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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샌가 엄마는 밥집 뿐 아니라 채소와 과일에서 해산물까지 식료품이라면 무엇이든 취급하는 행상인으로서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돈을 바로 받는 장사다 보니 돈이 계속해서 쌓였는데 엄마에 의하면 밤중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할머니께서 지폐다발을 고무로 묶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크리스트교 신자는 돈 같은 건 하늘에 맡기는 것 아니었나?"
할머니가 돈을 세는 모습이 웃겨서 엄마가 그렇게 말을 하시니 할머니는 웃으며
"돈도 고마운 존재 아니겠니."
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할머니는 엄격한 크리스트교 신자이셨기에 "재물은 하늘에 맡겨라."를 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마저 "세속적인" 기쁨을 느끼게 하는 돈다발이란 대체 얼마나 두터운 존재였던 것일까?
채소시장 한편에서 연극 한마당이 열렸던 적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해, 봄이 되어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에 강을 건너는 다리가 침수되어 갈라져 버려 토우호쿠선이 단절되었다. 이 때문에 큰 마을에 가기로 했던 예정이 취소되어 버린 유랑극단이 할 수 없이 스와노타이라에서 한 판 벌이기로 한 것이다.
타카라즈카극단에서 남자 역을 맡았던 미나토가와 미사요 씨라는 분이 좌장을 맡아 <유키노죠우 변화>라는 연극을 올렸다. 무대는 직접 만든데다가 객석은 아예 없어서 시장 바닥에서 대자리 같은 걸 깔고 보았지만 매일같이 관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토토도 친구와 함께 보거나 그냥 혼자 보기도 하면서 매일처럼 찾아가 맨 앞자리에서 성원을 보냈다.
토토는 <유키노죠우 변화>보다도 시작 전 관객몰이를 더 좋아했다. 하얀색과 갈색이 들어간 짝짝이 신발을 신은 아저씨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꽃이 피고 꽃이 지는 밤에도~ 긴자의 버드나무 아래서~"라는 가사가 담긴 <토쿄랩소디>라는 노래를 부르셨다.
긴자는 일 년에 한 번 아빠가 데려가주신 추억이 담긴 마을이다. 시세이도우파라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킨타로에서 장난감을 사고 니혼극장 지하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아저씨의 노래와 아코디언을 통해 되살아나곤 했다.
나, 긴자를 알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밀려와 토토는 애써 참았다. 함께 대자리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긴자가 보고 싶어." 같은 말을 했다간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 아이를 배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참았다.
선로가 좀처럼 복구되지 못했고 짝짝이 신발을 신은 아저씨가 매일 "꽃이 피고 꽃이 지는 밤에도~"를 불렀으며 토토도 매일 앞자리에서 "꽃이 피고 꽃이 지는 밤에도~"에 빠져 친구와 함께 박수를 쳤다.
그런 어느 날, 토토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손님이 두 명 기다리고 있으셨다. 별일이네 하고 지켜보니 한 사람은 짝짝이 신발 아저씨였고 다른 한 사람은 조금 마른 여자로 낯이 익거나 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분이 화장을 하지 않고 맨 얼굴을 하고 있는 <유키노죠 변화> 좌장이셨다.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가발을 쓰고 있는 모습 밖에 보지 못했으니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있지, 테츠코가 연극에 한번 참가해 보는 게 어떻겠냐 물어보시네? 댁의 따님은 반드시 배우로서 성공할 겁니다. 맡겨만 주시면 미래의 좌장으로 만들어 돌려드리겠습니다라는데 어떻게 할래?"
어디를 어떻게 보신 건지 토토를 스카웃하러 오신 것이다. 순간적으로 "재밌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중학생인데다가 아빠는 시베리아에서 돌아오지 못하시고 있던 터라 상담을 할 수도 없으니 아쉽지만 "거절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토우호쿠선이 복구되어 유랑극단도 커다란 마을로 떠나갔다. 채소시장 창고는 허물어졌고 토토도 이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 좌장님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건 십이 년이나 지나서 아침 TV 방송 <오가와 히로시 쇼>에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란 코너에 출연 의뢰를 받게 되었을 때로 스태프 분께 그 때 만났던 좌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다녔던 토토를 좌장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권유해 주셨던 분을 다시 한번 더 만나보고 싶었다.
당일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방송에 출연했지만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그 미나토가와 미사요 씨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으셨다. 대신에 남편 분과 스튜디오에서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었는데 아직 건강하셨을 무렵 TV에 나오기 시작한 토토를 보자마자 "아, 이 아이야, 이 아이!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니깐?"라고 하시며 기뻐하셨다고 한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했던 토토에게 말을 걸어주시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신 미나토가와 씨에게 감사인사를 한 마디라도 전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웠지만 TV에 나오는 모습을 봐주셨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엄마는 농협 일을 계속 해오셨고 밭일이나 재봉부터 친척 돕는 일까지 이 이상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에 매진하셨다. 잠잘 틈도 없이 바쁘셨을 엄마가 언젠가부터 상태가 좋은 옷을 골라 입고 밤중에 어디론가 가시는 일이 늘어났다. 어디에서 어떻게 알아낸 건지 엄마께서 노래를 잘하신다는 평판이 돌면서 결혼식 연회 자리에 불려나가게 된 것이다.
음악학교 성악과 출신이시니 오페라 <아리아> 같은 걸 부르고 싶으셨겠지만 결혼식에선 "비단으로 짠 허리띠에서~"라는 가사가 들어간 <신부인형>을 부르며 환호와 갈채를 받았다 한다. 그 외에도 <하마베의 노래>나 <달맞이꽃> 같은 유행가를 부르며 노래실력을 뽐내곤 하셔서 결혼식이 끝나면 모두들 "고마워요, 고마워요."라며 크게 기뻐해 돌아갈 때 손님용 선물을 잔뜩 안겨주었다.
엄마는 이 선물을 노리고 있었다. 과자 같은 것이 없다시피 했던 시대였으니 쌀가루를 달게 만든 미진코를 잉어 형태로 만든 분홍색 "미진코과자"를 선물로 주곤 했다. 토토와 동생들도 이 달콤한 잉어 과자를 무척 좋아했기에 엄마가 결혼식에서 돌아오자마자 잉어를 감싼 보자기를 재빨리 풀었다.
"우와~"
잉어의 모습이 나타날 때마다 토토와 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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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기뢰에 맞거나 하지 않고 아오모리에 도착했지만 토우호쿠선 플랫폼 또한 시장통이었다. 기차시간표도 엉망이라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가 오지 않았는데 스와노타이라 직행 기차는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될 거라는 설명을 들었다.
"어쩔 수 없구나. 모두들 지쳤을 테니 일단 역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 일찍 오는 기차를 타자꾸나."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동안 플랫폼에 기차가 들어왔다. 토토는 왠지 몰라도 이 기차에 꼭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이 기차 타요."
엄마는 즉각 "안 돼."라고 말했다. "이 기차는 시리우치까지밖에 가지 않는단다."
"시리우치까지 갈 수 있음 괜찮잖아요."
"이렇게 혼잡한데 시리우치에서 다른 열차로 갈아타려다가 못 탈 수도 있잖니."
평소대로라면 엄마 말씀에 따랐을 토토지만 이 때만은 이 기차를 타고 한시라도 빨리 아오모리역을 벗어나고 싶었다.
"시리우치에서 걸어서 가도 그렇게 멀지 않아요."
토토는 그렇게 고집을 피우며 열차 승강구에 있는 철제 손잡이를 잡고서 "탈래, 탈래, 탈래!"라며 떼를 썼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지만 드물게 고집을 부리는 토토에게 엄마도 손을 들며 기차를 타게 되었다.
시리우치에 도착했을 때엔 해도 거의 저물어 있었다. 스와노타이라로 향하는 기차는 언제나 올 수 있을런지 알 수 없는 체 시리우치역의 작은 대합실에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야 했다.
살짝 땅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는데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이것이 7월 28일에 일어난 아오모리 대공습이었다. B-29기가 떨어뜨린 소이탄 수만 발이 아오모리에 있는 마을 곳곳에 떨어져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시가지 태반이 소실되었다. 만약 그 때 아오모리역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면 토토네 가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도망을 다녔을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오싹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토토네는 시리우치에 도착한 순환선을 타고서 간신히 스와노타이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엔 엄마의 야생의 감을 의지해온 토토가 어째 그 때만은 "이 기차를 타야만 해."라고 생각했는지 지금으로서도 신기할 따름이다.
채소시장의 추억
1945년 8월 15일. 그 날엔 아침부터 스와노타이라 역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며 어른들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디오에서 깜짝 놀랄 소식을 알려준다나벼."
점심 즈음이 되자 어른들이 너도나도 스와노타이라역 근처로 모여들었다. 토토도 신경이 쓰여 채소시장에 있는 연립주택에서 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와중에 가게에 놓여져 있던 라디오를 둘러싸고 모여있는 사람들이 모두들 숨을 죽이고 천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른들이 모여있는 곳 한구석에서 토토도 열심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방송이 끝나자 어른들은 모두들 "전쟁이 끝났다는구먼."이라고 했다. 근처에 있던 아저씨의 셔츠를 잡아당기며 "전쟁이 끝났다니 정말이에요?"라고 물어보자 아저씨는 다소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끄덕였다.
엄마에게 알려야겠다 생각했지만 농협에서 일하고 있으실 시간이었다. 정말 전쟁이 끝났다는 건지 어쩐다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에 누마하타 아저씨 댁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달리고 달려 아저씨 댁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몰아쉬며
"아저씨, 전쟁이 끝난 거예요?"
라고 여쭤보자
"그려, 끝났데이..."
라고 답해주셨다.
토토는 안심했다. 기쁘다기보단 안심했다는 말이 딱 맞았던 것 같다. 이제 공습을 당할 일도 없을 거고, 아빠가 돌아올 것이고, 토쿄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같은 걸 생각했더니 점점 기뻐졌다. 토토는 아저씨 댁에서 사과창고까지 들뜬 마음으로 돌아갔다.
전쟁이 끝났지만 토쿄엔 돌아갈 집이 없었다. 토토네는 사과창고에서 역 앞에 있는 연립주택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홍수가 일어나 강이 범람해 사과창고가 잠겨버렸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집은 스와노타이라역과 꽤 가까웠고 채소시장과도 붙어있다시피했다. 학교에 다니기 쉬워진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스와노타이라 채소시장엔 먼 곳에서 물건을 사러 온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 첫 기차를 타고 왔다. 토쿄 방면에서 오는 사람도 있어서 어느 아침에 토토가 학교에 가려고 나왔더니 키가 작은 아저씨가 서있는 게 보였다. 채소시장에 물건을 사러 온 건가 했는데 왠지 토쿄 사람 같아 보였다.
