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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떨어져 있었던 야지디 교도 어머니 아홉 명과 아이 열두 명이
이라크 국내에 있는 "안전한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3월 11일 Jane Arraf/©2021 The New York Times。
어머니의 고향으론 돌아가지 못한 채, 제3국에서 받아주길 기다리고 있다.
시리아의 소박한 국경검문소에 이라크에서 온 젊은 어머니 아홉 명이 달려왔다. 그리고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이들 모자 대부분이 이 년 넘게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용소의 고아원에서 받은 새 자켓을 입고 있었던 어린 아이들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지만 어머니가 눈물도 닦지 않고 아이를 안으며 키스를 하자 모두들 금방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기억하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 대신 맡아왔던 고아원 직원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충격도 컸어요. 저도, 아이도요."라고 말하며 어머니 중 한 사람이 당혹해 하고 있었다. 딸과 만날 날을 꿈꿔왔지만 "좀처럼 따라주질 않네요." 딸은 두 살 반 정도였다.
2021년 3월, 이라크 북부의 Faish Habur 국경검문소 지점에서 극비리에 재회사업이 결행되었다. 그 현장을 뉴욕타임즈(이하 본지) 기자들이 지켜볼 수 있었다. 생이별을 했던 이라크 야지디교(일부 쿠르드인의 민족종교) 신도인 어머니와 아이들이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알려진 한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시리아에 있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이라크 측 국경검문소에서 대기하는 야지디교 어머니들.
3월 4일 Ivor Prickett/©2021 The New York Times
어머니들은 과격파 조직 이슬람국가(이하 IS)에 사로잡혀 성노예가 되어버렸고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떠올리기도 싫은 공포의 오 년간을 살아남은 여성들은 지금도 곤경에 처해 있다. 이 과격파 조직이 2014년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수많은 참극이 발생했다. 그런 와중에도 이 여성들의 비운은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이 끝은 어디일지조차 보이지 않고 앞으로의 인생조차 어찌 살아가야 할지.
이라크 북부의 소규모 야지디교 사회에선 지금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 어머니들의 아이들은 수천 명의 야지디 교도를 학살하고 육천 명 이상을 납치한 악몽스러운 IS를 상기시키게 하는 접점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이 아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장로들은 말한다. 그 중엔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려오기라도 한다면 죽여버릴지도 모르겠다 말하는 이조차 있다.
어머니들이 해방된 것은 이 년 전이었다. 시리아에 있던 IS의 최후 거점이 함락되면서 그야말로 몸이 찢기는 듯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라크에 있는 고향에 돌아가려면 젖먹이와 유아들을 남기고 갈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 "다시 만날 수 있다"며 설득당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앞서 시리아 국경검문소에서 아이들과 만난 어머니들은 가족들과 헤어지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어버이를, 형제자매를, 고향을 버리고 온 것이다.
이라크와 스웨덴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 사업 실현에 몸바쳐 온 의사 네마무 가브리 씨는 "이 분들이 얼마나 무거운 걸음을 걸어왔을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짊어지게 될 위험이 얼마나 큰지도,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는지도요."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여기까지 오지 못하거나 버리기로 결정한 아이가 삼십 명 정도 시리아 북동부 고아원에 아직 남겨져 있다. 이번에 찾아온 아홉 어머니는 모두 가족에게 결별의사를 밝히지조차 못했다. 밝혔을 경우 재회사업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홉 명 중 다수가 IS에 끌려갔을 당시엔 아직 미성년이었다는 가혹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사흘 동안 울기만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어머니도 있다. 다섯 살 난 딸을 찾기 위해 늙은 어머니를 홀로 남기고 왔다.
"이것 때문에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하지만 제 딸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것처럼 어머니도 똑같이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이젠 정말 어찌 해야 좋을까요?"라고 말하며 다시 통곡을 시작했다.
아홉 어머니와 열두 아이들은 현재 이라크에 있는 안전한 장소에서 보호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받아줄 수 있는 제3국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희망에 기대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시리아 고아원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어머니 스무 명 정도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본지에선 재회한 모자의 안전을 확보되기 전까지 보도를 자제했습니다. 또한 신변을 특정하지 않도록 사업자 측과 합의했습니다.)
야지디 교도 어머니 중 한 명이 아랍어로 "나의 어머니"라고 써진 펜던트를 어린 딸을 위해 일 년도 전에 구해왔다.
3월 4일 이라크 시리아 국경지대 Jane Arraf/ ©2021 The New York Times。
이 딸과 곧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재회사업을 몰래 계획한 중심인물은 전 미국 외교관 피터 W 갤브레이스 씨다. 당초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를 움직여 관계된 각 당파를 설득해 필요한 지원을 얻어냈다. 애초 양국의 쿠르드인 세력에 두터운 교류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미국 백악관 당국자도 움직여 주었을 정도지만 이런 형태로 실현되기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지연까지 겹쳤다.
아이들이 아직 남아있는 시리아 고아원은 미국이 지원하는 쿠르드인 세력이 중심이 된 현지 당국의 지배지역(준자치구)에 위치하고 있다. 국경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보는 형태로 이번 기사에 나온 야지디 교도가 살고 있는 이라크 신자르 지구가 위치하고 있다. 이 여성들에게 악몽이 찾아온 건 2014년이었다. IS가 이라크 북부에 진격해 와 상당한 영역을 지배함과 동시에 칼리프제 국가(이슬람 공동체 지도자에 의한 지배체제)가 수립된 것을 선언했다.(2014년 6월) 2014년 8월에는 이교도로 단정짓고 있는 야지디 교도가 살고 있는 신자르를 손에 넣었다. 남성과 거의 성장한 남자아이들이 소집되어 몰살당해 이 수가 최대 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UN과 미국 의회는 민족학살이라며 비난했다. 게다가 약 육천 명에 이르는 여성과 아이들 다수가 IS 병사에게 팔려가 일회용품 취급을 받으며 계속해서 강간을 당했다. 매매 대상이 되었으며 부르는 게 값인 수준이었다. 2019년(3월)에 IS는 시리아 동부에 있던 최후거점 바구즈를 잃었다. 야지디 교도 여성 중 태반이 해방되어 아이들과 함께 사회복귀시설에 수용되었다. 야지디 교도 장로들은 귀향을 허락했지만 아이들은 버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이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쿠르드인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에 가게 되었으며 아이들과 함께 있기 위해 자신의 신변을 감춘 사례까지 포함해 야지디 교도라는 것이 특정되지 않은 여성들은 시리아 동부에 있는 IS 병사 가족을 수용해 살벌해진 알홀 난민 캠프로 이주했다. 이 캠프에서의 생활조건은(초과밀 상태에 놓여) 매우 가혹한 상황이지만 앞서 서술한 두 살 반짜리 딸과 재회한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버릴 수 없다며 아랍인으로 가장해 들어갔다.
IS가 미군의 공습을 받아 바구즈에서 최후를 맞이했을 때 이 어머니는 폭탄 파편에 맞아 부상당하면서도 젖먹이 딸이 죽지 않도록 손을 썼다. 굶어죽지 않도록 밀가루를 물에 타서 먹이고 자신의 옷을 찢어 아기옷을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지켜낸 딸을 절대 잃을 수 없다 각오했다. 하지만 육 개월 후 심문 끝에 야지디 교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회복귀시설로 돌아가야 했지만 딸과 헤어질 수 없다며 버텼다. 그러자 가족이 돌아오라고 애원했다.
"일단 돌아오렴,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전화로 설득해 왔어요."
석 달 만에 결국 체념하고 신자르에 돌아왔지만 같은 상황에 처한 여성들과 함께 가족과 야지디 교도 사회의 장벽에 맞서게 되었다. 모두들 자신의 아이들에게 전화조차 걸지 못했다. 고아원에서 보낸 전자우편에 들어있는 사진과 동영상이 유일한 버팀목이었지만 이마저도 하지 말도록 장로들이 요청하면서 2020년 즈음부터 끊겼다. 이 때문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신변상 위험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이젠 살 의욕도 없어."라며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의 엄마로서 어떻게든 돌봐야죠." 두 살 반짜리 딸의 어머니는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와 친족들은 시리아에서 모두 죽었다. "이 아이에겐 저 밖에 없어요. 친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뭐예요."
하지만 야지디 교도 장로와 종교지도자들에겐 이게 문제가 되었다. IS 테러리스트들의 아이들을 신자르에 데려온다면 "야지디교 사회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야지디교 최고위 지도자 자리인 바바 셰이크에 있는 알리 에리야스 씨가 본지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저희에게 있어서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는 문제입니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는 살아남은 어머니들의 어버이를 죽였습니다.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겁니까?"
이슬람 국가의 테러리스트에게서 난 아이들을 야지디 교도 어머니들이 고향에 데리고 돌아오면
"우리 사회가 파괴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야지디교 최고위 지도자 바바 셰이크 알리 에리야스
3월 10일, 이라크 북부 Jane Arraf/©2021 The New York Times
법적인 문제도 있다. 이라크 법률상 아버지가 이슬람 교도라면 그 아이는 이슬람 교도가 된다. 그러므로(어머니가 야지디 교도라 해도 이 아이들은 이슬람 교도가 되어) 야지디 교도라고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야지디교는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이라크 법률에선 이슬람교에서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만) 게다가 바바 셰이크 에리야스 씨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시선이 한 줌도 안 되는 여성들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삼천 명 정도가 행방불명 상태이며 십사만 명 이상이 난민 캠프에서 가혹한 생활을 강제당하고 있다.
"야지디 교도 전체가 고아나 마찬가지입니다만 누가 봐주기나 합니까?"
확실히 신자르와 이 주변에서 IS가 소탕된 것은 육 년이나 지났지만 야지디 교도의 가장 큰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이 지구에는 아직도 수많은 상흔이 남아있다. 발굴되지도 못한 학살 희생자 집단매장지가 곳곳에 있고 파괴된 집이 셀 수 없이 보인다. 그러니 에리야스 씨로선 이 아이들은 제3국의 지원단체가 봐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가겠다면 말릴 사람도 없다며 내뱉듯이 이야기했다.
야지디 교도의 세속적 지도자인 수장 하젬 타신 베크 씨는 혹시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귀향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만 돌아온다면 모르겠지만 아이까지 오는 건 무리입니다."라며 퉁명스레 말했다. 살해당할 수 있다는 뜻인가 되물어 보니 "가능한 일 중 하나로 그것도 있을 수 있겠죠."라고 답했다.
이번에 만난 어머니 아홉 명 중 한 명은 딸과 재회한 것을 가족에게 전화로 전해서 받아들여 줄 수 있는가를 물어봤으나 형제 중 한 명이 거부하면서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젠 안전한 곳을 정부가 찾아주길 비는 수 밖에 없어요."
나디아 무라드 씨는 아이와 함께 살지 어떨지를 어머니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라드 씨 자신도 IS의 성노예가 된 상황에서 살아남아 (탈출 후에 분쟁 하 성폭력 근절에 몸바쳐) 201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여성들은 포로가 될 것을 선택한 것도 아니예요."라고 무라드 씨가 본지에 말했다. "그 후에 일어난 일도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들 뿐이었어요. 지금이야말로 손을 내밀어 줘서 자신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아홉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재회하러 출발하기 전에 갤브레이스 씨는 "제3국의 수용"을 낙관하지 않도록 주의를 줬다. 그리고 며칠 후 넓은 "안전한 집"에서는 아이들의 즐거워 하는 소란소리가 울려퍼졌다. 전원 여섯 살 이하.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시선엔 불안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까하는 두려움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몇몇 여성들은 제3국에 이주한다면 함께 가는 것을 바라고 있다. 많은 모자 간의 인연이 확실히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5살짜리 딸의 어머니는 아직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딸은 고아원 직원들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울부짖으며 거부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결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두 살 반짜리 딸의 어머니가 들뜬 목소리로 "엄마라고 말해주었어요."라고 말했다. "한번 더 말해보렴"이라며 분홍색 옷을 입은 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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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궤도기지 <페비 콜롬보 23>은 태양의 중력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수성 회전궤도를 미묘한 균형 하에 돌고 있다. 수성은 태양에서 겨우 5791만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아 열을 직접 받게 된다면 혈액까지 끓어오를 것이고, 반대로 수성의 그림자 부분에 들어가면 마이너스 100도보다 낮은 극한이 기다리고 있어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게다가 태양에서 날아오는 강력한 전자파는 계속해서 시스템의 오작동을 불러일으킨다. 사소한 에러로도 죽음을 부를 수 있는 이 수성에서 태양풍은 그야말로 죽음을 부르는 바람이다.
