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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7. 28. 10:14

사과 창고 대개조
 
버스가 시리우치에 가까워지면서 엄마가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만지고, 코를 풀고, 누마하타 아저씨가 보내온 편지를 다시 읽고... 토토는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입으로는 "아, 이제 스와노타이라에 다 왔구나."라고 말하고 있지만 누마하타 아저씨가 토토네를 받아줄지 어쩔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친척도 아닌데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은 토토로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에노를 출발한 후 사흘 간 토토네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자기들만으로 어떻게든 해보자식으로 덤벼선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고 그리스도 묘지에서 기도를 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누마하타 아저씨도 토토네를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을 텐데... 토토는 그렇게 빌지 않을 수 없었다.
 
시리우치역 앞에서 내려 토우호쿠선의 시간표를 보니 밤이 되기 전엔 누마하타 아저씨 댁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누마하타 아저씨에게 신세를 지기로 정한 거야."라며 자신에게 타이르듯 말씀하셨다.
시리우치에서 열차를 타고 세 정거장을 거쳐 토토네는 스와노타이라역에 도착했다. 역무원 아저씨에게 누마하타 아저씨 댁 주소를 보여주니 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걸어서 삼십 분 정도 거리였다. 역무원 아저씨가 알려주신대로 가고 있으려니 채소가게 같은 건물이 보였는데 그 앞에 있는 도랑 같은 구멍에 새빨간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앗, 사과다!"
토토는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사과를 줍고 있었더니 엄마가
"이렇게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서 떨어진 채 놔둘 정도니 누마하타 아저씨 댁에 가면 제대로 된 사과가 있지 않겠니?"
라고 말씀하셨다.
"제대로 된 게 있으면 버릴게요!"
토토는 그렇게 반론하며 사과를 살펴보니 검게 썩은 부분이 보였다. 그래도 그 사과를 쥐고서 토토 가족의 선두에 서서 역무원 아저씨께서 알려주신대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나아갔다. 점점 어두워졌지만 드문드문 집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의지해 걸어가면서 공습이 없으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드디어 어딜 봐도 농가다 싶은 커다란 집이 보였는데 그게 누마하타 아저씨 댁이었다.
"실례합니다."
엄마가 말을 걸자 아내로 보이는 분이 나와서 "사과와 채소를 받았던 토쿄의 쿠로야나기입니다."라고 말하며 사정을 설명하자 안에서 아저씨가 나타나선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하쇼."라며 토토네를 들어오게 했다. 토토는 안심하면서 주웠던 사과를 현관 밖에 버렸다.
네 가족이 갑자기 들어왔는데도 하얀 쌀밥에 국물, 생선 말린 것과 절임, 과일까지 있는 저녁밥을 차려주셨다. 오랜만에 먹은 하얀 쌀밥의 맛을 되새기며 엄마가 너무 지레짐작으로 걱정을 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쌀밥을 처음 보는 마리 짱은 "이게 뭐야?"라며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창고라도 좋으니 가족 넷이서 살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엄마는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며 간절히 빌었다. 그 날 아저씨 댁에서 가족 넷이 나란히 누워 잤다.
 
다음날 엄마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집이 정해지지 않으면 학교에 다닐 수도 없으니 아저씨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살 수 있는 곳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 결과 어느 사과 농가의 작업용 창고를 빌릴 수 있었다. 사과를 모아 포장을 하기도 하고 사과 도둑이 오지 않나 지키기도 하기 위해 사과 과수원 한가운데에 지어진 창고로 다다미 여덞 장 정도 넓이였다. 지붕은 초가지붕이었고 판자로 이은 벽은 틈이 너무 많은데다가 빛이라곤 석유 램프가 전부였지만 엄마는 "창으로도 천장으로도 햇빛이 들어오니깐 멋지네."라며 기뻐하셨다. 토토는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하고 감탄했다.
"이불도 주방용품도 나눠주셨어. 근처에 커다란 강도 흐르고 마실 물은 옆에 있는 제재소에서 얻을 수 있단다. 생활하기에 부족한 건 없어."
엄마는 넘쳐나는 의욕으로 사과창고 개조에 매달려 전부터 가지고 있으셨던 마법사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셨다. 사과상자를 뒤집으시더니 그 위에 솜과 짚을 깔고서 짐을 꾸리기 위한 보자기 대신 사용하셨던 고벨린제 천을 덮어 못을 박았다. 상자 주변에 튀어나온 남은 천들을 프릴처럼 다듬고 나니 화사한 로코코식 의자가 만들어졌다.
이웃 사람들로부터 받은 시트를 옅은 녹색으로 칠한 뒤 사과 그림을 잔뜩 그려서 벽에 거니 훌륭한 족자가 완성되었고 1미터 정도 높게 올라온 바닥은 어린이용 침대로 변신시키는 등 살풍경했던 사과창고가 키타센조쿠의 집 같은 모습으로 부활했다.
집을 리폼했으니 다음은 가정농원 차례다. 엄마는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밭을 만들자!"라고 선언하셨다. 마리 짱은 엄마 등에 업혀서 항상 웃고 있었고 토토도 노리아키 짱도 집 주변을 일구는 걸 도와드렸다. 엄마는 채소 씨앗과 모종도 구해와서 그걸 뿌리고 심고 했다. 계절도 봄이었으니 토모에학원 수업 같아 즐거웠다.
어떤 꽃이 필까? 어떤 채소가 만들어질까? 토모에학원 친구들은 잘 지내려나.
"모두 다 같이 해야 해요."
흙을 만지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저편에서 토모에학원의 코바야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1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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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
문화/책 2024. 7. 27. 15:54

오줌 싸고 싶어

 

모두들 말이 없었다.

공습을 당할지도 모르니 열차 안도 집과 마찬가지로 등화관제가 이루어졌다. 아직 봄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추웠던데다가 배도 고팠지만 토토는 모처럼 앉았으니 자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삼등칸 열차 좌석은 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하고 긴 의자였던지라 다리로 열차의 진동이 전해지더니 얼마 지나자 엉덩이도 아파왔다.

긴장하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눈을 꼭 감아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할 수 없이 가방을 열어 가장 좋아하는 얼룩곰 인형을 쓰다듬었다. 그게 토토가 가져온 물건 중 가장 부드러운 물건이었기에 이걸 만지는 것만으로 다소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역에 정차하자 창문으로 휙하고 짐들이 날아들어오더니 그 뒤를 이어 "죄송합니다."라며 창문으로 사람이 올라탔다. 십 분 간격마다 어딘가의 역에 정차했는데 토토는 그 때마다 누군가가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긴장해야 했다.

역에 도착할 때마다 두근두근거렸더니 이젠 반대로 "그럼 실례합니다."라며 창문으로 내리는 사람까지 나왔다. 박스석 사이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타려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내리려는 사람의 짐을 건네주기도 했다. 우에노를 막 출발했을 때엔 모두들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자기자리를 확보하게 되자 신기하게도 협동심이 생겨난 것 같았다.

토토는 오줌을 싸고 싶어졌다. 피난처를 찾아 센다이나 후쿠시마에 갔을 때에도 토우호쿠선을 타고 다녔기에 차량 끝 쪽에 화장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시장통을 헤치고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토토가 우물쭈물대고 있자 토토를 앉혀주고서 창측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왜 그러니?"라고 물으셨다.

"오줌 싸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자 아주머니는 아오모리 사과 같은 빰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다음 역에 도착하면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그 때까지 참을 수 있겠니?"

"네."

"역에서 기차가 멈춰있는 동안 창문으로 싸버리면 된단다. 내가 잡아줄 테니깐 괜찮을 거야."

엑! 창문 밖으로 싸는 거야? 그렇게 창피한 걸 어떻게 해.

창문으로 싸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토토가 어떻게든 화장실에 가겠다는 생각에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토토는 통로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헤쳐나가며 화장실로 향했다. 차량 안은 어렴풋하게밖에 보이지 않는 전등이 달려있을 뿐이라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천장에 매달려 달빛을 의지하는 게 훨씬 밝게 보이겠다 싶어졌다.

승객들은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주며

"거기 좀 비켜봐."

"여자애가 그 쪽으로 갔어."

이런 식으로 말을 주고 받았다. 길을 비켜준 아저씨가 토토에게 "혼자 가는 거니?"라고 물어봤는데 혼자인 건 맞지만 "혼자예요."라고 말했다가 납치당해서 엄마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워져

"아뇨, 옆 차량에 오빠가 있어요."

라고 말했다. 토토가 어릴 적엔 무엇보다도 무섭게 여겨졌던 게 "유괴범"이었기에 잡혀가지 않도록 거짓말을 한 것이다. 토토의 상상해왔던 "유괴범"처럼 붉은 망토를 걸치고 멋을 내고 있는 사람을 그 야간열차에서 찾을 수는 없었지만.

토토는 드디어 화장실 앞에 도착했지만 들어가려고 보니 더더욱 막막해졌다. 화장실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안으로 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앉아있었던 것이다. "죄송해요. 용변을 보고 싶은데 비켜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변기 주변에 남자가 앉아있기까지 했다.

안 되겠다, 포기하자. 또다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화장실 쓸 수 있더니?"라고 아주머니가 물어보았다.

"사람들로 꽉 차서 못 썼어요."

토토가 답하자 아주머니가 "그렇겠제"라며 활짝 웃었다.

몇 분 후 열차가 어딘가 역에 멈춰섰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갑자기 좌석에서 일어나더니 힘껏 창문을 열고서 몸빼를 내려 엉덩이를 창 밖으로 내밀었다.

"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샤아~

새까만 어둠을 향해 기세 좋게 날아가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차량 안에서 아주머니의 새하얀 허벅지가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하얀 무릎은 토토 얼굴 바로 옆에 있었다. 토토가 멍하니 보고 있자 아주머니가 순식간에 몸빼를 허리 위로 올렸다. 정말 신속했다.

"어두우니깐 아무에게도 안 보여."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며 토토에게 창 밖을 보게 했다. 토토가 창문 좌우를 보자 둥글고 하얀 물체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역에 서있는 시간이 짧으니깐 꼬마 아가씨는 다음 역에서 하렴."

