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7'에 해당되는 글 1건
- 2025.01.27 :: 속 창가의 토토 37
분가쿠자에 다니며
현장에 임하면 임할수록 토토의 마음은 불안해져 갔다.
많은 방송에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본격적인 배우수업을 해보지는 못했다는 것이 컴플렉스처럼 느껴졌다. NHK에 합격했을 때도 양성소를 다니던 때에도 배우가 되고 싶다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배우라는 직업을 강하게 의식하게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빠와 사이가 좋아져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토토로서도 어딘가에서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게 되었다.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토토를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다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가씨 같은 연기를 하고 있으니 우선 이걸 어떻게 해봐야겠다 생각했다. NHK 같은 커다란 조직에 속해 있으면 잘 안된다 싶어도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주지만 독립해 있는 배우가 해봐서 잘 안 될 경우 "아, 거기까지만"이라고 말할 것이다. 엄격한 정도가 확 바뀌는 것이다.
"컴플렉스를 극복해서 배우로서의 무기를 습득하고 싶어."
토토 안에서 이런 생각이 강해졌다.
NHK 양성소 시절에 분가쿠자의 무대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눈 앞에서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무대란 재밌는 거구나." 같은 감상문을 썼던 게 떠올라 분가쿠자의 연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이자와 선생님이 각본과 연출을 맡으신 <2호>라는 작품이었다.
분가쿠자에서 간판 중에서도 간판으로 꼽히는 스기무라 하루코 선생님의 연기를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무대경험이 풍부한 배우 분이 엄청난 연기 실력을 뽐내시는 모습은 TV 스튜디오에서도 보긴 했지만 무대에선 배우 분이 전신으로 연기하게 되는 만큼 TV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어딘가 극단에 들어가 확실히 공부를 한다면 연기를 더욱 잘하게 될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된 토토는 스기무라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청했다.
"저, 분가쿠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만."
토토가 말을 꺼내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꼭 와주세요. 제가 한 마디만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거예요."
스기무라 선생님은 여배우들을 엄하게 대하기로 유명한 분이셨는데도 토토에겐 이리 상냥하게 대해주신 건 스기무라 선생님이 아직 토토를 배우로서 인식하고 있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럴 거란 걸 알아차렸지만 토토는 '선생님이 서양 쪽 연극의 번역 버전을 나에게 시키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며 큰 배를 탔다 생각하며 내부회의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스기무라 선생님이 전해오신 건 기대와 다소 다른 내용이었다.
"극단 이사회에 쿠로야나기 테츠코 씨를 분가쿠자에 넣어달라 추천했는데 반대 의견을 비추신 분이 한 분 있었어요. 당신이 들어가면 분가쿠자의 분위기가 엉망이 될 거라네요. 하지만 마침 분가쿠자의 연극연구소가 만들어진 참이니 테츠코 씨가 거기에 들어가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토토는 NHK 일을 하는 틈틈이 시간을 짜내서 시나노마치에 있는 분가쿠자 부속 연극연구소에 다니게 되었다. 에모리 토오루 씨와 동급생이었는데 에모리 씨는 당시 아직 열여덞 살이었다. 그런데 다음 해 1월에 분가쿠자 배우 대부분이 탈퇴하게 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퇴단한 사람들 대부분이 셰익스피어 희극을 번역해서 유명해진 후쿠다 츠네아리 씨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게키단쿠모"로 옮겨갔다.
배우가 부족해진 것 때문인지 연출가인 이누이 이치로우 씨가 "연극연구소가 아니라 분가쿠자로 오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요청을 해오셨는데 그 때 함께 연기하고 싶다 생각했던 배우 분들이 죄다 새로운 극단으로 가버린 데다가 <꿈 속에서 만나요>나 <젊은 계절> 등 재미있다 생각했던 일을 잔뜩 안고 있던 상황이었던지라 토토는 "좀더 시간이 지나서 어딘가 극단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분가쿠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이누이 씨에게 답했다. 그렇게 해서 토토는 연구생인 채로 연기 공부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당시 어느 금요일 스케줄을 떠올려 보니 이런 식이었다.
