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인가요, 수컷인가요?
토토는 <홍백가합전> 사회를 맡게 되었다. NHK 전속배우가 된 지 오 년 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이야 국민적인 노래방송으로서 누구나 알고 있는 홍백가합전이지만 방송 초창기인 제1회 홍백가합전은 1951년 1월 3일 밤 여덞 시부터 방송된 한 시간 특별방송 수준이었고 가수는 홍팀 백팀 각각 일곱 명씩 출연했다. 아직 TV 방송이 시작되기 전이었으니 NHK 스튜디오에서 라디오로 실시간 방송되었다.
1953년 2월에 NHK TV 방송이 시작되었으며 그 해 8월에 민방 TV 방송도 시작되었다. 노래 방송이 TV의 인기를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이었으니 NHK에서는 1954년 1월 제4회 홍백가합전 방송을 앞두고 "정월 홍백가합전을 라디오와 TV로 생중계하자"고 결의하며 커다란 홀을 빌리려 했다. 하지만 대극장은 어디든 인기가수의 정월 공연으로 예약이 꽉 차있는 상황이었기에 홍백가합전 일정을 어쩔 수 없이 연말로 변경하게 된 것이다.
1955년 이후로 한 해 마지막 날 밤엔 민방 방송국들도 극장 중계 방식 노래 방송을 밀어붙이게 되었고 인기가수들은 아직 홍백가합전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NHK와 민방 쪽의 실시간 방송 양 쪽에 일정을 잡고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시대에 1958년 제9회 홍백가합전이 열리게 되었다.
홍백가합전 사회는 토토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크나큰 무대였다. "역대 최연소 사회자"로 주목받기도 했고. 하지만 노래방송이 지금처럼 다양하지도 않았고 애초 일에 치여 사느라 노래방송을 제대로 볼 시간도 없었기에 얼굴과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가수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토토가 사회를 맡을 수 있을까 불안한 생각만 들었지만 무대용 의상으로 준비된 금색 원피스를 주문제작품으로 받게 되었을 때엔 "만세!"라며 마음 속으로 춤을 추었다. 옷깃 부분을 상당히 벌려놓고 허리는 최대한 조이고 스커트는 풍선과 같이. 치맛단을 무릎 정도까지만 내려서 걷기 쉽도록 했다. 스테이지를 달려가거나 해도 괜찮아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해 홍백가합전은 개관 이 년째를 맞이한 신주쿠 코마극장에서 열렸다. 니혼테레비는 유우라쿠쵸우에 있는 니혼극장, KR테레비(현재의 TBS)는 히비야에 있는 토쿄 타카라즈카 극장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노래방송을 실시간 중계했다.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가수들 상당수 어딘가의 방송에 출연한 다음 신주쿠 코마극장으로 달려오는 식으로 출연하는 식으로 다리를 걸쳐댔다.
그 때엔 "카미카제 택시"라는 단어가 유행을 탔는데 1955년 이후로 도로가 심하게 정체된 와중에 신호나 규정속도를 무시하는 무지막지한 운전을 하는 택시를 일컬었던 말로 요즘이라면 유행어 대상에 올라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쓰였다.
민방 쪽 방송과 홍백가합전에 양다리를 걸치는 무시무시한 스케줄을 구사하는 가수들을 카미카제 택시에 빗대어 "카미카제 탤런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차로 이동하면서 신호를 무시하고 규정속도도 무시해선 목숨이 위태롭기에 이 시절엔 놀랍게도 유우라쿠쵸우나 히비야에서 신주쿠 카부키쵸우까지 오는 택시를 경찰차나 경찰 오토바이가 길을 열어서 가게 해주었다.
그게 말이 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때엔 말이 된다고!였다.
"선서. 우리들은 아티스트 정신에 입각하여 정정당당히 적이 KO 당할 때까지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1958년 12월 31일, 홍백가합전 제9회 대회 출장선수대표, 쿠로야나기 테츠코"
홍백가합전이 토토의 선수선언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목소리는 아직도 NHK에 남아있다.