꼴 사납다든가, 부끄럽다든가, 그런 걸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토토가 창 밖에 쉬를 하든말든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누구도 화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너무 참아서 지리거나 하게 되는 게 훨씬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옆자리 아주머니가 묵묵히 창문을 열고서 토토에게 창측 자리를 내주셨고 토토가 몸빼를 내리고 엉덩이를 창 밖으로 내밀었을 때엔 떨어지지 않도록 왼손을 잡아주셨다. 토토는 오른손으로 창틀을 꽉 잡았다.

차가운 바람이 토토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샤아~

오줌이 기세 좋게 뿜어져 나와 차량 벽에 닿는 소리가 났다. 손을 잡아주고 있는 아주머니 외엔 누구 하나 토토를 보지 않았다. 토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용변을 봤지만 부끄러움 같은 건 없었다.

창 밖으로 오줌 누기!

내일 엄마에게 이야기 해야지!

엄마 쪽은 아침에 시리우치역에 도착할 예정인데 지금쯤 어디를 달리고 있을까?

노리아키 짱은 얌전히 있으려나? 마리 짱은 칭얼대지 않을까?

그런 걸 생각하고 있다가 토토는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어머니!"

 

토토는 조금 무서운 꿈을 꿨다.

사과 뺨 아주머니가 악몽에 시달리는 토토의 어깨를 두드려 깨우셨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아침해가 무척 아름다웠다.

아주머니는 모리오카역에서 내리셨다. 오줌 누고 싶었을 때 외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 어린 눈에도 훤히 보였기에 토토는 신경 쓰이는 점이 많았어도 아주머니와 조금 이야기를 나눈 것 외엔 잠자코 있었다.

아주머니가 내릴 때에 짐 속에서 꾸깃꾸깃한 신문지에 싸인 걸 꺼내 토토의 손에 올려주었는데 삶은 감자였다.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토토는 감자의 냄새를 맡아본 뒤 조금 베어물어보자 그것만으로도 맛있고 상냥한 물체가 목을 통과했단 느낌이 들어 한동안 그것을 먹는 데에만 몰두했다.

다 먹고 나서야 앞에 앉아있던 아저씨의 시선을 눈치채서 왠지 부끄러워져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창 밖에는 눈이 막 녹기 시작한 갈색 밭이 펼쳐져 더 멀리엔 아직 눈이 많이 남아있는 숲과 산이 보였다. 숲도 산도 토쿄보다 훨씬 진한 색을 띄고 있었다.

기차가 스와노타이라역에 정차했는데 그 전까지 정차했던 역들에 비하면 한층 더 작은 역이었다. 몇 년 전에 엄마와 귀향했을 때 알게 된 누마하타 아저씨가 이 역에 내렸던 게 어렴풋이 생각났다. 토토가 누마하타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간다면서 왜 스와노타이라가 아니라 시리우치까지 가는 걸까 생각하는 동안 기차가 다시 부옹하고 기적을 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삼십 분 정도 지나 환승 플랫폼도 있는 커다란 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에서 "시리우치~ 시리우치~"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자 토토는 엄마와 만날 생각에 기뻐서 달리다시피 하며 플랫폼에 내렸다.

볼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워서 크게 심호흡하자 처음으로 맛보는 듯한 다소 차갑고 청량한 공기가 느껴졌다.

안내판 지도를 따라서 걸어가며 레일을 두 개 정도 건너자 멀리서 "테츠코~"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찰구 건너편에 엄마가 있었다! 토토는 주머니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표를 역무원 아저씨에게 건낸 뒤 단숨에 엄마가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어머니!"

마리 짱을 업고 노리아키를 왼손으로 잡고 있던 엄마가 오른팔을 펼쳐 토토를 받아주셨다. 우에노역에서 헤어진 뒤 꼬박 하루가 지난 시간이었다.

"엄마는 오전에 도착해서 시장에서 먹을 걸 사왔단다."

그렇게 말하며 대나무잎으로 싸인 보리와 현미 주먹밥을 보여주셨다.

"우와~"

하얀 쌀밥은 아니었어도 제대로 된 주먹밥을 보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저기 긴 의자에서 먹자꾸나. 역 화장실에서 수돗물도 나오니깐 손을 씻고 물도 마시고 오렴. 노리아키 짱도 같이 가렴."

그렇게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커다란 매실짱아치 주먹밥을 먹었다. 토토는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했다. 기차가 가득 찼던 일, 다들 창문으로 드나들었던 일, 기차 화장실을 쓸 수 없어서 아주머니께서 창문으로 오줌 싸는 법을 알려주신 일, 토토 외에도 하얀 엉덩이가 여기저기 창문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던 일, 아침해가 아름다웠던 것, 아주머니가 삶은 감자를 주신 것...

그러자 노리아키 짱이 "감자 먹고 싶어."라고 말했다.

"노리아키 짱, 아까 봤잖니? 여긴 토쿄와 달리 안전하고 먹을 것도 많이 있어. 살 곳만 정해지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엄마가 열심히 일할 거니깐 그 때까지만 참으렴."

엄마가 그렇게 말하시면서 노리아키 짱을 쓰다듬었다.

다들 이십사 시간에 가까이 지나도록 거의 자지도 못하고 기차를 타고 왔기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있었다.

"오늘은 여관에 묵으면서 여행 피로를 풀자꾸나. 누마하타 아저씨 댁은 내일 갈 거야."

엄마는 토토가 오는 동안에 숙박할 곳을 찾아보고 있으셨다.

기차 안에서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바로 옆에 엄마가 있고 노리아키 짱과 마리 짱도 싱글벙글 웃고 있다. 공습경보도 울리지 않는다. 여기에선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불러도 "적국의 말을 쓰다니!"라며 화를 낼 사람도 없겠다 싶었다. 토토는 토쿄에선 맛보기 힘들었던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리스도 전설

 

"실은 누마하타 아저씨 댁에 가기 전에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단다."

아침에 일어나자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버스로 두 시간 정도 가면 헤라이라고 하는 곳에 예수님의 묘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토쿄에 있었을 때에도 엄마가 그리스도 묘지가 누마하타 아저씨 댁 근처에 있다고 말씀한 적이 있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사실은 그리스도의 동생이었고 진정한 그리스도는 일본까지 건너와 헤라이에서 백여섯 살로 생애를 마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엄마도 그걸 사실이라고 믿으시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이 또한 모종의 계시 같은 거란 생각이 드셨다나 어쩐다나 설명해주셨다.

크리스트교 신자이셨던 엄마는 그런 전설이 태어난 곳을 직접 보고 싶다, 모처럼 근처까지 왔는데 들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생각하신 것 같다. 토토는 역시 엄마야! 그래서 스와노타이라가 아니라 시리우치에 온 거구나 수수께끼 해결!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토우호쿠 사투리를 쓰는 지역에 올 이유가 대체 뭐였을까하는 생각에 갸우뚱했다.

 

시리우치에서 헤라이까지는 버스로 갈 수 있었다. 운전석 앞이 하마 입처럼 툭 튀어나온 버스가 토토네와 지역민들을 태우고 느긋하게 달려나갔다. 좌석에 사람들이 꽉 찬 상황에서 커다란 짐을 안고 있는 토토네를 다들 신기한 걸 보는 듯한 눈빛으로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내리는 사람이 "오츠루, 오츠루"라고 말하며 안쪽 자리에서 나왔기에 토토는 뭐가 떨어진다(落ちる, 오치루)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린다(降りる, 오리루)는 말을 "오츠루"라고 하는 것이었다. 버스 안내양이 "내리는 사람이 다 죽으면(しんで, 신데) 올라타소."라고 하길래 깜짝 놀랐는데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리면(すんで, 슨데) 그 다음에 올라와 주세요."라고 말했다는 걸 겨우 알아차렸다.

버스가 점점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 논밭의 광경이 계속해서 보여 토토는 이런 산 깊숙한 곳에세도 농부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고삐를 쥐인 말이 따각따각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등의 양 옆에 채소들을 주렁주렁 지고 가고 있었다.

"우와, 말이다!"

토토는 동물 중에 개와 여우 다음으로 말을 좋아했다. 홋카이도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함께 마차를 타본 적이 있었지만 이 때 처음으로 짐을 짊어지고 가는 말을 보게 된 것이다.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말을 배웅해 주려 하자 말의 엉덩이 쪽에서 커다란 경단 같은 게 땅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꺄악!"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러자 토토 뒤에 앉아있던 남자가 "뭐여, 망아지 보는 거 츠음인갑네?"라고 말하며 커다란 목소리로 왓하하 웃었다. 창 밖을 다시 내다보니 말이 지나간 길엔 지푸라기를 흙과 함께 뭉친 듯한 말똥이 큰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옛날 사람들은 어째서 이런 산 깊숙한 곳에 살려고 한 걸까? 버스가 언덕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하나둘 내릴 때마다 토토는 이런 생각을 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중엔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었다. 다들 몸빼를 입었고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는 사람도 있고 머리에 싸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갈색으로 물든 손은 주름이 졌으며 다들 손가락이 두꺼웠다. 일하는 사람의 손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토토네는 그리스도 묘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데 가는 길을 몰라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민가에 들러 물어보았다.

"실례합니다. 그리스도 묘지에 가고 싶은데 길을 알 수 있을까요?"

현관 앞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엄마가 물어보시자 안에서 천천히 피부가 검은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애들 데리고 고생이슈. 그리스도 묘는 가까우니께 따라오슈."

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익숙해 보이는 눈치였다. 엄마도 토토도 커다란 짐을 안고 있었기에 집 안에 둬도 괜찮다며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엄마는 가방을 놓고 마리 짱을 업었고 토토와 노리아키 짱이 손을 잡고 언덕길을 올라갔다. 길을 가면서 아저씨가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엔 묘지를 찾는 사람이 전국에서 몰려왔던 것이나 옛날부터 전해져 오던 헤라이의 관습 중 크리스트교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알려주셨다.

"자, 여기유."

아저씨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구불구불 산길 끝에 약간 높은 언덕이 보였다.

"이 위에 두 개의 흙무덤이 있는디 오른쪽이 그리스도 묘지고 왼쪽이 그리스도 동생인 이스키리의 묘지유."

(이 이야기는 일본에만 있는 것으로 이스키리는 예수를 가리키는 イエス, 이에스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キリスト, 키리스토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춰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일본 고유명사나 마찬가지기에 그대로 표기한다. -역자주)

아저씨가 이렇게 알려주었다.