10시 반~14시 | 시나노마치 분가쿠자 부속 연극연구소 |
14시~16시 | 아오야마 국제 라디오 센터에서 <부 후 우> 녹음 |
19시~21시 | 타무라쵸 NHK 본관에서 <젊은 계절> 연습 |
20시~ 22시 | 동시에 진행된 <마법융단> 연습장에 달려가 참가 |
22시~다음날 2시 | 히비야공원 안 NHK 스튜디오에서 <꿈 속에서 만나요> 연습 |
여전히 "죽을 거예요"라는 말을 듣기 딱 좋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죽지 않고 견뎌낸 것은 하나같이 내가 좋아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가쿠자에 다니기 시작했던 해부터 NHK 외의 일도 받기 시작했다.
처음 맡은 건 광고로 NHK 소속인데 광고에 출연해도 괜찮은 걸까 생각이 들어 예능국장님께 허가를 받으러 갔다.
"TV 광고를 하려 하는데 괜찮을까요?"
토토가 이렇게 말하자 무언가 서류를 바라보던 국장님이 황급히 고개를 들더니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토토를 바라보았다.
"엽전 받는 건가?"
NHK의 높은 분들은 어째서인지 돈을 "엽전"이라고 불렀다. 토토가 "받겠죠."라고 답하자
"뭐, 해봐. 그걸로 흥미를 가진 시청자들이 있으면 NHK 방송 봐줄지도 모르고."
의외로 간단히 OK를 받아서 토토는 CM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TBS 스튜디오라고 기억한다. 모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 각본가인 무코우다 쿠니코 씨와 만나게 되었다. 다음회에 쓸 각본이 늦어져 스튜디오 건너편에서 쓰고 있는 걸 보며 딱 부러진 맛이 없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하며 바라봤던 게 무코우다 씨였다. 무코우다 씨는 TBS의 라디오 드라마 <모리시게의 중역독본>의 각본을 쓰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참이었다.
토쿄 올림픽이 끝났을 무렵 배우인 카토우 하루코 씨가 "놀러가지 않을래?"라고 하기에 무코우다 쿠니코 씨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하루코 씨는 무코우다 씨가 쓴 작품에 다수 출연하고 있었다.
무코우다 씨는 "카스미쵸우 맨션"에 살고 있었는데 카스미쵸우는 현재의 니시아자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목조 모르타르로 지어진 3층 건물 중 2층 "B-2"가 무코우다 씨 집이었다.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일하는 책상 옆에 소파가 있어 샴고양이가 앉아있었으며 배가 고프면 부엌에 서서 냉장고에 남아있는 걸 착착 요리로 만들어냈다. 그런 무코우다 씨의 생활상은 아직 양친의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던 토토에겐 무척 자유롭고 시원시원하게 느껴졌다.
토토는 무코우다 씨 집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했다. 당시 세타야에서 가족과 살고 있던 토토로선 시부야에 있는 NHK, 아카사카에 있는 TBS, 롯폰기에 있는 NET(현재의 테레비 아사히)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간이 생기면 찾아가기 쉬운 곳이었으며 무코우다 씨와 함께 있으면 왠지 무척 편안하게 느껴졌다.
둘 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토토가 뒹굴거리며 대본을 읽고 있으면 무코우다 씨는 쓱쓱 원고를 써내려갔다. 무코우다 씨는 원고를 늦게 제출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너무 빨리 주면 배우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니깐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생각을 한 다음 단번에 써내려가는 게 최선이야."라고 변명을 하곤 했다. 카스미쵸우는 당시에도 멋들어진 느낌이 드는 마을이었는데 "여자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지지."는 명언이라고 생각했다.
토토는 무코우다 씨의 존재에 의존했다. 항상 무코우다 씨가 곁에 있었기에 그런 바쁜 나날들을 달려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코우다 씨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뜬 후에야 알게 된 것이 있는데 토토가 무코우다 씨 집을 드나들게 된 시기는 카메라맨이었던 애인이 죽은 직후였다고 한다. 처음 갔을 때 어째서 "언제든 와도 좋아요."라는 말을 들었는가 의문이 들었었는데 토토가 하는 쓰잘데기 없는 수다가 무코우다 씨가 안고 있던 슬픔을 씻어준 덕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양쪽 다 애인 이야기 같은 건 한번도 한 적이 없었지만.