"제가 저녁에 기차를 타고 돌아갈 건데 이 쌀로 밥을 지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손에 쥔 마대 안에 쌀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토토는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면서도 곧바로 엄마를 불러 "이 아저씨가 부탁할 게 있다나봐요."라고 말하며 집을 나섰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스와노타이라역에서 그 아저씨가 커다란 상자를 지고 있는 게 보여 집에 돌아가 "엄마, 그 아저씨에게 밥 지어줬어요?"라고 여쭤보자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그랬단다."라고 말하셨다. 전쟁이 끝났어도 쌀은 아직 배급제로 돌아갔으며 바깥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엔 자신이 먹을 쌀을 반합에 넣고 가지고 다니며 일터 근처에서 밥을 짓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 된 밥을 주먹밥으로 만들어 가지고 다니다간 기후에 따라 썩어버리는 일도 있어서 소중한 쌀을 아껴 먹을 수 있도록 각자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다음 날, 토토가 학교에 가려고 하자 연립주택 앞에 아저씨가 네다섯 명 서있었다.
"여기에서 밥을 지어주신다 들었습니다. 좀 부탁드립니다."
그 후 엄마는 농협 일과 병행해서 밥을 지어 주먹밥으로 만든 뒤 저녁에 대나무 껍질에 싸 건내는 봉사활동 같은 일을 시작하셨다. 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으셨으니 할머니에게 밥 짓는 일을 부탁드리면 될 것 같았지만 할머니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밥을 지어본 일이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토토는 어른인데도 밥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을 처음 봤다.
엄마께서 그런 할머니께 밥 짓는 방법을 가르쳐드리려 하지도 않고 시간을 쪼개가며 묵묵히 멀리서 물건을 사로 온 사람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셨다. "얼마인지요?"라고 사람들이 물어봐도 엄마는 "얼마예요."라고 답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이 오가지 않게 되면 "공양"이라는 명목으로 몇 푼 대가를 놓고 가곤 했다.
그런 일이 계속 되자 엄마가 결단을 내리셨다. 맡아둔 쌀을 밥으로 지어서 주먹밥을 만드는 봉사활동은 관두고 밥에 된장국이나 생선구이 등 반찬을 더해서 정식처럼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장사를 떠올리셨다.
"밥 짓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쓰인 종이를 문에 붙이시고 풍로, 냄비, 도마, 식칼, 식기 등을 조달해서 연립주택의 안마당을 식당처럼 차리셨다. 전쟁이 끝나자 채소시장이 점점 예전의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었지만 식사를 할 곳은 아직 부족했기에 엄마네 가게는 순식간에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반찬으로 쓰인 생선은 매일 아침 하치노헤에서 오는 물건들 중 기운이 좋아보이는 걸 골라샀는데 엄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무츠미나토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선 오래 쓸 수 있는 말린 오징어 등을 떼어 오셨다. 무츠미나토역 앞에는 이사바(五十集)라 불리는 생선을 다루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거 모여 시장 같은 기능을 하는 거리가 있었다.
토토도 엄마와 함께 가서 장보기를 돕기도 했다. 무츠미나토는 시리우치에서 하치노헤선을 타고 네 정거장을 가면 있었는데 타는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면 편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역에서 내리면 길 곳곳에 매대를 놓아두기만 한 곳에 다양한 생선과 조개와 건어물 등이 놓여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역 근처에 해산물이 주욱 늘어져 있는 그 거리는 무척 활기가 넘쳐 토토가 매우 좋아하는 곳이었다. 재밌었던 게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캇챠"라고 불리는 아주머니들 뿐이었다. 어부는 남자 일이라고 정해져 있었기에 밤중에 어선을 타고 아침엔 녹초가 되어 돌아오니 분류가 끝나면 그 후 손님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건 여자들의 차례가 되는 것이었다.
무츠미나토의 "이사바 캇챠"들은 모두 활기차고 친절했다. 어떤 생선이 제철이고 어떤 요리법이 좋은지 등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다. 그런 시장 속에서 엄마가 "많이 샀으니깐 좀 깎아주세요."라고 말하시며 흥정을 벌이고 있는 걸 보니 "굳세지셨구나."라며 감탄스러웠다. 시장에서는 캇챠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가게에서는 토쿄 정보를 알아보며 엄마의 밥집은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라고 할 수 있는 첨단 장사를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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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네가 피난을 왔던 3월엔 아직 매화 외엔 피어있는 꽃이 없었지만 4월 끝 무렵엔 여러 가지 꽃이 만개했다.
산노헤성 터엔 "시로야마 공원"이란 곳이 있어서 그 부근이 벚꽃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한데 친구의 권유로 보러 갔을 때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감주나 경단 같은 걸 파는 가게들이 늘어섰겠지만 전쟁 중이라 그럴 수도 없어."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시로야마 공원에는 센조쿠이케 공원보다 몇 배는 더 커서 토쿄에서도 곧잘 보았던 왕벚나무도 있었다. 왕벚나무가 지기 시작하면 진한 분홍색을 띈 겹벚나무와 노란 녹색꽃벚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토토는 프릴처럼 생긴 겹벚나무와 녹색꽃벚나무의 귀여운 꽃잎에 푹 빠졌다.
산노헤 사람들은 이 시로야마공원이 자신들을 지켜준다 여기는 듯 수업을 대충 진행하던 역사 선생님도 이 산에 어떤 식으로 성을 세웠는지, 가신의 집은 어디에 있었고 적을 격퇴하기 위해 어떤 방책을 세웠는지, 자료를 보여주며 알려주셨다. 거기에 실려있던 그림 속 산성은 민달팽이 같은 모양으로 되어있었다. 왕벚나무가 만개할 즈음엔 민달팽이의 등에 해당하는 부분이 옅은 빨강색 구름을 지고 있는 것처럼 푹신푹신해 보였다.
벚꽃이 지자 하얀 사과꽃이 피기 시작했다. 사과꽃이 지고 작은 열매를 남기는 6월이 되자 토토네가 만들었던 벌레 쫓는 주머니가 활약하게 되었다. 이 즈음엔 앵두 재배가 한창이어서 농협에 근무하고 있던 엄마가 알이 고르지 못한 앵두를 가지고 돌아오시곤 했다. 못 생기긴 했어도 맛이 좋은 기쁜 선물이었다.
토토는 혼자서 시로야마공원에 가기도 했다. 아직 성이 세워져 있었을 때 거기에서 내려다보면 어떤 풍경이 펼쳐졌을지 상상해 보며 분명 논과 밭이 잘 보였을 거란 생각에 그리스도 마을로 가는 버스 창문 너머로 본 풍경이 펼쳐졌다. 그 때엔 여기 사람들은 왜 이런 산골에 사는 걸까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조상대대로 물려져온 땅에 애착을 갖고 있을 거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고향은 좋지.
토쿄에 돌아가고 싶어.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친구도 생겼고 아오모리 살이가 익숙해졌지만 가끔 토쿄가 생각날 때마다 "돌아가고 싶어."라며 키타센조쿠 집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공습을 당할 염려는 사라졌지만 옛날과 같은 자유로운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키타센조쿠 집이 공습으로 타버렸다는 걸 토토가 알게 된 것이 이 즈음이었다.
구사일생
스와노타이라에서의 생활이 간신히 안정되었을 무렵 엄마는 음악학교 시절 신세를 졌던 토쿄 코우지마치 숙부님 집과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다. 숙부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피난을 가고 싶으니 스와노타이라에 있는 집 중에 찾아줄 수 없느냐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 때에도 열심히 어떻게 받아줄 곳이 없나 찾으셨다. 한 달 정도 지나 숙부님 가족 네 명이 스와노타이라에 찾아왔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엄마를 의지하는 친척들이 계속해서 몰려와 여름엔 한번에 열 명이 넘는 친척이 스와노타이라로 집합했는데 모두 토쿄 사람들로 피난을 갈 곳을 찾지 못한 것이다.
홋카이도 타키카와에서 살고 있는 엄마의 아빠, 토토의 할아버지가 협심증을 일으켜 돌아가신 것도 그 여름이었다. 전보로 연락을 받은 엄마는 서둘러 토토와 동생들 셋을 데리고 홋카이도로 향하셨다.
그 당시엔 혼슈와 홋카이도를 왕복하려면 그야말로 목숨을 건 여행을 해야 했다. 아오모리에서 하코타테까지 츠가루해협을 건너는 세이칸 연락선은 폭격기와 잠수함에게 절호의 표적이었고 애초 표를 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토토네는 기차에서 배로 갈아타기 위한 연락통로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여기에 하코타테에서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리고 나서야 타키카와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개업의였던 할아버지는 이미 유골함에 모셔졌지만 뒷정리다 뭐다 해서 며칠을 머물러야 했다. 그 동안에 엄마가 생각하신 게 있었던 듯 어머니를 돌봐드리는 건 장녀의 역할이라며 엄마의 엄마, 토토의 할머니를 스와노타이라로 모셔오기로 했다.
할머니는 신기한 분이셨다. 타이쇼우 시대에(타이쇼우 원년은 1912년으로 1933년생인 쿠로야나기 테츠코 씨를 생각하면 할머니가 이 때에 학교를 다닐 나이라 생각하기 힘들어 메이지 시대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역자주) 센다이에 있는 종교학교를 다녔던 아가씨였는데 할머니의 가족들은 "밥을 직접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집에 시집보낼 수는 없지."라고 정해뒀다고 한다. 시집을 간 상대가 의사였기에 나름 유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틈만 나면 성서를 펼치고 있던 정말 의젓한 할머니였지만 취사 세탁을 못해서 전부 간호사 선생님이나 가정부 분께 맡기고 있으셨다.
엄마와 할머니에 아이가 세 명, 모두 합쳐 다섯 명이 함께 하코타테로 돌아올 때까진 괜찮았는데 하코타테역에서부터 세이칸 연락선을 타려고 하는 사람들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신문지를 깔고 앉은 채 "무슨 배를 사흘이나 기다려야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풍로로 밥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토토네는 언제나처럼 손을 잡고서 방공두건을 쓰고 몸을 밀착하며 행동했다. 할머니는 성서를 품에 안은 채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우고 있으셨다.
연락선에 타자 선장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토토에게 말을 걸며 "적군이 바다에 설치한 기뢰를 건드리면 이 배는 단숨에 가라앉아 버릴 거야."라고 했고 토토는 걱정이 되어 배에 타고 있는 동안 계속 해수면만 지켜봐야 했다.
1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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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엔가 엄마가 농협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과 창고 창문을 통해 채소를 짊어지고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급료 외에도 망가진 사과와 감자 같은 걸 어차피 팔지 못하니 가져가세요라며 줄지도 몰라."
