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2018. 8. 4. 01:11


새로운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임금펭귄 서식지가 지난 삼십오 년간 90퍼센트 가까이 무너졌다고 한다. 남인도양의 외딴 아남극섬 Île aux Cochons에 있는 서식지를 공중촬영과 위성사진을 통해 본 결과 1980년대 당시 짝짓기를 하는 펭귄이 오십만 쌍 가까이 보였던 것에 비해 2015년과 2017년에 찍은 사진에선 육만 쌍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곳은 South Sandwich 군도에 있는 Zavodovski 섬의 이백만 턱끈펭귄 서식지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펭귄 서식지로 알려져 있었다. 

과학자들은 Île aux Cochons에 사는 임금펭귄 개체수가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줄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새들이 어디로 이주를 했을 가능성도 이동을 할 만한 섬도 없다고 부언했다. Antarctic Science지에서 발표된 논문에서 저자들은 "이런 예기치 못한 개체수 감소에 대해 가능한 이유를 들 수는 있지만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할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위성사진은 펭귄의 짝짓기 지역이 확장된 것과 함께 이에 자주 쓰이는 황무지, 암석지대가 초목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눈에 띄게 줄어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팀은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이런 "거대감소"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내놓았다.

첫 번째는 인도양 엘 니뇨와 관련이 있다. 이 기후현상은 해양온도와 지역온도, 강우량에 영향을 준다. 1997년에 특히 강하게 발생한 엘니뇨가 물고기와 오징어들을 남쪽으로 날려버리면서 펭귄들이 사냥할 수 있는 먹이량에 영향을 주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짝짓기가 감소하면서 서식지는 이를 회복하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런 엘 니뇨는 지구 온난화에 의해 증폭된다.

다른 가설은 해변에서 일부 펭귄들이 1995년부터 큰 그룹에서 해변을 중심으로 한 작은 그룹으로 옮겨간 것이 이를 부추긴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논문에서는 일만 칠천 쌍 정도 되는 개체들은 원래 서식지에 살고 있던 펭귄들에 비하면 매우 일부에 불과하다고도 서술되어 있다.

세 번째는 Île aux Cochons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야생 고양이와 생쥐들이다. 이들이 생존 전략을 바꾸어서 아기 펭귄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과거에도 아기 신천옹을 공격 목표로 삼기 시작한 것을 통해 포착되었다.

네 번째 가설은 병이나 기생충이 바다새와 함께 건너와 서식지를 공격하면서 아기 펭귄과 성년 펭귄들의 생존률, 개체수 성장률을 감소시킨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논문에서는 전염병이 돌았다면 왜 서식지가 넓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고도 서술되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이 섬을 방문한 것은 1982년이었다. 연구팀은 현재 개체감소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재방문을 준비하고 있다.


https://www.independent.co.uk/environment/king-penguin-colony-collapse-ile-aux-cochons-satellite-photography-a8471486.html


한국 언론에서도 관련 기사를 내긴 했는데 기후변화 같은 일부 이유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번역해 봤다. 물론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건 나도 동의하지만 과학자들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판에 무조건 기후변화를 외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과학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아무리 데이터가 잘 나온다고 해도 나중에 보면 틀린 것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자기 마음에 드는)100%가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뉴스타파의 분석들이 반발에 부딪히는 것도 김어준 해설이 100%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딴에는 어디까지나 "가설"인 것에 시비를 거냐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상당히 확신에 차 있던데... 가설이니만큼 검증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과학이다. 왜 가설의 개념을 그런 식으로 왜곡하는 건지... 심지어 선조위마저도 외력설을 미는 측이 검증을 맡은 마린사 쪽에 압력을 넣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들은 대체 진실을 알고 싶은 건가 자기들 마음에 드는 팩트를 알고 싶은 건가... 

과학은 무엇이 사실인지를 찾아가는 학문이지 누구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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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갔는데 영화 외에도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나는 로힝야족의 난민 사태에 대해서이고 하나는 독일로 파견되었던 간호사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한국에선 독일로 파견되었던 선생님들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선생님들 당신의 이야기로는 독일 파견 이야기야말로 하나의 기회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독일에 막상 왔을 때엔 교육 없이 바로 투입된 분도 있었고 환자의 수발을 일일이 다 들어야 하는 등(조정래 작가의 소설 <한강>에 잘 나와있다) 고초를 겪어야 했던 것도 있고 고향 땅이 그리운 것도 있었겠지만 적응을 하고 보니 수동적인 자세를 강요하는 한국의 사회와 가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독일이었던 것이다. 번 돈으로 차도 직접 몰고 다닐 수 있었고(사우디 아라비아 이야기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노동절에 한복을 차려입고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행진을 할 수도 있었다.(지금 한국 간호사들이 노동운동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요즘엔 태움 같은 이야기가 많이 돌아서 완화되긴 했지만...) 계약 기간이 다 되어서 독일에서 쫒겨나게 될 뻔했을 때에도 당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독일 정부에 맞섰고 그 결과 독일 영주권을 쟁취해내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와 같이 레즈비언이었던 분들도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지금도 가족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털어놓았다가 관계가 파탄난 경우가 나오고 그런 결과가 나올까봐 두려워 숨기고 있는 LGBT들이 수두룩하다. 하물며 1960,1970년대면 말 다한 거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어거지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물론 그 때에도 다른 곳으로 도망쳐서 같이 살았던 분들이 있다고 하지만 극소수이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에 오니 이런 것마저도 자유로웠던 것이다.

