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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5. 1. 29. 11:13

후기

 

이렇게 쓰고 보니 인생은 재밌는 것이구나 싶어진다. 자기 아이에게 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많은 아동 대상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자기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유니세프 친선대사에 임명되어 전세계에 있는 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양친이 없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안았을 때 혼자서 죽는 것보다는 나라도 안아주고 있는 편이 마음은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뉴욕에서 돌아오고 나선 뉴스 방송에서 사회자를 맡으면서 TV 드라마에 나오기도 했는데 술주정뱅이 역을 연기하고 있으려니 스태프 중 "정말 술 마신 거예요?"라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지만 술을 마실 리가 있나. 하지만 자주 보는 사람들까지 이렇게 생각할 정도였으니 혹시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거나 하게 되면 나쁜 년이 뉴스 방송 사회 같은 걸 보고 있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싶어져 TV 드라마를 관두고 연극 무대에 집중하게 되었다.

 

"난, 백 살까지 살거야!"라며 소란을 피우고 있으려니 오자와 쇼우이치 씨가 "그거 좋긴 한데 백 살이 되어서 "있잖아 그 때 말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누가 받아줄 사람이나 있겠어? 외로울 걸."이라고 하기에 우왕하고 울었었는데 이젠 그게 현실로 다가왔다.

오빠라 불렀던 아츠키 키요시 씨도 어머니라 불렀던 사와무라 사다코 씨도 돌아가셨다. 함께 노인 시설에 들어가자고 약속했던 야마오카 히사노 언니도 이케우치 쥰코 씨도 먼저 떠나버렸다. 에이 로쿠스케 씨가 "안 됐구먼. 예능계 가족들이 모두 떠나가 버렸으니."라고 말해주셨지만 그 에이 씨도 떠나버리셨다.

오빠의 상태가 상당히 나빠졌던 걸 모르고 "같이 밥 먹어요."라며 전화를 했던 적이 있다. 아츠미 씨 전화에 부재중 메시지를 몇 번이고 넣어본 결과 드디어 만나게 되어선 "뭐야, 전화를 하면 받아 좀 달라고! 애인하고 온천 여행이라도 갔던 거야?"라며 내가 평소처럼 말하자 아츠미 씨는 크게 웃으며 모자를 벗고 머리에 난 땀을 손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금 크게 웃었다.

"어디도 안 갔어요, 아가씨."

"거짓말쟁이. 오빠는 너무 비밀주의자라고!"

그런 말을 주고 받으며 오빠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나중에 사모님으로부터 들은 건데 그 즈음 병세가 상당히 악화되어 집에선 누워있는 모습 외엔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난 경솔한 말만 꺼냈을 뿐이니 이렇게 생각이 없을 수 있나 싶지만 평소와 다름이 없어 기뻤던 건지 땀을 닦으며 웃기만 하던 아츠미 씨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와무라 어머니의 상태가 나빠졌을 때엔 매일처럼 병문안을 갔었는데 그러던 와중 야마다 요우지 씨가 전화를 걸어와 "아츠미 씨가 돌아가셨다는군요. 장례식도 마쳤고 이제야 매스컴 쪽에 발표를 한다네요. 매스컴을 통해서 아시기 전엔 알려드리고 싶어서 전화를 했습니다."라고 알려주셨다. 야마다 씨의 친절한 태도는 기뻤지만 오빠의 죽음이 너무 슬펐다.

최근 들어서 친구였던 노기와 요우코 씨가 죽었던 것이 충격적이었다. NHK 동창생이며 아나운서와 극단원끼리 정말 사이가 좋아 옷가게에도 함께 가고 프랑스어를 같이 배우기도 했다. 툭하면 팩스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노기와 씨는 코이시카와 덴즈우인 근처에 살고 있어서 팩스 마지막에 "덴즈우인에서"라고 쓰고 나는 "노기자카에서"라고 썼다. 최근 딸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손이 노기와 씨와 쏙 닮아서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테츠코의 방>은 올해로 사십팔 년차를 맞이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퇴학당했던 내가 한 방송을 사십팔 년이나 할 수 있다니 정말 감사한 일로 그 <테츠코의 방>에서 배우 분들에게 세계대전 당시의 일을 빠짐없이 들어보려 한 적이 있었다. 지금 들어보지 않으면 세계대전 동안 배우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잊혀질 거란 생각에서였다.

이케베 료우 씨는 영화 스타가 되기 전에 육군 소위로서 샹하이에서 남부 지역으로 가는 운송선을 타고 이동하던 중 잠수함의 공격을 받았다. 배가 격침당해 태평양 한가운데를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꽤 있는 부하들을 데리고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헤엄을 치고 있던 와중 부하 한 명이 파도를 헤치고 와선 "소위 님, 칼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군도를 보여줬다. 이케베 씨는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 몸이 그것 때문에 가라앉을까봐 갑판에 버리고 왔던 건데 그걸 보고 눈물이 났죠."라며 "바다를 헤엄치는 와중이라 눈물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만."이라고 덧붙였다.

미나미 하루오 씨는 종전 직전 마주에서 체험한 소련군과의 전투를 이야기하셨다. 토치카 안에서 쏜 총알이 젊은 소련 병사에게 맞았는데 밤이 되자 토치카 안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던 중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련 병사의 "마마, 마마"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면서 결국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전쟁에 반대합니다."라고 말하는 미나미 씨의 말엔 설득력이 있었다.

아와야 노리코 씨는 위문공연차 항공대 기지에 갔었는데 노래를 하기 전에 상관이 "여기서 듣는 사람들 모두 특공대원이니 도중에 자리를 뜨거나 하는 실례가 있어도 양해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와야 씨가 블루스를 부르기 시작하자 모두들 들떠서 듣고 있었지만 그러던 와중에 한 젊은 병사가 자리를 뜨면서 아와야 씨에게 경례를 하고 나갔다. "싱긋 웃으면서 저에게 경례를 하고 나가더군요. 눈물이 흘러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어요."라고 말해주던 아와야 씨를 잊을 수 없다.

(이 때 일본군에서 특공대는 자폭공격에 이용되는 병사들을 뜻했다 -역자 주)

2022년 마지막 방송 초대손님은 언제나처럼 타모리 씨였다. "내년은 어떤 한 해가 되려나요?"라는 내 질문에 "글쎄요, (일본이) 새로운 전쟁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지만 그런 타모리 씨의 예상이 앞으로도 빗나가길 빌 뿐이다.

<테츠코의 방>이 보내온 사십팔 년간은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물어온 사십팔 년간이기도 했다. 내가 체험한 전쟁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 게 <속 창가의 토토>를 쓰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는 것도 이 후기에 써놓고 싶다.

최근 들어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등록되었다는 통지가 와 감사하게 생각했다. 문화공로자로도 뽑혔고 훈삼등 서보장까지 받았다. <테츠코의 방>은 이제 이 년만 더하면 오십 주년이 된다. 이전부터 곧잘 "오십 년 해보는 게 목표"라고 말했는데 최근 들어선 백 세까지 계속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까지 머리도 멀쩡히 있을 수 있다면 어머니가 되지는 못했어도 뭐 이 정도면 되었나? 하고 납득할 수 있을지도.

그 때가 되면 튼튼한 몸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아빠와 엄마께 감사인사를 하고 있겠지.

나를 이해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을 거야.

이거 정말 기대되네!

 

2023년 8월 쿠로야나기 테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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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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