백팀은 오카모토 아츠오 씨를 선두타자로 하여 코사카 카즈야 씨, 미나미 하루오 씨, 프랭크 나가이 씨, 딕 미네 씨, 다크 덕 여러분, 카스가 하치로우 씨 등이 이어지면서 이 년 연속으로 미하시 미치야 씨가 대미를 장식하는 진영이었다.토우요우음악학교에서 동급생이었던 미우라 코우이치 씨도 있었다. 홍팀은 마츠시마 우타코 씨, 유키무라 이즈미 씨, 에리 치에미 씨, 코시지 후부키 씨, 페기 하야마 씨, 아와야 노리코 씨, 시마쿠라 치요코 씨가 출연했고 역시 이 년 연속으로 미소라 히바리 씨가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홍팀 백팀 각각 스물다섯이나 되는 가수가 모여 한 해의 마지막을 호화현란하게 물들이는 무대는 노래가 있고 응원전도 있으며 심사위원 선생님들도 참석해 이미 현재의 스타일의 원형을 거의 마련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홍백가합전과 매우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대본이 있어봤자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가수 중 누가 도착했는지 확인해서 사회자에게 실시간으로 지시를 해줄 수도 없는 환경이었다.
가수가 탄 차에게 길을 터준 경찰차 사이렌이 스테이지 위에 있는 토토에게까지 들려오면 코마극장 주차장에 있던 스태프가 무대 쪽 스태프를 향해 커다란 소리로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여자, 왔습니다!"
"이어서 남자가 왔습니다!"
모두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기 일쑤였다. 연말이라 길이 꽉 막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드디어 코마극장에 도착했다 한들 무대 뒤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느라 막 도착한 가수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밖에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허둥지둥대는 상황 때문이었는지 토토는 전반부터 커다란 실패를 벌이고 말았다. 마츠시마 우타코 씨를 "와타나베 하마코 씨입니다!"라고 소개해 버린 것이다.
당시 마이크는 스탠드 형식으로 스테이지 중앙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츠시마 씨는 곡의 인트로가 흐르면서 토토가 곡을 소개해 주는 동안 마이크를 향해 걸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노래가 시작하기 직전에야 마이크 앞에 서게 된 마츠시마 씨는 잘못 소개된 이름을 정정할 틈도 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마츠시마 우타코 씨를 잘못 말한 거 마지막에 정정해줘!"
스태프가 이런 말을 하기에 노래가 끝날 즈음에 마이크를 향해서 "죄송합니다, 마츠시마 우타코 씨였습니다!"라고 외치며 머리를 숙였다.
이 정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물론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는 가수 분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였는데도 토토가 바로 "앗!"하고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낸 건 샹송 가수 아와야 노리코 씨였다. 아와야 씨는 토우요우음악학교 출신으로 엄마와 토토의 선배이시기도 하다. 엄마와 무척 사이가 좋아서 집에 곧잘 놀러오기도 하셨다.
집에 놀러오실 때엔 화장기 없는 얼굴로 홀연히 혼자 오시곤 했다. 테이블 위에 메이크업 도구를 펼쳐놓고선 "이 눈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밝힐 때다!" 같은 말을 하시며 몇 번이고 아이라인을 그리시고선 인조눈썹을 붙이셨다. 물론 홍백가합전에서는 메이크업도 굵직하게 해놓으셔서 토토도 "아와야 노리코 씨가 부르는 <장밋빛 인생>, 라비안 로즈입니다!"라고 침착하게 소개할 수 있었다.
백팀 사회는 타카하시 케이조우 씨였다. 케이조우 씨는 육 년 연속 백팀 사회를 맡아 위기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이지조차 않는 듯한 훌륭한 사회를 선보이셨다. 하지만 응원전 시간대가 되자 요즘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다음 차례에 부를 가수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케이조우 씨도 토토도 식은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무대에는 백팀을 응원하러 백호대 분장을 하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을 어떻게든 벌어야 되는데! 개가 무대에 같이 올라와 있는 걸 발견한 토토는 케이조우 씨가 사회를 보는 와중에 끼어들어 개에게 다가가선 개의 코 앞에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당신은 암컷인가요, 수컷인가요?"
개가 당황스러워 하는 듯 보였다.
"암컷이라면 홍팀을 응원해야 하지 않겠어요?"
라고 말했더니 극장 여기저기서 소리를 높여 웃었다.
