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여름대로 아빠의 형님이 살고 있는 카마쿠라 유이가하마에 해수욕을 하러 가는 게 즐거웠다. 백부님의 성함은 타구치 슈우지라 하는데 다큐멘터리 영화 카메라맨을 맡고 있어서 "슈우 타구치"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다. 전쟁터에 가는 일도 꽤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 후엔 교육영화 쪽에서 실력을 발휘하셨다.
이 백부님에게서 뉴욕 선물로 얼룩곰 인형을 받았는데 이게 판다 인형이라는 것을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당시 미국에선 전에 없던 판다 붐이 불었다고 한다. 미국 여자가 탐험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중국 쓰촨성에서 "환상의 동물"이라 불리던 판다를 탐색했는데 대나무 숲에서 아기 판다를 너무나도 쉽게 발견했다. 이 아기 판다를 강아지로 변장시켜 데리고 돌아와 시카고 동물원에서 사육하게 되자 이것이 순식간에 인기를 얻으면서 아메리카 방방곡곡에 판다 상품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 당시 토토로선 아직 판다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헤에, 이런 얼룩무늬를 가진 곰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그 인형이 평생을 같이 하는 친구가 될 줄은.
카마쿠라 해안에서 엄마는 수영복을 입었는데 당시 일본 여자들은 해수욕을 할 때 속옷을 수영복 대신 입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바다에서 나오면 가슴이 다 비춰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줌마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다들 신경쓰지 않았다. 토토는 그 광경을 보면서 "다 보이는데 굉장하네"라고 생각했지만 당시엔 그게 당연했다.
다리 길이가 다르지 않나?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여름날 아침에 오른쪽 다리 전체가 욱신욱신 아파서 눈이 떠졌다.
"자고 있는데 다리가 아팠어요!"
그렇게 말하자 엄마가 아침밥 준비를 멈췄다.
"큰일 났네! 곧장 병원에 가보자!"
이런 때 엄마의 결단력은 매우 빨라진다. 하지만 토토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변명을 필사적으로 생각해냈다.
"그게요, 아마 어제, 앞구르기를 할 때, 어딘가 부딪혔나 봐요."
이런 말을 했지만 엄마는 듣지도 않은 채 토토의 손을 붙잡고 집 근처에 있는 쇼와의전(현재의 쇼와대 의학부)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 활기가 넘치는 남자 의사 선생님이 토토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밝았던 선생님의 얼굴이 여러 군데를 살펴 보면서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바로 입원해야겠습니다."
토토는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바로 눕혀졌고 끈적끈적한 석고를 바른 붕대가 오른쪽 발가락부터 허리 근처까지 순식간에 감겨졌다.
토토의 오른쪽 다리는 결핵성 고관절염이라는 병에 걸려 있었다. 혈액이 운반해 온 결핵균이 고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면서 그대로 두면 관절 표면에 있는 연골이 파괴되고 그 다음엔 뼈까지 파괴되어 관절이 그 상태에서 붙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칭칭 감긴 깁스가 완성되자 선생님은 "잘 만들어졌군 잘 되었어!"라고 말하며 통통하고 가볍게 깁스로 고정된 오른쪽 다리를 두드렸다. 토토는 자신이 뭔가 새로운 인형이 된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이건 이것대로 미지의 체험이었고 계속해서 누워있어도 되니 땡잡았네 같은 한가로운 생각을 했다. 선생님은 "절대안정"이라고 하시며 토토를 그대로 어린이용 침대에 옮겼다.