일을 하는 건 태어나 처음이셨지만 엄마에겐 뭐든 부딪쳐 보라는 정신이 있었다. 농협 면접에서는 "주판 다룰 줄 아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음악학교 중퇴 후 곧바로 결혼했으면서 "네, 할 수 있어요."라고 답하며 채용되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주판은 경리 담당이 다루었기 때문에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리셨지만 농협에서 잡일을 하며 받는 급료로는 벅찼기 때문에 밤에 이웃사람들 옷을 만들어 주는 삯일을 하게 되었다. 미싱이 없었으니 손바느질로 해야 했지만 엄마가 스타일북을 보며 만든 옷은 토토가 보기에도 멋진 작품들이었다.
피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토토는 온몸에 부스럼이 생겨나 고생해야 했다. 해조면 밖에 먹지 않았던 탓인지 영양실조에 걸려서 부스럼이 여기저기 났던 것이다.
표저에도 걸렸는데 손발톱 사이에 세균이 들어가 화농이 쌓이는 병으로 이 또한 영양실조가 원인이었다. 요즘엔 표저에 걸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게 펄쩍 뛰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온몸에 부스럼과 표저로 인한 욱신거림을 토토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전쟁 중이라 병원에 가도 약조차 받을 수 없었으니 토토 뿐 아니라 모두들 참으며 살아가야 했다.
그런 토토를 보며 엄마는 단백질을 섭취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되었다. 토토 가족은 스와노타이라에서 자라는 과일과 야채를 바구니 두 개에 한 가득 넣은 뒤 행상인이 된 것처럼 기차를 타고 하치노헤항구로 향했다. 항구에 도착하자 어선을 타고 있던 선원들에게 "실례합니다. 토쿄에서 왔습니다만 채소와 물고기를 교환할 수 있을까요?"라며 물물교환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항구 사람들이 기세 좋게 "그러쥬, 여기 있수다!"라며 과일과 채소를 막 잡은 생선들과 교환해 주셨다.
엄마는 재빠르게 생선조림을 만들어 주셨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빠의 영향으로 토토는 생선을 그다지 먹어본 적이 없어서 머리나 꼬리 부분을 먹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조심조심 입에 넣어보니 기름진 맛이 너무나도 맛있었다. 생선조림을 먹기 시작한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아서 온몸을 덮었던 부스럼이 눈에 띄게 줄었고 열흘 정도 지나자 완치되었다. 단백질의 효과란 대단하구나!
엄마의 환경적응력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감동적일 정도였다. 덕분에 피난을 와서도 주변 사람들과 양호한 관계를 쌓을 수 있었고 토토도 노리아키 짱도 새로운 환경에 녹아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토토와 동생들에게 말했다.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저녁밥 시간이 되어서 밥 먹지 않겠니 하고 물어보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먹으렴."
그 말을 들은 토토는 당황했다. 토쿄에서 살 때엔 "아무리 권해와도 저녁밥은 집에 돌아와서 먹으렴."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남의 집 밥을 먹거나 해선 안 된다고 했잖아요?"
토토가 이렇게 말하자 엄마가 즉시 답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남의 집 밥이 영양가도 많고 좋은 반찬을 먹을 수 있잖니?"
그건 사실이었다. 사과 창고에서 엄마가 만드신 저녁밥은 채소가 많이 들어간 국물이나 찐 감자가 대부분이었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남부전병을 으깨서 수제비 대용으로 쓴 국물을 가끔 먹기도 했다. 때때로 생선조림도 먹었고 토쿄 때와 비교하면 천국이었지만 하얀 쌀밥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계란이나 닭고기를 입에 대 본 적은 아예 없었다.
엄마가 "저녁밥은 남의 집에서"라고 말씀하신 뒤로 노리아키 짱은 저녁이 되기만 하면 서둘러 친구집에 가게 되었다. 다섯 살배기 남동생은 귀여운 얼굴에 무척 애교가 넘쳐서 남의 집에 놀라갈 때마다 "도련님, 우리 집에서 먹고 가셔."라며 권유를 받았다. 여러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에 노리아키 짱은 무척 만족해 했다.
엄마가 "노리아키 짱 좀 데려오렴. 누구네 집엔가에서 밥을 얻어먹고 있을 거야."라고 말하셔서 남의 집 마루에 앉아 즐겁게 저녁밥을 먹고 있는 남동생을 발견하곤 했다. 그럴 때엔 바깥에서 몸을 숙이고 노리아키 짱이 나오길 기다렸다.
토토도 배가 고팠긴 했지만 "나도 먹을래."라고 할 수가 없었다. 노리아키 짱이 나오면 그 집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데리고 돌아갔다. 남의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노리아키 짱의 영양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진좃코 그려보그라."
토토는 스와노타이라에서 기차로 한 정거장을 가야하는 산노헤 학교에 가게 되었다. 기차는 하루에 일곱 편 밖에 없었는데 아침에 사과창고에서 이십 분 정도 걸려 스와노타이라역에 도착하면 거기에서 기차로 오 분 정도 걸려 산노헤역으로 간 뒤 학교까지 걸어서 삼십 분 정도 걸렸다. 역 주변에는 건물이 거의 없었고 마을은 역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산노헤 마을은 난부번이 세운 산노헤성이 있는 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는데 토토가 다니게 된 학교도 그 근처였지만 그 당시엔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매일같이 과일을 종이로 싸거나 농작업을 돕는 등 근로봉사를 해야 했다.
등교 첫날에 토토는 책상에 앉자마자 주변의 시선을 느꼈다. 새로 들어온 토토를 신기하다는 듯 거리를 두고 보았던 것이다. 토토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한 결과 공책을 펼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러자 여자아이들이 몇 명 다가와 "베코 좀 그려보그라." "개 좀 그려보그라."라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베코는 소를 뜻하는 사투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도 잘 그리지 못했지만 친구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를 그렸다. 어째 비쩍 마른 소를 그려버렸는데도 모두들 "잘 한데이~"라며 감탄했다.
다행이다! 이걸로 친구를 사귈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여자아이가 토토에게 말했다.
"진좃코 그려보그라."
엥, 진좃코? 대체 뭘 말하는 거지. 토토는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에 당황했지만 "그게 뭔데?"라고 말했다간 모처럼 달아오른 분위기를 망쳐버릴 수도 있었다.
토토가 심사숙고한 끝에 그 여자아이에게 공책을 건네며 산노헤 말투처럼 말해봤다.
"느그네 진좃코 그려볼래?"
여자아이가 공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옆에서 지켜보니 대머리 인형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오모리에선 "인형"을 "진좃코"라고 하는 거구나.
작전이 성공해 토토는 머리에 리본을 단 인형을 그렸고 또다시 "잘 한데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걸 계기로 토토는 교실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었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기 힘들었던 단어들도 일 주일 정도 지나니 알 수 있게 되었다.
"진좃코 그려보그라."고 했던 여자아이와 무척 사이가 좋아졌는데 공부를 잘하고 귀여운 아이로 토토는 이 아이와 항상 함께 다녔다.
근로봉사 때 하는 과일 싸기는 수확 전 사과 열매를 벌레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작업이었다.
"징글징글하데이, 더는 싫다!"라며 뛰쳐나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토토는 혼자 남아있어도 질리거나 하지 않고 열심히 과일을 쌌다.
잡지 페이지를 자른 것을 손톱으로 당겨 정리한 뒤 몇 장을 조금씩 어긋나게 나열한 뒤 재빨리 풀을 발라 고정시켜 한 장씩 차례차례 모아 주머니 형태로 만들었다. 친구는 교실에서 나가며 정해진 것처럼 토토에게 "질리지 않나?"라고 물어보았지만 "안 질려."라고 답하며 계속해서 주머니를 만들어갔다.
거름통에 담겨있는 것을 운반하는 근로봉사도 있었는데 토토는 사실 이 근로봉사가 그렇게 싫지는 않아 오히려 솔선해서 임했다. 하지만 멜대를 질 때엔 뒤가 아니라 앞쪽에서 졌으면 싶었던 게 뒤에서 질 경우 가는 도중 넘어지거나 하면 통 안에 든 걸 뒤집어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멜대의 밧줄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언덕길을 올라가던 도중 뒤에서 지던 아이가 그걸 뒤집어 쓴 걸 보고 너무나 불쌍하게 보여 토토가 그 아이를 학교에 있는 선생님에게 데려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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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창고 대개조
버스가 시리우치에 가까워지면서 엄마가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만지고, 코를 풀고, 누마하타 아저씨가 보내온 편지를 다시 읽고... 토토는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입으로는 "아, 이제 스와노타이라에 다 왔구나."라고 말하고 있지만 누마하타 아저씨가 토토네를 받아줄지 어쩔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친척도 아닌데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은 토토로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에노를 출발한 후 사흘 간 토토네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자기들만으로 어떻게든 해보자식으로 덤벼선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고 그리스도 묘지에서 기도를 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누마하타 아저씨도 토토네를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을 텐데... 토토는 그렇게 빌지 않을 수 없었다.
시리우치역 앞에서 내려 토우호쿠선의 시간표를 보니 밤이 되기 전엔 누마하타 아저씨 댁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누마하타 아저씨에게 신세를 지기로 정한 거야."라며 자신에게 타이르듯 말씀하셨다.
시리우치에서 열차를 타고 세 정거장을 거쳐 토토네는 스와노타이라역에 도착했다. 역무원 아저씨에게 누마하타 아저씨 댁 주소를 보여주니 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걸어서 삼십 분 정도 거리였다. 역무원 아저씨가 알려주신대로 가고 있으려니 채소가게 같은 건물이 보였는데 그 앞에 있는 도랑 같은 구멍에 새빨간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앗, 사과다!"
토토는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사과를 줍고 있었더니 엄마가
"이렇게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서 떨어진 채 놔둘 정도니 누마하타 아저씨 댁에 가면 제대로 된 사과가 있지 않겠니?"
라고 말씀하셨다.
"제대로 된 게 있으면 버릴게요!"
토토는 그렇게 반론하며 사과를 살펴보니 검게 썩은 부분이 보였다. 그래도 그 사과를 쥐고서 토토 가족의 선두에 서서 역무원 아저씨께서 알려주신대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나아갔다. 점점 어두워졌지만 드문드문 집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의지해 걸어가면서 공습이 없으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드디어 어딜 봐도 농가다 싶은 커다란 집이 보였는데 그게 누마하타 아저씨 댁이었다.
"실례합니다."
엄마가 말을 걸자 아내로 보이는 분이 나와서 "사과와 채소를 받았던 토쿄의 쿠로야나기입니다."라고 말하며 사정을 설명하자 안에서 아저씨가 나타나선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하쇼."라며 토토네를 들어오게 했다. 토토는 안심하면서 주웠던 사과를 현관 밖에 버렸다.
네 가족이 갑자기 들어왔는데도 하얀 쌀밥에 국물, 생선 말린 것과 절임, 과일까지 있는 저녁밥을 차려주셨다. 오랜만에 먹은 하얀 쌀밥의 맛을 되새기며 엄마가 너무 지레짐작으로 걱정을 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쌀밥을 처음 보는 마리 짱은 "이게 뭐야?"라며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창고라도 좋으니 가족 넷이서 살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엄마는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며 간절히 빌었다. 그 날 아저씨 댁에서 가족 넷이 나란히 누워 잤다.