내가 어제 짜증을 냈던 획일적이고 왜곡된 역사관 강요의 폐해솔직히 그냥 맹목적 문재인 지지의 폐해...를 이런 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것만을 강조한 나머지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정작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유리천정을 논하고 있는 판인데 그 당시 독일로 일을 하러 갈 수 있었던 선생님들을 불행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국가주의를 내세운 박정희식 생각은 이제 걷어치울 때가 지나도 너무 지난 것 같은데 말이다.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807447


영화 <공동정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용산참사 피해자들이 어디까지나 폭도여야 하는 것처럼 구는 자칭 보수 쪽의 태도도 짜증나지만 어디까지나 불쌍한 피해자여야만 하는 것처럼 구는 자칭 진보 쪽의 태도도 짜증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피해자"로만 보려 하다가 <공동정범>식의 카메라가 작동하자 동정 속에 숨기고 있었던 속내를 드러냈다는 게 참으로 아니꼬왔다.


이 때 어딘가에서 들려왔던 비명에 가까운 "에엑?" 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누군가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도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가 다 자기 자신, 개인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순간 아무리 동정이라 한들 일방적이고 독선에 가까운 행위에 불과할 수 있다. 난 그런 것이 싫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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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2018. 4. 28. 01:03

어떤 사건을 다룰 때에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치중하게 된다. 안 보이는 것을 일일이 찾을 수 없는 노릇이고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만다. 그런 것에 치중하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사실도 있고...

이 영화는 세월호 사건 당시 사망한 단원고 학생들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정혜신 박사님이 이 친구들을 모으고 또래의 연령대에 해당하는 청소년~20대 초반 청년들을 모아 공감기록단(공기단이라는 약칭으로 자주 부른다)을 구성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이야기를 영화 등 기록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담았다.

사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여태까지 나왔던 세월호 사건 유족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못해줘서 미안해가 주를 이루는... 하지만 유족들과 친구들의 입장은 크게 달라진다. 유족들은 가족이니 그러려니 생각하는 면이 있지만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왜 그렇게까지 슬퍼하는데?"라는 생각을 쉽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반면에 친구들은 자기 입장에서 둘도 없다시피 했던 친구들을 떠나보냈다는 사실에 강하게 매이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가정의 존재가 점점 작아지고 그만큼 다른 곳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들어주는 것은 같은 청소년, 세월호 사건 당시 청소년이었던 청년들이다. 친구들과 비슷한 성장기에 놓여있는 세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도 많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싶다. 비슷한 세대인 친구를 잃어버렸으니 당연히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지는 게 더 힘들었을 텐데 이런 생각까지 이른 어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도 든다. 

친구들 이야기에 대한 감상을 공기단이 이야기해보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공기단 쪽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세월호 사건만큼의 일은 아니어도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남겼던 일들을 고백하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자신이 참여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끌어내었고 이것을 들은 친구들이 다시 이에 대한 피드백을 남긴다. 왜 이렇게까지 참여하는 건지 조금 의심이 들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알겠다는 말과 함께.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서 친구들과 공기단 사이에 다리를 놓는 과정이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이 진행을 맡은 정혜신 박사님의 진정한 의도였고 영화의 핵심이었다.

