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6'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5.01.26 :: 속 창가의 토토 36
  2. 2025.01.26 :: 속 창가의 토토 35
문화/책 2025. 1. 26. 13:39

죽기 전까지 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쁘다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TV도 라디오도 주당 몇 개고 고정출연을 하는 곳이 있었고, 매일 다른 대본을 외우고, 연습을 해서 본방송에 들어가고, 그 틈틈이 회의도 해야 되고... 집으로 올 때엔 당연하다는 듯이 심야택시를 이용했고 침대에 누워서 세 시간만 있어도 감지덕지할 정도였다. 그래도 누가 뭐래든 젊으니 이런 것 쯤이야 하고 무아지경 상태로 견뎌냈다.

당시의 황태자와 미치코 님이 결혼을 하게 되었을 무렵 드라마 본방송을 촬영하던 도중 갑자기 이명 현상이 일어났다. "키잉~"하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 상대방의 대사가 들리지 않았고 다음날이 되어도 변함이 없었다. 토토는 친한 병원 원장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용태를 설명했더니

"그대로 계속 일만 하고 있으면 죽을 거예요."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그 말에 펄쩍 뛰다시피 한 토토는 시간을 내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선생님께서 "과로가 심하네요. 곧장 입원해요."라고 말하시기에 토토는 NHK에 돌아가 감독님 등 관계자들에게 "입원을 해야 하니 쉬게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하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예정을 갑자기 바꾸는 건 어려웠기에 "그럼 안 되는데."라든가 "다른 방송은 몰라도 이 쪽은 해줘요."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토토도 이런 말을 들어도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 않고 "내가 없으면 NHK가 망하려나?" 같은 농담을 하며 설렁설렁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토토는 그 때까지 건강에 대한 불안을 느끼거나 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이명 현상 정도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자만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 현상은 더더욱 심해졌다. 어떤 날 아침엔 일어나보니 양 무릎 아래에 직경 오 센티미터 정도 되는 붉은 꽃이 핀 것 같은 반점들이 상당수 보였다. 엄마를 큰 소리로 불렀더니 엄마도 평소와는 다르게 "바로 병원에 가렴"이라며 안절부절 못하셨다. "죽을 거예요"가 떠올랐다.

서둘러서 병원에 달려가 선생님께 진찰을 받았다.

과로는 여러가지 증상을 동반해 나타난다고 하는데 토토의 경우엔 이명 현상과 붉은 꽃으로 나타난 것이다. 수면부족 등이 원인이 되어 다리의 모세혈관이 약해진 것이다.

"일을 쉬고 입원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나을 거예요."

선생님 말씀대로 일 개월 동안 입원하기로 결정했지만 정했다 해서 방송 관계자 얼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주는 건 아니었다. 고정출연 방송을 펑크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떤 답이 올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쯤 되자 토토가 간절히 부탁드려본 결과 방송 관계자들도 "몸이 재산이니 치료에 전념하세요."라고 말해주었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 자신이 출연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계절>을 봤을 때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이 TV 드라마에서 토토는 아츠미 키요시 씨가 연기하는 요리사의 아내 역할을 맡았다. 가게에 단골손님이 찾아와 "어라, 사모님은요?"라고 물어보자 아츠미 씨가 "잠깐 친정에 내려갔어."라고 답해주었다.

그런가. "친정에 내려갔어."라는 한 마디로 정리가 되는구나. 토토가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연기했던 배역이란 그 정도였던 건가. 이러다 죽기라도 하면 "친정 가는 길에 죽었어."가 되어버리려나...

사회를 맡았던 방송을 보니 더욱 슬펐다. 토토 대신 나온 분이 "쿠로야나기 씨는 병으로 인해 쉬게 되었습니다만, 한 달이 지나면 복귀하실 겁니다. 그 때까진 제가 대신해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말을 했다면 토토도 병실에서 안심하며 지켜볼 수 있었겠지만 토토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안녕하세요"라며 방송을 바로 시작해 버렸다.

"이럴 수가 있어? 병원에서 확실하게 나은 다음 반드시 저기에 다시 설 테다!"

복귀를 향한 정열을 불태우게 되었다.

현장이란 비정한 곳이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온정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는 현장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입원하고 있던 한 달 동안 토토는 그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퇴원했을 때 토토는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죽기 전까지 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해주셨다.