엄마는 천천히 돌계단을 올랐다. 두 흙무덤에는 야생화가 바쳐져 있었다. 엄마는 오른쪽 흙무덤을 보며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며 "아멘"이라고 하셨다. 엄마 등으로 햇빛이 비춰져서 뒤로 묶은 머리카락이 빛나보였다. 건너편은 절벽으로 되어 있어서 강이 흐르는 소리와 어디선가 작은 새의 지저귐 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정말로 그리스도 묘지인지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전쟁이 일어나, 메이지 짱이 죽고, 아빠는 군대에 빼앗겼으며, 추억이 듬뿍 담긴 키타센조쿠 집을 떠나야 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기도하는 것도, 약한 소리를 내뱉는 것도, 우는 것도 하지 못했지만 엄마는 그리스도 묘지 앞에서 무척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으셨다.

전쟁은 언젠가 끝날 것이다. 가족이 다함께 모여살 수 있는 평화로운 나날이 꼭 돌아올 것이다.

조용히 기도하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는 모르겠지만 토토 자신의 마음에도 힘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예수님이 정말 일본에 오셨을까? 토토는 어릴 때부터 매주 교회의 일요학교에 갔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런 말을 엄마에게 하지는 않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니 아저씨의 아내인 듯한 분이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손을 흔드는 아주머니 발 밑에 토토네가 가져온 짐들이 놓여져 있었다. 돌아갈 시간을 계산해서 짐을 버스 정류장까지 가져와 주신 것이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엄마가 정중히 인사를 드렸고 토토도 처음 와보는 곳에서 이런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큰 행운일까 생각이 들어 친절한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버스에 탔다.

참고로 그리스도 형제 묘지는 지금도 헤라이에 있으며 최근엔 관광지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다.

 

1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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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7. 24. 22:26

피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신변 정리를 해야만 했다.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토에겐 소중한 것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아빠가 기원 2600년(메이지 정부가 일본 신화에 따라 기원전 660년을 건국연도로 정하면서 1940년이 2600년째에 해당한다) 축하공연 여행차 만주에 갔다왔을 때 주신 선물인 커다란 곰인형이었다. 아빠는 이 여행 때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국 황제가 되었던 아이신 교로 푸이의 부탁으로 연주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토토는 그 인형을 "쿠마 짱"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또 하나는 좀 더 어릴 적에 미국에서 돌아온 숙부 님이 주신 얼룩곰 인형이었다. 공습경보 때도 가방에 담고서 방공호에 같이 데려가곤 했기 때문에 피난 때에도 같이 하고 싶었다. 쿠마 짱 쪽은 "짐이 너무 커지니 포기하렴."이라는 엄마의 한 마디에 두고 가는 걸로 결정되었지만 얼룩곰은 데려가기로 했다.

엄마가 가져가기로 한 건 가족 사진, 아빠 연주회 사진과 프로그램 등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었다. 짐이 꾸려지자 엄마는 응접 세트 소파의 고벨린제 천을 싹둑싹둑 자르기 시작했다. 로코코풍 무늬가 무척 멋졌지만 엄마는 그걸로 짐을 싸서 보자기 대용으로 썼다. 소중한 물건들을 넣어서 빵빵하게 둥글어진 고벨린제 보자기는 마치 산타클로스의 주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기다리렴. 곧 돌아올 테니깐."

쿠마 짱을 아빠가 앉던 의자에 앉힌 뒤 토토네는 키타센조쿠 집을 떠났다.

 

토토, 피난하다.

 

혼자 타는 야간열차

 

덜커덩, 덜커덩.

토토는 어두컴컴한 밤을 달려나가는 아오모리행 열차를 타고 있었다. 창 밖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2인석의 가운데에 앉아있었지만 토토의 양쪽에 있는 건 엄마도 노리아키 짱도 마리 짱도 아닌 생판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였다. 홀로 남아있는 토토의 오른쪽 손에는 엄마가 주신 열차 표와 "우에노, 후쿠시마, 센다이, 모리오카, 시리우치"라고 쓰여진 종이가 쥐여져 있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해의 3월 중순이었다.

그 날 아침 토토는 엄마와 노리아키 짱과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마리 짱과 함께 넷이서 우에노역으로 향했다. 우에노역은 사람들로 북적여 수많은 짐들을 끌어안은 어른들이 두두두하고 지진을 일으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며 앞다투어 개찰구로 향했다. 엄마는 등에 가방을 맸고 왼손으로 노리아키 짱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마리 짱을 아기띠로 안은 채 오른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었다. 토토가 노리아키 짱과 손을 잡으려 하자 "비켜!"라며 누군지 모를 아저씨가 밀쳐내서 넘어질 뻔 했다.

"우왓!"

토토가 소리를 지르자

"만약 어머니를 놓쳐도 일단 아오모리행 열차를 타렴. 그리고 나서 꼭 시리우치역에서 내려서 어머니하고 노리아키 짱하고 마리 짱을 찾아야 된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시면서 토토의 손에 "우에노, 후쿠시마, 센다이, 모리오카, 시리우치"라고 쓰여진 종이와 열차표를 쥐어주셨다. 무서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시리우치"는 현재의 "하치노헤"에 해당한다.

개찰구에서 플랫폼을 향하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양 옆으로 밀고 밀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처음 보는 아저씨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토토 얼굴을 향해 짐들이 날아와 아프고 숨쉬기도 힘들었으며 자신이 직접 걷는다기보다는 어른들의 짐에 끼어서 같이 운반되는 건가 싶을 정도여서 무척 무서웠다.

엄마가 점점 멀어져 갔다. 어떡한담. 열차가 보이자 어른들의 발은 더욱 빨라졌다.

"꺄악!"

토토는 플랫폼 반대편으로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주저앉은 채로 열차 쪽을 바라보니 다른 사람을 밀치고서 열차에 타는 사람이나 짐을 창 안으로 던져넣는 사람들이 보였다.

엄마 쪽은 열차에 타신 것 같다.

어떡한담...

출발을 알리는 역무원 아저씨의 목소리가 플랫폼에 울려퍼졌을 때 열차 창문 너머로 엄마가 보였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시리우치역에서 기다릴게."

엄마의 입이 그렇게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사람을 잔뜩 태운 열차가 뿌옹~하고 기적을 울리며 출발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넘쳐났던 플랫폼이 순식간에 텅텅 비었다.

 

"다음 아오모리행 열차는 언제 오나요?"

토토는 분주히 움직이는 역무원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임시열차가 없으니 다음 차는 밤 여덞 시나 되어야 올 텐데, 꼬마 아가씨 혼자서 아오모리까지 가려고?"

"네, 아까 기차에 타지를 못해서 가족과 시리우치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토토가 그렇게 말하자 역무원 아저씨가 "힘들겠구나."라고 동정하면서 

"플랫폼에 들어올 시간이 되면 알려줄 테니 저 편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라고 말해주셨다.

토우호쿠본선 플랫폼은 피스톤 운동이라도 하듯 열차가 역에 도착하면 승객을 내린 뒤 바로 그 열차에 사람들을 태우고서 출발했다. 토토가 플랫폼 구석에서 아오모리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우츠노미야행"과 "시라카와행"이 출발했으며 그 때마다 플랫폼은 시장통이 되었다가 다시 텅 비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는 것을 바라보는 사이에 완전히 어두워졌다.

"슬슬 저기에서 줄을 서는 게 좋겠구나. 조심해 가거라."

아까 봤던 역무원 아저씨가 가르쳐 주신대로 플랫폼 승차구 맨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두두두두 발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대거 몰려왔다. "아, 또 이러네."라는 생각에 몸을 움츠리자 여자가 "밀려나지 않도록 똑바로 서있어야 한다."라고 말해주었다. 올려다 보니 사과 같은 붉은 뺨을 가진 아주머니가 웃고 있으셨다.

아오모리행 열차의 문이 열리자 토토는 "이얍"하고 열차에 뛰어들었다. 뒤에서 사람들이 점점 들어오고 있었다. 통로 구석으로 밀려나 짜부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까 본 사과 뺨 아주머니가 토토의 손을 홱 낚아채서 2인석 가운데에 앉히셨다. 

"꼬마 아가씨는 말랐으니깐 여기에 앉을 수 있겠지?"

토토의 몸이 아주머니 팔에 안겨 좌석의 가운데에 쏙하고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보자 네 명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박스석에 어른이 여섯 명이나 앉아있었다. 좌석 사이에도 두 세 명씩 앉아있었고 통로도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토토는 운 좋게 좌석에 앉을 수 있었지만 자리며 바닥이며 순식간에 사람들로 메워진 것이다.

부옹~

증기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며 끼익끼익 기계가 마찰되는 소리가 나자 우에노발 아오모리행 완행열차가 북쪽을 향해 새까만 밤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시리우치에는 내일 점심 너머에야 도착한다고 했는데 엄마 쪽하고 만날 수 있으려나? 토토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불안함을 같이 실은 것 때문에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열차가 스피드를 천천히 냈다.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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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7. 23. 22:23

아빠의 출정

 

아빠가 전쟁터로 가게 된 그날 밤에 어린 마리 짱과 노리아키 짱을 이웃집에 맡기고서 토토와 엄마는 시나가와역으로 향했다. 밤이 된 시나가와역에선 등화관제가 이루어져 컴컴했다. 토토네와 비슷하게 온 가족이 스무 집단 정도 모였다. "여기에서 배웅해주십시오."라고 들었던 야마노테선 플랫폼에서 아빠가 있을 먼 플랫폼을 바라보니 어렴풋한 빛 속에서 군인 아저씨들이 야간열차에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먼데다가 어둡기까지 하니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아빠는 분명 일장기 부채를 흔들어 줄 것이다. "아버지~"라고 될 수 있는 한 큰 소리를 내어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는 군인 아저씨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른 가족들도 똑같이 소리를 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열차에 탄 군인 아저씨들이 일제히 일장기 부채를 펼쳐 이 쪽을 향해 흔들었다. 모두가 가지고 있던 일장기 부채를 표식으로 삼은 건 아빠와 엄마의 실수였다.

어쩌면 평생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토토는 어느 사람이 아빠인가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었다. 토토네의 모습을 잘 봐두었으면 했다.

