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9'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4.12.29 :: 속 창가의 토토 19 3
문화/책 2024. 12. 29. 16:40

세계대전이 끝난 지 일 년이 지나 무더운 여름이 다시금 찾아오자 엄마께서 갑자기 "테츠코, 할 이야기가 있단다."라며 말을 꺼내셨다.

"테츠코는 토쿄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니?"

"토쿄에 있는 학교?"

토토가 토모에학원을 졸업했다면 진학하려 했던 학교가 있었는데 하타노다이에 있는 코우란여학교였다. 어릴 적부터 다닌 센조쿠교회 맞은 편에 있는 종교재단 학교로 아빠가 출정하게 되기 전에 코우란에 가는 게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엄마 이야기론 토쿄에서 만난 친구 분과 토토가 좋다고만 하면 그 분 집에서 하숙을 하며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한다.

"여기 있어봤자 음악이라든가 춤이라든가 영어 같은 테츠코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없을 거야. 테츠코만 좋다면 엄마 친구 집에서 코우란여학교에 다닐 수 있어. 돈이 조금만 더 모이면 키타센조쿠 집을 지어서 돌아올 수 있으니깐 테츠코가 코우란에 들어가고 싶다면 함께 가서 수속을 밟자. 어때?"

새빨간 사과, 시로야마 공원에 피는 벚꽃, 채소시장의 분주함, 누마하타 아저씨, 그리고 학교 친구들... 토토는 이 모든 걸 좋아했다. 하지만 산노헤이 시로야마 공원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내가 있을 곳은 이 곳이 아니라는 느낌도 주욱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토쿄에 돌아가고 싶어요."

토토는 엄마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여름방학 때였기에 토토는 학교 친구들에게 "토쿄에 있는 학교로 전학갈 거야."라고 전할 수가 없었다. 가장 사이가 좋았던 여자애에게라도 전하고 싶었지만 엄마께서 "내일 토쿄로 가자꾸나."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게 끝나버렸다.

토토는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하지만 그 후 연극을 하며 지방을 돌 때 토호쿠에 들를 일이 있으면 꼭 연락을 해서 그 아이가 살고 있는 하치노헤이에서 만나 차를 마시거나 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엔 손주에 이어 증손주까지 안아보게 된 할머니가 되었지만 처음 만난 날 교실 유리창을 닦으며 이야기했던 일을 서로 기억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피어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니

 

찬송가와 목탁

 

"기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반반 정도려나? 조금은 참아야겠죠.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건 기쁘지만 역시 가족이 다함께 살고 싶어요."

"집은 내년이면 지어질 테니깐 그 때까지만 참으렴. 테츠코는 코우란여학교에서 착실하게 공부하렴. 할머니가 노리아키 짱과 마리 짱을 돌봐주실 수 있으니깐 엄마도 장사에 집중할 수 있어. 다같이 힘을 내면 같이 살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아빠는 언제 돌아올까요? 아빠가 돌아오지 않고서야 가족이 모두 모였다 말할 수 없을 텐데."

"여러 사람에게서 정보를 모으고 있으니깐 걱정하지 마렴. 아빠는 시베리아에서 힘내고 있을 테니 우리도 좀 더 기다려주자."

스와노타이라에서 우에노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토토와 엄마는 줄곧 이야기를 나누었다. 햅쌀로 지은 따끈따끈 주먹밥을 베어물며 자신감으로 가득찬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토토도 "분명 잘 될 거야."란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온 지유가오카에서 엄마는 역 앞에 세워진 포장마차 같은 가게들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토토가 하숙생활을 하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주셨다.

"코우란 교복은 원래 점퍼 스커트이지만 다음에 올 때 만들어 가져올 테니깐 지금은 있는 옷으로 대강 맞추렴."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아오모리 사람들에게서 부탁을 받은 생활용품을 사들인 뒤 누군가가 가르쳐준 전당포에 들러 이러쿵저러쿵 교섭을 하셨다. 텅 비었던 엄마의 가방이 순식간에 빵빵해졌다.

"부탁받은 건 거의 다 입수했으니깐 야간열차를 타고 가면서 잘 수 있겠네."

엄마는 너무 바쁜 나머지 당일치기로 스와노타이라에 돌아가실 작정이셨다. 우에노역에 돌아오는 길에 토토를 친구 분 집에 맡기고서 토토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부턴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엄마는 좀만 있으면 다시 올 테니깐 잘 지내야 한다 테츠코?"

얼마 안 있어 저금도 충분한 금액에 도달하면서 엄마는 목수 아저씨에게 새로운 집을 지어달라 부탁을 드렸다. 엄마는 불타기 전 집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빨간 지붕과 하얀 벽만은 꼭 만들어 달라고 목수 아저씨에게 애원하다시피 강조를 했다고 한다.

 

토토는 코우란여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1888년에 성공회가 창립한 학교로 서양 저택 같은 건물을 가진 멋진 학교였지만 그 건물도 세계대전이 끝나기 삼 개월 전에 큰 공습을 맞아 불타버렸기에 지유가오카 옆마을에 있는 죠우신사, 통칭 "구품불(九品佛)"이라 불리는 절의 건물을 빌려 수업을 재개하게 되었다. '크리스트교 계열 학교인데 절에서 수업을 받다니 이상하네.'라고 생각했지만 구품불은 토모에학원에 다닐 때에도 잘 알고 있던 곳이었기에 기쁜 마음이 더 컸다.

구품불은 토토에게 있어서 특별한 장소였다. 토모에학원에서 "산책"이라는 수업을 할 때면 곧잘 걸어서 십 분 정도면 도착하는 구품불에 가게 되었다. 경내엔 재밌는 것이 많이 있어서 텐구의 발자국이 찍혀있다는 커다란 돌, 별똥별이 떨어졌다고 하는 깊은 우물, 커다랗고 새빨간 인왕님, 사람의 혀를 펜치 같은 것으로 뽑아버린다는 염라대왕... 옛날 이야기의 무대가 그대로 옮겨진 듯한 절이었다.

왜 죠우신사를 구품불이라 부르는 건지도 토토는 알고 있었다. 본존의 아미타여래상이 세 아미타실에 각각 세 개씩 안치되어 있어서 합쳐서 아홉 개의 불상이 있으므로 "구품불"이라 불린다고 토모에학원 선생님이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경내에서 커다란 은행나무를 발견했을 때 토토는 토쿄에 돌아온 뒤 본 것 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어!'라고 생각했다. 가을이 되어 열리는 열매를 곧잘 먹었기 때문이다. 은행 열매는 냄새가 고약했지만 튀겨서 껍질을 까 먹으면 맛이 좋았다.

이층 목조건물로 만들어진 "신도회실"이라 불리는 건물이 학교 건물을 대신했다. 코우란이 신세를 지기 전엔 토쿄대공습으로 불타버린 타카사고베야를 쓰던 마에다야마류 선수들에게 스모 연습장으로써 빌려준 적도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보니 스모 경기장은 이미 없앤 뒤였다. 있었다면 재밌었을 텐데하고 토토는 생각했다.

 

'문화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 창가의 토토 18  (0) 2024.12.28
속 창가의 토토 17  (1) 2024.08.10
속 창가의 토토 16  (0) 2024.08.07
속 창가의 토토 15  (1) 2024.08.05
속 창가의 토토 14  (1) 2024.08.03
posted by alone glowf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