출발의 노래
토토는 NHK 전속 배우를 관두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계절> 때부터 오랫동안 친분을 가져왔던 모리 미츠코 씨에게 "누군가 좋은 매니저 좀 소개시켜 줄 수 없나요?"라고 상담하자 모리 씨가 "그럼 우리 사무소로 와요."라고 권유하셔서 모리 씨가 소속된 요시다 나오미 사무소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일은 순조로웠다.
무대 일이 많아지면서 1970년 테이코쿠극장 정월공연 <스칼렛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연출과 안무를 브로드웨이에서 <노 스트링스> 등 대인기 뮤지컬을 담당했던 조 레이튼 씨가 맡았다. 조 씨의 아내는 에블린 씨로 브로드웨이에서 인정받는 배우였지만 남편의 일을 돕는 편이 좋다며 배우 일에서 은퇴를 했다. 조 씨는 에블린 씨를 매우 신뢰해서 에블린 씨의 의견이 쇼 연출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질 정도였다.
에블린 씨가 연습장에서 조 씨와 함께 있을 때엔 옆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한 마디도 않고 뭘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연습이 끝나면 근처 가게에서 식사를 하면서 그 날 본 불만점들을 조 씨에게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조 씨는 그 말을 전부 노트에 적어두었다가 다음날 연습 때 적용한다. 에블린 씨는 집에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조 씨가 에블린 씨에게 반발을 하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부부도 있을 수 있구나하고 토토는 감동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토토는 에블린 씨와 사이가 좋아진 후 어느 날 토토가 에블린 씨에게 "일을 당분간 쉴까 해요."라고 그 때까지 일본에서 일을 하며 느낀 불안점이나 컴플렉스를 토로했다. 그러자 에블린 씨는 곧바로 이렇게 답했다.
"그럼 뉴욕에서 연극학교를 다녀봐요. 뭐니뭐니 해도 메리 타사이 연극학교가 가장 좋죠. 브로드웨이에서 메리보다 뛰어난 선생님은 찾아볼 수 없을 걸요? 프로 배우만 가르쳐 줄 정도니깐요."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외국에서 연극을 배운다는 발상은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에블린 씨도 바쁠 테고 공연이 끝나서 뉴욕에 돌아가면 이 정도 이야기는 금방 잊어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블린 씨가 추천했던 메리 타사이 선생님이 하늘색 국제우편을 보내오셨다.
"친애하는 테츠코 씨에게.
저는 아직 동양인 배우를 가르쳐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에블린 씨가 당신이 재능 있는 배우이며 뉴욕에서 연기를 배워보고 싶어했다고 하시기에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쯤 여기로 오실 수 있을지요? 제가 가르치는 교실은 가을부터 다음해 여름에 접어들 때까지로 기간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메리 타사이"
이 국제우편이 토토의 등을 밀어주었다. 편지를 받은 뒤 며칠 후에 토토는 마음을 먹고 매니저인 요시다 씨에게 "한두 해 정도 일을 쉬고 싶은데요."라고 말했다.
일만 놓고 본다면 "지금이 최전성기인데 어째서?"라고 생각할 만한 시기였다. "돌아왔을 때 맡을 수 있는 일이 없어져 버리면 어쩌려고요?"라며 걱정해 주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토토가 한두 해 일본에서 떠나있는 정도로 잊혀질 존재였다면 자신의 실력이 모자랐을 뿐이라며 인정하고 포기하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요시다 씨가 "마음 먹은대로 쉬어 주세요!"라고 말해준 것이 정말 든든하게 느껴졌다. 요시다 씨는 몇 개월치는 더 예정되어 있었던 토토의 일을 정리해주시면서 둘 만의 비밀로 하기로 하고 준비까지 해주셨다.
'문화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 창가의 토토 39 (0) | 2025.01.29 |
---|---|
속 창가의 토토 38 (1) | 2025.01.28 |
속 창가의 토토 36 (0) | 2025.01.26 |
속 창가의 토토 35 (0) | 2025.01.26 |
속 창가의 토토 34 (0) | 2025.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