토토와 엄마는 눈에 불을 켜고 아빠를 찾았지만 이 사람인가 하고 손을 흔들어보면 그 사람도 여기를 향해 흔드는 것처럼 보이고 저 사람인가 하고 손을 흔들어보면 그 사람도 이 쪽을 향해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저기 있는 게 아버지 아냐?" 같은 말을 하며 필사적으로 찾았다. 마침내 혼자서 독특한 리듬을 타고 부채를 흔드는 사람을 찾아내 토토와 엄마는 "저 사람이 아빠일 거야."라고 결정했다. 토토네가 손을 흔들자 그 부채만 크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열차가 조금씩 달리기 시작하자 거기에 맞춰 토토와 엄마도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면서도 플랫폼의 가장 끝부분까지 달려가며 아빠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야간열차는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져갔다.

 

"분명 그 사람이 아버지였을 거야."

토토와 엄마는 그런 말을 하며 플랫폼보다 훨씬 어두운 시나가와역 지하통로를 걸어갔다. 저벅저벅 소리가 들려와 토토네는 가까이에서 다른 군인 아저씨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군인 아저씨들에게 길을 비켜주려고 한 순간 토토가 통로 측면에 파여져 있던 도랑에 빠져버렸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무릎까지 푹 젖어버린 토토의 옆을 저벅저벅 군인 아저씨들이 지나갔다.

"어머니!"

토토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저벅저벅 발소리를 높여 행진하던 군인 아저씨들의 대열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테츠코!"

깜짝 놀라 얼굴을 들어보니 놀랍게도 거기에 아빠가 서있는 것이 아닌가! 아빠가 속한 부대는 지금부터 열차에 타려고 했던 것이다.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심코 아빠의 손을 잡아보니 거기엔 틀림없이 토토가 제일 좋아하는 뼈가 두텁고 손가락이 긴 커다랗고 커다란 아빠의 손이었다.

"어머니, 여기에 아버지가 있어요!"

토토는 소리 높여 엄마를 불렀다.

서둘러 달려온 엄마가 아빠가 거기에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면서 기뻐하셨다. 하지만 한두 마디를 나누었을 뿐 아빠는 서둘러 대열에 복귀해 걸어가셨다.토토네는 다시 한번 더 아빠를 배웅하기 위해 야마노테선 플랫폼으로 돌아갔다.

역시나 플랫폼은 얼굴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엄마는 말했다.

"괜찮아. 다른 사람들과 구분될 수 있도록 부채를 지휘봉처럼 흔들어 달라고 아빠에게 말했으니깐."

엄마 말대로 일제히 일장기 부채를 흔드는 군인 아저씨들 가운데 한 명만이 지휘봉처럼 흔드는 사람이 보였다. 토토와 엄마는 저 사람이 틀림없이 아빠라 믿고 열심히 손을 흔들며 진정한 작별인사를 했다.

혹시 토토가 도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어머니!"라고 큰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아예 토토가 도랑에 빠진 순간과 아빠 부대가 토토 옆을 지나는 순간이 몇 초라도 어긋났다면 토토와 엄마는 다른 군인 아저씨를 아빠라고 생각한 채 집에 돌아갈 뻔 했다. 아빠는 아빠대로 토토네가 진작에 떠나간 플랫폼을 향해 분명 가족이 거기에 있을 거라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부채를 흔들며 출정했을 것이다.

평소에도 구멍이 뚫린 곳이나 공사중인 곳, 위험한 곳을 일부러 골라서 걷는 토토의 보행법은 어른들에게 항상 주의를 들어왔지만 이 밤만큼은 그런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시나가와역에서 아빠와 재회할 수 있었던 건 신이 계획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빠가 그 때 언제나처럼 "토토스케"가 아니라 "테츠코"라고 불렀던 건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하다 여겼기 때문일까? 전쟁터로 향한 아빠에게서 편지가 딱 한 통 왔었는데 "군사우편"이란 글자가 붉게 찍혀있는 엽서에 "다들 잘 지내나요?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건강 조심하며 힘내세요."라는 특별한 문구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쓰여져 있었을 뿐이었다. 검열을 당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거였겠지만.

그 후 아빠의 소식은 완전히 끊겨버렸다.

 

토쿄대공습

 

정원에 있었던 온실 가운데에 깊은 구멍을 파서 방공호로 쓰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직접 판 구멍이라 그렇게 크게 팔 수는 없었지만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가족이 모두 거기에 들어가 숨을 죽였다. 토쿄 공습은 아빠가 출정한 뒤 갑자기 심해지면서 매일같이 토쿄 어딘가가 B-29의 공습을 받게 되었다.

그날 밤도 사이렌이 울려서 언제나처럼 방공호에 피난해 있었다. 0시가 지났을 무렵인 늦은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 밤 방공호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수면부족 상태가 이어져 얼른 경보해제 사이렌이 울렸으면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만은 상황이 좀 달랐다.

바깥이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 방공호 틈새로 올려다 보니 붉게 물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이 붉어지는 현상은 지금까지도 몇 번이고 봤지만 소이탄이 떨어져 화재를 일으키며 만들어낸 그날 밤 하늘은 무서울 정도로 새빨갰다.

너무나 밝아서 토토가 방공호를 뛰쳐나와 집에 들어가 책가방에서 책을 꺼내 정원 가운데에서 펼쳐보니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밤인데도 그 정도로 밝았으니 집에서 가까운 곳에 대화재가 일어난 게 틀림없다는 생각에 토토는 방공호로 들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큰일 났어요.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바깥이 밝아요. 분명 오오오카야마 쪽에서 불이 난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바깥으로 나와본 엄마가 더욱 붉어진 하늘 한편을 응시하며 "괜찮아."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밤에 일어나는 불은 가까운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훨씬 먼 곳에서 일어나는 거란다. 그러니 괜찮아."

엄마가 어떻게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으셨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서 토토는 조금 안심하게 되었다.

그날 밤엔 추위와 배고픔을 잠시도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피로감에 절어있던 다음날 아침에 토나리구미(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있었던 지역조직) 사람이 왔다.

"한 집에서 남자 한 명씩 삽을 가지고 모여주세요."

"남편이 출정을 가서 어른 남자가 없어요."

"그럼 삽만이라도 빌려주실 수 있나요?"

"그건 괜찮긴 한데 무슨 일 있나요?"

"어제 공습 때문에 시타마치가 꽤나 타버렸다네요. 사람들도 많이 죽어서 지금부터 다함께 유골을 정리해 드릴까 해요."

1945년 3월 10일, 악몽과 같은 하룻밤이 지나갔다. 삼백 기에 가까운 B-29가 후카가와나 혼죠 같은 곳을 중심으로 소이탄을 비처럼 쏟아부어 하룻밤만에 십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다.

토쿄대공습.

전날 밤에 하늘이 붉게 물든 것이 그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 새빨갛게 타오른 하늘이 지금도 머릿속 깊숙한 곳에 박혀 떨어지지 않는다. 토토네 집이 있던 키타센조쿠에서 시타마치로 가려면 지금도 전철로 한 시간은 가야 한다. 그렇게 멀리에서 일어난 화재인데도 정원에서 책을 읽을 정도로 밝아지려면 얼마나 극심한 공습이 이루어졌던 걸까?

미국 쪽에서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진 일본 가옥을 공격하려면 건물을 폭발시켜 파괴하는 폭탄보다 불을 붙여 태워버리는 소이탄이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밝혀졌다. B-29가 떨군 소이탄은 여러 개로 분산되어 불이 붙은 채 떨어지도록 설계되었다.

엄마는 이 이상 토쿄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최종판단을 내렸다.

"이제 여긴 위험해. 될 수 있는 한 빨리 피난하자. 사과와 채소를 보내주신 누마하타 아저씨네로 가보자."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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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7. 22. 16:00

보병 제1연대 전우

 

토토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난 것 같아 밤중에 눈을 떴다. 방 안에서 엄마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오열하는 목소리였다. 몸 속의 진동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낮고 껄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빠도 함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왜 운 거예요?"라고 엄마에게 물어보자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메마른 목소리로 "아빠가 군대에 가게 되었단다."라고 했다.

당시 일본에는 징병제도가 있었다. 아빠도 스무 살에 징병검사를 받았는데 5단계 중 3단계인 병(丙)종 합격으로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이긴 해도 현역으로 뛰기 적합하지는 않다는 평가였다. 가장 우수한 게 갑(甲)종 합격이고 그 다음이 을(乙)종이었다. 아빠는 당시로선 마른 장신이었는데 너무 크면 군복 지급에 지장이 생기므로 신장이 큰 사람은 갑종보단 을종이나 병종으로 분류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빠는 아마도 그 덕분에 병역을 피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병종 정도 되면 군대에 가지 않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런 아빠에게도 "붉은 종이"라 불리는 소집영장이 나왔을 정도니 전황이 어지간히도 악화되었던 걸로 보인다.

나중에 엄마께서 알려주셨는데 작곡가인 야마다 코우사쿠 선생님이 "쿠로야나기 군은 일본 음악계에 있어서 무척 소중한 사람이니 전쟁터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라며 상당히 신경을 써주셨다고 한다. 아빠는 결혼 전에 야마다 선생님이 설립하신 일본교향음악협회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으니 선생님의 사랑을 무척 많이 받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연달아 출정을 나갔고 적성(敵性)음악을 연주할 수 없었으니 클래식 연주회를 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군가를 연주해 주십시오."란 의뢰를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음악가로서 자신의 연주에 긍지를 가지고 있으셨던 아빠는 "단호히 거절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연주만 하면 쌀과 설탕, 양갱 같은 걸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아무리 식량이 없어서 가족 모두가 배를 곯고 있는 중이라 해도 아빠는 "군가를 연주할 수 없다."며 버티셨다. 엄마도 "그래요, 그럼 가지 마세요." 같은 식으로 대응하며 "가족을 위해서라도 해주세요." 같은 말을 하지 않으신 게 엄마의 대단한 점이었다.

아빠의 출정식은 집 앞에서 치러졌다.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국방부인회 어깨띠를 맨 여자들이나 국민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와서 일장기가 그려진 깃발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군복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빠가 가운데에서 모두들 만세삼창을 하는 가운데 감사한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토토는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바이올린을 들 수 없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전황은 상당히 심각해졌지만 자세한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환송을 받는 아빠도 환송을 하는 사람들도 그다지 비장감이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빠는 현재의 롯폰기 토쿄 미드타운이 있는 곳에 있었던 육군보병 제1연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연대 쪽에서 "출정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면회하러 오십시오."라는 연락이 왔다.

