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해당되는 글 43건
- 2018.04.25 :: 새삼스럽지 않았던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장충기 문자
- 2018.04.20 :: 소수 엘리트에게 관대한 나라
- 2018.04.14 :: 음모론 장사
- 2018.04.03 :: 개인주의와 공동체
- 2018.03.29 :: 불쌍한 가십거리
- 2018.03.29 :: 잘못 기대었던 기둥과 조개줍기
- 2018.03.21 :: 양천구 정치와 투표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감
- 2018.03.10 :: 진영논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인권
- 2018.02.27 ::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까
- 2018.02.01 :: 노동당 유감
오늘 새벽부터 공개된 뉴스타파의 장충기 문자 언론분야 영상에 약간 의외스러운 곳이 나왔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청탁까지는 아니었지만 장충기 쪽에서 준비한 선물을 감사히(?) 받고 인사를 나누는 등의 문자가 오갔고 특히 황충연 전 한겨레 이사 같은 경우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 같다.
맞춤법이 틀렸고 사회정책부 기자들 중엔 남자만 있었나요?(그 문제냐)
메이저 언론 중에서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어조를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인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이끄는 사람들이 사실은 삼성과 이렇게 친하게 지냈다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좀더 생각해보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이나 일간지를 만들려면 드는 돈이 만만치 않고 다른 언론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자본의 광고료에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삼성의 광고료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삼성을 깔 때에 상당한 각오를 해야 했고 엄청난 찬 바람을 견뎌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광고 문제로 오면 사상이 어떻고의 문제를 벗어나 돈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지게 된다.
경향,한겨레 1면에 실린 대한민국 정부의 허위광고 "임금피크제가 청년일자리 13만개 만듭니다" 2015년 거짓말 대상감입니다. 이러니 국가신뢰도가 34% 수준이지요. pic.twitter.com/aTRdDB5JGR
— 노회찬 (@hcroh) 2015년 8월 11일
https://www.huffingtonpost.kr/2014/12/12/story_n_6313068.html
이런 역겨운 개소리도 돈을 받았으니 광고라고 실어왔던 게 <한겨레>와 <경향신문>이었다.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언론의 논조도 자유로울 수 있을 리가 없다. 미국 같은 곳에서도 자본의 언론 잠식에 대해 상당한 우려가 피어오른 지 꽤 되었지만 삼성은 그 이전부터 한국의 언론을 장악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방송국을 빼앗겼다가 한나라당의 눈부신 활약(?)으로 간신히 되찾아내긴 했지만 그 공백기간 중에도 많은 언론이 삼성의 돈이 없었으면 살아날 수가 없었기에 이를 거스르는 건 꿈도 꾸지 못했고 찬양하기에 바빴다. 이러는 와중에 자신이 이끄는 신문사의 기자들이 삼성을 어떻게 하면 깔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그러니 "백혈병 기사 쓰던 넘들"이란 문구도 절로 나오겠지.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220
슬퍼질 게 뭐가 있어. 어른이 돈을 주시면 "감사합니다"하고 받는 거야.(?)
안 그래도 리버럴 쪽에 속하는 언론들의 판매부수가 적은 마당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이용자수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판매부수는 더욱 급감하게 되고 종이신문들은 더욱 위기를 느끼고 있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심해질 수록 자본의 언론 잠식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게 독자를 모으지 못하는 리버럴 언론의 잘못인 건지 신문을 읽지 않았던 사람들의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의 잘못이건 간에 이 현상이 계속 이어질 건 똑같으니 따져봤자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시민들의 힘을 합하면 됩니다! 네 다음 뉴스타파 사만 명과 유튜브로 연명하는 국민TV.
오늘 한겨레 누리집에 수시로 들어가봤으나 하루 종일 장충기 문자에 대한 기사는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역시 조직 내부의 자정 노력 같은 건 믿을 수 없는 건가.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러한 언론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지만 바로 앞에서 말했듯이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사람들의 힘은 잘 모이지 않고 자본의 힘은 막강하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자본이 그렇게 바꾸는 것을 위와 같이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곳을 욕한다고 해결이 될까? 새로운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나오거나 그나마도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아니면 음모론이 판치는 팟캐스트가 그 자리를 잡았다고 해야 되는 건가 이번에 나온 장충기 문자 보도는 이런 의미에서 새삼스럽지 않은 동시에 절벽을 향해 멈추지 않는 수레를 보는 것 같은 답답함이 든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위의 두 사람은 이름이 달려있는데 마지막 한 사람만 없으면 불공평(?)해 보여서...)