지지직하는 소리가 나면서 격납고의 조명이 검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태양 플레어 발생 경보에 기지 전체가 긴급사태 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깜깜해진 기지 안으로 슬레타가 들어왔다. 아직 여섯 살인 슬레타에겐 검붉은 조명이 무서운 거겠지. 이럴 때마다 슬레타는 내 안으로 들어온다.
"에어리얼, 들어가도 되지?"
에어리얼, 내 이름. 외부엔 비밀로 하고 있지만 건담 타입 모빌슈트이다.
슬레타가 나한테 온다는 것은 어머니가 일 때문에 바쁘다는 이야기다. 이 수성에는 슬레타 외엔 아이가 없다. 때문에 내가 슬레타에겐 유일한 친구이다.
"에어리얼, 게임 실행해줘."
슬레타가 내 콘솔을 조작하면서 게임 화면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어떤 게임을 하려는 걸까?
"총 쏘는 거! 오늘이야말로 엄마를 이길 거야."
슬레타의 어머니는 나를 개발한 사람이자 건담 테스트 파일럿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어머니도 슬레타도 이런 게임을 잘한다. 슬레타가 이런 게임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 것은 네 살 즈음이었을까. 그로부터 이 년이 지나 슬레타의 실력은 어머니를 제외하면 수성에서 최강 수준이다. 점수가 마구마구 올라간다. 또다시 실력이 늘었다.
"에어리얼, 이거 봐!"
최고득점이다. 슬레타가 기뻐하며 시트를 흔든다.
슬레타, 나의 조그마한 파일럿.
***
어느 날, 아홉 살이 된 슬레타가 울면서 나한테 찾아왔다. 수성 노인이 괴롭혔다고 한다. 하지만 슬레타는 이런 일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걱정할 테니까."
어머니는 딸과 단 둘이서 이 수성으로 도망쳐 왔다. 숨겨주기는 했지만 모두가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아닌 것이다. 귀찮은 존재를 왜 받아들이냐며 추방하자 주장한 노인들도 적잖게 있다. 하지만 슬레타와 어머니에겐 이 곳 수성 밖에 없다. 이 곳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있잖아, 에어리얼."
왜 그래?
"지구는 어떤 곳이야?"
슬레타는 철이 들었을 때부터 수성 밖에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라이브러리를 통해만 봐온 지구권에서의 삶에 흥미진진하다. 학교나 마을, 친구와 아이들... 지구권에선 당연한 존재겠지만 여기에선 아니다. 있는 것은 태양풍에 벌벌 떨며 자원채굴을 하는 일상사 뿐. 그런 생활을 계속하니 수성 노인들도 고약해진 것이겠지.
라이브러리로 볼래? 슬레타에게 메뉴를 표시해주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골랐다. 애니메이션도 영화도 소설도 대부분 지구권을 무대로 한다. 그런 걸 보는 동안엔 슬레타가 수성 일을 생각지 않겠지.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다 본 뒤 슬레타는 작게 중얼거렸다.
"도망치면 하나, 나아가면 둘."
이것은 슬레타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이다. 슬레타가 다섯 살이었을 무렵, 주사를 싫어하는 슬레타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잘 들으렴, 슬레타. 주사에게서 도망치면 주사를 안 맞겠지?"
"응."
"아프지 않아를 얻을 수 있어."
"응."
"그럼, 주사를 맞으면 어떻게 될까?"
"병에 안 걸려."
"그렇지. 또 다른 건?"
"다른 거?"
"그래. 주사에게서 도망치지 않으면 그것 외에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있어. 예를 들어, 엄마가 기뻐할 거야."
"우우웅..."
"수성인들도 슬레타가 장하다고 인정해 줄 거야."
"그런 거야?"
"슬레타의 레벨이 올라 주사가 아프지 않아질 거야"
"그렇구나!"
"그래. 그러니깐 어른들은 주사를 무서워 하지 않는단다."
"그런 거였구나~"
"알았지? 도망치지 않으면, 도망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단다."
"그래서, 나아가면 둘인 거야?"
"그래, 둘보다도 많이"
이후, 그 말은 슬레타의 등을 떠밀어주는 주문이 되었다. 이 말은 틀림 없이 어머니에게 있어도 같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어린 슬레타를 안고 여자 혼자서 이 수성에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어머니 자신의 주문.
"도망치면 하나, 나아가면 둘"
한 번 더, 슬레타가 작게 되뇌었다. 엉클어진 실을 풀 듯이 정성스럽게. 난 이 주문이 들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슬레타의 온몸이 용기로 물들어, 공포라는 저주를 깰 수 있을 때를.
괜찮아, 슬레타는 내 안에서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어머니의 말은 강하니깐.
***
"에어리얼, 긴급발진 준비. 수성 지표면 챠오몬프 채굴기지 부근에서 사고 발생!"
발진기지에 긴박한 방송이 울려퍼졌다. 자원채굴 중에 모빌 크래프트가 행방불명된 것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열한 살이 된 슬레타가 내 콕핏에 뛰쳐들어왔다.
"태양광 활발, 고에너지 프로톤 현상 관측. 하지만 지표강하엔 문제 없어. 서둘러 줘!"
수성은 인류가 생활하기엔 아직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러니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들이 차출된다. 우리는 수성 최강 콤비니깐.
지금까지도 몇 번이고 노인들의 목숨을 구해왔다.
덕분에 어머니와 슬레타에게 감사하는 사람들도 늘면서, 전처럼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노인도 적어졌다.
"강하궤도 상에 오브젝트 없음. 발진을 허가한다."
"양호. 에어리얼, 발진 후에 바로 지표강하 기동으로 이행."
우리가 게이트에서 우주로 뛰어내리자마자 작열하는 태양빛이 기체를 덮쳤다. 슬레타는 곧바로 크레이터의 그림자로 돌진했다. 이걸로 태양광을 직접 맞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대로 크레이터의 그림자를 따라 사고현장을 향해 서둘렀다.
"시그널을 로스트한 뒤로 얼마나 지났어요?"
"97분이야. 시그널 수신을 할 수 없으니 현재위치도 알 수 없어. 서둘러 주렴, 슬레타."
작전관제관 멜리사 벨더가 비는 듯이 말했다. 로스트된 사람이 멜리사의 남편인 에르고 벨더인 것이다. 에르고는 아직도 슬레타에게 심술맞게 구는 노인들 중에도 앞장을 서고 있다. 애초 숨겨주는 것부터 반대한 데다가, 며칠 전 어머니가 출세를 하게 되면서 에르고가 어머니의 부하가 되어버렸다.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슬레타에게 심술맞게 굴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철 좀 들라지.
하지만 슬레타는 곧장 답했다.
"괜찮아요, 멜리사 씨. 맡겨만 주세요."
슬레타는 착한 아이다.
우리는 태양을 피하면서 현지로 향했다. 산맥, 계곡, 저지대 등 수성의 어떤 지형을 이용하는 것이 최단거리인지, 어떤 루트가 기체 부담을 가장 덜 수 있을지, 슬레타는 속속들이 알고 있다.
신호가 잡혀 내 모니터에 데이터가 표시되었다.
"찾았어요. 지금 회수할게요."
"슬레타 부탁해."
멜리사의 애원을 들으며 지면의 균열된 부분에서 날아오른 우리를 태양열과 고에너지 입자가 덮쳤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나라도 위험하다. 슬레타는 침착하게 바라보면서 곧바로 모빌 크래프트를 발견했다. 굴착작업 중에 붕괴사고가 발생한 듯하다.
"기체 쪽은 틀린 것 같네."
모빌 크래프트는 붕괴한 퇴적물에 끼어있었다. 콕핏을 억지로 열어서 파일럿만 구해내는 수 밖에. 슬레타가 빔 사벨을 뽑았다.
"에어리얼, 출력은 내가 조정할게."
슬레타가 출력을 낮추었다. 잘못하면 파일럿도 절단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빔 사벨을 살짝 기체에 갖다대어 조심스럽게 콕핏 부분을 베어내었다. 마치 외과 수술과도 같은 빔 사벨 조작법이다. 수성기지 관제센터에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어설프게 지시하는 것보단 슬레타에게 맡기는 것이 정답이란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에르고 씨, 들려요? 구하러 왔어요!"
"슬레타! 늦었잖아! 빨리 좀 하라고!"
도움을 받는 입장인 에르고가 거만하게 구는데도 슬레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에르고를 모빌 크래프트에서 꺼냈다.
"에르고 씨, 공기는 남아있어요?"
"예비분이 사고로 망가졌어. 앞으로 7분 밖에 없잖아? 아이고 사람 죽네~"
"괜찮아요. 4분이면 되니깐."
"뻥치고 있네. 여기에서 기지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슬레타가 4분이라 했으면 4분이다.
"눈 감고 있으세요."
난 태양빛을 가리기 위해 에르고를 품 안에 감싸고 크게 도약했다. 에르고의 우주복엔 이상이 없다. 이 정도면 4분 쯤은 버티겠지. 꼬매기라도 하듯 지면의 균열을 달려나갔다. 슬레타는 별일 없다는 듯 나아가지만 에르고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공포를 느낄 만한 속도다. 그래도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건 공기가 아직 남아있다는 이야기므로 생존확인을 따로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슬레타가 빔 라이플로 낭떠러지를 쏘자 벽이 갈라지면서 또다른 균열이 나타났다. 지름길인 것이다. 챠오몬프 기지의 게이트가 보이자 우리들을 맞이하기 위해 게이트가 천천히 열려 거기에 뛰어들었다. 삼중 기밀벽을 통과해 거주 지역까지 딱 4분. 슬레타가 말한대로다.
거주지역 게이트 안에는 기지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슬레타는 공기가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에르고를 내려놓았다.
"웃기지마! 노인을 이렇게 함부로 다루다니, 내가 죽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한 거지!"
에르고는 헬멧을 벗자마자 고함을 질러댔다. 정정하기도 하시지. 하지만 멜리사가 달려와 에르고를 껴안았다.
"잘 돌아왔어요 에르고."
아내에게 안긴 에르고는 얌전해졌다.
"다녀왔수."
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안심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오렴 슬레타."
모니터에 어머니가 비춰졌다.
"엄마! 돌아왔어?"
어머니는 출세한 뒤 더더욱 바빠졌다. 지구권에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랜만에 돌아온 참에 마침 딸의 활약상을 볼 수 있었던 듯하다.
"잘했구나, 슬레타.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단다."
"엄마가 만들어준 에어리얼 덕분이야."
"에어리얼도 슬레타도 둘 다 대단했어."
어머니가 웃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기대에 부응했구나.
"엄마, 이번엔 얼마나 있을 거야?"
"네 생일까지는 있을 거야. 그러니 올해는 작년과 합쳐서 이 년분 파티를 열자꾸나."
"만세!"
슬레타가 뛰어오르듯 말했다. 하지만 슬레타가 어머니와 함께 생일을 축하한 것은 이 열한 살 생일이 마지막이었다.
***
슬레타가 열다섯 살이 되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바빠서 지구권과 수성을 왔다갔다 하느라 딸의 생일에도 함께 있지를 못했다.
"있잖아 에어리얼?"
외톨이 슬레타가 내 안에 틀어박히는 날이 더욱 늘어났다.
"학교는 어떤 곳이야?"
글쎄, 나도 가본 적이 없으니...
