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기사 2018. 10. 3. 14:59

인권운동가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정치활동으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은 여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Israa al-Ghomgham(29) 씨는 아랍의 봄 당시 남편 Moussa al-Hashem 씨와 함께 Qatif 동쪽 지방에서  반정부 단체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2015년 12월에 체포되었다. 이달 초 Riyadh시의 특수범죄 법정에서 열렸던 심리에서 검사는 Ghomgham 씨와 다른 피고 다섯 명에게 테러방지법을 적용하도록 구형했다. 활동가들은 현재 10월로 예정되어 있는 항소심에서 이 결정이 뒤집혀질 수 있도록 로비를 하고 있다. 만약 구형이 그대로 선고된다면 이 판결은 왕국에서 모든 사형 건에 대해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Salman 왕에게 전달될 것이다.



독일에 위치한 사우디 인권단체 유럽지부(ESOHR)에 의하면 Ghomgham 씨는 "유명한 인권수호자"이다. ESOHR 이사인 Ali Adubisi 씨는 성명에서 이 결정이 매우 보수적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여성 활동가들에게 "위험한 선례"를 안기게 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단체는 Ghomgham 씨를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Ghomgham 씨가 삼 년이나 갇혀 있는 동안 변호사도 만날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Ghomgham 씨는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고 정부가 시아파를 차별하는 것을 중지하고 시아파가 주를 이루고 있는 Qatif 지방에 누명을 씌우는 것을 중지하라고 요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The Independent 지의 인터뷰 요청에 불응했다. Ghomgham 씨 사건은 최근 수 주간 사형과 관련된 잘못된 소식이 아랍어권 언론과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계속 전달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Qatif 지방은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시아파 시민들에 대한 차별을 멈춰달라는 요구를 한 이후 주기적인 집단체포와 자살폭탄 차량, 공안기관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여름에도 The Independent 지는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가 Qatif 지방의 Awamiyah 마을에 있는 무장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겠다는 명목으로 군대 파견을 한 이후의 참상을 보도한 바 있으며 많은 주민들이 십자포화와 극심한 포위망에 목숨을 잃은 시민들이 있음을 증언했다.


작년에 Mohammed bin Salman 왕자가 왕세자로 지목된 이후 사우디 아라비아는 석유 수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사회적·경제적 개혁을 시도했다.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고 악명높은 종교경찰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등 뒤늦게나마 바뀐 조치들이 환영을 받는 한편 왕정이 내리는 사형에 대해선 자유로운 발언과 접근을 할 수 없다는 비판점이 있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형수 수용소엔 최소 쉰여덞 명이 갇혀 있는 것으로 추측되며 Amnesty International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 중 최상위에 올라가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에 나온 UN 보고서 또한 올해 5월부터 수십 명을 혐의도 밝히지 않고 체포하는 등 여성인권 운동가를 탄압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전문가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얼마되지 않는 시민단체들이 아닌 왕족이 이루는 정부가 왕국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겠다는 신호를 내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https://goo.gl/MKXUVN



이 기사는 8월에 나왔던 기사이다. Israa al-Ghomgham 씨의 재판은 10월 28일로 예정되어 있으며 이 재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도 여성 인권에 대해서 여느 나라보다 뒤쳐져 있으며 사형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는 나라이고 기사에 의하면 이것이 반대 세력에 대한 경고장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니 사형이 선고될 확률이 매우 높다. 서명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 나오긴 했는데 (서명 페이지) 삼만오천 명 목표도 못 채우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대상에서도 멀어졌다는 걸까?  그렇다 해도 최소한 누군가에게 알리기는 해야겠다 싶었다. 전에 여성 운전면허 허용 가지고 그 난리가 나는 걸 보며 결국 사우디 아라비아 왕정의 이익에 부합하니 풀어주는 것일 뿐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저러나 싶었는데 당연하다시피 그 한편에서는 이런 일이 진행형 상태에 놓여 있었고... 이런 나라를 미국이 좋아하니 더더욱 답이 없지 키득. 사우디 아라비아가 바뀌는 건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이뤄지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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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기사 2018. 8. 5. 15:53


러시아 경찰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허가받지 않은 시위에 참가한 게이 인권 운동가 스물다섯 명을 체포했다. 토요일 오후, 인권 운동가 수십 명이 시위를 금지당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Palace 광장에 모였다. 이 시위를 조직한 사람들은 시청이 퍼레이드 요구를 거부한 것에 일인시위를 통해 항의하며 집회의 자유를 요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Alexander 기둥 앞에서 체포당해 주목을 받았던 한 남자는 무지개 깃발로 만들어진 현수막을 놓지 않으려 했다. 여기엔 "엄마도 날 사랑하고 아빠도 날 사랑하고 친구들도 날 사랑해. 왜 너는 못하겠다는 거지?"라고 적혀져 있었다. 경찰은 무지개 깃발을 흔들거나 현수막을 들고 있었던 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하여 경찰버스에 실었다. 