(언론 관계 쪽에선 이렇게까지 나온 사람이 없지만) 이렇게 떳떳하신데 내가 또 괜히 호들갑을 떨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부끄럽다. 정나미 떨어진 지 꽤 되었어도 <한겨레>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생각에 변호를 하려고 했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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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Fortune지에서 문재인을 위대한 지도자 4위에 선정했다는 이야기가 보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뭔가 하고 해당 기사를 살펴보니 흔히 보는 한반도 정세 운전사 논리가 떴다. 1~3위가 뭔지 살펴보니 1위는 미국에서 총기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일어난 청소년들이었고 2위가 말라리아가 퍼지는 것을 막고 성평등에 공헌한 게이츠 부부였다. 그리고 3위가 미투운동이었다.
글쓴이는 미투운동에 대해 특정 지역이나 직종이 한정되지 않고 누가 이끌어나가는 것도 아닌 전세계적이고 사고방식을 바꾼 운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투운동의 바람이 힘차게 불었으므로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짚은 것은 그 아래에 있는 문재인이었다. 3위보다 4위를 중시하다니 언제부터 한국이 패자(?)에게 이리도 관대한(?) 나라가 된 걸까?
요즘 보면 사람들이 마치 소수 엘리트주의를 지양하고 진정한 대중에 의한 정치를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시민의 뜻에 맞지 않는 정치가 이루어졌다, 시민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게 정말로 시민 대중들을 위한 이야기인 걸까? 내가 보기엔 그냥 편가르기를 해서 우리 편에게 불리한 정치가 이루어졌다 우리 편의 생각에 맞지 않는 판결이 내려졌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특히 정치의 경우 문재인의 뜻과 맞느냐 문재인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느냐에 총체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문재인이 맞느냐 자유한국당이 틀리냐의 문제라기보다는...(후자의 확률이 높긴 하다.) 그러다 보니 김경수와 드루킹 사이에 확인된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도 제대로 판단을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민주당 쪽은 김경수와 드루킹이 이렇다 할 관계가 없다고, 지시 같은 것 내린 적 없으니 메신저 프로그램에도 안 뜨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그걸 뒤집는 증거가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게 뭐가 문제냐고 하니 참 아무런 문제가 없고 모든 잘못은 그저 드루킹에만 있다. 키득.
정치의 모습도 이상하게 바뀌었다. 사기업에서의 일도 국회가 담당할 일도 법원이 담당할 일도 지방정부의 일도 모두 정부 쪽에 청원을 넣자고 달려든다. 결국 청원이 성공한다 쳐도 정부 쪽에서 뭔 말을 할 수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노력하겠습니다"를 최소 A4 몇 장은 내야 될 텐데... 이렇게 모든 게 문재인 중심으로 옮겨가 버렸고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면서 바꿔야 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권한을 분산하자는 쪽의 이야기에 대해서 반발을 하고 그 불똥이 정의당까지 튄다. 정작 정의당의 입장은 정부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힘을 합치자이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문재인 대통령 각하의 말씀을 따르는데 좌우가 어디있느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욕이다.)
경향 같은 곳에서 3위인 미투운동을 제껴버리고 4위인 문재인을 주목한 것도 이런 흐름을 타고 장사하려는 속셈에서 저렇게 선정한 것 아닌가 싶다. 미투 운동은 논란이 있으니(?) 여기저기서 메갈메갈거리러 오겠지만 지금 현재 문재인의 위치는 확고하다. 경향을 접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위에 말한 사람들이고. 그럼 장사를 하고 싶다면 문재인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 인권이야 나중에 짧게 논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여전히 소수 엘리트주의 국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기 보다는 일렬 종대로 세워줄 특정 정치인만을 바라본다. 대중에 의한 정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다수의 폭력적인 반응이 무서워서 방송 같은 곳에서 이 흐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바쁘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냥 비주류인 거고... 그러니 대중들은 반성할 틈이 없이 흘러가는 사회에 휩쓸릴 뿐이다. 시민들도 똑똑하니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식의 댓글을 달며 전문가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세태에서 문재인 찬양자들은 예외지만 뭔 배움이 있고 반성이 있을까?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스승이 그 안에 있고 어린 아이에게서라도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 했던 옛말들은 다 소용이 없는 건가... 하긴 이런 말을 하면 전문가들이 배우려 하지 않는다, 기레기들에게서 뭘 배우라는 거냐 그러겠지.
은수미 의원 트위터 계정에서 올린 기사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뭐 여태까지 해왔던 말과 별반 다를 것 없다. 그냥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내 머리가 굳어버린 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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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순위에 "박근혜 항소"가 뜨길래 설마 항소를 결심한 건가 했더니만 항소 포기라고 나왔다. 이렇게 되면 삼성 관련해서 무죄가 난 건 등에 대한 검찰 쪽의 항소만 살아있게 되니 2심에서는 원심 유지 혹은 검찰의 의견을 받아서 형이 더 길어질 수가 있다. 아니 뭐 애시당초 중간부터 재판에도 안 나왔는데 항소를 할 수 있는 건지 뭔지 생각이나 했을까? 그런데 검색결과에 이상한 게 보였다. 박근혜 재판 결과에 대해서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부정을 해야 되냐는 말을 하는데 그 대상이 문재인이었다. 순간적으로 김어준의 개헛소리 K값 이야기인가 했더니만 투표용지로 부정선거를 했다는 거다. 투표용지라면 칸이 붙어있나 띄어져 있나 하는 역시 개헛소리 아무말 대전밖에 떠오르지 않고 그건 역시 개헛소리인 걸로 결론이 났는데 뭔 이야기인가 했더니만 이런 거였다.