다음날 엄마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집이 정해지지 않으면 학교에 다닐 수도 없으니 아저씨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살 수 있는 곳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 결과 어느 사과 농가의 작업용 창고를 빌릴 수 있었다. 사과를 모아 포장을 하기도 하고 사과 도둑이 오지 않나 지키기도 하기 위해 사과 과수원 한가운데에 지어진 창고로 다다미 여덞 장 정도 넓이였다. 지붕은 초가지붕이었고 판자로 이은 벽은 틈이 너무 많은데다가 빛이라곤 석유 램프가 전부였지만 엄마는 "창으로도 천장으로도 햇빛이 들어오니깐 멋지네."라며 기뻐하셨다. 토토는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하고 감탄했다.
"이불도 주방용품도 나눠주셨어. 근처에 커다란 강도 흐르고 마실 물은 옆에 있는 제재소에서 얻을 수 있단다. 생활하기에 부족한 건 없어."
엄마는 넘쳐나는 의욕으로 사과창고 개조에 매달려 전부터 가지고 있으셨던 마법사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셨다. 사과상자를 뒤집으시더니 그 위에 솜과 짚을 깔고서 짐을 꾸리기 위한 보자기 대신 사용하셨던 고벨린제 천을 덮어 못을 박았다. 상자 주변에 튀어나온 남은 천들을 프릴처럼 다듬고 나니 화사한 로코코식 의자가 만들어졌다.
이웃 사람들로부터 받은 시트를 옅은 녹색으로 칠한 뒤 사과 그림을 잔뜩 그려서 벽에 거니 훌륭한 족자가 완성되었고 1미터 정도 높게 올라온 바닥은 어린이용 침대로 변신시키는 등 살풍경했던 사과창고가 키타센조쿠의 집 같은 모습으로 부활했다.
집을 리폼했으니 다음은 가정농원 차례다. 엄마는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밭을 만들자!"라고 선언하셨다. 마리 짱은 엄마 등에 업혀서 항상 웃고 있었고 토토도 노리아키 짱도 집 주변을 일구는 걸 도와드렸다. 엄마는 채소 씨앗과 모종도 구해와서 그걸 뿌리고 심고 했다. 계절도 봄이었으니 토모에학원 수업 같아 즐거웠다.
어떤 꽃이 필까? 어떤 채소가 만들어질까? 토모에학원 친구들은 잘 지내려나.
"모두 다 같이 해야 해요."
흙을 만지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저편에서 토모에학원의 코바야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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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싸고 싶어
모두들 말이 없었다.
공습을 당할지도 모르니 열차 안도 집과 마찬가지로 등화관제가 이루어졌다. 아직 봄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추웠던데다가 배도 고팠지만 토토는 모처럼 앉았으니 자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삼등칸 열차 좌석은 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하고 긴 의자였던지라 다리로 열차의 진동이 전해지더니 얼마 지나자 엉덩이도 아파왔다.
긴장하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눈을 꼭 감아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할 수 없이 가방을 열어 가장 좋아하는 얼룩곰 인형을 쓰다듬었다. 그게 토토가 가져온 물건 중 가장 부드러운 물건이었기에 이걸 만지는 것만으로 다소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역에 정차하자 창문으로 휙하고 짐들이 날아들어오더니 그 뒤를 이어 "죄송합니다."라며 창문으로 사람이 올라탔다. 십 분 간격마다 어딘가의 역에 정차했는데 토토는 그 때마다 누군가가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긴장해야 했다.
역에 도착할 때마다 두근두근거렸더니 이젠 반대로 "그럼 실례합니다."라며 창문으로 내리는 사람까지 나왔다. 박스석 사이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타려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내리려는 사람의 짐을 건네주기도 했다. 우에노를 막 출발했을 때엔 모두들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자기자리를 확보하게 되자 신기하게도 협동심이 생겨난 것 같았다.
토토는 오줌을 싸고 싶어졌다. 피난처를 찾아 센다이나 후쿠시마에 갔을 때에도 토우호쿠선을 타고 다녔기에 차량 끝 쪽에 화장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시장통을 헤치고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토토가 우물쭈물대고 있자 토토를 앉혀주고서 창측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왜 그러니?"라고 물으셨다.
"오줌 싸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자 아주머니는 아오모리 사과 같은 빰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다음 역에 도착하면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그 때까지 참을 수 있겠니?"
"네."
"역에서 기차가 멈춰있는 동안 창문으로 싸버리면 된단다. 내가 잡아줄 테니깐 괜찮을 거야."
엑! 창문 밖으로 싸는 거야? 그렇게 창피한 걸 어떻게 해.
창문으로 싸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토토가 어떻게든 화장실에 가겠다는 생각에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토토는 통로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헤쳐나가며 화장실로 향했다. 차량 안은 어렴풋하게밖에 보이지 않는 전등이 달려있을 뿐이라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천장에 매달려 달빛을 의지하는 게 훨씬 밝게 보이겠다 싶어졌다.
승객들은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주며
"거기 좀 비켜봐."
"여자애가 그 쪽으로 갔어."
이런 식으로 말을 주고 받았다. 길을 비켜준 아저씨가 토토에게 "혼자 가는 거니?"라고 물어봤는데 혼자인 건 맞지만 "혼자예요."라고 말했다가 납치당해서 엄마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워져
"아뇨, 옆 차량에 오빠가 있어요."
라고 말했다. 토토가 어릴 적엔 무엇보다도 무섭게 여겨졌던 게 "유괴범"이었기에 잡혀가지 않도록 거짓말을 한 것이다. 토토의 상상해왔던 "유괴범"처럼 붉은 망토를 걸치고 멋을 내고 있는 사람을 그 야간열차에서 찾을 수는 없었지만.
토토는 드디어 화장실 앞에 도착했지만 들어가려고 보니 더더욱 막막해졌다. 화장실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안으로 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앉아있었던 것이다. "죄송해요. 용변을 보고 싶은데 비켜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변기 주변에 남자가 앉아있기까지 했다.
안 되겠다, 포기하자. 또다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화장실 쓸 수 있더니?"라고 아주머니가 물어보았다.
"사람들로 꽉 차서 못 썼어요."
토토가 답하자 아주머니가 "그렇겠제"라며 활짝 웃었다.
몇 분 후 열차가 어딘가 역에 멈춰섰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갑자기 좌석에서 일어나더니 힘껏 창문을 열고서 몸빼를 내려 엉덩이를 창 밖으로 내밀었다.
"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샤아~
새까만 어둠을 향해 기세 좋게 날아가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차량 안에서 아주머니의 새하얀 허벅지가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하얀 무릎은 토토 얼굴 바로 옆에 있었다. 토토가 멍하니 보고 있자 아주머니가 순식간에 몸빼를 허리 위로 올렸다. 정말 신속했다.
"어두우니깐 아무에게도 안 보여."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며 토토에게 창 밖을 보게 했다. 토토가 창문 좌우를 보자 둥글고 하얀 물체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역에 서있는 시간이 짧으니깐 꼬마 아가씨는 다음 역에서 하렴."
꼴 사납다든가, 부끄럽다든가, 그런 걸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토토가 창 밖에 쉬를 하든말든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누구도 화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너무 참아서 지리거나 하게 되는 게 훨씬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옆자리 아주머니가 묵묵히 창문을 열고서 토토에게 창측 자리를 내주셨고 토토가 몸빼를 내리고 엉덩이를 창 밖으로 내밀었을 때엔 떨어지지 않도록 왼손을 잡아주셨다. 토토는 오른손으로 창틀을 꽉 잡았다.
차가운 바람이 토토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샤아~
오줌이 기세 좋게 뿜어져 나와 차량 벽에 닿는 소리가 났다. 손을 잡아주고 있는 아주머니 외엔 누구 하나 토토를 보지 않았다. 토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용변을 봤지만 부끄러움 같은 건 없었다.
창 밖으로 오줌 누기!
내일 엄마에게 이야기 해야지!
엄마 쪽은 아침에 시리우치역에 도착할 예정인데 지금쯤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노리아키 짱은 얌전히 있으려나? 마리 짱은 칭얼대지 않을까?
그런 걸 생각하고 있다가 토토는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어머니!"
토토는 조금 무서운 꿈을 꿨다.
사과 뺨 아주머니가 악몽에 시달리는 토토의 어깨를 두드려 깨우셨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아침해가 무척 아름다웠다.
아주머니는 모리오카역에서 내리셨다. 오줌 누고 싶었을 때 외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 어린 눈에도 훤히 보였기에 토토는 신경 쓰이는 점이 많았어도 아주머니와 조금 이야기를 나눈 것 외엔 잠자코 있었다.
아주머니가 내릴 때에 짐 속에서 꾸깃꾸깃한 신문지에 싸인 걸 꺼내 토토의 손에 올려주었는데 삶은 감자였다.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토토는 감자의 냄새를 맡아본 뒤 조금 베어물어보자 그것만으로도 맛있고 상냥한 물체가 목을 통과했단 느낌이 들어 한동안 그것을 먹는 데에만 몰두했다.
다 먹고 나서야 앞에 앉아있던 아저씨의 시선을 눈치채서 왠지 부끄러워져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창 밖에는 눈이 막 녹기 시작한 갈색 밭이 펼쳐져 더 멀리엔 아직 눈이 많이 남아있는 숲과 산이 보였다. 숲도 산도 토쿄보다 훨씬 진한 색을 띄고 있었다.
기차가 스와노타이라역에 정차했는데 그 전까지 정차했던 역들에 비하면 한층 더 작은 역이었다. 몇 년 전에 엄마와 귀향했을 때 알게 된 누마하타 아저씨가 이 역에 내렸던 게 어렴풋이 생각났다. 토토가 누마하타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간다면서 왜 스와노타이라가 아니라 시리우치까지 가는 걸까 생각하는 동안 기차가 다시 부옹하고 기적을 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삼십 분 정도 지나 환승 플랫폼도 있는 커다란 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에서 "시리우치~ 시리우치~"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자 토토는 엄마와 만날 생각에 기뻐서 달리다시피 하며 플랫폼에 내렸다.
볼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워서 크게 심호흡하자 처음으로 맛보는 듯한 다소 차갑고 청량한 공기가 느껴졌다.
안내판 지도를 따라서 걸어가며 레일을 두 개 정도 건너자 멀리서 "테츠코~"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찰구 건너편에 엄마가 있었다! 토토는 주머니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표를 역무원 아저씨에게 건낸 뒤 단숨에 엄마가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어머니!"
마리 짱을 업고 노리아키를 왼손으로 잡고 있던 엄마가 오른팔을 펼쳐 토토를 받아주셨다. 우에노역에서 헤어진 뒤 꼬박 하루가 지난 시간이었다.
