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굣길에 놀러간 동급생 집에서 돌아가려 하니 "도중까지 바래다 줄게."라고 하는 친구와 둘이서 이케가미선이 지나가는 나가하라역까지 걸어갔을 때 역 앞에 "손금 봐드립니다"라고 써진 천을 걸고 앉아있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토토가 "헤에"라고 하며 남자를 바라보자
"안녕하세요, 손금 봐드립니다."
라고 말을 걸어왔다. 토토는 열여섯이었고 손금 같은 건 어른이나 보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깜짝 놀랐다. 젊은 남자는 몸집이 작고 얇은 회색 키모노를 입고 있었다. 대가 약해 보인달까? 그 시절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그랬듯이 영양부족으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상냥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모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 해서든 봐줬으면 했다. 요금이 써져 있는 부분을 보니 마침 토토가 가지고 있던 용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정도였다. 지갑을 확인해 본 뒤 머뭇거리는 친구를 설득하며 "부탁드려요"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 날 토토는 토끼 인형을 안고 있었다. 코우란에 도달한 라라물자 속에서 발견한 토끼는 예전에 카메라맨 숙부님이 선물로 주신 얼룩이 인형과 마찬가지로 토토의 소중한 보물이었다.
토토는 토끼를 안고 있지 않은 쪽 손을 내밀었는데 그 손은 다소 더러웠다. 토토는 걸어갈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저곳 만지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기에 이 날도 손금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더러운 상태였다. 이러니 엄마로부터 "손 좀 씻으렴!"이라고 잔소리를 듣지.
손금 보는 사람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토토의 손을 잡고서 당분간 빤히 돋보기를 통해 손바닥을 바라본 뒤 살며시 손을 놓았다.
"반대편 손도 보여주십시오."
그 말대로 토끼 인형을 다른 손에 든 뒤 손을 내밀었는데 그 쪽 손은 훨씬 더러웠다.
"죄송합니다, 더럽죠?"
토토가 이렇게 말하자 손금 보는 사람은 웃으며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손바닥 뿐 아니라 옆면이나 손톱 등을 본 뒤 손을 놓았다. 그리고서 토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결혼이 늦을 겁니다. 무척 늦을 거예요."
토토는 무심코 친구와 마주보며 웃었다. 열여섯 먹은 여자아이로선 결혼은 아직 한참 뒤의 이야기일 텐데 그게 늦어질 거라 한다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하지만 토토와 친구가 웃고 있는 것은 상관도 않고 손금 보는 사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돈 문제를 겪을 일은 없겠군요. 그리고..."
다시금 토토의 손바닥을 본 뒤 천천히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방방곡곡 퍼질 겁니다."
"방방곡곡"
토토가 되묻자 손금 보는 사람은 조금 곤란한 듯 헛기침을 했다.
"어떻게 퍼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오는 군요."
이런 말을 한 뒤 한 마디 덧붙였다.
"이나리 신님을 숭배하면 좋을 거예요."
이 말에 토토는 더더욱 크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라 영국 성공회가 만든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이나리 신님" 운운이 너무나 웃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토가 너무 웃어서인지 그 사람은 자신에 차있는 듯하면서도 친절한 어조로 단정지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토토가 감사를 표하며 요금을 지불한 뒤 역을 향해 걸어갔을 때 즈음엔 주변이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엄마에게
"방방곡곡 이름이 퍼진다네요."
라고 보고했다. 저녁밥 준비를 하던 엄마는 냄비를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뭔가 나쁜 짓을 해서 신문에 나오는 것 아니니? 조심 좀 하렴."
그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NHK의 "꿈 속에서 만나요."에 출연했는데 연말 밤에 에이 로쿠스케 씨, 아츠미 키요시 씨, 사카모토 큐우 씨와 함께 아카사카 토요카와 이나리 신사에 새해 첫 참배를 가게 되었다. 경내에 예능의 신 변재천도 모셔져 있어서 좋은 일이 있을 거란 이야기가 나오면서였는데 생각해보니 나가하라역 앞에서 손금을 보던 남자가 꽤나 용했던 것 아닐까?
코우란여학교 선생님들
코우란여학교 선생님들은 교장 선생님이나 채플린 선생님을 빼면 대부분 여자 선생님이었는데다가 코우란 졸업생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하나같이 애교심이 강한 분들이셨다. 침착성을 찾아볼 수 없는 토토 같은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코우란 학생다운 정갈한 몸가짐을 가지세요."라고 주의를 주곤 하셨다.