엄마는 "아빠와 면회를 할 수 있단다."라고 말하며 어디에서 났는지 팥을 모아와 출정기념이라며 배급받은 쌀을 익히고 어렵게 모아두었던 소량의 설탕을 써서 찹쌀떡을 만들었다. 찹쌀떡은 그다지 달지 않았지만 그런 찹쌀떡이라도 그 때엔 무척 귀한 것이라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진수성찬이었다. 그 후 토토와 둘째 남동생 노리아키 짱,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리 짱을 데리고 사진관에 가서 엄마와 아이 넷이서 사진을 찍었다. 전쟁터에 가는 아빠에게 드릴 가족사진이었다. 사진관에서 촬영한 건 토토로선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머리를 세 갈래로 땋아 머리 둘레로 돌리고 갈색 점퍼 스커트 같은 몸빼를 입고 마리 짱을 무릎에 앉혔다. 네 살이었던 노리아키 짱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털실로 짠 반바지를 입고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여동생의 작은 손을 쥐었다. 토토는 양쪽으로 나눈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머리핀으로 고정시키고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게 최선을 다해 뽐을 낸 것이었지만 모처럼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누구도 웃지를 못했다.

 

면회 당일에 찹쌀떡과 사진을 가지고 보병 제1연대 주둔지에 갔을 때 이미 많은 가족들이 북적대고 있었지만 아빠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

"토토스케!"

그렇게 말하며 달려온 아빠의 모습에 토토는 자기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리를 빡빡 밀고 카키색 군복을 입은 모습이 왠지 후줄근해 보였고 발에는 정강이까지 올라온 양말과 작업용 장화를 신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집에서 나갈 때엔 항상 착착 다려진 양복을, 무대에 오를 때엔 연미복에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까지 멋들어지게 입었던 아빠가... 토토네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아빠의 모습에 엄마는 눈물을 머금기 시작했다. 토토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에 의하면 아빠 허리에 수통 대신 맥주병이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전우야."

극단적일 정도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던 아빠가 구김살 없는 웃음을 지으며 한 군인 아저씨를 소개시켜 주었다. 입대 전엔 생선가게를 하고 있었다는데 꾸며서 말해도 사람을 잘 사귄다 말할 수 없어 엄마하고만 지내는 것 같았던 아빠가 생선가게 아저씨를 "전우"라고 말하다니 깜짝 놀랐지만 "보기보다 적응력이 좋구나."라며 감탄하며 기뻐했다.

토토는 아빠가 군인이 되어 슬퍼하지 않을까 생각해지만 가족과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하고는 그렇지 못하는 아빠에게 친구가 생긴 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 일 관계상 알게 된 음악가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이 통해서 생긴 아빠의 친구. 토토는 생선가게 아저씨에게

"아버지를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어른스럽게 보이도록.

생선가게 아저씨도

"저야말로 항상 신세를 지고 있어요."

라고 웃으며 답해주었다. 아빠보다 젊은 분이었다.

친척 분이 면회를 왔다며 생선가게 아저씨가 자리를 뜨자 아빠와 엄마, 토토와 남동생과 여동생은 주둔지 근처 공터에 앉았다. 엄마가 막 뽑아온 가족사진을 아빠에게 건내자 그걸 본 아빠가 토토와 동생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예쁘네."

"아빠(원문에서는 パパ, 파파)" "엄마(원문에서는 ママ, 마마)"는 적국의 언어라 다른 사람들 앞에선 "아버지" "어머니"라고 말하도록 되어있었기에 토토는 두근두근거렸지만 주변에서 누가 듣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사진을 소중히 가슴주머니에 넣으며 토토네를 향해 오른쪽 엄지를 위로 세우는 언제나 봐왔던 포즈를 취했다. 유튜브의 추천 단추 같은 손짓이다. 지금이야 흔히 볼 수 있는 동작이지만 그 당시 엄지를 세워 "좋았어."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아빠 같은 분 외엔 없었다. 외국 음악가들과 같이 일하는 사이에 그 동작이 습관이 된 것이다.

가족끼리 사양하는 것 없이 토토네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는 찹쌀떡을 입에 넣으며 "간만에 맛난 걸 먹네."라며 만족하셨다. 토토네가 상상해오던 것보다 아빠는 몇 배는 더 활기차 보였다.

순식간에 헤어질 시간이 되어 아빠가 정문 근처까지 배웅을 나와주셨다. 여기에 또 오면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토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토토네를 향해 손을 흔들며 주둔지로 돌아가시려 했기에

"잘 가 삼각형! 또 와줘 사각형!"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토토네에서만 통했던 작별 인사였다. 아빠는 싱긋 웃으며 양손을 높이 치켜들고 아까보다 더 크게 흔들었다. 토토네도 커다랗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향하려 할 때 후줄근하지 않은 군복을 입은 계급이 높아보이는 군인 아저씨들이 슬며시 다가와 엄마 귀에 속삭였다.

"남편 분의 부대는 일 주일 후 시나가와역에서 20시발 야간열차를 타고 출발할 겁니다."

엄마가 깜짝 놀라 "정말인가요?"라고 되묻자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에 들어오실 수는 없습니다. 멀리 있는 플랫폼에서 배웅하실 수는 있습니다만."

군인 아저씨는 그렇게 말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슬며시 사라졌다.

엄마는 토토와 동생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렴."이라고 말하신 뒤 한번 더 아빠와 만나러 문 안으로 들어가셔서 가족이 시나가와역에서 배웅할 수 있다는 것, 수많은 군인 아저씨들 중에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아빠가 군대에서 받은 일장기 부채를 흔들어 신호를 보내주겠다는 것을 이야기한 뒤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그런 기밀사항을 그 분이 말씀해 주신 건지 알 수 없었다. 토토네 가족이 슬퍼보였던 걸까? 아니면 엄마가 미인이라서? 어쨌든 가르쳐 주신 건 제대로 된 정보였다.

 

1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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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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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잡담 2024. 7. 21. 00:33

내가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만들면서 댓글을 다는 조건을 완전개방으로 한 건 내 글을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의견을 남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자유롭게 무미건조한 자기 블로그 유도용 댓글들이 설치는 환경. <속 창가의 토토>를 번역하는 시간을 글 하나당 한 시간으로 잡고 있다. 여기에 글을 나눌 수 있는 부분까지 나아갈 때까지 번역을 계속하고 있으니깐 지금까지 한 번역만 해도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 된다. 그런데 여기에 계속 무미건조한 자기 블로그 유도용 댓글이 달리는 꼴을 보고 참기 힘들어서 지웠더니 그 사람이 연속으로 댓글을 다는 게 보였다. 알고 보니 블로그 설정에 댓글을 다는 사람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이걸 쓰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는 플레이를 하는 사람을 완전히 잠재우기 위해. 아니 사람이긴 할까?

이런 상황에 놓이고 보니 또다시 더더욱 힘들어진다. 인터넷 상에서 뭐를 해도 벽을 향한 외침. 누군가와 대화를 하지 못하고 그저 벽에 낙서를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실. 인터넷 바깥도 마찬가지. 난 글을 써서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애시당초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글을.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그대로 베끼는 것 외엔 하지도 못하니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걸 계속 반복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과는 전혀 관계 없는 댓글들이 날 공격하는 것에 힘들어 하는 악순환. 정말 뭘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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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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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7. 21. 00:03

어느 겨울 일요일에 토토는 어릴 적부터 다녔던 센조쿠교회의 일요학교에 나갔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서 무척 추운 아침에 언제나처럼 "춥고 졸리고 배가 고파."라고 중얼거리며 걸어다녔는데 이 말을 중얼거리며 나아가다보면 소풍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바람이 휘잉휘잉 소리를 내며 불어서 토토는 눈물이 조금 베어나왔는지도 모를 무척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 애야!"

갑자기 경찰 아저씨가 불러세웠다.

"너 왜 울고 있는 거니?"

토토는 눈물을 닦으며

"추워서요."

라고 답했다. 그러자 경찰 아저씨가 외쳤다.

"전쟁터에 있는 군인 아저씨들 생각 좀 해보렴! 추운 것 가지고 울어서 어디에 써먹겠냐! 그딴 것 때문에 울지 마!"

갑작스러운 노성에 토토는 깜짝 놀랐지만 "그런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엔 울지도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혼나는 건 싫어. 우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는 게 전쟁이구나. 추워도, 졸려도, 배가 고파도 울지 말자. 군인 아저씨들은 더욱더욱 힘들 테니깐."

그게 토토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마른 오징어 맛이 나는 전쟁책임

 

마을 여기저기에서 긴 줄이 생겨났다. 가게에 물건이 들어왔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몰려드는 것이다. 뭘 팔고 있는지와 관계 없이 일단 줄을 서고 보자는 생각이 앞서 모두들 행렬에 동참한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기뻐했는데 장례식에 피울 향초를 팔더라고."

언젠가 엄마가 그런 라쿠고 같은 이야기를 하셔서 그걸 들은 토토도 "아하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그 때엔 가게에 아직은 상품이 조금씩 남아있었기에 엄마들도 실패담으로 웃을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기 지유가오카역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토모에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차에 타려고 역 쪽으로 가고 있으려니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 아저씨들이 가족이나 이웃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정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하, 저 사람은 전쟁터로 가는구나."

이 때엔 아직 토토네 아빠도 아는 사람들도 군대에 끌려가지는 않고 있었기에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모두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깃발을 흔들렴."

처음 보는 광경에 우두커니 있던 토토의 눈 앞에 일장기가 그려진 작은 깃발과 잘 구워진 마른 오징어 다리가 하나 내밀어졌다. 올려다 보니 모르는 아저씨가 토토를 향해 웃고 있었다.

"뭘까? 깃발을 흔들면 오징어를 먹을 수 있는 건가?"

물론 이 때도 배가 고파서 힘들었으니 토토는 별 생각 없이 오징어와 일장기를 손에 쥐었다.

엄마가 늘 "모르는 사람에게서 뭘 받거나 하면 안 돼요."라고 하셨지만 배가 너무나 고팠기 때문에 오징어의 유혹을 견딜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른도 아이도 군인 아저씨들을 향해 "만세!"를 외치며 깃발을 흔들었다.

"그렇구나. 깃발을 흔드는 값으로 오징어를 받은 거네."

토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만세!"라고 외치며 열심히 깃발을 흔들었다.

드디어 환송식이 일단락 되면서 군인 아저씨들이 역 안으로 사라져갔다. 깃발을 흔들던 사람들도 모두들 역 앞을 떠났다.