"이 만화처럼 생겼으려나?"
그건 픽션이지. 그리고 그거 너무 옛날 만화야.
"가보고 싶다, 학교..."
열다섯이 된 슬레타에게 흥미가 생길 만한 건 학교 뿐이다. 같은 나이대 아이들이 한가득 모여 즐겁고 자극적인 매일을 보내는 만화나 영화에 그려진 학교는 눈부신 곳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슬레타, 우리는 지구권에 돌아갈 수 없어. 넌 모르겠지만 저 쪽에선 어머니를 마녀라고 부르며 전세계가 증오하고 있어. 나도, 건담이란 게 들키면 곧바로 부숴질 거야. 그러니 네 꿈이 이뤄질 순 없어.
하지만 괜찮아.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해줄게. 학교 같은 게 없어도, 친구 같은 게 없어도, 내가 함께 있어줄게.
"있잖아 에어리얼. 내가 학교에 가게 된다면..."
살며시 비밀을 터놓듯이 슬레타가 말했다.
"함께 가자."
***
오랜만에 어머니가 수성으로 돌아와 슬레타는 무척 기뻐했다. 어머니가 없는 동안 배운 것이나 열심히 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이제 열여섯이 되었는데도 어린 아이처럼 일찍 잠들어버린 그날 밤, 어머니가 홀로 격납고에 찾아왔다.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어서오세요 어머니. 우리 둘만 있는 건 오랜만이네요. 슬레타가 기뻐했어요.
"다녀왔다 에어리얼. 기뻐하렴. 문을 열어냈어."
문? 무슨 말씀인가요 어머니?
"아스티카시아 고등전문학교에서 모빌슈트 결투대회가 열릴 거야. 여기에서 이긴 사람이 데링의 외동딸과 결혼할 수 있다는구나."
데링이라는 사람은 베네리트 그룹의 총재다. 이 수성기지도 베네리트 그룹 소유이고. 그러니 수성인들이 우리를 받아들이는 걸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마녀사냥에 세워 낙인을 찍은 사람이야말로 데링 총재였으니깐.
"에어리얼, 너희는 학교에 가렴."
너, 희?
나와... 설마 슬레타!?
"내가 만든 최고걸작. 네가 슬레타의 검이 되는 거야."
안 돼.
안 됩니다 어머니.
전 괜찮아요. 하지만 슬레타는 안 돼요. 그렇게 착한 아이를 어떻게...
복수는 우리가 하는 거예요. 슬레타를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어머니에게 내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두고 보라고 모두들. 우리의 딸이 원한을 갚아줄 테다!"
***
다음날.
아무 것도 모르는 슬레타가 기뻐하며 보고해왔다.
"있잖아 에어리얼! 나, 학교에 가게 되었어!"
알고 있어. 어젯밤 어머니가 말하셨거든.
"엄마가 말이지, 입학 절차를 다 밟아놓으셨대. 수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공부를 하라고 말야. 나 열심히 할 거야. 누구도 죽지 않는 수성을 만들기 위해서 말야. 마을도 가게도 학교도 잔뜩 유치하고 말이지..."
아아, 넌 아무 것도 모르는 구나. 모든 걸 알려주고 싶어. 어머니가 널 복수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거역할 수 없어. 그 분은 날 만드신 어머니니깐.
"하지만 나 잘할 수 있으려나? 인간 친구를 만든 적 자체가 없는 데다가 공부도 자신이 없네..."
라며 슬레타가 불안해 했다.
"...무서워. 난 수성 밖에 모르는 걸. 엄마도 같이 가줄 수 없대."
그래 슬레타. 혼자서 지금 당장 학교에 간다니 무리야. 공부라면 수성에서 해도 되고 네가 없으면 수성인들도 모두 힘들어 할 걸? 어머니의 도구가 될 필요는 없어. 저주를 이어받지 않아도 돼.
"거절하는 게 좋으려나? 가면 실패할 수는 없잖아? 입학금도 공짜가 아닌 걸. 엄마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될 거고. 어떡하지..."
괜찮아, 슬레타. 거절해 버려. 도망치자.
"어떻게 할까? 생각이 정리되질 않네. 그래도 가는 편이 좋으려나..."
도망쳐 슬레타.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이런 내 목소리가 들릴 리 없는데 슬레타는 내 말에 답이라도 하는 듯이 말했다.
"도망치면 하나."
!
"나아가면 둘. 맞지, 에어리얼?"
놀랍다. 슬레타가 도망치치 않겠다고 말했다. 어릴 적엔 내 안에 도망쳐 오기만 했던 울보 슬레타가 지금은 앞을 향하고 있다. 어머니의 말을 자신의 힘으로 바꿔서.
... 그렇구나 슬레타. 너는 매우 성장했구나. 이젠 내 안에 숨어있던 작은 여자아이가 아니야. 여태껏 널 돌보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슬레타가 날 가르치고 있었던 거야.
"있잖아 에어리얼, 나아가면 틀림없이 두 개 뿐 아니라 엄청난 걸 얻을 수 있을 거야. 공부는 물론이고 친구라든가, 선배라든가, 데이트를 한다든가..."
그거 좋네 슬레타. 잃을 수 있는 걸 세는 것보다 얻고 싶은 걸 세는 편이 훨씬 나아.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게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서라고 해도, 용기를 얻은 것이 어머니의 말에 의한 것이라 해도.
슬레타, 넌 그 이상을 쥐어낼 수 있으면 되는 거야.
"가자 에어리얼. 함께라면 분명 괜찮을 거야!"
그건 내가 슬레타에서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물론이야, 함께 있어줄게.
우리는 가족이니깐 말야.
나는 동의하는 뜻을 담아 모니터를 두 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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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참가자
요코야마 마사요시
용과 같이 스튜디오 대표/ 제작 총지휘
사카모토 히로유키
<용과 같이> 시리즈 수석 프로듀서
7 외전과 시리즈 최신작의 단면을 말하다!
--<용과 같이 7 외전 이름을 없앤 남자>는 외전이어서 분량이 적다고 발표되었는데 패키지판은 발매되는 건가요? 스토리 분량이 어느 정도 되는 건가요?
요코야마 발매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본에선 패키지판도 나올 예정입니다. 그렇게 스케일이 큰 게임도 아니고 아직 스토리 길이는 조정 중이긴 하지만 순수한 넘버링 타이틀의 반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로스트 저지먼트: 심판받지 않은 기억>의 다운로드 컨텐츠 카이토 마사하루의 사건부보다는 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 시간은 열 시간에서 스무 시간 정도 될 거라 상정하고 있습니다. <용과 같이>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충분한 분량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만(웃음) 카이토 마사하루의 사건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제대로 된 거리가 등장하고 서브 스토리나 새로운 미니게임도 만들고 있다는 거겠죠.
--오옷! 그거 기대되는대요.
요코야마 다만 전체 플레이 시간에 대해선 앞서 말씀드린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스토리는 외전에서 <용과 같이 8>으로 배경이 이어지는 식으로 진행되는 건가요?
요코야마 엄밀히 말해서 스토리 중 배경이 이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용과 같이 7 외전 이름을 없앤 남자>에서 주축이 되는 건 어째서 <용과 같이 6> 마지막에서 어떤 경위를 거쳐서 카스가 이치반과 만나게 되었는가, 그리고 카스가와 헤어진 후 키류우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발표회에선 다운로드 컨텐츠 정도인 걸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놀거리가 풍부하게 마련된 것 같네요.
요코야마 <용과 같이> 넘버링 타이틀에 비하면 분량이 적지만 나름대로 메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사이드 스토리가 그런대로 들어가 있으면서 미니게임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전까진 키류우의 인기가 높았지만 <용과 같이 7>에서 카스가도 단숨에 이에 맞설 정도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용과 같이 8>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더블 캐스트로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요코야마 카스가는 정말 인기가 높아졌어요. 인기 순위표를 전복시켜 버렸네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런 면에서 또다시 키류우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 사실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이젠 카스가 이치반이 있으면 충분하잖아!"란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요. 물론 실제로 이런 의견이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키류우가 또다시 돌아왔다!"라며 크게 기뻐하시기보다는 "역시 재등장하는 건가"라며 침착하게 받아들이시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시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여러 의견이 나올 것을 각오하고 발표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온화하게 받아들여 주셔서 기뻤습니다.
--<용과 같이 유신! 극>이 나오고 액션물 <용과 같이 7 외전 이름을 없앤 남자>가 나오고 RPG <용과 같이 8>이 나오고 이렇게 세 작품이 한꺼번에 발표되었는데 정보에 혼란이 오거나 하지는 않았네요.
요코야마 그랬었죠. 애초 "RPG 노선을 계속하진 말아줬으면" 하는 고집이 강한 분들도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용과 같이 8>은 특히 더블 캐스트로 진행하는 RPG라는 상상이 되는 듯 안 되는 듯...
요코야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용과 같이 8>은 카스가 이치반이 주인공이란 것입니다. 카스가에서 시작해서 카스가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카스가가 겪게 되는 사건이 에피소드로 만들어지고 거기에 키류우가 참가하는 식일 뿐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카스가 이치반입니다. 2021년 10월에도 카스가 이치반을 주인공으로 한 속편을 만들고 싶다고 했고 그 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당시 키류우의 존재를 말하지 않은 건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을 뿐입니다. 그 후 키류우를 추가시킨 게 아니라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던 사항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키류우의 머리 형태를 보고 놀랐습니다. 지금까지와의 이미지하고 너무 달랐어요.
사카모토 키류우의 머리 형태는 멋을 부리거나 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머리 형태를 어떻게 변경할지 엄청난 연구를 하게 되었었죠. 머리를 길게 만들었을 때엔 요코야마 씨처럼 되었어요.(웃음)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팬 분들에게 전할 말을 부탁드립니다.
사카모토 <용과 같이> 시리즈 세 작품을 한꺼번에 발표했습니다만 우선 2023년 2월 22일에 발매되는 <용과 같이 유신! 극>을 기대해 주십시오. 처음 접하는 분도 원작을 즐겨오신 분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요코야마 오리지널판 <용과 같이 유신!>으로부터 구 년이 지나 세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본에서만 발매되었던 작품을 전세계에서 요청을 하고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분위기가 팍팍 사는 서양권 게임을 즐기고 있겠죠. 그런데도 엔터테인먼트계에서 밥 벌어 먹고 사는 저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보수적이라 이런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 결과 매년 같은 것만 내고 말아버린단 말이죠. 구 년만에 부활시키기로 했을 때 이런 점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 프로모션 영상을 다시 보니 구식 냄새가 너무 났어요. 즉,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냄새가 나는 줄도 몰랐겠죠. 시대에 맞춰서 세계의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RGG SUMMIT 2022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만 발표한 세 작품을 기대하시면서 앞으로 용과 같이 스튜디오가 어떻게 나아갈지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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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트 그랜드 오더>는 일본 게임이다. 일단 이 전제를 깔고 가보자.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는 역사상 유명했던 인물(위인이 많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위인이라 불리는 것만이 서번트의 힘을 이루는 조건인 것은 아니다)들이 서번트로서 등장한다. 일본 게임이다 보니 이런 서번트들 중엔 일본 역사 중에 나오는 인물이 많다. 대체적으로 일본 역사 중에 인기가 높은 헤이안 시대, 전국시대, 막부 말에서 나오고 있으며 전국시대와 막부 말은 오다 노부나가와 오키타 소우지가 양축을 이뤄서 서로의 진영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구다구다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일본어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벤트 중 이런 그림이 보였다.
서버페스 퀘스트 배경 중에 나오는 화면인데 이게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어떤 공격을 할지 정한 후 서번트들이 이 공격을 실행하기 위해 물러서는 잠깐 동안만 보이게 되어 있다. 여기에 구다구다가 들어갔는데 왼쪽 그림에 오다 노부나가와 오다 노부카츠, 차차, 모리 나가요시가 있고 아직 한국어판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수수께끼의 란마루 X가 보인다. 그런데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있는 노란 머리는 누구인지 감이 안 올 사람이 많을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다.