http://m.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683
허 이런 엄청난 일이 당당하게 벌어졌다니!(?) 그런데 뭐 사진을 찍었을 정도면 선관위 직원들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일 텐데 이게 왜 이렇게 된 건지 물어봤다는 이야기가 없다. 보면서 생각난 건 사전투표 용지인데 위에 나와 있듯이 사진 찍은 분도 사전투표는 하셨다니 모를 리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http://www.dailian.co.kr/news/view/631288
그런데 사전투표용지가 이렇게 생겼어요 아저씨... 왼쪽 아래에 QR 코드가 찍혀져 있어서 여기에 일련번호, 선거명, 선거구명, 관할선거관리위원회명이 들어가 있으니깐 이걸로 본투표 개표에 합류할 수 있는 거라는데(https://www.nec.go.kr/portal/bbs/view/B0000342/11323.do?menuNo=200035) 사전선거 하셨다면서요? 모르겠으면 선관위 직원들에게 좀 물어보든가. 그런데 이렇게 되면 위에서 지적한 남재준 사퇴 표시와 직인은 의혹(?)으로 남아있게 된다. 좀더 생각해보고 찾아보니 간단했다.
http://tsukubatokyo.org/blog/?p=2423
재외국민 투표(두둥) 재외국민 투표용지에 찍히는 직인은 저렇게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남재준이 사퇴한 건 4월 29일, 재외국민 투표는 25일에서 30일까지였다. 30일에 인쇄를 시작한 사전선거 투표용지에는 남재준 사퇴가 반영이 될 수 있었지만 재외국민 투표용지에는 반영될 수 없었던 것이다. 원래도 투표용지는 접지 않아도 투표한 용지를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거나 "나 ㅇㅇㅇ에게 투표했어요!"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는 한 그냥 투표함에 넣으면 투표소 관리 쪽도 아무 말도 않는다. 사람들이 오해 혹은 강박관념 때문에 일부러 접는 거지... 저 투표용지가 접히지 않은 이유야 뻔하지 않나. 사전선거니깐 그냥 봉투에 넣은 다음 투표함에 넣으면 되니 어차피 안 보이는데 뭣하러 접어... -_-; 접으면 오히려 그거 꺼내는 개표 담당자로부터 생명 연장 시술을 받을 수 있다.
부직포에 넣었다는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가 있었다면 수개표에 열정을 쏟는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 바로 지적했을 텐데 이제야 저런 걸 보게 된 걸 보면 그냥 관행 정도인 것 같다.
애시당초 지난번 정부 때 청와대에 있었던 건 박근혜였다. 선거 전까지는 황교안이 대신 맡았고. 도대체 어딜 어떻게 생각하면 선관위가 문재인 편을 들어서 조작을 저지를 거라 생각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하긴 또 이런 식으로 말하면 K값 개표 조작에 솔깃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그런 식으로 보는 게 절대 들어맞지 않는다는 걸 전에 설명했지만 누가 보지도 않는 것 같고) 위의 투표용지 부정 운운하는 분들은 3.15 부정선거를 들먹이지만 내가 알기론 2002년 노무현이 당선된 대선에서부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전자개표기를 통해 빠르게 진행되니깐 그것에 시비를 걸은 것이 시작이었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진 쪽이 부정개표를 논했고 거기에 따라 박쥐처럼 왔다갔다 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질 리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옳으니까! 방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수개표를 외치시는 분들은 그것 때문에 여전히 2012년에 사고가 정지되어 있지만 2012년 대선을 되돌아봤을 때 충분히 문재인에게 불리한 지점이 많았다. 아니 애시당초 박근혜가 압도적이었는데 그나마 그렇게라도 따라잡았던 것이다. 2017년 대선이야 박근혜가 사실은 최순실(박근혜)였다는 사 년간의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을 모두 설명해 주는 동시에 절망에 빠지게 만들었던 상황 속에서 박근혜는 알파요 오메가다 당연히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상황 파악을 할 수 없게 만들고 모든 것을 쉽게 풀어내는 듯 보이는 게 음모론인 것이다. 이런 음모론을 계속 읊어봤자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나아갈 리 만무하지. 이런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장사를 해먹는 사람들이 득시글하고 정말 한국에 적폐가 있다면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적폐이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착 때문에 쉽게 쳐내지 못한다.