경찰 세 명이 이 남자를 옮기고 있었을 당시 매우 낙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무지개 현수막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인권 활동가 사이에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라이드 축제는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으며 Brighton시 같은 경우 삼십만 명이 참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2013년에 게이 "프로파간다"를 퍼뜨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러시아 경찰은 지난달에 영국 LGBT+ 운동가 Peter Tatchell 씨를 크렘린 근처에서 게이 인권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인 혐의로 체포하기도 했다.


https://www.independent.co.uk/news/world/europe/russian-police-detain-arrest-lgbt-gay-rights-activists-pride-rally-st-petersburg-a8477466.html


전에 러시아 사람이 한국에서 흉악범죄를 저질러서 속지주의에 따라 한국에서 이를 사법절차로 넘기려 했는데 러시아 쪽에서 이 사람을 자기나라로 데려가서는 중형을 선고했다는 트윗을 본 적이 있다. 뭐만 하면 죽여버려야 한다는 말을 일삼는 누리꾼들 성향을 보면 뻔히 짐작할 수 있듯이 매우 긍정적으로 쓰여져 있었다. 피해를 당한 나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결례인데 중형을 내렸으니 그걸로 잘 되었다... 무조건 중형만 내리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 믿는 사람들이 정말 솜방망이(?) 처벌만 내리는 나라로 가면 기절하지 않을까 싶다. 하긴 한편으로는 거기에 가고 싶어 안달을 하지.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중형을 내렸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러시아는 이런 나라이다. 범죄자에게 중형을 내려버리는 것도 인권을 무시한 과정일 확률이 높다. 아니면 저런 사람들이 있는 걸 무시해도 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헌재에서 드디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앞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나마 대체복무의 길을 열기 전에 나왔던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했던 말들 중에 대부분 병역 이행은 비양심이냐 같은 고리타분한 레퍼토리였지만 눈에 띈 게 저건 불법이다라는 것이었다. 법이 정해져 있으니깐 무조건 이에 반하는 행위도 이 행위를 옹호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럼 법이라면 이것이 잘못되었다 해도 무조건 따라야 된다는 것일까? 독재시절이 아니라고 해도 법은 잘못될 수 있고 여기에 항의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있기에 이에 항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고. 아니면 국회에서 다수결로 결정되었으니 그게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건가? 기사에 나온 분들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불법(?)이다. 법은 엄연히 정해져 있고 거기에 따라 처분이 나왔는데 이에 항거하는 건 완전한 불법(?) 아닌가. 법을 무조건 준수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일이라는 전제가 많은 사안에서 보이고 있다는 게 답답하다. 그 전제가 철저하게 이뤄져서 돈 있는 사람들만의 천국이 된 게 미국인데...

이런 걸 보면 볼수록 결국 사람들은 인권 같은 거 딱히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것 아닌가, 더 나아가 그냥 걸림돌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권인데 그 인권에게 나중에를 외치는 것을 부끄럽지 않아하는 나라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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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사람들이 전인류적 인류애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으며 너무 잘 보여서 싫어하게 되는 경우도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들을 소중한 존재로 여겨주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들을 자기들 사정에 맞춰서, 허위 사실을 마구 퍼뜨리면서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킨다면 과연 전자와 후자가 공존할 수 있을까? 메갈리아 등이 막 생겨났을 때에 마뜩잖아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결국 같이 살아가야할 사람들끼리인데 그게 아무리 옳다고 해도 상대방의 신경을 거스르는 식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면 대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의문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상당수의 남자들이 그 의도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퍼뜨리고 있지만 그 의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그걸 또 조롱하는 것은 (나는 이 말을 매우 싫어하지만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엔)소위 가르치려 든다라고 볼 수도 있다. 의도를 전하려 했으면 그 의도를 이해시키는 것 또한 전하는 자의 몫이다. 

물론 이 부분까지는 허위 사실이라든가 자기들 사정에 맞춘다든가하는 것은 소수의 경우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예멘 난민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런 현상이 심각화되었다. 평소에 봐왔던 비백인 외국 출신 노동자 혐오세력이라든가 이슬람교 혐오에 앞장서는 개신교 세력뿐만이 아니라 아랍 국가에서 성차별이 심각하며 이를 근거(?)로 난민들이 온갖 성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면서 거대한 혐오의 물결을 이루게 되었다. 물론 또다른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이것을 지적하며 극구 말려보려 했지만 거대한 혐오의 물결은 오히려 이에 더 반발을 하게 된다. 내가 댓글을 썼다는 이유로 몇몇이 내 블로그로 들어온 경로가 된 ‘여성혐오자 이슬람 난민을 추방하자’고 외치는 당신에게라는 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자기들의 혐오주장만 연발할 뿐이지 딱히 이 글에 대한 피드백은 없다. 서로 벽을 쌓아놓고 대포만 쏘게 된 것으로 생각하게 된 지도 오래되긴 했지만 이렇게 벽이 높은 건가 싶었다. 동시에 내가 왜 이들과 연대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건가 싶었다.

연대를 한다는 것은 같은 선상에 설 수 있을 때에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예멘 난민들을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주된 주장은 "예멘 남자들이 한국 여성을 강간할 것이다!"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전쟁과 총살의 위협을 피해서 다른 나라로 온 사람들이 어떤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실제로 지금까지 딱히 예멘 난민들이 어떤 사고를 저지른 사례가 없고 앞으로도 일어난다 한들 극소수일 것이다.(물론 그 극소수만으로 엄청난 난리가 날 것이라는 것도 쉽게 상상이 가지만) 이런 상황에 있는 예멘 남자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적개심을 드러내는데 한국 남자들에 대해선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시위에서도 남자들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난 사안이 사안인만큼 이런 방식을 존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세히 들여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참가할 수 있는 여자의 범위를 원래 가진 생물학적 성별에 한정시키면서 트랜스젠더 등의 소수자를 배제했고 여기에 LGBT가 반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전에 문제가 되었던 게이 혐오 문제도 쉬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만 트랜스젠더 여성까지 배제를 당하면서 골이 더욱 깊어진 것 같다.(실제로 트랜스젠더들 사이에서도 거기는 잘못된 페미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난민 남자들까지 자신들의 적으로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평범한 한국 남자들은 대체 무엇으로 보는 걸까? 인터넷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보이는 이상한 사례들이 정말 이상(異常)인 건가? 그냥 남자면 다 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오고보니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전같으면 자연스럽게 서명을 했을 성평등 관련 서명 링크를 누르는 것도 관련기사를 보는 것도 꺼리고 있다. 내가 왜 여기에 굳이 참여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걸 언젠가 바로잡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예멘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바뀌기는 커녕 오히려 토요일에 시위를 한다고 한다. 그것도 광화문광장에서... 부조리에 맞서서 촛불을 들었던 그 광장에서 이번엔 부조리를 위해 촛불을 드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 걸까? 더군다나 광화문광장의 일부는 세월호광장이다. 얼마나 모일지 모르겠지만 세월호 리본을 달고서 혐오시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면 더욱 끔찍하다. 열릴지 알 수 없지만 여기에 대해 반대시위를 한다해도 혐오시위에 비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인권이 대결양상으로 들어가버리면 100% 인권옹호 쪽이 밀려버린다. 인권은 감정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지만 반대 측은 감정에 모든 것을 싣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예멘 난민 혐오 페미니스트들의 모습에 질려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인권 문제가 아닌 자신들의 감정을 시원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뿐 아닌가 하고. 이 감정을 다잡을 수 있다 해도 그건 상당히 뒤로 밀려날 것 같다.




