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책 2024. 7. 22. 16:00

보병 제1연대 전우

 

토토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난 것 같아 밤중에 눈을 떴다. 방 안에서 엄마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오열하는 목소리였다. 몸 속의 진동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낮고 껄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빠도 함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왜 운 거예요?"라고 엄마에게 물어보자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메마른 목소리로 "아빠가 군대에 가게 되었단다."라고 했다.

당시 일본에는 징병제도가 있었다. 아빠도 스무 살에 징병검사를 받았는데 5단계 중 3단계인 병(丙)종 합격으로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이긴 해도 현역으로 뛰기 적합하지는 않다는 평가였다. 가장 우수한 게 갑(甲)종 합격이고 그 다음이 을(乙)종이었다. 아빠는 당시로선 마른 장신이었는데 너무 크면 군복 지급에 지장이 생기므로 신장이 큰 사람은 갑종보단 을종이나 병종으로 분류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빠는 아마도 그 덕분에 병역을 피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병종 정도 되면 군대에 가지 않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런 아빠에게도 "붉은 종이"라 불리는 소집영장이 나왔을 정도니 전황이 어지간히도 악화되었던 걸로 보인다.

나중에 엄마께서 알려주셨는데 작곡가인 야마다 코우사쿠 선생님이 "쿠로야나기 군은 일본 음악계에 있어서 무척 소중한 사람이니 전쟁터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라며 상당히 신경을 써주셨다고 한다. 아빠는 결혼 전에 야마다 선생님이 설립하신 일본교향음악협회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으니 선생님의 사랑을 무척 많이 받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연달아 출정을 나갔고 적성(敵性)음악을 연주할 수 없었으니 클래식 연주회를 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군가를 연주해 주십시오."란 의뢰를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음악가로서 자신의 연주에 긍지를 가지고 있으셨던 아빠는 "단호히 거절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연주만 하면 쌀과 설탕, 양갱 같은 걸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아무리 식량이 없어서 가족 모두가 배를 곯고 있는 중이라 해도 아빠는 "군가를 연주할 수 없다."며 버티셨다. 엄마도 "그래요, 그럼 가지 마세요." 같은 식으로 대응하며 "가족을 위해서라도 해주세요." 같은 말을 하지 않으신 게 엄마의 대단한 점이었다.

아빠의 출정식은 집 앞에서 치러졌다.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국방부인회 어깨띠를 맨 여자들이나 국민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와서 일장기가 그려진 깃발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군복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빠가 가운데에서 모두들 만세삼창을 하는 가운데 감사한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토토는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바이올린을 들 수 없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전황은 상당히 심각해졌지만 자세한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환송을 받는 아빠도 환송을 하는 사람들도 그다지 비장감이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빠는 현재의 롯폰기 토쿄 미드타운이 있는 곳에 있었던 육군보병 제1연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연대 쪽에서 "출정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면회하러 오십시오."라는 연락이 왔다.

엄마는 "아빠와 면회를 할 수 있단다."라고 말하며 어디에서 났는지 팥을 모아와 출정기념이라며 배급받은 쌀을 익히고 어렵게 모아두었던 소량의 설탕을 써서 찹쌀떡을 만들었다. 찹쌀떡은 그다지 달지 않았지만 그런 찹쌀떡이라도 그 때엔 무척 귀한 것이라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진수성찬이었다. 그 후 토토와 둘째 남동생 노리아키 짱,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리 짱을 데리고 사진관에 가서 엄마와 아이 넷이서 사진을 찍었다. 전쟁터에 가는 아빠에게 드릴 가족사진이었다. 사진관에서 촬영한 건 토토로선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머리를 세 갈래로 땋아 머리 둘레로 돌리고 갈색 점퍼 스커트 같은 몸빼를 입고 마리 짱을 무릎에 앉혔다. 네 살이었던 노리아키 짱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털실로 짠 반바지를 입고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여동생의 작은 손을 쥐었다. 토토는 양쪽으로 나눈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머리핀으로 고정시키고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게 최선을 다해 뽐을 낸 것이었지만 모처럼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누구도 웃지를 못했다.

 

면회 당일에 찹쌀떡과 사진을 가지고 보병 제1연대 주둔지에 갔을 때 이미 많은 가족들이 북적대고 있었지만 아빠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

"토토스케!"