그리고 또다시 장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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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만 해도 개인주의라는 것은 상당히 낯선 개념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같은 곳에서만 이뤄지는 것이고 한국에 이런 개념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경각심을 가졌다. 이 때나 그 전에는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동일한 개념인 것으로 착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니깐 한국에서 개인보다는 공동체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삭막한 사회, 시골은 정이 넘치는 공동체로 묘사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요즘 들어선 한국 시골도 그런 식으로 바라보기엔 무리가 생겼는지 외국의 두메산골을 찾아다니는 방송이 나오고 있다.(가끔씩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하는 때 외엔 TV를 안 봐서 정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대중문화가 당연하다시피 돌아다녔던 시절에 성장기를 거쳤으니 나도 개인주의에 대해서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공동체주의가 더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인상을 바꾸게 된 것이 장애인 문제였다.
http://news1.kr/articles/?3271190
교육감도 소신대로 했다는 이유로 도망쳐야 하는 상황...
가장 가까운 예로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문제가 있다. 장애인들이 편하게 다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짓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구에 이미 있다!"를 논리를 내세운다. (그걸로 충분하면 뭣하러 반대를 무릅쓰고 짓는다고 생각하는지...) 이 대신 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며 난리를 피우는 것이 장애인이 다니는 것 자체가 자기 동네에 불이익이 된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원래 내가 인식해왔던 공동체주의라면 다른 사람이 불편함을 겪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시설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반대한다면 타인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라고 생각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이기주의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옛날 공동체를 생각해 보면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라기보다는 그냥 방치하는 방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옛날이야 그런 동네 바보형이 한 동네에 한둘 있을까 말까했지만 도시가 생기면서 이런 바보형들(생각해 보면 이런 곳에 누나라는 단어는 없다. 옛날 바보누나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진다. 정신적인 문제뿐 아니라 육체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장애인들이 모이는 시설도 마찬가지다. 그 곳은 혐오시설이 되고 이런 시설 하나 짓기 위해 장애인들의 가족들은 마음으로든 신체로든 무릎을 몇 번이고 꿇어야 한다. 시설이 지어지지 않는 것만의 문제로 보기도 힘들다. 그냥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근처에 장애인이 앉아 있을 확률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만큼 장애인들은 집단 앞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오아시스> <Wonder>
비장애인을 돌아봐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여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보면 가정 내에서도 상당한 희생을 강요당해 왔지만 이게 사회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된다. 동네에서 잔치가 열렸다고 생각해 보자 그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에 남자가 들어갈까? 조금만 생각해봐도 쉽게 들어가지지 않는다. 어떤 걸 설치하거나 하는 일은 남자가 해도 힘은 덜 들어가지만 그에 비해 시간은 상당히 긴 준비와 뒷정리들은 모두 여자가 맡고 있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된다. 실제로 지금도 그런 식인 것 같고.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서 여자들의 희생이 강요된다면 그것이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같은 일부 힘이 있는 사람들의 친목회에 다수의 힘이 없는 사람들이 소모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여자들이 불이익을 넘어서 성적으로 위협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미투 운동으로 알리기 시작하자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지금도 이런 개판 오 분 전 상황인데 옛날엔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지만 그 이상도 우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마을을 위해서 남편과 사별한 여자에게 목숨을 끊게 하여 열녀비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꽤나 신빙성 있게 들린다. 아니면 독수공방하게 된 여자를 위해서 보쌈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결국엔 여자 개인의 삶은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남성 위주의 집단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손목을 비틀비틀
LGBT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혐오 세력에 대해서 이건 차별이다를 계속 외치니 기껏 한다는 말이 "내 눈에 띄지 말라"였다. 그런 말이나 지껄이는 모습을 보는 내 눈은 어쩌고...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옛날에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을까? 동성애자이건 자기의 몸과 마음이 품고 있는 성이 다르건 간에 기존의 관습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고 그것을 마을의 경사처럼 여기는 것이 옛날의 공동체였다. 옛날 기록에도 동성애 관련 기록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록에 불과할뿐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힘이 없는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공동체를 좋게만 볼 수 있을까? 이것이 좀 더 나가게 되면 국가주의가 되게 된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고 일부의 마음에 드는 사고방식에 반하는 사상은 배척당하는 세상. 한국식 민주주의를 외쳐도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던 세상. 자기들의 마음에 안 드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생활을 가지고도 배척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세상.