*알고보니 광화문광장이 아니라 동화면세점이라고 하는데 재작년 겨울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거기까지도 다 촛불 들고 있었고 세월호광장 생각해 보면 거기가 더 가깝다. 핑계 같네...

** 세종로파출소 앞 https://t.co/Vx5fan9w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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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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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6. 11. 23:18

전에 영화계 미투 열풍으로 드러난 사태에 대해 썼을 때 이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설마 이게 이송희일 감독에게서 나올지는 몰랐다. 검색 순위에 떠있는 것을 봤을 때에도 혹시 이송희일 감독 신변상 불행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었다. 이송희일 감독이 찍은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본 것도 아니지만 이송희일 감독이 언급한 영화는 꼭 봤었고(그 중 하나가 <연애담>이었지만) 푼돈이지만 이번에 인디포럼 2018을 후원한 것도 이송희일 감독을 영화를 접하는 한 지침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권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뭘 어떻게 언급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라든가 피해자를 게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여태까지 진절머리날 정도로 접한 전형적인 책임 회피 가해자의 태도는 취하지 말았어야 되는 것 아닐까? 이래서야 이현주 감독이 취해서 문제가 되었던 태도와 뭐가 다른가. 괴물을 상대하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것인지 뭔지 이해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그럼 난 대체 어떻게 이 일을 대해야 되는 건지 위와 마찬가지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방향이 잡히지 않는 배 위에서 폭풍우를 만난 것 같은 느낌. 그저 시야가 혼란스럽고 어둡기만 하다.



페이스북에 뭐라도 썼나 싶어서 찾아봤는데 인디포럼 2018 관련해서 쓴 글마저 지운 것 같다. 페이스북 친구사이인데도 안 보이면 비공개 혹은 삭제겠지. 그동안 저런 글을 많이 써왔고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이 어려운 것은 잘못된 권위 의식을 가지는 것과 별 상관이 없나 보다.

이것도 이송희일 감독을 통해 배우게 된 것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예견되어 있었구나. 그 동안 감춰져 있었을뿐이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019130171685270&id=100007649208869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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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142190


요즘 김승섭 교수가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을 보고 있다. 많은 사회적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약자들의 건강상태가 이들이 처한 상황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이를 개선하려면 어떤 점을 고쳐야 되는지 상세히 서술한 책인데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낙태에 관한 것이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이 여성들의 낙태를 금지하고 의무적인 출산수를 정해놓는 등 엽기적인 산아정책(?)을 내놓은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여기에서도 유독 임산부들이 겪었어야 될 고통보다는 아이가 너무 많아져서 나라가 망하다시피 한 나머지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끝으로 마무리를 짓는 경향이 큰데 임산부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통계가 있다. 임신 중이나 출산 후 7주 이내로 사망할 확률인 모성 사망비이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낙태를 금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이 그저 슴풍슴풍 아이를 낳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자들은 낙태를 할 방법을 찾게 되었지만 제대로 된 수술에 의한 낙태를 할 수 없으니 불법시술이나 아니면 그냥 무식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산을 하면 하는대로 문제이다. 산아가 자연스럽게 급증할 수밖에 없으니 제대로 된 산부인과 환경 속에서 출산을 하는 것이 힘들고 그 결과 병을 얻거나 낙태법 시도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성 사망비는 차우셰스쿠 정권이 망한 뒤로 급감하게 되면서 이 정책(?)이 얼마나 악영향을 미쳤는지가 증명되게 된다.

한국에서는 병원 자체가 그렇게 위생적이지 못하다거나 하지는 않으니 이런 위험까지 감수하지는 않게 되지만 여전히 많은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은근슬쩍 해주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게 된다. 가출 청소년의 경우 많은 여성 청소년이 또래의 남성 청소년, 혹은 성인 남성에 의해서 임신을 하게 된다. 안 그래도 돈이 없어서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다가 그런 일을 겪게 되었는데 막상 어디에서 큰 돈을 구할 수도 없을 경우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럼 더욱 청소년의 몸이 망가질 확률이 높다.


http://v.media.daum.net/v/20180523010056151

거참 웃으면서 개소리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앞서도 말했지만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정작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임산부 쪽의 의사가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다. 낳을지 안 낳을지에 대한 선택을 하는 것이 마치 죄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열 달을 몸 속에 품어야 하고 낳아야 하고 결국 기르는 과정까지 임산부의 몫인데 그걸 무시하는 듯 생명이므로 낳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저런 식으로 꺼낸다. 가출 청소년의 경우에도 집으로 돌아간다 한들 선택지는 많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됨으로써 청소년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없어진다. 낙태를 하거나 아이를 낳아도 자신의 아이로서 기를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고 이 선택은 청소년의 보호자가 하게 되니깐.(천종호 저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참고)