"엄마는 오전에 도착해서 시장에서 먹을 걸 사왔단다."
그렇게 말하며 대나무잎으로 싸인 보리와 현미 주먹밥을 보여주셨다.
"우와~"
하얀 쌀밥은 아니었어도 제대로 된 주먹밥을 보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저기 긴 의자에서 먹자꾸나. 역 화장실에서 수돗물도 나오니깐 손을 씻고 물도 마시고 오렴. 노리아키 짱도 같이 가렴."
그렇게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커다란 매실짱아치 주먹밥을 먹었다. 토토는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했다. 기차가 가득 찼던 일, 다들 창문으로 드나들었던 일, 기차 화장실을 쓸 수 없어서 아주머니께서 창문으로 오줌 싸는 법을 알려주신 일, 토토 외에도 하얀 엉덩이가 여기저기 창문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던 일, 아침해가 아름다웠던 것, 아주머니가 삶은 감자를 주신 것...
그러자 노리아키 짱이 "감자 먹고 싶어."라고 말했다.
"노리아키 짱, 아까 봤잖니? 여긴 토쿄와 달리 안전하고 먹을 것도 많이 있어. 살 곳만 정해지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엄마가 열심히 일할 거니깐 그 때까지만 참으렴."
엄마가 그렇게 말하시면서 노리아키 짱을 쓰다듬었다.
다들 이십사 시간에 가까이 지나도록 거의 자지도 못하고 기차를 타고 왔기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있었다.
"오늘은 여관에 묵으면서 여행 피로를 풀자꾸나. 누마하타 아저씨 댁은 내일 갈 거야."
엄마는 토토가 오는 동안에 숙박할 곳을 찾아보고 있으셨다.
기차 안에서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바로 옆에 엄마가 있고 노리아키 짱과 마리 짱도 싱글벙글 웃고 있다. 공습경보도 울리지 않는다. 여기에선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불러도 "적국의 말을 쓰다니!"라며 화를 낼 사람도 없겠다 싶었다. 토토는 토쿄에선 맛보기 힘들었던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리스도 전설
"실은 누마하타 아저씨 댁에 가기 전에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단다."
아침에 일어나자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버스로 두 시간 정도 가면 헤라이라고 하는 곳에 예수님의 묘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토쿄에 있었을 때에도 엄마가 그리스도 묘지가 누마하타 아저씨 댁 근처에 있다고 말씀한 적이 있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사실은 그리스도의 동생이었고 진정한 그리스도는 일본까지 건너와 헤라이에서 백여섯 살로 생애를 마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엄마도 그걸 사실이라고 믿으시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이 또한 모종의 계시 같은 거란 생각이 드셨다나 어쩐다나 설명해주셨다.
크리스트교 신자이셨던 엄마는 그런 전설이 태어난 곳을 직접 보고 싶다, 모처럼 근처까지 왔는데 들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생각하신 것 같다. 토토는 역시 엄마야! 그래서 스와노타이라가 아니라 시리우치에 온 거구나 수수께끼 해결!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토우호쿠 사투리를 쓰는 지역에 올 이유가 대체 뭐였을까하는 생각에 갸우뚱했다.
시리우치에서 헤라이까지는 버스로 갈 수 있었다. 운전석 앞이 하마 입처럼 툭 튀어나온 버스가 토토네와 지역민들을 태우고 느긋하게 달려나갔다. 좌석에 사람들이 꽉 찬 상황에서 커다란 짐을 안고 있는 토토네를 다들 신기한 걸 보는 듯한 눈빛으로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내리는 사람이 "오츠루, 오츠루"라고 말하며 안쪽 자리에서 나왔기에 토토는 뭐가 떨어진다(落ちる, 오치루)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린다(降りる, 오리루)는 말을 "오츠루"라고 하는 것이었다. 버스 안내양이 "내리는 사람이 다 죽으면(しんで, 신데) 올라타소."라고 하길래 깜짝 놀랐는데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리면(すんで, 슨데) 그 다음에 올라와 주세요."라고 말했다는 걸 겨우 알아차렸다.
버스가 점점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 논밭의 광경이 계속해서 보여 토토는 이런 산 깊숙한 곳에세도 농부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고삐를 쥐인 말이 따각따각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등의 양 옆에 채소들을 주렁주렁 지고 가고 있었다.
"우와, 말이다!"
토토는 동물 중에 개와 여우 다음으로 말을 좋아했다. 홋카이도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함께 마차를 타본 적이 있었지만 이 때 처음으로 짐을 짊어지고 가는 말을 보게 된 것이다.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말을 배웅해 주려 하자 말의 엉덩이 쪽에서 커다란 경단 같은 게 땅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꺄악!"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러자 토토 뒤에 앉아있던 남자가 "뭐여, 망아지 보는 거 츠음인갑네?"라고 말하며 커다란 목소리로 왓하하 웃었다. 창 밖을 다시 내다보니 말이 지나간 길엔 지푸라기를 흙과 함께 뭉친 듯한 말똥이 큰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옛날 사람들은 어째서 이런 산 깊숙한 곳에 살려고 한 걸까? 버스가 언덕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하나둘 내릴 때마다 토토는 이런 생각을 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중엔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었다. 다들 몸빼를 입었고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는 사람도 있고 머리에 싸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갈색으로 물든 손은 주름이 졌으며 다들 손가락이 두꺼웠다. 일하는 사람의 손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토토네는 그리스도 묘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데 가는 길을 몰라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민가에 들러 물어보았다.
"실례합니다. 그리스도 묘지에 가고 싶은데 길을 알 수 있을까요?"
현관 앞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엄마가 물어보시자 안에서 천천히 피부가 검은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애들 데리고 고생이슈. 그리스도 묘는 가까우니께 따라오슈."
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익숙해 보이는 눈치였다. 엄마도 토토도 커다란 짐을 안고 있었기에 집 안에 둬도 괜찮다며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엄마는 가방을 놓고 마리 짱을 업었고 토토와 노리아키 짱이 손을 잡고 언덕길을 올라갔다. 길을 가면서 아저씨가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엔 묘지를 찾는 사람이 전국에서 몰려왔던 것이나 옛날부터 전해져 오던 헤라이의 관습 중 크리스트교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알려주셨다.
"자, 여기유."
아저씨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구불구불 산길 끝에 약간 높은 언덕이 보였다.
"이 위에 두 개의 흙무덤이 있는디 오른쪽이 그리스도 묘지고 왼쪽이 그리스도 동생인 이스키리의 묘지유."
(이 이야기는 일본에만 있는 것으로 이스키리는 예수를 가리키는 イエス, 이에스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キリスト, 키리스토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춰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일본 고유명사나 마찬가지기에 그대로 표기한다. -역자주)
아저씨가 이렇게 알려주었다.
엄마는 천천히 돌계단을 올랐다. 두 흙무덤에는 야생화가 바쳐져 있었다. 엄마는 오른쪽 흙무덤을 보며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며 "아멘"이라고 하셨다. 엄마 등으로 햇빛이 비춰져서 뒤로 묶은 머리카락이 빛나보였다. 건너편은 절벽으로 되어 있어서 강이 흐르는 소리와 어디선가 작은 새의 지저귐 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정말로 그리스도 묘지인지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전쟁이 일어나, 메이지 짱이 죽고, 아빠는 군대에 빼앗겼으며, 추억이 듬뿍 담긴 키타센조쿠 집을 떠나야 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기도하는 것도, 약한 소리를 내뱉는 것도, 우는 것도 하지 못했지만 엄마는 그리스도 묘지 앞에서 무척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으셨다.
전쟁은 언젠가 끝날 것이다. 가족이 다함께 모여살 수 있는 평화로운 나날이 꼭 돌아올 것이다.
조용히 기도하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는 모르겠지만 토토 자신의 마음에도 힘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예수님이 정말 일본에 오셨을까? 토토는 어릴 때부터 매주 교회의 일요학교에 갔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런 말을 엄마에게 하지는 않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니 아저씨의 아내인 듯한 분이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손을 흔드는 아주머니 발 밑에 토토네가 가져온 짐들이 놓여져 있었다. 돌아갈 시간을 계산해서 짐을 버스 정류장까지 가져와 주신 것이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엄마가 정중히 인사를 드렸고 토토도 처음 와보는 곳에서 이런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큰 행운일까 생각이 들어 친절한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버스에 탔다.
참고로 그리스도 형제 묘지는 지금도 헤라이에 있으며 최근엔 관광지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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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신변 정리를 해야만 했다.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토에겐 소중한 것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아빠가 기원 2600년(메이지 정부가 일본 신화에 따라 기원전 660년을 건국연도로 정하면서 1940년이 2600년째에 해당한다) 축하공연 여행차 만주에 갔다왔을 때 주신 선물인 커다란 곰인형이었다. 아빠는 이 여행 때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국 황제가 되었던 아이신 교로 푸이의 부탁으로 연주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토토는 그 인형을 "쿠마 짱"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또 하나는 좀 더 어릴 적에 미국에서 돌아온 숙부 님이 주신 얼룩곰 인형이었다. 공습경보 때도 가방에 담고서 방공호에 같이 데려가곤 했기 때문에 피난 때에도 같이 하고 싶었다. 쿠마 짱 쪽은 "짐이 너무 커지니 포기하렴."이라는 엄마의 한 마디에 두고 가는 걸로 결정되었지만 얼룩곰은 데려가기로 했다.
엄마가 가져가기로 한 건 가족 사진, 아빠 연주회 사진과 프로그램 등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었다. 짐이 꾸려지자 엄마는 응접 세트 소파의 고벨린제 천을 싹둑싹둑 자르기 시작했다. 로코코풍 무늬가 무척 멋졌지만 엄마는 그걸로 짐을 싸서 보자기 대용으로 썼다. 소중한 물건들을 넣어서 빵빵하게 둥글어진 고벨린제 보자기는 마치 산타클로스의 주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기다리렴. 곧 돌아올 테니깐."
쿠마 짱을 아빠가 앉던 의자에 앉힌 뒤 토토네는 키타센조쿠 집을 떠났다.
토토, 피난하다.
혼자 타는 야간열차
덜커덩, 덜커덩.
토토는 어두컴컴한 밤을 달려나가는 아오모리행 열차를 타고 있었다. 창 밖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2인석의 가운데에 앉아있었지만 토토의 양쪽에 있는 건 엄마도 노리아키 짱도 마리 짱도 아닌 생판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였다. 홀로 남아있는 토토의 오른쪽 손에는 엄마가 주신 열차 표와 "우에노, 후쿠시마, 센다이, 모리오카, 시리우치"라고 쓰여진 종이가 쥐여져 있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해의 3월 중순이었다.
