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glowfly 2026. 2. 12. 23:53

결국 인간은 다르게 태어날 수 없다. 애초에 그 인간이 되는 것으로 결정되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새도 개도 꽃들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나는 것은 모두 결정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과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의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 곳이 아니라면 태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태어나는 것은 다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면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상당히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른 사람의 생은 다른 사람의 것이지 자신의 것은 아니다. 당시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후세가 알아줬으니 의미가 있다는 말도 비슷하게 들린다. 그 사람의 생은 이미 끝나서 알아줬다는 것이 전달될 수가 없다는 게 무슨 소용인 걸까. 그냥 쉬운 예로 고흐의 그림들이 지금은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오가고 있지만 고흐가 살아있는 동안엔 그린 그림들이 거의 팔리지 않은 상황에서 동생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다. 자신의 예술적 의욕을 떠나서 그림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만 놓고 봤을 때 고흐는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이 알아줬다고 해서 고흐의 행복이 소급되기라도 하는 걸까? 전에 본 고흐를 그린 영화에서 후세가 알아줄 것이다란 식으로 고흐가 직접 말하는 걸 보고 화가 났던 게 이런 부분이었다. 아니 고흐는 이미 죽었다고.

많이 살아봐야 백 년을 넘기기도 힘든 사람의 생에서 무슨 의미를 찾기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찾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중간지점에서 만족하길 자신에게 강요한 것이 아닐까. 그냥 그렇게 만족하는 것을 진화 과정에서 얻어낸 것 아닐까. 더이상 추구하면 끝이 없으니깐. 

죽음이란 건 일 년 후에 찾아올 수도 십 년 후에 찾아올 수도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찾아올 수도 있다. 아니 뭐 년 단위가 아니라 며칠 몇 달 안에 운이 좋지 않아서 찾아올 수도. 그렇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끝났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이 끝날 수도 있다. 그럼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인류사에 남는 것도 아니겠지만 남는다 한들 인류가 멸종되면, 아니 그 전에 역사를 보존할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사라져 버린다면 없어져 버릴 것이다. 외계인들이 지구라는 행성이 없어지기 전에 찾아와 인류의 흔적을 발견한다 한들 거기에 인류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면 전달할 수도 없을 거고. 그럼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냥 모래사장에 낙서를 한 것 밖에 더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