토토는 주변 사람들이 다 갔나 살핀 뒤 오징어 다리를 입에 쑤셔 넣었다.

이 일이 있은 뒤 토토는 군인 아저씨들의 출정식을 기다리게 되었다. 토모에학원은 지유가오카역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수업 중에도 역에서 군인 아저씨들을 보내는 "만세!"가 들리면 토토는 살며시 교실을 빠져나가 역을 향해 달려갔다. 토모에학원의 자유로운 교풍 덕에 함부로 교실을 나가거나 해도 혼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토토는 출정하는 군인 아저씨들을 볼 때마다 열심히 일장기를 흔들었다. 그 때마다 마른 오징어 다리를 받아 아무런 생각도 않고 그걸 씹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아무리 깃발을 흔들어도 마른 오징어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식량부족이란 파도가 출정하는 병사들을 환송하는 자리까지 휩쓴 것이다. 교실을 빠져나가 깃발을 흔들러 가도 마른 오징어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토토는 너무나 실망스러워 출정식에 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깃발을 흔드는 대신 받은 오징어 맛은 토토의 기억 속에 계속해서 자리잡게 되었다.

 

토토네 아빠는 1944년 가을이 끝날 무렵 호쿠시(현재의 중국 화북지방)로 출정하게 되었다. 패전 후엔 쭉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어 있었다가 1949년 말에야 토토네가 살고 있는 키타센조쿠 집으로 돌아오실수 있었다. 미국 이야기를 해주시던 타구치 숙부님을 비롯해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향해야 했다.

세계대전이 끝나자 돌아온 군인 아저씨들도 돌아오지 못한 군인 아저씨들도 있었다. 전쟁 중엔 알지 못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보니 오징어를 받으며 만세를 불렀던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란 걸 그제서야 알았다.

토토는 생각했다.

지유가오카역 앞에서 토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환송하는 가운데 전쟁터로 향한 군인 아저씨들 중 대체 몇 명이나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토토는 그저 오징어 다리가 먹고 싶었기에 일장기가 그려진 작은 깃발을 흔들며 군인 아저씨들을 환송했다. 하지만 군인 아저씨들이 깃발을 흔드는 토토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환송해주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싸우자."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전쟁터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렇다면, 그랬던 군인 아저씨가 전사했다면 그 책임의 일부는 토토에게도 주어지는 것이고 오징어를 먹고 싶어서 "만세!"를 부른 토토는 군인 아저씨들의 마음을 배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른이 되어서야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그 일장기를 흔든 것이 너무나 후회되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터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만세!"를 외치며 환송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오징어를 먹고 싶었다고는 해도 토토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 그리고 무책임했던 것이 토토가 짊어져야 할 "전쟁책임"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집 영장 이 왔다"

 

1944년 봄,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지 이 년 반이 지났을 무렵에 토토네엔 기쁜 일과 슬픈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4월에 여동생 마리 짱이 태어나 사 자제가 된 것이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5월에 첫째 남동생인 메이지 짱이 패혈증으로 죽어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기차게 학교에 다니던 메이 짱. 공부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잘 켜서 토토와 메이 짱은 언제나 함께 놀았는데... 페니실린 한 방만 놓을 수 있어도 살 수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토토는 메이 짱이 죽었을 당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메이 짱에 대한 것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항상 어깨동무하고 같이 학교에 가고 그랬었잖니."하고 엄마가 말할 정도로 사이 좋은 자제였을 텐데 어째서인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사진을 봐도 "아하, 이런 아이였나?"란 생각이 들 정도다. 분명 메이 짱이 죽었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토토가 메이 짱과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토토의 기억 속엔 메이 짱을 잃고 슬퍼했을 엄마 아빠의 모습조차 남아있지 않다.

메이 짱이 숨을 거두기 전에 "하느님, 전 하늘나라로 가지만 부디 저희 가족은 평화롭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선명한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고 나중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 해 여름에 엄마는 피난을 결심하게 되었다. 우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어디로 갈 것인가. 토쿄 출생이신 아빠에게 시골집 같은 건 없었고 엄마의 고향인 홋카이도는 토쿄에서 너무나 멀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를 혼자 토쿄에 남겨두고 아직 어렸던 세 아이를 이끌고 피난처를 찾는 여행을 떠났다.

첫 후보지는 센다이는데 엄마의 아빠, 토토의 할아버지가 센다이에 있는 현재의 토우호쿠대 의학부를 졸업해 의사가 되었기 때문에 나름 인연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센다이역에 내려 역앞을 방황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안 되겠어, 여기 절대 공습당할 분위기야."

엄마의 예언이 맞아 다음해 7월에 센다이는 B-29의 대공습을 당해 시가지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홋카이도의 대자연 속에서 자라난 엄마에게 위험을 감지하는 동물적 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센다이로 피난하는 것을 포기한 뒤 이번엔 후쿠시마로 향했다. 후쿠시마역에 내린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기 근처에 피난해 있을 만한 곳이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니 "이이자카 온천 근처 어떻십니꺼?"라고 답했기에 흔들거리는 버스를 타고 이이자카 온천으로 갔다.

이이자카 온천에는 온천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토토가 다리를 치료하러 다닌 유가와라 온천은 마을 곳곳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어른도 아이도 뜨끈뜨끈 상기된 얼굴로 다니는 무척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와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에 놀랐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엔 전황이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던 때니 한가하게 온천에 몸을 담그러 올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여관을 몇 곳이고 돌아다녔는데 피난 때문에 오게 되었다는 말에 어느 여관의 아저씨가 "우리 여관에 방 하나 비었는데 거기 묵을라요?"라고 말해주셔서 엄마가 안심하며 "잘 되었구나."라며 토토의 손을 잡았지만 토토의 눈은 다른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친절한 아저씨가 입고 있는 바지도 팬티도 아닌 것 같은 색이 옅은 팥으로 칠한 듯한 축 늘어져 있는 건 대체 뭐지? 토토 나이대에 입는 불루머가 길어진 것 같아. 그 아저씨는 저녁 더위를 피하는 중이었던 듯 부채를 퍼덕퍼덕 부치면서 서 있었는데 그 길다란 블루머를 입고 있는 모습은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두 발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토토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말았다.

"엄마, 저 아저씨가 입고 있는 건 뭐예요?"

"저건 사루마타(サルマタ)라고 하는 거야."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었지만 토토는 "그렇구나! 아저씨 다리가 원숭이(サル) 같아!"라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른치곤 좀 보기 흉하게 입은 모양새긴 했지만 토토는 "사루마타"라는 단어의 울림이 마음에 들었고 이 온천으로 피난 오면 토쿄와는 다른 재밌는 사람들이나 예쁜 자연, 처음 보는 동물들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저씨가 권해준 여관방은 무척 넓고 훌륭했다. 먹을 것도 토쿄에 비하면 훨씬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여기로 피난해야겠네."라고 말한 뒤 토쿄에 있는 아빠에게 전보를 보냈다.

아빠가 바로 답신을 보내왔는데 그 전보를 읽는 엄마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면서 토토네는 곧바로 짐을 싸 토쿄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엄마는 얼굴이 굳은 채로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아빠가 보내온 전보엔 "소집 영장 이 왔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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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7. 17. 15:52

책은 친구

 

토토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빠 덕분이었다. 아이 돌보기를 엄마에게 맡겨두기만 했던 아빠는 토토에게 책읽기를 알려주는 것이 아버지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밤에 토토가 침대에 누우면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와 의자를 침대 옆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낭독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아빠가 읽어준 책 중엔 소설이 많았다. 그 즈음 토토 나이를 생각하면 그림책이 어울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가 쓴 <쿠오레>나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쓴 <소공자> 등등 여러 소설들을 매일밤 조금씩 읽어주셨다. 그 중에서도 토토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 <쿠오레>였지만

"아빠가 열심히 읽긴 하시지만 그다지 잘 읽지는 못하시네. 토토가 어른이 되면 자기 아이에게 책을 재밌게 읽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입원했을 때에도 토토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으면 아픔이나 간지러움, 불안한 마음을 잊을 수 있었다. 입원이 길어진 탓에 직접 책을 읽는 습관을 체득하게 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을지도. 그림책이나 어린이 대상 책만으론 질리게 된 토토는 퇴원 후에 아빠 책장을 물색하게 되었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시가 나오야가 쓴 <암야행로>였다.

"어디 보자..."

토토는 눈 앞에 있는 갈색 표지로 된 책을 집고서 펄럭펄럭 넘겨보았다. 아빠가 읽는 책은 두껍고 무겁고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봐도 그림 같은 건 나오지도 않았으며 글자도 작았는데 당시엔 한자에 전부 요미가나를 써놓고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읽어보니 그런대로 읽을 수는 있었다. 동화나 그림책처럼 삽화가 없는 만큼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복장이나 머리카락 모양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책만 있다면 기분이 좋아지는 토토를 보며 아빠와 엄마는 <일본소국민문고>라는 어린이 대상 문학 전집을 사주셨다. 다 해서 열 권 이상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토토가 좋아했던 책이 <세계명작선>이란 제목을 단 책이었다.

그 책엔 레프 톨스토이, 로맹 롤랑, 카렐 차페크, 마크 트웨인 같은 작가의 작품과 칼 부세의 시와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같은 것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어린이 대상 책 치곤 상당히 호화로운 내용이었다.

토토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에리히 케스트너가 쓴 <핑크트헨과 안톤>으로 부잣집에서 자라난 핑크트헨과 가난하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안톤의 우정 이야기에 푹 빠졌다.

 

토토네 집에선 과자를 사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책을 외상으로 사는 것은 허용되어 있었다. 책장과 눈싸움을 벌이며 한 권 한 권 집어보고서 "이거다!"라고 생각되는 책이 보이면 계산대에 앉아있는 아저씨에게 "쿠로야나기인데요, 이 책 외상으로 달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리고선 손에 넣은 책을 품에 넣고서 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그런데 서점의 책장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빗이 이가 빠진 것처럼 책장에서 빈틈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 또한 세계대전 때문인데 물자부족이 인쇄용 종이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출판사가 좀처럼 책을 찍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서점에 갈 때마다 황량해지는 책장을 바라보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었다.

어느 날 토토가 하굣길에 서점에 들러봤지만 역시 책장은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텅텅 비었고 책이 아니라 책장 장사로 가게를 바꾸셨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특히 어린이 대상 책장에는 한권도 없었다. 그래도 토토는 책장 구석에 놓여져 있던 얼마 없는 책들 중에 한 권을 집었다. 그건 <신작라쿠고>라는 책이었다.