"좀처럼 듣기 힘든 질문이네요. 지금까지 그런 걸 물어본 사람은 아예 없었고요. 그래도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토토는 그런 거야 간단하다는 생각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즐거운 것들을 차례차례 입에 담아봤다.

"내일 연극을 보러가고, 모레엔 맛있는 레스토랑에 가고, 그 다음날엔 영화관에 가고, 그 다음날엔 백화점에 가고..."

"누가 놀기만 하라고 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한 건 자기 스스로가 하고 싶다 생각이 드는 일들을 골라서 해보라는 뜻이에요. 그렇게 하면 사람이 병에 쉽게 걸리거나 하지 않아요. 하기 싫어, 너무 싫어라고 생각하면 이게 쌓이면서 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거죠."

당시엔 아직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이다. 토토는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하기 싫다고 생각되는 일은 받지 않도록 하고 자기가 맡고 싶다 생각이 드는 일만 해왔다. 물론 TV 일도 연극 일도 즐거우니 계속해 온 것이다.

퇴원일을 맞이해 NHK 관계자들에게 "퇴원했습니다."라고 보고하자 모든 현장에서 "당장 돌아와주세요."란 답이 돌아왔다. "이제 당신이 있을 곳은 없어요."라고 하는 현장은 하나도 없었다.

 

오빠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일은 매우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토토가 출연했던 방송을 몇 개 소개하자면 우선 <부 푸 우>가 있었는데 TV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인형극으로 1960년 9월부터 1967년 3월까지 육 년 이상에 걸쳐 방송되었다. 이것도 이이자와 선생님의 작품으로 아기돼지 삼형제가 주인공인데 투덜투덜대는 부, 의욕이 없는 후, 노력가인 우 중에서 토토는 막내인 우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1961년 4월부터 방송된 <마법융단>은 헬리콥터에서 공중 촬영을 하거나 영상 합성 기술을 구사했던 아동 대상 방송이었다. "아브라 카타브라!"라는 주문을 외우면 아랍풍 의상을 입은 토토와 터번을 두른 두 초등학생이 탄 마법융단이 그 아이들의 초등학교 상공까지 날아가는 방식을 이용해 호평을 받았다.

교정에 모인 초등학생들이 인간문자를 만들어서 환영해 주기도 하는 등 아이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지만 토쿄 올림픽 중계를 하려면 헬리콥터가 필요하다며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아 종영을 맞이하게 되었다. 삼 년 넘게 이어온 인기방송이었던지라 지금도 가끔씩 "융단에 탔던 초등학생입니다."라며 모습이 완전히 영감님으로 변한 분들이 말을 걸어주시곤 한다.

성인 대상 방송도 많이 나오게 되어 1961년 4월부터 시작한 두 방송에 토토가 고정출연을 하게 되었다.

<꿈 속에서 만나요>는 토요일 밤 열 시에 방송되어 오 년간 계속된 전설적인 음악 버라이어티 방송이었으며 <젊은 계절>은 긴자의 프랭탕이라는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린 코미디 드라마로 지금은 대하드라마가 고정적으로 편성되어 있는 일요일 밤 여덞 시에 방송되었으며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도 사카모토 큐우도 죄다 출연해서 "스타가 마흔다섯 명이나 나오는 방송"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꿈 속에서 만나요>도 <젊은 계절>도 실시간 방송이었는데 대본은 이틀 전에야 나와서 대사를 외우고 연습을 하려면 지금으로선 절대 있을 수 없는 빡빡한 스케줄로 움직여야 했기에 수 년 동안 주말에 제대로 잔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많은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할 수 있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젊은 계절> 대본이 지연되어 방송 당일에야 완성된 일이 있었다. 대본을 따로 인쇄할 틈도 없어 복사본을 돌렸는데 당시 복사본은 지금과 달리 진한 보라색으로 찍혀 나왔고 축축한데다가 가지고 있으면 식초 냄새가 풍겨왔다. 몇 부고 쌓여있는 탁상 아래엔 물방울이 떨어져 웅덩이가 생길 정도였다. 

 

아츠미 키요시 씨와 만난 건 1960년 TV 드라마 <아버지의 계절> 스튜디오에서였다. "에노켄"이란 별칭으로 불리던 에노모토 켄이치 씨가 주연을 맡았으며 <젊은 계절>의 전신 격인 드라마로 아츠미 씨는 토토의 맞선 상대 역할로 도중참가를 하게 되었다.