자해를 한다면 모를까 자신의 몸 상태를 자신이 결정할 권리를 계속해서 부정하는 것은 결국 가부장제적 논리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딸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낙태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했던 옛날이나 고령화 시대나 (임산부의 소중함은 내팽게친)생명의 소중함을 논하며 무조건 낳아라를 외치는 지금이나 똑같은 상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최근 낙태죄 사례도 "상대 남성의 집안의 대를 이을 아이를 임신했는데 이를 낙태하자 남성이 낙태죄로 고발해 처벌된" 경우이다. 낙태뿐만이 아니라 출산 과정에서도 임산부 본인의 의사가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제왕절개냐 자연분만이냐... 당연하다시피(?) 제왕절개로 낳으면 많은 불이익이 있을 거라 협박이 나돌고(물론 근거는 빈약...) 자연분만으로 해야 한다는 강압이 따른다. 임신을 하기 전부터 출산 후까지 자기 의사에 따라서 결정하는 경우는 아마 성인 미혼모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물론 이 경우도 경제적 문제에 따라 좌우된다.)

책임의 문제는 충분히 차고 넘칠 정도로 임산부 쪽이 지게 된다. 물론 아이의 아버지가 혼자서 기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아이의 어머니 쪽이 혼자서 기르게 된다. 가출 청소년 같은 경우 누가 아버지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흔하고 누군지 안다 해도 찾아보면 보이지를 않는다. 가출 청소년 같은 경우가 아니라고 해도 남자 쪽이 확실하게 책임을 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저 기사에 나오는 이야기는 여자 쪽이 책임을 지지 않으니 낙태가 발생한다고 한다. 아니 그 낙태 과정에서부터 여자는 상당한 부담을 가지게 되는데 뭔 헛소리를 공개적으로 하시는 건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태아의 경우도 생각해 보면 어거지로 낳았을 경우 (특히 저 분이 말하는 강간의 경우)부부 간의 분담을 생각할 수 없으니 산모가 독박을 써야 한다.(물론 평범하게 결혼을 한 경우에도 그럴 확률이 높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울 경우 무언가를 제대로 챙겨주기 더 힘들어진다. 임신했을 때에도 제대로 챙겨주기 힘든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데 태어난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 1945년 네덜란드 기근 시기에 태아였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본 결과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세 배, 조현증에 걸릴 위험은 2.6배로 나오는 등 상당히 유의미한 수치로 위험성을 나타내었다.(<아픔이 길이 되려면> 중에서) 딱히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 같은 상황이 아니어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기는 불행해질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낳아서 기르면 행복할 것이다라... 당사자 두 명이 이미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와있는데 저 교수님은 뭘 본 것일까? 아니 뭐 보지를 않았겠지.

간단히 말해서 너네가 대신 낳아주고 길러줄 것도 아닌데 뭘 강요하거나 한다고 해서 들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꼰대이다. 뭐 대단한 이야기를 보고 이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도 아니니 결론도 그냥 대단하지 않게 내는 게 맞을 것 같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왜 자기들의 잣대로 재려 드는 건지...


*쓰고 나서 보니 여성의 아픔을 이야기한 걸로 인용한 책들은 둘 다 남자가 쓴 책이고 저 헛소리를 하는 분은 여자네... 인권문제를 가지고 성별 따지는 것도 그렇지만 명예남성이라는 것이 정말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건가...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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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5. 20. 02:13

2015년 1월 30일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엉뚱하게 돌을 맞은 작품


레이디 가카께서 이 책이나 신은미 교수가 한 강의를 한 장 일 분이라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내용이 정말 일부분만 보고 신은미 교수 맘대로 끄적인 거라 판단하고 있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으신 거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통일을 하든 화해를 하든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양 쪽에 대한 이해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신다면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화해의 움직임은 조금도 없는 거라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이 책을 쓴 신은미 교수가 다녀간 곳들은 북조선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허용하는 자신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수순으로 짜여져 있다. 의도치 않게 다른 곳에 갔다가 어떤 아이가 노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싶더니 통행금지 당한 적이 있었다는 글귀도 있었고. 당연하지 않은가? 북조선 입장에서 자기들이 무지 못 사는 장면을 보여주며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텐데. 그리고 신은미 교수가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광이다. 무슨 북한 인권 조사도 아니고 그냥 북한 관광. 이런데도 신은미 교수가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했다며 그릇된 것이라 논하고 싶은 분들은 부디 국외 여행할 때에 빈민가나 교도소(가능하면 정치범 수용소, 포로 수용소로)로 가시길 바란다. 갈 리도 없고 가게 해줄 리도 없겠지만.


 하지만 이런 제한된 상황하에서도 신은미 교수는 끊임없이 북조선 인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그런 결과 얻어낸 것이 삶의 수준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 사람이나 북조선 사람이나 같다는 것이다. 같은 나라 사람이었다가 갈라져서 다른 나라 사람이 된 것 뿐 사고방식도 삶도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북조선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혹은 주입된 상식들이 이를 가리고 있을 뿐이라고. 이런 것들을 말한 게 종북이라... 이런 내용이 문제가 된다면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를 쓴 모니카 마시아스 씨는 종북 수준을 훨씬 넘는 것 아닌가 싶다. 북조선에서 모국어를 잊어먹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살다가 김일성과는 아예 부녀 관계를 맺으신 분인데 성인이 되어 북조선을 나와 세계를 돌아다니다 한국에 와보니 뭐야 북조선이나 한국이나 같네라고 생각하게 된 내용이 이 책의 주내용인데 이 책에 대해서 무슨 시끄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TV조선에서 종북 인증을 하지 않아서일까?


