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갔는데 영화 외에도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나는 로힝야족의 난민 사태에 대해서이고 하나는 독일로 파견되었던 간호사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한국에선 독일로 파견되었던 선생님들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선생님들 당신의 이야기로는 독일 파견 이야기야말로 하나의 기회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독일에 막상 왔을 때엔 교육 없이 바로 투입된 분도 있었고 환자의 수발을 일일이 다 들어야 하는 등(조정래 작가의 소설 <한강>에 잘 나와있다) 고초를 겪어야 했던 것도 있고 고향 땅이 그리운 것도 있었겠지만 적응을 하고 보니 수동적인 자세를 강요하는 한국의 사회와 가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독일이었던 것이다. 번 돈으로 차도 직접 몰고 다닐 수 있었고(사우디 아라비아 이야기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노동절에 한복을 차려입고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행진을 할 수도 있었다.(지금 한국 간호사들이 노동운동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요즘엔 태움 같은 이야기가 많이 돌아서 완화되긴 했지만...) 계약 기간이 다 되어서 독일에서 쫒겨나게 될 뻔했을 때에도 당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독일 정부에 맞섰고 그 결과 독일 영주권을 쟁취해내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와 같이 레즈비언이었던 분들도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지금도 가족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털어놓았다가 관계가 파탄난 경우가 나오고 그런 결과가 나올까봐 두려워 숨기고 있는 LGBT들이 수두룩하다. 하물며 1960,1970년대면 말 다한 거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어거지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물론 그 때에도 다른 곳으로 도망쳐서 같이 살았던 분들이 있다고 하지만 극소수이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에 오니 이런 것마저도 자유로웠던 것이다.
내가 어제 짜증을 냈던 획일적이고 왜곡된 역사관 강요의 폐해솔직히 그냥 맹목적 문재인 지지의 폐해...를 이런 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것만을 강조한 나머지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정작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유리천정을 논하고 있는 판인데 그 당시 독일로 일을 하러 갈 수 있었던 선생님들을 불행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국가주의를 내세운 박정희식 생각은 이제 걷어치울 때가 지나도 너무 지난 것 같은데 말이다.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807447
영화 <공동정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용산참사 피해자들이 어디까지나 폭도여야 하는 것처럼 구는 자칭 보수 쪽의 태도도 짜증나지만 어디까지나 불쌍한 피해자여야만 하는 것처럼 구는 자칭 진보 쪽의 태도도 짜증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피해자"로만 보려 하다가 <공동정범>식의 카메라가 작동하자 동정 속에 숨기고 있었던 속내를 드러냈다는 게 참으로 아니꼬왔다.
시사통 공개방송을 보러 갔다왔는데 예정된 방송을 다 끝마치고 녹음이 안 되는 시간에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나오셨다. 예정된 건 아니었던 것 같고 도중 쉬는 시간에 이야기가 오간 것 같다. pic.twitter.com/5j00ZU9sAz
— 혼잣말 김관필 (@tmalvp) 2016년 8월 30일
김영오 씨가 자신을 유민 아빠로 소개하는 것에 대해 그럼으로써 자기자신의 존재를 되찾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고 하셨다. 사건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되찾지 못한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은 그걸 외면한다
— 혼잣말 김관필 (@tmalvp) 2016년 8월 30일
이 때 어딘가에서 들려왔던 비명에 가까운 "에엑?" 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누군가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도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가 다 자기 자신, 개인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순간 아무리 동정이라 한들 일방적이고 독선에 가까운 행위에 불과할 수 있다. 난 그런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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