구다구다 시리즈를 그려온 케이켄치 작가가 4월부터 연재한 작품으로(라곤 해도 연재 간격은 길고 페이지 수는 적어서 얼마 없다) 제목부터 구다구다 태합전 ZIPANG이고 설명에도(https://web-ace.jp/tmca/contents/2000045/) 토요토미 히데요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케이켄치 작가가 만든 캐릭터들은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고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전국시대나 막부 말과 관련된 이벤트가 매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케이켄치 작가가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그리고 있다라...
<페이트 그랜드 오더> 한국어판에서 가장 유명한 건 트럭시위겠지만(그나마 개선 엔딩) 못지 않게 문제가 되는 게 일본 역사 관련 시나리오다. 첫 구다구다 시리즈였던 구다구다 혼노지 당시만 해도 오다 노부나가가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왜색 운운이 일어났으며 한국어판 자체에서도 구다구다 혼노지가 나와야 할 시점에 다른 이벤트가 나오면서 유저들 사이에서도 정말로 구다구다 시리즈를 안 하는 것인가 하는 동요가 일었다고 한다.(난 제대로 하지도 못했었기 때문에 그런 걸 신경쓸 틈도 없었다.) 결국 구다구다 혼노지는 좀더 뒤에 나왔기 때문에 한국어판이 일본어판보다 이 년 석 달 정도 늦은 시점에 시작했고 이 석 달을 메꾸어 제대로 된 진행에 맞추기 위해 서두른 중에 발생한 헤프닝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런 논란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일본 문화에 별 관심은 없는데 국가주의 선동이 일어나면 들끓는 층의 무서움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향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오다 노부나가를 내세운 일본어판의 홍보 배너와 달리
한국어판 홍보 배너는 오키타 소우지를 내세웠다.
그리고 이보다 더 컸던 게 구다구다 제도성배기담.
정확한 제목은 구다구다 제도성배기담 극동마신전선 1945다. 1945가 나오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건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해. 트위터에선 바로 전쟁이 일어났다. 이걸 딜라이트 워크스 쪽에 사과를 요구하는 등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결국 이 해를 사용한 건 이들이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 일이 여기저기 이 나라 저 나라 퍼지고 트위터를 제외한 다른 곳에선 팝콘을 씹었으며 그래서 나무위키에선 그 사람들이 계정을 세탁했다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여전히 검색하면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넷마블은 또다시 이에 반응해 부제와 내용중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사들을 바꾸는 등 칼질을 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저들이 반응을 하고 역정을 내면 넷마블에서 어떻게든 허리를 굽힌 태도를 나타낸다. 라센글에서도 국가간 감정 문제를 의식해 그런 걸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만들고 있지만 그런다고 통할 거면 <귀멸의 칼날>에서 카마도 탄지로우가 하고 있는 귀걸이 하나 때문에 애니가 칼질을 당하고 게임은 아예 한국어판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 한국에 사는 게임 이용자들에게 이것만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일이 발생했을까?
그런데 구다구다 시리즈를 그리는 케이켄치가 작품에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등장시켰고 이게 <페이트 그랜드 오더> 이벤트 중에 반영이 되었다. 반영이라고 해도 그림 한 장이긴 하지만 매년 열리다시피 한 구다구다 이벤트는 올해도 열릴 가능성이 있다. 연재 시작 후 3화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적어도 조금이라도 반영된다면?
카게토라 마이룸 대화에서 하시바 공(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옛성)이라고 하는데도 자막에선 그냥 사람이라고 하네. 그럼 일본어판에서는 그냥 언급되는 걸 일부러 다 바꾸어서 번역하는 건가. pic.twitter.com/MEBJhvZ4Rg
— 생각없는 김관필 (@glepdytlfjqm) June 23, 2021
<페이트 그랜드 오더> 한국어판에서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우회한 번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우회를 하려고 해도 본인 등판이 이루어지면 얄짤이 없지 않은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집어넣어야지. 그러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마녀사냥이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한국 입장에선 역사상 원수이지만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시대에서 손꼽히는 인물이다. 이토우 히로부미가 그런 것처럼. 실제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등장시킨 게임들도 상당수 있다. 한국에 소개되는 일이 없어서 그렇지.
<무쌍 오로치> 시리즈처럼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게임들 중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나오는 게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무쌍 오로치> 시리즈 같은 경우 <진 삼국무쌍>의 인기가 좋으니 이를 반영한 작품이 덩달아 나오면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덩달아 나온 거고 워낙 떼거지 게임이다 보니 비중을 크게 차지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코에이 게임 중 <삼국지> <진 삼국무쌍>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는 <노부나가의 야망> <전국무쌍> 시리즈는 한번도 한국어판이 나온 적이 없다.(<전국무쌍 4>는 플레이스테이션 한국 사이트에서 정식으로 판매되고 있긴 하다. 이 외에 내가 아는 한 없다.)
결국 나도 이렇게 생각할 정도이니 라센글에서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등판시키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긴 하다. 구다구다 시리즈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봤을 때에도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이번 이벤트에 나온 이미지 한 장에 마음이 심히 흔들린다.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대화재가 일어나는 결말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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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아도 계속해서 블로그에 누가 오는지 신경을 쓰게 된다. 그렇게 해서 쭉 지켜본 결과를 생각해 보지만 별다른 결론은 나지 않는다. 애초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 조회수를 본다고 해서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 블로그에서 별반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다면 왜 찾아온 건지. 글을 거의 일 년에 한 번 꼴로 써서 새로운 글도 없는데 무엇을 바라고 찾아오는 건지. 그런 개같은 상황을 나는 왜 일일이 지켜보고 있는 건지. 하나 같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는 대체 무엇을 바라는 걸까? 허허벌판에 앉아서 낙서를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아무도 없는 벌판 위에서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하고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고... 영문을 몰라 웃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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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트 그랜드 오더> 한국어판을 서비스하고 있는 넷마블에서 6월 28일에 내보낸 공식방송에서 일본어판의 진행에 맞춘 서비스 말고도 일정을 앞당겨서 편의성 업데이트를 앞당기겠다고 발표한 것이 있었는데 이 중 하나가 서번트 코인과 어펜드 스킬이었다.
원래대로라면 6주년에 발표될 내용이기 때문에 한참 뒤에나 올 컨텐츠였지만 넷마블은 무려 일 년이나 앞당겼다.(넷마블뿐 아니라 미국판도 맞춰서 진행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걸 편의성이라 봐야 될지 어떨지...
서번트 코인은 말 그대로 게임 내 서번트로 인해서 발생되는 코인이다. 소환될 때 얻을 수 있는 코인이 별 다섯의 경우 아흔 개, 별 넷의 경우 서른 개(한정소환 서번트 쉰 개), 별 셋의 경우 열다섯 개(한정소환 서번트 서른 개), 별 둘의 경우 여섯 개, 별 하나의 경우 두 개(한정소환 서번트 열다섯 개)가 나온다. 여기에 인연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총 백팔십 개를 얻을 수 있다. 이 서번트 코인을 어디에 쓰느냐 하면
어펜드 스킬과
레벨 100을 찍은 서번트를 120까지 올리는 데에 쓰일 수 있다.
어펜드 스킬은 엑스트라 공격 향상과 NP 획득, 특정 서번트 특공(버서커의 경우 크리티컬 방어)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을 개방하는 데에 서번트 코인 백이십 개씩을 소모하고 레벨 100 이상 성배전림은 레벨 2당 성배 하나와 서번트 코인 서른 개를 요구한다.
뭐 여기까지 봤으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알 텐데... 이건 결국 과금 유도 시스템이다. 어펜드 스킬 하나 개방하는 데에만 서번트 코인 백이십 개니깐 별 다섯 서번트의 경우에도 한 명 소환해 봤자 어펜드 스킬 하나 개방할 수 없다. 인연 레벨 올리면 백팔십 개 준다고 했으니 그걸 올리면 어펜드 스킬 하나는 개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할 수 있는데(별 다섯은 이게 가능하긴 하다) 인연 레벨은 총 15까지 있고 레벨 10까지 찍는 것만 해도 상당한 횟수의 전투를 해야 한다.(뭐 물론 이걸 하루만에 하는 괴물 분들도 있긴 하다...) 레벨 10까지 찍어서 주는 서번트 코인은 기껏해야 여든 개. 이걸 어느 세월에 다 할까? 결국 소환을 많이 해네는 방법 밖에 없다. 어펜드 스킬과 성배전림을 모두 완료하려면 360+300=660개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게 되니깐 인연 레벨 15까지 간다 치면(난 가보지도 못했지만) 받을 수 있는 180개를 빼면 480개, 별 다섯 서번트로 따져도 여섯 명이 필요하다... 무기명까지 가란 이야기네.
어펜드 스킬 필요 없다, 레벨 120까지 가서 뭐 하냐란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는 그런 걸 염두에 두고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무엇보다 현 일본어판에서 어펜드 스킬 중 NP 획득이 상당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데 스킬 레벨이 10까지 올라갔을 경우 20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서번트 자신의 스킬로 NP 30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면 50이 확보되기 때문에 NP 50과 함께 공격을 지원해주는 예장을 끼우고 바로 보구를 쓸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아라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NP 20 어펜드 스킬이 추가되면서 여기에 아라쉬의 궁시작성으로 인한 NP 30이 합쳐지면 50이 되기 때문에 다른 서번트의 NP 공급이나 컬라이더 스코프, 허수마술 같은 예장이 없어도 바로 보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별 넷 서번트의 경우 이런 어펜드 스킬을 쓰기조차 힘들다. 위와 같은 확률 때문인데... 실제로 별 다섯 서번트들이 소환되는 와중에 별 넷 서번트 쪽이 오히려 잘 소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별 다섯하고 0.4%밖에 확률이 차이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그럴 수 밖에. 이런 와중에 나왔다고 해도 획득할 수 있는 서번트 코인은 서른 개이다. 네 명을 얻어야 어펜드 스킬 하나 개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더 잘 알 수 있으려나 싶어서 뽑아봤는데 위의 대흑천이 보구 2다. 한정 소환 특전에 인연 레벨에 따른 서번트 코인까지 합쳐서 125개, 그에 비해 토타는 295개를 얻었다. 이렇게 별 넷 서번트는 위에 서술한 확률 때문에 아래 등급 서번트에게도 밀린다. 왜 이렇게 되냐고? 왜긴 왜겠나. 우리가 소환 폭망할 때마다 보는 서번트들이 대부분 별 셋 아닌가. 거기에 별 셋 서번트들은 프렌드 포인트 소환에서도 가끔씩 나온다. 별 하나 둘 서번트들은 더더욱 프렌드 포인트 소환에 잘 나오니 설령 배당되는 서번트 코인이 적다 해도 별 넷 서번트들보다 서번트 코인을 잘 받는다. 이런 상황을 없애려면? 과금을 하세요지 뭐.
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는 건 지금까지 이벤트에서 배포되어 온 서번트들이다. 얘네들은 성정석 소환을 거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서번트 코인 배포에서 제외되게 된다. 인연 레벨로 인한 서번트 코인 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는 위와 같고... 구제조치로 복각된 배포 서번트들이 있고 이 서번트들은 서번트 코인을 벌 기회를 가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서번트들이 더 많다.(알트리아 릴리, 산타 알트리아 얼터, 잔 다르크 얼터 산타 릴리, 수영복 호쿠사이, 아처 오다 노부나가, 클로에, 산타 알테라, 산타 나이팅게일, 카게토라, 우츠미 에리세, 수영복 우미인, 라이더 킨토키, 사카모토 료마, 하늘의 옷, 지크, 료우기 시키, 수영복 스카사하, 차차, 수영복 잔 다르크 얼터, 산타 케찰코아틀, BB... 그냥 복각된 서번트 명단을 넣을 걸 그랬나) 올해 크리스마스 이벤트에서 배포 서번트로 나올 산타 카르나와 일본어판에서 서번트 코인이 도입되기 전 마지막으로 배포되었던 키이치 호우겐의 경우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구제가 안 될 확률이 높다. 일본어판과의 형평성 문제도 존재하고 본래의 이벤트 시스템을 고치기도 힘들 것이다. 이러니 더더욱 과금에 힘을 쓰세요가 되지만... 이런 배포 서번트들에게 리소스를 썼던 유저들은 어떻게 하라고가 된다. 복각을 통한 구제조치에도 문제가 있는 게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서 서번트 코인을 도입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육 년이고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수많은 배포 서번트들이 존재한다. 이 배포 서번트들을 언제 다 복각할 것인가? 그 전에 2부가 끝날 걸. 이래서 배포 서번트들을 위한 범용 코인을 넣어야 한다고 많이들 주장했지만 라센글 입장에서 돈이 안 되니 무시당했지...