그 날 아침 토토는 엄마와 노리아키 짱과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마리 짱과 함께 넷이서 우에노역으로 향했다. 우에노역은 사람들로 북적여 수많은 짐들을 끌어안은 어른들이 두두두하고 지진을 일으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며 앞다투어 개찰구로 향했다. 엄마는 등에 가방을 맸고 왼손으로 노리아키 짱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마리 짱을 아기띠로 안은 채 오른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었다. 토토가 노리아키 짱과 손을 잡으려 하자 "비켜!"라며 누군지 모를 아저씨가 밀쳐내서 넘어질 뻔 했다.
"우왓!"
토토가 소리를 지르자
"만약 어머니를 놓쳐도 일단 아오모리행 열차를 타렴. 그리고 나서 꼭 시리우치역에서 내려서 어머니하고 노리아키 짱하고 마리 짱을 찾아야 된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시면서 토토의 손에 "우에노, 후쿠시마, 센다이, 모리오카, 시리우치"라고 쓰여진 종이와 열차표를 쥐어주셨다. 무서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시리우치"는 현재의 "하치노헤"에 해당한다.
개찰구에서 플랫폼을 향하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양 옆으로 밀고 밀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처음 보는 아저씨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토토 얼굴을 향해 짐들이 날아와 아프고 숨쉬기도 힘들었으며 자신이 직접 걷는다기보다는 어른들의 짐에 끼어서 같이 운반되는 건가 싶을 정도여서 무척 무서웠다.
엄마가 점점 멀어져 갔다. 어떡한담. 열차가 보이자 어른들의 발은 더욱 빨라졌다.
"꺄악!"
토토는 플랫폼 반대편으로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주저앉은 채로 열차 쪽을 바라보니 다른 사람을 밀치고서 열차에 타는 사람이나 짐을 창 안으로 던져넣는 사람들이 보였다.
엄마 쪽은 열차에 타신 것 같다.
어떡한담...
출발을 알리는 역무원 아저씨의 목소리가 플랫폼에 울려퍼졌을 때 열차 창문 너머로 엄마가 보였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시리우치역에서 기다릴게."
엄마의 입이 그렇게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사람을 잔뜩 태운 열차가 뿌옹~하고 기적을 울리며 출발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넘쳐났던 플랫폼이 순식간에 텅텅 비었다.
"다음 아오모리행 열차는 언제 오나요?"
토토는 분주히 움직이는 역무원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임시열차가 없으니 다음 차는 밤 여덞 시나 되어야 올 텐데, 꼬마 아가씨 혼자서 아오모리까지 가려고?"
"네, 아까 기차에 타지를 못해서 가족과 시리우치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토토가 그렇게 말하자 역무원 아저씨가 "힘들겠구나."라고 동정하면서
"플랫폼에 들어올 시간이 되면 알려줄 테니 저 편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라고 말해주셨다.
토우호쿠본선 플랫폼은 피스톤 운동이라도 하듯 열차가 역에 도착하면 승객을 내린 뒤 바로 그 열차에 사람들을 태우고서 출발했다. 토토가 플랫폼 구석에서 아오모리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우츠노미야행"과 "시라카와행"이 출발했으며 그 때마다 플랫폼은 시장통이 되었다가 다시 텅 비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는 것을 바라보는 사이에 완전히 어두워졌다.
"슬슬 저기에서 줄을 서는 게 좋겠구나. 조심해 가거라."
아까 봤던 역무원 아저씨가 가르쳐 주신대로 플랫폼 승차구 맨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두두두두 발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대거 몰려왔다. "아, 또 이러네."라는 생각에 몸을 움츠리자 여자가 "밀려나지 않도록 똑바로 서있어야 한다."라고 말해주었다. 올려다 보니 사과 같은 붉은 뺨을 가진 아주머니가 웃고 있으셨다.
아오모리행 열차의 문이 열리자 토토는 "이얍"하고 열차에 뛰어들었다. 뒤에서 사람들이 점점 들어오고 있었다. 통로 구석으로 밀려나 짜부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까 본 사과 뺨 아주머니가 토토의 손을 홱 낚아채서 2인석 가운데에 앉히셨다.
"꼬마 아가씨는 말랐으니깐 여기에 앉을 수 있겠지?"
토토의 몸이 아주머니 팔에 안겨 좌석의 가운데에 쏙하고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보자 네 명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박스석에 어른이 여섯 명이나 앉아있었다. 좌석 사이에도 두 세 명씩 앉아있었고 통로도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토토는 운 좋게 좌석에 앉을 수 있었지만 자리며 바닥이며 순식간에 사람들로 메워진 것이다.
부옹~
증기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며 끼익끼익 기계가 마찰되는 소리가 나자 우에노발 아오모리행 완행열차가 북쪽을 향해 새까만 밤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시리우치에는 내일 점심 너머에야 도착한다고 했는데 엄마 쪽하고 만날 수 있으려나? 토토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불안함을 같이 실은 것 때문에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열차가 스피드를 천천히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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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출정
아빠가 전쟁터로 가게 된 그날 밤에 어린 마리 짱과 노리아키 짱을 이웃집에 맡기고서 토토와 엄마는 시나가와역으로 향했다. 밤이 된 시나가와역에선 등화관제가 이루어져 컴컴했다. 토토네와 비슷하게 온 가족이 스무 집단 정도 모였다. "여기에서 배웅해주십시오."라고 들었던 야마노테선 플랫폼에서 아빠가 있을 먼 플랫폼을 바라보니 어렴풋한 빛 속에서 군인 아저씨들이 야간열차에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먼데다가 어둡기까지 하니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아빠는 분명 일장기 부채를 흔들어 줄 것이다. "아버지~"라고 될 수 있는 한 큰 소리를 내어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는 군인 아저씨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른 가족들도 똑같이 소리를 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열차에 탄 군인 아저씨들이 일제히 일장기 부채를 펼쳐 이 쪽을 향해 흔들었다. 모두가 가지고 있던 일장기 부채를 표식으로 삼은 건 아빠와 엄마의 실수였다.
어쩌면 평생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토토는 어느 사람이 아빠인가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었다. 토토네의 모습을 잘 봐두었으면 했다.
토토와 엄마는 눈에 불을 켜고 아빠를 찾았지만 이 사람인가 하고 손을 흔들어보면 그 사람도 여기를 향해 흔드는 것처럼 보이고 저 사람인가 하고 손을 흔들어보면 그 사람도 이 쪽을 향해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저기 있는 게 아버지 아냐?" 같은 말을 하며 필사적으로 찾았다. 마침내 혼자서 독특한 리듬을 타고 부채를 흔드는 사람을 찾아내 토토와 엄마는 "저 사람이 아빠일 거야."라고 결정했다. 토토네가 손을 흔들자 그 부채만 크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열차가 조금씩 달리기 시작하자 거기에 맞춰 토토와 엄마도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면서도 플랫폼의 가장 끝부분까지 달려가며 아빠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야간열차는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져갔다.
"분명 그 사람이 아버지였을 거야."
토토와 엄마는 그런 말을 하며 플랫폼보다 훨씬 어두운 시나가와역 지하통로를 걸어갔다. 저벅저벅 소리가 들려와 토토네는 가까이에서 다른 군인 아저씨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군인 아저씨들에게 길을 비켜주려고 한 순간 토토가 통로 측면에 파여져 있던 도랑에 빠져버렸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무릎까지 푹 젖어버린 토토의 옆을 저벅저벅 군인 아저씨들이 지나갔다.
"어머니!"
토토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저벅저벅 발소리를 높여 행진하던 군인 아저씨들의 대열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테츠코!"
깜짝 놀라 얼굴을 들어보니 놀랍게도 거기에 아빠가 서있는 것이 아닌가! 아빠가 속한 부대는 지금부터 열차에 타려고 했던 것이다.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심코 아빠의 손을 잡아보니 거기엔 틀림없이 토토가 제일 좋아하는 뼈가 두텁고 손가락이 긴 커다랗고 커다란 아빠의 손이었다.
"어머니, 여기에 아버지가 있어요!"
토토는 소리 높여 엄마를 불렀다.
서둘러 달려온 엄마가 아빠가 거기에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면서 기뻐하셨다. 하지만 한두 마디를 나누었을 뿐 아빠는 서둘러 대열에 복귀해 걸어가셨다.토토네는 다시 한번 더 아빠를 배웅하기 위해 야마노테선 플랫폼으로 돌아갔다.
역시나 플랫폼은 얼굴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엄마는 말했다.
"괜찮아. 다른 사람들과 구분될 수 있도록 부채를 지휘봉처럼 흔들어 달라고 아빠에게 말했으니깐."
엄마 말대로 일제히 일장기 부채를 흔드는 군인 아저씨들 가운데 한 명만이 지휘봉처럼 흔드는 사람이 보였다. 토토와 엄마는 저 사람이 틀림없이 아빠라 믿고 열심히 손을 흔들며 진정한 작별인사를 했다.
혹시 토토가 도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어머니!"라고 큰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아예 토토가 도랑에 빠진 순간과 아빠 부대가 토토 옆을 지나는 순간이 몇 초라도 어긋났다면 토토와 엄마는 다른 군인 아저씨를 아빠라고 생각한 채 집에 돌아갈 뻔 했다. 아빠는 아빠대로 토토네가 진작에 떠나간 플랫폼을 향해 분명 가족이 거기에 있을 거라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부채를 흔들며 출정했을 것이다.
평소에도 구멍이 뚫린 곳이나 공사중인 곳, 위험한 곳을 일부러 골라서 걷는 토토의 보행법은 어른들에게 항상 주의를 들어왔지만 이 밤만큼은 그런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시나가와역에서 아빠와 재회할 수 있었던 건 신이 계획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빠가 그 때 언제나처럼 "토토스케"가 아니라 "테츠코"라고 불렀던 건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하다 여겼기 때문일까? 전쟁터로 향한 아빠에게서 편지가 딱 한 통 왔었는데 "군사우편"이란 글자가 붉게 찍혀있는 엽서에 "다들 잘 지내나요?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건강 조심하며 힘내세요."라는 특별한 문구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쓰여져 있었을 뿐이었다. 검열을 당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거였겠지만.
그 후 아빠의 소식은 완전히 끊겨버렸다.
토쿄대공습
정원에 있었던 온실 가운데에 깊은 구멍을 파서 방공호로 쓰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직접 판 구멍이라 그렇게 크게 팔 수는 없었지만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가족이 모두 거기에 들어가 숨을 죽였다. 토쿄 공습은 아빠가 출정한 뒤 갑자기 심해지면서 매일같이 토쿄 어딘가가 B-29의 공습을 받게 되었다.
그날 밤도 사이렌이 울려서 언제나처럼 방공호에 피난해 있었다. 0시가 지났을 무렵인 늦은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 밤 방공호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수면부족 상태가 이어져 얼른 경보해제 사이렌이 울렸으면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만은 상황이 좀 달랐다.