이렇기에 개인주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이 존재를 인정하기 위한 개인주의인 것이다. 말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본 결과 얼핏 보기엔 효율적으로 생각되는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이끄는 방식이 많은 사람이 이끄는 방식보다 뒤쳐지는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이 과정이 지난해 보일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끌고 갈 때에 보이지 않았던 측면을 여러 사람이 끌고 갈 때에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결국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가 악인 것처럼 말을 해왔지만 내가 짚는 것은 공동체를 가장한 일부의 권위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이다. 이런 것을 내포하고 있는 허상의 공동체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일개 개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개개인이 같이 이뤄내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집단 이기주의를 위한 나중에로 억누르는 한 이러한 진보는 이뤄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같은 선상으로 놓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정말 제대로 된 개인주의는 상대방을 인정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서로의 행복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이타주의이다.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말에 따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개인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역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말해왔듯이 집단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제대로 된 공동체의 화합을 만들려면 이러한 이기주의를 다수의 합의에 의해 억제할 필요가 있다. 지금 현재로선 이런 면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건지 아리송한 면이 있지만 발전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이 발전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생각을 틈틈이 해봤는데 막상 글로 옮기니 갈수록 중구난방이 되는 것 같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활용하느냐이지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념의 작용을 풀어쓰는 것은 누구에게나 귀찮은 일이기에 결국 개념 자체에 원죄를 뒤집어씌우는 오류를 흔히 발견하게 된다. 지금 일고 있는 개헌 바람도 비슷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꾼다 한들 좋은 방향으로 바뀔 확률이 높은 건지 알 수 없는 대통령 임기와 의원내각제를 서로 당리당략에 맞추어서 싸우고 있을 뿐이지 정말 원래의 헌법이 그렇게 잘못된 건지, 법률로 정하면 될 일들까지 시시콜콜 개헌에 맞추고 있는 것이 맞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바꿔버리면 나중에 아베나 시진핑 같은 사람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차라리 엎어지는 게 답인 건지도...
제대로 된 마무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는 생각났나 싶지만.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글로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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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 휩쓸려 해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난민 아이는 분명 불쌍하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사진이 돌고 나서야 사람들이 움직일 정도로 인권은 무딘 것인가... pic.twitter.com/lWrKw5g5Nm
— 밤에 양파밭♡을 걸으면 귀여울 김관필 (@glepdytlfjqm) 2015년 9월 4일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일란 셰누 군의 시신 사진을 바라본 게 삼 년 반 전. 최근에 올라온 참여연대 팟캐스트에서 헬프 시리아의 압둘 와합 사무국장의 말을 듣고 위의 트윗이 다시 떠올랐다.
(다소 부정확한 한국어로 설명된 것을 풀어본 것이기 때문에 원래 의도와 다른 말이 있을 수 있음)
"그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엔 제가 난민캠프에 있었어요. 요르단에 있는 자타리 난민캠프의 난민들과 있었는데 아동 관련 심리 교육과 치료를 맡고 있었는데 그 때 아일란 셰누의 사진이 돌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때엔 난민들과 같이 생활하고 놀고 치료하고 공부했었는데 난민들은 그 사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저는 한국에서 매일매일 어떤 뉴스가 나오고 있는지 보았는데 한국 사회에 상당한 난리가 났었잖아요 그 때. 사람들이 촛불 시위도 많이 하고 SNS와 모든 시민단체에서 사용하고 저걸 어떡해 하는데 난민캠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예요. 되게 황당했어요 솔직히.
"아니, 전세계가 사진 한 장에 난리가 났는데 우리 시리아인은 당사자 아냐? 우리가 신경을 안 써?"
그런데 어떤 아버지가 날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한 사진 때문에 국제사회에 난리가 났는데 아일란 셰누 전에 죽었던 오십만 명은 왜 신경을 쓰지 않는 거야? 이제야 그 한 명 때문에 신경을 쓰는데 반짝 관심 아냐? 거짓 관심 아냐? 자기 감정을 위해 흘린 눈물이지 시리아 난민을 위한 건 아니잖아?"
이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처음엔 그 아버지의 말이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 아저씨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셨어요.
"난 폭격으로 인해 자식을 세 명이나 보냈어요. 한 아이는 손상이 너무 심해서 시신을 수습도 못했고 한 아이는 아예 땅 속에 묻혀진 건지 시신도 못 찾았어요. 한 아이는 병원에서 거의 두 달 동안 치료를 받으며 매일매일 생사를 넘나들며 고생을 하다가 결국 죽었다고요." 아버지가 말하시길
"내 아들들 죽었을 때엔 보지도 않고 있었던 것에 답답함을 느껴요. 그 죽었다는 아이나 먼저 죽은 수십만 명의 아이나 똑같은 생명인데 수십만 명의 아이들에 대해선 신경을 왜 안 쓴 거예요? 이제 와서 한 아이를 신경쓰고 있다 그런들 우리는 기대하지 않을 거예요. 이 관심은 일시적인 관심이라고요. 며칠만 지나면 사람들이 다 잊어버릴 거고요."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것에 대해서 제가 그 땐 크게 신경을 못 썼는데 그로부터 이 년 반, 삼 년이 지났잖아요? 지금 보니깐 그 아버지의 말이 맞더라고요. 그 때 아일란 셰누의 이야기는 일 주일 정도만 지속되었고 사람들이 자기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다른 걸로 바꿔버리고 하면서 사진이 확 없어졌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죠. 시리아 난민에 대한 관심은 끊겼고요.