정말 안 팔려서 놓여 있던 거겠네 하는 생각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읽어봤는데 이게 의외로 재밌었다.

도둑이 들지 않도록 집안 곳곳에 방범장치를 해놓았더니 자기가 거기에 걸려버린 얼빠진 집주인 이야기나 툭하면 방귀를 뀌어대서 시집을 가지 못했던 부잣집 아가씨가 간신히 결혼하게 되었더니 첫날밤에 참았던 방귀가 나와 그 기세에 남편이 방안을 일곱 번 반이나 날아다니다 기절한 이야기. 나오는 등장인물마다 얼간이거나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는 결점을 가진 사람이거나 해서 배꼽을 잡고 웃어댄 토토는 역시 책은 좋구나 하고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대두 열다섯 알

 

세계대전 중 토쿄의 겨울은 여태까지보다 훨씬 추웠다고 생각한다.

"춥고 졸리고 배가 고파."

토모에 학원에서 돌아오는 동안 토토와 친구들은 다들 그런 말을 하며 걸어갔다. 간단한 곡조를 붙여서 자신들의 테마송이라도 된 양 부르고 다녔던 적도 있다.

쌀이 배급제로 바뀐 것은 태평양 전쟁이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들이 점점 폐업하기 시작해 전쟁이 길어짐에 따라 고구마, 대두, 옥수수, 수수 등이 "대용식으로써 배급되었다.

매일 먹는 도시락이 하얀 쌀밥에서 대두로 바뀌었을 때엔 정말 배가 고파 살 수 없겠다 싶었다. 토토는 운동회 도시락에도 하얀 쌀밥이 완전히 사라진 걸 보며 "작년 운동회 도시락은 엄마가 만들어주신 달콤한 유부초밥이었는데."라고 회상하며 슬퍼했다.

 

어느 추운 날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에 엄마가 프라이팬으로 볶은 대두가 열다섯 알 들어간 봉투를 건내셨다.

"잘 들으렴, 이게 테츠코가 오늘 하루 먹을 음식이야."

엄마는 토토의 손에 봉투를 놓았다.

"서둘러서 전부 먹으면 안 된단다. 집에 와도 아무 것도 먹을 게 없으니깐 언제 몇 알을 먹을지 네가 잘 나눠야 해."

그런가, 오늘부터 도시락이 콩알 뿐이구나. 배가 고파도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되는구나.

"먹은 뒤에 물을 많이 마시렴. 그러면 배가 찰 수 있거든."

엄마는 몇 번이고 토토에게 강조했다.

"열다섯 알이라... 그럼 아침엔 세 알을 먹자."

그렇게 결심하고서 학교에 가는 도중에 우선 한 알을 먹었다.

"오독오독오독"

어금니로 씹고 있으려니 첫 대두가 순식간에 입 안에서 사라졌다. 그럼 두 알 째.

"오독오독오독"

이것도 순식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알 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벌써 세 알째야?"

학교에 도착한 토토는 엄마가 말씀하신대로 물을 잔뜩 마셨다.

"아까 먹은 대두가 뱃속에서 물을 잔뜩 머금고 불어오를 거야."

토토는 뱃속 모습을 상상했다.

"앞으로 열두 알이네."

토토는 대두가 들어있는 봉투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수업을 듣는 와중에 점심이 가까워질 무렵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토토와 친구들은 교정 한구석에 있는 방공호로 피난했다. 방공호 입구를 닫자 그 안은 어두컴컴해졌다. 처음엔 몸을 둥글게 말고 숨을 죽였지만 아무 것도 할 게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스크림을 먹어봤어."라고 누군가가 말하자 토토도 "나도"라고 답했다. 좀처럼 경보해제 사이렌이 울리지 않자 어두컴컴한 방공호 안에서 대두 생각을 하게 되었다.

토토는 참지 못하고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한 번에 두 알,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입에 넣었다.

"오독, 오독오독"

지금 당장 남은 대두를 전부 먹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 지금 이걸 먹어버린다면 귀가 후 아무 것도 먹을 게 없었다.

"참자 참아..."

그런 말을 하며 토토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대두를 열 알 가지고 있어. 어쩌면 지금 당장 이 방공호에 폭탄이 떨어져서 모두 죽을지도 몰라. 그럼 지금 먹는 게 나을지도."

"하지만 방공호에 폭탄이 떨어지지 않고 집이 공습으로 불타버려서 돌아가보니 아빠와 엄마가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럼 어떡하지? 역시 남아있는 열 알을 지금 먹는 게 나으려나?"

빙글빙글, 빙글빙글, 여러가지 일을 생각하니 토토는 슬퍼졌다.

"집이 타지 않아야 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알을 먹었다.

좀 지난 뒤 공습경보 해제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와 토토와 친구들은 겨우 방공호를 나올 수 있었다.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돌아가도 좋아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집이 가까워질수록 불타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아침에 나왔을 때 그대로인 집이 보이자 안심할 수 있었다.

"아아 다행이다. 집은 타지 않았고 엄마와 아빠는 살아있어. 게다가 대두도 아직 여덞 알 남아있고."

토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배가 너무 고파 잠이 오지 않을 때엔 먹고 싶은 음식을 그리며 놓았다. 그 놀이는 엄마가 발명한 것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그림으로 그리고서 "잘 먹겠습니다" "우물우물" "더 주세요"라고 말하며 먹는 흉내를 내었다. 달콤한 계란말이나 구워진 고기 그림을 그리고서 "우물우물"을 반복했다.

배급이 해조면이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해변에서 캐낸 두꺼운 곤포를 빻아서 곤약을 우동처럼 길게 뽑아낸 것에 섞은 것이 해조면이었다. 왠지 개구리알 같아서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젠 조미료도 떨어져 가니 그저 물을 끓여서 개구리알을 후룩후룩 먹는 수 밖에.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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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7. 16. 23:25

캐러멜 자동판매기

 

토토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일 학년 도중에 지유가오카역 앞에 있었던 토모에학원으로 전학했지만 토토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일 주일에 한 번 키타센조쿠에서 전차를 타고 시부야에 가서 선생님의 집에서 연습을 했다.

환승역인 오오오카야마역 계단을 내려가는 와중에 토토의 흥미를 끄는 것이 보였다. 모리나가 캐러멜 자동판매기였다. 당시 오오오카야마는 토쿄공업대학 외엔 아무 것도 없는 살풍경한 곳이었기에 어째서 그런 곳에 최신식 판매기가 놓여져 있었는지 지금도 알쏭달쏭하다. 자동판매기는 돈을 넣는 가느다란 구멍에 오 전짜리 동전을 넣으면 캐러멜 상자가 나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일본 전체가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 자판기에 캐러멜이 들어있는 걸 한번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토토는 식량부족 때문에 캐러멜이 들어있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었기에 언제나 두근두근거리며 자동판매기 앞에 섰다. 오 전짜리 동전을 넣고서 버튼을 누른 뒤 캐러멜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으면 찰랑!하고 아래쪽에 있는 작은 접시에 돈이 그대로 떨어졌다.

"돈은 안 돌려줘도 되니깐 캐러멜이 나오는 걸 보고 싶다고!"

토토는 이런 생각을 하며 판매기를 전후좌우로 흔들었지만 캐러멜이 나올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토토는 어떻게 해서든 자동판매기에서 캐러멜이 나오는 걸 보고 싶었다.

피아노 연습을 하러 갈 때마다 토토는 "어쩌면 고쳐졌을지도 몰라" 싶어서 자동판매기를 흔들었다.

어쩌면 그건 토쿄공대생이 만든 시험작품 같은 게 아니었을까?

매번 그러진 않았지만 피아노 연습을 할 때 엄마가 따라와 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엔 연습 후에 시부야역 앞에 있는 식당에 같이 갔기 때문에 이럴 때엔 캐러멜 자동판매기보다 여기에 관심을 쏟았다. 엄마가 "뭐 먹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토토는 반드시 "아이스크림!"이라고 답했다.

언제나처럼 연습을 마치고 시부야 하치 공 앞 교차점 건너편에서 지금의 109 앞에 있는 커다란 식당에 갔다. 토토와 엄마는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젊은 군인 아저씨와 같은 식탁에 앉게 되었다. 토토는 입 주변에 아이스크림을 다 묻혀가며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먼저 식사를 마친 젊은 군인 아저씨가 일어서며 토토와 엄마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이거, 괜찮으시다면 쓰세요."

엄마에게 내민 종이에는 "외식권"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많은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구하기 힘들어져 식당에서 무언가를 먹을 때엔 이 외식권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토토는 이 때 처음으로 이 종이를 보았다.

"이렇게 귀한 걸 받다니요, 곤란합니다."

엄마는 엄중히 거절하며 군인 아저씨에게 돌려주려 했지만 군인 아저씨는 엄마에게 억지로 떠맡기듯 쥐어주고 그 자리를 떴다.

이 때 있었던 일을 토토는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곧잘 떠올리곤 했다. 군인 아저씨가 혼자서 식당에 왔던 것은 전쟁터에 가기 직전이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거기에 토토 모녀가 와서는 즐겁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보고 자신의 어린 여동생이나 친척 아이를 떠올렸지 않았을까? 그래서 외식권을 엄마에게 준 것일까? 군인 아저씨는 무사히 돌아왔을까.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건 그 해 말이었다.

그리고 토토는 언젠가부터 피아노를 배우지 않게 되었다.

 

아직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아빠를 뺀 가족 모두가 홋카이도에 있는 엄마 친정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엄마로선 결혼 후 첫 귀성길이었다.

돌아오는 아오모리발 우에노행 기차 안에서 토토는 창문에 달라붙다시피 하며 바깥 경치를 내다보았다. 앞자리엔 아저씨 둘이 앉아 "그 밤색 말이 죽여주드만." "새끼 말이 쌌으니께 샀으면 좋았겠는디 말여"라며 말 이야기에 몰두해 있었다.

발차 후 어느 정도 지나자 창을 통해 한가득 펼쳐지는 새빨간 광경이 돌연 토토의 눈 앞에 나타났다. 사과 과수원이었다.

"사과다, 사과!"

토토뿐 아니라 엄마도 함께 큰 환성을 질렀다. 새빨간 사과 열매가 한가득 열린 풍경이 너무나 예쁘고 맛있어 보여서 토토와 엄마는 홀딱 반했다.