 수꼴들이 보기에 신은미 교수가 종북으로 분류되지 않았으려면 책 처음 부분에 나온 것처럼 북조선 인민들은 북조선 정부와 당에만 충실하여 가족끼리도 서로 의심하며 피폐하게 살아가는 뿔 달린 도깨비이다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 만족하며 반공의 최전선에 신은미 교수를 내세웠겠지.(진실이든 거짓이든 그런 것은 맹목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은미 교수도 살아온 환경상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그런 어처구니 없는 곳은 아니었다고 오마이뉴스 연재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점이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문화관광부 추천도서 지정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담아 이야기 모임을 가지자 원래 이름인 통일 콘서트가 아닌 '종북' 콘서트로 칠해져 버리고 고등학생이 테러를 벌이고 이 때다 하고 진행자를 잡아가고 신은미 교수는 쫒겨나고 책은 총리 말 한 마디에 추천도서에서 삭제되고...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사람들이 가장 민주주의를 부숴버리는 나라에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민주주의적인 내용인가 보다.(뭐 이런 말 하면 수꼴들 눈엔 종북좌빨이 하는 헛소리로밖에 안 뵈겠지만...) 레이디 가카와 정홍원, 테러 일으킨 고등학생, TV조선 직원들에게 책 읽고 감상문 A4용지 100장 글자크기 10 엔터 치지 말고 꽉꽉 채워 써오라고 하고 싶지만 거들떠도 안 보겠지...


 신은미 교수는 쫒겨나면서도 한반도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라고 했다. 태어난 나라와 한참 나이가 들어서야 다시 볼 수 있게 된 나라 양 쪽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신은미 교수가 이 때 무슨 말을 했어도 한국에서의 입지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할 수가 없다. 종북 낙인은 그렇게 쉽게 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한반도 통일을 논한다. 자신을 내쫓은 모국을 위해서...

돌을 던지는 것은 대상이 강자일 때 정당성을 가질 수 있고 그 신념이 명확하고 정의로울 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신은미 교수가 맞은 돌엔 정당성이 있는가? 누군 종북좌빨 논리를 내세워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2017년 3월 2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결국 이 일도 최순실과 김기춘이 주무른 문화계 탄압과 연계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위에도 써 놓았듯이 이 책은 문화관광부 추천도서였고 선정이유도 보수적인 사람이 본 북조선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걸 손바닥 뒤집 듯이 뒤집는다는 건 쉽지 않고 그 쉽지 않은 일들이 박근혜-최순실 정부 내내 일어났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일을 돌발상황으로 벌어진 사태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불충분한 것 같다. 물론 신은미 씨의 입장 자체를 모두가 외면하고 있으니 감춰진 진실이 있다한들 밝혀낼 수가 있나 싶지만...



어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신은미 씨가 한국에서 겪은 일을 담은 영화 <앨리스 죽이기>를 보았다. 내용 자체는 잘 알고 있는 것들이기에 글을 이런 식으로 작성했다. 그냥 다시 보면서 단편적이거나 아예 <TV조선>이 뿌린 허위사실에 휘둘려 폭탄 테러를 벌이고 강연하는 곳마다 쫓아갔던 자칭 보수어버이알바연합들의 행태와 박근혜 정부의 강압적 태도에 치를 떨고 이에 힘들어 하는 신은미 씨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는 것 외엔 크게 다른 감상이랄 게 없었다. 다른 게 하나 있긴 한데 이 영화 속에서 폭탄 테러를 벌였던 청소년 인터뷰가 들어가 있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게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인데 이제사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딱히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지만... 익히 알려진 바대로 그 청소년의 표정에 죄책감 같은 것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폭발이 너무 크게 일어나는 것을 염려해서 준비했던 세 통을 전부 쓰진 않았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자기도 폭발에 휘말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그 폭발을 온몸으로 막아내셨던 분은 만신창이가 된 채로 영화에 담겨있는 기간 동안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있으셨다.

신은미 씨가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 자칭 보수만큼은 아니어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나도 신은미 씨를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탈북자하고 굳이 키배를 벌여서 헛점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라도 남북 간의 공통점을 발견하지 않으면 문재인과 김정은이 만나자 사람들이 읊기 시작한 통일 노래는 대체 어떻게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안 그래도 수십 년 동안 서로 격리되다시피 했는데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은 공통점마저 버리고선 하나가 되는 과정으로 나아가겠다? 그냥 국경 그대로 놔두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제한적으로 왔다갔다만 할 거라면 모를까 그닥... -_-a(그 때도 최소한 서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는데...)

같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다른 사람 신경도 안 쓰고 수다 떨고 있던 개년도 있었고 이런 과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분도 계셔서 감독과의 대화 당시 울먹거리면서 소감을 말하셨는데 그런 분에게는 추천한다. 저 당시 분노했던 자칭 보수들도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영화관에 폭탄 가지고 올지 어떻게 아나 ㄷㄷㄷ


개인적인 평점은 10점 만점에 8점. 위에 썼다시피 다 알고 있는 내용이고 그렇다고 평가를 마냥 깎아내리기엔 그런대로 잘 만들어졌다.


*<앨리스 죽이기>는 이 작품의 세 번째 제목이라 한다. 이 영화를 만든 김상규 감독이 말하길 제목만으로 A4 3장을 채웠다는데 정식개봉될 때엔 또 다른 제목이 달려서 나올지도.

**감독과의 대화에서 제목이 일본의 스릴러 문학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이 나오길래 난 <기사단장 죽이기>를 생각하고 그게 스릴러였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동명의 작품이 따로 있었다. 이거나 저거나 안 본 건 마찬가지...