물론 그 사진 한 장으로 시리아의 상황과 난민들의 실상을 많이 알리게 되었지만 그건 일시적이었다고 보고 있고 한국 단체와 함께 터키에서 시신을 발견했던 곳으로 가서 가족과 친척 분들을 만났는데 아일란 셰누의 아버지가 계속 눈물을 흘리셨어요.
"아들이 그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배를 타고 유럽에 갈 생각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가족을 배에 태우고 유럽으로 갈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왜냐하면 어떤 행동을 취해도, 난민생활을 한다 한들 천천히 죽는 거고 배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죽는다 한들 빨리 죽는 거지 어차피 죽는 거 천천히 죽으나 빨리 죽으나 그 차이일 뿐이니깐요."
다른 시리아 난민들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의 여부예요. 난민캠프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죽을 건지 아니면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죽을 건지 아니면 시리아에서 폭격을 당해 죽든지..." 이런 선택 외엔 없다고 여기는 거죠. 잔혹한 현실입니다."
시리아뿐만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벌어진 대량학살 사건·테러 사건은 바로바로 전달되지만 중동이나 아프리카, 잘 사는 나라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에서 이보다 더한 일이 벌어져도 잘 보도되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매우 적다. 적은 정도가 아니라 없다가 정확할 것이다. 물론 사람이 세계의 모든 일에 다 관심을 가질 의무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압둘 와합 사무국장도 지적했듯이 뭔가 자극적인 일이 생기면 그런 자극을 감정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런 감정적인 소비는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자기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이미 모든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하긴 생각해보면 굳이 다른 나라로 갈 것도 없다. <공동정범>에서 이충연 씨가 다른 참사 피해자와 유족들의 오해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야 했기 때문이니깐...
끝난 문제라면 그걸 핑계삼을 수도 있겠지만 시리아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당장 시리아를 검색해서 나오는 기사도 정부군의 공격 예고 기사이다. 사람들은 계속 고통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은 손을 내밀기는 커녕 그 곳을 보지도 않고 있다.
아니면 뭔가 또 자극적인 먹이가 있어야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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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고발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믿기가 힘들었다. 구속되기 직전에 그것도 어머니가 쓰러지기까지 한 날에 그럴 정신이 있긴 할까 싶었고 다른 성추행 고발을 당한 진보 정치가들이 보여준 태도와는 달리 상당히 믿는 구석이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믿는 구석이 당당함이 아닌 인맥에 있었던 것 같지만...) TV조선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저 사람 그냥 장사꾼이었나?' 하는 생각에 관심을 끊었지만 그 전까지 내가 조금이나마 접했던 정봉주의 모습에서 잘못한 것이 있는데도 없다 우길 그런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도 성추행 고발을 실행한 피해자와 프레시안 쪽을 생각해 봤을 때 의심을 하기도 뭐했다. 실제로 빠들이 날뛰면서 상황이 종결된 지금에 와서까지도 자신들이 마음껏 가한 2차 가해의 원인을 프레시안에 돌리며 우기기에 오기까지 별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해도 훤히 보이는 난동을 보며 피해자와 프레시안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애매모호함을 전에 민병두 건을 다루면서 그냥 이름만 잠시 언급하는 정도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종결되었다.
나는 꼼수다를 들으면서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적극 지지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 중에 남은 사람은 주진우 기자 한 명뿐이다. 아니 뭐 주진우 기자도 정봉주 건에 대해서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던 걸 생각하면 믿을 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촉이 발달해 있고 의혹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끈질기게 추적하는 걸로 명성을 떨친 기자가 바로 옆에 있는 의혹에 대해서 그것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던 날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다. 정봉주 방패질에 나선 건 김어준 김용민이지만 주진우 기자도 이들과 계속 같이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정봉주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건지 몰랐을 리가 있을까? 설마 유시민처럼 파도가 일고 있는데 조개 줍는다 식으로 생각한 거라면...
결국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투 운동을 지지했든 아니든 이번 일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든(뉘우친 사람이 있긴 한가?) 아니든 간에 피해자에 대한 사과·걱정보다는 계산이 앞선다.(하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판에 사과할 게 있나.) 이런 게 바로 김어준이 막으려 했던(?) 진영 분열의 효과다. 정작 중요한 본제를 제쳐두고 서로의 유불리만을 따지게 된다. 이런 소용돌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게 되고 결국 피해자의 상처는 피해자만 더욱 깊이 떠안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사건을 망쳐놓고서 잘도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라는 말이 나오나 싶다. 아 이건 위대하신 시민들의 검증을 거쳐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건이니 괜찮은 걸까? 키득.
지금으로선 이런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게 끔찍하게 여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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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걸 보고 순간적으로 내가 무슨 헛것을 보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계속 쳐다봐도 저 현수막의 내용은 그대로이니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양천구청을 신월동으로 옮기겠다라... 구청을 옮길 자리가 이 근처에 있긴 한 건가도 잘 모르겠고 옮긴다 한들 뭐가 바뀌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목동 주민들이 가만히 있을까? 도대체 이게 균형발전과 무슨 관련인가 지역 간의 갈등만 키우는 거지.