아츠미 씨는 아사쿠사에 있는 프랑스자라는 스트립 극장에서 코미디언으로서 활약해온 일류 개그맨이었다. 프랑스자에서는 아즈마 하치로우 씨나 세키 케이로쿠 씨를 필두로 훗날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코미디언들이 즐비했으며 콩트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 씨도 있었다.

"아사쿠사 극장에서 좌장을 맡으셨던 분이세요."

NHK 사람이 소개해 주었다.

"쿠로야나기 테츠코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인사를 건네자 아츠미 씨는 작은 눈 안의 검은 자위를 휙 움직였다.

우와, 이렇게 눈초리가 안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나?가 토토가 아츠미 씨에게 품은 첫 인상이었다. 어깨에 힘을 주며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해온 아츠미 씨는 거기 있던 사람들 전원에게 경계심을 품은 것처럼 보였다.

아츠미 씨는 무척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그렇게 날카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더니 연습이 시작되자 토토가 맞선을 봐서 결혼까지 갈 수 있는 상대방 역할로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례가 끝나자 다시금 퉁명스러워졌지만 주 1회씩 연습과 본방송 촬영을 들어가니 이러면서 익숙해지겠거니하고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처음 만난 이래 몇 주가 흘러 회의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토토가 뭔가 말하자 아츠미 씨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뭐야 이 년은!"

이라며 한층 위압을 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년"이라는 말을 직접 들어본 건 처음이라 심술을 부리거나 비꼬는 말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을 담아 "이 년이라 하심은?"이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아츠미 씨가

"아아, 됐다됐어. 이런 여자는 정말 싫다니깐."

이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사쿠사에서 고생하며 힘을 길러온 아츠미 씨가 보기에 종교 계열 여학교에서 음악학교를 거쳐 NHK 극단 소속으로 들어온 토토가 고생 따위 모르는 온실에서 자라난 아가씨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아츠미 씨 자신도 NHK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음향 스태프로부터 "마이크가 망가지지 않게 조금 작은 목소리로"라고 주의를 받으면 "아사쿠사에선 얼마나 목소리가 큰가로 승부를 했단 말야."라며 분개했다. 토토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다음 녹음 일정 전에 좋아하는 책 한 권을 골라서 이걸 선물해 보기로 했다.

"저기 이봐요. 세상엔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다고요. 이 자슥아 하고 외치기만 하지 말고 이런 책도 좀 읽어봐요."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를 내밀자 아츠미 씨는 잿빛 별 위에 금발 소년이 서있는 그림이 그려진 표지를 의아한 듯 바라보다가 머뭇머뭇거리며 책을 받아들고서 "고마워"라고 부끄러운 듯 말을 꺼낸 뒤 현장을 떠났다. 

 

아츠미 씨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사쿠사에 대한 것, 영화에 대한 것, NHK에 대한 것, 그리고 항상 모두 같이 가는 중화요리점 같은 것도.

아츠미 씨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해서 어느 새부턴가 아츠미 씨는 토토를 "아가씨"라고 불렀고 토토는 아츠미 씨를 "오빠"라고 부르게 되었다.

토토에게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오빠는 이런 이야기도 해주었다.

"실력이 있는 녀석은 말야, 혼자서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해도 사십 분이든 오십 분이든 계속 할 수 있단 말이지.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너덜너덜한 신문 같은 걸 안고 있는 아저씨에게 어디서 오셨어요 같은 걸 물어보고 하다가 확 분위기를 끌고 당기고 하면서 그런 걸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좋은 배우, 능숙한 배우라고 다들 믿으면서 그런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안게 되는 눈물 같은 것도 있어. 대본 작가가 쓴 걸 이해하기 전에 우선 어떻게 자신을 내보일 것인가 다들 생각하게 되지. 하루 세 번 공연을 하는데 정월엔 하루에 여섯일곱 번으로 늘어나. 첫날부터 사흘 정도는 성의를 다해서 하지만 어느 정도 되면 모든 배역들이 할머니 가발을 쓰고 떼우려 하는 경우도 생기지. 그걸 저 녀석들 너무 엉터리네 하고 웃고 구르고 하지 손님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오빠와는 <꿈 속에서 만나요>와 <젊은 계절>에서도 함께 연기했다. 그 후 오빠가 어떤 활약을 하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토라 씨"를 연기했으니깐.(<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에서 맡은 배역의 애칭으로 TV 드라마로 시작해서 영화만 마흔여덞 편을 찍어낸 장수 인기작이었다 - 역자 주) 오빠가 말해왔던 "실력이 있는 녀석"은 아츠미 키요시 자신을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문화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 창가의 토토 35  (0) 2025.01.26
속 창가의 토토 34  (0) 2025.01.23
속 창가의 토토 33  (0) 2025.01.22
속 창가의 토토 32  (0) 2025.01.21
속 창가의 토토 31  (0) 2025.01.20
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책 2025. 1. 26. 00:44

암컷인가요, 수컷인가요?

