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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5. 1. 19. 13:17

괴상한 목소리

 

"오늘은 여러분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볼까 합니다."

삼 개월에 걸친 양성기간이 종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오오오카 선생님이 싱글벙글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전원의 목소리를 한 명씩 차례대로 테이프 레코더에 녹음한 후 그걸 들어보는 것이다. 물론 이건 5기생 스물여덞 명에게 있어 태어나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TV 방송이 시작되었을 때 NHK 수신 계약 건수는 팔백육십육 건으로 5인 가족이 한 대를 같이 본다고 해도 일본에서 TV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사오천 명 밖에 되지 않는 꼴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믿기 힘든 수치였지만 그런 시대였으니 테이프 레코더 같은 것도 방송국 중 NHK 외에 가지고 있는 곳이 드물 정도로 무척 귀중한 기계였다.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토토와 동기생들은 매일 같이 드나들었던 관광호텔의 일본식 방에서 튀어나와 도로를 가로질러 NHK 제5스튜디오로 향했다. 이 스튜디오에 온 건 채용시험 이후 처음이었는데 그 때엔 노래를 부르는 시험이었지만 이번엔 대사를 녹음하게 되었다.

토토를 비롯한 여자들에게 오오오카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것은 남편의 태도에 지긋지긋해져 버린 측실이 남편을 힐문하는 장면에 담긴 대사로 단숨에 쏟아내듯 말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모두들 차례차례 녹음을 했는데 이런 경우 대체로 토토의 순번은 마지막으로 정해져 있다시피했다. 왜 그런가 하면 토토 차례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오오오카 선생님이 이걸 염두에 두고 전원이 돌아가며 과제를 할 때엔 모두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부터 시작하도록 짜놓으신 것이다.

전원 녹음을 마친 뒤 차례대로 재생을 하자 모두들 들을 때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드디어 토토의 차례가 되었다.

"쿠로야나기 테츠코"

먼저 자신의 이름이 들려왔다. 코울림이 나는 듯한 달달한 듯한 하지만 애정을 붙이기 힘든 신비한 느낌에 도저히 자신의 목소리라고 믿기 힘들었다. 토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죄송합니다! 이거 기계가 망가진 것 같아요. 다시 하게 해주세요."

그러자 유리창 너머에 있던 믹스 담당자 분이 단호하게 말했다.

"기계가 망가지거나 한 게 아닙니다. 이게 학생의 목소리예요."

토토는 혼란에 빠졌다.

"제 목소리는 이렇게 괴상하지 않아요. NHK 기계가 망가진 게 틀림없어요."

몇 번이고 그렇게 호소해 봤지만 믹스 담당자 분은 "이게 학생의 목소리예요."란 말만 했다.

이런 목소리로 어떻게 방송에 나가라고! 이런 목소리를 들었기에 오오오카 선생님이 "태엽으로 돌아가는 프랑스 인형 같다"는 말씀을 한 것이었나 생각하니 슬퍼져서 양성소 친구들과 오오오카 선생님과 믹스 담당자 분이 있는 앞에서 토토는 울어버렸다.

그러자 믹스 담당자 분이 아까보다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와 실제 목소리는 다르게 들리는 법이에요. 입과 머릿속에서 공명현상을 일으킨 소리가 자신의 귀에 전달되게 되는 법이니까요."

믹스 담당자 분이 친절하게 한번 더 토토의 목소리를 재생해 주었지만 그걸 들은 토토는 더욱 크게 울어버렸다.

"이런 목소리가 아냐. 이딴 괴상한 목소리가 아니라고."

그날 하루 종일 토토는 울기만 했다. 자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울어버려서야 분명 약간 명에 들어갈 수 없을 테니 모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더욱 눈물이 쏟아졌다.

 

양성소에 들어간 5기생 스물여덞 명은 순식간에 친해져서 <달걀모임>을 결성했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모든 수업이 끝났고 채용될 약간 명이 결정될 단계에 이르자 한 명이라도 NHK에 붙지 못하게 되면 붙은 사람 전원이 결속해서 "모두 채용해 주지 않으면 파업을 해버리자."라고 정하기도 했다. 삼 개월에 걸친 제1차 양성기간 최종일에 "꼭 하자" "반드시야"라고 맹세를 나누며 신바시역 앞에서 헤어졌다.