선생님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분은 영어와 성서를 담당하셨던 시호자와 토키 선생님이셨다. 시호자와 선생님도 코우란 졸업생이었다. 코우란여학교는 영국계 학교였기에 세계대전 중엔 군부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시호자와 선생님은 영국 유학 경험도 있어 친영파로 찍혀 교회를 통해 일본의 내부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 아니냐며 스파이 혐의로 헌병의 취조를 받았던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 힘든 시기를 넘겨 크리스트교 신앙을 기초로 하는 교육을 다시금 펼칠 수 있게 된 시호자와 선생님의 지도는 무척 엄했다.
"쿠로야나기 양, 오전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에게 와주세요."
예배가 끝난 뒤 시호자와 선생님에게 호출당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예배시간 동안 선생님에게 혼이 나거나 할 일을 한 적은 없었기에 대체 뭐람 하고 타이코다리를 건너 교무실로 가자 이런 말을 들었다.
"쿠로야나기 양이 어제 역에서 커다란 소리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던데 코우란 학생이면 그런 큰 소리로 말을 해선 안 됩니다."
엄한 말투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반항을 용납치 않는 박력이 느껴져 토토로선 "죄송합니다. 앞으론 주의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카네타카 로즈 씨가 오셨던 바자회 때에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자회에서 나온 수익은 전액 아동보호시설이나 양로원, 특수학교, 한센병 요양소 등에 기부된다. 선생님들 중엔 "일부만이라도 학교를 위해 쓰는 게 낫지 않나요?" 같은 의견을 내비친 분이 있었는데 시호자와 선생님이 의연한 태도로 "우리는 바자회를 연 거지 시장에서 바겐세일 장사를 한 게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확실히 사전에서 바자회를 찾아보니 "자선사업 등의 기금을 얻기 위해 여는 판매회"라고 써져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건 "곳짱 선생님", 고토우 야에코 선생님이었다. 곳짱 선생님도 코우란 졸업생으로 영어 선생님으로서 모교에 돌아오셨다. 원예부 지도에도 열심이셔서 학교가 불탄 곳에 화단을 만드셨다고도 한다.
"가진 것이 많아 느끼는 행복도 있지만, 가진 것이 없기에 느끼는 행복도 있죠. 양 쪽을 알고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거라 생각해요."
"인생을 살다보면 많은 사람과 어울리게 되겠지만 학교에 다닐 때 사귄 친구가 최고예요."
등등 곳짱 선생님은 많은 명언을 남기셨다. 빈번히 사전을 찾아보시는 모습도 학생들 기억에 남아 이런 자세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싫어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새로운 남자 선생님이 부임해 수학을 배운 적이 있었다. 남자 선생님은 드물었기에 토토와 친구들은 "여자들 속에서 남자는 왕따~"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선생님과는 왠지 모르게 상성이 나빴다. 수업 때에 "질문 있나요?"라고 물어보시기에
"대수학 같은 걸 왜 하나요? 무엇에 필요한가요?"
라고 물어보았는데 대수학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내일까지 생각해 올게요."
라고 말씀하신 뒤 다음날 이렇게 설명하셨다.
"기하학을 배우면 나무 위를 오르거나 하지 않아도 높이를 알 수 있습니다. 다리를 일부러 걷지 않아도 얼마나 긴지 계산해서 알 수가 있죠."
그건 필요한 거긴 하네라고 토토는 생각했지만 선생님이 이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수학은 무엇을 위해 있는 건지 잘 모르겠군요."
무척이나 한심한 대답이었다.
수학 시험을 볼 때 답안용지에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학생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죠."라고 쓰기도 했다. 새로운 교과서가 배포되었을 때 "전 못 받았는데요?"라고 말한 토토에게 선생님이 뻔한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빨갛고 커다란 글자로 "마이너스 10점"이라고 쓴 답안용지를 토토에게 주었다. 그 뒤로 당분간 토토가 이 선생님과는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자 며칠이 지난 뒤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이 불러세웠다.
"전에 시험지에 마이너스 10점이라고 썼던 건 교사로서 있을 수 없는 태도였다고 생각하기에 취소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꺼내기에 반성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지만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라고 되묻자 "0점입니다."라고 하길래 "됐어요. 취소 같은 거 필요없어요."라고 말해버렸다.
친구에게 "그 수학 선생 너무 싫더라."라고 말했더니
"수학 선생님이 싫은 게 아니라 애초 수학 자체가 싫은 거 아니야? 전에 있던 수학 선생님이 시험을 냈을 때에도 커다란 소리로 '있잖아, 모두 백지로 내지 않을래?'라고 외쳤잖아?"
라는 말을 들었다. 어라? 정말 그런 말을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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