그리고 지금까지 필요하지만 넘긴 게 있는데 리소스 문제이다. 어펜드 스킬을 개방한다 해도 레벨을 올려야 제대로 쓸 수 있고 성배전림도 그냥 서번트 코인과 성배를 갖다바친다고 알아서 레벨 120이 되는 게 아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소재와 QP, 종화가 필요하다. 어펜드 스킬은 무난하게(?) 스킬 레벨 올릴 때 썼던 소재와 비슷하게 쓰면 된다. 전승결정도 비슷하게 쓰면 10까지 올릴 수 있다.(6주년 이후 전승결정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긴 했다) 앞서 말했듯이 NP 20은 레벨 10이 되어야 나온다. 레벨 100~120으로 가는 길은 나도 잘 모르겠다.아니 뭐 킨토키를 레벨 100 이상으로 올리려고 보니 저렇게 나오고 알고 싶지 않아졌다. 이 정도의 종화를 모으려면 별 다섯 종화를 모을 수 있는 극급이 추가된 지금으로서도 평범한 노가다로는 되지도 않는다. 동사과를 먹고 은사과를 먹고 금사과를 먹고 무지개빛 사과(?)를 먹어야만 가능하다. 네 또 과금 되겠습니다 호갱님.
잠깐 성배도 그냥 나오는 게 아닌데 그렇게 쓸 수 있나?하는 당신께 필요없는 서번트들의 코인을 녹여 성배를 만들 수 있는 성배주조를 소개합니다! 합해서 이천 개만(?) 가져오세요!(성배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긴 했다. 성배도 도매금행...)
이것도 문제가 있는 게... 당신이 필요없는 서번트라 생각하는 서번트는 정말 쓸모없는 서번트인가? 미래에도 그럴 거라 장담하나?
결국 내가 지금까지 쓴 것들은 과금을 짱짱하게 돌릴 수 있는 유저들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깊이 파고들지 않는 유저들에게도... 이 글에서 올린 일본어판은 무과금으로 진행했으며 예전 일본어판 계정을 한번 날려먹은 뒤 2020년 말에 다시 시작했던 계정이다. 이런 계정으로 서번트 코인이 도입된 지 일 년 동안을 겪으면서 회의감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넷마블이 편의랍시고 서번트 코인을 당겨온다고 하니 이게 무슨 편의냐 장삿속이지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하긴 장사지 ㅋ 더러워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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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사카 스미레가 작년 10월에 치바 마이하마 앰퍼시어터에서 행한 단독공연을 수록한 공연 블루레이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1>이 2월 9일 발매되었다.
2020년 1월에 통산 네 번째 오리지널 앨범<NEO PROPAGANDA>를 발표했던 우에사카는 그 해 봄에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0>이란 이름을 건 앨범발매 기념 순회공연을 할 예정을 세웠지만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순회공연이 전부 중지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 이름을 이어받은 마이하마 앰퍼시어터 공연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1>은 <NEO PROPAGANDA>에 수록된 곡들을 중심으로 한 환상적인 공연 세트 리스트에 그 후 발매된 신곡을 추가하여 업데이트된 형태의 공연이 되었다. 이번 대담에서는 우에사카에게 있어서 약 2년 반 만인 유관객 공연이 된 이번 공연을 되새겨보며 30대에 접어든 현재에 대한 심경을 들어보았다.
취재·글/ 우스키 나리야키 촬영/ 소우가 미메
확실하게, 다른 사람들만큼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1>은 우에사카 씨에게 있어서 약 2년 반 만의 유관객 공연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유관객 공연으로 팬과 재회할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는 말은 많은 가수들로부터 들어왔습니다만 우에사카 씨는 "동지"(우에사카 스미레 팬을 이르는 애칭)와 재회했을 때 어떠셨나요?
역시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기뻤죠.
-진행을 할 때도 "동지가 살아남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 년 동안 꿈에 그려왔던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라고 말하셨죠? 우에사카 씨와 동지의 오래된 관계성을 생각하면 의외로 직구성 발언이었단 생각이 드네요.
그건 확실하게 다른 사람들만큼 했죠.
-다른 사람들만큼요.(웃음)
확실히 만나고 싶었고 만나서 기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항상 "충성파"가 되길 강요하지 않아서 "안 와주면 삐질 거야" 같은 말을 하지 않는 데다가 "이 사람은 십팔 일을 연속으로 출근했는데도 와줬는지도 몰라"라든가 "코로나 사태 때문에 티켓 값을 내는 것조차 힘든 건지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되다 보면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저를 그냥 응원하는 정도이거나 제가 성우로서 참여한 작품이나 음악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의 목표는 달성되었다고 생각해요. 공연을 할 수 있다면 물론 기쁘지만 "공연에 와야만 의미가 있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깐요.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을 때 와줘요 이런 스탠스인 거죠.
-2020년 12월에는 생일 기념으로 무관객 인터넷 방송 이벤트(우에사카 스미레의 원거리 대습격 파라다이스 ~29살 축하 스페셜!!~)를 했었는데 아무래도 무관객으로 하면 분위기가 살지 않죠?
실시간 댓글을 읽으면 "아, 봐주는구나"라고 알 수 있지만 공연을 하려면 역시 관객이 있어야 되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다음 순회공연은 될 수 있다면 관객석을 꽉 채우고 하고 싶어요.
-<우에사카 스미레의 PROPAGANDA CITY 2021>은 모든 객석을 활용하지 못했어도 공연 시작 때 공연장이 새빨간 응원봉으로 물든 광경을 봤을 때 감개가 무량했겠어요.
네. 하지만 전 단독, 혼자라서 제가 너무 감동해 버리면 공연을 할 수 없으니깐 제 안에 있는 몇 명 중 한 명이 "지금은 일단 억눌러둬"라고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어요. 이번엔 연습도 많이 했거든요... 2020년 공연이 중단되었을 때에도 공연 직전 연습까지 진행했기 때문에 준비는 잘 되어있어서 머리 속에서 공연의 흐름을 떠올리며 "정말 다들 와줬어"라는 감개무량함을 느끼면서도 꽤 냉정하게 "제대로 하자"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시간차 없이 전해지는 공연장은 커뮤니케이션의 집대성
-우에사카 씨는 전국 방방곡곡을 빈번하게 돌아다니는 공연형 가수도 아니고 성우로서의 본업도 있으니깐 코로나 사태 때문에 공연 연기 같은 걸 겪으면 "이런 상황이니 당분간은 공연하지 말자"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런데도 공연에 대한 의욕이 계속 살아나던가요?
저는 이벤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좋아해요. 성우 일은 기본적으로 스태프와 만날 일도 없고 애니메이션 방송이나 게임 같은 경우 제가 일을 한 후 고객에게 도달하기까지 아무래도 시간차가 꽤 나게 되니 손님들 앞에서 하는 공연이나 이야기 행사 같은 건 동지가 지금 막 뭘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곡을 좋아하는지 직접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의 집대성이랄까요? 공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척 많아요. 녹음은 상당히 고독한 작업이거든요. 노래를 할 때 "이야, 잘 하시네요"라고 말해주는 경우도 그렇게 없고.
-(웃음)
공연을 할 때엔 다들 "좋아좋아!"라고 말해주시니깐 열심히 준비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어요. 시간차가 없이 직접적인 표현이 전달되는 느낌이 저에게 공연할 의욕을 불러일으켜준다고 생각해요. 성우 일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생동감이 좋아요. 실패를 겪은 시간도 포함해서 재밌는 공간이 만들어진달까요.
-한 가지 곤란한 건 그런 관객 분들의 반응이란 게 지금까지는 함성이란 구체적인 음량으로 넘쳐났었는데 지금은 그걸 할 수 없잖아요? 박수 같은 건 할 수 있어도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함성이 없어요.
그런 점이 있긴 하죠. 전엔 다들 입을 모아 와아와아 해주셨는데. 게다가 제 노래는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걸로 분위기를 띄우곤 했는데 지금은 전부 박수니깐요. 하지만 "박수라는 게 이렇게 전달되는 게 많구나"라는 발견도 할 수 있었어요. 저는 행사 관련 규제가 풀리자마자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보러 갔는데 그 때에도 박수응원이어서 소리도 못 내고 응원을 할 수 있나 싶었지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큰 목소리를 낸다고 열성적인 팬인 게 아니라 마음이 있다면 충분한 거예요. 다르게 보면 평등한 관람환경을 만들어 내서 지금까지 소극적이었던 사람들로서는 전보다 공연에 참가하기가 더 쉬워졌는지도 모르죠. 관객이 일일이 호응을 해준다는 게 의외로 어려우니깐요.
-확실히 열성적인 팬들의 한 치도 틀리지 않는 호응에 순응하기 힘드니깐 공연에 참가하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을 것 같네요.
관객 입장으로선 순수히 곡을 즐기고 싶은 경우가 저도 있으니깐요. 즐겁다고 느끼면 단순하게 박수를 쳐주는 걸로도 충분하다, 이런 평이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처음 오시거나 하시는 분들에게 무척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요?
-그렇네요. 그래도 "생산! 단결! 반억압!"이란 우에사카 씨 공연에서 매번 들었던 제창조차 동지가 소리내어 할 수가 없게 된건 역시 섭섭해지네요.
저는 우월감이 느껴졌어요. 모두들 참고 있는 와중에 혼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무척 기분 좋더라고요.(웃음)
"아슬아슬하게라도 의미를 알 수 있는 걸 해주세요."
-이번 순회공연은 2020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NEO PROPAGANDA> 발매기념 순회공연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거죠?
네. 그 후 신곡도 나와서 세트 리스트는 다시 짰어요.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곡들도 넣었지만 <NEO PROPAGANDA>에 들어간 곡을 부르지 못한 만큼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신곡 축제를 여는 식으로요. 곡조를 맞추지 않고 "이런 곡도 있다고"라며 한 곡 한 곡 성의껏 표현하기로 했어요.
-전에는 프로듀서를 맡은 스도우 코우타로우 씨의 카오틱한 감성이 우에사카 씨의 공연 연출에 반영되어 있었는데 신체제가 만들어진 지금 우에사카 씨 자신이 연출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아졌나요?
그렇죠. 지금은 "아슬아슬하게라도 의미를 알 수 있는 걸 해주세요" 이런 분위기인지라...
-(웃음)
전엔 아무 말도 안 들었던 게 "이 부분에서 이해가 잘 안 되네요"라는 말을 듣게 되어서요. 세상에 내놓아도 아슬하게 부끄럽지 않을 무언가를 염두에 두게 되었어요.
-의상도 우에사카 씨가 직접 러프를 그려서 제안을 했다고 들었어요.
의상에 관한 건 전부터 매번 막대기 인간 같은 그림을 그려서 제가 희망하는 걸 냈었는데 이번엔 그렇게 했어요. 말은 그래도 대강 "제복처럼"이라든가 "아이돌이 입을 법한 의상"이라든가 그런 간단한 그림을 그린 것 뿐이에요. 반짝이를 붙인다든가 체크무늬의 색배합 같은 건 스타일리스트인 사노 (나츠미) 씨가 맡고 있어요. 고양이귀는 내가 그렸던가... 그런 걸 하는 것도 거의 사노 씨가 해주신 거라 제가 그린 러프와는 거의 다른 거였던 것 같네요.