며칠 후 "합격"을 알리는 속달 우편이 도착했다! NHK에 다니기 시작한 뒤 삼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꽤 많은 걸 경험했구나 하는 생각에 잠겨 그 날을 보냈다. 물론 기뻤지만 동화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고 싶었던 토토가 TV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너무나 믿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흘 후, 관광호텔에 합격자 열일곱 명이 모였다. "또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워."라고 기뻐할 새도 없이 일 년에 걸친 제2차 양성기간이 시작되었다.

합격통지가 우편으로 배달되었으니 파업 이야기 같은 건 완전히 흐지부지되어버렸다. 토토 안에선 몇 년이 지나도 "그 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감정이 남아있긴 했지만 합격하지 못한 약간 명의 사람들과 다시 만나거나 하지 못했다.

 

"토토 님!":

복도를 걷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오카 선생님이었다. 토토가 돌아보니 언제나처럼 가까이 다가온 오오오카 선생님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시며 이렇게 물어보셨다.

 "당신은 왜 자기가 채용된 건지 알고 있나요?"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토토가 깜짝 놀라 "그런 거 모르는데요."라고 답하자 오오오카 선생님이 "허, 허, 허"라며 유쾌한 듯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가 감탄한 건 양성기간 중 토토 님만이 무지각, 무결석을 달성한 거였어요. 전 지금까지 1기생과 4기생도 담당했었는데 무지각, 무결석으로 참여한 건 토토 님이 처음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건 멋진 일이죠. 하지만 당신의 시험 점수는 너무나도 나빴습니다. 그래도 시험관 선생님께서 "이만큼 연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이니만큼 TV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 곧바르게 잡념을 가지지 않고 흡수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더군요. 비유하자면 기름종이 같은 것이죠. 손때가 묻지 않은 아이 한 명 정도는 채용해서 TV와 함께 시작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하고요. 이런 기준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그야말로 무색투명! 그런 점이 좋았던 겁니다."

토토가 '엥? 무색투명하다니 뭔 소리야?'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언제나처럼 마술사처럼 오오오카 선생님이 토토 눈 앞에서 사라지셨다.

역시 성적이 나빴구나. 재능이 있다든가, 얼굴이 괜찮다든가 같은 걸로 채용될 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좀더 극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무색투명하다니.

토토는 입을 헤벌린 채로 오오오카 선생님의 행방을 찾아다녔다.

 

토토 님, 어디로 가시나요?

 

제2차 양성기간에도 가장 앞자리가 토토의 지정석이었다.

선생님들의 진용이 더욱 두터워지면서 배우이자 연출가이신 아오야마 스기사쿠 선생님, 예술론을 담당한 이케다야 사부로우 선생님, 일본무용가이신 니시자키 미도리 선생님이 더해졌다.

아오야마 선생님은 출연하신 영화를 보기도 했고 하이유우자 극단 창설자로서도 유명했다. 그 아오야마 선생님께서 "좌장님"이라 불린 적이 있었다. 토토에게 어울린다고 하셨지만 토토로선 스와노타이라에서 만난 좌장님이 생각나 두근거렸다. 토토에게 좌장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어울리는 걸까?

아오야마 선생님은 수업 중에 메트로놈을 쓰곤 하셨다. 대사 간의 간격을 잡기 위해서였는데 메트로놈을 보고 있으려니 토토는 조건반사처럼 아빠의 바이올린 레슨을 떠올렸다. 음악에 쓰이는 건 알겠지만 대사는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좀더 감정에 따라 지도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탭댄스 담당인 오기노 선생님으로부터 일 주일에 세 번 NHK 수업을 마친 후에 개인 레슨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의 스텝 리듬을 "치리탄타치리타, 치리타치리치타"라고 입으로 따라하면서 배운 것이 토토가 탭댄스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된 비결이었다.

"컬러 TV 실험방송용 모델"이 된 적도 있었다. 들떠서 세타가야 키누토에 있는 NHK 연구소에 가보니 얼굴의 오른쪽 반은 보라색, 왼쪽 반은 흰색으로 칠해졌다.

"그대로 계속 카메라 앞에 앉아주세요."라고 말하기에 "최소한 분홍색으로 해주실 순 없을까요?"라고 부탁했지만 기술 담당 분이 "오늘은 보라색 실험날이어서요."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컬러 TV 모델이라기에 룰루랄라 왔던 토토는 얼룩말이 되어 하루 종일 카메라 앞에 앉아있어야 했다.

 

3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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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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