 

토토는 <홍백가합전> 사회를 맡게 되었다. NHK 전속배우가 된 지 오 년 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이야 국민적인 노래방송으로서 누구나 알고 있는 홍백가합전이지만 방송 초창기인 제1회 홍백가합전은 1951년 1월 3일 밤 여덞 시부터 방송된 한 시간 특별방송 수준이었고 가수는 홍팀 백팀 각각 일곱 명씩 출연했다. 아직 TV 방송이 시작되기 전이었으니 NHK 스튜디오에서 라디오로 실시간 방송되었다.

1953년 2월에 NHK TV 방송이 시작되었으며 그 해 8월에 민방 TV 방송도 시작되었다. 노래 방송이 TV의 인기를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이었으니 NHK에서는 1954년 1월 제4회 홍백가합전 방송을 앞두고 "정월 홍백가합전을 라디오와 TV로 생중계하자"고 결의하며 커다란 홀을 빌리려 했다. 하지만 대극장은 어디든 인기가수의 정월 공연으로 예약이 꽉 차있는 상황이었기에 홍백가합전 일정을 어쩔 수 없이 연말로 변경하게 된 것이다.

1955년 이후로 한 해 마지막 날 밤엔 민방 방송국들도 극장 중계 방식 노래 방송을 밀어붙이게 되었고 인기가수들은 아직 홍백가합전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NHK와 민방 쪽의 실시간 방송 양 쪽에 일정을 잡고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시대에 1958년 제9회 홍백가합전이 열리게 되었다.

홍백가합전 사회는 토토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크나큰 무대였다. "역대 최연소 사회자"로 주목받기도 했고. 하지만 노래방송이 지금처럼 다양하지도 않았고 애초 일에 치여 사느라 노래방송을 제대로 볼 시간도 없었기에 얼굴과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가수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토토가 사회를 맡을 수 있을까 불안한 생각만 들었지만 무대용 의상으로 준비된 금색 원피스를 주문제작품으로 받게 되었을 때엔 "만세!"라며 마음 속으로 춤을 추었다. 옷깃 부분을 상당히 벌려놓고 허리는 최대한 조이고 스커트는 풍선과 같이. 치맛단을 무릎 정도까지만 내려서 걷기 쉽도록 했다. 스테이지를 달려가거나 해도 괜찮아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해 홍백가합전은 개관 이 년째를 맞이한 신주쿠 코마극장에서 열렸다. 니혼테레비는 유우라쿠쵸우에 있는 니혼극장, KR테레비(현재의 TBS)는 히비야에 있는 토쿄 타카라즈카 극장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노래방송을 실시간 중계했다.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가수들 상당수 어딘가의 방송에 출연한 다음 신주쿠 코마극장으로 달려오는 식으로 출연하는 식으로 다리를 걸쳐댔다.

그 때엔 "카미카제 택시"라는 단어가 유행을 탔는데 1955년 이후로 도로가 심하게 정체된 와중에 신호나 규정속도를 무시하는 무지막지한 운전을 하는 택시를 일컬었던 말로 요즘이라면 유행어 대상에 올라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쓰였다.

민방 쪽 방송과 홍백가합전에 양다리를 걸치는 무시무시한 스케줄을 구사하는 가수들을 카미카제 택시에 빗대어 "카미카제 탤런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차로 이동하면서 신호를 무시하고 규정속도도 무시해선 목숨이 위태롭기에 이 시절엔 놀랍게도 유우라쿠쵸우나 히비야에서 신주쿠 카부키쵸우까지 오는 택시를 경찰차나 경찰 오토바이가 길을 열어서 가게 해주었다.

그게 말이 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때엔 말이 된다고!였다.

 

"선서. 우리들은 아티스트 정신에 입각하여 정정당당히 적이 KO 당할 때까지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1958년 12월 31일, 홍백가합전 제9회 대회 출장선수대표, 쿠로야나기 테츠코"

홍백가합전이 토토의 선수선언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목소리는 아직도 NHK에 남아있다.