하긴 생각해보면 다짜고짜 전재산 거는 분도 있으셨고(저번 지방선거 하고 총선에 나왔는데 이번에도 나오나?)
국회의원 권한으로 불가능하고 대통령이라 해도 불가능하며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은 십 년 내에 GDP 10만 달러 공약을 내거셨던 분도 있고(김현배)
고문수사관이 구청장 3선을 달리시질 않나...
강서구 시절부터 국회의원 6선을 달리신 분이 말년에 선거법 위반으로 끝나고...(김영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25/0200000000AKR20160325161351004.HTML
지난 총선 때엔 우연히도(?) 후보 세 명이 모두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걸로 명성을 떨쳤지(?)
http://www.nocutnews.co.kr/news/4876265
그렇게 양천제일 음주운전 대회에서 우승한 김용태는 "음주운전으로 갈고 닦은 드리프트를 보여주마!"를 외치며 자기 이익에 따라 정당을 왔다갔다 난리부르스를 췄잖아 ㅋㅋㅋ
립서비스라는 말을 이렇게 길게 늘어놓아도 참... 시민모임이 생기는 걸 기대한다니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신지 ㅋㅋㅋ(먼산) 구청장이 약속했으면 구에서 주도해야 되는 거 아닙니카 pic.twitter.com/cS56tHFljq
— 밤에 양파밭♡을 걸으면 귀여울 김관필 (@glepdytlfjqm) 2017년 8월 26일
현 구청장은 위안부 피해자 추모 동상 립서비스했었지.
결국 뭐 양천구 정치가들에게 내가 바랄 수 있는 게 뭔지를 모르겠다. 조금만 살펴봐도 개판이니 정의당 쪽 후보마저도 저런 이상한 말이나 하고 있는 거잖아? 아니면 다른 지역 정치가들도 대부분 저런 식인 건가? 지방선거를 두 달 정도밖에 남겨놓고 있지 않은 현재 내가 찍을 수 있는 표의 수는 극도로 줄어들어 있다. 이 정도면 뭣하러 투표에 참여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 외엔 들지도 않고... (차악을 선택하라는 개소리나 좀 안 들렸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모두가 꼭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투표시간을 대폭 늘리자고 했었지만 지금으로선 나 자신도 이렇게 의욕이 생기지 않는데 내 말 듣지도 않을 타인에게 뭣하러 투표를 강권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만 든다.
*억지로 투표소에 발을 들여서 억지로 찍어봤지만 결국 구의회와 시의회 지역구는 찍지 못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의당은 아예 없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기권했다. 양천구청장도 기권할까 하다가 억지로 양성윤 후보를 찍었다. 의욕이 없어도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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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어금니 아빠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중앙일보에서 공익을 위해서라며 용의자의 사진을 공개해 버리자 경찰 쪽에서도 공개를 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 전개는 옛날에 이명박 정부에서 용산참사를 덮기 위해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강호순 사건의 전개와 똑같다. 이 때에도 중앙일보가 먼저 공개를 했고 뒤늦게 경찰에서 이에 응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주장되는 것이 알 권리이다. 용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면 다른 피해자를 알 수도 있다, 그 사람을 경계할 수 있다는 이유들이 나오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다. '화제의 인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다.'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잡힌 사람의 얼굴을 지금 알아서 어떻게 할 것이며 안다 한들 그 사람이 무기징역(이라고 해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고)이나 사형을 받지 않는 한 언젠가는 결국 출소를 하게 될 텐데 사람들이 알고 거부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디로 가야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알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딱히 고려사항이 아닌 것 같다. 조금만 잘못을 저질러도 다 죽여버리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한 옛날 법들이 나오면 좋아할지도. 그리고 처벌을 결정하는 것은 법원이니 신상공개를 할지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도 법원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경찰이 고심을 해서 내리는 거라느니 하면서 당장 면상을 까발려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다수를 점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신상공개 결정 알 권리인가) 다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옳은 거라면 두테르테도 딱히 욕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으로 가겠지만 이런 말을 하면 "아, 그건 아니고..."라고 하겠지. 아니고는 개뿔이.
김종대 의원이 이국종 교수에게 한 말이 계속 논란이 되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개인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는 개인정보인 것이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침해하는 행위가 옳은 것인가? 이것에 대한 고민이 없이 그저 김종대 의원이 이국종 교수를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검색순위 1위에 올린 것이다. 김종대 의원이 말한대로 "관음증의 나라"임을 입증하듯이. 그리고 김종대 의원이 지적한 것은 이런 개인정보를 퍼뜨린 정부와 언론이었지만 그 정부와 언론은 사라지고 김종대 의원과 이국종 교수만 남았다.(http://v.media.daum.net/v/20171122171604521)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하는 건 이국종 교수를 비롯한 병원 사람들이지 그것을 일반시민들이 안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구태여 이것을 알리면서 상황이 커졌다. 김종대 의원을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들 중에서 위에 인용한 기사 외에는 모두 시민들의 화를 자극하는 기사들밖에 없었다. 자기들의 언론으로서의 책임은 덮어버리고 모든 화살을 김종대 의원에게 날렸고 멋들어지게 성공한 결과가 지금이다.