***신은미 씨 책은 여전히 도서관에서 볼 수 있던데. 한국에서 겪으신 일에 대한 책도 내셔서 그것도 소장하는 곳이 있고. 박근혜의 행정력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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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누드 크로키 모델 사진을 워마드에 올려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동료 모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일이 더더욱 키워지고 있다. 학생 쪽이 그랬다면 철이 덜 들은 찌질이가 그랬다 이해라도 되겠는데 동료로서 모델의 고충을 잘 이해할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건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건 미러링이 아니라 그냥 폭력에 불과하고 온갖 악영향이 예정된대로 퍼지고 있는데 도대체 뭘 생각하고 그런 건지... 이걸 가지고 옳다구나 하고 사람들이 화제로 더더욱 키우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던데 난 그 모습을 보면서 뉴스타파를 떠올리고 검색을 해봤으나 내가 원하는 검색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같은 모델들의 이야기다. 군대 갔다오면 알 확률이 매우 높은 잡지 <맥심>에서 모델 일을 하는 박무비 씨와 다른 누드 모델들의 이야기. 모델 일을 하면서 온갖 성희롱과 강간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고 그 위험이 실제로 변해버린 사례들이다. 홍대 사진 건도 당사자의 심적 충격이 컸겠지만 이런 사건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심지어 여기에 나오는 성폭행 사건 가해자는 여전히 사진작가 자리를 유지하고 있고 피해자는 모델 일을 관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사건이 알려져도 딱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진 이후 뉴스타파에서 연이어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보기 힘들다. 반면 홍대 사진 사건은 이렇게 퍼질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반페미니즘 운동(?)에 사용되고 있다. 이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익숙함(?)과 참신함(?)의 차이인 걸까?




서강대에서 인권 강의를 준비했는데 이를 위해 정희진 씨와 은하선 씨를 초청했으나 서강대 학생들이 은하선 씨에 대해 대대적으로 반발해 결국 강의를 취소하게 되었고 정희진 씨도 이에 반발하며 은하선 씨와 연대하겠다는 의미에서 강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뭘 해봤자 세상은 안 바뀌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뭣하러 공부하고 그것에 따라 주장해왔나.'하는 생각이. 간단히 말해서 노답이었다.

페미니즘 옷 입었다고 교무실 불려가고, 해고당한 여성들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았더니 이 답글을 단 사람이 댓글 게시판을 도배를 하던데... 리얼뉴스라는 곳이 요즘 들어 자주 눈에 띈다. 쓰는 기사의 수준은 저 제목에 나와있는대로의 수준이다. 


매카시즘은 어차피 감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어떤 논리를 들이밀어도 광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 그럼 여태까지도 아무 것도 못한 난 대체 뭘 할 수 있는 건지... 이렇게 서로 담장을 쌓고 포만 쏴대는 형국에서 여기도 저기도 가지 못하는 나란 존재는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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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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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5. 7. 17:32


LGBT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당시에도 종로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지금은 실버영화관으로 바뀐 허리우드극장 옥상 같은 곳에서 눈 맞으면 둘이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같은 이야기...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한 후에도 인식이 그다지 바뀌지 않았던 나에게 유일한 LGBT(중에서도 게이에 대해서만)에 대한 인식이 들어가 있던 곳이었다. 이런 종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종로의 기적>이었다. 이 영화는 사실 <위켄즈>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오는 사람들과 시대상이 다를 뿐 게이 인권단체 친구사이를 중심으로 게이들의 시련과 저항, 연대 그리고 고양이를 담은 것은 같다. <종로의 기적> 확장판이 <위켄즈>라고 해야 되려나? 그러나 <위켄즈>는 다운로드판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종로의 기적>은 그렇지 못했고 내가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은 영화 개봉 후 몇 년이나 지나서였다. <종로의 기적>이 다운로드판으로 나오지 못한 이유는 뻔하다. 이 내용이 다운로드판으로 돌게 될 경우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서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신변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위켄즈>가 모자이크 같은 것 없이 다운로드판으로 공개된 것을 고무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종로의 기적>이 만들어졌을 당시 LGBT들이 처했을 고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상도 이런 식이다.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소준문 감독의 이야기이다. 소준문 감독은 퀴어 영화를 주로 만드는 (대게의 경우 그렇지만) 게이 감독이다. 굳이 그냥 감독이 아닌 게이 감독이라고 하는 것은 소준문 감독이 무슨 영화를 만들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다른 영화 제작진과 부딪치게 된다는 것이다.(부딪히게가 맞으려나...) 작품만 제시하면 호의를 보이다가도 감독의 정체성을 안 순간 물러나는 사람들, 간신히 들어오게 하는 데에 성공을 해도 배경지식과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상충되면서 감독에 반발하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독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것에 부담을 느끼는 감독. 어디서나 자신의 입장을 남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부담되는 과정이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정체성도 정체성이거니와 이것을 꼭 이해시켜야 되는 건가하는 고민,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트러블에 고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판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런 갈등을 겪는 LGBT가 많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꼭 털어놔야 되는 건가 싶은데 그렇지 않을 경우 발목을 잡히게 되는 상황. 몇몇 대학의 총학생회장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것이 동력이 된 경우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이다.


일반적인 경우


이런 모순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고 인권조례를 없애려 눈에 불을 켠 사람들이 LGBT를 가로막고 대중의 인식이 고정되어 있는 한...