-그런 식으로 공연 외적인 부분을 생각하는 게 즐겁나요?
그렇죠. 우선 세트 리스트를 결정하고 이 부분에선 이런 캐릭터를... 식으로 대체적으로 세 패턴 정도 생각해서 그런 캐릭터 만들기를 하는 게 즐거워요.
-그리고 이번 공연 중간에 <드래곤 스미레>라는 제목에서부터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짧은 드라마가 나왔죠. 중간영상에 매번 동료 성우 분들이 콩트스러운 상황에 휘말리셨는데 이번엔 스즈키 아이나 씨와 토쿠이 소라 씨가 등장했어요. 이런 인선은 매번 우에사카 씨가 하나요?
그 시기에 특히 신세를 지는 분들로 고르죠. 부탁을 해서 일정이 맞다면 하게 되는 식인데 이번엔 설마 둘 다 OK를 해줄 줄 몰라서 정말 즐거웠어요.
-어째서 학원물로 설정했나요?
이 설정으로 하면 출연자들이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깐 밀어붙였죠. 소녀로 변신시켜 보고 싶어서요.
체력이 붙은 이유
-공연 영상을 보면 전보다도 노래 실력이 늘었달까? 공연 중에 보여주는 노래의 표현력이 늘어난 게 느껴지는데 자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체력이 붙은 것 같아요. 코로나 전에는 항상 체력이 5포인트 남은 상태에서 살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충전이 되었달까...
-체력 문제라고 하니 상당히 납득이 되네요. 전보다 여유있게 공연을 하는 것 같아요.
전과는 마음가짐이 다른 건지도 모르겠어요. 보이스 트레이닝도 많이 다니게 되었고 연습을 할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을 터득했고요. 그리고 진행을 짧게 해도 된다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진행을 할 때에도 체력을 소모했나요?(웃음)
항상 진행할 때마다 땀범벅이 되었어요.
-객석을 돌면서 만화책을 나눠주거나 동지의 의상을 점검하거나 하는 시간이 없어지니깐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군요.
70% 정도 거기에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진행에 상한선을 걸어두면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물리적인 깨달음이 있었어요.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30대가 되길
-성우로 데뷔한 지 십 년, 가수 데뷔로부터는 구 년이란 경험과 연령을 쌓게 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거나 사고방식에 변화가 생긴 게 있나요? 우에사카 씨는 얼마 전에 서른 살 생일을 맞이했는데(2021년 말에 취재) 30대가 되면서 마음가짐이 변하거나 하던가요?
없네요. 목소리나 의상이 변한 것도 아니고 서른이 됐으니깐 급료 올려준다는 말도 없고요.
-그렇군요(웃음) 20대를 마치면서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없고요?
그것도 없었어요. 스물여섯 정도 되었을 때 왠지 피부가 쉽게 건조해지네 하고 스킨케어 제품을 바꾸거나 체질 개선을 하거나 하는 건 20대 후반에 시작했기 때문에 그 때로부터 30대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죠. 그래서 지금은 서른셋 정도? 조금 앞서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해서 올라보니 이렇다 할 것도 없었다랄까요.
-"30대부터는 이런 삶을 살고 싶어" 같은 매듭을 짓기 위한 목표는 없었나요?
20대 동안 야단법석을 떨었으니 30대엔 그만큼의 부분을 회수하고 싶달까요. "십 년 전엔 매일 울면서 혼자 점심 도시락을 먹던 당신, 괜찮습니다." 같은 걸요. 여러 부문에서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된 만큼을 더해서... "무엇이든 즐길 수 있어" 이런 마음을 먹을 수 있는 30대가 되면 좋겠어요.
-다음 순회공연은 4월 10일에 시작하네요. 아직 시간이 있긴 한데 어떤 공연을 하고 싶어요?
순회공연은 엄청 오랜만이고 특별히 내걸 만한 앨범도 없으니 세트 리스트도 자유로워요. 고정적인 곡도 있고 마이너한 곡도 있고 여기에 밴드 어레인지를 하는 게 처음인 곡도 있으니깐 옛 것과 새로운 것을 섞어낸, 여유가 있는 우에사카 씨가 짜낸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되었으면 하는 게 목표예요.
-갈수록 레퍼토리가 늘어가면서 예를 들면 1980년대 아이돌 팝을 방불케 하는 노래를 선보이는 특별한 공연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으려나요.
그렇네요. 저는 세인트 포가 무척 좋아서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곡이 조금씩 늘고 있고 "7080만으로 공연하기"를 저도 해보고 싶지만 객석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런 노래를 좋아하는 건 대체로 아저씨 쪽이고 학생 층에선 미묘한 표정이 떠오른다는 통계 결과를 내고 있는 터라... <7080 아저씨의 밤>은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7080 아저씨의 밤>과 <인기곡만 부르는 밤>과 <드럼이 죽어나는 BPM 쩌는 밤> 같이요. 그런 공통점을 가진 곡이 늘어났으니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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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의 음악이력을 풀어보며 음악을 탐구하는 것의 재미, 가수의 새로운 매력을 파헤쳐보는 기획. 이번엔 2012년에 성우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2013년부터 음악활동에도 정력적으로 임해온 우에사카 스미레의 근간을 살펴보았다.
취재/ 우스키 나리야키 글/ 나카노 아키코
자아 각성은 2채널
어릴 적엔 방에서 점 같은 걸 뚫어져라 쳐다보는 부류의 얌전한 아이였어요. 그 때부터 "혼나고 싶지 않아" 같은 사고방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으면 혼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건지 집에서 관엽식물을 쳐다보거나 해가 질 때 방 안에서 그림자가 이동하는 걸 쳐다보거나 하는 죄수 같은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푹 빠지게 된 음악적인 건 "게임보이 소리". 그 중에서도 <포켓몬스터>의 "실프 주식회사(シルフカンパニー)"라는 BGM이 끌리더라고요. 이 곡이 무척 무서워요. 하지만 계속해서 듣게 되어서 게임보이의 전지가 다 닳아버릴 때까지 그 BGM이 나오는 장면을 고정시켜 놓은 채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죠.
<포켓몬스터>는 둘이서 통신으로 놀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누구와 논 적은 없고 양친께서 게임보이를 두 대 사주셔서 혼자서 통신을 연결시켜 놀았어요.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웬만한 건 다 사주셨지만 같은 반 아이로부터 "통신교환 하자"의 "ㅌ"조차 들은 적이 없었죠.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통하게 된 소꿉친구는 있긴 했어요. 그 아이와 그림을 같이 그리거나 <빨간 양초>라는 알 수 없는 곡을 만들어 부르기도 했지만 교류관계를 이 이상 넓혀야 된다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어요. 그 아이는 꽤 재밌었고 삼자매였는데 언니 동생이 하나같이 밴드가수를 좋아했었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Psycho le Cemu나 the GazettE 1 같은 비주얼계 밴드에 대한 걸 알려주곤 했어요. 2
어릴 적엔 밤 여덞 시 이후 텔레비전을 본 기억이 없네요. 그래서 가요방송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고 인기순위로부터 격리되다시피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차에 달린 카 스테레오로 디스코 뮤직이나 캐롤, 나카모리 아키나 씨가 아이돌이었을 적 노래를 틀었기 때문에 음악에 친숙해졌어요. 집에 있는 앨범을 보면 양친이 디스코장이나 클럽 같은 곳에 있는 사진이나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찍은 사진이 있으니깐 버블시대의 불량청년 같은 거였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저도 얌전하게 움직이지 않는 생물 주제에 듣고 있는 음악은 분위기를 팍팍 띄우는 쪽이었어요.(웃음) 처음 산 CD는 사이버 트랜스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던 것 같네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양친이 "CD는 사도 된다"고 말해서 당시 사이버 트랜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까운 상업시설에 있는 음반점에서 가장 멋져 보이는 걸 골랐어요. 레이브가 뭔지도 몰랐으면서 이 CD를 들으면서 숙제를 하곤 했죠. 3
초등학교 3학년 때 교실에 놓여져 있던 컴퓨터로 놀게 되면서 2채널러가 되었어요. 저는 Yahoo! 키즈를 이용했는데 어째서인지 2채널에 와있었더라고요.(웃음) '사람들이 뭔가를 잔뜩 써놨어. 세상엔 사람이 이렇게도 많구나! 게다가 다들 머리가 좋나봐!' '어쩌면 인터넷이란 곳에 희망이 있는 건지도!' 이런 생각을 하며 자아가 싹트기 시작했어요. 그 때가 모모이 하루코 씨가 퍼뜨린 아키바 문화도 모에도 탄생한 지 꽤 지났던 시기 같은데 이게 다시금 유행을 타던 때였죠. 인터넷에서 미연시 노래나 전파송을 들으면서 '이렇게 귀여운 노래가 있구나'란 생각을 하며 즐겼어요.
유튜브에서 소련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접어들면서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전쟁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외동으로 태어난 아이는 한가한 법이라 복잡한 곳을 파고드는 습성이 있나봐요. 전쟁사를 조사하는 와중에 군가를 알게 되었는데 멜로디를 외우기 쉽고 유행가와는 완전히 달라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루브를 느끼며 곧잘 흥얼거리게 되었어요. 그야말로 선전용 차량이 지나가면 '아, 이 노래 아는 거다' 싶어 따라 부르기도 했죠. 초등학교 고학년 때엔 노래방에 가면 불렀던 게 군가와 어쩌다가 부를 수 있게 된 <おジャ魔女カーニバル!!>. 4제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다들 줄줄이 음료수를 주문하러 갔었죠.(웃음)
순조롭게 인터넷 세계에 빠져들게 된 결과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게 되어서 <로젠 메이든> 주제가를 담당했던 ALI PROJECT에 빠지게 되고 에도가와 란포를 계기로 근육소녀대에 빠지게 되었어요. 처음 들었던 근육소녀대 노래가 <大釈迦>라는 <釈迦> 리어레인지판. 5 샀던 CD가 <筋少の大車輪>이었어요. 제가 좋아하게 되었을 때엔 근육소녀대가 활동을 중지하고 있었는데 나카노 브로드웨이에 있는 음반점에서는 재고가 풍부했기 때문에 한정된 용돈을 쪼개 중고음반을 음미하며 샀었죠. 당시부터 아키하바라는 피규어를 보러 가는 곳, 진보우쵸우는 책을 사러 가는 곳, 나카노는 CD를 사러 가는 곳으로 정하고 있었어요.
소련에 빠지게 된 계기는 유튜브.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군사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독일 제3제국문화나 제로센에 흥미를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항상 이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등장하는 소련이란 나라는 어떤 곳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엔 모스크바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어쩌다가 유튜브에서 소련국가가 추천에 뜬 걸 봤어요. 그 때까진 사회주의국가 특유의 강렬함을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진국이다!' 싶었죠. 소련 국가는 완전히 "악역 주제가" 같은 곡조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낭랑해서... 왠지 신비한 기분이 들게 돼요. 소련이 붕괴한 해에 태어나서 역사 수업에서도 평이하게 배우고 말았기 때문인지 강렬하고 알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에 확 끌리게 되었어요. 제가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선 디오,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선 토네가와 유키오를 좋아해서 말이죠, 이런 "악역 모에"가 파생되어 '이렇게나 가상적국이 되어버린 소련이란 멋지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비틀즈를 빌리려다가 블랙 사바스에 손을 대면서 메탈에 경도되다
초등학생 때 스카우트되어서 아역 모델을 하게 되었는데 줄곧 나서고 싶지 않다고만 생각해 왔어요. 성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였죠. 동경하던 모모이 하루코 씨나 사무소 선배였던 히라노 아야 씨 아케사카 사토미 씨가 애니메이션에 출연하고 코스프레를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걸 보면서 이 분들이야말로 제가 이상으로 삼을 수 있는 2차원 그 자체!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무소에 있는 성우부문에 내가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가까운 곳에 기회가 있었달까, 운 좋게 목표를 삼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달까... 애초 대학교에서 취직활동을 하고 있던 선배들이 점점 지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취직 의욕도 꺾이고 있었고요. 게다가 아르바이트도 한 적이 없어서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지도 몰랐어요. 그런 와중에 제가 우선적으로 도전할 수 있고 될 수 있으면 멋있겠다고 생각한 게 성우라는 직업이었죠.