인류는 호기심을 통해 발전해 왔다. 하지만 그 호기심이 지나칠 경우 오히려 비극을 낳은 경우 또한 있었다. 위에 열거한 두 가지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호기심이 비극을 낳은 경우밖에 안 되고 거기에 언론과 정부가 장사를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런 "알 권리"라는 이름의 호기심이 개인정보를 마구 들춰보고 그것을 통해 장사를 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인지, 개인정보가 마구 돌아다니고 빅데이터 운운하며 이걸 부추기는 세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는 것 아닌지하는 생각에 더더욱 부정적인 기분이 자리잡는다.
이건 다음 블로그에 작년 11월에 썼던 글이다.
이 때만 해도 분명 피해자는 공개되어서 2차 피해를 입고 있는데 가해자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논리가 돌고 있었다. 난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어서 저렇게 썼는데 요즘 시류가 이상하게 바뀌었다. 발단은 JTBC였다. 계속해서 성추행·성폭행 피해자들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상황에서 대담을 진행하여 가해자를 고발하는 방식을 썼다.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해자가 이렇게 나설 경우 그로 인해 나중에 가해자의 보복이 가해질 수 있고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나빠지면 나빠졌지 절대 좋아질 수 없다. 그렇기에 위의 논리가 나왔던 건데 이걸 JTBC가 이용하면서 또다시 언론의 규칙이 훼손되게 되었다. 물론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이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그걸 넙죽 받으면 안 된다. 피해자를 설득해서라도 익명성을 보장해 줘야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JTBC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점점 피해자에게 익명성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완전히 잊어먹게 된 것 같다. 도리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떳떳한 피해자(!)라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김어준의 헛소리에 넘어가서 저렇게 나오는 것 같은데 김어준이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이 진영이 분열될까봐 예방차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김어준이 그 헛소리를 하는 순간부터 미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지지했던 사람들과 크게 여기지 않고 있다가 김어준 헛소리 듣고서 겁먹은 사람들로 나뉘었다. 후자에서 안희정·정봉주 사건 관련 기사와 이번 뉴스타파 영상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는 거고...(이렇게 되다 보니 자칭 보수들이 신나서 날뛰는데 그 사람들이 표현 면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있지만 나와 뜻이 맞는 댓글을 남기고 있다. 확실히 진영이 사람을 망친다.)
진영 논리 앞에서는 미투, 즉 인권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같다. 같다가 아니라 항상 그래왔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인권이 크게 훼손되었을 경우 그것이 자유한국당 쪽이 일으킨 문제일 경우 자칭 진보들이 신나서 날뛰고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일으킨 문제일 경우 자칭 보수들이 신나서 날뛴다. 거기에 피해자를 위한, 인권의 침해를 보완하고 발전시키려는 논의는 완전히 뒤로 제쳐진다.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해도 나중에 사건은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권은 항상 정치꾼들의 장사 대상에 불과했을뿐(미투 운동을 문재인 정부의 치적이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까지 나오는 판국...) 우선순위로 논의된 적은 거의 없었다.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친다. 결국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립 서비스만 바뀔뿐이지 마음은 그대로이고... 고민해봤자 답이 아예 없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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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운영한 사람들이 노동당도 움직였다면 성평등도 허수아비 정도로 생각한 것 아닌가? 허수아비도 일단 중요한 거니깐. 그냥 어이가 없다.
글을 쓰다보니 총선 당시 노동당에서 여성 당원들의 탈퇴 릴레이가 이어졌던 게 생각났다. 친한 당원이 다른 당원에게 성폭력을 당하고도 제대로 된 수습이 이뤄지기는 커녕 성차별적인 언행을 일삼고 이게 이어지는 것을 참지 못한 당원이 탈퇴 의견을 당 게시판에 공개했고 여기에 동조한 사람들도 나갔던 사건이었다.(조금도 저를 지켜주지 못하는 당에 대해 ‘내 당’이라고 말 할 자신이 없어져 탈당하려고 합니다.) 이 때의 일은 그저 일부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노동당은 옛날 운동권 조직이 가지고 있었던 구습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못한 비민주적인 조직이라고 해석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직접적인 지지를 한 적은 없지만 간접적인 지지나마 접기로 했다. 간접적인 것이니 그 쪽에서 가려울 것도 없겠지만 난 그저 아프다. 왜 매번 아파야만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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