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결혼
라디오 드라마 <얀보 닌보 톤보>는 전국 어린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드라마의 대표작이 <당신의 이름은>이었다면 <얀보 닌보 톤보>는 명실상부 아동 대상 라디오 드라마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아 1954년 4월부터 반 년간을 예정하고 만들어졌던 것이 1957년 3월까지 연장될 정도였다. 얀보와 닌보의 목소리는 합격했던 분가쿠자 사람들이 연극 순회공연이나 출산 등의 이유로 계속할 수 없었기에 도중에 얀보 역은 사토미 쿄우코 씨, 닌보 역은 요코야마 미치요 씨로 교체되었다. 둘 다 NHK 극단 동기생들이었다.
그런데 첫 일 년 동안엔 흰 원숭이 새끼 세 마리의 목소리를 어른이 맡고 있다는 것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아나운서가 매주 방송이 끝날 때마다 이렇게 말해야 했다.
"이번 방송의 출연자는 얀보, 닌보, 톤보. 이야기꾼에는 나카오카 테루코..."
어째서 어른이 목소리를 담당하고 있는 것을 숨겨야 했는가에 대해 이이자와 선생님은 "어린이들의 꿈을 부수고 싶지 않아요. 트릭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죠."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당초 NHK는 아이 배역 목소리를 성인이 연기하는 방식에 반대했지만 이이자와 선생님은 여자 성우들이 아이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이렇게 주장했다.
"아이들을 늦은 시간까지 스튜디오에 가두어 둬선 안 됩니다. 얀보 형제의 목소리를 성인 여성들이 맡게 해주시지 않겠다면 저는 이 일을 관두겠습니다."
대규모 오디션 개최도 이이자와 선생님의 강력한 일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요즘에야 영화 더빙이든 애니메이션이든 남자 아이 목소리를 대부분 성인 여성 성우가 맡고 있지만 이 당시엔 성인이 아이의 목소리를 연기한다는 것만으로 방송계의 상식이 뒤집힐 정도였다.
"얀보, 닌보, 톤보의 목소리 연기는 사실 아역 배우가 아니라 NHK 토쿄방송극단 소속 배우 삼인조가 맡고 있습니다."
NHK에서 이런 발표를 하게 된 건 방송이 시작한 뒤 일 년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NHK는 "방송도 호평을 받고 있고 내년이 원숭이띠 해이고 하니 이걸로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NHK의 계산이 맞아떨어지면서 얀보 역을 맡은 사토미 쿄우코 씨, 닌보 역을 맡은 요코야마 미치요 씨, 그리고 톤보 역을 맡은 토토에 신문과 잡지 취재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세 명이 나란히 앉아 히비야공원에서 인터뷰를 받기도 했고 우에노 동물원에 끌려가기도 하고 카메라맨이 키타센조쿠 집까지 찾아와 토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주간 아사히>에 실린 세 명의 사진이 같이 들어간 기사엔 이런 문장이 쓰여져 있었다.
라디오계엔 한때 "고키라"라는 말이 유행했다. 고지라를 본딴 말로 뜻은 NHK 성우연구생(원문엔 이렇게 쓰였다) 제5기생이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다는 것으로 여기에 나온 세 아가씨가 그 "고키라"의 대표인 것이다.
세 아가씨는 자신의 이름보다도 이이자와 타타스 씨의 <얀보, 닌보, 톤보>로 유명하다. 이들의 존재가 이 방송을 통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고키라"의 특징은 TV와 관계가 있다. 대사 뿐 아니라 노래에 춤까지 요구되었다. 거기에 얼굴이 아름다운지 못 생겼는지도...
이들이 대사를 말할 때에도 원문의 장점을 잘 살려낸 신선한 느낌이 돋보여 요즘 들어선 개그맨에 가까워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원문의 장점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사토미 얀보 - 애칭 소요. 오 척 이 촌, 십이 관.
요코야마 닌보 - 애칭 요코. 오 척 삼 촌, 십이 관 오백.
쿠로야나기 톤보 - 애칭 챠쿠. 오 척 이 촌, 십이 관
이 기사에 "애칭 챠쿠"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건 수다쟁이 토토에게 자크(일본어로 챠쿠)를 채우겠다는 의미 같은 게 아니다. NHK 극단에 들어갔을 때 낭독 시험에서 토토는 아쿠타가와 류우노스케의 <갓파> 각본을 선택했다. 많은 갓파가 나오는 와중에 "챠쿠"라는 이름을 가진 갓파가 있었는데 "챠쿠챠쿠, 챠쿠챠쿠"라고 우는 것이 재밌어서 토토가 그걸 반복하게 되자 다들 토토를 "챠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기사에 "얼굴이 아름다운지 못 생겼는지"라든가 "십이 관" 같이 지금 와서 읽어보면 상당히 화가 나는 문장이 들어갔지만 이런 기사가 날 정도로 매일같이 많은 언론에서 띄워주기 바빴었다.
사실 이 즈음에 토토는 태어난 이래 세 번째 맞선을 보게 되어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는 뇌외과의로 "저는 결혼해도 괜찮겠다 생각합니다만."이라고 양친께 전하기까지 한 상태였다.
아빠는 토토가 NHK에 들어가 연기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긴 했지만 솔직히 일을 하는 것보단 시집을 가서 퇴직하길 바라고 있으셨다. 당시엔 여자가 바깥에서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는 것보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훨씬 일반적이었으니 그것이 여자의 행복이라고 아빠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결혼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옷을 맞춰줄 일도 거의 없어지겠구나."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시며 지유가오카에 있는 단골 옷가게에서 오버코트를 맞춰주셨다. 무려 네 벌이나. 그 중에도 분홍색 프린세스 라인 같은 꼭 맞는 실루엣에 옷깃에는 모피, 소매에는 검은 비로드가 곁들여진 옷이 토토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결국 결혼을 하진 않았다.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하지만 연애를 해보지도 않고 결혼을 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간 엄마는 토토가 그 오버코트를 입고서 "다녀오겠습니다."라며 나가려고 할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결혼 사기꾼!"이라고 중얼거리셨다.
결혼을 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 건 아니지만 결혼을 해서 동화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은 채였다.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되면
"밤이 너무 깊었으니 실례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라며 주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프로 배우가 밤이 깊었으니 이만 가볼게요라니 뭔 소리예요? 어디 가려고요?"
"졸리니깐 집에 가서 자려고요."
NHK가 "TV 여배우 1호"로서 팔아볼까 해도 본인의 의식은 이런 수준이었다.
그래도 <얀보 닌보 톤보>가 대성공을 거둔 덕에 토토의 일이 급속히 늘어났다. 아동 대상 TV 방송에서 인형극 <치로링 마을과 밤나무> (1956년~1964년)의 땅콩 피코 역, 과학방송 <물음표 극장>(1957년~1961년)에선 사회를 맡은 물음표 언니 역, 대중을 대상으로 한 방송에선 라디오 드라마 <잇쵸우메 일번지>(1957년~1964년)의 사에코 씨 역... 어떤 방송을 해도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토토는 바쁘면서도 즐겁게 일에 전념했다.
그런 와중이었다.
어느 연말 노래 방송에서 사회를 맡아줄 수 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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