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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6 :: 공격과 수비, 다면성
전에 한국에서 <헬로우 블랙잭>으로 유명했던 사토우 슈우호우 작가의 작품 <특공도(特攻の島)>를 읽고서 패닉에 빠진 적이 있었다.(http://blog.daum.net/zx-cvbmn/724)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던 전작과는 완전히 정반대로 자살 특공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건가 고민하다가 그냥 <헬로우 블랙잭>을 팔기로 했다. 하지만 그 후에 마냥 이렇게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받고서 다시 한번 더 보기로 했고 완결권인 9권까지 다 보았다.
내가 이 작품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과연 내가 생각하는대로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가 군대에 갔던 것도 어차피 가야 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가는 것과 비슷하게 간 것에 불과했고 그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나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선택을 해야 될 때 그 선택의 기회조차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죽음을 당하는 것도 싫고 도망칠 수도 없다. 그럼 내가 이 작품에서 주어진 상황에 놓여져 있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럼 선택은 자신이 가는 길에 최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외엔 다른 것이 없게 된다.
영화 <호타루>에서 나왔던 카미카제 참가 조선인 병사의 이야기도 그렇다. 나라가 어쩌느니 사상이 어쩌느니보다는 자기의 희생으로 인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병사 개개인의 입장에선 최선이었을 것이다. 이걸 전쟁 찬양이라고 하기엔 우리가 너무나 전쟁을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세상의 한 구석에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일본 국민 개개인이 제국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독립운동가들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웠지 일반인들을 상대로 하지는 않으려 했는데 정작 우리는 당시 일본인 개개인에게 특정한 사상을 따르거나 반하는 행위를 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제시대뿐만이 아니라 이승만과 군부 독재로 이어졌던 시기를 생각해 보았을 때 정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체에 비하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전체에게 그렇게 하기를 바라왔고 그것에 반하는 모습이 그려지면 반발하게 된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일제의 공격적인 이미지다. 식민지 사람들을 짓밟고 적군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반일감정이 강하게 드러나는 영상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반대의 이미지에 반발할 수밖에 없어진다.
<반딧불의 묘> 같은 경우도 뭘 과장하거나 하는 것 없이 그 당시 흔히 있었던 전후 일본인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딱지가 붙어있다. 전쟁에는 공격을 하면 수비가 있고 가해가 있으면 피해가 있다. 일본이 전범국이 된 것은 전쟁에서 진 결과이고 전쟁에서 진 것을 인정하기까지 수많은 희생을 내게 된다. 이건 굳이 일본에 한정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느 나라라고 쉽게 패배를 인정할까? 결국 많은 피해자들의 양상이 생성되게 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이런 양면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걸 피해자의 관점이라고 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전쟁터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려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방탄소년단이 핵폭발 티셔츠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핵폭탄 투하의 이유를 대려고 안간힘을 써봤자 죽어도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 공격이었음에도 그런 걸 광복과 연관시키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은 결국 제국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가하는 의문으로 연결된다. 제국주의는 극단적인 국가주의 우익이 만들어낸 것으로 개인, 약자는 대상에서 소멸되어도 별 상관이 없는 사상이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는 이를 이용해 카미카제도 카이텐도 거리낌 없이 '황국을 위한 희생' 운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광복 전의 필수 단계(여기에서부터 상당한 논란이 일지만)로 여기며 핵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에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있는 것일까? 양면성을 인정하지 않고 한번에 뭉뚱그려서 모두를 죽이는 것이 과연 일제의 탄압에 항의하는 자세일까?
이런 자세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을 바라보는 자세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보는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멘 난민 문제가 촉발되었을 당시 이들을 병역 기피자로 보았던 시선도 예비 성범죄자군으로 보았던 시선도 상대가 처한 환경의 양면성을 바라보기보다는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에 치중되어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기를 요구했다. 이젠 우리가 피해자도 아니다. 도리어 셀 수 없고 도를 잴 수 없는 공격을 퍼부은 가해자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예멘 분들이 한국어를 알 확률은 매우 적으니 직접적으로 접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느 쪽 입장에 서든 간에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던 옛날 유행가가 무색해질만큼 사람들은 자기들의 시선을 강요하게 된다. 이런 양상을 완화시키려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무력하니 인기영합주의에 빠진 정치가들도 외국의 사례가 어떻고 기본적인 인권이 어떻든 간에 그저 큰 흐름을 따라갈 뿐. 아니, 역으로 정치가들로선 이런 사회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이 편하기에 키우면 키웠지 말리려 드는 용자는 그저 용자일 뿐이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거기에 이상한 점을 느끼는데도 휘말릴 이유가 있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서도 이 생각을 관철(혹은 고집)해 왔지만 요즘 더더욱 이런 점을 느끼게 된다. 우르르 몰려가니 다들 생각을 하는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리트윗과 관심글 표시가 빗발치는 트위터나 이용당해 먹는 게 뻔한데도 다들 좋아요 누르기에 바쁜 페이스북, 최다추천 댓글로 모든 여론이 결정되는 포털 뉴스에서 과연 다양한 시선이란 것이 존재하는 건지... 하긴 관심이라곤 쥐뿔도 받지 못하는 누리꾼의 한심한 소리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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