백팀은 오카모토 아츠오 씨를 선두타자로 하여 코사카 카즈야 씨, 미나미 하루오 씨, 프랭크 나가이 씨, 딕 미네 씨, 다크 덕 여러분, 카스가 하치로우 씨 등이 이어지면서 이 년 연속으로 미하시 미치야 씨가 대미를 장식하는 진영이었다.토우요우음악학교에서 동급생이었던 미우라 코우이치 씨도 있었다. 홍팀은 마츠시마 우타코 씨, 유키무라 이즈미 씨, 에리 치에미 씨, 코시지 후부키 씨, 페기 하야마 씨, 아와야 노리코 씨, 시마쿠라 치요코 씨가 출연했고 역시 이 년 연속으로 미소라 히바리 씨가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홍팀 백팀 각각 스물다섯이나 되는 가수가 모여 한 해의 마지막을 호화현란하게 물들이는 무대는 노래가 있고 응원전도 있으며 심사위원 선생님들도 참석해 이미 현재의 스타일의 원형을 거의 마련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홍백가합전과 매우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대본이 있어봤자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가수 중 누가 도착했는지 확인해서 사회자에게 실시간으로 지시를 해줄 수도 없는 환경이었다.

가수가 탄 차에게 길을 터준 경찰차 사이렌이 스테이지 위에 있는 토토에게까지 들려오면 코마극장 주차장에 있던 스태프가 무대 쪽 스태프를 향해 커다란 소리로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여자, 왔습니다!"

"이어서 남자가 왔습니다!"

모두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기 일쑤였다. 연말이라 길이 꽉 막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드디어 코마극장에 도착했다 한들 무대 뒤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느라 막 도착한 가수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밖에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허둥지둥대는 상황 때문이었는지 토토는 전반부터 커다란 실패를 벌이고 말았다. 마츠시마 우타코 씨를 "와타나베 하마코 씨입니다!"라고 소개해 버린 것이다.

당시 마이크는 스탠드 형식으로 스테이지 중앙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츠시마 씨는 곡의 인트로가 흐르면서 토토가 곡을 소개해 주는 동안 마이크를 향해 걸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노래가 시작하기 직전에야 마이크 앞에 서게 된 마츠시마 씨는 잘못 소개된 이름을 정정할 틈도 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마츠시마 우타코 씨를 잘못 말한 거 마지막에 정정해줘!"

스태프가 이런 말을 하기에 노래가 끝날 즈음에 마이크를 향해서 "죄송합니다, 마츠시마 우타코 씨였습니다!"라고 외치며 머리를 숙였다.

이 정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물론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는 가수 분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였는데도 토토가 바로 "앗!"하고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낸 건 샹송 가수 아와야 노리코 씨였다. 아와야 씨는 토우요우음악학교 출신으로 엄마와 토토의 선배이시기도 하다. 엄마와 무척 사이가 좋아서 집에 곧잘 놀러오기도 하셨다.

집에 놀러오실 때엔 화장기 없는 얼굴로 홀연히 혼자 오시곤 했다. 테이블 위에 메이크업 도구를 펼쳐놓고선 "이 눈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밝힐 때다!" 같은 말을 하시며 몇 번이고 아이라인을 그리시고선 인조눈썹을 붙이셨다. 물론 홍백가합전에서는 메이크업도 굵직하게 해놓으셔서 토토도 "아와야 노리코 씨가 부르는 <장밋빛 인생>, 라비안 로즈입니다!"라고 침착하게 소개할 수 있었다.

백팀 사회는 타카하시 케이조우 씨였다. 케이조우 씨는 육 년 연속 백팀 사회를 맡아 위기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이지조차 않는 듯한 훌륭한 사회를 선보이셨다. 하지만 응원전 시간대가 되자 요즘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다음 차례에 부를 가수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케이조우 씨도 토토도 식은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무대에는 백팀을 응원하러 백호대 분장을 하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을 어떻게든 벌어야 되는데! 개가 무대에 같이 올라와 있는 걸 발견한 토토는 케이조우 씨가 사회를 보는 와중에 끼어들어 개에게 다가가선 개의 코 앞에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당신은 암컷인가요, 수컷인가요?"

개가 당황스러워 하는 듯 보였다.

"암컷이라면 홍팀을 응원해야 하지 않겠어요?"

라고 말했더니 극장 여기저기서 소리를 높여 웃었다.