바깥이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 방공호 틈새로 올려다 보니 붉게 물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이 붉어지는 현상은 지금까지도 몇 번이고 봤지만 소이탄이 떨어져 화재를 일으키며 만들어낸 그날 밤 하늘은 무서울 정도로 새빨갰다.
너무나 밝아서 토토가 방공호를 뛰쳐나와 집에 들어가 책가방에서 책을 꺼내 정원 가운데에서 펼쳐보니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밤인데도 그 정도로 밝았으니 집에서 가까운 곳에 대화재가 일어난 게 틀림없다는 생각에 토토는 방공호로 들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큰일 났어요.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바깥이 밝아요. 분명 오오오카야마 쪽에서 불이 난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바깥으로 나와본 엄마가 더욱 붉어진 하늘 한편을 응시하며 "괜찮아."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밤에 일어나는 불은 가까운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훨씬 먼 곳에서 일어나는 거란다. 그러니 괜찮아."
엄마가 어떻게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으셨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서 토토는 조금 안심하게 되었다.
그날 밤엔 추위와 배고픔을 잠시도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피로감에 절어있던 다음날 아침에 토나리구미(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있었던 지역조직) 사람이 왔다.
"한 집에서 남자 한 명씩 삽을 가지고 모여주세요."
"남편이 출정을 가서 어른 남자가 없어요."
"그럼 삽만이라도 빌려주실 수 있나요?"
"그건 괜찮긴 한데 무슨 일 있나요?"
"어제 공습 때문에 시타마치가 꽤나 타버렸다네요. 사람들도 많이 죽어서 지금부터 다함께 유골을 정리해 드릴까 해요."
1945년 3월 10일, 악몽과 같은 하룻밤이 지나갔다. 삼백 기에 가까운 B-29가 후카가와나 혼죠 같은 곳을 중심으로 소이탄을 비처럼 쏟아부어 하룻밤만에 십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다.
토쿄대공습.
전날 밤에 하늘이 붉게 물든 것이 그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 새빨갛게 타오른 하늘이 지금도 머릿속 깊숙한 곳에 박혀 떨어지지 않는다. 토토네 집이 있던 키타센조쿠에서 시타마치로 가려면 지금도 전철로 한 시간은 가야 한다. 그렇게 멀리에서 일어난 화재인데도 정원에서 책을 읽을 정도로 밝아지려면 얼마나 극심한 공습이 이루어졌던 걸까?
미국 쪽에서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진 일본 가옥을 공격하려면 건물을 폭발시켜 파괴하는 폭탄보다 불을 붙여 태워버리는 소이탄이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밝혀졌다. B-29가 떨군 소이탄은 여러 개로 분산되어 불이 붙은 채 떨어지도록 설계되었다.
엄마는 이 이상 토쿄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최종판단을 내렸다.
"이제 여긴 위험해. 될 수 있는 한 빨리 피난하자. 사과와 채소를 보내주신 누마하타 아저씨네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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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 제1연대 전우
토토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난 것 같아 밤중에 눈을 떴다. 방 안에서 엄마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오열하는 목소리였다. 몸 속의 진동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낮고 껄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빠도 함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왜 운 거예요?"라고 엄마에게 물어보자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메마른 목소리로 "아빠가 군대에 가게 되었단다."라고 했다.
당시 일본에는 징병제도가 있었다. 아빠도 스무 살에 징병검사를 받았는데 5단계 중 3단계인 병(丙)종 합격으로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이긴 해도 현역으로 뛰기 적합하지는 않다는 평가였다. 가장 우수한 게 갑(甲)종 합격이고 그 다음이 을(乙)종이었다. 아빠는 당시로선 마른 장신이었는데 너무 크면 군복 지급에 지장이 생기므로 신장이 큰 사람은 갑종보단 을종이나 병종으로 분류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빠는 아마도 그 덕분에 병역을 피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병종 정도 되면 군대에 가지 않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런 아빠에게도 "붉은 종이"라 불리는 소집영장이 나왔을 정도니 전황이 어지간히도 악화되었던 걸로 보인다.
나중에 엄마께서 알려주셨는데 작곡가인 야마다 코우사쿠 선생님이 "쿠로야나기 군은 일본 음악계에 있어서 무척 소중한 사람이니 전쟁터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라며 상당히 신경을 써주셨다고 한다. 아빠는 결혼 전에 야마다 선생님이 설립하신 일본교향음악협회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으니 선생님의 사랑을 무척 많이 받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연달아 출정을 나갔고 적성(敵性)음악을 연주할 수 없었으니 클래식 연주회를 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군가를 연주해 주십시오."란 의뢰를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음악가로서 자신의 연주에 긍지를 가지고 있으셨던 아빠는 "단호히 거절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연주만 하면 쌀과 설탕, 양갱 같은 걸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아무리 식량이 없어서 가족 모두가 배를 곯고 있는 중이라 해도 아빠는 "군가를 연주할 수 없다."며 버티셨다. 엄마도 "그래요, 그럼 가지 마세요." 같은 식으로 대응하며 "가족을 위해서라도 해주세요." 같은 말을 하지 않으신 게 엄마의 대단한 점이었다.
아빠의 출정식은 집 앞에서 치러졌다.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국방부인회 어깨띠를 맨 여자들이나 국민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와서 일장기가 그려진 깃발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군복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빠가 가운데에서 모두들 만세삼창을 하는 가운데 감사한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토토는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바이올린을 들 수 없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전황은 상당히 심각해졌지만 자세한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환송을 받는 아빠도 환송을 하는 사람들도 그다지 비장감이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빠는 현재의 롯폰기 토쿄 미드타운이 있는 곳에 있었던 육군보병 제1연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연대 쪽에서 "출정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면회하러 오십시오."라는 연락이 왔다.
엄마는 "아빠와 면회를 할 수 있단다."라고 말하며 어디에서 났는지 팥을 모아와 출정기념이라며 배급받은 쌀을 익히고 어렵게 모아두었던 소량의 설탕을 써서 찹쌀떡을 만들었다. 찹쌀떡은 그다지 달지 않았지만 그런 찹쌀떡이라도 그 때엔 무척 귀한 것이라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진수성찬이었다. 그 후 토토와 둘째 남동생 노리아키 짱,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리 짱을 데리고 사진관에 가서 엄마와 아이 넷이서 사진을 찍었다. 전쟁터에 가는 아빠에게 드릴 가족사진이었다. 사진관에서 촬영한 건 토토로선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머리를 세 갈래로 땋아 머리 둘레로 돌리고 갈색 점퍼 스커트 같은 몸빼를 입고 마리 짱을 무릎에 앉혔다. 네 살이었던 노리아키 짱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털실로 짠 반바지를 입고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여동생의 작은 손을 쥐었다. 토토는 양쪽으로 나눈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머리핀으로 고정시키고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게 최선을 다해 뽐을 낸 것이었지만 모처럼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누구도 웃지를 못했다.
면회 당일에 찹쌀떡과 사진을 가지고 보병 제1연대 주둔지에 갔을 때 이미 많은 가족들이 북적대고 있었지만 아빠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
"토토스케!"
그렇게 말하며 달려온 아빠의 모습에 토토는 자기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리를 빡빡 밀고 카키색 군복을 입은 모습이 왠지 후줄근해 보였고 발에는 정강이까지 올라온 양말과 작업용 장화를 신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집에서 나갈 때엔 항상 착착 다려진 양복을, 무대에 오를 때엔 연미복에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까지 멋들어지게 입었던 아빠가... 토토네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아빠의 모습에 엄마는 눈물을 머금기 시작했다. 토토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에 의하면 아빠 허리에 수통 대신 맥주병이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전우야."
극단적일 정도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던 아빠가 구김살 없는 웃음을 지으며 한 군인 아저씨를 소개시켜 주었다. 입대 전엔 생선가게를 하고 있었다는데 꾸며서 말해도 사람을 잘 사귄다 말할 수 없어 엄마하고만 지내는 것 같았던 아빠가 생선가게 아저씨를 "전우"라고 말하다니 깜짝 놀랐지만 "보기보다 적응력이 좋구나."라며 감탄하며 기뻐했다.
토토는 아빠가 군인이 되어 슬퍼하지 않을까 생각해지만 가족과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하고는 그렇지 못하는 아빠에게 친구가 생긴 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 일 관계상 알게 된 음악가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이 통해서 생긴 아빠의 친구. 토토는 생선가게 아저씨에게
"아버지를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어른스럽게 보이도록.
생선가게 아저씨도
"저야말로 항상 신세를 지고 있어요."
라고 웃으며 답해주었다. 아빠보다 젊은 분이었다.
친척 분이 면회를 왔다며 생선가게 아저씨가 자리를 뜨자 아빠와 엄마, 토토와 남동생과 여동생은 주둔지 근처 공터에 앉았다. 엄마가 막 뽑아온 가족사진을 아빠에게 건내자 그걸 본 아빠가 토토와 동생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예쁘네."
"아빠(원문에서는 パパ, 파파)" "엄마(원문에서는 ママ, 마마)"는 적국의 언어라 다른 사람들 앞에선 "아버지" "어머니"라고 말하도록 되어있었기에 토토는 두근두근거렸지만 주변에서 누가 듣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사진을 소중히 가슴주머니에 넣으며 토토네를 향해 오른쪽 엄지를 위로 세우는 언제나 봐왔던 포즈를 취했다. 유튜브의 추천 단추 같은 손짓이다. 지금이야 흔히 볼 수 있는 동작이지만 그 당시 엄지를 세워 "좋았어."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아빠 같은 분 외엔 없었다. 외국 음악가들과 같이 일하는 사이에 그 동작이 습관이 된 것이다.
가족끼리 사양하는 것 없이 토토네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는 찹쌀떡을 입에 넣으며 "간만에 맛난 걸 먹네."라며 만족하셨다. 토토네가 상상해오던 것보다 아빠는 몇 배는 더 활기차 보였다.
순식간에 헤어질 시간이 되어 아빠가 정문 근처까지 배웅을 나와주셨다. 여기에 또 오면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토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토토네를 향해 손을 흔들며 주둔지로 돌아가시려 했기에
"잘 가 삼각형! 또 와줘 사각형!"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토토네에서만 통했던 작별 인사였다. 아빠는 싱긋 웃으며 양손을 높이 치켜들고 아까보다 더 크게 흔들었다. 토토네도 커다랗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향하려 할 때 후줄근하지 않은 군복을 입은 계급이 높아보이는 군인 아저씨들이 슬며시 다가와 엄마 귀에 속삭였다.
"남편 분의 부대는 일 주일 후 시나가와역에서 20시발 야간열차를 타고 출발할 겁니다."
엄마가 깜짝 놀라 "정말인가요?"라고 되묻자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에 들어오실 수는 없습니다. 멀리 있는 플랫폼에서 배웅하실 수는 있습니다만."
군인 아저씨는 그렇게 말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슬며시 사라졌다.