그렇게 말하며 달려온 아빠의 모습에 토토는 자기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리를 빡빡 밀고 카키색 군복을 입은 모습이 왠지 후줄근해 보였고 발에는 정강이까지 올라온 양말과 작업용 장화를 신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집에서 나갈 때엔 항상 착착 다려진 양복을, 무대에 오를 때엔 연미복에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까지 멋들어지게 입었던 아빠가... 토토네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아빠의 모습에 엄마는 눈물을 머금기 시작했다. 토토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에 의하면 아빠 허리에 수통 대신 맥주병이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전우야."

극단적일 정도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던 아빠가 구김살 없는 웃음을 지으며 한 군인 아저씨를 소개시켜 주었다. 입대 전엔 생선가게를 하고 있었다는데 꾸며서 말해도 사람을 잘 사귄다 말할 수 없어 엄마하고만 지내는 것 같았던 아빠가 생선가게 아저씨를 "전우"라고 말하다니 깜짝 놀랐지만 "보기보다 적응력이 좋구나."라며 감탄하며 기뻐했다.

토토는 아빠가 군인이 되어 슬퍼하지 않을까 생각해지만 가족과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하고는 그렇지 못하는 아빠에게 친구가 생긴 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 일 관계상 알게 된 음악가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이 통해서 생긴 아빠의 친구. 토토는 생선가게 아저씨에게

"아버지를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어른스럽게 보이도록.

생선가게 아저씨도

"저야말로 항상 신세를 지고 있어요."

라고 웃으며 답해주었다. 아빠보다 젊은 분이었다.

친척 분이 면회를 왔다며 생선가게 아저씨가 자리를 뜨자 아빠와 엄마, 토토와 남동생과 여동생은 주둔지 근처 공터에 앉았다. 엄마가 막 뽑아온 가족사진을 아빠에게 건내자 그걸 본 아빠가 토토와 동생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예쁘네."

"아빠(원문에서는 パパ, 파파)" "엄마(원문에서는 ママ, 마마)"는 적국의 언어라 다른 사람들 앞에선 "아버지" "어머니"라고 말하도록 되어있었기에 토토는 두근두근거렸지만 주변에서 누가 듣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사진을 소중히 가슴주머니에 넣으며 토토네를 향해 오른쪽 엄지를 위로 세우는 언제나 봐왔던 포즈를 취했다. 유튜브의 추천 단추 같은 손짓이다. 지금이야 흔히 볼 수 있는 동작이지만 그 당시 엄지를 세워 "좋았어."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아빠 같은 분 외엔 없었다. 외국 음악가들과 같이 일하는 사이에 그 동작이 습관이 된 것이다.

가족끼리 사양하는 것 없이 토토네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는 찹쌀떡을 입에 넣으며 "간만에 맛난 걸 먹네."라며 만족하셨다. 토토네가 상상해오던 것보다 아빠는 몇 배는 더 활기차 보였다.

순식간에 헤어질 시간이 되어 아빠가 정문 근처까지 배웅을 나와주셨다. 여기에 또 오면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토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토토네를 향해 손을 흔들며 주둔지로 돌아가시려 했기에

"잘 가 삼각형! 또 와줘 사각형!"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토토네에서만 통했던 작별 인사였다. 아빠는 싱긋 웃으며 양손을 높이 치켜들고 아까보다 더 크게 흔들었다. 토토네도 커다랗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향하려 할 때 후줄근하지 않은 군복을 입은 계급이 높아보이는 군인 아저씨들이 슬며시 다가와 엄마 귀에 속삭였다.

"남편 분의 부대는 일 주일 후 시나가와역에서 20시발 야간열차를 타고 출발할 겁니다."

엄마가 깜짝 놀라 "정말인가요?"라고 되묻자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에 들어오실 수는 없습니다. 멀리 있는 플랫폼에서 배웅하실 수는 있습니다만."

군인 아저씨는 그렇게 말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슬며시 사라졌다.

엄마는 토토와 동생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렴."이라고 말하신 뒤 한번 더 아빠와 만나러 문 안으로 들어가셔서 가족이 시나가와역에서 배웅할 수 있다는 것, 수많은 군인 아저씨들 중에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아빠가 군대에서 받은 일장기 부채를 흔들어 신호를 보내주겠다는 것을 이야기한 뒤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그런 기밀사항을 그 분이 말씀해 주신 건지 알 수 없었다. 토토네 가족이 슬퍼보였던 걸까? 아니면 엄마가 미인이라서? 어쨌든 가르쳐 주신 건 제대로 된 정보였다.

 

1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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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one glow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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