한다. <초콜릿 도넛>이나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처럼 동성 연인 내지 부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아이를 자기 가족으로서 품는 구도도 있지만 이 또한 주인공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바비를 위한 기도>처럼 동성애자와 가족을 따로 떨어진 주체로 다루는 경우까지... 퀴어 관련 영화를 많이 본 것도 아니지만 이번에 본 <환절기>처럼 동성애자와 가족이 함께 주역으로 나와 소통하는 영화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스토리는 복잡하지 않다.(스토리뿐 아니라 영화 분위기 자체가 담담하다.) 주인공의 아들과 매우 친하고 주인공하고도 사이가 좋아서 집 대문 비밀번호까지 거리낌 없이 알려 줄 정도였던 수현이 아들과 여행을 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로 인해 아들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짐을 정리하던 도중 아들과 수현이 동성연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주인공이 수현을 냉정하게 대하고 아들을 찾아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지만 수현은 포기하지 않고 주인공과 아들을 도울 기회를 계속해서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과 수현의 벽이 허물어지는 이야기이다.


다소 단순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성소수자의 가족이 자신의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낸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무조건적인 갈등이나 응원보다는 자연스러운 내적 외적 갈등을 이겨내고 포용하는 과정이 같은 극장에서 관람하셨던 성소수자 부모모임 같은 분들에게도 있었을 것이지만 여태까지의 퀴어 영화는 그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기에라는 이유가 크겠지만...) 성소수자 문제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곳에서 중간점을 찾을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나고 있지만 원래는 이런 화해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기에 이 영화를 찍은 이동은 감독이 자신을 위한 영화라고 했던 것 아닐까 추측해 본다.


영화 전개를 놓고 보면 처음에 좀 혼란스럽다. 사고를 당했던 시점과 그로부터 사 년 전의 시점이 계속 교차되어서 나오는데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누군지 저 장면이 어느 시점인지 상당히 헷갈린다. 그 교차되는 장면들이 끝나면 이해가 되긴 하는데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심상정 의원도 처음부터 "초반이 지루했다"라는 돌직구를 날렸고 ㅋㅋ; 초반 부분 외에도 장면 전환이 좀 갑작스럽다 싶은 부분이 꽤 있었다. 이 점에서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야기를 좀더 풀어야 될 것 같은 시점에서 끊어지는 전개가 반복되는데 여운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좀 많이 남는 것 아닌가 싶기도...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스토리 라인이 단순한 면이 있다. 물론 복잡해야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는 입장에서 전개가 뻔하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한 평점은 10점 만점에 8점. 위의 사항을 고려해 봤을 때 내겐 평타 수준.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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