엄마는 토토와 동생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렴."이라고 말하신 뒤 한번 더 아빠와 만나러 문 안으로 들어가셔서 가족이 시나가와역에서 배웅할 수 있다는 것, 수많은 군인 아저씨들 중에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아빠가 군대에서 받은 일장기 부채를 흔들어 신호를 보내주겠다는 것을 이야기한 뒤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그런 기밀사항을 그 분이 말씀해 주신 건지 알 수 없었다. 토토네 가족이 슬퍼보였던 걸까? 아니면 엄마가 미인이라서? 어쨌든 가르쳐 주신 건 제대로 된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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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일요일에 토토는 어릴 적부터 다녔던 센조쿠교회의 일요학교에 나갔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서 무척 추운 아침에 언제나처럼 "춥고 졸리고 배가 고파."라고 중얼거리며 걸어다녔는데 이 말을 중얼거리며 나아가다보면 소풍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바람이 휘잉휘잉 소리를 내며 불어서 토토는 눈물이 조금 베어나왔는지도 모를 무척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 애야!"
갑자기 경찰 아저씨가 불러세웠다.
"너 왜 울고 있는 거니?"
토토는 눈물을 닦으며
"추워서요."
라고 답했다. 그러자 경찰 아저씨가 외쳤다.
"전쟁터에 있는 군인 아저씨들 생각 좀 해보렴! 추운 것 가지고 울어서 어디에 써먹겠냐! 그딴 것 때문에 울지 마!"
갑작스러운 노성에 토토는 깜짝 놀랐지만 "그런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엔 울지도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혼나는 건 싫어. 우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는 게 전쟁이구나. 추워도, 졸려도, 배가 고파도 울지 말자. 군인 아저씨들은 더욱더욱 힘들 테니깐."
그게 토토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마른 오징어 맛이 나는 전쟁책임
마을 여기저기에서 긴 줄이 생겨났다. 가게에 물건이 들어왔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몰려드는 것이다. 뭘 팔고 있는지와 관계 없이 일단 줄을 서고 보자는 생각이 앞서 모두들 행렬에 동참한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기뻐했는데 장례식에 피울 향초를 팔더라고."
언젠가 엄마가 그런 라쿠고 같은 이야기를 하셔서 그걸 들은 토토도 "아하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그 때엔 가게에 아직은 상품이 조금씩 남아있었기에 엄마들도 실패담으로 웃을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기 지유가오카역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토모에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차에 타려고 역 쪽으로 가고 있으려니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 아저씨들이 가족이나 이웃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정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하, 저 사람은 전쟁터로 가는구나."
이 때엔 아직 토토네 아빠도 아는 사람들도 군대에 끌려가지는 않고 있었기에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모두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깃발을 흔들렴."
처음 보는 광경에 우두커니 있던 토토의 눈 앞에 일장기가 그려진 작은 깃발과 잘 구워진 마른 오징어 다리가 하나 내밀어졌다. 올려다 보니 모르는 아저씨가 토토를 향해 웃고 있었다.
"뭘까? 깃발을 흔들면 오징어를 먹을 수 있는 건가?"
물론 이 때도 배가 고파서 힘들었으니 토토는 별 생각 없이 오징어와 일장기를 손에 쥐었다.
엄마가 늘 "모르는 사람에게서 뭘 받거나 하면 안 돼요."라고 하셨지만 배가 너무나 고팠기 때문에 오징어의 유혹을 견딜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른도 아이도 군인 아저씨들을 향해 "만세!"를 외치며 깃발을 흔들었다.
"그렇구나. 깃발을 흔드는 값으로 오징어를 받은 거네."
토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만세!"라고 외치며 열심히 깃발을 흔들었다.
드디어 환송식이 일단락 되면서 군인 아저씨들이 역 안으로 사라져갔다. 깃발을 흔들던 사람들도 모두들 역 앞을 떠났다.
토토는 주변 사람들이 다 갔나 살핀 뒤 오징어 다리를 입에 쑤셔 넣었다.
이 일이 있은 뒤 토토는 군인 아저씨들의 출정식을 기다리게 되었다. 토모에학원은 지유가오카역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수업 중에도 역에서 군인 아저씨들을 보내는 "만세!"가 들리면 토토는 살며시 교실을 빠져나가 역을 향해 달려갔다. 토모에학원의 자유로운 교풍 덕에 함부로 교실을 나가거나 해도 혼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토토는 출정하는 군인 아저씨들을 볼 때마다 열심히 일장기를 흔들었다. 그 때마다 마른 오징어 다리를 받아 아무런 생각도 않고 그걸 씹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아무리 깃발을 흔들어도 마른 오징어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식량부족이란 파도가 출정하는 병사들을 환송하는 자리까지 휩쓴 것이다. 교실을 빠져나가 깃발을 흔들러 가도 마른 오징어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토토는 너무나 실망스러워 출정식에 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깃발을 흔드는 대신 받은 오징어 맛은 토토의 기억 속에 계속해서 자리잡게 되었다.
토토네 아빠는 1944년 가을이 끝날 무렵 호쿠시(현재의 중국 화북지방)로 출정하게 되었다. 패전 후엔 쭉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어 있었다가 1949년 말에야 토토네가 살고 있는 키타센조쿠 집으로 돌아오실수 있었다. 미국 이야기를 해주시던 타구치 숙부님을 비롯해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향해야 했다.
세계대전이 끝나자 돌아온 군인 아저씨들도 돌아오지 못한 군인 아저씨들도 있었다. 전쟁 중엔 알지 못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보니 오징어를 받으며 만세를 불렀던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란 걸 그제서야 알았다.
토토는 생각했다.
지유가오카역 앞에서 토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환송하는 가운데 전쟁터로 향한 군인 아저씨들 중 대체 몇 명이나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토토는 그저 오징어 다리가 먹고 싶었기에 일장기가 그려진 작은 깃발을 흔들며 군인 아저씨들을 환송했다. 하지만 군인 아저씨들이 깃발을 흔드는 토토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환송해주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싸우자."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전쟁터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렇다면, 그랬던 군인 아저씨가 전사했다면 그 책임의 일부는 토토에게도 주어지는 것이고 오징어를 먹고 싶어서 "만세!"를 부른 토토는 군인 아저씨들의 마음을 배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른이 되어서야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그 일장기를 흔든 것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터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만세!"를 외치며 환송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오징어를 먹고 싶었다고는 해도 토토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 그리고 무책임했던 것이 토토가 짊어져야 할 "전쟁책임"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집 영장 이 왔다"
1944년 봄,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지 이 년 반이 지났을 무렵에 토토네엔 기쁜 일과 슬픈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4월에 여동생 마리 짱이 태어나 사 자제가 된 것이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5월에 첫째 남동생인 메이지 짱이 패혈증으로 죽어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기차게 학교에 다니던 메이 짱. 공부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잘 켜서 토토와 메이 짱은 언제나 함께 놀았는데... 페니실린 한 방만 놓을 수 있어도 살 수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토토는 메이 짱이 죽었을 당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메이 짱에 대한 것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항상 어깨동무하고 같이 학교에 가고 그랬었잖니."하고 엄마가 말할 정도로 사이 좋은 자제였을 텐데 어째서인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사진을 봐도 "아하, 이런 아이였나?"란 생각이 들 정도다. 분명 메이 짱이 죽었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토토가 메이 짱과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토토의 기억 속엔 메이 짱을 잃고 슬퍼했을 엄마 아빠의 모습조차 남아있지 않다.
메이 짱이 숨을 거두기 전에 "하느님, 전 하늘나라로 가지만 부디 저희 가족은 평화롭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선명한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고 나중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 해 여름에 엄마는 피난을 결심하게 되었다. 우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어디로 갈 것인가. 토쿄 출생이신 아빠에게 시골집 같은 건 없었고 엄마의 고향인 홋카이도는 토쿄에서 너무나 멀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를 혼자 토쿄에 남겨두고 아직 어렸던 세 아이를 이끌고 피난처를 찾는 여행을 떠났다.
첫 후보지는 센다이는데 엄마의 아빠, 토토의 할아버지가 센다이에 있는 현재의 토우호쿠대 의학부를 졸업해 의사가 되었기 때문에 나름 인연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센다이역에 내려 역앞을 방황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안 되겠어, 여기 절대 공습당할 분위기야."
엄마의 예언이 맞아 다음해 7월에 센다이는 B-29의 대공습을 당해 시가지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홋카이도의 대자연 속에서 자라난 엄마에게 위험을 감지하는 동물적 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센다이로 피난하는 것을 포기한 뒤 이번엔 후쿠시마로 향했다. 후쿠시마역에 내린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기 근처에 피난해 있을 만한 곳이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니 "이이자카 온천 근처 어떻십니꺼?"라고 답했기에 흔들거리는 버스를 타고 이이자카 온천으로 갔다.
이이자카 온천에는 온천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토토가 다리를 치료하러 다닌 유가와라 온천은 마을 곳곳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어른도 아이도 뜨끈뜨끈 상기된 얼굴로 다니는 무척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와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에 놀랐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엔 전황이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던 때니 한가하게 온천에 몸을 담그러 올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여관을 몇 곳이고 돌아다녔는데 피난 때문에 오게 되었다는 말에 어느 여관의 아저씨가 "우리 여관에 방 하나 비었는데 거기 묵을라요?"라고 말해주셔서 엄마가 안심하며 "잘 되었구나."라며 토토의 손을 잡았지만 토토의 눈은 다른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친절한 아저씨가 입고 있는 바지도 팬티도 아닌 것 같은 색이 옅은 팥으로 칠한 듯한 축 늘어져 있는 건 대체 뭐지? 토토 나이대에 입는 불루머가 길어진 것 같아. 그 아저씨는 저녁 더위를 피하는 중이었던 듯 부채를 퍼덕퍼덕 부치면서 서 있었는데 그 길다란 블루머를 입고 있는 모습은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두 발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토토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말았다.
"엄마, 저 아저씨가 입고 있는 건 뭐예요?"
"저건 사루마타(サルマタ)라고 하는 거야."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었지만 토토는 "그렇구나! 아저씨 다리가 원숭이(サル) 같아!"라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른치곤 좀 보기 흉하게 입은 모양새긴 했지만 토토는 "사루마타"라는 단어의 울림이 마음에 들었고 이 온천으로 피난 오면 토쿄와는 다른 재밌는 사람들이나 예쁜 자연, 처음 보는 동물들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저씨가 권해준 여관방은 무척 넓고 훌륭했다. 먹을 것도 토쿄에 비하면 훨씬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여기로 피난해야겠네."라고 말한 뒤 토쿄에 있는 아빠에게 전보를 보냈다.
아빠가 바로 답신을 보내왔는데 그 전보를 읽는 엄마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면서 토토네는 곧바로 짐을 싸 토쿄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엄마는 얼굴이 굳은 채로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아빠가 보내온 전보엔 "소집 영장 이 왔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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