참고로 소준문 감독의 영화는 인디플러그에서 단편 세 개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데 모두 괜찮은 작품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게이 인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장병권 씨. 한의사로서 온갖 인권 운동에 뛰어드는 열정적인 활동가로 심지어 한진중공업에서 김진숙 씨가 고공시위를 할 때에 버스를 타고 가서는 경찰의 탄압에 항거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정도 ㅋㅋ; 처음부터 끝까지 인권운동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데 전에 Askfm에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인권운동은 연대가 없으면 그냥 우리가 여기에 있다를 아무도 안 듣는 곳에서 외치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인권운동 자체가 매우 작은 범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자극적인 운동을 한다한들 사람들이 봐주지 않으면 끽해야 뉴스 한 줄에서 끝난다. 내가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애인 운동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뭔가 아는 척해온 나도 잘 몰랐고 대중은 그저 잔인하게 외면하고 있다가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가)에게 그 운동의 화살이 겨눠졌음을 알게 되면 잔인하게 공격한다. 연대를 해야 조금이라도 힘을 늘려낼 수 있는 것이다.



<런던 프라이드>(원제는 위와 같이 <Pride>)에서 나타내었던 영국의 LGBT와 노조의 연대와 같이 서로 간의 이해와 협동이 이루어질 수 있고 그것이 커진다면 이걸 대놓고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친구사이 등이 만드는 연대가 더 굳건해진다면 이 영화의 모습이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 물론 이런 모습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조차 보지 않고 억울하면 힘을 키워!식으로 윽박지르는 인간들이 너무 많이 보이지만...


<위켄즈> 속 쌍용차 노동자들


세 번째는 최영수 씨 이야기인데 <위켄즈>에서 중심 이야기로 나왔던 지보이스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련된 합창이 목적이기 보다는 애초에 이루지 못할 목적... 함께 노래를 통해서 어울리는 것을 목적삼아 만들어진 모임. 이들 중에서도 최영수 씨는 특히 그런 지보이스 구성원들과의 정서적 연대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후에도 계속 혼자였다가 뒤늦게서야 여기에 합류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영수 씨의 정체성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나 옛날 짝사랑했던 (평범한 가족을 이룬)남자도 행사에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보는 도중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 분의 가명이 스파게티나였던 것이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으나 마지막 부분 즈음이 되고 나니 사망한 것을 알리는 장면이 나오면서 기억이 확실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전에 <위켄즈>를 보면서 이 분의 이야기가 나온 부분에 대한 의문을 가졌으나 언제나처럼 질문을 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중요한 이야기는 이미 <종로의 기적>에서 다 나왔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뭐 그랬다는 것이다. 1절만 하자.

자신이 소수에 속한다는 것은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도 친구도 자신이 가진 비밀을 밝혀도 되는 건지 알 수 없게 되고 실제로 밝혔다가 더 큰 고통을 안게 된 경우가 수두룩하게 나타난다. 그런 와중에 강제적으로 가지게 되긴 했어도 하나의 기둥 같이 여겼던 종교에서조차 자신을 이단아 취급하고 치유를 해야 된다며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면 이들이 겪어야 될 외로움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인권단체에서 조속히 발견하고 여기에는 와도 괜찮다는 것을 알리는 등의 노력을 하고 품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회에서 이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외로움은 계속 짙어지기만 할 것이고 이 짙어짐의 끝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에이즈 감염인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정욜 씨 이야기. 정욜 씨는 다른 에이즈 감염인과 친할뿐만이 아니라 애인이 에이즈 감염인이다...라고 쓰는 것 자체가 내 안의 인식도 뭐 딱히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병에 걸린 것이 죄는 아니다. 자기가 직접 몸 속에 그 병원균을 넣었다면 모를까 단순히 성관계를 했다는 것만으로, 오염된 주사바늘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수혈이 잘못되었다는 것만으로 그 병에 감염된 것을 어떻게 죄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것을 죄라고 여기며 동성애를 반대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인양 여기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최근에 정말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았던 <120BPM>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도 그렇다.(익스트림 무비에 올라왔던 캡처 사진을 올릴까 했는데 안 보이고 트위터 같은 곳에서 네이버 120bpm을 치면 잘 나온다. 마린 혼자서 저그 본진에 쳐들어가는 우를 범하지 말자. 다음도 평점 무너진 건 마찬가지지만) 피를 던지는 시위를 한다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그러지만 애시당초 가짜 피이다. 이 형들 너네보다 훨씬 똑똑해. 이런 것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뿐 결정적인 것은 병에 대한 혐오이다. 무조건적인 혐오만을 내세우니 이 병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될지, 제약회사들의 욕심이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어떻게 봐야 될지에 대한 고민을 당사자나 그 주변의 소수들만 하게 되고 발전은 더디게 된다. 이러다 보니 에이즈 감염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군(群)인 게이들 사이에서도 거부감이 심한 듯하고 에이즈 감염인들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언제까지 외면하기만 할 것인가? 외면하기만 하는 것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예가 주사바늘 교체건일 것이다. 주로 마약을 사용하는 데에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이 쓰는 주사바늘을 교체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에 대해 시민들이 에이즈 예방효과는 커녕 마약 사용만 조장할 것이라고 반대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약 사용은 늘지 않고 에이즈 예방 효과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통계가 나오게 된다. 다들 혐오에만 집중해서 이런 정책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그냥 제자리일 뿐이다.

종합해서 말하면 소수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포용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적은 어디까지나 기적일뿐 정말 사람들을 포용하려면 기반이 필요하다. 이 기반을 쌓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 당장의 사회에서는 이 기반에 관심이 없거나 아예 무너뜨리려 달려드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착시이길 바라지만 바랄뿐이고...) <종로의 기적>에서 <위켄즈>로 나아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너진 인권조례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다시 세운 뒤 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반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일반이면 정말 안 되는 거냐...


평점은 10점 만점에 10점. 그런데 아무리 높게 주고 추천을 해봤자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너무 없어서...