2010년 즈음에 보조진행을 맡고 있었던 <TOKYO No.1 귀여운 라디오>의 진행을 맡은 스승과 같은 존재였던 사쿠라이 타카마사 씨와 헬로콘(헬로! 프로젝트 콘서트)에 가게 되면서 헬로프로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사쿠라이 씨가 정통파 음악 애호가였기 때문에 "한 음악만 파는 것도 좋지만 비틀즈를 듣는 게 좋아!"라고 조언하셔서 저도 "네, 알겠습니다! 비틀즈를 꼭 들어볼게요!"라고 약속을 한 뒤 츠타야에서 "B" 코너를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거기에 "블랙 사바스를 들어봤나? 감동의 명반 <Paranoid>! 혼을 뒤흔드는 고조감! 의미를 모르겠는 표지! 오지 오스본의 쉰 목소리는 참을 수 없지! 너도 들어!" 이런 식으로 엄청 정열적인 홍보문구가 있더라고요. 뭘 그려넣은 건지 모르겠는 표지와 사춘기 마음을 뒤흔드는 <Paranoid>라는 제목에 이끌려서 비틀즈가 아닌 블랙 사바스를 빌려왔어요. 배경지식 없이 들었는데도 엄청나게 감동했죠. 근육소녀대나 인간의자의 원조가 여기에 있었나! 하는 발견도 하게 되었어요. 나중에 사쿠라이 씨가 "블랙 사바스도 좋은 밴드니깐 괜찮겠지"라고 했었던가?(웃음) 이렇게 메탈 문화의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아이언 메이든, 래트, 머틀리 크루도 듣게 되었어요. 래트나 머틀리 크루는 어렵지 않은 노래를 부는 편인데 예를 들어 "난 이 거리에서 가장 인기가 많아" 같은 거죠. 곡 중에 반복되는 가사도 많고 초반에 제목을 연호하는 것도 애니메이션 노래 같아서 제 안에선 모에전파송의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어요.
음악이력과는 좀 거리가 있는데 2011년에 잊을 수 없었던 일이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처음 보고서 울었던 거예요. 나카노 브로드웨이에서 P-MODEL이나 토가와 쥰 씨, YMO의 CD를 통해 테크노팝을 듣게 되어서 사카모토 류이치 씨가 출연한 걸 보고서 '저 사람, 테크노팝 쪽 아니었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죠. 당시 데이비드 보위도 키타노 타케시 씨도 거의 알지 못하고 어쩌다가 보게 되었는데 주제가가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덴키 그루브의 전신이었던 밴드 인생의 앨범 <SUBSTANCE V>에서 <전장의 크리스마스> 패러디곡(<玉ノ海、戦場でクリスマスをむかえるの巻>)을 들은 뒤 영화에 대한 인상이 좀 달라졌어요.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순수하게 본 건 이 때 뿐이었죠.(웃음)
해고를 당할 걸 각오했던 건 어째 가수 데뷔 당시
2012년에 <아빠 말 좀 들어라!>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성우로서 데뷔하게 되었는데 이 때엔 제가 캐릭터송을 부를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히라노 아야 씨나 모모이 하루코 씨를 동경해왔지만 제가 그런 자리에 서게 될 거라곤 생각을 못했죠. 스태프로부터 캐릭터송을 부르게 될 거라고 전해 들었을 때엔 '에엑, 캐릭터송!? 긴장해서 죽어버릴지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처음으로 녹음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긴장하긴 했지만 캐릭터송을 부를 때 가장 많이 긴장했어요. 행사에 나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었을 때엔 끝날 때 즈음에 참을 수 없게 되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외쳐버렸죠. '난 이제 끝이야. 성우 일 즐거웠지.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감사했어요...'라면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무사히 성우로서의 내가 서거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사무소에 불려가서 해고구나 생각하고 있었더니 "스타차일드에서 데뷔해 보지 않겠어요?"라고 하더군요. '어째서!? 어째서!?'란 생각이 들었죠. 저의 첫 프로듀서인 스도우 코우타로우 씨가 행사 때 모습을 보고서 제안을 했다는데 그 이유가 저로선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있어요. 혼을 담은 외침이 스도우 씨의 심금을 울렸던 걸까? 이리 하여 가수 데뷔를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양성소 같은 걸 가본 적도 없기 때문에 데뷔 행사 때엔 뭘 연습하면 좋을지도 몰랐어요. 그 때까지 다른 성우 분들의 공연은 커녕 공연 자체를 본 적이 없어서 뭘 참고해야 되는 건지도 몰랐죠. 그런 상태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으니 흔히 말하는 제대로 된 선로 같은 걸 밟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 와서 다시금 데뷔곡을 들어보면 인트로가 상당히 길어요. 게다가 엄청 실험적이었고... 그 때 항의를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웃음) 그래도 이제 가수 데뷔한 지 팔 년이 되었어요. 정말이지 신기하단 생각이 들어요.
평범한 근접전투도 할 수 있기를
오키테 포르쉐 씨의 말은 공감가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그 중에서도 로망 포르쉐로서 2008년에 발매한 베스트 앨범 제목인 <좀더 성실하게 임할 걸 그랬어>는 그야말로 저를 위해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음악이력을 돌아보니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래도 전혀 관계도 없던 사람이 성우 일과 음악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무리하게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던 덕분인 것 같기도 해요. 운이 무척 좋았고 주변 사람들이 다들 상냥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제대로 된 사람이 봤다면 이 년 내로 잘렸을 저를 "어쩔 수 없는 녀석일세"라면서 용인해준 덕분이었겠죠. 올해 서른이 되고 하니 좀더 공격적으로 나간달까 의욕을 드러내겠달까... 긍정적으로 나가보고 싶어요. 지금 스미페 팀엔 굴지의 젊은이들이 스태프로 참가해 제가 가장 연장자. "좋은 연장자란 젊은이의 의견을 잘 듣는 사람이다"라고 역사가 말해주고 있으니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별난 것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내고 싶어요. 축제에서 할 수 없다고 손님에게 맥주를 뿌리거나 하면 안 되겠죠.(웃음)
성우 뿐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서른은 한 매듭을 짓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까지처럼 설렁설렁 지속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힘을 낼 수 있는 건 지금 시기 아닐까요? 신곡인 <EASY LOVE>도 무척 발랄한 곡이고 이 곡을 오프닝으로 쓰게 되며 4월부터 시작되는 TV 애니메이션 <괴롭히지 말아요, 나가토로 양>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작품이라 많은 분들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 들어 저보다 나이가 적은 성우들이 늘어났고 라디오 방송에 초대손님으로 불려갈 때 '아, 경력을 쌓는다는 게 이런 건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곧잘 편지 같은 걸로 "성우를 목표로 삼았어요!" "우에사카 씨를 동경해서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말해주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다른 분을 참고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외부에서 보이는 전 자유롭게 먹고자고 놀면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고 말이죠... 좀더 노력을 기울이는 선배들의 모습을 참고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음악은 사형을 당하거나 하지 않는 한 계속하고 싶어요. 글쎄요... 장래적으론 좀더 노래를 잘 부르게 될 거예요. 지금까진 장거리 공격을 잔뜩 해왔지만 평범한 근접전투도 할 수 있게 되고 싶달까? 듣는 사람이 "이 곡, 꽤 좋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의욕은 있으니 부디 이력서를 채용해 주십시오.(웃음)
natalie.mu/music/column/417507
- 1999년부터 활동해오고 있는 일본 비주얼계 밴드 https://ja.wikipedia.org/wiki/Psycho_le_Cemu [본문으로]
- 2002년부터 활동해오고 있는 일본 비주얼계 밴드 ja.wikipedia.org/wiki/The_GazettE [본문으로]
- 1980년대 인기 아이돌 가수 ja.wikipedia.org/wiki/%E4%B8%AD%E6%A3%AE%E6%98%8E%E8%8F%9C [본문으로]
- <꼬마마법사 레미(おジャ魔女どれみ)> 오프닝 [본문으로]
- 근육소녀대가 인디밴드였을 당시에 나왔던 노래가 <釈迦>로 상업시장에 데뷔하면서 낸 음반에서 <大釈迦>란 제목 하에 재수록되었다. ja.wikipedia.org/wiki/%E9%87%88%E8%BF%A6_(%E7%AD%8B%E8%82%89%E5%B0%91%E5%A5%B3%E5%B8%AF%E3%81%AE%E6%9B%B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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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거두기 나흘 전이었던 8월 28일에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운 와중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며 대담에 응한 타바타에 켄타로우 씨의 미소를 잊기 힘들 것이다.
촬영 야마모토 다이스케
'앞으로 한 달'. 치바현 후나바시에 살던 남자는 올여름 의사로부터 이런 선고를 받았다.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알고 싶어.' 하지만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넘쳐나도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낫지 못하는 암도 있는데 말이죠" 비쩍 마른 몸에서 짜내듯이 말해야 하는 남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취재에 응하여 죽음과 마주했을 때 느낀 심정을 밝혔다.
'낫지 못할 사람들을 위한 정보'가 없다
토쿄에서 의료기기 관계 일을 해왔던 타바타에 켄타로우 씨(46)는 8월 27일에 의사로부터 '앞으로 한 달'을 선고받았다. 약 일 년에 걸친 신장암과의 투병생활 끝에 결국 종말치료로 이행해 자택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취재에 응한 것은 다음 날인 28일, 이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한 달 남았다 하니 다들 이걸 입에 담는 것조차 주저하더라고요. 그러니 정보도 없고 해서 저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알고 싶어서 찾아봤지만 전혀 없었죠. 그래서 이런 점을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나을 수 없는 암과 나을 수 있는 암이 있잖습니까? 아무리 의료가 발전해도 낫지 않는 게 있어요. 나은 사람들에게만 조명이 비춰지는데 낫지 않는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타바켄(タバケン)'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타바타에 씨의 신장에서 종양이 발견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7월 24일에 갑작스럽게 혈뇨를 보았고 며칠 후 열까지 나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발견된 것이다. 이미 4기. 림프절에까지 전이되었다.
이 날 페이스북에 스스로 보고를 했다.
-에또... 여러분께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신장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4기!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만 도전정신이 넘쳐날 여름이 될 것 같습니다. 가을엔 모두 함께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힘내보겠습니다~!
이 날부터 처절한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페이스북에 계속해서 전해온 타바타에 씨의 글은 언제나 쾌활해 읽은 사람들이 조금만 기다리면 나을 수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기력이 넘쳐났다.
중학교 동창이자 풋살을 계속 같이 해온 아리타 카즈요시 씨(46)는 "정열적이었죠. 풋살을 할 때 아무래도 닿지 않겠다 싶은 공에 오버헤드킥을 시도할 정도였어요. 마음 가는대로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부상도 많이 당했어요. 믿음직하고 정의감도 강했죠. 동창 중에서 가장 기력이 넘쳐났어요."라고 회상했다.
역시 동창이며 풋살 친구인 하야카와 코우지 씨(47)는 "정말 사람이 좋았죠. 중학교 축구 시합 때 반칙을 한 동급생이 시합 후에 상대팀에게 비난을 당하자 타바켄이 도와준 일이 있었죠. "내 친구란 말야"라면서요. 우정을 소중히 하는 정열적인 친구. 취미가 많고 무엇이든 열중할 수 있는 강한 녀석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자택에 운동시설을 만들어 운동을 할 정도로 근육이 왕성하고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며 색스폰 등 악기를 연주하고 모토크로스용 오토바이에도 도전, 스키에 풋살에 무엇이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도전자. 마초스럽긴 해도 마음은 따뜻하고 도움주기를 좋아하는 사람. 다들 품어온 '타바켄'의 인간상이다. 타바타에 씨 자신도 그 인상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기에 페이스북에 일부러 낙관적인 내용을 써왔다고 고백했다.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타바타에 씨.
