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멜 자동판매기
토토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일 학년 도중에 지유가오카역 앞에 있었던 토모에학원으로 전학했지만 토토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일 주일에 한 번 키타센조쿠에서 전차를 타고 시부야에 가서 선생님의 집에서 연습을 했다.
환승역인 오오오카야마역 계단을 내려가는 와중에 토토의 흥미를 끄는 것이 보였다. 모리나가 캐러멜 자동판매기였다. 당시 오오오카야마는 토쿄공업대학 외엔 아무 것도 없는 살풍경한 곳이었기에 어째서 그런 곳에 최신식 판매기가 놓여져 있었는지 지금도 알쏭달쏭하다. 자동판매기는 돈을 넣는 가느다란 구멍에 오 전짜리 동전을 넣으면 캐러멜 상자가 나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일본 전체가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 자판기에 캐러멜이 들어있는 걸 한번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토토는 식량부족 때문에 캐러멜이 들어있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었기에 언제나 두근두근거리며 자동판매기 앞에 섰다. 오 전짜리 동전을 넣고서 버튼을 누른 뒤 캐러멜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으면 찰랑!하고 아래쪽에 있는 작은 접시에 돈이 그대로 떨어졌다.
"돈은 안 돌려줘도 되니깐 캐러멜이 나오는 걸 보고 싶다고!"
토토는 이런 생각을 하며 판매기를 전후좌우로 흔들었지만 캐러멜이 나올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토토는 어떻게 해서든 자동판매기에서 캐러멜이 나오는 걸 보고 싶었다.
피아노 연습을 하러 갈 때마다 토토는 "어쩌면 고쳐졌을지도 몰라" 싶어서 자동판매기를 흔들었다.
어쩌면 그건 토쿄공대생이 만든 시험작품 같은 게 아니었을까?
매번 그러진 않았지만 피아노 연습을 할 때 엄마가 따라와 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엔 연습 후에 시부야역 앞에 있는 식당에 같이 갔기 때문에 이럴 때엔 캐러멜 자동판매기보다 여기에 관심을 쏟았다. 엄마가 "뭐 먹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토토는 반드시 "아이스크림!"이라고 답했다.
언제나처럼 연습을 마치고 시부야 하치 공 앞 교차점 건너편에서 지금의 109 앞에 있는 커다란 식당에 갔다. 토토와 엄마는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젊은 군인 아저씨와 같은 식탁에 앉게 되었다. 토토는 입 주변에 아이스크림을 다 묻혀가며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먼저 식사를 마친 젊은 군인 아저씨가 일어서며 토토와 엄마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이거, 괜찮으시다면 쓰세요."
엄마에게 내민 종이에는 "외식권"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많은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구하기 힘들어져 식당에서 무언가를 먹을 때엔 이 외식권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토토는 이 때 처음으로 이 종이를 보았다.
"이렇게 귀한 걸 받다니요, 곤란합니다."
엄마는 엄중히 거절하며 군인 아저씨에게 돌려주려 했지만 군인 아저씨는 엄마에게 억지로 떠맡기듯 쥐어주고 그 자리를 떴다.
이 때 있었던 일을 토토는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곧잘 떠올리곤 했다. 군인 아저씨가 혼자서 식당에 왔던 것은 전쟁터에 가기 직전이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거기에 토토 모녀가 와서는 즐겁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보고 자신의 어린 여동생이나 친척 아이를 떠올렸지 않았을까? 그래서 외식권을 엄마에게 준 것일까? 군인 아저씨는 무사히 돌아왔을까.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건 그 해 말이었다.
그리고 토토는 언젠가부터 피아노를 배우지 않게 되었다.
아직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아빠를 뺀 가족 모두가 홋카이도에 있는 엄마 친정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엄마로선 결혼 후 첫 귀성길이었다.
돌아오는 아오모리발 우에노행 기차 안에서 토토는 창문에 달라붙다시피 하며 바깥 경치를 내다보았다. 앞자리엔 아저씨 둘이 앉아 "그 밤색 말이 죽여주드만." "새끼 말이 쌌으니께 샀으면 좋았겠는디 말여"라며 말 이야기에 몰두해 있었다.
발차 후 어느 정도 지나자 창을 통해 한가득 펼쳐지는 새빨간 광경이 돌연 토토의 눈 앞에 나타났다. 사과 과수원이었다.
"사과다, 사과!"
토토뿐 아니라 엄마도 함께 큰 환성을 질렀다. 새빨간 사과 열매가 한가득 열린 풍경이 너무나 예쁘고 맛있어 보여서 토토와 엄마는 홀딱 반했다.
"어떡한담, 내릴 수도 없고."라며 엄마와 토토가 이야기를 나누자 앞에 앉은 아저씨들 중 한 명이 "사과 먹고 싶습니껴?"라고 말을 걸어왔다.
"네! 먹고 싶어, 먹고 싶어요. 이제 토쿄에선 사과 같은 거 구경도 못하고 있거든요. 팔지를 않으니까요."
"우린 다음역에서 내리는디 맞다 아지매, 집 주소 좀 써주실라요?"
엄마는 허둥지둥 메모장을 찢어서 토쿄 주소를 커다랗게 써 아저씨에게 주었다. 메모를 주머니에 넣은 아저씨들은 다음역에서 서둘러 일어나 기차에서 내렸다.
아저씨가 토토네에 사과를 보내준 것은 그로부터 이 주일 정도 지나서였다. 나무로 된 커다란 사과 상자가 두 상자나 겨무더기에서 얼굴을 내민 새빨간 사과들은 정말 맛있어 보였고 실제로 먹어보니 달콤하고 맛있어서 울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그 인연으로 엄마와 아저씨는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이름은 누마하타 씨로 아오모리현 산노헤군에 있는 스와노타이라에서 커다란 농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감자나 호박 같은 채소도 많이 보내주곤 했다.
어느 날 아저씨가 "내년 장남이 토쿄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었는데 아는 사람이 없으니 거기에 하숙하게 해주었으면 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엄마는 수긍했지만 그 아드님이 토토네에 오기 직전에 군대로 소집되었고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토토는 대학생이 군대에 소집되어 행진하는 뉴스 영상이 나오면 그 아드님이 이 안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곤 했다.
'문화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 창가의 토토 8 (0) | 2024.07.21 |
---|---|
속 창가의 토토 7 (0) | 2024.07.17 |
속 창가의 토토 5 (0) | 2024.07.15 |
속 창가의 토토 4 (0) | 2024.07.14 |
속 창가의 토토 3 (0) | 2024.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