"따님이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토토는 몰랐지만 엄마는 선생님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 겪는 입원생활. 침대에 누워있던 토토는 깁스 때문에 돌아눕는 것조차 할 수 없어 잠이 오지 않을 때엔 누워서 천장을 계속 쳐다보고 있어야 했지만 재밌는 것도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매일 병실에 찾아와 토토 간병을 해주었다. 엄마가 가져온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고 양손으로 인형을 들고 가슴 위에서 인형놀이를 하기도 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식사 시간엔 간호사 선생님이나 엄마가 음식을 잘게 쪼개서 입에 넣어주었는데 병원 밥은 엄마의 요리에 비하면 너무 맛이 없었다. 가장 싫었던 게 사각형 코우야두부 조림. 영양가가 높아서 그런지 곧잘 반찬으로 나와서 "오늘 반찬은 코우야두부예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으윽, 또냐"라고 생각하며 살짝 머리를 들어서 갈색 사각형 덩어리를 째려보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젓가락을 들어주면 토토는 그 젓가락으로 코우야두부를 꾹 눌러서 즙이 푸왁하고 나오는 것을 확인하며 "싫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꾹 눌러서 푸왁하는 것을 반복하는 토토를 보며 간호사 선생님은 "코우야두부를 좋아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토토는 꽤 운이 없는 아이였다. 쇼와의전에 입원하고 있는 와중에 성홍열에 걸려버렸다. 이 병은 주로 아이들이 걸리는 전염병으로 토토는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두르고 있는 그대로 쇼와의전 근처에 있는 전염병 전문 병원인 에바라병원에 격리되었다. 고열이 나고 온몸에 붉은 오돌토돌한 것들이 생기고 목이 아파서 괴로웠다. 그래도 좀 재밌었던 게 병이 낫기 시작하자 뱀이 탈피하는 것처럼 피부가 주욱 벗겨지기 시작했다. 손의 피부가 장갑을 벗은 것처럼 벗겨져서 간지럽긴 해도 재밌었다.
동생인 메이지 짱도 성홍열에 걸리면서 아빠와 엄마가 많이 힘들었다. 엄마는 아이 둘을 간병하면서 집에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아빠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어디에서 구하신 건지 반찬을 가지고 오셨다.
불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드디어 성홍열이 나아 쇼와의전에 돌아온 토토에게 이번엔 수포창이 돌았다. 산 너머 산. 수포창도 전염병이니 토토는 다시 깁스한 그대로 에바라병원으로 귀환. 다리에 한 깁스를 언제 풀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건 어찌되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수포창은 울고 싶어질 정도로 가려웠다. 게다가 계절은 여름.
온몸에 오돌토돌한 게 생겼는데 깁스를 안한 부분은 긁거나 간지럼 방지약을 바를 수 있었지만 깁스 안 쪽엔 전혀 손이 들어가지 않고 땀까지 흘러 축축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깁스와 몸 사이로 나 있는 틈새에 길고 가느다란 막대를 넣어 긁어보려 했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알게 된 아빠가 지시봉을 가져와 틈새로 살며시 넣어보니 납작한 지시봉이 가려운 곳 근처까지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아빠, 들어갔어요! 대성공!"
바이올린을 켜느라 바쁘실 아빠가 나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게 기쁘고 감사해 박수를 쳤다. 무릎 뒷편 같은 가장 가려운 곳엔 지시봉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참을 만 해졌다.
병원 바깥에는 쓰름쓰름 우는 매미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드디어 깁스를 푸는 날이 다가왔다. 여름 동안 계속해서 깁스 속에 갇혀있었던 오른쪽 다리는 상당히 가느다라져 있었다. 입원하는 동안 키도 좀 커졌지만 다리 길이는 오른쪽 다리보다 왼쪽 다리가 길어져 있었다.
"어라? 다리 길이가 다르지 않나?"
선생님이 깁스를 풀고 있는 동안 토토와 엄마는 마주보고 웃어버렸다. 하지만 이대로는 양다리의 밸런스가 무너져 제대로 걸을 수가 없기 때문에 토토는 쇼와의전 병원을 퇴원한 이후 접골원에 다니거나 유가와라(카나가와현)에 있는 온천에서 치료를 하거나 요즘 말하는 재활치료를 하게 되었다.
유가와라에서는 아빠의 어머니와 젊은 도우미 분 둘이서 같이 돌봐주었다. 할머니는 토토가 타타미 위를 달리면 "조용히 하렴"이 아니라 "소리가 나는 게 싫단다"라고 했다. 토토는 이 한 마디를 들은 것만으로 "무서워!"라고 생각하며 되도록 조용히 있도록 했다.
유가와라에서 돌아올 때엔 시나가와역에 아빠와 엄마가 마중나와 주었다. 열차에서 내린 토토가 플랫폼을 달려 아빠와 엄마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을 보고 두 분이 우셨다. 오랜만에 만났으면 기쁠 텐데 어째서 우는 걸까 의아했는데 쇼와의전 선생님으로부터 "목발을 짚고 다녀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듣기까지 했던 토토가 달려오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어른이 되어서야 알려주셨다.
다리 길이는 같아져 걷기도 달리기도 문제없었다. 토토는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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