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만화 2018. 5. 31. 17:59

요즘 우에사카 스미레 양과 사쿠라이 타카마사가 함께 저술했던 책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일본이니만큼 할 수 있는 것 ~우리들의 문화외교 선언~(世界でいちばんユニークなニッポンだからできること 〜僕らの文化外交宣言〜)>을 뒤늦게 읽고 있는데 책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2010년에 처음 참가한 개회식 무대에서 초대손님 소개를 했을 때 입을 열자말자 내가 처음 외친 말이 뭐였을 것 같아?

"Are you Otaku?(모두들 오타쿠죠?)"

이거였어.

행사장을 꽉 메운 사람들이 곧바로 거기에 동의하며 큰 소리로 응답했지.

"Yes!(네!)"

현재 외국에서 <오타쿠>라고 하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이 오타쿠인 것을 말하길 꺼리기는 커녕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지. 그만큼 일본의 멋진 컨텐츠에 경의를 표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야.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보거나 읽지 않은 사람들이 꼭 편견을 가지더라고요."

이렇게 말하고 말이야.

이들이 자신을 오타쿠라고 말할 때엔 일종의 기사도 정신 같은 것이 들어있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어. 편견으로부터 일본 팝 컬쳐를 내가 지켜내겠다 같은 마음 말야.


이 부분을 읽고 좀 의아했다. 자신을 오타쿠라고 말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편견으로부터 일본문화를 지켜내는 기사도 정신? 한국에도 그런 게 있는가 하면 잘 모르겠다. 후자의 경우 기사도 정신은 과잉선택인 것 같긴 해도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원을 중심으로 선이 뻗어나가는 무늬만 봐도 빠직하는 멍청이들이 많기 때문에 거기에 대항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이것도 결국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빠직하고 있으니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 측면이 큰데 전자의 경우는 뭐...

오타쿠라는 단어 자체가 불쾌한 사건에서 유래했던 데다가 한국에서도 이것이 그대로 불쾌한 이미지를 안고 전달되었기 때문에 자기를 오타쿠라고 하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남을 공격하기 위해 쓴다면 모를까... 순화(?)한다고 내놓은 단어가 오덕후, 덕후, 응용해서 ~덕인데 이것도 딱히 자랑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하기엔 좀... 결국 내가 느끼기엔 한국에서 이 단어가 뭐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거나 하는 이미지를 얻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중독 이미지를 덧씌워서 악화되었다면 모를까. 이렇다 보니 뭐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고 코스프레를 하고서 길거리를 돌아다녔다는 것만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왜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건지 나로선 이해가 안 되지만 여기에 위축되다 보니 다들 일반인 코스프레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공적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미를 노출하는 것을 상당히 꺼린다. 오덕페이트 같은 경우는? 

반일감정이라고 하기엔 사쿠라이 타카마사가 중국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낀 것으로 서술하고 있고... 문화적 이해도나 공감도의 차이인 걸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본 문화가 가장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은 한국이고 이해가 깊어질수록 일본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한국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덕페이트 같은 사람이 나오고? 반면에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엔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진다 해도 오리엔탈리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일본인이 모르는 일본어>에서 유럽 사람이 일본으로 가려 했을 때 가족이 말린 이유가 "거기엔 사무라이들이 돌아다니잖아?"였을 정도니 뭐... 간단히 말해서 신기한 문화를 내가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쁨 식의 개인주의가 작용하는 거랄까? 그에 반해서 한국은 계속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식인 거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뭐 결국 사쿠라이 타카마사가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고 해서 그 나라에서 자신을 오타쿠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비롯한 일본 문화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행사장을 주로 다닐 수밖에 없는데 그 사람들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이 책은 일본 문화가 외국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비춰지고 있는지에 대한 책이니 그런 면만 더욱 부각되었을 거고... 이런 점을 생각해 봤을 때 한국을 제외한 일본문화를 접한 나라에서 애니메이션, 게임 애호가들이 자신을 Otaku라고 외치고 다닌다는 확신을 하는 건 섣불러도 너무 섣부른 행동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하기사 이미 죽은 지 삼 년이 다 되어가는 사람의 말을 이런 식으로 평해봤자 딱히 나올 것도 없을 것 같긴 하네. 이 책을 보는 사람은 아마 나 이후로 거의 없지 않을까.

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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