*이 영화가 다운로드판으로 나오지 못한 건 삽입된 노래의 저작권 문제 때문이 더 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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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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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4. 25. 23:53


박종필 감독의 이름은 작고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본 적이 있긴 하다. 작고 전에 박종필 감독의 작품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감독의 이름 같은 걸 잘 못 외우는데 시네마달 살리기에 동참한답시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영화를 보게 된 덕분에 모르다시피 넘어갔었다. 그 작품은 <끝없는 싸움-에바다>와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였다. 한쪽은 농아학교에서 벌어진 부조리와 잔인한 갈등을 다룬 영화고 한쪽은 휠체어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을 다룬 영화다. 두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와 동시대를 겪어왔던 일인가 하는 생각이... 두 영화에 그려진 일들 모두 그저 생소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한쪽은 아예 서울 내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투쟁의 장소도 서울 한복판이었다. 폼으로만 시사에 관심있는 척했던 나로선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일이 있었던 건가하는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이번에 본 <노들바람>이나 <농가일기>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장애인들의 운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농가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FTA 같은 것에 극렬히 반대해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곳들을 비춰온 박종필 감독의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몇몇 영화는 아예 관객수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정식적인 개봉이 많이 어려웠던 것 같다. 결국 이런 곳을 헌신적으로 비춰왔던 박종필 감독은 이 세상을 떴다. 세월호를 통해서 이 감독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의 지명도이다. 이 영화들도 결국엔 묻혀질 것이다. 그럼 이 뒤를 잇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다지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러만 있게 된다면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608497712865919&id=100011170871380


결국 이렇게 되거나



"저희가 자료를 많이 가지고 갔어요. 왜냐하면 특수학교가 생겨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갔었거든요. 그런데 이 분들(반대파)에게 저희가 자료를 제시하면 내 앞에서 장애인이 다니는 것 자체가 싫다. 왜 나를 짜증나게 하느냐. 나는 무조건 장애인이 싫다. 나가라고. 이렇게 나오시는 거예요. 그러니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죠.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가슴에 담아온 작은 목소리> '특수학교 설립, 엄마들의 그 간절한 호소' http://www.podbbang.com/ch/11517?e=22587828 1:14~


이렇게 되는 것이다. 구경거리 내지 혐오거리 외엔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아니지, 무릎이라도 꿇지 않으면 보이지조차 않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퍼부은 결과가 장애인들이 쟁취해냈지만 장애인이 타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는 저상버스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667212.html

그런 의미에서 시외버스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겠다.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시내 저상버스를 생각해 봤을 때 과연 제대로 된 보장이 이루어질지...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2014년 사진이다.)


사람들은 언제쯤 장애인들을 잘 안 보이는 구경거리 혹은 혐오대상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애시당초 나부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눈여겨 보지도 않는데 남에게 눈여겨 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위선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박종필 감독의 눈에 보였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들을 더이상 박종필 감독을 통해 볼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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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기사 2018. 4. 14. 17:05


탄자니아 정부가 새로운 광범위한 인터넷 규정으로써 블로그를 개설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930달러의 요금을 물리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관에게 인터넷에 대한 이례적인 통제력을 부여했다. 정부는 이제 모든 블로거들에게 연간 이용료를 내고 글을 올리기 전에는 신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조항의 영향을 받는 것은 블로거뿐만이 아니라 온라인 라디오 방송국,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온라인 포럼, 사회관계망 서비스 이용자와 인터넷 카페 개설자까지 들어간다. 블로거는 주식자본, 납세증명, 출자금 그리고 국가보안 인가 등 상세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탄자니아에서는 블로그질도 공짜가 아니예요. 정부가 블로그, 웹사이트, 온라인 라디오와 TV 스트리밍 서비스에 등록비와 연간 이용비를 받아낼 수 있는 조항을 만들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면 웹사이트와 유튜브 계정에 대해서도 돈을 내야 될 겁니다. -_-


전자우정의회가 2018년 규정으로 낸 것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다른 사람 혹은 공공에 해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 금지 컨텐츠 목록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더해서 PC방에서는 감시 카메라를 달아야 한다. 이런 조항들을 어겼을 경우 관에서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탄자니아 신문들은 정부가 "도덕적 타락"을 막기 위해서 이 조항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CNN은 탄자니아 정부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으나 대답이 오지 않았다.


인터넷을 할 자유 



고발 블로그 사이트 Jamii Forums를 만든 인터넷 활동가 Maxence Melo 씨는 2016년에 사이버범죄법에 의해서 체포되었으며 이후 해쉬태그 #FreeMaxenceMelo가 만들어졌다.


인터넷 인권운동가들은 새로운 법이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스와힐리 위키리크스라고도 불리는 Jamii Forums의 운영자 Maxence Melo 씨는 CNN에게 "이 조항은 시민의 사생활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 표현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이버공간에서의 자유를 완전히 잃었습니다."라고 말했다.

Freedom House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 새로운 조항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도입된 논란거리 법안들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는 언론들을 통제할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 우려되고 있다.

2015년에 도입된 사이버범죄 법안 같은 경우 2016년에 수사를 방해했다는 명목하에  Melo 씨를 체포하게 만들었다. 동남부 아프리카 정보통신정책 회의(CIPESA)는 새로운 법안이 표현의 자유와 의사소통과 정보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 권리는 탄자니아 헌법 18조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다. 2016년에 월드뱅크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탄자니아의 1인당 GDP는 878달러이기 때문에 블로그 비용 930달러는 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가로막을 것이다.


https://edition.cnn.com/2018/04/12/africa/tanzania-blogging-internet-freedoms-africa/index.html?sr=twCNN041318tanzania-blogging-internet-freedoms-africa1152AMStory


930달러면 한국 돈으로 환산해도 99만 원이다. 한국 사람도 웬만해선 못한다... -_-; 독재를 하면 이런 획기적인(?) 방안도 마련할 수 있는 건가...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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