자택에 할리 데이비슨 로고로 장식한 전용 차고까지 두었다.
"제가 만들어온 이미지가 있으니 강한 척을 해왔어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는 게 맞으려나? 이걸 유지함으로써 제 자신을 채찍질한 거죠. 의학적으론 하면 안 되는 거지만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병세가 깊어짐에 따라 몸이 전해오는 메시지도 강도가 달라져 현실과 희망의 격차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시합을 하거나 운동을 한 후에 자고 일어나면 조금이라도 피로가 완화되죠. 하지만 지금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 싶어서 잠을 자도 일어나면 훨씬 나빠져 있어요.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죠."
작년 9월부터 12월에 걸쳐 지방병원에서 네 번에 걸친 항암제 투여를 받았다. 림프절에 퍼진 암세포를 감퇴시킨 뒤 종양이 있는 신장을 완전히 적출하는 수술에 대비하는 치료였다. 효과가 나타나 수술 일정을 정했을 당시 만약에 대비해 항암제를 한번 더 투여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찍은 CT 영상을 관찰한 결과 실제로는 암이 약해지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어 수술이 중지되었다.
효과가 없다면, 몸에 오히려 독이 되기만 한다면, 이런 생각에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고 방사선 치료로 전환했다. 그 동안 스스로도 살 길을 찾아 옵디보와 경쟁하고 있는 약으로 알려진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토쿄도에 있는 국립항암센터에서 투여받기로 했다. 좋은 약 조합을 알아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 후쿠오카현에 있는 클리닉까지 간 적도 있다. 올해 유 월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해본 결과를 CT로 검사했으나 암이 약해지기는 커녕 간 등에까지 전이된 것으로 나왔다. 의사는 종말치료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고통을 견디며 여생을 보내는 선택지였다.
2020년 2월에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을 무렵 타바타에 켄타로우 씨.
"이걸로 완치를 바라긴 힘들고 고통을 완화하면서 진행을 막는 게 목적입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설명을 올렸다.
"역시 의지만으로 어떻게 되는 건 아니네요. 버텨내지 못하는 것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기운차게 싸워나가는 강한 모습을 주변 분들에게 보여드리려 노력했지만 마지막을 맞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것도 저의 정체성,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신장만이었다면... 하지만 간에도 퍼졌다니깐요. 강한 척은 이걸로 끝.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낫지 않을 거예요. 처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할 수 있을지도. 이게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이런 운명. 그러니 이걸 받아들이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확실히 해두어서 마지막에 웃으며 죽을 수 있기를."
호스피스 입소를 거부하고 자택요양을 고집했다.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을 다질 수 있도록 준비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난다는 IT 시대인데도 살아갈 것을 전제로 투병생활을 했을 때엔 그토록 넘쳐나던 정보가 죽을 것을 전제로 하자마자 완전히 끊겨버렸다.
"그런 상황에 처한 암환자는 혼자서 힘을 내야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겠죠. 웬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암치료비가 비싸기에 누구나 손을 쉽게 뻗을 수는 없다. 치료법이 있어도 보험적용에서 제외되는 경우까지 있다. 암환자가 자기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점 또한 타바타에 씨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다.
2020년 2월에 항암제 치료를 끝내고 직장에 복귀한 타바타에 켄타로우 씨.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와중에도 숨을 거두기 반달 전인 8월 15일까지 출근을 했다.
국립 암 연구센터 통계에 의하면 새로 암 진단을 받은 환자수는(예측) 2018년 약 101만 3600명. 이 중 사망자수(예측) 38만 명에 가깝다. 둘 중 한 명은 평생에 한 번은 걸리게 되는 암 때문에 죽음을 마주해야만 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도 정보가 부족하고 치료 환경도 정비되지 않았다는 타바타에 씨의 호소는 많은 암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제기하고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의외로 내가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선 평온해지더군요. 제대로 준비를 하고 뒷일을 안심할 수 있는 상태에서 죽고 싶어요.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종말활동을 하게 되어 마음이 진정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올해 8월에 장마가 지나고 무더위가 찾아오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회사에 출근도 하고 좋아하는 오토바이도 타고 다녔지만 마음 먹은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찾아왔다. "몸이 약해진 걸 실감했어요. 그나마 남아있었던 희망의 무게감도 잃어갔죠." 고통도 심해지면서 의사의 권유에 따라 모르핀 투여를 시작했다. "아빠는 불사신이니깐 괜찮을 거야"라며 계속해서 격려해주는 외동딸(13)이 동석한 가운데 방문진찰을 한 의사가 선고한 것이 '앞으로 한 달'이었다.
선고를 받은 날 밤에 타바타에 씨는 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되어버렸네." 딸은 심각한 표정으로 "응, 알아."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사이좋은 부녀지간이었다. 그런 딸과 나누는 말 하나하나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뭐랄까, 어리광쟁이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다잡을 수 있는, 좋게 보면 시련이라고 생각해요. 극복할 수 있을 거다. 일어설 수 있을 거다. 제 딸인 걸요. 심지는 굳은 아이니깐요."
"손주가 보고 싶단 생각도 들긴 하죠. 하지만 후회하지 않도록 애정을 쏟아부었어요. 딸의 결혼식을 보고 싶다는 아빠들도 있겠지만 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서 싫네요. 반항기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사이가 좋은 채로 끝낼 수 있다면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각자의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다며 이혼한 전 부인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예전 아내라고 해야 되겠지만 엄청 도와줬어요. 매일같이 와줬거든요. 일도 일 주일 중 세 번은 쉬면서 와줬을 정도예요."
전 부인과 동생의 도움을 받아 상속과 유산, 장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마쳐놓았다. 일도 승계작업을 마쳤고 "이제 조용히 갈 수 있으면 좋겠군."이라고 생각하는 기간에 들어갔다. 모든 준비를 마쳐 마음이 평안하다고 했다.
"남은 걱정이라면 사람들이 얼마나 장례식에 와주려나 하는 정도려나요? 이별의식 같은 걸 할 때에 날 떠올려 줄 수 있으려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하는 물음에 타바타에 씨는 이렇게 답했다.
"역시 작별은 슬픈 법이죠. 하지만 불쌍하게 생각치는 말아주세요. 하고 싶은 걸 하며 인생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니 불쌍한 게 아니라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기쁠 겁니다."
취재한 다음날, 타바타에 씨의 건강상태가 급변해 9월 1일 아침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앞으로 한 달' 선고를 받은 지 닷새 만이었다.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평온하게 마지막을 맞이해 표정은 부드러웠으며 약간 웃는 것 같기도 했다고 한다. 완전히 쇠약해져 입원할 수 밖에 없게 되기 전에 모두가 알고 있는 "강한 타바켄"인 채로 스스로 인생의 막을 내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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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라 미노리 성우를 처음으로 알았던 건 상당수의 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에서였다. 애니메이션이 상당한 붐을 일으키면서 여기에 참여했던 성우들의 주가도 상당히 올랐으며 히라노 아야 성우가 가장 큰 덕을 보았지만 못지 않게 이 애니메이션이 전환점이 되었던 쪽이 치하라 미노리 성우였다. 나의 경우 치하라 미노리라는 성우가 있다는 걸 정확히 인식한 것은 <스즈미야 하루히> 공연에서였다. 밤중에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문득 깼을 때 아직 영상이 틀어져 있는 도중이었고 거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게 치하라 미노리 성우였고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런 춤을 추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무대에서 노래를 열심히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 속에 많이 남겨져 있다. <스즈미야 하루히> 애니메이션에 나온 성우들이 가는 길을 전부 밟으려 한 노력도 있었긴 했지만 그 때 그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그렇게 길게 가진 않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치하라 미노리 성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좋아하게 된 이유는 치하라 미노리 성우의 긍정적인 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건 치하라 미노리 성우와 일하던 사람들도 동의하는 것으로 3편까지 나왔던 <Message>에도 잘 나와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힘이 넘치는 가창력으로 공연을 하면서 매년 여름마다 공연을 하고 애니멜로 섬머 라이브에도 단골로 참여했고 팬과의 호응이 좋아서 이벤트마다 참여도도 높았고 한때 팬들의 결혼식에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직접 노래를 불러주기까지 했을 정도니깐 겉치레 홍보 같은 말이 아니라 치하라 미노리 성우의 노래를 통해 사람들이 힘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치하라 미노리 성우 음반을 듣지 못해 여기저기 뒤지고(https://aglowfly.tistory.com/19) 블로그를 계속 번역하다가 제풀에 지쳐버리고 했던 것도 다른 팬들이 느꼈던 감정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치하라 미노리 팬으로 있으면 힘을 얻을 수 있고 지지를 보낸만큼 이 힘은 더욱 커지는 상호작용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치하라 미노리 성우 신변에 일이 발생한 걸 안 것은 다른 사람보다 열흘 이상 지난 뒤에서야였다. 치하라 미노리 성우 라디오도 radio minorhythm 종료 이후 miss sunshine을 들어봤자라 생각해 안 듣고 있었고 블로그는 계속 안 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트위터는 리스트 기능을 활용해 챙기고 있었지만 그나마도 블로그에 관심이 없으니 블로그 공유 트윗도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블로그에 "여러분께"(https://t.co/ALf8TiTZi5?amp=1)라는 글을 올린 걸 알았고 여기에서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정확히 뭔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기사를 찾아봤다.(https://t.co/jOjBD1Ked7?amp=1) 헬스 트레이너와 교제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에 들었고 블로그에 공개를 했으니 별 문제가 될 것도 없는 상황에서 뭐가 더 나오는 건가 했는데 그 전에 무로야 코우이치로우와 연애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보였다. 상당히 의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될 게 있나 싶었는데 무로야 코우이치로우가 유부남인 상태에서 연애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한다. 기간은 육 년...
치하라 미노리 성우가 개인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걸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상대가 결혼을 했고 자식도 있는 상황이라면 달라진다. 팬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결혼식에서 노래도 불러주는 동안 뒤에선 한 가정을 파괴하는 데에 동참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이후로 그저 혼란스러워졌다. 히라노 아야 성우도 양다리 걸친 게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치하라 미노리 성우의 경우와 비교하기엔 무게의 차이가 너무 큰 것 같다.
이 혼란 와중에 치하라 미노리 성우에게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보이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치하라 미노리 성우에게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무로야 코우이치로우의 아내와 자식이었던 사람이다. 우리에게 면죄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최소한 문제가 없다느니 용서한다느니 하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말을 꺼내는 건 이 문제를 가볍게 본다고 선전하는 것과 뭐가 다른 건지. 이런 생각에 더욱 힘들었다.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음반을 듣고 라디오를 듣고 공연을 보고 했던 게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건가? 특히 무로야 코우이치로우의 경우 치하라 미노리 성우 공연에서 바이올린을 담당해 왔으며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 음원으로 치하라 미노리 성우 노래 음반을 낸 적이 있었고 치하라 미노리 성우 공연을 좋아했던 이유가 바이올린 음색 때문이 컸던 나는 이 음반을 구매하기도 했다. 위에 뒤지고 다녔다고 쓴 음원도 마찬가지고... 하필이면 이 둘이서 문제를 일으켰다. 그럼 난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걸까? 이런 고민을 며칠간 했지만 딱히 긍정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는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던 분이 일으킨 사건이라 그런지...
팬이라고 위에 쓴 것처럼 다 받아주는 건 그냥 멍청해 보이고 딱 자르는 것도 뭔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끌어안고 있어봤자 나중에 보고 싶어질까? 모르겠다.
예전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그 긍정적인 이미지를 팔아먹으려고 척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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