계속해서 박장대소가 이어지는 와중에 "여자, 왔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와 크게 안심했다.

"개에게 성별을 물어보다니 너 배짱이 꽤 있구나?"

허둥지둥대다가 방송이 끝난 후에 NHK 예능국장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이후 홍백가합전 사회를 2015년 제66회 대회까지 총 여섯 번 맡게 되었다. 첫 번째 사회는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지만 홍팀의 승리로 끝났다. 토토는 이 때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삼아 그 이후 사회를 맡게 되었을 때 출연한 가수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다.

나카모리 아키나 씨가 처음 출연했을 때 긴장해서 몸이 굳어버린 채로 <금구>를 부르는 것을 들으며 노래가 끝나면 꼭 격려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까지 노래를 불러낸 나카모리 씨 어깨를 감싸주며 "무릎이 아프신데도 잘 참고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을 때 나카모리 씨가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던 것을 잊지 못한다.

의상에 신경을 쓰는 가수 분들의 마음을 알기에 노래를 소개할 때에 의상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어 홍팀 가수 전원의 의상을 취재해 본 적도 있었다. 시마쿠라 치요코 씨가 <이 세상의 꽃>을 불렀을 때 이런 식으로 소개했다.

"이십칠 년 전에 대히트를 쳤던 곡을 홍백가합전에선 오늘 처음 부릅니다. 옷도 눈여겨 봐주세요. 1700년대 장인의 생활상이 옻칠과 금은색 실로 재봉되어 표현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꽃>. 시마쿠라 치요코 씨입니다."

그러자 옷자락에 새겨진 호화로운 자수를 카메라맨이 클로즈업하며 무언 속 연계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런 모험도 했다.

혹시 홍백가합전의 무대에서 수화를 보일 수 있을까? 토토가 수화로 이야기하면 그걸 아이들이 보아주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손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이런 생각을 한 토토는 홍백가합전에서 수화를 쓸 기회를 엿보았다.

토토는 <미국 농아극단>을 일본으로 초빙해 미국 수화를 일본 수화로 번역하며 함께 연극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경험을 살려 좀더 큰 방송에서 수화를 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TV에서 수화로 이야기를 하려면 토토만 크게 비춰져야 하는데다가 양손을 써야 하니 핸드 마이크가 아닌 스탠드 마이크를 세우고 해야만 했기에 이런 환경을 부여받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1980년 홍백가합전에서 리허설을 할 때에 세 시간에 가까운 실시간 방송을 해야하는 와중에 딱 한번 그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토는 전일본 농아연맹 관계자로부터 배운 수화를 대사에 맞춰서 준비했고 운 좋게도 그 타이밍을 담당한 카메라맨이 옛날부터 잘 알고 지낸 분이었기에 "이걸 하고 싶으니깐 부탁해."라고 귀띔을 하고 본방송을 준비했다.

백팀의 사다 마사시 씨 노래가 끝난 뒤 토토는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손바닥을 가슴 앞에 댔다.

"오늘은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분들이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향을 떠나 그리고 가족과 헤어져 홀로 보시는 분도 있으시겠죠. 하지만 열심히 노래하시는 가수 분들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까지 응원해 주신다면 우린 함께 할 수 있을 겁니다!"

토토는 말과 수화를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삼십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홍백가합전에서 최초로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께 말로 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으며 이를 본 전국의 시청자들이 NHK에 "무척 좋았다."는 감상을 전달했다고 한다.

 

2022년 홍백가합전에서는 토토가 심사위원으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칠십 년이나 지났는데도 형광봉을 마이크인 줄 알고 잡고선 이야기를 하는 실태를 저지르고야 말았지만 그 때 옆에 앉아있었던 피규어 스케이트 선수 하뉴우 유즈루 씨가 토토에게 살며시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사회를 맡은 사쿠라이 쇼우 씨도 "많이 헷갈리시죠? 저도 곧잘 그래요."라며 거들어주셨다. 관객 분들에게 큰 웃음도 안겨주었고.

웃음에 싸인 NHK홀에서 토토는 무척 따뜻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실패를 개의치 않는 홍백가합전은 무척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다.

토토를 키워준 홍백가합전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36부

'문화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 창가의 토토 36  (0) 2025.01.26
속 창가의 토토 34  (0) 2025.01.23
속 창가의 토토 33  (0) 2025.01.22
속 창가의 토토 32  (0) 2025.01.21
속 창가의 토토 31  (0) 2025.01.20
posted by alone glowf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