계속해서 박장대소가 이어지는 와중에 "여자, 왔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와 크게 안심했다.
"개에게 성별을 물어보다니 너 배짱이 꽤 있구나?"
허둥지둥대다가 방송이 끝난 후에 NHK 예능국장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이후 홍백가합전 사회를 2015년 제66회 대회까지 총 여섯 번 맡게 되었다. 첫 번째 사회는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지만 홍팀의 승리로 끝났다. 토토는 이 때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삼아 그 이후 사회를 맡게 되었을 때 출연한 가수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다.
나카모리 아키나 씨가 처음 출연했을 때 긴장해서 몸이 굳어버린 채로 <금구>를 부르는 것을 들으며 노래가 끝나면 꼭 격려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까지 노래를 불러낸 나카모리 씨 어깨를 감싸주며 "무릎이 아프신데도 잘 참고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을 때 나카모리 씨가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던 것을 잊지 못한다.
의상에 신경을 쓰는 가수 분들의 마음을 알기에 노래를 소개할 때에 의상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어 홍팀 가수 전원의 의상을 취재해 본 적도 있었다. 시마쿠라 치요코 씨가 <이 세상의 꽃>을 불렀을 때 이런 식으로 소개했다.
"이십칠 년 전에 대히트를 쳤던 곡을 홍백가합전에선 오늘 처음 부릅니다. 옷도 눈여겨 봐주세요. 1700년대 장인의 생활상이 옻칠과 금은색 실로 재봉되어 표현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꽃>. 시마쿠라 치요코 씨입니다."
그러자 옷자락에 새겨진 호화로운 자수를 카메라맨이 클로즈업하며 무언 속 연계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런 모험도 했다.
혹시 홍백가합전의 무대에서 수화를 보일 수 있을까? 토토가 수화로 이야기하면 그걸 아이들이 보아주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손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이런 생각을 한 토토는 홍백가합전에서 수화를 쓸 기회를 엿보았다.
토토는 <미국 농아극단>을 일본으로 초빙해 미국 수화를 일본 수화로 번역하며 함께 연극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경험을 살려 좀더 큰 방송에서 수화를 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TV에서 수화로 이야기를 하려면 토토만 크게 비춰져야 하는데다가 양손을 써야 하니 핸드 마이크가 아닌 스탠드 마이크를 세우고 해야만 했기에 이런 환경을 부여받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1980년 홍백가합전에서 리허설을 할 때에 세 시간에 가까운 실시간 방송을 해야하는 와중에 딱 한번 그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토는 전일본 농아연맹 관계자로부터 배운 수화를 대사에 맞춰서 준비했고 운 좋게도 그 타이밍을 담당한 카메라맨이 옛날부터 잘 알고 지낸 분이었기에 "이걸 하고 싶으니깐 부탁해."라고 귀띔을 하고 본방송을 준비했다.
백팀의 사다 마사시 씨 노래가 끝난 뒤 토토는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손바닥을 가슴 앞에 댔다.
"오늘은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분들이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향을 떠나 그리고 가족과 헤어져 홀로 보시는 분도 있으시겠죠. 하지만 열심히 노래하시는 가수 분들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까지 응원해 주신다면 우린 함께 할 수 있을 겁니다!"
토토는 말과 수화를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삼십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홍백가합전에서 최초로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께 말로 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으며 이를 본 전국의 시청자들이 NHK에 "무척 좋았다."는 감상을 전달했다고 한다.
2022년 홍백가합전에서는 토토가 심사위원으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칠십 년이나 지났는데도 형광봉을 마이크인 줄 알고 잡고선 이야기를 하는 실태를 저지르고야 말았지만 그 때 옆에 앉아있었던 피규어 스케이트 선수 하뉴우 유즈루 씨가 토토에게 살며시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사회를 맡은 사쿠라이 쇼우 씨도 "많이 헷갈리시죠? 저도 곧잘 그래요."라며 거들어주셨다. 관객 분들에게 큰 웃음도 안겨주었고.
웃음에 싸인 NHK홀에서 토토는 무척 따뜻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실패를 개의치 않는 홍백가합전은 무척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다.
토토를 키워준 홍백가합전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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