"어떡한담, 내릴 수도 없고."라며 엄마와 토토가 이야기를 나누자 앞에 앉은 아저씨들 중 한 명이 "사과 먹고 싶습니껴?"라고 말을 걸어왔다.

"네! 먹고 싶어, 먹고 싶어요. 이제 토쿄에선 사과 같은 거 구경도 못하고 있거든요. 팔지를 않으니까요."

"우린 다음역에서 내리는디 맞다 아지매, 집 주소 좀 써주실라요?"

엄마는 허둥지둥 메모장을 찢어서 토쿄 주소를 커다랗게 써 아저씨에게 주었다. 메모를 주머니에 넣은 아저씨들은 다음역에서 서둘러 일어나 기차에서 내렸다.

아저씨가 토토네에 사과를 보내준 것은 그로부터 이 주일 정도 지나서였다. 나무로 된 커다란 사과 상자가 두 상자나 겨무더기에서 얼굴을 내민 새빨간 사과들은 정말 맛있어 보였고 실제로 먹어보니 달콤하고 맛있어서 울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그 인연으로 엄마와 아저씨는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이름은 누마하타 씨로 아오모리현 산노헤군에 있는 스와노타이라에서 커다란 농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감자나 호박 같은 채소도 많이 보내주곤 했다.

어느 날 아저씨가 "내년 장남이 토쿄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었는데 아는 사람이 없으니 거기에 하숙하게 해주었으면 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엄마는 수긍했지만 그 아드님이 토토네에 오기 직전에 군대로 소집되었고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토토는 대학생이 군대에 소집되어 행진하는 뉴스 영상이 나오면 그 아드님이 이 안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곤 했다.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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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 2024. 7. 15. 22:09

여름엔 여름대로 아빠의 형님이 살고 있는 카마쿠라 유이가하마에 해수욕을 하러 가는 게 즐거웠다. 백부님의 성함은 타구치 슈우지라 하는데 다큐멘터리 영화 카메라맨을 맡고 있어서 "슈우 타구치"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다. 전쟁터에 가는 일도 꽤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 후엔 교육영화 쪽에서 실력을 발휘하셨다.
이 백부님에게서 뉴욕 선물로 얼룩곰 인형을 받았는데 이게 판다 인형이라는 것을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당시 미국에선 전에 없던 판다 붐이 불었다고 한다. 미국 여자가 탐험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중국 쓰촨성에서 "환상의 동물"이라 불리던 판다를 탐색했는데 대나무 숲에서 아기 판다를 너무나도 쉽게 발견했다. 이 아기 판다를 강아지로 변장시켜 데리고 돌아와 시카고 동물원에서 사육하게 되자 이것이 순식간에 인기를 얻으면서 아메리카 방방곡곡에 판다 상품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 당시 토토로선 아직 판다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헤에, 이런 얼룩무늬를 가진 곰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그 인형이 평생을 같이 하는 친구가 될 줄은.
카마쿠라 해안에서 엄마는 수영복을 입었는데 당시 일본 여자들은 해수욕을 할 때 속옷을 수영복 대신 입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바다에서 나오면 가슴이 다 비춰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줌마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다들 신경쓰지 않았다. 토토는 그 광경을 보면서 "다 보이는데 굉장하네"라고 생각했지만 당시엔 그게 당연했다.
 
다리 길이가 다르지 않나?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여름날 아침에 오른쪽 다리 전체가 욱신욱신 아파서 눈이 떠졌다.
"자고 있는데 다리가 아팠어요!"
그렇게 말하자 엄마가 아침밥 준비를 멈췄다.
"큰일 났네! 곧장 병원에 가보자!"
이런 때 엄마의 결단력은 매우 빨라진다. 하지만 토토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변명을 필사적으로 생각해냈다.
"그게요, 아마 어제, 앞구르기를 할 때, 어딘가 부딪혔나 봐요."
이런 말을 했지만 엄마는 듣지도 않은 채 토토의 손을 붙잡고 집 근처에 있는 쇼와의전(현재의 쇼와대 의학부)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 활기가 넘치는 남자 의사 선생님이 토토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밝았던 선생님의 얼굴이 여러 군데를 살펴 보면서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바로 입원해야겠습니다."
 토토는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바로 눕혀졌고 끈적끈적한 석고를 바른 붕대가 오른쪽 발가락부터 허리 근처까지 순식간에 감겨졌다.
토토의 오른쪽 다리는 결핵성 고관절염이라는 병에 걸려 있었다. 혈액이 운반해 온 결핵균이 고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면서 그대로 두면 관절 표면에 있는 연골이 파괴되고 그 다음엔 뼈까지 파괴되어 관절이 그 상태에서 붙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칭칭 감긴 깁스가 완성되자 선생님은 "잘 만들어졌군 잘 되었어!"라고 말하며 통통하고 가볍게 깁스로 고정된 오른쪽 다리를 두드렸다. 토토는 자신이 뭔가 새로운 인형이 된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이건 이것대로 미지의 체험이었고 계속해서 누워있어도 되니 땡잡았네 같은 한가로운 생각을 했다. 선생님은 "절대안정"이라고 하시며 토토를 그대로 어린이용 침대에 옮겼다.
"따님이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토토는 몰랐지만 엄마는 선생님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 겪는 입원생활. 침대에 누워있던 토토는 깁스 때문에 돌아눕는 것조차 할 수 없어 잠이 오지 않을 때엔 누워서 천장을 계속 쳐다보고 있어야 했지만 재밌는 것도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매일 병실에 찾아와 토토 간병을 해주었다. 엄마가 가져온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고 양손으로 인형을 들고 가슴 위에서 인형놀이를 하기도 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식사 시간엔 간호사 선생님이나 엄마가 음식을 잘게 쪼개서 입에 넣어주었는데 병원 밥은 엄마의 요리에 비하면 너무 맛이 없었다. 가장 싫었던 게 사각형 코우야두부 조림. 영양가가 높아서 그런지 곧잘 반찬으로 나와서 "오늘 반찬은 코우야두부예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으윽, 또냐"라고 생각하며 살짝 머리를 들어서 갈색 사각형 덩어리를 째려보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젓가락을 들어주면 토토는 그 젓가락으로 코우야두부를 꾹 눌러서 즙이 푸왁하고 나오는 것을 확인하며 "싫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꾹 눌러서 푸왁하는 것을 반복하는 토토를 보며 간호사 선생님은 "코우야두부를 좋아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토토는 꽤 운이 없는 아이였다. 쇼와의전에 입원하고 있는 와중에 성홍열에 걸려버렸다. 이 병은 주로 아이들이 걸리는 전염병으로 토토는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두르고 있는 그대로 쇼와의전 근처에 있는 전염병 전문 병원인 에바라병원에 격리되었다. 고열이 나고 온몸에 붉은 오돌토돌한 것들이 생기고 목이 아파서 괴로웠다. 그래도 좀 재밌었던 게 병이 낫기 시작하자 뱀이 탈피하는 것처럼 피부가 주욱 벗겨지기 시작했다. 손의 피부가 장갑을 벗은 것처럼 벗겨져서 간지럽긴 해도 재밌었다.
동생인 메이지 짱도 성홍열에 걸리면서 아빠와 엄마가 많이 힘들었다. 엄마는 아이 둘을 간병하면서 집에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아빠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어디에서 구하신 건지 반찬을 가지고 오셨다.
불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드디어 성홍열이 나아 쇼와의전에 돌아온 토토에게 이번엔 수포창이 돌았다. 산 너머 산. 수포창도 전염병이니 토토는 다시 깁스한 그대로 에바라병원으로 귀환. 다리에 한 깁스를 언제 풀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건 어찌되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수포창은 울고 싶어질 정도로 가려웠다. 게다가 계절은 여름.
온몸에 오돌토돌한 게 생겼는데 깁스를 안한 부분은 긁거나 간지럼 방지약을 바를 수 있었지만 깁스 안 쪽엔 전혀 손이 들어가지 않고 땀까지 흘러 축축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깁스와 몸 사이로 나 있는 틈새에 길고 가느다란 막대를 넣어 긁어보려 했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알게 된 아빠가 지시봉을 가져와 틈새로 살며시 넣어보니 납작한 지시봉이 가려운 곳 근처까지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아빠, 들어갔어요! 대성공!"
바이올린을 켜느라 바쁘실 아빠가 나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게 기쁘고 감사해 박수를 쳤다. 무릎 뒷편 같은 가장 가려운 곳엔 지시봉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참을 만 해졌다.
병원 바깥에는 쓰름쓰름 우는 매미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드디어 깁스를 푸는 날이 다가왔다. 여름 동안 계속해서 깁스 속에 갇혀있었던 오른쪽 다리는 상당히 가느다라져 있었다. 입원하는 동안 키도 좀 커졌지만 다리 길이는 오른쪽 다리보다 왼쪽 다리가 길어져 있었다.
"어라? 다리 길이가 다르지 않나?"
선생님이 깁스를 풀고 있는 동안 토토와 엄마는 마주보고 웃어버렸다. 하지만 이대로는 양다리의 밸런스가 무너져 제대로 걸을 수가 없기 때문에 토토는 쇼와의전 병원을 퇴원한 이후 접골원에 다니거나 유가와라(카나가와현)에 있는 온천에서 치료를 하거나 요즘 말하는 재활치료를 하게 되었다.
유가와라에서는 아빠의 어머니와 젊은 도우미 분 둘이서 같이 돌봐주었다. 할머니는 토토가 타타미 위를 달리면 "조용히 하렴"이 아니라 "소리가 나는 게 싫단다"라고 했다. 토토는 이 한 마디를 들은 것만으로 "무서워!"라고 생각하며 되도록 조용히 있도록 했다.
 
유가와라에서 돌아올 때엔 시나가와역에 아빠와 엄마가 마중나와 주었다. 열차에서 내린 토토가 플랫폼을 달려 아빠와 엄마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을 보고 두 분이 우셨다. 오랜만에 만났으면 기쁠 텐데 어째서 우는 걸까 의아했는데 쇼와의전 선생님으로부터 "목발을 짚고 다녀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듣기까지 했던 토토가 달려오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어른이 되어서야 알려주셨다.
다리 길이는 같아져 걷기도 달리기도 문제없었다. 토토는 운이 좋았다.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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