공감이나 치유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많은 경우 겉핥기에 불과할 수 있고 심한 경우 도리어 더 깊은 상처를 낼 수도 있다. 이 상처를 감당해내려면 사람은 더욱 깊은 곳으로 파고들 수 밖에 없다. 친구들 중에서 이번 과정을 통해 방 같은 공간을 벗어나 더 넓은 곳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런 것일 것이다. 사람들이 제대로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기에 맞잡을 수 없었고 그만큼 좁은 공간에 갇힌 것처럼 살아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좁은 공간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갇혀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점은 10점 만점에 9.5점. 거창하게 늘어놓고선 뭔 점수를 깎는 거냐 싶기도 한데 만점으로 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영화진흥위원회 기록 상으로는 공동체 상영회 한번 한 뒤로 정식 개봉이 아직 안 된 것 같다. 내가 본 것도 인디서울 2018을 통해서인데 4월 상영작이라 며칠 있으면 상영이 끝나는 걸로... 정식 개봉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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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교수가 쓴 <러시아 혁명사 강의>를 예전에 사놓고선 이제야 읽게 되었는데 책 중에 영국과 프랑스의 공산당이 어떻게 하다가 개망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나온다. 양국의 공산당 모두 원래의 공산주의자로서 갖춰야 될 이념을 지키기 보다는 소련과 스탈린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만 치중한 나머지 공산당으로서 해야 될 행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영국 같은 경우엔 처칠이 스탈린과 친하다는 이유로 보수당을 지지하고 프랑스 같은 경우엔 정부가 소련과 함께한다는 이유로 알제리 독립세력을 탄압하는 데에 제대로 된 반대 기류도 만들지 못하고 그저 "군대에 가지 마세요." 같은 허공을 향한 외침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간 결과가 지금의 프랑스와 영국에서의 공산당의 존재감이다. 
자유한국당 같은 자칭 보수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쪽에 있는 자칭 진보들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편을 갈라버리고 보는 식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계속해서 우려를 가져왔지만 이런 움직임은 박근혜가 물러나고 문재인이 대선 후보에 올랐을 때 더욱 심각해졌고 문재인이 당선되자 상대를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조건적인 문재인 지지에 거슬리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어떤 사람이었든 간에 공격하고 보는 당황스러운 움직임이 이어졌고 반대로 문재인에 대한 것은 무조건 찬양을 하는 식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그런 결과가 이런 것이다. 문재인이 내세웠던 "사람이 먼저다"라는 표어의 주어는 문재인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고 왜 노란리본을 달았는지도 다들 희미해진 것 같다. 파란리본으로 상징되는 성주 사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분명히 박근혜가 청와대에 있었을 때만 해도 거의 같은 소리로 사드의 불필요성을 외쳤고 이에 저항한 성주 주민들을 지지했던 것 같은데 문재인이 사드를 배치하자 똑같이 저항한 성주 주민들에게 하나같이 양념들이 급속히 투하되었다. 아니 뭐 투하된 것은 대선 때부터였다. 사드를 반대하면서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성주군수부터 발을 빼버리면서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일부 주민만이 힘겹게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던 판이었는데 예전부터 압도적으로 자유한국당 쪽을 지지해왔던 지역에서 어떻게 문재인 지지를 키울 수 있는 건가, 그리고 결국 문재인은 사드를 배치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결국 그래서 당신들은 사드를 배치해야 된다고 생각한 건가 아니라고 생각한 건가를 알 수 없게 되었지만 현재 시류는 그렇다. 지금이야 예전처럼 양념이 급속투하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시류가 바뀐 것도 아니다. 이것은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http://omn.kr/ph1g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너네 심상정 지지하지 않았느냐"라는 말이 나온다. 자기들 급할 때에는 연대(라는 이름의 복속)해야 된다고 잘도 말을 꺼냈으면서 자기들하고 어긋난다 싶으면 버리는 대상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명박근혜 시절 동안 힘들게 싸워왔던 민주노총의 모습도 완벽하게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알기는 했을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1043


그러던 와중에 오늘 한겨레에 "있었던" 김의겸 기자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준웅 교수의 말은 정당하다는 의미에서 새겨들을 만하지만 이에 대해 반론을 낸 뉴스타파의 최경영 기자의 말은 재밌다는 의미에서 들어왔다.


같은 기사


최경영 기자 또한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에 언론인이 정부 요직을 맡는 것에 반대해온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건에 대해서는 사표를 낸 뒤 간격을 뒀으며 한겨레가 변할 염려도 없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는 논리를 폈다. 그저 "착한 사람" 논리이다. 아무리 부조리한 제도라 해도 그것을 통해 착한 사람이 올라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방식의 사고. 이걸 최경영 기자가 내세웠다는 사실에 맥이 풀렸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검사 출신들이 청와대로 들어가는 것도 비판할 도리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검찰 쪽이 정부와 독립된 행보만 보이면 되는 거니깐. 내로남불 외에 뭐라고 설명할 수 있는 거지?

지금 추세를 보면서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문재인의 임기가 끝나면 저 사람들은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이 없어지면 딱 노무현을 상징하는 거두 정치가는 없다고 봐야 될 텐데 이러한 숭배로밖에 안 보이는 지지가 어디로 움직일까? 혹시 노무현의 아들 같은 걸 내세우는 것 아닐까? -_-a



저들의 미래가 이런 것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상당부분 가망이 없어보이는 쪽으로 기운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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